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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전쟁사(53)] 세계전사에 길이 남은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영웅들(상)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1950년 9월15일, UN군 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지휘아래 7합동기동부대가 항공모함, 구축함, 순양함 등 8개국 261척의 함정을 이용하여 미10군단 예하 1해병사단, 7보병사단과 국군 해병대1연대, 육군 17연대로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이라 칭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했다. 6.25남침전쟁 승리의 전기를 마련한 인천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불가능을 가능케 한 작전으로서 세계 전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9월 15일 06:00에 학도병으로 구성된 772명이 문산호를 타고 경북 장사리에 상륙하여 양동작전을 성공시킨 것도 의미있는 전쟁의 역사이다. 하지만 전투중 북한군에 의해 대부분 전사하는 등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숨은 영웅들이 있었다. ▲ 2016년 상영된 ‘인천상륙작전’영화 포스터와 영화속의 실존 인물인 우측 고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사진자료=국가보훈처}   ■ 보훈처, 2014년 9월의 6.25남침전쟁 영웅에 故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 선정 인천상륙작전 한달전인 8월 22일 인천앞바다의 영흥도에 임병래 중위(1922년 평남 용강 출생, 1950년 4월 20일 해군 중위 임관, 해군정보국 창설 요원)가 이끄는 인천상륙작전 첩보대가 은밀히 상륙하여 잠입에 성공했다. 그들은 서울과 수원, 인천 등 사지(死地)를 왕래해 북한군의 병력배치와 그 규모, 보급관계, 지뢰매설 사항, 상륙지점의 지형, 암벽의 높이, 기뢰 수송사항, 인천 해안포대의 위치, 인천시내 주둔 병력의 규모와 활동내용을 수집해 해군 본부와 맥아더 사령부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X-Ray작전이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을 하루 앞둔 9월 14일 새벽2시 영흥도 옆섬인 대부도에 주둔해 있던 북한군 1개 대대가 첩보대의 활동을 눈치채고 영흥도로 기습 공격을 했다. 이미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될 9월 15일이 다가오자 영흥도 첩보기지는 철수명령을 받았으나,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1948년 6월 1일 해군 신병 10기로 입대, 해군 정보국 특수공작 2조에 편성됨)를 비롯한 해군 첩보대원 9명과 해군 의용대원 30여명은 공격해 오는 북한군들과 치열한 교전을 치루게 됐다. 적으로부터 포위될 위기에 직면하자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다른 대원들이 보트로 탈출할 수 있도록 위험을 무릅쓰고 적의 공격을 차단해 다른 대원들은 그곳을 탈출했지만 마지막까지 퇴로 보장을 위해 적군을 저지하던 두 대원은 끝내 탈출에 실패해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절대절명의 순간, 인천상륙작전을 불과 24시간 앞둔 시점에서 포로가 될 경우 인천상륙작전이 탄로 날 것으로 판단한 임중위와 홍하사는 적을 쓰러뜨린 다음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장렬한 죽음의 길을 택했다. 작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군사기밀은 목숨걸고 지켜야 할 가치라는 사실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이로써 9월15일 ‘크로마이트 작전’이라 칭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했고, 이어 유엔군 미해병대(7사단 32연대)와 육군(17연대), 그리고 한국 해병대는 서울로 진격했다. 이에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결정적 기여자인 고(故)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미 은성무공훈장과 을지무공훈장을 받았고, 이 두 분의 유해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또한 보훈처에서는 2014년 9월의 6.25전쟁 영웅에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를 선정하여 그 소중한 정신과 실천을 가슴 깊이 기리고 있으며, 이 이야기는 2016년 ‘인천상륙작전’이란 영화로 재탄생하여 미국과 한국에서 인기리에 상영된 바 있다.(하편 계속)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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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9-07
  • [김희철의 전쟁사(51)] 서부전선보다 80㎞를 더 한국영토로 만든 월비산 전투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군 1군단 예하의 수도사단과 11사단 등은 강원도 고성군의 월비산과 351고지 탈환을 위해 1951년 10월 중순부터 휴전 직전까지 7차례에 걸쳐 고지 쟁탈전을 치루었다.  특히 육해공군 합동작전을 수행한 전투로 해군의 지속적인 함포사격 지원과 더불어 공군은 총 1538회를 출격해 적 핵심시설 및 진지, 벙커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다. 비록 마지막에 적에게 피탈됐지만 더는 전선이 밀리지 않은 덕분에 현재 38도선 북쪽인 설악산 일대를 우리 영토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월비산과 351고지, 통일전망대를 그린 그림 [사진자료=전쟁기념관]   ■ 산으로 달이 솟는 것이 날아오르는 형상인 월비산에서의 치열한 전투   월비산은 건봉산 줄기가 동해로 뻗으면서 형성된 표고 459m로 고성 서남쪽 5㎞ 지점에 돌출한 산이다. “달이 솟는 것이 마치 날아오르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흥만과 더불어 월비산 일대는 6 · 25남침전쟁시의 전쟁영웅인 ‘김동석 대령(가수 진미령의 부친)’이 지휘한 HID36지구대의 활동지역이기도 했다. 그들은 야간에 은밀히 북한군 후방으로 침투하여 게릴라, 기습, 암살, 첩보, 납치, 주요시설 폭파 등 각종 임무를 수행했다. 밤이면 물에서 올라와 첩보활동을 펼치고 해가 뜨면 사라지는 활동방식 때문에 북한군들은 이들을 ‘물쥐’라고 불렀고 김동석 대령은 ‘물쥐 대장’이 되었다.(김희철의 전쟁사(1) ‘불암산 호랑이와 물쥐대장 김동석’ 참조) 국군 1군단은 1951년 9월6일경 향로봉∼건봉산∼송현리를 잇는 선상에 주저항선을 형성하여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10월10일 예하 수도사단으로 고성 일대의 전술적 요충지인 월비산을 선제공격하게 함으로써 월비산·351고지 전투가 개시되었다.  국군 1군단장 백선엽 장군은 지형상 월비산을 확보하지 않고는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수도사단장(송요찬 준장)에게 그 임무를 부여하였다. 이에 수도사단은 1기갑연대로 하여금 1951년 10월 10일 월비산 공격의 발판이 되는 148고지∼351고지를 공격하도록 하여 이를 탈취하였다. 10월 12일부터 3일간 1기갑연대는 주목표인 월비산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간신히 261고지와 350고지까지 진출하는 데 그쳤다.  수도사단 사령부에서는 병력을 집중투입하기로 작전계획을 수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기갑연대는 15일 오전에 공군이 포함된 제병협동 및 합동작전으로 공격을 재개하였다.  당시 유엔 공군기의 오폭으로 3대대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일대 혼란이 야기되기도 하였으나, 월비산 정상으로 돌진하여 치열한 백병전을 벌인 끝에 이날 오후 마침내 월비산을 탈취하였다. 월비산 전투가 일단락되면서부터 동부전선의 상황은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 월비산·351고지 전투 당시 고지를 점령한 국군 1기갑연대 장병들 [사진자료=국방홍보원]    ■ 월비산·351고지는 피탈됐지만 서부전선보다 북으로 80㎞를 더 확보 한편 육군이 ‘51년 11월에 수도사단(사단장 준장 송요찬)과 8사단(사단장 준장 최영희) 그리고 기존 서남지구 전투사령부를 통합하여 ’백야전 전투사령부(사령관 소장 백선엽)’를 창설하였다.  수도사단은 월비산·351고지일대에서 수색과 정찰의 반복으로 북괴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중, 군단 작전지시 제14호에 따라 책임지역을 11사단에 인계하고, 11월16일부로 호남지구에 창설된 ‘백야전사령부’에 배속되어 공비토벌 작전에 임하게 되었다. 이에 11사단은 작전명령 제18호에 의거 사단예비인 9연대로 하여금 월비산∼261고지∼351고지∼148고지∼187고지∼36고지를 인수하게 하였다. 따라서 9연대는 배속 받은 대전차공격대대를 261고지와 월비산에, 사단 수색중대를 148고지 일대에 배치하여 방어태세를 강화하였다. 그로부터 2일이 지난 11월18일 저녁, 북한군 9사단 86연대의 1개 대대는 어둠이 깃든 후 월비산을 목표로 하여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이 고지에 배치된 대전차공격대대에 의해 격퇴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날 후반야에 3개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하여 아군의 방어진지를 돌파하였다. 