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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사람들 기사

  • [동정] 김성주 성주디앤디 회장, 창립 23주년 기념식 개최
    ▲ ㈜성주디앤디가 창립 23주년을 맞아 15일, 서초구 반포동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김성주 회장이 전 직원 및 협력업체들과 함께 창립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성주디앤디] 패션 브랜드 MCM을 운영하는 ㈜성주디앤디가 15일 창립 23주년을 맞았다. ㈜성주디앤디 김성주 회장과 전 사원 및 협력업체가 함께 서초구 반포동의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기념식을 열고, 글로벌 시장 성공적인 진출과 국내 매출 신장에 대한 강한 의지의 시간을 가졌다. 1990년 ㈜성주인터내셔날로 출발한 ㈜성주디앤디는 라이선스 및 수입 위주의 명품 경영을 하던 중소기업에서 2005년 유럽 명품 브랜드 MCM을 인수하면서 아시아, 미국, 유럽시장을 아우르며 글로벌 리딩 브랜드로 명실공히 자리 잡고 있다. 그 결과, MCM은 지난 8년 동안 500% 이상의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냈으며, 현재 전 세계 32개국 28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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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5
  • [인터뷰 비하인드] 맹주호편/ 미소가 멋진 자상한 남자
      ▲ 모델 맹주호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앞으로가 기대되는 모델 맹주호! 이번 주 패션피플 릴레이 인터뷰에서는 새롭게 컴필레이션 앨범을 들고 찾아온 맹주호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지금부터 맹주호씨와 가졌던 인터뷰 뒷이야기에 대해 들려 드리겠습니다.^^맹주호씨를 압구정 ‘알레아 플레이 그라운드’ 카페에서 만났는데요. 인터뷰 전 시간이 남아 혼자서 영화를 보고 오셨다고 해요. 혼자 영화를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놀라는 기색을 눈치 챘는지 평소 영화를 좋아해서 종종 혼자서 아무런 방해 없이 영화를 보곤 한다고 하네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쉬는 시간에는 뭘 하며 쉬시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모델은 잘 안 먹을 거라는 편견을 갖고 계시는데, 사실 전 먹는 것을 엄청 좋아해요.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오늘처럼 혼자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해요.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는 영화의 장르는 가리지 않고 다 보고 있어요. 공포영화는 싫어하는데, 스릴러는 좋아해요. 예를 들면 사이코 패스가 나오는 그런 영화? 그렇다고 제가 사이코 패스는 아니니 걱정 마세요(웃음)”  ▲ 모델 맹주호 [사진=양문숙 기자]사실 모델을 런웨이에서 보면 무표정한 모습에 차갑게 보이기도 하는데, 맹주호씨는 런웨이에서 보이는 모습과 다른 인상 좋고 마음 따듯한 청년 같았어요. 인터뷰를 나누다보니 마음 잘 맞는 친구와 이야기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느낌이 들어 평소 성격이 어떤지도 물어 봤어요. “자상하다는 것도 성격에 들어가나요?(웃음) 아! 제가 좀 꼼꼼한 편이에요. 정리정돈도 잘 하는 편이고요. 하지만 결벽증 환자처럼 굴지는 않아요. 사람을 대할 때는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멋진 주호씨는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지도 물어봤어요.^^ “이상형은 때때로 바뀌는 것 같아요. 지적인 느낌이 나는 여자를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좀 털털한 스타일이 좋아요. 물론 여성스러운 면도 필요하겠지만! 예를 들면 내숭을 떨지 않는 여자요. 밥 먹을 때 맛있게 잘 먹고 웃을 때도 호탕하게 잘 웃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그런 여자가 좋아요.”  ▲ 모델 맹주호와 함께! [사진=앙문숙 기자]마지막으로 기념사진 한 장! 패션위크로 바쁘게 10월 달을 보내고, 앨범 홍보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시간 내주신 주호씨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글을 마칠게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모델 맹주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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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5
  • [인사] 한돈자조금 관리위원장에 이병규씨
    한돈자조금은 11월 14일 대전 유성 계룡스파텔에서 2013년 제2회 한돈자조금 대의원회를 열고 이병규 씨를 제7대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신임 위원장에 선출했다. 이병규 위원장의 임기는 오는 2015년 11월 11일까지 2년이다.이병규 한돈자조금관리위원장은 "한돈 산업이 국가 식량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소비자들에 게도 더욱 사랑 받을 수 있도록 한돈 소비촉진은 물론 모든 사업에 투명한 자조금 운영을 위해 관리위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 소비자, 유관단체, 학계, 산업계에 이르기까지 한돈 산업과 농가를 둘러싼 모든 주체가 우군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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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4
  • [리 스타트] 정미영 라인댄스 강사 “평범한 주부에서 회원만 1000명”
    ▲ 정미영 강사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박수연 기자) “처음에는 무턱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가르치고 그랬어요. 한번만 배워보라고 하면서. 그렇게 시작을 한 것이 지금은 1000명의 회원을 만들었죠.” 국내에는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라인댄스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술집에서 남자들이 줄을 맞춰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던 것에서 기원하였다. 라인 댄스는 미국 컨트리 음악의 인기와 함께 1980년대에 들어 즐기는 사람의 수가 급속히 증가 했으며, 90년대 이후 음악의 주류가 컨트리에서 댄스로 변함에 따라 라인댄스도 현재의 틀을 갖췄다. “라인댄스 선 상에서 여러명이 줄을 맞추어 추는 춤이에요. 그래서 라인댄스를 출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앞줄과 옆줄을 맞추는 ‘선’입니다. 또한 라인댄스는 동서남북의 4방향으로 몸을 전환하며 정해진 루틴에 따라 추는 춤을 의미하죠.”  ▲ 정미영 강사[사진=양문숙 기자] ■ 늘 만족감 없던 삶에서 새로운 도전 정미영 강사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라인댄스를 널리 알린 장본인이다. 그녀는 평범한 주부에서 1,000명의 회원을 거느린 한국 라인댄스의 최고가 됐다.   대한라인댄스 협회 라인댄스 3년차 강사인 정미영씨는 현재 강서구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강서구민회관, 올림픽 체육센터, 마곡레포츠 센터, NC백화점, 강서 문화원, 화곡 6동 주민센터, 발산1동 주민센터, 가양2동 주민센터, 화곡 본동 주민센터, 홈플러스 가양점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정미영씨는 서울 강서구의 모든 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있으며, 강서구청 재능 기부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사회 공헌으로 강서구청 장으로부터 감사장도 받았다. “전에는 그냥 집안 살림을 하며 학생들 개인 과외도 하고 독서실도 운영하고 그랬어요. 가정 일이 나쁘진 않았지만 늘 만족감이 없었어요. 늘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며 살다보니 나이도 들고 그냥 남편과 자식 보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녀는 라인댄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우연에서부터였다고 했다. “자식도 다 크고 여유가 생기니 좋아하던 발리댄스, 에어로빅, 요가를 배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언니가 라인댄스라는 것을 알려줬어요. 그러면서 취미가 아닌 전문적으로 한 번 해보라고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설레고 그 쪽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 정미영 강사와 정미영의 라인댄스 회원들[사진=양문숙 기자] ▲ 정미영 강사와 정미영의 라인댄스 회원들[사진=양문숙 기자] ■ 길 가던 사람을 가르치기 시작해서… 그녀는 연세대학교 강사 자격증 반에 무턱대고 찾아가 매일 8시간씩 춤을 추며 1,2급 자격증을 두 달 만에 동시에 땄다. 