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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일 화백의 22번째 개인전, 폭염을 식혀줄 '몽환'이 테마
    60평생을 전업화가로 외길만 걸어온 참 예술인…….훨출한 큰 키에 근육질 체격은 마치 전장터를 누비는 군인 같아…강정일 曰 “현대 미술에서 구상과 추상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 모든 존재를 평등한 시각으로, 상상의 자유로움 동원 서로 어울리게….[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안국동역 6번 출구를 나와 인사동 문화거리에 들어서면 바로 50미터 좌측에 있는 갤러리 인사아트(구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참예술인 강정일의 몽환적인 22번째 개인전이 8일까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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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4

이야기쉼터 검색결과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61)] 실전 같은 부대 검열 및 훈련평가는 승리의 첩경(하)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전방의 11월은 완전한 겨울이다. 새벽이 되면 손발이 얼 정도이다. 중대와 대대 전술훈련 평가가 10월 중에 종료되고 11월 중순이 되자 연대전투단(RCT : Regimant Combat Team) 훈련 평가가 일주일간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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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4-22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59)] 묘자리 설치 마음으로 임했던 '진지공사', 민찬기 사단장 칭찬 받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성묘(省墓)는 추석 같은 명절이나 한식(寒食) 같은 절기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다. 조선 후기까지 설?단오?한식?추석의 4대 명절에 묘제를 지내는 풍속이 계속되었다.   한식인 음력 3월에는 개사초(改莎草)라고하여 겨울부터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비롯하여 조상의 묘에 생긴 손상을 손질하여 바로잡는다. 이때 부족한 떼(잔디)를 다시 입혀준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한식 이후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어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한다.   ▲ 전투준비를 위한 진지공사 前 낙엽과 잡목이 무성하고 타이어로 보강된 콘크리트 산병호와 독도에 설치된 기만용 위장포 모습 [사진자료=국방부/김희철]   ■ 성묘처럼 삶과 죽음의 교차로 되는 진지공사, 일종의 돈내기식 방식으로 경쟁 붙여 싸워 이기는 전투 준비는 한식이나 추석 성묘(省墓)처럼 봄가을에 진지공사부터 시작된다. 진지는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 유사시 삶과 죽음의 교차로가 되어 그곳이 나의 묘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지공사는 성묘와 같다. 춘계에는 겨울과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메우고 무너진 떼(잔디)를 다시 입혀주고, 추계에는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고 동계작전 준비도 같이 한다.   유사시 북한이 보유한 1만5000여문의 방사포 및 야포가 불을 뿜으면서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 군은 준비된 진지에서 초전 생존성도 보장받으며 남침해오는 적군을 격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부대는 약 3~4주 동안 거점에서 야영하면서 진지공사를 한다. 그래서  진지공사는 1년 중 중요한 업무였고, 통상 연말 성과분석 회의시 부대표창에도 진지공사우수부대를 포함하여 선정한다.   매년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상급부대는 당시 적상황을 분석하여 진지공사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달하고 야전부대는 그 지침에 따라 우선적으로 진지공사를 한다. 그때 강조한 공사지침은 점진적으로 진지를 전환하며 전투를 할 수 있는 오리발식 진지 구축과 야간 전투를 위한 화목단으로 조명목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상급지침과 노후된 상태의 진지를 보강하는 것만으로는 배가 고팠다. 상단의 사진과 같이 미비된 진지도 정비하면서 과거 독도 수비대가 일본의 점유 시도를 거부할 때 사용했던 기만용 위장포처럼 기만 진지도 구축하기로 했다. 당시 중대 진지의 총길이는 약 2~3km로 80년대 초 삼청교육대 인원들이 동원되어  나무를 잘라 이어 진지를 만들어 비교적 견고한 상태였으나 일부 지역이 무너지고 나무가 썩어서 기존 진지를 보수하는 공사만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했다. 부족한 시간과 인원 속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돈내기(할당받은 일을 끝내면 그 일에 대해 무조건 일당을 지급하거나 마친다는 뜻의 경상도식 표현)’ 방법 뿐이었다. 또한 소대내에서도 떼(잔디) 운반조, 진지 구축조 등으로 조편성을 하여 노동 집약적으로 공사하도록 코치를 했다.   주차별로 소대별 목표를 정하고 먼저 자기 소대진지 공사를 하면서 화목단 야간 조명목과 위장 진지에 필요한 나무와 돌들을 채집하도록 했다. 그날 해당 소대가 목표를 달성하면 필자가 상태를 확인하여 합격여부를 판명후 휴식을 보장하는 돈내기식 방법을 적용했다.  산 능선에 구축된 진지에서 호가 너무 깊으면 앞쪽 하단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관측할 수 없다. 엄폐와 관측이 가능한 깊이도 중요하지만 진지 앞의 사대 방향도 자신의 몸을 보호 받으면서도 사격이 가능하도록 위치를 잘 선정하는 것도 착안했다. 또한 진지 전방에 설치된 철조망과 기관총 사격방향이 연계된 사계청소와 크레모아 설치대도 적방향에 맞게 구축되도록 확인했다. 돈내기식 방법으로 시간에 쫒기어 생각없이 구축된 진지는 불합격 시키고 다시 공사를 시켰으며, 당일  공사량을 완벽히 끝낸 소대는 소대장 통제하에 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자 점차 경쟁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피로와 권태감에 대원들은 지치고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필자에게는 88오토바이가 있었다. 이동시 소리가 거의 없어 기습적으로 중대장이 불시에 공사 현장에 나타나 독려를 했다. 훗날 중대장의 전령이 하소연 했는데 “현장 지도시 방심해 기습을 당했던 소대장이 중대장 이동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질책을 했다”고 하여 미소도 지었다. 소대별 담당진지 공사가 끝나자 사전 준비한 나무와 돌들로 진지 전방에 적들이 은거하기 용이한 장소에 조명목도 설치하고 적방향에서 쉽게 관측되는 도로 교차로에 기만용 위장전차도 만들었다.  한편 추계진지 공사시에는 동계 결빙을 고려한 사전 지뢰공 설치(지뢰를 설치할 장소에 땅을 미리 파고 짚과 병으로 메우는 작업)와 동상을 대비한 깔판 그리고 풀이 마르면 노출되는 총안구에 나뭇가지 등으로 위장을 한다. 또한 동계 혹한시  숙영이 가능한 분침호를 구축하고 도로 급경사에 적사장을 설치하는 작업 등을 추가로 준비한다.   ▲ 진지공사 기간 중 교통호 굴토 작업하는 병사들과 진지 공사 후 상급 지휘관이 현장 지도하는 모습 [사진자료=국방부/김희철]   ■ 사단장의 격려방식, “진짜로 앞에 오는 적을 모두 격멸할 수 있겠나..?”    공사가 어느덧 종반에 접어들자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왔다. 연대에서는 전방 부대도 있는데 예비 부대인 필자의 중대로 사단장의 현장 지도를 유도했다.   사단장 민찬기 장군(육사16기)은 중대 OP(관측소)인 A고개 헬기장으로 도착했다. 중대 진지였지만 연대장과 대대장이 사단장을 영접했고 작업복 차림의 필자는 진지공사 현황을 설명했다.   마침 그 곳은 필자가 소대장 시절에도 담당했던 지역으로 진지공사를 수차 했던  장소였다. 전방 훼바(FEBA) 지역을 통과한 적들이 책임지역까지 접근하는 정보판단을 먼저 보고하고 그 양상에 따라 오리발식 진지 첨단에서 점진적으로 주 진지까지 전환하며 적전차와 보병을 격멸하기 위한 진지와 조명목 구축 등을 자신있게 설명했다.   추가로 기존 진지공사시 착안했던 사항들과 적 기만을 위한 위장진지 구축까지 일사천리로 설명을 마치자, 사단장은 주변 진지공사 현장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준비하면 진짜로 앞에 오는 적을 모두 격멸할 수 있겠나..?”라며 격려가 담긴 질문과 미소를 남기고 복귀했다.   상급 지휘관의 지도 방문이 만족스럽게 끝나자 배석했던 연대장은 격려와 함께 앞으로 군생활을 위한 차후 보직까지 조언을 해주었고, 대대장(소장 양치규 육사29기)도 자신있게 설명한 필자에게 “야, 너는 따발총이다..ㅋㅋ”하며 기분 좋은 농담을 건넸다.   내 묘자리를 설치하는 마음으로 임한 진지공사로 유사시 초전 생존성도 보장받으며 공격해오는 적 전차 등 북한군들을 격멸할 수 있는 전투준비가 완료되어 자신감을 얻었다. 또한 사단장 등 상급지휘관들에게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선승구전(先勝求戰)을 확신시켜주는 자리도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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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3-25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8) 중대장 시절의 이기심,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지름길