월비산을 탈취한 북한군 1개 대대는 그 여세를 몰아 대전차 공격대대가 351고지에 미처 방어편성을 끝마치기도 전에 급습하여 이 고지마저 장악하였다.  11사단은 수도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인수받은 지 불과 8일 만에 이를 고수하지 못하고 북한군에게 빼앗겼다. 당시 대전차공격대대 1중대 이재화 중위(예비역 대령, 16연대장 역임)는 수도사단 1개연대가 방어하던 진지를 2개중대로 배치한 것과 신병들로 구성되어 전투경험이 적은 것도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증언했다.    11사단장 오덕준 준장은 심기일전하여 339고지∼351고지∼208고지∼37고지선에 새 방어진지를 편성한 후 방어태세를 강화시켜 나갔다.  하지만 이 전투로 북한군 사살 891명, 포로 37명, 소총 369정 노획 등의 전과를 거두었으며, 이후 수차례의 고지 쟁탈전이 휴전 직전까지 계속되었으나 우리 국군은 새롭게 편성된 방어진지를 잘 지켜냈다.      ▲ 좌상단에 보이는 금강산과 그 밑의 월비산 능선, 우측 고지정상에 보이는 통일전망대, 하단에는 금강산으로 가는 도로 모습 [사진자료=고성군] 휴전협정 이후, 월비산은 안타깝게도 북한 땅이 되었으며 월비산과 351 고지 아래로 북측 민통선이 그어졌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 국군은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보다 북쪽으로 80㎞를 더 확보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월비산 정상에 국군의 동태를 파악하는 북한군 초소가 있으며 월비산 아래에는 북측 민통선과 더불어 남한 측에서 건설한 금강산으로 가는 도로가 지나간다.  금강산과 월비산의 모습은 고성군 현내면에 위치한 통일전망대에서 볼 수 있으며 월비산과 351 고지는 절경인 해금강과 더불어 분단의 아픔과 6.25남침전쟁의 치열함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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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8-24
  • [김희철의 위기관리] 6.25전쟁 70주년에 벌어지는 남북한 '대리전'의 숨은 그림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지난 6월16일, 개성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됐다. 이를 지시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1부부장은 탈북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주도한 대북전단을 남한정부가 막지 못했다며 강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등 공동선언도 백지화 되었다고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또한 전군 구국동지 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6.25남침 70주년 자유대한수호 결의대회’에서는 “김일성 종북주의를 척결하고 자랑스러운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자!”라고 맛받아치며 남북 각각의 악역을 담당한 대리전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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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9
  • [김희철의 전쟁사](40) 중공군의 '유엔군 보급선 차단'을 막아낸 호주대대의 마량산 전투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6.25남침전쟁에서 코만도 작전(Operation Commando)은 1951년 10월 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유엔군에 의해 수행된 공세적 기동전이다. 국군 1보병사단과 1영연방사단을 포함한 미 1군단은 제임스타운 선을 포위하여 중공군의 제42군, 제47군, 제64군, 제65군을 섬멸하였다. 317고지 또는 마량산이라 불리는 이 고지는 코만도 작전의 격전지였으며 참호전이 되기전에 치루어진 호주군의 마지막 기동 전투였다. 이 공세 이후 공산군은 서울 인근의 유엔군 보급선을 차단하는 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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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5
  • [김희철의 전쟁사](39) 70주년 맞은 6.25 최후의 승부 '백석산 전투'서 휴전선 결정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인 6.25 남침전쟁이 발발한지 올해로 70주년이다. 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 휴전이 될 때까지 3년1개월간 벌어진 전쟁에서는 유엔군과 한국군 18만여명이 전사하고 북한군 52만여명, 중공군 90만여명이 숨진 것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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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2
  • [김희철의 전쟁사](38) 보훈의 달, 잊혀진 우리의 혈맹 에티오피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세계 2차대전이 끝나자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의 이념 갈등과 냉전이 심화되었다. 특히 한반도는 얄타 및 포츠탐 회담에 의해 남북으로 분리되었고 이념갈등은 극에 달았으며 드디어 1950년 6월25일 공산주의인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은 민주주의인 남한으로 침공을 개시하여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비극인 6.25남침전쟁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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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2
  • [김희철의 전쟁사](37) 보훈의 달, 잊혀가는 영웅들과 지도자의 자세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40년전 5.18민주화운동으로 후유증까지 포함하면 사망569명, 행불 65명, 부상 313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70년전 6.25남침전쟁에서는 우리나라의 공산화를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국군은 전사14만7000명, 부상 70만9000명, 행불13만1000명 등 98만7000명이 희생되었고, 민간인은 사망24만4600명, 부상22만9600명, 행불33만300명과 1000만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이는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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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9
  • [김희철의 전쟁사](36)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과 유격전 귀신 ‘이현상’의 진검승부(하)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손자병법에 수록된 ‘피실격허(避實擊虛)와 공기무비 출기불의(攻其無備 出其不意)’는 "강한 곳은 피하고 약한 곳은 공격하며, 상대가 준비하지 않으면 공격하고 상대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유격전의 귀신인 이현상의 남부군이 즐겨 활용한 병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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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5
  • [김희철의 전쟁사](35)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과 유격전 귀신 ‘이현상’의 진검승부(상)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6.25남침전쟁 중 국군이 38선을 넘어 통일을 위한 북진을 계속할 때 퇴로를 차단당한 북한군 패잔병 약 1만여명이 지역 공비들과 합류하였다. 이들은 북한군의 제2전선인 평강·양구·철원일대에 약 2만5,000명, 후방지역인 태백산 일대에 4,000명, 지리산 일대에 3,000~2만명 정도로 추산되었다.이에 ‘50년10월 후방지역 작전을 전담할 3군단을 창설하여 공비토벌과 병참선 확보임무를 수행토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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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3
  • [김희철의 전쟁사 (34)] 밴플리트 사령관과 백남권 사단장이 '강한 한국군' 만들어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6.25남침전쟁이 한창일때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은 가칠봉전투에서 승리한 백남권 3사단장에게 항상 수류탄을 앞가슴 양쪽에 차고 다닌다고 ‘한국의 리지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우리 3사단이 단시일에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한 것은 현리전투 패전 후 유엔군이 주도한 FTC에서의 철저했던 훈련과 미군의 화력 및 항공 지원에 큰 힘을 입었던 겁니다”라고 승리의 원인을 사전 교육훈련과 화력지원 등 유엔군의 공로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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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4