자격증은 땄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상태로 강사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강서구는 라인댄스의 불모지였어요. 강서구민회관에 찾아가 무료로 강습을 할 테니 시간을 배당해 달라고 얘기를 해서 무료강습을 한 달 했어요. 사람들은 라인댄스가 뭔지 모르니 배우러 오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무턱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가르치고 그랬어요. 한번만 배워보라고 하면서. 그렇게 시작을 한 것이 지금은 1000명의 회원을 만들었죠. 그 때 가르쳤던 회원들이랑 아직도 같이 하고 있어요. 또 잘 모르는 분야니까 너무 많은 공부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니 만큼 모든 사람한테 참 잘해야 한다는 것과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것을 깨달았죠.”   ▲ 정미영 강사[사진=양문숙 기자] ■ 단순한 댄스가 아닌 ‘힐링’이다. 그녀는 그녀만의 노하우로 ‘사람’을 얘기했다. “회원을 절대 돈으로 보면 안돼요. 저는 회원들을 옆집 언니처럼 친구처럼 동생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대해요. 또한 절대로 초심을 잃지 않는 것. 늘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보며 반성하고 발전해 나가요. 지금은 제자를 다섯 명 두고 있어요. 이 친구들도 제가 다 가르쳐서 홀로서기를 시켜줬어요. 그들에게 바라는 것도 절대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그냥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뿐이에요.” 그녀는 또한 성공 노하우로 “회원들 앞에서 먼저 망가지는 것이에요. 제가 먼저 망가지고 웃기면 회원들도 서스름 없이 춤을 추며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많이 칭찬을 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가족을 이야기 했다. “남편하고 아들이 있는데 너무나 잘 도와주고 지원을 많이 해줬어요. 가족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렇게 못하는 일이거든요. 가족들이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을 엄청 좋아해요. 일을 하기 전에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편이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그 모든 것들이 다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앞으로 협회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강서구뿐만 아니라 더 넓게 협회(사단법인)를 만들고 싶어요. 또 라인댄스 보급에 힘을 쓰고 싶고 더 많은 제자들을 두고 싶어요. 더 바란다면 제자들이 더 성공해서 훌륭한 강사가 되는 것이요. 라인댄스는 단순한 댄스가 아닌 모두에게 힐링이 되는 춤이에요. 그리고 저의 회원들은 너무나 소중한 나의 재산이기에 그들에게 계속해서 재미와 힐링을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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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2막의 창업자들
    2013-11-14
  • [무대 위 그 배우] ‘수현재’ 대표 조재현 “연극, 가치로 따질 수 없어”
    ▲ 조재현 [사진=양문숙 기자](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배우 조재현의 연극 사랑이 빛을 발하고 있다. 1989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면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조재현은 ‘에쿠우스’, ‘경숙이, 경숙아버지’, ‘민들레 바람되어’, ‘그와 그녀의 목요일’ 등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여기에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성신여자대학교 융합문화예술대학 미디어영상연기과 부교수이자 학과장을 역임하며 다양한 활동들도 이어오고 있다. 바쁜 스케줄 와중에도 연극 무대를 잊지 않은 배우 조재현이 공연제작사 ‘수현재컴퍼니’를 설립하며 내년 대학로에 ‘수현재’ 극장 개관을 앞두고 있다. 지난 11월 12일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현재를 만나 그의 연극 이야기를 듣고 왔다.  ▲ 조재현 [사진=양문숙 기자]■ 수현재,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다 - 극장을 개관한 이유와 극장 소개를 한다면. “공연장을 짓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꿈꾸던 일이에요. 극장은 250석, 300석, 400석 규모의 극장 3개를 갖춘 6층 건물로 현재 짓고 있어요. 공연장 2관은 주로 대여해주고, 한 곳은 수현재컴퍼니 공연을 올릴 계획입니다.” - ‘수현재’란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돌아가신 형의 이름인 ‘조수현’(드라마 촬영감독)과 제 이름 ‘조재현’을 따서 만든 이름입니다. ‘수현재’ 극장이 들어설 곳은 대학로에서 태어난 형과 제가 어린 시절 뛰어놀던 운동장이에요.” - 수현재 극장만에 특별함이 있다면. “대부분의 공연이 저녁에 있기 때문에 공연장의 낮 시간은 비어있어요. 수현재 극장은 그런 낮 시간을 이용해 힘들게 활동하고 있는 독립영화인과 연극인에게 개방할 계획입니다. ‘김기덕 시네마’를 함께 오픈해 낮 시간에는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로 쓰여 질 예정이이요.” “20대만이 아니라 30대 이상 중장년층이 문화생활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게 수현재 안에서 공연도 보고 데이트도 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요. 건물 옥상 야외에서는 맥주도 한 잔 즐길 수 있는.(웃음) 하루를 즐겁게 데이트 할 수 있는 장소, 또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공연을 선사하는 문화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 컴퍼니의 대표로서 조재현은 어떨까. “대표라면 자기 사람을 믿고 맡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 연기 외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제 주위에 이렇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표로서 저는 제 사람들을 믿고 지지해주는 역할을 할 겁니다.” - 앞으로 연극배우 조재현은 수현재 극장에서만 볼 수 있나요? “다른 좋은 극장과 공연에서 불러준다면 설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수현재 무대에 주로 설 것 같습니다.”  ▲ (왼쪽부터) 황재헌 연출, 정은표, 유정아, 조재현, 정재은, 박철민 [사진=양문숙 기자]■ 수현재, 어떤 공연을 선보이나 연극제작사 수현재컴퍼니가 선택한 첫 작품은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다. 이 작품은 그가 대표로 있었던 ‘연극열전’의 창작극으로 지난해 11월 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초연했다.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 예술의전당 소극장 개관이례 최대 관람객을 동원했으며, 공연 막바지에 매진 행렬을 이어나가는 등 성공적인 초연을 치뤘다. 본 극은 50대 중반의 저명한 역사 학자 ‘정민’과 은퇴한 국제 분쟁 전문 기자 ‘연옥’이 매주 목요일 마다 사랑과 가족,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와 연인 사이의 묘한 감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조재현은 초연에 이어 수현재컴퍼니가 선보이는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정민’역으로 출연한다.  초연 출연에 이어 수현재컴퍼니 대표로서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관객들에게 인정받으며 작품성까지 탄탄한 성공작은 대부분 5~10년에 한 작품 정도 나오는데, 작년에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창작극임에도 완성도가 높아 굉장히 놀랐어요. 거기에 많은 관객들이 찾아주셨으니,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 5~1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그런 성공작인거죠.” “수현재컴퍼니가 선보이는 첫 작품으로 완전 새로운 창작극을 만들어 올리기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연극열전과 함께 했던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선택했습니다.” - 같은 ‘정민’역에 박철민, 정은표 배우는 직접 캐스팅 했나요? “초연에 짜임새 있고,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는 평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스스로 냉정하게 보면, 조금 더 재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재밌으려면 아무래도 ‘정민’이란 캐릭터에게 기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철민과 정은표는 좀 더 재미있는 ‘정민’을 만들기 위한 배우들이에요. 