    편안할 때에 위기를 생각하고(居安思危). 대비태세가 되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진다(有備則無患), 선승구전(先勝求戰),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은 이후에 전쟁을 한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왕 도공(悼公)에게는 사마위강(司馬魏絳)이라는 유능한 신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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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3-03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7) 화천 만산동 계곡의 '취약지 상주훈련', 의기에 찼던 그 시절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선택과 집중, 집중과 절약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의미, 평시 심심산골 취약지역에 침투간첩의 은거/활동 가능 때문에 취약지관리 필요, 행군 간 계곡 및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 고개길에서의 휴식 회피, 장거리 행군에 따른 허기 때문에 미숙한 야전취사로 인한 설익은 밥도 꿀맛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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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2-27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6) 첨단 과학과 원시적 활동이 병존하는 ‘창끝 강화훈련’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필자가 중대장 근무시 육군참모총장은 정호용 대장(육사11기)이었다. 정총장은 ‘전쟁시를 대비하여 창끝 전투력 강화’를 강조했다. 전술토의, 지식/지휘능력을 배양 등 간부교육 강화로 가장 높은 전투력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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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2-06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5) 유격훈련 중 찾아온 잔인한 불청객과 신부된 정훈장교의 축복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간부들의 일년 365일 중 퇴근 날은 약 150일, 힘들고 어려운 근무 여건…심신의 한계를 극복하여 자신감을 배양하는 유격훈련의 의미…잔인한 4월에 찾아온 죽음의 불청객은 결국 심장마비 훈련병을 데리고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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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1-31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4)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굼벵이의 '구르는 재주' 발견
    ▲ 군부대 내 노후 된 막사 외부의 주변환경(좌측)과 당시 생활관 내부의 유일한 보온시설 이었던 페치카 화구안에 조개탄을 넣는 모습 [사진자료=3사단/김희철] ‘생자필멸(生者必滅),거자필반(去者必返),회자정리(會者定離)’는 세상사의 진리 사단 구원투수로 칭찬받았지만 전출간 친구의 빈자리는 허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부재자 투표가 끝나고 정상적인 부대운용으로 돌아오자 사단에서는 GOP교대 준비 지시가 하달되었고 연대는 GOP투입전 교육을 시작했다.필자가 속한 대대는 예비로 지원임무가 하달되었고, 신원조회가 통과된 일부 간부 및 병사들은 GOP투입부대의 인원보충을 위해 전출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접 10중대장으로 근무하던 동기 고(故) 한황진 대위([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35) ‘호국보훈의 길에도 통하는 미스트롯을 키운 힘’ 참조)는 GOP투입 대대로 떠났다.생자필멸(生者必滅, 산 사람은 반드시 죽고), 거자필반(去者必返, 떠나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정한 이치이다)라는 명언처럼 “모든 것이 무상함을 뜻한다”는 법화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부재자 투표로 늦어진 GOP투입준비 때문에 공식적인 환송회식도 못하고 그를 아쉽게 떠나 보내야 했다. 승리부대 전입동기로 2년전 GP장 시절부터 정도 많이 들었는데…, 적과 대치하는 GOP중대에서 건강하게 근무 잘하고 기회가 되면 침투하는 간첩을 잡아 영웅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했다.그가 떠난 지 일주일이 되자 다른 대대는 GOP투입 준비에 바쁘게 보내고 있었지만 필자가 속한 대대도 전투준비 및 부대관리에 대한 사단 감찰검열이 있어 정신이 없었다.다행이도 새롭게 보강된 대대작전장교 지동수 소령(전 사단교육장교)이 치밀하고 깐깐하게 준비했고, 대대장의 명확한 지도가 있어 수감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감찰참모가 검열결과 강평시 구원투수로 부임해 나름의 역할을 한 작전장교와 보직 해임된 중대에서 몸부림을 쳤던 필자를 칭찬해주어서 보람을 느꼈으나, 왠지 GOP투입부대로 전출 가버린 인접 중대장 동기생의 빈자리가 너무도 허전했다.‘상호 현상태보존' 원칙을 안지킨 막사는 폐허 수준 문제병사 전입 많아 180명으로 늘어난 중대원 관리에 난감드디어 GOP부대 교대가 이루어졌다. 중대는 대성산 전방에 위치해 유격장을 담당했던 부대에서 예비임무인 적근산 후사면의 좁고 깊은 골짜기 지역으로 이동했다.부대교대는 많은 에피소드를 낳는다. 상급 부대에서는 부대교대 원칙인 ‘상호 현상태 보존 후 인원만 이동’을 강조했다. 이것은 노후 된 막사 생활을 위해 시설을 보강하고 소소하게 설치했던 편의시설과 부착물들을 그대로 남겨놓아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방지하자는 지침이었다.그러나 교대전에 지휘관들은 사전 협조회의에서 이 원칙을 준수하기로 상호 약속하지만 부대원들은 새롭게 이전한 부대에서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모두 떼어갔다.따라서 상호교대 후에 지휘관들은 교대전 좋은 관계에서 교대후에는 서로 불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시에도 부대 이동후 인수한 막사에 들어서니 거의 폐허 수준이었다. 이른 봄의 문턱에서 기온은 약간 올라 낮 양지녁에는 따사하지만 밤이 되면 전방 골짜기의 삭풍은 막사안에서도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중대원들은 1~2년 뒤에 또 이동할 막사이지만 내 집으로 생각하고 정리를 시작했다.마치 신축 건물에 입주한 것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보강해야 했다. 전방의 봄은 오히려 겨울보다 더 춥다. 그래서 창문에 바람 막는 문풍지도 붙이고 당시 유일한 보온 수단이었던 페치카도 보수하는 등 분주하게 편의시설을 보강했다.그러던 중 부대원이 하나 둘 씩 늘어났는데, 그 이유는 GOP투입은 하였지만 추후 신원조회가 불분명하거나 사고뭉치로 판단된 병사들이 GOP에 적응을 못하고 예비인 필자의 중대로 전입오기 때문이었다. 지난 사단의 감찰검열 이후 연대에서는 부적격이나 GOP근무에 회의를 품은 병사들까지 타 중대도 있는데 모두 필자의 중대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소대장과 선임하사관들은 전입 면담부터 이러한 문제사병 관리에 짜증을 내고 있었고, 연대에서 중대장인 필자를 믿고 맡기는 것도 좋지만 이런 전입자를 포함한 중대원이 180명까지 늘어나자 시설도 부족하고 신상 등의 부대관리에도 부담감이 늘어나 난감할 지경이었다.▲ 중동부전선 GOP철책과 우측, DMZ 에서 국군장병들이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하는 모습 [사진자료=국방부] 폭우로 전방 GOP철책 150m가 전도되어 경계에 취약점 발생GOP근무 '부적격 병사'가 맹활약해 공사기간 단축에 기여 부적격 병사는 '구르는 재주' 가진 굼벵이어느덧 여름이 되어 폭우가 일주일 동안 쏟아지자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더 중차대한 임무가 부여되었다.퇴근 후 관사에서 모처럼의 휴일을 즐기던 일요일 밤에 군용 전화벨이 힘차게 울렸다. 중대 막사는 관사에서 약 3분 거리로 인접해 있어 전화가 뜸했는데 그것도 밤에 걸려온 전화라 급박한 위급상황이 발생했는지 걱정이 되었다.“나 연대장인데, 9중대장 지금 쉬고 있지?”