  • [김희철의 위기관리]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직업분포에 나타난 폐쇄적 진입구조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4.15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시민당이 1870석, 미래통합당·한국당이 103석을 차지해 보수의 완패로 끝났다. 또한 정치 9단으로 칭하던 다선의 중진인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박주선, 손학규 의원들이 모두 충격적인 낙선을 했고, 현재 최다선은 6선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에 당선된 21대 국회의원 300명을 직업별로 분석하니 현직 의원이 122명이고 전직의원이 27명으로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거의 50%이고 그밖에 의원 보좌관 출신 등 정치인이 78명이다. 평생 정치를 직업삼아 해 먹던 사람들이 계속 독식하여 다른 직업인이 정치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폐쇄적인 구조로 다양한 직업군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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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4-21
  • [4.15총선 출마 軍출신 후보들(4)] 반전의 총선결과, 민주당 민홍철·윤재갑·김병주와 통합당 한기호·최춘식·신원식 등 당선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4.15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시민당이 179석, 미래통합당·한국당이 101석을 차지해 보수의 완패로 끝났다. 그동안 격렬했던 광화문 태극기 시위의 포효가 메아리 없는 아우성으로 막을 내렸다. 그중 21대 국회로 입성하는 軍출신들은 10명이 출사표를 던져 민주당의 민홍철(3선)·윤재갑·김병주와 통합당의 한기호(3선)·최춘식·신원식 등 6명이다. 이중 특이한 경우로 전체적으로 보수당이 완패한 가운데, 보수당의 대위 출신이 진보당의 대장 출신을 이기는 이변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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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4-16
  • [4.15총선 출마 軍출신 후보들(3)] 민주당 김병주·이철휘·황기철·윤재갑·민홍철, 통합당 신원식·한기호·김중로·최윤희 등 격전 중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미스터트롯 경연에서 5위로 스타가 된 14살 소년 정동원은 ‘여백’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에 따라 변하는 욕심 속 물감의 장난이 인생”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국가안보의 첨단인 군(軍)에서 반평생을 지난 예비역 군인들이 ‘제 2의 인생’에서 국민의 선량이 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각 당의 후보로 확정되거나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 출마 또는 포기한 사람들로 갈라졌다. 이 출사표의 의미가 메슬로우가 주장한 인간의 5대욕구 중 가장 높은 ‘자아실현의 욕구’ 구현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귀결될지 아니면 미스터트롯 스타 정동원의 노래 ‘여백’에서 처럼 ‘욕심 속 물감의 장난’인지는 4.15 총선 결과를 통해 판가름날 전망이다.    ▲ 21대 국회의원 선거(4.15)에서 각 당에서 공천을 받은 군출신 후보들로 상단 좌측부터 미래통합당 신원식(합참작전본부장), 한기호(육군교육사령관), 김중로(70사단장), 최윤희(합참의장/해군총장)후보, 하단 더불어시민당 김병주(연합사부사령관), 더불어 민주당 이철휘( 2작전사령관), 황기철(해군참모총장), 윤재갑(해군 군수사령관)후보, 모습 [사진자료제공=국방부/연합뉴스]   ■ 비례대표로 시민당 김병주 전 연합사부사령관과 통합당 신원식 전 합참작전본부장 공천 공천이 확정되어 치열한 선거전을 치루는 후보들을 보면 더불어시민당에서는 민주당 안보 대변인인 김병주 전 연합사부사령이 비례대표 12번을 받았고, 미래통합당에서는 자유한국당 북핵 외교안보 특별자문위원이었던 신원식 전 합참작전본부장이 비례대표 8번을 받아 안정권이다.    ■ 통합당 한기호(재선의원) 전 육군교육사령관이 ‘춘천·철원·화천·양구’, 김중로(초선의원) 전 70사단장은 ‘세종시 갑’지역구에 출마 미래통합당은 강원도 춘천·철원·화천·양구 지역에 한기호 전 육군교육사령관을 공천했다. 그는 철원츨신으로 김화중학교를 나온 뒤 서울 한양공고를 다녔고 육사 31기로 임관하여 육군중장으로 전역했다. 한 후보는 현역 위관시절 탁월한 지휘력과 업무추진력이 돋보여 당시 사단장 박세직 장군의 조카 사위가 되었다. 전역 후 바로 철원·화천·양구 지역에 출마하여 18, 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3선째 도전 중이다. 현재 지역구 여론조사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정만호 후보 43.9%, 미래통합당 한기호 후보 38.3%로 집계되어 접전 중이다. 미래통합당 충남 세종시 갑 지역구는 김중로후보가 지역구 관리를 해왔는데, 처음에는 공천에서 탈락했으나 이의를 제기하여 재 공천을 받았다. 그는 군산의 초·중학교와 이리고교를 졸업하고 육사 30기로 임관하여 70사단장을 역임하고 육군준장으로 전역했다. 김 후보는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국방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바른미래당과 민생당에서 탈당 후 미래통합당에 복당하면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공천을 받아 도전했다.  세종갑 여론조사에서 더블어민주당 홍성국 후보 41.4%, 미래통합당 김중로 후보 35.8%로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중이다. ■ 해군제독 출신 최윤희 전 합참의장은 경기 오산, 황기철 전 해군총장은 경남 창원·진해, 윤재갑 전 해군군수사령관은 전남 해남·완도·진도 선거구로 출마 경기도 오산 지역구는 해군출신 최초 합참의장인 최윤희 후보가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았다. 그는 오산 토배기로 초·중·고를 졸업하고 해사 31기로 임관하여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전역 후 대잠헬기 도입사업 조작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확정을 받아 누명을 벗고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 지역에서는 4선 의원이자, 최순실 저격수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현역의원과 4성 장군 출신 최윤희 전 합참의장의 격돌이 예상되면서 경기도 오산지역이 4.15 총선의 최대 관심 격전지가 되었다.  경남 창원·진해 지역구에서는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이 지역구에서 2선인 미래통합당 김성찬의원은 당내의 ‘중진용퇴론’에 부응하면서, 해군사관학교 후배이자 해군참모총장 후임인 황 후보와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후문도 있었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유공자이기도 한 황 후보는 전역 후 방산 비리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최종 무죄로 판명되자, 정치권에 휩쓸리는 군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자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여 ‘국방안보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했다.  지역구 여론조사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황기철후보는 45.9%, 미래통합당 이달곤(전 행정안전부 장관)후보는 38.6%로 여론에서는 황 후보가 다소 앞서고 있다.  또 한명의 해군출신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해남 화산중학교를 졸업하고 해사 32기로 임관, 1함대사령관, 해군군수사령관을 역임 후 전역하여 목포해양대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그 뒤 문재인 대통령후보 안보특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 특별위원과 민주당 지역구위원장으로 활동하다 4·15총선 전남 해남·완도·진도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KBS광주방송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일과 7일 전남 해남·완도·진도 선거구민의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재갑 후보 62%, 윤영일 후보 24.5%로 윤재갑 후보가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철휘 전 2작전사령관은 경기 포천·가평, 민홍철 전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이 경남 김해갑 지역구 출마   민주당 경기도 포천·가평 지역에는이철휘전 2작전사령관이 당 경선에서 승리하여 공천을 받았다. 