박철민 배우는 초연에도 출연 제의를 했으나, 아쉽게도 영화 스케줄과 겹쳐서 출연을 못 했다가 이번에 함께 하게 됐어요. 정은표 배우는, 제가 황재헌 연출에게 ‘정민이란 인물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꼽으라면 누구겠냐’고 물으니 단번에 ‘정은표’라고 답하더라고요. 정은표 배우도 흔쾌히 승낙해 함께 하게 됐습니다. 세 명의 ‘정민’이 선보이는 이번 공연도 기대가 커요. 각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연극열전’ 대표일 때도 연극 무대에 선 적이 없는 스타들을 섭외한 경우가 많았는데, ‘수현재’에서도 새로운 드라마․영화배우를 볼 수 있을까요? “후배 배우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면 계속 권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지금까지 추천했던 배우들은 대부분 저와 함께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했던 친구들이에요. 멀리서 안 찾고 가까이에서 섭외를 해왔죠.(웃음). 드라마 ‘스캔들’에 함께 출연했던 김재원 배우와 어제 술 한 잔하면서 ‘연극 무대에 한 번 오르라’고 얘기했더니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 수현재컴퍼니, 앞으로 어떤 작품을 올릴 계획인지. “2014년에에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시작으로 해서 3작품정도 선보일 계획이에요. 아직까지 차기작을 확실히 정하지 못 했지만,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하면서 차기작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장에 맞게 큰 작품보다는 작은 작품을 올릴 예정이에요.” “20대 후반 40대 초반의 정서를 담은 연극을 많이 하고 싶어요. 인생경험이 느껴지는 공연을 찾고 있고, 그런 연극을 수현재에서도 만들고 싶어요. 매년 창작극 한 편씩은 만들고 싶은 바람입니다.”  ▲ 조재현 [사진=양문숙 기자]■ 조재현에게 ‘연극’이란? 현재 조재현은 MBC 드라마 ‘스캔들 :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을 종영하고, KBS 사극 ‘정도전’ 촬영에 한창이다. 바쁜 와중에도 그가 연극 무대를 챙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 조재현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입니까. “가치로 따질 수 없어요.” “언젠가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연극 한 편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획단계부터 연습기간, 공연기간까지 5~7개월을 참여하는데, 수입으로 따지면 드라마 1회 개런티 정도 밖에 안돼요. 돈의 가치로 따지면 답이 나오지 않는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연극을 고집하는 이유는 저와의 약속 때문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발가벗은 느낌이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저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어서 계속 찾게 됩니다.” - 정말 쉴 새 없이 일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년도 하반기 일정은 무리이긴 했어요. 연극과 더불어 드라마 촬영도 하고, 영화도 촬영해 굉장히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했거든요. 쉬어야 하지만 한 우물을 팔려면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도 얼마 전에 아내와 7박8일간 휴가를 보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내와 1년에 한 두 번은 꼭 여행을 가요. 평소에 잘못하니 그럴 때라도 아부를 떨어야죠.(웃음)” - 극장을 짓겠다는 꿈을 이뤘습니다. 이루고 싶은 또 다른 꿈이 있나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꿈’이라기보다는 작은 도전들이 생겨나요. 그런 작은 도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실천을 못하게 되는데, 오히려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 일들을 실천하려고 해요. 현재 큰 꿈은 없지만, 그런 도전들이 저의 꿈들을 이뤄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 조재현 [사진=양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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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4
  • [한국의 명장] 규방공예 정은자 “삯바느질이냐고요? 종합전통공예입니다”
    ▲ 정은자 [사진=양문숙 기자](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규방공예를 그냥 돈 받고 바느질을 해주는 ‘삯바느질’ 정도로 취급하는 시선으로 볼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규방공예는 매듭, 자수, 염색까지 종합적인 전통공예에요. 우리의 것을 우리 국민이 제대로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예와 규범이 중시되던 조선시대에는 남성의 거처인 ‘사랑채’와 여성의 거처인‘안채’로 엄격히 분리되어 생활했다. ‘규방’은 ‘안채’를 이르는 말로, ‘규방공예’는 규방에서 사용했던 가구, 생활용품 등 모든 수공예를 통틀어 ‘규방공예(閨房工藝)’라 한다. 조각보와 장식소품이 대표적이다. 한국적 색을 담은 보자기를 보고 반해 규방공예에 거침없이 뛰어든 규방공예가 정은자는 무형문화재 김계순에게 특수침선을 사사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을 졸업해 현재 갤러리 미르를 운영하는 대표다.  자신의 작품은 물론 제자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그녀를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위치한 갤러리 미르에서 만났다.  ▲ 정은자 [사진=양문숙 기자]■ 규방공예는 예술입니다 - 규방공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원래 학부는 호텔경영을 전공했어요. 그 뒤 호텔에서 근무를 했는데, 당시 외국인 손님들이 와서 ‘한국의 전통이 담긴 기념품이 뭐가 있느냐’고 자주 물었어요. 그 때만해도 기념품으로 제작되는 전통공예품이 많이 없던 시절이라, 직접 인사동에 찾아가 둘러봤습니다. 그 때 우연하게 보자기 전시를 보게 됐고, 그 전시를 계기로 규방공예를 시작하게 됐어요.” - 어떤 매력에 끌려서 규방공예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까. “보자기 색감이 참 예뻤어요. 화려하기도 하고, 현대적이기도 하고. 항상 봐온 듯한 보자기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 보자기는 정말 아름다웠죠. ‘예술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 어디에서 어떻게 배웠나요. “저희 때는 공예를 가리치는 문화센터가 없어서 직접 공예를 하시는 선생님을 찾아가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그 수밖에 없었죠. 저를 반하게 한 김계순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찾아가서 배우고 싶다고 하니 알려주셨습니다.” “선생님 댁에 직접 찾아가 배웠어요.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다가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자수, 염색 등 분야별로 다른 선생님을 소개시켜주셨어요.” - 막상 배우니 힘들었던 점은 없었습니까. “우리나라 전통공예가 생각보다 굉장히 섬세한 작업이에요. 그래서 손도 많이 가고, 1m의 오차도 없어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항상 봐오던 공예품인데, 막상 만들려니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됐죠.(웃음) 공예전공이 아니다보니 대학원은 다시 디자인계열로 배웠습니다.” - 원래 손재주가 좋았나요? “아니요. 선생님께 처음 배울 때 저 말고 4명 정도 같이 배웠는데, 그 중에 제가 제일 못하고, 손재주도 없었어요.(웃음) 그래도 숙제는 정말 잘 해가고,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어요. 선생님께서도 제가 이렇게 끝까지 할지 생각도 못 하셨대요. 손재주가 없어도 정말 열심히 하면 다 할 수 있어요.” - 호텔경영을 전공했는데, 공예를 좀 더 빨리 시작했으면 좋았겠다고 후회한 적 있나요. “많아요.(웃음) 좀 더 일찍 했으면, 훨씬 더 섬세한 작업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배울 게 많거든요. 규방공예는 매듭, 천연염색, 자수 등 해야 할 게 많으니 그것만 쫒아서 하기도 바빠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시간이 부족하다 느껴집니다. 일찍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죠.”  ▲ 정은자 [사진=양문숙 기자]■ 전통 종합예술, 규방공예 “규방공예는 안채에서 만들어진 모든 생활소품을 말해요. 