하며 연대장이 대대장도 아닌 중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동안의 폭우로 전방 GOP철책이 대규모로 전도되어 다음날 아침에 중대원들을 인솔하여 GOP 철책복구를 위해 투입하라는 지시였다.필자는 연대장 통화가 끝나고 바로 대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대장도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소대장들을 비상소집 시키고 중대로 들어갔다. GOP 철책 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원이었다. 중대원의 3분의 1이 새로이 전입 온 GOP 근무 부적격자로 실제 투입가능한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보안부대 담당관은 부적격자들을 모두 제외한 인원들만 투입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어쩔 수 없이 투입지역에서 근무하다 전입 온 병사와 면담을 했다. 보안부대 담당관의 이야기처럼 그가 변심해서 월북이라도 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하지만 이 병사를 제외하고 투입할 때에는 그는 중대원들에게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도 그 병사는 자신을 꼭 데리고 가달라고 건의했다. 그 지형도 잘 알고 있으며 동기들도 많이 있어 이번 공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간청했다. 소대장들도 그 병사가 중대 전입 후 생활을 잘했다며 포함시키는 것에 동의했다.결국 “중대장이 직접 관리하면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보안부대 담당관을 강력히 설득하여 투입인원에 포함시켰다. 밤새 공사도구를 점검하여 부족분은 연대에 건의하고 GOP 지역에서는 3인조 행동을 하는 원칙준수를 위해 조편성도 마쳤다.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에 연대에서 지원 나온 트럭을 타고 출발했다.공사지역에 도착에서 숙영준비부터 했다. 마침 그 지역은 필자가 DMZ 에서GP 장으로 근무했던 곳으로 작전시 늘 다니던 익숙한 지형이었다. 그곳은 위의 좌측 사진 같이 경사진 곳으로 GOP 철책 150미터 정도가 폭우에 쓸려 내려가 흔적도 없었고, GOP중대에서 경계병을 촘촘히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숙영지 편성 중에 공사용 철책들이 도착했다. 현장지도 나온 연대장은 “최대한 빨리 철책을 설치하는데, 2주내에 완료하라”고 강조했다. 아마도 전도된 GOP철책 지역으로 간첩이 침투하거나 변심한 인원들이 월북하기에 용이하다는 취약점이 있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 같다.중대원을 2개 팀으로 편성해서 양쪽에서 동시에 시작하기로 했고 철책설치조, 시멘트비빔조, 운반조, 기타 지원조로 편성했다. 물론 GOP중대의 경계병 외에 일단 유사시를 대비하여 실탄을 휴대한 상태로 자체 경계조도 배치했다.쏜 화살처럼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있었다. 소대장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야간 작업을 건의했다. 보안부대 담당관이 "야간 작업은 병력관리에 특히 위험하다"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주간작업만 하는 것은 연대장의 조기 공사완료 지침을 해소하기에는 안일한 조치 같아 야간 작업을 감행했다.곳곳에 횃불을 만들어 대낮같이 밝힌 상태에서 중대원들은 참으로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고 필자는 중대원들이 자랑스러웠다. 특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처럼 GOP근무 부적격자로 낙인찍혀 중대에 전입왔던 그 병사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이 근무했던 GOP 소대에서 근무용 간식인 라면과 빵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도구 등을 확보해 중대원들에게 나눠주며 그 누구보다도 동분서주 바쁘게 뛰어다녀 중대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처음에 연대장이 2주로 공사 기간을 한정했던 것 보다 4일을 단축시킨 10일 만에 완료되었다. “남아(男兒)는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말처럼 굼벵이(?)까지 포함된 중대원들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정확히 129m, 43칸의 철책설치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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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1-23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3) 정치적 중립 고민속에서 체험한 '기쁨', 겨울아이와 선거혁명
    군인의 정치적 중립을 배워왔던 필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 부대별로 지지도 확인하여 해당 지휘관의 지휘능력 평가에 반영, 민병돈 장군의 정치적 중립 처신은 반전되는 재평가 받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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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1-08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2) 전방오지 산짐승과 눈싸움 그리고 셋방살이 오강의 추억…
    고등군사반(OAC) 과정 수료 후 이사도 못한 채, 한달 가까이 영내 근무, 별빛에 반사된 산짐승의 눈빛 보다 사람의 인광이 더 강해, 옛날 혼수였던 ‘오강’, 전방 오지에서는 필수 생활용품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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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1-02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1) 분노로 떨리는 손끝에서 떨어지는 낙담의 담뱃재…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해임통지도 못 받았던 전임 중대장은 결혼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 병사를 친자식처럼 아끼는 행보관, ‘이런 부대에 사고 많았지..?’하는 의구심, 1984년 12월 18일 유난히도 살을 애는 듯한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날씨 속에서 전임자 없는 중대장 취임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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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30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0) 중대장 생활의 희비쌍곡선, 시작은 '박격포' 사고난 중대에서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배치부대 미정으로 가족을 광주 백일아파트에 두고 먼저 사단사령부로 전입, 본인의 뜻과 다르게 과거 근무했던 연대의 안전사고가 잦은 중대로 보직, 1984년 12월 고등군사반(OAC)과정이 끝나자 당시의 방침에 따라 다시 대성산으로 원대복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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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19-12-19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9) ‘위·아래 막고 물 퍼내기’ 낚시식 학습방법, 교관 의도를 낚다