그는 포천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녔고 명지대를 졸업하면서 ROTC 13기로 임관하여 육군대장으로 전역했다. 전역 후 바로 정치계에 입문하여 지역 기반을 다졌다. 상대인 미래통합당 최춘식 후보는 육군3사관학교 출신으로 9년 동안 현역 복무 후 대위로 전역한 뒤 18년 동안 예비군 지휘관으로 일했다.  직업군인의 경력으로만 보면 이 후보가 대장 출신이어서 대위 계급으로 군생활을 마감한 최 후보를 압도한다. 그러나 최 후보도 포천·가평 지역에서 군의원과 도의원을 차례로 거쳐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여론 조사기관 알앤리써치가 포천·가평의 국회의원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이철휘 후보는 34.7%, 미래통합당 최춘식 후보는 39.9%의 지지를 받아 오차범위내 접전이다. 경남 김해갑 지역구에서는 민홍철 현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그는 김해고와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군법무관으로 임관했으며, 준장 진급하여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직을 끝으로 전역한 후 19, 2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첫 금배지를 노리는 미래통합당 홍태용 후보와의 대결은 지난 20대에 이은 리턴 매치로 애초부터 혈전이 예고됐다. 홍 후보가 낙선 이후 4년간 ‘설욕’을 다짐하며 경쟁 구도가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역 고교 선후배 간 대결로도 관심을 모으는 김해갑 지역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이후 더불어민주당 텃밭으로 변했지만 이곳에서 3선에 성공한 의원은 아직 없다.   여기에다 김해갑은 이번 선거기간 동안 언론사 등 공개적인 여론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이에 두 후보 측 모두 서로 “앞서 있다”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여론몰이에 나서면서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도 “혼전 양상이라 뚜껑을 열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 상단 좌측부터 21대 국회의원 선거(4.15)에 무소속 출마한 김근태(1군사령관), 강요식(육사41기)과 민주당 기찬수(기무사참모장), 하단은 불출마 선언한 통합당 김성찬 현 2선의원(해군총장)과 공천을 못 받은 통합당 박찬주(2작전사령관), 이승호(9특전여단장)후보 모습 [사진자료=연합뉴스]    ■ 김근태·강요식 후보, 통합당 경선에 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 공주·부여·청양 지역구에서는 부여 출신인 김근태 전 1군사령관이 미래통합당 예비후보로 나왔다가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김 후보는 부여 출신으로 공주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육사30기로 임관했으며 1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대장으로 전역했다. 그후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선거법 위반에 연루되어 당선무효형인 벌금 200만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면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한편 백선엽 장군 등 예비역 장성 900여 명이 모인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대수장)’이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예비역 육군 대장 박찬주(충남 천안을)·김근태(충남 공주·부여·청양) 후보 앞으로 “백의종군해달라”는 내용의 권고서한을 지난달 보냈다. 그러나 김 전 1군사령관은 대수장의 ‘보수후보 단일화’권고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으로 선거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에 대수장’의 권고서한을 받은 박찬주 전 2작전사령관은 3월25일 ‘불출마와 보수후보 단일화’를 선언했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후보 44.8%, 미래통합당 정진석 후보 40.4%로 오차범위내 박빙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무소속 김근태 후보 5.6%, 지지 후보가 없거나 잘 모름 7.3% 이었다. 또한 구로을지역 미래통합당 공천 배제에 반발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강요식(육사41기, 소령전역) 전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도 계속 선거운동 중이다. 이 지역 여론조사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42.5% , 미래통합당 김용태 37.5% , 무소속  강요식 11.0%를 기록했다.  구로을은 지금까지 5번의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당선된 대표적인 강세 지역구로 꼽힌다. 이번에는 '친문재인계’ 핵심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공천했다. 그만큼 그는 여당의 힘있는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반대로 미래통합당에서는 3선의 김용태 후보를 '자객 공천' 했다. 인지도 높은 인사를 전략 배치해 '죽음의 땅'에서 기필코 승리를 거두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이번 선거를 위해 자신의 지역구(서울 양천을)마저 포기했다. 김용태 후보와 강 후보는 승리를 위해 보수 단일화를 논의했지만 무산됐다. 그러나 김 후보가 마지막까지 보수 단일화의 문을 열어 두겠다고 밝힌 만큼 상황은 언제나 급변할 수 있다. 두 명의 보수 후보의 지지도를 단순 합산한다면 민주당 윤건영 후보를 앞지르기 때문이다. 그간 여론조사에서는 윤 후보가 김 후보를 상대로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 이상 앞서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총선이 다가오며 격차는 서서히 줄어 드는 모양새이다. 또한 경기도 부천 이승호 전 9특전여단장과 경남 김해 민주당 기찬수 전 국군기무사령부 참모장은 공천에서 탈락해 출마를 접었다.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비례대표인 신원식·김병주 후보와 민주당 해남·완도·진도의 윤재갑 후보는 조심스런 당선이, 창원·진해의 황기철 후보는 우세가, 통합당 한기호·김중로·최윤희 후보와 민주당 이철휘·민홍철 후보는 접전이 예상된다. 헌데 공천 배제에 반발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근태·강요식 후보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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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0
  • [김희철의 전쟁사](33) ‘한국의 리지웨이’ 백남권 3사단장의 ‘가칠봉 전투'승리와 눈물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강원도 해안면에 위치한 가칠봉(1,241m고지)은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로 가칠봉이 들어가야 비로소 금강산이 1만 2천봉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칠봉에서 '가' 자가 '더할 加'를 쓰는 만큼 가칠봉은 아름다운 산이지만 6.25남침전쟁 때에는 처절했던 격전장이자 혈전 사투의 현장이었다.  가칠봉은 제 4땅굴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다. 이웃에 있는 도솔산, 가리봉과 함께 태백산맥 중앙부를 이루는 산으로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가칠봉 동쪽에서는 침식분지로 유명한 펀치볼(해안분지)이 펼쳐져 있다. 현재 군사분계선은 가칠봉 북쪽을 지나가고 있으며 능선상에 을지전망대가 위치해 사전 신청하면 민간인의 제한된 방문도 가능하다.     ▲ 양구 가칠봉전투 전적비와 가칠봉 정상에 위치한 을지전망대 모습 [자료제공 = 양구군청]     백골 3사단 투입 열흘만에 가칠봉 점령, 이승만 대통령 휘호 ‘지려충순(志慮忠純)’으로 격려 2개 병단 약 54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1951년 5월16일부터 시작한 일명 ‘5월 공세’에서 중공군의 주요 공격목표는 현리 지역의 3사단과 9사단을 앞세운 국군 3군단이었다. 이 공세에서 치욕스런 패배를 당한 3군단은 해체되었다. 국군 3사단은 현리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피의 능선’을 점령한 후 펀치볼 북방의 1052·가칠봉·1211·1320고지 등에서 격전을 거듭하던 5사단과 ‘51년10월 중순 진지를 교대하여 북한군과 이들 고지들을 확보키 위한 혈전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은 펀치볼 일대의 요새를 계속 빼앗기자 깎아 세운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지들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아군의 공격에 안감 힘을 다해 저항했다. 