그러다보니 노리개 하나를 만든다 해도 자수, 매듭 등 종합적인 공예가 들어갑니다. 그러니 다른 공예보다 좀 더 광범위하죠. 그만큼 시간도 많이 들고요.” - 그 중 주로 하는 작업은 무엇입니까. “저는 보자기 작업을 많이 합니다. 조각보라고도 하죠. 조각보는 흔히 ‘자투리의 미학’이라고 해요. 예전에는 의복을 짓고 남은 자투리 원단으로 만들었다면, 요즘에는 멀쩡한 원단을 잘라서 만들죠.(웃음) 제가 주로 하는 작업이 이 조각보 작업입니다.” - 조각보를 만들기 전에 색이나 위치 등 디자인을 먼저 하고 작업을 하나요?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해요. 기본적인 사용 색상은 골라놓기는 하는데, 그 다음부터 배치 등은 자연스럽게 하죠. 디자인을 미리 해놓고 하면 좋긴 한데, 조각보라는 것이 딱딱 떨어지지가 않아서 의도하는 대로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러니 이제는 제 속이 가는대로 그냥 편하게 하는 편입니다.” -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정교함이죠. 규방공예는 1m가 틀어지면 형태 자체가 안 나와요. 그러니 정교함이 정말 중요해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죠.” - 공예하면서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는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계속 해요. 규방공예 뿐만 아니라 전통공예인들이 대부분 다 어려워요. 전통분야에 대한 지원이 있어 작업만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니 작업 외에 스스로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힘들어요. 작업만 할 때는 며칠을 밤을 새도 힘들지 않고 즐거워요.” - 반대로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 꼽자면. “장애가 있는 수강생이 종종 있어요. 그 분들이 전시할 때 가족들이 와서 감사하다고 했을 때, 또 성격이 내성적이거나 까칠했던 분들이 규방공예를 통해 부드러워졌을 때 정말 뿌듯해요.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분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면 참 뿌듯하고 보람됩니다.”  ▲ 정은자 [사진=양문숙 기자]■ 규방공예 저변확대를 위하여 정은자는 규방공예, 보자기, 섬유 작품을 만들고 교육하기 위해 ‘갤러리 미르’를 오픈해 정성을 쏟으며 작품을 만들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 지금까지 배출한 제자 수가 1천명 이상이라고. “규방공예를 위해서는 먼저 저변확대가 돼야한다고 생각해요.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분들은 ‘지방에는 배울 때가 없어요’라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만큼 아직도 저변확대가 많이 되지 않았다는 소리죠. 수업을 많이 해서 규방공예를 많이 알리고 싶어요.” -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초급, 중급, 고급, 연구 과정으로 진행되고,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심화 과정이 있습니다. 수강생들과 함께 2년에 한 번은 전시를 꼭 열어요. 배우고 나서 아무것도 안하면 소용이 없잖아요. 계속해서 공예를 해나가라는 취지에서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 수강생 연령층은 어떤가요. “예전보다 평균 연령이 많이 낮아졌어요. 예전에는 60~70대 분들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20대가 많아요. 결혼적령기에 직접 혼수를 위해 배우시는 분들도 있고, 단순한 취미활동을 벗어나서 작가의 개념으로 깊게 배우려는 분들도 늘어났습니다.” - 규방공예 범위가 넓은데, 처음 배울 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보통 제일 처음에 하는 것은 예단보 등 보자기 종류로 시작을 해요. 쉬운 것에서 점점 어려운 것으로 배워갑니다.” - 해외에서 전시를 개최하면 반응은 어떠한지. “이번에 캐나다 수교 50주년 기념으로 전시회를 다녀왔어요. 저희가 기대도 많이 하고, 자비도 많이 들여서 가는 전시였는데, 준비할 때 영사관에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영사관 측에서는 전시를 열어도 하루에 많으면 10명 정도 올 거라고 예상을 했거든요. 그런데 하루에 1백명 넘게 왔어요. 예상보다 10배가 넘는 관람객이 찾아 준거죠. 한 번 오셨던 분들이 지인들 데리고 다시 찾아주신 경우가 많았어요. 마지막 끝나는 날에는 공예품을 다 포장해놨는데도 보여 달라던 분들이 계시고, 반응이 참 좋았어요. 교민들도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며 아주 좋아해주셨어요.”  ▲ 정은자 [사진=양문숙 기자]■ 우리의 조각보를 지켜주세요 - 규방공예의 매력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자신과의 싸움과 반듯한 정신력이라 말하고 싶어요. 반복되는 작업을 계속하게 되는데, 단순해보이지만 잡념을 가지고 하면 바늘이 손에 찔릴 수도 있고, 공예품이 예쁘게 안 나와요. 반복되는 작업을 자신과의 싸움으로 이기며 해내다보면 반듯하고 맑은 정신을 얻을 수 있답니다.” - 규방공예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꿈 보다는 바람이 있어요. 규방공예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규방공예 분야로 무형문화재 지정도 안 됐고, 대학교에 전문학과도 없어요. 규방공예에 대한 학문이 정립이 되고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서 무형문화재도 지정되고, 학과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대중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규방공예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요. 규방공예를 그냥 돈 받고 하는 ‘삯바느질’ 정도로 취급했죠. 규방공예품을 보고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해외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하면 그제야 되돌아보곤 하죠. 우리의 것을 우리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아직 규방공예 관련 책이 아직 많지 않아요. 일본이 우리의 ‘김치’를 ‘기무치’라며 자기네 거라고 주장하듯 지금 조각보도 똑같이 일본 거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우리 국민조차도 조각보의 원조가 어딘지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규방공예 관련 책을 집필하려 합니다.” ▲ 정은자 [사진=양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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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13
  • [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맹주호 “노래·연기에 해외 진출 계획하고 있어요”
      ▲ 모델 맹주호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조금 밋밋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제 얼굴은 차가움과 따듯함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요. 모델은 어찌 보면 표현을 해야하는 직업이니, 런웨이 위에서 여러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제 얼굴이 매력인 것 같아요.” 차가움과 따듯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듯한 묘한 매력의 모델 맹주호. 모델들과 뮤지션이 함께 노래를 불러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 ‘사랑의 단상 Chapter. 4 You and Me Song’으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모델 맹주호를 만났다.  ▲ 모델 맹주호 [사진=양문숙 기자]■ 맹주호, 모델이 되기까지 - 차분하고 조용해 보이는데, 어린 시절 맹주호씨는 어떤 아이였나요? “크면서 성격이 바뀌기는 했지만, 어릴 때는 동네에 한 명쯤 있을 법한 말썽꾸러기였어요.  동네 친구들과 모여서 뛰어다니고 모험을 즐기던 아이였죠.” - 공부는 잘 하셨나요? “교과목 보다는 예체능으로 소질이 있었어요. 어릴 때는 구기종목을 좋아했었어요. 지금은 헬스 위주로 운동을 하는데, 얼마 전까지는 복싱을 취미로 했어요. 뭐든지 취미 이상으로 가면 힘든 것 같아서 지금은 안하고 있지만요.(웃음)” - 모델 일을 하기 전엔 뭘 하셨나요? “평범한 대학생 이었어요. 20살에 일찍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복학해서 학교 다니는 일반적인 대학생!” - 모델은 어떻게 꿈꾸게 되셨나요? “20살 때 모델을 먼저 시작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런웨이에 서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해보고 싶다! 저 무대에 서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모델을 꿈꾸게 되었죠. - 그 친구는 지금 활동하고 있나요? “네. 홍종현이라는 친구인데 패션 관련 프로그램 MC도 하고 있고, 연기도 하며 활발히 활동 하고 있어요.”  ▲ 모델 맹주호 [사진=양문숙 기자] ■ 맹주호, 모델이 되다! - 처음 데뷔무대는 언제, 어떤 쇼였나요? “2012 서울 패션위크 S/S에서 홍승완 선생님의 무대가 첫 데뷔무대에요.” - 런웨이에 설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사실 특별한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아요. 막상 런웨이 위에 서면,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오고 제가 갈 길만 보이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잘 걷고 실수 없이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 패션쇼 당일 하루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보통 쇼가 시작하기 4~5시간 전까지 쇼장에 모여요. 그 곳에서 헤어도하고 메이크업도 하고, 리허설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일 하루는 쇼에만 집중 한다고 보시면 되요. 쇼 당일은 정신도 없고, 짬을 내서 무언가를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2013년 서울 모터쇼예요. 모델들이 이번 모터쇼에 많이 들어갔는데, 대부분 모델들의 스케줄은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런웨이를 서거나 촬영을 하는데 하루면 스케줄이 끝나요. 그런데 모터쇼는 열흘가량 함께 모델들이 함께 숙식하면서 장기간으로 함께 붙어 있었고, 또 하루 종일 차 앞에서 포즈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특이했어 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 런웨이와 모터쇼는 어떤 점이 다르나요? “모터쇼는 오래 서서 포즈를 취해주어야 해요. 그리고 가까이서 사람들과 함께 사진도 찍어주고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다르고, 교대로 일을 한다는 점도 런웨이와는 달랐어요. 모터쇼를 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쉬는 시간마다 다리가 아파 누워만 있었는데, 지나고 나니 재미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별한 경험 이였기도 하고요.” - 모델 활동을 하시면서 힘든 것이 있다면? “자기 관리요.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지만, 아무래도 모델이란 전문성이 있는 특수한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몸매든 피부든 모든 것을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관리해야 해서 조금 힘들기도  합니다.” - 한국 모델들의 해외 진출이 이어지고 있는데, 해외로 진출 할 계획이 있나요? “최근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서 활동을 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해외에 한 번 나가서 활동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해외에서 제가 활동을 한다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타지에서 새로운 모험을 하며 혼자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요. 그래서 지금 해외 진출에 대해 계획하고 있어요.”  ▲ 모델 맹주호 [사진=양문숙 기자]■ 모델을 넘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맹주호’ - 요즘 앨범을 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세히 이야기 해주세요! “이번에 모델들과 뮤지션들이 함께 노래를 불러 이색 콜라보레이션 형식으로 ‘사랑의 단상 4’라는 프러포즈를 주제로 10곡을 담아 앨범을 냈어요” - 노래는 처음 도전해 보셨는데 어떤 기분이 드세요? “우선 제 목소리와 같이 활동 중인 모델들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이 나왔다는 것과, 음원 사이트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이 신기해요. 모델 일을 하면서 가수처럼 앨범을 낸다는 경험이 재미있게 느껴져요.” - 노래를 녹음할 때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사실 들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파트가 별로 없어요. 제가 물론 노래를 가수보다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뮤지션분과 제 목소리 톤이 비슷해서 제 파트가 많이 줄어들게 되었어요. 12월 달에 공연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때 제 파트는 공연장에서 제대로 보여드리기로 했습니다.” - 메이킹 영상이 너무 멋있어요. 촬영할 때 어떠셨나요? “메이킹 영상은 화보 식으로 촬영을 했어요. 모델들이 직접 부른 곡의 느낌에 맞게 화보를 찍었죠. 언제나 그렇듯 즐겁고 재미있게 촬영 한 것 같아요.”  ▲ 모델 맹주호 [사진=양문숙 기자]- 모델 일을 넘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연기 준비도 하고 계시나요? “네. 연기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아직은 기초 단계예요. 트레이닝이 잘 되면 앞으로 오디션을 볼 계획이에요. 크게 봤을때는 나중에 연기자 쪽으로 전향을 할 생각이 있어요.” - 롤모델이 있나요? “모델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롤모델을 정해놓고 시작했어요. 차승원 선배님이나 김영광 선배님을 롤모델로 정해놨었는데, 막상 활동을 하다 보니 지금은 롤모델이 없어요. 롤모델을 정해놓고, 그 사람을 따라하는 것 보다는 저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돼서 저만의 색을 찾으려 노력중이예요.” - 활동 중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꼽자면? “평소에 2PM의 준호씨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요. 뮤직비디오 촬영이 들어와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2PM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게 되었어요. 2PM의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반응도 재밌고, 저 역시 평소 닮았다는 소리를 듣던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게 된 것이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 모델 맹주호 [사진=양문숙 기자]■ 맹주호의 스타일! - 평소 어떤 스타일을 즐겨 입으세요? “예전에는 캐주얼 스타일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루즈한 핏의 의상을 좋아해요. 오늘 입고 나온 스타일처럼 베기 팬츠를 자주 입는데요. 한번 입어보니 너무 편하더라고요(웃음) 이 편안함에서 못 빠져 나오고 베기 팬츠를 활용한 스타일링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 주호씨가 생각하는 스타일이란? “옷이 날개다! 이 말은 모델이 되고 나서 더 공감이 가는 말이에요. 단순히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 보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스타일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라 생각해요.” -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전 따로 음식 조절은 잘 안하는 편이에요. 특별히 관리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굳이 꼽자면 ‘아침운동!’ 아침에 공복에 30분가량 걷고, 뛰면서 운동을 해요. 땀을 흘리면 노폐물도 배출되고, 얼굴의 붓기도 빨리 빠져요. 그리고 아침 밥 맛도 좋답니다. 이렇게 아침을 시작하면 기분도 좋고, 덩달아 몸매 관리도 되는 것 같아요.” - 자신만의 매력 포인트! “조금 밋밋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제 얼굴은 차가움과 따듯함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요. 모델은 어찌 보면 표현을 해야하는 직업이니, 런웨이 위에서 여러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제 얼굴이 매력인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앞으로 모델 활동을 계속 하면서 배우를 해보고 싶어 열심히 연기 준비를 하고 있어요. 어떤 분들이 그리고 몇 분이나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맹주호라는 사람을 잘 기억해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열심히 노력해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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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B인터뷰
    2013-11-12
  •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인도네시아와 협력약정 체결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8일 과천 공정위 서울사무소에서 인도네시아 경쟁감독위원회(KPPU)와 협력약정을 체결하고 최고위급 양자협의회를 개최했다.