    고등군사반(OAC) 과정에서는 ‘새벽별 보기’식으로 치열하게 공부해야……'고추가루'에 의존보다는 무식한 전법으로 “막고 푸는 방법”을 택하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에 시냇가에서 고기 잡을 때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상류쪽에 흙을 쌓아 물을 막고 하류 쪽마저 막은 후에 물을 모두 퍼내면 물이 빠진 웅덩이에서 물고기를 쉽게 건져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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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2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8) 고등군사반의 추억, 치열한 경쟁 속 소주잔의 행복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軍에서는 장교로 임관할 때 초등군사반(OBC), 대위 진급하면 고등군사반(OAC), 소령 진급하면 육(해공)군대학 등의 보수교육을 필수로 이수하게 되어있다. 물론 중령, 대령, 장군으로 진급해도 직책에 부합한 대대장반, 연대장반, 장군반 교육을 받는다. 헌데 상기의 육(해/공)군대학까지의 교육은 필수과정으로 졸업성적은 진급 및 보직을 검토할 때에 우수하고 능력있는 간부라고 평가받는 결정적인 고려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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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8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7) 부대 민방공 대피훈련이 관사지역 대피소동이 된 '웃지못할 사연'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신혼 초, 대성산 기슭의 쓰러져가는 부대관사에서 살림을 시작한 우리 부부는 쥐가 왔다갔다하는 산간벽지 방 속에서 한 겨울 연탄 아궁이 열로 방바닥 아랫목은 시꺼멓게 탔지만 이불 밖의 기온은 영하로 입김이 서렸던 추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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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1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6) 스탭 꼬인 결혼식 날짜와 지휘관의 줄탁동시('啐啄同時)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啐啄同時(줄탁동시)란 병아리 우는 소리를 啐, 깨뜨리는 것을 啄이라 하는데, 어미 닭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순간 주둥이로 탁 쪼아 깨뜨려서 쉽게 나오게 한다는 의미로 놓쳐서는 안 될 좋은 시기를 비유한 사자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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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8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5) 송영근 대대장에게 배운 YTT의 '성공법칙'
    대성산 계곡 2천평 하늘엔 은하수 등 수 많은 별들이 수고했다고 격려…..‘군단 동계작전준비 시범’을 창의적으로 준비하여 성공적 개최, 어제, 오늘, 내일도 통하는 별보고 영어하는 근무는 성공의 지름길,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인생에 있어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성공의 첩경이다. 필자가 초급장교로 대대교육장교로 근무할 때 사관생도시절 훈육관 송영근 중령(전 기무사령관/국회의원)을 지휘관으로 모시며 군생활의 기본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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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6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4) 이웅평의 미그19기 귀순사건이 만들어낸 '불타는 용사'의 교훈
    경고방송,”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북한기들이 인천을 폭격하고 있습니다."미그기를 타고 귀순한 북한공군 故 이웅평은 천문학적인 보상금, 결혼, 대령진급, 명예로운 삶 , 타성, 안일만을 추구했던 게으르고 요령만 피우던 철없는 병사가 불타는 전투의지 용사로 돌변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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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23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3) 국제신사를 '철면피'로 만든 최전방 오지
    군부대 자유시간 핸드폰 허용, 위수지역 2시간 개념으로 전환하여 만족,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금년 4월부터 군에 복무하는 병사들에게 일과 후 자유시간과 휴무일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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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3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2) 이성출 대장에게 전수받은 '탁월해지는 비법'
    최전방 GOP부대, 효율적인 DMZ작전 위해 주기적으로 임무 교대, 소대장 근무 2년이 넘자 동기들에 비해 뒤떨어지고 있는 느낌 인식, 상급자들, 부하들을 크게 4종류(무능 평범 우수 탁월)로 분류, 행복과 보람의 탁월해지는 비법은 專門 適時 創意 現場性의 4性….!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최전방 적과 마주하는 GP장으로 DMZ작전근무가 끝나가자 소대장 보직도 마무리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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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6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1) DMZ작전소대의 마지막 임무는 아찔한 지뢰제거 작전
    ▲ DMZ내 지뢰지대 표식과 2018년 10월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에서 지뢰제거 작전 중인 국군장병 모습 [사진출처=연합뉴스]"시근종태 인지상정 종근여시(始勤終怠 人之常情 終勤如始)"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맡겨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인의 숙명! DMZ근무 끝내고 후방철수 직전에 '새 임무' 부여받아[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조선 성종 때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날 무렵인 권신 한명회에게 그의 사위인 성종이 신하를 보내 “내가 앞으로 왕을 하는데 무엇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한명회는 “시근종태 인지상정 종근여시(始勤終怠 人之常情 終勤如始)”라고 답했다고 한다. 시작할 때는 부지런하고 끝에 태만해지는 것은 인간의 상정이니 마지막까지 부지런하기를 시작처럼 하라는 뜻이다.그런데 필자에게는 하늘이 마지막까지 태만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DMZ작전 근무를 끝내고 후방으로 철수하기 얼마전에 소대에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었다.DMZ내 고지 정상에 위치한 GP의 울타리 철책은 고지 경사로 인해 울타리 철책 밖의 흙이 깍여 흘러내려 울타리 철책 내부 순찰로 하단이 자주 침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울타리 철책 밖의 지뢰지대에서 철책하단을 보강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울타리와 근접한 지뢰지대의 지뢰는 제거해야 했다.결국 DMZ작전소대 근무를 마치고 후방으로 철수하기 전에 필자가 담당했던 GP 울타리 철책주변에 근접한 지뢰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고 소대원들과 GP로 다시 투입하게 되었다.GP울타리 철책에서 수류탄 투척이 가능한 거리까지는 불모지로 형성되어 있는데 고지라 매우 급경사였다. 그곳에는 M16대인지뢰와 M14폭풍지뢰가 매설되어 있는데 울타리 철책 근접에는 지뢰가 흘러 내리지 않도록 실로 연결하여 M14폭풍지뢰로 매설되어 있었다. ▲ GP 및 GOP 철책 순찰 모습 [사진출처=국방홍보원]GP 담당소대는 주야간 등 기본 임무에만 전념하고 필자가 지휘한 작전소대가 아침에 GP로 들어가 일몰전까지 지뢰제거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시됐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임무이다. GP 및 GOP불모지대에는 일부 M16지뢰의 삼각뿔이 지표면 위로 튀어 올라와 있어 “죽음의 사자들이 어서 오라”고 부르는 듯 했다.지뢰제거 임무를 설명받은 소대원들, 손톱을 잘라 유서 봉투에 담아 지뢰제거 임무를 설명들은 소대원들은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누구도 거부하지 않고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유서와 함께 편지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소대원들에게 세부적인 작업 계획을 제시하고 토의했다.울타리 철책으로부터 불모지대 끝까지는 전체가 지뢰지대임으로 작업 구간을 울타리로부터 1m로 제한했다. 결국 선두만이 모든 위험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지뢰 매설한 지도 오래됐기 때문에 겉에 것을 탐지해 캐내더라도 그 밑에 또 지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그래서 나무 깔판을 준비했다. 먼저 선두가 최초 탐지하여 제거하면 바로 뒷조가 나무 깔판을 전달하고, 다시 선두는 그 나무깔판을 딛고 다음 지역을 탐지 제거하며, 제거된 지뢰는 즉시 뇌관을 제거하고 후미에 전달하면 마지막 조는 뇌관과 지뢰몸통을 분리하여 보관하도록 작전을 세웠다.그때 분대장이 자신이 선봉에 서서 탐지를 하고 지뢰를 수거하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하지만 필자는 가장 위험한 선두를 부하에게 맡길 수 없었다.