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뿌리, 로맨스 상실]① 대중문화 시장에서 실종된 아름다운 '에로스'
이안나 기자 | 기사작성 : 2018-01-31 09:51   (기사수정: 2018-02-0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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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날' 스틸컷 ⓒ오퍼스픽처스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저출산’이다. 정부 역시 저출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아동수당’, ‘육아수당’, ‘육아휴직 수당’ 등 각종으로 수당을 신설하고 증액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복지지출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출산율은 단 한번의 증가 없이 매년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에선 최하위다.
 
‘빅데이터를 처형하라’의 저자인 배철순 하우사회문제연구소 소장은 그 근본이유로 ‘로맨스의 상실’을 꼽았다. 현재 결혼 적령기인 2030세대가 결혼 및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집값'이나 '자녀 교육비'가 아니라 '사랑 부재' 에 있다는 것이다. 

뉴스투데이는 배철순 연구소장과 함께 중장년층보다 ‘졸혼’을 더 많이 검색하고, ‘비혼주의’를 선언하는 등 과거와는 달라진 청년들의 ‘로맨스’가 바로 저출산의 뿌리라는 관점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이안나 기자) 

지난해 누적 출생아 수·누적 혼인건수 역대 최저 수준

대다수의 가정이 모두 불타는 연애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결혼을 말할 때 만큼은 는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청춘남녀 간에는 에로스(그리스 신화속 사랑의 신)가 실종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2017 청소년종합실태조사’ 결과,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항목에 ‘그렇지 않다(전혀 그렇지 않다 포함)’는 응답이 49%로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3∼24세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5년 전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률(26.9%)에 비해 2배 가까이 치솟은 것이다. 이들이 청소년을 벗어나 청년이 되면 '결혼은 옵션'이라는 인식이 더 대중화될 전망이다.

실제 현재 우리나라 혼인건수는 감소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혼인 건수는 23만6,900건에 그치면서 집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1년 전 같은 기간 28만1600건에 비해 6.4% 줄어든 수치다.
 
결혼을 안하니 태어나는 아이 수도 줄어든다. 지난해 1월~11월까지 태어난 아이 수는 33만3000명으로 전년 대비 12.1%(4만5900명) 감소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30만명 중반대에 그치면서 사상 처음으로 연간 출생아 40만명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로맨스 사라진 한국영화… 2004년 흥행 10위 영화중 5개가 멜로물, 2017년 흥행 10위에 멜로물 전무

언제부터인가 청년들 사이에선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현실에서 벗어난, 유치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니까’결혼을 하게 되었고, 해야 하는 결혼이기 때문에 되도록 ‘조건’에 맞추어 결혼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사랑을 외면하는 현상은 대중문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충무로에는 ‘멜로 영화 기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2004년부터 매년 우리나라의 국내외 영화 흥행 순위를 제공하고 있다. 이중 국내영화 흥행 10위권 내에서 액션과 역사물, 멜로의 비중을 살펴보면 14년의 시간동안 로맨스‧멜로‧드라마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국내 영화 흥행 10위권 리스트 ⓒ영화진흥위원회

 
예를 들어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가 큰 흥행을 했던 2004년 흥행 10위권 영화들 중에서 액션영화는 총 3편(바람의파이터), 코미디는 2편(귀신이산다, 시실리2Km)이었던 반면, 로맨스, 멜로, 드라마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우리 형',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늑대의 유혹', '가족' 등 총 5편이나 제작되었다.
 
영진위가 제공하는 50위권까지 리스트를 확대하면 ‘어린신부’, ‘아는여자’, ‘꽃피는 봄이 오면’, 내 남자의 로맨스‘ 등 멜로‧드라마의 영화 리스트는 더욱 증가한다. 이중 가족애를 다룬 영화를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영화산업 전반에 있어 로맨스와 멜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고 흥행도 좋았다는 것이 유추 가능하다.

반면, 2017년 영화 흥행순위를 살펴보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택시운전사', '신과 함께', '공조', '범죄도시', '군함도', '청년경찰', '더킹', '꾼', '강철비', '남한산성'이 10위권 내 영화다. 로맨스‧멜로‧드라마 영화는 단 한편도 없다.

한국 영화 흥행 50위까지를 살펴보면 충무로의 ‘멜로 기근’ 현상이 실체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흥행 50위 안에 드는 영화 중 사랑을 소재로 한 멜로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차태현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하기 때문에>, 김남길·천우희 주연의 <어느날>로 단 두 편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사실 흥행했다고 말하기도 신통찮은 성적이다. 멜로영화의 경우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하면 “흥행했다”고 불리는데 <사랑하기 때문에>가 32만4526명으로 45위, <어느날>은 23만4829명으로 50위에 그쳤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세였던 멜로 영화가 갑자기 내리막을 걷게 것과 관련해, 일각에선 TV 드라마의 멜로 영역이 키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철순 연구소장의 의견은 다르다. 그는 “드라마는 언제나 멜로를 다뤄왔다”며 “영화의 주 관람객인 청년들이 멜로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드라마를 보는 주요 세대는 청년이 아닌 중장년층이라는 점도 근거가 된다.

실제 영화산업에서 멜로 영화가 사라진 이유는 대본 자체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멜로 대본이 나온다고한들, 투자자들이 투자를 기피하는 이유가 크다. 관람객이 적기 때문이다.



▲ 2000년대 중반까지는 멜로 영화가 크게 흥행하는 일이 잦았지만 최근에는 스크린에서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사진=왼쪽부터 영화 클래식, 봄날은간다, 연애소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리스트, 2000년 남녀간 사랑 다룬 소설 많지만 2017년에는 추리소설이 포식자

‘사랑의 실종’은 출판되는 소설책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교보문고는 2000년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을 제공하고 있다. 외국 서적을 포함한 2000년도와 2017년도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보면 흥행영화 리스트와 비슷하다. 
 
교보문고 2000년의 베스트셀러 소설 10위권으로는 ‘가시고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국화꽃향기’, ‘해리포터와 비밀의방’, ‘상실의 시대’, ‘아라리 난장’, ‘딸기밭’, ‘시인의 별’, ‘창가의 토토’, ‘항아리’의 순이다. ‘가시고기’와 ‘국화꽃향기’는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하고, ‘시인의 별’은 원나라로 끌려간 아내를 찾는 남편을 그린 역사물이다. 말미의 두 권은 동화책이다.
 
2017년의 10위권으로는 ‘82년생 김지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기사단장 죽이기’, ‘살인자의 기억법’, ‘오직 두 사람’, ‘잠’, ‘너의 이름은’, ‘채식주의자’, ‘기린의 날개’, ‘가면산장 살인사건’의 순이다.
 
이중 시대상황을 다룬 ‘82년생 김지영’,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오직 두사람’,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제외하면 모두 일본서적으로 히가시노게이고의 추리물이 3권이나 포함된 다. '살인자의 기억법'도 추리물로 분류될 수 있고, '채식주의자'도 연애감정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작품이다.

이중 멜로적 성격을 가졌다고 보이는 것은 애니메이션 영화가 흥행한 일본 서적 서 ‘너의 이름은’ 정도다. 
 
영화와 소설의 예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의 로맨스는 더이상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특히 현재 청년들에게 ‘사랑 이야기’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소재가 되어버렸다. 로맨스가 상실된 나라에서는 그러한 소재의 영화, 소설 등의 문화도 존재할 수 없다.  


[이안나 기자 leean@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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