    • 사람들
    • 인사·부음
    2013-11-08
  • [리 스타트] ‘꿀포츠’ 김성록씨 “양봉 접고 카페 일…행복합니다”
    ▲ 김성록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박수연 기자) “아무리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즐기러 왔다고 하지만 카페는 입이 즐거워야 하는 곳 입니다. 손님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해야 나머지도 좋게 보이고 들리는 것 같아요. 많은 카페 예비 창업자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다른 것에 중점을 두더라도 음식이 가장 우선입니다.”2년 전 KBS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에서 폭발적인 성량으로 좌중을 압도하던 ‘꿀포츠’ 김성록 씨가 있었다.   꿀포츠로 큰 인기를 얻었던 그는 1년 후 KBS ‘인간극장-길 위의 부부’를 통해 시청자들 앞에 양봉업자로서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아내와 함께 작은 트럭에 벌통과 채밀기를 싣고 제주도에서 민통선까지 일 년의 절반을 철 따라 꽃을 찾아 떠도는 방랑생활을 15년이 넘게 했다.그렇게 전국을 유랑하던 그가 현재 경기도 분당에서 ‘김성록의 꿀카페’ 를 운영하며 사장으로 변신, 정착해 살고 있다.  ▲ 김성록[사진=KBS남자의 자격 캡쳐, 김성록 제공]   ▲ 김성록 [사진=양문숙 기자] 김성록 씨는 1993년까지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을 한 촉망받던 성악도였다. 1981년 서울대 음대에 들어가 중퇴했지만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테너’라는 평을 받으며 테너 박인수의 첫 제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는 자신이 도시를 떠나게 된 이유를 한 사건을 통해 설명해 줬다. “어느 날 자취방에 있는데 밖에서 누가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노래를 엄청 못 부르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한 소리 하려고 문을 열어서 봤어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앞에 앉혀놓고 열창을 하고 있더라고요. 노래를 듣는 그 여자도 노래를 부르는 그 남자도 너무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그 때 정말 크게 깨달았어요. 노래는 저렇게 해야 하는 것이구나 라고요. 그 당시 저는 노래로 인해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그의 재능은 타고난 것이었다. 남들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들을 쉽게 얻고 기회를 갖고 했으니 말이다. 그의 동료나 후배들은 우스게 소리로도 질투와 시기를 많이 한다. 그런 그가 많은 것을 내려놓고 15년이 넘게 시골 생활을 했지만 자연을 버리고 도시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건강 문제를 얘기했다. “녹내장 문제도 있었고 허리디스크 때문에 양봉과 농사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왔어요.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는데 몸이 망가지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도시로 나오게 됐습니다.”  ▲ 김성록 [사진=양문숙 기자] ▲ 김성록 [사진=양문숙 기자] 그는 자유로운 영혼과 얽메이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그의 성격은 방송에서 대립각을 이루며 프로그램을 버라이어티하게 만들었고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시골과 농촌을 오가며 살던 김 씨는 시골과 도시의 느낌이 섞여있는 분당에 카페를 개업, 사장이 됐다. “뭘 할까 하다가 공연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카페에서는 한 달에 두 번 공연을 해요. 하우스 파티의 느낌이죠. 유명한 악기 연주자들과 노래하시는 분들도 초청 해서 공연을 하면 가게 안이 꽉 차요. 이런 자리를 만들어 노래를 하는 것과 무대에 올라가서 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르죠.”  김 사장은 자신이 노래로 인하여 느껴온 많은 회의감과 무대와의 괴리감을 얘기했다.“무대에서 갖춰진 옷, 장비 이런 것들이 너무 싫어요. 상업적으로 저를 이용한 무대는 절대 오르지 않아요. 자유롭고 싶어요. 그래서 이 공간에서 이렇게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전달하고 베푸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꿈꿔왔었던 일인데 자신이 카페 경영자가 되고 실천할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꿈과 다른 현실도 실감하고 있다.  “카페 개업한지 얼마 안돼서 아직 자리를 못잡고 있습니다. 사실 음악만 있으면 잘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문화예술을 즐긴다고 해도 맛있는 음식이 우선입니다. 손님의 기호에 맞출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지요.”  그는 이어 새로운 계획도 얘기했다. “11월 둘째 주 노래교실을 새로 엽니다. 평일 오전에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수업을 해요. 이 또한 굉장히 하고싶었던 것이고 기대가 됩니다.” 그는 카페를 운영하고부터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부부가 늦은 시간에 데이트를 하러 나오면 저는 즉흥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드립니다. 저는 그렇게 노래로써 행복을 드리고 저 또한 행복을 얻습니다.”