지뢰제거 첫날, 식은 땀을 흘리며 M14폭풍지뢰 제거 지뢰제거 작전 첫날, 소대원들과 DMZ통문에 도착하여 현장 지도하겠다는 중대장과 함께 GP로 들어 갔다. 항상 모든 일은 첫발이 중요하다. 필자가 먼저 지뢰탐지기를 들고 울타리 철책으로 접근했다. 모두들 긴장한 모습이었고 탐지기만을 믿을 수 없었다. M14폭풍지뢰는 플라스틱으로 지뢰탐지기로는 탐지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탐지 지역을 다시 대검으로 찔러보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필자의 바로 뒤에 있는 분대장에게서 나무깔판을 받아 탐지한 지역에 깔고 다시 대검을 45도 각도로 찌르자 무언가 딱딱한 감촉이 손끝에 전달되어 왔다. 야전삽으로 살살 흙을 퍼내자 파란 플라스틱이 보였다. 손으로 흙을 걷어내고 M14폭풍지뢰를 꺼냈다. 뇌관을 제거하고 안전핀을 재결합한 뒤에 뇌관과 몸통을 분리해서 뒷조에게 전달했다. 등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첫날 작전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하자 대대 통신대장 안철주중위(육사동기)와 인접 GP장(학군동기)에게서도 안전을 기원하는 전화가 왔다. 격려 전화를 받으면서 나의 버켓리스트(The Bucket List)가 떠올랐다. 죽기전에 개인전 한번은 할 수 있을까?일주일 동안 105발의 지뢰를 캐내고 임무 완수첫날 12발을 캤다. 둘째날은 7발을….. 지뢰를 캐어낼 때마다 섬짖하게 스쳐가는 사자(死者)의 휘파람 소리에 긴장의 연속이었다.어느덧 일주일이 흘렀고 생사(生死)의 기로(岐路)를 넘기면서 105발의 지뢰를 캐내어 GP관리에 안전을 확보하면서 임무는 완료되었다.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위해 강행해야 하는 군인!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명령하는 상급자, 위험 속에 빠져들면서도 임무를 수행하는 하급자, 이 모두가 군인다운 군인이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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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19-08-14

시큐리티팩트 검색결과

  • [김희철의 전쟁사 (34)] 밴플리트 사령관과 백남권 사단장이 '강한 한국군' 만들어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6.25남침전쟁이 한창일때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은 가칠봉전투에서 승리한 백남권 3사단장에게 항상 수류탄을 앞가슴 양쪽에 차고 다닌다고 ‘한국의 리지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 “우리 3사단이 단시일에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한 것은 현리전투 패전 후 유엔군이 주도한 FTC에서의 철저했던 훈련과 미군의 화력 및 항공 지원에 큰 힘을 입었던 겁니다”라고 승리의 원인을 사전 교육훈련과 화력지원 등 유엔군의 공로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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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4-24
  • [김희철의 위기관리]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직업분포에 나타난 폐쇄적 진입구조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4.15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시민당이 1870석, 미래통합당·한국당이 103석을 차지해 보수의 완패로 끝났다. 또한 정치 9단으로 칭하던 다선의 중진인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박주선, 손학규 의원들이 모두 충격적인 낙선을 했고, 현재 최다선은 6선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으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에 당선된 21대 국회의원 300명을 직업별로 분석하니 현직 의원이 122명이고 전직의원이 27명으로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거의 50%이고 그밖에 의원 보좌관 출신 등 정치인이 78명이다. 평생 정치를 직업삼아 해 먹던 사람들이 계속 독식하여 다른 직업인이 정치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폐쇄적인 구조로 다양한 직업군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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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4-21
  • [김희철의 전쟁사](33) ‘한국의 리지웨이’ 백남권 3사단장의 ‘가칠봉 전투'승리와 눈물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강원도 해안면에 위치한 가칠봉(1,241m고지)은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로 가칠봉이 들어가야 비로소 금강산이 1만 2천봉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칠봉에서 '가' 자가 '더할 加'를 쓰는 만큼 가칠봉은 아름다운 산이지만 6.25남침전쟁 때에는 처절했던 격전장이자 혈전 사투의 현장이었다.  가칠봉은 제 4땅굴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다. 이웃에 있는 도솔산, 가리봉과 함께 태백산맥 중앙부를 이루는 산으로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가칠봉 동쪽에서는 침식분지로 유명한 펀치볼(해안분지)이 펼쳐져 있다. 현재 군사분계선은 가칠봉 북쪽을 지나가고 있으며 능선상에 을지전망대가 위치해 사전 신청하면 민간인의 제한된 방문도 가능하다.     ▲ 양구 가칠봉전투 전적비와 가칠봉 정상에 위치한 을지전망대 모습 [자료제공 = 양구군청]     백골 3사단 투입 열흘만에 가칠봉 점령, 이승만 대통령 휘호 ‘지려충순(志慮忠純)’으로 격려 2개 병단 약 54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1951년 5월16일부터 시작한 일명 ‘5월 공세’에서 중공군의 주요 공격목표는 현리 지역의 3사단과 9사단을 앞세운 국군 3군단이었다. 이 공세에서 치욕스런 패배를 당한 3군단은 해체되었다. 국군 3사단은 현리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피의 능선’을 점령한 후 펀치볼 북방의 1052·가칠봉·1211·1320고지 등에서 격전을 거듭하던 5사단과 ‘51년10월 중순 진지를 교대하여 북한군과 이들 고지들을 확보키 위한 혈전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은 펀치볼 일대의 요새를 계속 빼앗기자 깎아 세운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지들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아군의 공격에 안감 힘을 다해 저항했다. 이러한 가칠봉·1052·1211·1252고지 등은 5사단이 한달 동안 맹공을 가했으나 적의 최후 발악적인 방어와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완전한 점령에는 실패한 곳이었다. 1052고지, 가칠봉, 1211고지 등에는 김일성 훈장을 받은 병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북한군 최정예 부대임을 자처하는 최현 중장(종전후 북한 민족보위상 역임)이 지휘하는 2군단의 예하 사단들이 필사적으로 아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개전초기 낙동강 전선의 ‘안강·기계전투’시 기갑연대장이었던 3사단장 백남권 장군은 진지를 교대한 후 22연대와 23연대로 하여금 1052고지와 가칠봉을 공격케 하고 18연대를 사단 예비로 운용했다. 공격개시 1주일만에 장춘권 대령이 지휘한 22연대가 적의 방어 벽을 뚫고 큰 피해 없이 1052고지를 점령해 버림으로써 3사단의 용명을 떨쳤다. 당시 장춘권 22연대장(예비역 육군 소장)은 5사단이 한달 동안 공격을 했어도 점령 못한 난공의 작전지역에 대해 사전 충분한 정찰과 분석을 했다. 공격을 위한 전술적인 계획 등을 치밀히 짜 놓은 후, 16개 대대의 사단 전 포대 약 80문의 포와 3만여 발의 포탄을 지원 받도록 협조도 했다. 연대의 공격 목표는 1052고지가 있는 능선을 따라 약4km에 걸쳐 솟아 있는 5개의 산봉우리들이었는데, 20초 사이에 봉우리마다 7천여발씩의 집중 포격을 가했다. 새벽 6시쯤 포격이 멈추는 순간 공격을 개시했는데 정오도 안돼서 5개 고지를 모두 점령해 버렸다. 어느 고지에서는 몇 번씩 육박전을 거듭하기도 했지만 큰 피해 없이 비교적 쉽게 점령했다. 공격 개시 전 1개 중대 병력의 특공대를 적 후방에 은밀히 침투시켜 보급로를 차단하고 교란시켰던 작전도 아주 주효했었고 돌격해 올라가 보니 고지의 호들은 우리 포격에 모두 부서졌고 박살이 나 버린 적병 시체만 나뒹굴어 포로를 한 명도 못 잡았다. 그러나 목표를 점령한 날밤 적의 기습적인 역습을 받아 가운데 고지를 빼앗겼었는데 밤새 전투를 벌여 새벽엔 다시 탈환했다. 이 전투에서는 공격 때보다 고지들을 방어할 때 피해가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적 진지들이 포격으로 다 파괴돼 버려 고지 점령 후 새로이 진지 구축하는 동안의 적 기습에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뒤이어 김종순 대령의 23연대가 가칠봉까지 점령해 버렸다. 