이러한 가칠봉·1052·1211·1252고지 등은 5사단이 한달 동안 맹공을 가했으나 적의 최후 발악적인 방어와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완전한 점령에는 실패한 곳이었다. 1052고지, 가칠봉, 1211고지 등에는 김일성 훈장을 받은 병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북한군 최정예 부대임을 자처하는 최현 중장(종전후 북한 민족보위상 역임)이 지휘하는 2군단의 예하 사단들이 필사적으로 아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개전초기 낙동강 전선의 ‘안강·기계전투’시 기갑연대장이었던 3사단장 백남권 장군은 진지를 교대한 후 22연대와 23연대로 하여금 1052고지와 가칠봉을 공격케 하고 18연대를 사단 예비로 운용했다. 공격개시 1주일만에 장춘권 대령이 지휘한 22연대가 적의 방어 벽을 뚫고 큰 피해 없이 1052고지를 점령해 버림으로써 3사단의 용명을 떨쳤다. 당시 장춘권 22연대장(예비역 육군 소장)은 5사단이 한달 동안 공격을 했어도 점령 못한 난공의 작전지역에 대해 사전 충분한 정찰과 분석을 했다. 공격을 위한 전술적인 계획 등을 치밀히 짜 놓은 후, 16개 대대의 사단 전 포대 약 80문의 포와 3만여 발의 포탄을 지원 받도록 협조도 했다. 연대의 공격 목표는 1052고지가 있는 능선을 따라 약4km에 걸쳐 솟아 있는 5개의 산봉우리들이었는데, 20초 사이에 봉우리마다 7천여발씩의 집중 포격을 가했다. 새벽 6시쯤 포격이 멈추는 순간 공격을 개시했는데 정오도 안돼서 5개 고지를 모두 점령해 버렸다. 어느 고지에서는 몇 번씩 육박전을 거듭하기도 했지만 큰 피해 없이 비교적 쉽게 점령했다. 공격 개시 전 1개 중대 병력의 특공대를 적 후방에 은밀히 침투시켜 보급로를 차단하고 교란시켰던 작전도 아주 주효했었고 돌격해 올라가 보니 고지의 호들은 우리 포격에 모두 부서졌고 박살이 나 버린 적병 시체만 나뒹굴어 포로를 한 명도 못 잡았다. 그러나 목표를 점령한 날밤 적의 기습적인 역습을 받아 가운데 고지를 빼앗겼었는데 밤새 전투를 벌여 새벽엔 다시 탈환했다. 이 전투에서는 공격 때보다 고지들을 방어할 때 피해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적 진지들이 포격으로 다 파괴돼 버려 고지 점령 후 새로이 진지 구축하는 동안의 적 기습에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김종순 대령의 23연대가 가칠봉까지 점령해 버렸다. 이 두 고지 전투는 점령한 후의 영예에 앞서 눈물겨운 고투와 쓰라린 피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당시 김덕준 대령(예비역 육군준장, 한국제강협회 부회장 역임)이 지휘한 진백골18연대는 예비대로 있다가 23연대와 교대해서 가칠봉 일대의 무명 고지들을 방어했는데 북한군은 매일 밤 나팔을 불며 공격을 했다. 진지 구축전에 기습을 해오자 급한 나머지 북한군이 도주할 때 미처 수습치 못한 적의 시체들을 끌어다 참호 앞에 쌓아 방탄벽을 만들며 적 공격을 방어했다. 18연대장도 훗날 증언시 “사실, 공격 때보다 고지들을 방어할 때 피해를 더 많이 보았다”고 토로했다. 역전의 백골 3사단은 10여일 만에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해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1211·1320고지 등은 천연의 지형적 조건과 북한군의 결사적인 방어 때문에 점령하지 못하고 작전임무가 끝나고 말았다. 난공불락 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가칠봉 일대에 3사단이 투입되어 이 같은 전승을 올리자, 유엔군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지려충순(志慮忠純)’이란 휘호를 써 보내 격려를 했다. 유엔군사령부서는 미국 은성 훈장 3개와 동성 훈장 6개를 보내 왔다. 하루 500명 사상 낸 최악의 사투, 탄우 맞으며 육박전…적 시체로 방탄벽 쌓기도 북한군들은 휴전이 되자 “6·25전쟁 중 이 1211 고지 등과 철의 삼각 지대의 오성산은 자기들이 끝까지 사수를 했다”고 호언하며 그 감투정신을 자랑했다고 한다. 이 가칠봉과 1211 고지일대의 전투는 문자 그대로 악전 고투였으며 처참한 산악전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아군은 벼랑 아래에서 노무자들이 로프를 타고 올라와 보급해 주는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육박전을 계속했고, 때로는 처리치 못하고 도주한 북한군의 시체들을 주워 모아 벙커 앞의 방탄벽을 쌓기도 했다. 백골 3사단은 이 일대에서 1개 중대 병력이 40여명밖에 안 남고 하루에도 3∼5백 명의 전 사상자가 나올 때가 있었다.  가칠봉 공격시에는 전방 23연대와 방어하는 적과의 거리가 불과100야드로 대치하고 있었다. 산봉우리 위에서 감제하는 적병들은 아군이 움직이기만 하면 총격을 내리퍼부었다. 인력이 모자라 사단 본부 요원과 군악대까지 총동원해 노무자들과 함께 탄약과 보급품을 지어 나르는 데 5시간 이상 걸렸다. 따라서 사단장은 어려운 도보 보급 해결을 위해 공병대대로 펀치볼에서 가칠봉 밑의 능선까지 올라가는 도로도 개설 했다. 미군 항공 지원을 받아 가칠봉에 네이팜탄을 일주일 동안 물 붓듯 퍼붓고 공격해 올라가는데도 여전히 북한군의 사격은 계속되었다.사단장은 특공대가 고지로 돌격해 올라갈 때는 무반동총과 기관총 진지로 나가 망원경으로 확인하여 목표를 조준해주며 진두 지휘를 했다. 그리고 고지들을 점령한 후에는 적의 야간 역습에 대비하여 반듯이 해가 지기 전까지 완전 사주 방어 태세를 갖추게 했다.       ▲ 양구 ‘가칠봉전투’의 승전을 지휘한 백남권장군의 육사교장시 모습과 현충원 묘소 [자료제공 = 육사/현충원]      ‘한국의 리지웨이’ 백남권 3사단장, 자결하고 싶다며 통한의 속죄   난공불락의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하자 유엔군 방송 종군기자가 3사단장 백장군을 직접 찾아와 생방송 인터뷰도 했다. 적병과 아군의 시체가 깔려 있고 구더기가 들끓는 산꼭대기에서 사단장은 제일성으로 “남의 귀한 자식들을 이렇게 죽인 것에 죄스럽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혈전 끝에 막 점령한 고지의 정상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우니 그처럼 감회가 깊을 수가 없다. 계속 진격해서 백두산 꼭대기에 대한민국 태극기를 꽂은 후 나는 내 앞가슴에 차고 다니는 이 두개의 수류탄을 뽑아 그 동안 전장에서 죽어간 내 부하들의 죽음을 속죄하는 뜻으로 자결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①지휘관의 공명심 ②지휘관의 무지 ③지휘관의 태만에 의한 훈련 부족 등으로 인한 사병들의 희생을 항상 경계했다. 나는 오늘 많은 부하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딛고 영광스러운 지휘관이 됐지만 죽어 넘어진 영령들을 바라볼 때 가슴이 메어지고 속죄의 눈물이 흐름을 금할 수 가 없다”고 고지점령 소감을 술회했다. 이때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은 백남권 3사단장에게 항상 수류탄을 앞가슴 양쪽에 차고 다닌다고 ‘한국의 리지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우리 3사단이 단시일에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한 것은 현리 패전 후 양양 FTC에서의 철저했던 훈련과 미군의 화력 및 항공 지원에 큰 힘을 입었던 겁니다”라고 승리의 원인을 사전 교육훈련과 화력지원 등 유엔군의 공로로 돌렸다. 또한 “1211고지는 여러 번 공격을 했으나 끝내 점령을 못했어요. 이 고지는 너무 가파른 절벽이라 우리 사병들이 가까스로 9부 능선까지 기어올라가 수류탄을 던지면 도로 굴러 내려와 버리더군요.이 같은 불가항력의 지형에다 적의 발악적인 저항 때문에 거의 불가능했어요”라며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역전의 3사단은 혈전의 ‘가칠봉전투’를 치루다가 미7사단과 진지를 교대하고 11월말 양구로 나왔는데 인명 피해가 1개 연대 병력에 가까운 전사3백여 명, 부상1천5백여 명이나 되었다. 백남권 3사단장은 휴전 후 1957년 육군사관학교 교장 재직시 화랑의 후예 기상을 닦는 국방의 요람지로 육사를 ‘화랑대’라고 명명한 것이 유래가 되어 현재까지도 이 별칭이 불리우고있고, 육사와 인접한 ‘태릉정류소’라고 불리던 경춘선 역을 ‘화랑대역’으로 변경하게도 만들었다. 부하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백장군은 육군보병학교장, 21사단장, 논산훈련소장, 6관구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소장으로 전역 후 인천제철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어 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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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4-07