    • 사람들
    • 인생 2막의 창업자들
    2013-11-08
  • [인터뷰 비하인드] 오제형편/ 정 많은 유쾌한 남자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스타일리시한 남자 오제형! 두 번째로 소개해 드리는 ‘셀럽 스타일’에서는 다재다능한 오제형씨를 만나봤습니다. 스타일 관련 프로그램인 ‘겟 잇 스타일’ MC와 PR마케팅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오제형씨를 서울 압구정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 날짜를 잡고 오제형씨가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몸이 괜찮은지 걱정했는데,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주셨어요. 부상 때문에 거동이 조금 불편한데도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 오제형씨와 인터뷰 중 [사진=양문숙 기자]방송에서 처럼 실제 이미지도 밝고, 인상도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화는 잘 안내는 편이예요.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혼내는 일은 있지만 화는 내지 않는 것 같아요. 화를 내면 스트레스도 받고, 피곤해 지잖아요.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 수 없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키우지 않고 빨리 잘라버려 노력해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려고 노력한다는 오제형씨와 인터뷰를 하다 보니, 긍정 에너지 때문인지 저도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평소 마당발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오제형씨와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 많은 분들이 주변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맡고 있는 방송과 중국에서의 방송 준비 그리고 사업까지 하셔서 쉴 시간은 있는지, 쉰다면 뭘 하며 쉬는지 궁금해 졌어요. “바쁘지만 주말에는 양평에 있는 집에서 잘 쉬는 편이에요. 집에서 잔디도 깎고, 밭일도 하고 유기농 채소를 직접 키우고 있어요. 식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평소 고기는 잘 안 먹고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를 많이 먹고 있어요.” “쉴 때는 게으르게 쉬어요. 평소 쉴 때는 스캔들, 왕좌의 게임, 홈랜드같은 미드나 영화를 보는 편이예요. 영화를 보는 걸 워낙 좋아해서 장르를 가리지는 않지만, 호러영화는 싫어해요.”  ▲ 오제형씨와 기념 셀카! 기분 좋게 오제형씨와 인터뷰를 하다 보니, 1시간 반 정도가 금방 흘러갔어요. 오제형씨의 다음 스케줄인 ‘2013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참석을 앞두고 있어,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함께 셀카를 찍었어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정 많은 남자 오제형씨! 아픈 와중에도 인터뷰를 해주신 오제형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비하인드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 지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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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8
  • [한국의 명장] 오정표 “비즈공예 하는 남자, 편견서 ‘반전’으로 승화”
    ▲ 오정표 [사진=양문숙 기자](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남자로서 비즈공예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무래도 ‘편견’이죠. 하지만 그런 ‘편견’이 오히려 ‘반전’의 계기가 됐어요.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구슬공예’를 기본에 충실한 기법 연구를 통해 작품으로 선보이면 따라할 수 없는 화려함에 한 번 놀라고, 남자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라니까요.(웃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는 한국예술문화의 산업적 가치증대와 한국문화 계승 및 보존을 위해 ‘명인’ 을 선발, 지정했다.  제1회 ‘한국예술문화명인인증’은 총 111명의 명인에게 수여됐다. 오정표 명인은 그 중 ‘구슬공예’로는 최초이자 단독으로 명인이 됐다.  ‘구슬공예’라고 동그란 구슬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정표의 작품은 ‘구슬’ 형태보단 ‘비즈’의 형태로 ‘비즈공예’로 보는 편이 이해가 빠르겠다. 그렇다고 누구나 쉽게 한 번쯤 도전해 볼만한 비즈공예로 생각해도 또 오산이다. 비즈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자태를 뽐내니 말이다. 한국예총에서 명인으로 지정된 비즈공예는 과연 어떨까?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자 비즈공예품을 판매하는 이오클래식, 이오드림의 대표인 오정표 명인을 만나 구슬공예와 그의 공예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왔다.  ▲ 오정표 [사진=양문숙 기자]■ 구슬공예와 비즈공예 - 구슬공예와 비즈공예가 같은 맥락인가요.  “쉽게 설명해 ‘구슬공예’ 분야 안에 ‘비즈공예’가 있다고 봐야해요. 과거에는 진주를 끼는 공예만 구슬공예라고 표현했다면, 현재에는 구슬에 구멍을 뚫은 비즈로 하는 공예도 포함을 시키는 거죠. 일반적으로는 그냥 ‘비즈공예’라고 부르고요.” - 비즈공예가 성황 하던 시작 시기는 언제입니까. “우리나라에 비즈공예가 가장 성황 하던 시점은 IMF시절이에요. 가정을 책임졌던 남성들이 사회에서 무너지다 보니, 대체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었던 시기가 바로 그 시기거든요. 여성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 적은 돈을 들여서 무언갈 만들어 내는 수공예 분야였어요. 그래서 그 당시 일본에서 유행이던 비즈공예가 그대로 우리나라에 흡수가 됐던 것이죠. 일본에서 발행되는 모든 비즈 책자들이 다 교본으로 들어오게 됐고, 그로 인해 일반 여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겁니다.” - 그 당시 구슬공예를 배운 여성들은 주로 어디에서 활동했나요.  “학교 CA나 특별활동에 강의를 하던지, 아니면 창업으로써 공방을 차리기도 했죠. 소자본을 통한 핸드메이드로 가치를 인정받는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구슬공예가 발달을 하게 됐고, 저도 그 시기에 유리를 가공하던 한 사람으로서 더 자연스럽게 이 분야를 접하게 됐습니다.” ▲ 오정표 [사진=양문숙 기자] ■ 크리스털 다루는 남자 오정표 오정표는 1989년도부터 크리스털 가공 업체에서 기술을 배워 스스로 공장을 운영했다. 주로 크리스털, 유리, 수정 등을 컷팅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그렇게 크리스털을 만지다보니, 비즈공예와의 연결도 자연스러웠다. “그 당시 크리스털을 가공하는데 흙 속에서 보석을 캐는 느낌이었어요. 가공을 마치고 크리스털이 광을 내면 그 기쁨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 크리스털 가공을 하다가 비즈공예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컷팅을 하고, 남대문 시장에 납품하면서 굉장히 활동적인 삶을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다리에 큰 수술을 하게 됐어요. 굉장히 활달했던 사람이 다리가 다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까 우울증이 걸릴 것 같고, 너무 힘들었죠. 휠체어 생활을 하던 시기여서 꼼짝달싹 할 수가 없었어요. 그 때 당시 동호회 중심의 비즈 공예가 성황 되던 시기였습니다. 인터넷에 비즈공예 관련 카페를 보는데 다른 사람들이 한 작품을 보면서 ‘내가 하면 훨씬 잘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 재료를 사다달라고 부탁해서 만들기 시작했죠. 정말 밤을 새면서 만들고, 또 연구했어요. 스스로 기본기를 다지는 시점이었다고 생각해요.” -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비즈공예를 전파한 일본까지도 비즈공예의 기초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 마디로 하라는대로 따라하는 수준이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그 기초 체계를 스스로 잡았어요.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비즈를 낚싯줄에 엮고 줄을 교차하라’고 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비즈를 엮고, 교차하고, 엮고, 교차하고만 반복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러면 정교한 작품을 만들 수 없어요. 낚싯줄을 교차할 때도 오른쪽 줄을 위로 교차하느냐, 아래로 교차하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지거든요. 