이 두 고지 전투는 점령한 후의 영예에 앞서 눈물겨운 고투와 쓰라린 피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당시 김덕준 대령(예비역 육군준장, 한국제강협회 부회장 역임)이 지휘한 진백골18연대는 예비대로 있다가 23연대와 교대해서 가칠봉 일대의 무명 고지들을 방어했는데 북한군은 매일 밤 나팔을 불며 공격을 했다. 진지 구축전에 기습을 해오자 급한 나머지 북한군이 도주할 때 미처 수습치 못한 적의 시체들을 끌어다 참호 앞에 쌓아 방탄벽을 만들며 적 공격을 방어했다. 18연대장도 훗날 증언시 “사실, 공격 때보다 고지들을 방어할 때 피해를 더 많이 보았다”고 토로했다. 역전의 백골 3사단은 10여일 만에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해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1211·1320고지 등은 천연의 지형적 조건과 북한군의 결사적인 방어 때문에 점령하지 못하고 작전임무가 끝나고 말았다. 난공불락 지역으로 널리 알려진 가칠봉 일대에 3사단이 투입되어 이 같은 전승을 올리자, 유엔군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지려충순(志慮忠純)’이란 휘호를 써 보내 격려를 했다. 유엔군사령부서는 미국 은성 훈장 3개와 동성 훈장 6개를 보내 왔다. 하루 500명 사상 낸 최악의 사투, 탄우 맞으며 육박전…적 시체로 방탄벽 쌓기도 북한군들은 휴전이 되자 “6·25전쟁 중 이 1211 고지 등과 철의 삼각 지대의 오성산은 자기들이 끝까지 사수를 했다”고 호언하며 그 감투정신을 자랑했다고 한다. 이 가칠봉과 1211 고지일대의 전투는 문자 그대로 악전 고투였으며 처참한 산악전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아군은 벼랑 아래에서 노무자들이 로프를 타고 올라와 보급해 주는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육박전을 계속했고, 때로는 처리치 못하고 도주한 북한군의 시체들을 주워 모아 벙커 앞의 방탄벽을 쌓기도 했다. 백골 3사단은 이 일대에서 1개 중대 병력이 40여명밖에 안 남고 하루에도 3∼5백 명의 전 사상자가 나올 때가 있었다.  가칠봉 공격시에는 전방 23연대와 방어하는 적과의 거리가 불과100야드로 대치하고 있었다. 산봉우리 위에서 감제하는 적병들은 아군이 움직이기만 하면 총격을 내리퍼부었다. 인력이 모자라 사단 본부 요원과 군악대까지 총동원해 노무자들과 함께 탄약과 보급품을 지어 나르는 데 5시간 이상 걸렸다. 따라서 사단장은 어려운 도보 보급 해결을 위해 공병대대로 펀치볼에서 가칠봉 밑의 능선까지 올라가는 도로도 개설 했다. 미군 항공 지원을 받아 가칠봉에 네이팜탄을 일주일 동안 물 붓듯 퍼붓고 공격해 올라가는데도 여전히 북한군의 사격은 계속되었다.사단장은 특공대가 고지로 돌격해 올라갈 때는 무반동총과 기관총 진지로 나가 망원경으로 확인하여 목표를 조준해주며 진두 지휘를 했다. 그리고 고지들을 점령한 후에는 적의 야간 역습에 대비하여 반듯이 해가 지기 전까지 완전 사주 방어 태세를 갖추게 했다.       ▲ 양구 ‘가칠봉전투’의 승전을 지휘한 백남권장군의 육사교장시 모습과 현충원 묘소 [자료제공 = 육사/현충원]      ‘한국의 리지웨이’ 백남권 3사단장, 자결하고 싶다며 통한의 속죄   난공불락의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하자 유엔군 방송 종군기자가 3사단장 백장군을 직접 찾아와 생방송 인터뷰도 했다. 적병과 아군의 시체가 깔려 있고 구더기가 들끓는 산꼭대기에서 사단장은 제일성으로 “남의 귀한 자식들을 이렇게 죽인 것에 죄스럽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혈전 끝에 막 점령한 고지의 정상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우니 그처럼 감회가 깊을 수가 없다. 계속 진격해서 백두산 꼭대기에 대한민국 태극기를 꽂은 후 나는 내 앞가슴에 차고 다니는 이 두개의 수류탄을 뽑아 그 동안 전장에서 죽어간 내 부하들의 죽음을 속죄하는 뜻으로 자결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①지휘관의 공명심 ②지휘관의 무지 ③지휘관의 태만에 의한 훈련 부족 등으로 인한 사병들의 희생을 항상 경계했다. 나는 오늘 많은 부하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딛고 영광스러운 지휘관이 됐지만 죽어 넘어진 영령들을 바라볼 때 가슴이 메어지고 속죄의 눈물이 흐름을 금할 수 가 없다”고 고지점령 소감을 술회했다. 이때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은 백남권 3사단장에게 항상 수류탄을 앞가슴 양쪽에 차고 다닌다고 ‘한국의 리지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는”우리 3사단이 단시일에 1052고지와 가칠봉을 점령한 것은 현리 패전 후 양양 FTC에서의 철저했던 훈련과 미군의 화력 및 항공 지원에 큰 힘을 입었던 겁니다”라고 승리의 원인을 사전 교육훈련과 화력지원 등 유엔군의 공로로 돌렸다. 또한 “1211고지는 여러 번 공격을 했으나 끝내 점령을 못했어요. 이 고지는 너무 가파른 절벽이라 우리 사병들이 가까스로 9부 능선까지 기어올라가 수류탄을 던지면 도로 굴러 내려와 버리더군요.이 같은 불가항력의 지형에다 적의 발악적인 저항 때문에 거의 불가능했어요”라며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역전의 3사단은 혈전의 ‘가칠봉전투’를 치루다가 미7사단과 진지를 교대하고 11월말 양구로 나왔는데 인명 피해가 1개 연대 병력에 가까운 전사3백여 명, 부상1천5백여 명이나 되었다. 백남권 3사단장은 휴전 후 1957년 육군사관학교 교장 재직시 화랑의 후예 기상을 닦는 국방의 요람지로 육사를 ‘화랑대’라고 명명한 것이 유래가 되어 현재까지도 이 별칭이 불리우고있고, 육사와 인접한 ‘태릉정류소’라고 불리던 경춘선 역을 ‘화랑대역’으로 변경하게도 만들었다. 부하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백장군은 육군보병학교장, 21사단장, 논산훈련소장, 6관구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소장으로 전역 후 인천제철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어 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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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7
  • [김희철의 전쟁사 (32)] 25만 여명 사상자를 유발시킨 펀치볼(해안분지) 전투들의 교훈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실제로 6·25남침 전쟁사는 양구 펀치볼(해안분지)의 고지들에서 약 221일 동안 벌어졌던 주요 전투를 9개, 사상자 수를 약 25만 여명으로 압축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백석산, 도솔산, 단장 및 피의 능선, 펀치볼, 가칠봉 등 핵심 전투들이 벌어진 고지들의 이름을 딴 양구군 월운리의 ‘펀치볼지구전적비’,  만대리의 ‘가칠봉전투전적비’ 등 많은 ‘전적비’속에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전쟁기념물은 선별되고 구성된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목적이 전제돼 있어 종종 전쟁이 남긴 상처와 고통에 대한 성찰적 기억보다는, 전쟁 승리의 영광과 환희를 채색하는 방식과 가깝게 세워졌다.   ▲ 양구 전투 위령비와 유엔군의 펀치볼 방향 북진 상황도 [자료제공=양구군청/육사]   미 8군 사령관인 밴 플리트 중장은 7월21일 미 10군단과 국군 1군단에 양구의 펀치볼(해안분지) 일대를 공격하게 했다. 그곳은 지난 6월19일 ‘도솔산 전투’에서 국군 1해병연대에게 패한 북한군들이 도주한 대우산이 포함된 지역이었다. 미 2사단이 7월27일 펀치볼(해안분지) 서쪽의 대우산(1179m)을 점령하기에 이르렀으나, 장마 때문에 공격은 중단되었다. 8월 중순이 되어 장마가 끝나자 미 10군단의 군단장인 바이어스 소장은 펀치볼(해안분지) 북쪽의 고지들을 연결한 선에 작전통제선 헤이스(Hays)라인을 설정하고 다시 각 사단에 공격을 명령했다.  8월18일부터 서측엔 국군 7사단이 백석산(1142m) 기슭인 양구 방산면 송현리의 554고지·901고지 공격에 나섰으며, 중앙 미 2사단과 국군 5사단은 이른바 ‘피의 능선’이라고 불리는 983고지·940고지·773고지 공격에 나섰다. 그리고 국군 8사단은 해안분지 동북쪽인 인제군 서화면 노전평의 1031고지·965고지 공격에 나섰다. 서측 국군 7사단은 8월26일 554고지를 점령했고, 국군 8사단도 1주일 동안 격전을 벌인 끝에 노전평전투에서 승리해 1031고지와 965고지를 확보했다. 하지만 미 2사단과 국군 5사단 병력이 투입된 피의 능선전투는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미 10군단은 북한군의 병력과 화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8월29일 예비부대로 편성되어 있던 미 해병 1사단을 해안분지 북쪽의 고지 공격에 새롭게 투입했다.   ■ ‘헬기공중기동 작전’ 최초 시도로 격찬 받은 미 해병 1사단의 ‘펀치볼전투’ 화채그릇처럼 움푹 파인 모양을 하고 있어서 펀치볼(Punch Bowl)이라고도 불리는 해안분지는 1천m가 넘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당시 북한군은 부대 교대를 실시하여 북한군 3군단이 2군단 지역을 인수하고 3군단 예하1사단이 해안분지 북쪽의 924고지와 1026고지를 각각 ‘김일성 고지’와 ‘모택동 고지’라고 부르면서 방어진지를 공고히 구축하고 있었다.  