[관점뉴스] 식약처의 먹는 낙태약 '미프지미소' 허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국민건강이 기준돼야

최정호 기자 입력 : 2022.04.28 07:09 ㅣ 수정 : 2022.05.19 15:02

식약처, 의약계간의 '밥그릇 싸움'에 휘둘리나?
지난 2021년 1월부터 형법상 '낙태죄' 조항 폐지돼
현대약품, 2021년 70개 국가에서 안전성 인정받은 미프지미소 품목허가를 식약처에 신청
식약처, 당초 가교임상 면제 등 검토하다가 의료계 반발에 미온적 태도로 돌변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image
[사진=뉴스투데이DB]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형법상 여성의 낙태가 합법화된게 1년이 넘었지만 정부와 국회의 미온적 대응으로 불가피하게 낙태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 안정성을 인정받은 '먹는 낙태약'인 미프지미소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품목허가가 뚜렷한 사유없이 지연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당초 식약처는 신속한 품목허가를 추진하려는 듯한 분위기였으나 의료계가 반발하자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식약처가 더 이상 의약계의 '밥그릇 싸움'에 휘둘리지말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국민건강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집중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 헌법재판소는 3년 전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정부와 국회의 난맥상으로 불가피한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 피해 커져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4월 11일 형법상 낙태죄 조항(269조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효력이 발생한 건 2021년 1월 1일이다. 그 때부터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삭제됐다. 

 

현대약품은 그 해 7월 식약처에 '미프지미소'의 품목허가를 식약처에 신청했다. 현대약품이 도입하려는 ‘미프지미소’는 영국의 다국적 제약사 ‘라인파마’가 생산하는 경구용(먹는) 인공 낙태 약이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열린 전문가 자문회의를 마지막으로 5개월 간 미프지미소 허가심사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의료계가 가교 임상 시험을 진행할 것을 요구함에 따라 보류됐다. 

 

일부 신약은 가교임상 면제도 가능하지만 미프지미소는 가교임상을 거치라는 주장이다. 가교임상은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거친 약이 국내에 도입될 시 내국인을 대상으로 확인하는 절차다. 추가로 임상시험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간이 오래 소요된다.

또 미프지미소가 국내에서 시판되기 위해서는 인공 낙태 관련 내용이 포함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됐지만 현행 모자보건법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낙태를 합법화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 등 관련법 개정안도 처리해야 하지만 국회에서 3년째 표류하고 있다. 법률 간 엇박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식약처는 당초 가교임상 면제 등을 언급하면서 미프지미소 품목허가에 적극성을 보이는 듯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온적인 태도로 바뀌는 분위기이다. 의료계 반발에 몸를 사린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지방선거와 정권교체가 맞물리면서 국회의 입법노력과 식약처의 신속한 행정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이 같은 국회와 정부의 난맥상으로 인한 피해는 여성이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다. 헌법은 낙태를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허용한지 1년이 넘었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여전히 불법행위 취급을 받고 있다. 편법과 의료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실정이다. 

 

■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 " ‘미프지미소’ 안정성 검증 안돼...의사의 낙태 수술이 안전해”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프로제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필요한데 미페프리스톤이라는 약물은 이를 억제해 임신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효과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미페프리스톤을 복용 후 4일 이내에 자궁을 강하게 수축시키는 미프지미소(또는 미소프로스톨)를 복용할 경우 임신산물이 배출돼 인공 유산이 유도된다.  

 

약물을 통한 인공 유산을 실행할 경우 환자는 하열과 생리통과 유사한 복통 증세를 호소하게 된다. 임신산물이 다 배출된 이후에도 2일 정도 복통 증세가 지속될 수 있다. 또 9~16일가량 미세한 출혈이 발생하는 것으로 의료계는 판단한고 있다. 

 

이상 증세로는 패혈증으로 진행되거나 2시간 이상 과다 출혈이 계속될 경우 환자는 병원을 찾아 산부인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 미국에서는 약물에 의한 인공 낙태를 진행한 환자 152만명(2000~2011년) 중 패혈증으로 8명이 사망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미프지미소를 약물 낙태 적기에 구입해 복용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크지만 환자 입장에서 보면 매우 어렵고 위험한 선택”이라면서 “미프지미소를 복용하면서 발생하는 복통과 상당량의 하열을 환자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된다면 의사 입장에선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현재 낙태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약물에 의한 유산 유도 역시 불법이다. 다만 인공 낙태가 필요할 경우 산부인과의사들이 중심이돼 만든 시술 매뉴얼대로 깐깐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윤리적 신념으로 인공 낙태를 반대하는 산부인과의사들도 더러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미프지미소의 인공 낙태 성공률이 60%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미페프리스톤’이라는 약과 함께 복용할 경우 약물 낙태 성공률이 90%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게 산부인과의사들의 분석이다.