  • [김희철의 전쟁사 (32)] 25만 여명 사상자를 유발시킨 펀치볼(해안분지) 전투들의 교훈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실제로 6·25남침 전쟁사는 양구 펀치볼(해안분지)의 고지들에서 약 221일 동안 벌어졌던 주요 전투를 9개, 사상자 수를 약 25만 여명으로 압축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백석산, 도솔산, 단장 및 피의 능선, 펀치볼, 가칠봉 등 핵심 전투들이 벌어진 고지들의 이름을 딴 양구군 월운리의 ‘펀치볼지구전적비’,  만대리의 ‘가칠봉전투전적비’ 등 많은 ‘전적비’속에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전쟁기념물은 선별되고 구성된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목적이 전제돼 있어 종종 전쟁이 남긴 상처와 고통에 대한 성찰적 기억보다는, 전쟁 승리의 영광과 환희를 채색하는 방식과 가깝게 세워졌다.   ▲ 양구 전투 위령비와 유엔군의 펀치볼 방향 북진 상황도 [자료제공=양구군청/육사]   미 8군 사령관인 밴 플리트 중장은 7월21일 미 10군단과 국군 1군단에 양구의 펀치볼(해안분지) 일대를 공격하게 했다. 그곳은 지난 6월19일 ‘도솔산 전투’에서 국군 1해병연대에게 패한 북한군들이 도주한 대우산이 포함된 지역이었다. 미 2사단이 7월27일 펀치볼(해안분지) 서쪽의 대우산(1179m)을 점령하기에 이르렀으나, 장마 때문에 공격은 중단되었다. 8월 중순이 되어 장마가 끝나자 미 10군단의 군단장인 바이어스 소장은 펀치볼(해안분지) 북쪽의 고지들을 연결한 선에 작전통제선 헤이스(Hays)라인을 설정하고 다시 각 사단에 공격을 명령했다.  8월18일부터 서측엔 국군 7사단이 백석산(1142m) 기슭인 양구 방산면 송현리의 554고지·901고지 공격에 나섰으며, 중앙 미 2사단과 국군 5사단은 이른바 ‘피의 능선’이라고 불리는 983고지·940고지·773고지 공격에 나섰다. 그리고 국군 8사단은 해안분지 동북쪽인 인제군 서화면 노전평의 1031고지·965고지 공격에 나섰다. 서측 국군 7사단은 8월26일 554고지를 점령했고, 국군 8사단도 1주일 동안 격전을 벌인 끝에 노전평전투에서 승리해 1031고지와 965고지를 확보했다. 하지만 미 2사단과 국군 5사단 병력이 투입된 피의 능선전투는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미 10군단은 북한군의 병력과 화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8월29일 예비부대로 편성되어 있던 미 해병 1사단을 해안분지 북쪽의 고지 공격에 새롭게 투입했다.   ■ ‘헬기공중기동 작전’ 최초 시도로 격찬 받은 미 해병 1사단의 ‘펀치볼전투’ 화채그릇처럼 움푹 파인 모양을 하고 있어서 펀치볼(Punch Bowl)이라고도 불리는 해안분지는 1천m가 넘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당시 북한군은 부대 교대를 실시하여 북한군 3군단이 2군단 지역을 인수하고 3군단 예하1사단이 해안분지 북쪽의 924고지와 1026고지를 각각 ‘김일성 고지’와 ‘모택동 고지’라고 부르면서 방어진지를 공고히 구축하고 있었다.  이 고지들에 대한 공격 임무를 맡은 미 해병 1사단장 토마스 소장은 당시 사단에 배속되어 있던 국군 해병 1연대로 하여금 김일성(924m)고지와 모택동(1026m)고지를, 미 해병 7연대에게는 해안분지 동북쪽의 702고지와 660고지를 공격하게 했다. 8월 31일 공격을 시작한 국군 해병 1연대는 산악의 특징상 기동로가 제한됨을 고려하여 정면보다는 측방으로 우회, 좁은 공간에서 목표를 공격하여 9월 2일 김일성(924m)고지를 점령했으며, 9월 3일에는 모택동(1026m)고지도 점령했다. 미 해병 7연대도 9월 1일 702고지를 점령했으며, 9월 2일에는 660고지도 확보했다. 미 해병 1사단은 9월 8일 다시 전방의 고지들에 대한 공격에 나서 9월 20일까지 격전 끝에 749고지와 해안분지 북쪽 5km 812고지까지 추가로 점령했다. 이로써 미 10군단은 작전의 목표를 이루어 펀치볼(해안분지)을 완전히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사단은 885고지에 224명의 수색중대와 36톤의 보급품을 헬기를 이용하여 공중 투입하는 ‘헬기공중기동 작전’을 최초로 시도하여 미국 신문에 보도됐고 격찬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은 400여 명의 전사자와 1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북한군 2,700여 명을 사살하고 550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국군 해병 1연대도 100여 명의 전사자와 3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380여 명의 북한군을 사살하고 40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 가칠봉지구 전투 전적비와 남방한계선과 북한쪽 공제선에 보이는 가칠봉 모습 [자료제공=양구군청]   ■ 국군 5사단의 혈전으로 고지 주인이 6번이나 바뀐 가칠봉전투 펀치볼(해안분지) 북쪽의 김일성(924m)고지와 모택동(1026m)고지 등이 미 해병 1사단에 의해 점령되자 해안분지 서쪽의 ‘피의 능선’을 방어하던 북한군은 퇴로가 차단되어 고립될 것을 우려해 이른바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이라고 불리는 방산면 문등리와 동면 사태리 일대의 894고지·931고지·851고지로 퇴각했다.  그러자 미 10군단 군단장인 바이어스 소장은 미 2사단에게 좌측 ‘단장의 능선’을 공격하게 했으며([김희철의 전쟁사](30) ‘스타크래프트 게임’ 인기맵 제목이 된 ‘단장의 능선’ 전투 참조), 국군 5사단에게는 우측에서 해안분지 북서쪽의 가칠봉(1,242m)을 병행공격하게 했다. 가칠봉 지구는 해안분지 북쪽의 분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외곽에는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이러한 지형때문에 6.25 당시에는 군 작전상 대단히 어려운 지점이었다. 북한군은 이러한 자연지형을 이용해,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고 각종 포화의 지원 하에 반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아군은 저지대에 있어 지형상 불리한 조건이었으나 5사단장 민기식 준장, 27연대장 유의준 대령 등의 지휘하에 전투에 임했다. 8월30일까지 각 부대 배치와 수색 작전을 통해 정찰을 완료하고 배치된 위치에서 진지를 구축한 후, 8월31일 작전상 유리한 지점까지 북한군을 유인하여 막대한 희생을 입히고 총공격을 개시하여 가칠봉(1241고지)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역습하는 북한군의 저항을 격퇴하면서 2일간의 부대 방어에 간신히 임했으나 다시 빼앗겼다.  9월4일 민기식 5사단장은 27연대를 선두로 가칠봉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 국군은 가칠봉을 점령하는데 또 성공했으나, 북한군이 27사단·12사단의 4개 연대 병력을 동원해 대규모 역습이 가해져 고지에서 부득이 퇴각한 후, 재차 육박전을 전개하는 등 여러 차례 진퇴를 반복하였다. 그 뒤 가칠봉에서는 10월 14일까지 40여 일 동안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고, 여섯 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 끝에 국군은 가칠봉과 인근의 고지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가칠봉전투’에서 패하면서 북한군은 사태리 방면의 쌍두령(雙頭嶺)으로 퇴각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 5사단은 600여 명이 전사하고 400여 명의 실종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어 ‘51년10월 중순에 국군 3사단과 임무를 교대하였다. 반면 북한군은 1천여 명이 사살 당하고 250여 명이 생포되었다. 결과적으로 국군 7, 8사단은 북한군 5군단이 방어하던 백석산을 공격해 10월1일 점령했고, 또한 5사단은 가칠봉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미 10군단은 북한군을 패퇴시키고 양구 북방의 고지를 확보해 취약했던 이 지역의 방어선을 효율적으로 구축했다.  그리고 유엔군은 중동부전선에서 전력의 우위를 입증하면서 공산군에 협상을 압박하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도 있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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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4-04
  • [4.15총선 출마 軍출신 후보들(2)] 통합당 지역구엔 한기호·최윤희, 김근태·백승주 등은 무소속 출마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4.15총선에서는 군출신이 공천을 받은 후보들이 보수성향의 통합당 보다도 진보성향의 민주당이 더 많은 김병주, 이철휘, 황기철, 윤재갑, 민홍철을 국회의원 후보로 확정해 오히려 3:5비율로 높다. 국방비도 이명박 정부인 ‘10년에 29.6조, 박근혜 정부인 ‘15년에 37.5조에 비해 문재인 정부인 ‘20년에 50조가 넘어 11년만에 최고인 8.2%가 증가했다.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없다. 21대 국회에서는 북한 및 주변국의 위협에 대비하여 보다 합리적으로 강력한 국방 태세를 유지할 수 있는 정통한  안보전문가들의 당선되어 많은 활약을 해야 한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번 총선에 출마해 '제 2의 인생'을 모색하는 전직 장성출신 및 안보 전문가 후보들을 소개한다.      ▲ 21대 국회의원 선거(4.15)에 출사표를 던진 군출신 후보들로 상단 좌측부터 미래통합당 최윤희(해군참모총장/합참의장), 한기호(육군교육사령관),  무소속 김근태(1군사령관), 신원식(합참작전본부장)후보와 하단 더불어 민주당 윤재갑(해군 군수사령관), 이철휘( 2작전사령관), 황기철(해군참모총장), 김병주(연합사부사령관)후보 모습 [사진자료제공=국방부/연합뉴스]   ■ 2선 의원이었던 한기호 후보는 춘천·철원·화천·양구, 해군출신 최초 합참의장인 최윤희 후보는 경기 오산  미래통합당 지역구 후보로 먼저 강원도 춘천·철원·화천·양구 지역에는 한기호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그는 철원출신으로 김화중학교를 나온 뒤 서울 한양공고를 다녔고 육사 31기로 임관하여 2사단장, 육본정보작전부장, 5군단장, 육군 교육사령관을 역임하는 등 작전분야에 정통한 육군중장으로 전역하였다.   한 후보는 현역 위관시절 탁월한 지휘력과 업무추진력이 돋보여 당시 사단장 박세직 장군의 조카 사위가 되었다. 전역 후 바로 철원·화천·양구 지역에 출마하여 18, 19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이번에 3선째 도전 중이다.   이 지역구에서 정만호 전 강원도 부지사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여, 한 후보와 2010년 보궐선거 후 10년 만의 리턴매치 대결을 펼친다.   경기도 오산 지역구는 해군출신 최초 합참의장인 최윤희 후보가 통합당 공천을 받았다. 