이 고지들에 대한 공격 임무를 맡은 미 해병 1사단장 토마스 소장은 당시 사단에 배속되어 있던 국군 해병 1연대로 하여금 김일성(924m)고지와 모택동(1026m)고지를, 미 해병 7연대에게는 해안분지 동북쪽의 702고지와 660고지를 공격하게 했다. 8월 31일 공격을 시작한 국군 해병 1연대는 산악의 특징상 기동로가 제한됨을 고려하여 정면보다는 측방으로 우회, 좁은 공간에서 목표를 공격하여 9월 2일 김일성(924m)고지를 점령했으며, 9월 3일에는 모택동(1026m)고지도 점령했다. 미 해병 7연대도 9월 1일 702고지를 점령했으며, 9월 2일에는 660고지도 확보했다. 미 해병 1사단은 9월 8일 다시 전방의 고지들에 대한 공격에 나서 9월 20일까지 격전 끝에 749고지와 해안분지 북쪽 5km 812고지까지 추가로 점령했다. 이로써 미 10군단은 작전의 목표를 이루어 펀치볼(해안분지)을 완전히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사단은 885고지에 224명의 수색중대와 36톤의 보급품을 헬기를 이용하여 공중 투입하는 ‘헬기공중기동 작전’을 최초로 시도하여 미국 신문에 보도됐고 격찬을 받았다.  이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은 400여 명의 전사자와 1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북한군 2,700여 명을 사살하고 550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국군 해병 1연대도 100여 명의 전사자와 3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380여 명의 북한군을 사살하고 40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 가칠봉지구 전투 전적비와 남방한계선과 북한쪽 공제선에 보이는 가칠봉 모습 [자료제공=양구군청]   ■ 국군 5사단의 혈전으로 고지 주인이 6번이나 바뀐 가칠봉전투 펀치볼(해안분지) 북쪽의 김일성(924m)고지와 모택동(1026m)고지 등이 미 해병 1사단에 의해 점령되자 해안분지 서쪽의 ‘피의 능선’을 방어하던 북한군은 퇴로가 차단되어 고립될 것을 우려해 이른바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이라고 불리는 방산면 문등리와 동면 사태리 일대의 894고지·931고지·851고지로 퇴각했다.  그러자 미 10군단 군단장인 바이어스 소장은 미 2사단에게 좌측 ‘단장의 능선’을 공격하게 했으며([김희철의 전쟁사](30) ‘스타크래프트 게임’ 인기맵 제목이 된 ‘단장의 능선’ 전투 참조), 국군 5사단에게는 우측에서 해안분지 북서쪽의 가칠봉(1,242m)을 병행공격하게 했다. 가칠봉 지구는 해안분지 북쪽의 분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외곽에는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이러한 지형때문에 6.25 당시에는 군 작전상 대단히 어려운 지점이었다. 북한군은 이러한 자연지형을 이용해,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고 각종 포화의 지원 하에 반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아군은 저지대에 있어 지형상 불리한 조건이었으나 5사단장 민기식 준장, 27연대장 유의준 대령 등의 지휘하에 전투에 임했다. 8월30일까지 각 부대 배치와 수색 작전을 통해 정찰을 완료하고 배치된 위치에서 진지를 구축한 후, 8월31일 작전상 유리한 지점까지 북한군을 유인하여 막대한 희생을 입히고 총공격을 개시하여 가칠봉(1241고지)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역습하는 북한군의 저항을 격퇴하면서 2일간의 부대 방어에 간신히 임했으나 다시 빼앗겼다.  9월4일 민기식 5사단장은 27연대를 선두로 가칠봉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 국군은 가칠봉을 점령하는데 또 성공했으나, 북한군이 27사단·12사단의 4개 연대 병력을 동원해 대규모 역습이 가해져 고지에서 부득이 퇴각한 후, 재차 육박전을 전개하는 등 여러 차례 진퇴를 반복하였다. 그 뒤 가칠봉에서는 10월 14일까지 40여 일 동안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고, 여섯 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 끝에 국군은 가칠봉과 인근의 고지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가칠봉전투’에서 패하면서 북한군은 사태리 방면의 쌍두령(雙頭嶺)으로 퇴각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 5사단은 600여 명이 전사하고 400여 명의 실종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어 ‘51년10월 중순에 국군 3사단과 임무를 교대하였다. 반면 북한군은 1천여 명이 사살 당하고 250여 명이 생포되었다. 결과적으로 국군 7, 8사단은 북한군 5군단이 방어하던 백석산을 공격해 10월1일 점령했고, 또한 5사단은 가칠봉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미 10군단은 북한군을 패퇴시키고 양구 북방의 고지를 확보해 취약했던 이 지역의 방어선을 효율적으로 구축했다.  그리고 유엔군은 중동부전선에서 전력의 우위를 입증하면서 공산군에 협상을 압박하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도 있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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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4
  • [김희철의 전쟁사](31) ‘무적해병’신화를 만든 ‘도솔산전투'의 진짜영웅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51년 중공군의 기습적인 제 6차공세(5월공세)로 국군 3군단이 ‘현리전투’의 치욕스런 패배한 이후, ‘용문산대첩’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며 쾌승한 장도영장군의 6사단은 5월 21일부터 양평에서 양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여 km를 퇴각하는 중공군을 따라 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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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7
  • [김희철의 전쟁사](30) ‘스타크래프트 게임’ 인기맵 제목이 된 ‘단장의 능선’ 전투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치열했던 고지전이 일어난 곳들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전투지역은 ‘단장의 능선’이다. 한창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 게임’중에서도 ‘단장의 능선’이라는 맵이 있었을 정도이다. ‘단장의 능선’은 강원 양구와 인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능선중 894고지, 931고지, 851고지를 연결하는 5km 정도의 능선을 말하며, 지금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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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1
  • [김희철의 전쟁사](28) 현리전투 패배 씻어낸 밴 플리트 포격과 백선엽의 결단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손자병법 제 6허실편의 ‘전승불복 응형무궁(戰勝不復 應形無窮)’은 “전쟁에서 거둔 승리는 반복되지 않으므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다시 승리하기 어려우니 끝없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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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3
  • [김희철의 전쟁사](27) 치열한 고지 쟁탈전과 휴전협정의 서막이 된 중공군 제6차공세
    밴 플리트 장군이 중공군 6차공세가 서울을 향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허를 찔러 동부전선을 공격, ‘현리전투’의 치욕스런 패배는 미 10군단과 국군 3군단의 방어 책임지역 분규 때문….미군은 연속적인 포격으로 막대한 피해입은 6개 중공군 사단의 공격을 차단, 저지에 성공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중공군의 제 5차공세의 2단계(5월공세, ’51, 5.16~22)를 제 6차공세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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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8
  • [김희철의 전쟁사](26) 중공군 제 5차 공세 막아낸 장도영의 용문산과 파로호 전투 대승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장도영 장군이 지휘하는 국군 제6사단은 중공군의 제 5차 4월공세(’51.4.22~4.30)시 사창리에서 치욕적인 패배 및 도주로 ‘겁쟁이 불루스타’라는 조롱을 받는 시련을 겪은 후, 절치부심(切齒腐心) 설욕의 기회를 노리며 용문산(1157고지) 일대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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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칼럼