 

■ 약사모임 관계자, "시골지역 및 청소년에겐 수술낙태보다 약물 사용이 더 좋은 방법" / 김동식 한국여성연구원 본부장, "‘산부인과 의사들 인공 낙태 수술’ 경험 적어, 과도기에 낙태 약물 필요" 

 

반면에 약사들은 미프지미소와 같은 경구형 낙태약이 환자의 안전성을 도모해준다고 맞서고 있다.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약물에 의한 인공 낙태에 대해 환자 건강상 문제가 많다고 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식의 사회적 합의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미프지미소를 복용할 경우 생리가 많은 날 정도의 하열과 생리통이 수반될 뿐 그 이상의 몸의 반응이 없어 사용에 대한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산부인과의 경우 대도시에 밀집돼 있어 그 지역 거주자들은 인공 낙태 수술의 경로가 많지만 시골은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돼 있다”며 “특히 성(性)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의 임신 청소년에게 수술 낙태의 트라우마를 심어주는 것보다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국내에 인공 낙태 약이 알려진 것은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산 유도제 합법화를 주장하는 글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왔고 단기간에 23만명이 동의했다. 이때 인공 낙태 약을 네덜란드 의료 단체 등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해 알려지게 됐다.  

 

현재 UN과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인공 낙태 약을 필수 의약품으로의 지정을 권장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내 국가들은 남성우월주의에 의한 성폭행과 내전 상황 시 발생한 강간 등 여성 인권 유린 문제로 인공 낙태 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와 같은 내전 국가 등에는 의료인들이 유입의 어렵기 때문에 인공 낙태 수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동식 한국여성연구원 본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 2019년 영국 산부인과학회장을 만나 인공 낙태 약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면서 “인공 낙태 약을 사용할 경우 현기증 등 부작용이 일부 나타나기는 하지만 수술(인공 낙태)로 겪게 되는 사회적 낙인 효과와 비정상적인 출혈이 치명적이었다는 얘기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공 낙태 수술에 대해 숙련된 산부인과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임신 중절이 합법화 됐지만 1차 의료기관에서 수술을 할 수 없으며 많은 의사들이 신념에 의한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합법화 전에는 인공 낙태 수술이 불법이라서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수련의 때 훈련을 못 받지 못해 과도기를 심하게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본부장은 “아일랜드와 같은 절차를 우리나라도 밟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동안 대형 병원에서 인공 낙태 수술이 합법적인 방식으로 쓰여 왔다”면서 “인공 낙태 수술이 합법화 될 경우 산부인과의사들이 경험 부족으로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과도기 기간에 약물에 의한 인공 유산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더욱이 미프진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미국 및 프랑스 등 해외 70여개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미프지미소는 복용법을 준수할 경우 임신중절률이 98~100%에 이를 정도로 성공률이 높은 의약품이라는 게 약학계의 주장이다.

 

image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이 예정된 2018년 5월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는 위헌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1980년대에 제정된 ‘모자보건법’,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3년 전 헌재 판결과 불일치

 

국제적으로 여성 몸의 주체가 남성이 아니라는 가치관이 정립된 것은 지난 1995년에 열린 ‘세계 여성대회’에서다. 당시 여성이 몸에 관련된 사항을 선택하는 주체가 여성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확립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법제도를 개정하기로 선언했다. 이후 인공 낙태 시도의 주체가 여성에게 있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합의된  가치관으로 정착됐다.  

 

국제사회는 이처럼 여성 몸의 주체를 여성 자신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사회는 아직도 인공 낙태의 결정권이 남성에게 있다는 유교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게 여성단체들의 비판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여성이 남성의 동의를 받고 인공 낙태해야 하는 관행은 구시대적 발생이라는 얘기다. 여성의 낙태 금지에 대한 실정법인  모자보건법은 1986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신속히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현행 모자보건법은 낙태죄를 폐지한 3년전 헌법재판소의 판단과도 불일치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 사회적 합의 지연으로 현대약품 미프지미소 출시 ‘전전긍긍’

 

현대약품은 지난해 미프지미소 국내 출시를 올해로 목표 삼았다. 그러나 식약처의 미온적인 태도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약품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미프지미소에 대한 시장성을 판단하고 당사도 출시를 해야 하는데 인공 낙태 약은 특별한 경우”라면서 “탈모약의 경우 관련 인구수에 대한 통계가 있지만 원치 않은 임신을 수치화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로는 식약처가 요구한 자료 보강에 집중하고 있으며 사회적 상황에 대해 관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BEST 뉴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