그는 오산 토박이로 초·중·고를 졸업하고 해사 31기로 임관하여 해사생도대장, 5성분전단장, 해사교장, 해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특히 오해의 소지로 그동안 미공개 되었던 기록상 유일한 응징보복작전인 ‘49년 8월 ‘몽금포전투’는 최 후보가 해군참모총장 재직 시 과감히 공개해 전사에 기록시켰다. 그는 이러한 통이 크고 배짱있는 업무추진으로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군 선후배 사이에서 존경을 받고있다.   전역 후 대잠헬기 도입사업 조작비리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확정을 받아 누명을 벗고 이번 21대국외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 지역에서는 최순실 저격수로 알려진 민주당 4선 의원인 안민석 현역의원과 4성 장군 출신 최윤희 전 의장의 격돌이 예상되고 있다.    ■ 공주·부여·청양 김근태 후보와 경북 구미 갑 지역 백승주 의원, 통합당 공천 못 받아 무소속 출마   공주·부여·청양 지역구에서는 김근태 전 1군사령관이 통합당 예비후보로 나왔다가 공천을 못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이다.   김 후보는 부여 출신으로 공주사대부고를 졸업하고 육사30기 임관하여 11사단장, 7기동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07년 7월 아프간에서 인질 피납시 국내외 유기적인 협조로 안전하게 석방시킨 탁월한 작전전문가 평가 받음), 1군사령관을 역임한 후 대장으로 전역했다.   그후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선거법 위반에 연루되어 당선무효형인 벌금 200만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면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경북 구미 갑 지역구의 20대 현역의원 백승주는 이번에 통합당 공천을 못 받아 무소속 출마할 예정이다.   백 후보는 경북선산 출신으로 대구 심인고를 졸업하고 부산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후 경북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중위로 전역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산하의 북한연구실장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을 거쳐 국방차관을 역임했다.    ■ 천안 갑 지역구는‘5호 영입인재’로 발탁된 안보전문가 신범철 센터장 공천   천안갑 지역구는 신범철 센터장이 통합당 후보로 공천 되었다. 그는 천안 북일고·충남대 법대 출신으로 조지타운대 법학박사이며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실장 및 북한연구실장, 국방장관 정책보좌관, 외교부 정책기획관, 국립외교원교수 등 외교안보 분야의 주요연구 보직을 역임 후 현재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이다.   신 후보는 자유한국당의 ‘5호 영입인재’로 발탁됐다. 당시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신 센터장을 부른 것은 당이 아니라 나라”라며 “그의 영입을 통해 안보위기를 안전한 안보로 바꾸는 행동을 함께 시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는 문진석 전 충남지사 비서실장이 공천을 받아 치열한 격전이 예상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세계의 모범이 되는 우리의 의료진처럼, 4.15총선을 통해 국가안보 분야에서 개인 및 정파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 가짜보다는 국난의 위기에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의료진 같은 의원들이 등장하길 기대하는 국민 여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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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3
  • [4.15총선 출마 軍출신 후보들(1)]김병주·신원식은 비례로, 민주당 지역구엔 이철휘·황기철·기찬수·민홍철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가 주춤한 가운데 일부 종교집회로 집단 확신자들이 추가 발생해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외침 등 위기에 처했을 때, 관군보다는 의병들의 자발적인 궐기에 의해 이 나라가 보존되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의병 의식이 강한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듯 헌신적인 의료진들의 활동은 세계에 모범이 되고 있다. 평범한 우리 국민들은 4.15총선에서도 개인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 가짜보다는 이러한 의병정신이 강한 의원들이 등장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번 총선에 출마해 '제2의 인생'을 모색하는 전직 장성출신 후보들을 소개한다.   ▲ 21대 국회의원 선거(4.15)에 출사표를 던진 군출신 후보들로 상단 좌측부터 더불어 민주당 김병주(연합사부사령관), 이철휘( 2작전사령관), 황기철(해군참모총장), 기찬수(기무사참모장)후보, 하단 미래통합당 신원식(합참작전본부장), 한기호(육군교육사령관), 김중로(70사단장), 김근태(1군사령관)후보 모습 [사진자료제공=국방부/연합뉴스]   ■ 비례대표 후보 나선 장성출신들...김병주 전 연합사부사령관은 민주당, 신원식 전 합참작전본부장은 통합당   우선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들을 보면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는 당 안보 대변인 김병주 장군을, 미래통합당(통합당)에서는 자유한국당 북핵 외교안보 특별자문위원이었던 신원식 장군을 내세웠다.    김병주 민주당 비례대표후보는 경북예천 출신으로 강릉고를 졸업했으며, 육사 40기로 임관하여 30기계화사단장, 3군단장을 거쳐 대장으로 진급하여 ‘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후 '더불어민주당 안보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신원식 통합당 비례대표후보는 경남 통영 출신으로 부산동고를 졸업했고, 육사37기로 임관하여 3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및 합참 작전부장을 거쳐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국방정책 및 작전분야에 정통한 예비역 중장으로 전역하였다. 신 장군은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였으며 대수장(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장군들 모임)의 공동대표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북핵 외교안보 특별자문위원’을 수행하면서 각종 언론 토론 및 세미나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여 지명도가 높은 편이다.   ■ 이철휘 전 육군대장은 경기도 포천·가평,  아뎀만 여명의 유공자인 황기철 제독은 경남 창원·진해  먼저 민주당 지역구 후보로 경기도 포천·가평 지역에는 이철휘 장군이 경선에서 승리하여 공천을 받았다. 그는 포천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녔고 명지대학교에 입학하여 ROTC 13기로 임관한 후 52사단장, 8군단장, 2작전사령관을 역임하고 육군대장으로 전역하였다. 이 장군은 현역시절 ‘4방향 리더십’이란 책을 펴내며 탁월한 친화력으로 폭넓은 인맥관리를 하고 있으며, 지휘관 시절 민관군 통합작전 발전에도 기여한 인사 및 작전 전문가이다.  전역 후 바로 정치계에 입문하여 지역 기반을 다졌으며, ‘19년 4월 지역 여론조사에서 현역 3선인 김영우 의원보다도 우세하게 평가되었고, 김 의원은 이번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경남 창원·진해 지역구에서는 황기철 제독이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그는 진해 출신으로 진해고를 졸업 후 해군사관학교 32기로 임관하여 2함대사령관,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 해군 작전사령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하고 해군대장으로 전역했다.  아덴만 여명작전의 유공자이기도한 황 제독은 전역 후 방산비리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최종 무죄로 판명되자 정치권에 휩쓸리는 군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자 민주당에 입당하여 ‘국방안보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같은 지역구의 상대당에서 군 후배가 출사표를 던지자 미래한국당 2선인 김성찬 현역의원(전 해군참모총장)은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현재 통합당에서는 유원석(전 창원시 부시장)과 이달곤(전 행정안전부 장관)후보가 경선 중에 있다.    ■ 기찬수 전 육군소장은 경남 김해을 출마, 민홍철 의원은 고등군사법원장 출신   경남 김해을 지역구에서는 기찬수 후보가 현 김정호 의원과 경선 중이다. 그는 김해출신으로 진영농고 졸업 후 육군3사관학교 13기로 임관하여 ‘국군기무사령부 참모장’ 등 요직을 거친 후 육군소장으로 전역했다.   기 장군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기무사 출신 장군·대령단 22명을 이끌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문재인 지지선언을 주도하였으며 대선 후에 ‘병무청장’을 역임했다.    경남 김해갑 지역구에서는 민홍철 현의원이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그는 김해고와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군법무관으로 임관하였으며 준장 진급하여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직을 끝으로 전역한 후 19, 2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이 ‘청년 쿼터’로 영입한 인재인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까지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하다가 육군소령으로 전역했다. 국내 방위사업학 박사 1호로 지난해 미국 미드웨스트대 겸임교수에 임용되는 등 국내 방위산업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애초 고향인 충남 천안병 전략 공천이 유력했으나, 이 선거구가 경선 지역구로 전환되면서 출마가 무산됐다. 민주당은 추후 공직 진출의 길을 열어주거나 당 특별위원회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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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0