    2020-02-24
  • [김희철의 전쟁사](25) 중공군 제 5차 5월공세가 만든 최악의 패전 '현리전투', 3군단 해체 초래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중공군은 지평리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2달동안 북으로 축차후퇴를 진행했고, 유엔군이 1951년 3월 말 캔사스선(문산∼ 연천∼화천저수지∼양구∼간성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팽더화이, 중공군 4월공세 좌절 후, 방향전환하여 중동부전선의 국군 섬멸 기도, 유일 퇴로인 오마치고개 차단되자, 제 3군단 전의 상실로 치욕적 최악의 패전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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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8
  • [김희철의 전쟁사](24) 중공군 패배시킨 영연방 제 27여단의 '가평전투', 처칠은 '세상지배론'으로 극찬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중공군이 제 5차공세의 시작인 사창리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의 방어선을 뚫고 남하해오자 영연방 제 27여단은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가평의 북면 일대에 방어선을 편성했다. 진내사격 등으로 가평 死守, 국군철수 엄호 및 중공군의 전선분할 기도를 좌절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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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4
  • [김희철의 전쟁사](23) 중공군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 제 5차 공세 사창리 전투에서 치욕적 패배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유엔군의 재반격 작전으로 38도선까지 후퇴한 중공군사령관 펑더하이는 마오쩌둥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 전력을 보충한 뒤 제 5차 4월공세(’51.4.22~4.30)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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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5
  • [김희철의 전쟁사](22) 중공군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 제 5차 공세 저지시킨 영국군의 설마리 전투
    베이징으로 간 펑더하이, 한반도 주도권 장악 및 수도 서울 재점령으로 전세를 만회 다짐, 해임된 맥아더 장군의 하원 연설로 미국 영웅이 됨,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유엔군 사령관에 리지웨이, 미 8군 사령관에 밴 플리트 장군이 취임하자 중공군은 5차 공세 시작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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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3
  • [김희철의 전쟁사](21) 중공군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 제 3차(신정) 공세와 유엔군의 줄행랑
    유엔군은 12월4일 평양에서 줄행랑으로 전투력을 보존, 재반격 작전 발판 마련…[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중공군의 1차공세(’50.10.26~11.8)와 2차공세(’50.11.25~12.24)에서 호된 희생을 치룬 유엔군과 국군은 결국 ‘50년 12월 4일 평양에서 도망치듯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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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31
  • [김희철의 전쟁사](20) 인본주의와 인류애의 표상이 된 흥남철수와 ‘메러디스 빅토리’호(하)
    군인 10만과 피란민 10만을 구한 성공적인 ‘흥남철수작전’은 X-mas 선물, 흥남항에서 피난민 1만4,005명을 승선시켜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록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선장은 1954년 카톨릭 수도자가 되어 바오로 수도원에서 평생을 헌신한 ‘마리너스 라루’수사였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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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5
  • [김희철의 전쟁사](19) 인본주의와 인류애의 표상이 된 흥남철수와 ‘메러디스 빅토리’호(상)
    흥남에 미 3/7사단과 국군 수도사단/해병1연대(-), 방어선을 구축하고 적과 대치, 중공군의 피해를 줄이고자 북한군들을 앞세우고 연합전선을 펼치며 대규모 공세, 북한의 피란민들은 흥남항 주변으로 대규모 몰려들어 유엔군 철수 조차도 지연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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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0
  • [김희철의 전쟁사](18) 중공군 입장에서 본 한국전쟁, 한미혼성 31연대전투단의 처절한 장진호전투
    처절한 장진호전투의 한국군 유해, 미북 정상회담 결과로 미국 송환 후 한국으로 봉환, X-mas 이전 통일을 장담했던 맥아더의 미 10군단, 장진호에서 치욕스런 혈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미군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18년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미국으로 송환된 55개 유해 상자에 대한 유전자 검사가 완료됐다며, "55개 상자에 총 250여명의 유해가 담겼는데, 그 가운데 80여명은 미국인이 아니며 한국군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한국전쟁 기간에 북한에서 실종된 미군 숫자가 5,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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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6
  • [김희철의 위기관리] 오리무중인 푸틴의 러시아는 뜨거운 감자인가?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을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선포, 전통적인 군사력 보다는 최소위험 최대효과의 여론전, 사이버전, 심리전 전략, 소련시절 강대국 위상에 대한 향수로 동북아시아 강대국 위상을 추구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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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6
  • [김희철의 위기관리] 과연 중국은 우리의 우방인가?
    시진핑의 ‘강군몽(强軍夢)’위한 국방발전 목표, ‘21세기 중엽까지 세계 일류 군대 육성’ , 미국보다 4년 먼저 우주군을 창설, ‘묵자호 양자 1’통신위성을 발사, 한반도 유사시 중국은 북한요인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군사개입, 중국, ‘이소박대(以小撲大:작지만 큰 것에 대항)식의 군사적 대응’이 필요[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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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4
  • [김희철의 위기관리]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우리의 적인가?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유사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냉정하게 재고, 안보협력의 극대화, 한반도에 전개하는 ‘유엔군의 후방기지’ 보호임무수행을 지속, 한일 방산협력 채널 구축 및 인적교류 활성화 등 전략적 방산협력 추진,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 미국과의 동맹을 축으로 긴밀히 상호 협력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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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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