  • [김희철의 전쟁사](31) ‘무적해병’신화를 만든 ‘도솔산전투'의 진짜영웅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51년 중공군의 기습적인 제 6차공세(5월공세)로 국군 3군단이 ‘현리전투’의 치욕스런 패배한 이후, ‘용문산대첩’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며 쾌승한 장도영장군의 6사단은 5월 21일부터 양평에서 양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여 km를 퇴각하는 중공군을 따라 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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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7
  • [김희철의 전쟁사](30) ‘스타크래프트 게임’ 인기맵 제목이 된 ‘단장의 능선’ 전투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치열했던 고지전이 일어난 곳들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전투지역은 ‘단장의 능선’이다. 한창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중에서도 ‘단장의 능선’이라는 맵이 있었을 정도이다. ‘단장의 능선’은 강원 양구와 인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능선중 894고지, 931고지, 851고지를 연결하는 5km 정도의 능선을 말하며, 지금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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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3-11
  • [장원준 칼럼] K-2 전차 국산 변속기, 이대로 사장시켜야 하나 ?
    지난 2018년 9월 12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방위산업전에서 K-2 전차 파워팩을 살펴보며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오른쪽 두 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금년 5월 K2(흑표) 전차 3차 양산사업에 대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심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최대 관심사는 아직까지 내구성 시험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국산 변속기 탑재 여부다. 이에 대한 탑재 유무를 논하기에 앞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첫째, 과도한 작전요구성능(ROC) 설정이 문제를 야기한 전형적인 사업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세계 최강인 독일 레오파드 전차는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생산되어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전차에 탑재된 파워팩(엔진+변속기)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독일 MTU사가 제조한 것으로 개발에만 10여 년이 걸렸다.   독일 MTU사도 10여년이 걸린 파워팩을 불과 3년여 만에 세계 최고 수준(9,600㎞) 이상으로 시행착오 없이 개발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기적을 바라는 행위다. 독일 MTU사 관계자는 한국이 파워팩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말도 안 된다며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처럼 국내 무기개발의 근본적인 문제는 과도한 ROC 설정에 있다.   둘째, 무기개발 시 진화적 개발 방식을 실제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미국, 이스라엘과 같이 최고 수준의 성능요구조건(Objectives)과 함께 최소요구조건(Thresholds)을 병행하는 진화적 개발방식을 미리 갖췄더라면, 우선적으로 목표 성능의 70~80% 수준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파워팩의 핵심 구성품인 국산 변속기도 다른 성능조건을 충족한다고 볼 때, 현재 내구성 수준은 목표 조건(9,600㎞)의 74% 이상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ROC 요구와 진화적 개발방식 적용의 어려움은 변속기와 같은 핵심 구성품의 해외구매 선호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국내 개발무기는 ‘무늬만 국산’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규정에 집착된 감사와 과중한 처벌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도 과도한 ROC 설정과 진화적 개발방식 적용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ROC 수정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규정에서 벗어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감사원 등에 수시로 불려 다니며 해명해야 하고 자칫 징계를 받거나 그 이상의 징벌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년간 이런 이유로 처벌을 받는 사례를 목도한 공무원과 군인들은 웬만하면 이런 일에 엮이기를 꺼려한다. 그러니 규정이 바뀌기 전에는 누구도 이를 벗어나 조치할 수 없는 구조다.   마지막으로, 개발 실패에 따른 업체의 심각한 경영 타격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무기개발은 정부 예산을 받아 정해진 기간 내에 완벽한 성능을 구현해내는 험난한 여정이다. 이를 충족하지 못했을 경우, 개발비용 반납과 지체상금 부담은 물론 향후 개발사업에서 배제되는 부정당 제재부터 실패업체란 낙인에 이르기까지 정신적·물질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3차 양산사업 포함 여부는 변속기 개발업체뿐만 아니라 체계종합업체로부터 수백여 개 협력업체들까지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일이다. 특히, 최근의 경기 부진과 코로나 사태 등을 고려하면 현재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방위산업과 지역 경제에 커다란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우려된다.   따라서 K2 전차의 3차 양산사업에서조차 국산 변속기 탑재가 불가하다면,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전차 변속기를 해외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국내 업체는 더 이상 핵심 구성품 및 부품 개발에 나서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조건부일지라도 국산 변속기를 3차 양산사업에 포함시키고, 내구성 보완을 위한 업체의 추가 개발 노력과 함께 정비능력 보강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특히 개발업체인 S&T중공업은 소명의식을 갖고 전차 변속기 국산화를 위해 끝까지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내구성 수준만으로도 구매를 희망하는 터키뿐만 아니라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수출을 감안해서라도 정부의 현명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아울러, 향후 이러한 문제가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 선진국 수준으로 ‘선 부품개발, 후 체계개발’ 사업방식을 적극 도입하고, 방사청에 무기체계 수준의 ‘핵심 구성품 개발사업팀(가칭)’ 신설도 추진해야 한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前 산업연구원 방위산업연구센터장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국방산업발전협의회 자문위원前 국방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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