일정한 방향으로 교차를 시켜야 한다는 그런 간단한 원리조차도 잡혀있지 않았던 거죠.” “또 저는 크리스털 가공부터 했던 사람이니 어떤 원재료를 어떻게 가공해야 이러한 비즈가 나온다는 원리부터 알고 있었으니 더 좋았어요. 그렇게 원재료의 기초부터 공예의 기초까지 체계를 잡았습니다.” - 그렇게 스스로 연구했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비즈공예를 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남자로서 이 일을 하면서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편견’이죠. 하지만 그런 ‘편견’이 오히려 ‘반전’의 계기가 됐어요.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구슬공예’를 기본에 충실한 기법 연구를 통해 화려한 작품으로 선보이면 따라할 수 없는 기법에 한 번 놀라고, 남자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라니까요.(웃음)” - 편견에서 반전으로 바꾼 일화가 있다면. “일본에 강의를 하러 갔는데, 수강생들은 전부 여성이었고 강사인 저만 남자였어요. 더군다나 일본이 구슬공예의 원조인데, 제가 강사로 가니 ‘한국의 남자가 와서 일본에서 교육을 하냐’라며 말이 나올 정도로 선입견이 심했죠. 일본은 교육을 하고 나면 강의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강사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제 강의가 끝나고 저의 강평도 실시됐어요. 그런데 평가 중에 ‘눈에 안개가 걷힌 기분이었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 수강생이 말한 ‘안개’란 남자에 대한 편견부터 제가 강의한 비즈공예의 기초 원리를 뜻하는 거죠.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강의를 할 때도 단지 비즈공예를 하는 방법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유리를 가공하고 컷팅하는 것에서부터 어떤 기법을 이용해 얼마큼의 입체를 표현할 것인가 까지 전반적인 내용을 알려주거든요. 그러니 단순하게만 알았던 비즈공예의 깊이를 알게 되는 것이죠.   - 요새는 편견이 많이 사라졌습니까.  “제가 좀 많이 바꾸었죠. ‘남자’라는 편견 외에도 비즈공예와 관련된 교육과 사업 등 ‘비즈공예는 단순한 거야’ 혹은 ‘비즈공예로 교육과 사업은 불가능해’라는 인식들도 없애고 있고요.” - 비즈공예 교육과 사업에 관한 편견은 어떤 방식으로 없애나요? “그런 편견이 생긴 이유를 찾아야 해요. 비즈공예가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일본의 비즈공예를 그냥 그대로 베껴서 따라하기만 급급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할 수 있는 카피를 전부 다 해버리고 더 이상 할 게 없으니 비즈공예가 하향세를 타게 되는 거죠. 카피 그 이상으로 발전이 없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바로 디자이너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켜야 합니다. 처음 비즈공예를 보는 사람은 쉽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비즈공예는 알면 알수록 그 깊이가 아주 깊은 분야입니다. 때문에 디자인으로 얼마든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요.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 능력은 비즈공예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죠.” ▲ 오정표 [사진=양문숙 기자] ■ 일본을 앞지른 한국 비즈공예 “저는 비즈공예의 기본 원리부터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했어요. 처음엔 일본보다 더디게 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저는 정말 자부합니다. 지금 우리의 비즈공예는 일본 보다 훨씬 월등하다는 것을요.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고, 일본에서 들어온 비즈공예를 이제는 거꾸로 제가 일본에 가서 강의를 해주는 것으로 이미 입증한 부분이죠.” - 현재 일본 비즈공예와 오정표의 비즈공예는 어떤 차이가 있나.   “일본은 자기가 만든 핸드메이드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겨요. 예로 30여 명의 작가들이 저희와 함께 작품을 판매하는 이벤트를 하면 하루 매출액이 10억 정도 돼요. 작품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렇게 매출이 놓은 이유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기본 개념이 다르니 일본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비즈공예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물론 쉬운 비즈공예도 하지만, 작품으로 내놓는 저만의 비즈공예는 배우지 않고서는 절대 구현해내지 못 할 화려한 비즈공예를 만든 다는 것이죠.”  - 예술성은 우리가 우위지만, 대중성은 일본이 우위겠죠?  “맞습니다. 일본은 지금도 지하철을 타면 비즈공예부터 퀼트공예까지 DIY키트를 한 봉지씩 들고 타는 승객이 많아요. 또 일본에는 DIY 부재료만 살 수 있는 도매상도 엄청나게 크게 자리 잡고 있고요. 이렇게 DIY 문화가 전반적으로 깔려있죠. 편의점에서도 손쉽게 DIY키트를 살 수 있을 정도니까요. DIY 문화가 깔려있으니, 비즈공예도 대중화가 될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는 한 분야에 빤짝 붐이 일어나면 확 인기 있다가 사라지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십자수가 붐을 일으켰다가 시들해지는 것 처럼요. 하지만 정말 기술력 만큼은 자부합니다.”  - 일본에 자주 왕래를 하나요.  “네. 강의도 많이 나가고, 수출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타 기업과 거래를 안 하고 저희가 아예 일본지사를 만들었어요. 오사카, 동경, 후쿠오카에 지사를 만들어서 더 본격적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할 계획입니다.   - 다른 나라의 비즈공예 수준은 어느 정도 인가요?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손이 커서 이런 섬세한 작업을 정말 못 해요. 그리고 장시간 앉아서 진득하니 하는 성향이 아니라서 동양의 작품을 선보이면 ‘이걸 어떻게 손으로 만들었냐’며 깜짝 놀라요. 때문에 서양인들은 주로 단순한 비즈공예를 하죠. 서양 시장에 접근하려면 손으로 이런 작품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공예로 다가가면 됩니다. 너무 어려운 걸 보여주면, 굳이 하려고 하지도 않아요.(웃음) 물론 서양에도 세밀한 비즈공예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양만큼 대중적이진 않죠.” ▲ 오정표 [사진=양문숙 기자]   ■ 두리안과 같은 비즈공예만의 매력  - 주로 만드는 비즈공예는 무엇인가요.  “두 가지로 나뉘는 데요. 일단 비즈 패션쇼나 주얼리 페어 등에 출품하는 저의 개인적인 작품 위주의 비즈공예와 또 하나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비즈공예에요. 앞으로는 일본처럼 비즈공예 시장이 커질 것을 예측하고, 비즈공예 하나를 만들기 위한 모든 것이 담겨있는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어요. 디자인 도안부터 만드는 법, 필요한 재료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정식 디자인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총 95개의 키트를 만들었습니다.” - 개인적인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저의 작품에는 다 스토리가 있어요. ‘마지막 사랑의 하트’, ‘여덟 가지 사랑 이야기’, ‘가을의 전설’ 등 그 당시 시대와 문화를 대변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제 혼을 담아 만들죠.  제가 그렇게 만든 작품을 제자들에게 알려줘 제자들이 그대로 만들고 나면, 저의 감성까지도 그대로 느끼더라고요. 참 신기해요.(웃음)” - 작품에 담긴 스토리 영감은 어디서 받습니까. “저의 이야기를 담아요. 저의 스토리를 모르고 보시는 분들은 그냥 작품명이겠거니 하시죠.(웃음) 제가 정말 가슴 깊이 사랑을 했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고 더 이상의 사랑이 없을 것 같은 마지막 사랑이라 느낀 적이 있어요. 그 감정을 살린 작품이 ‘마지막 사랑’이었죠. 그런데 마지막이라 여겼던 사랑이 또 돌아오더라고요.(웃음)” - 가장 최근의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완성은 했지만 아직 공개는 안 된 ‘홍콩 거북이’라는 작품이에요. 전시 때문에 홍콩에 갔을 때 혼자 야경을 보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거예요. 그 모습을 스케치해서 그 때 그 느낌을 담아 홍콩을 기리는 작품으로 만든 것이죠.” - 비즈공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두리안’이라는 열매를 아시나요? 두리안은 냄새는 역하지만 그 역한 냄새를 참고 한 입 딱 베어 물면 정말 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과일이에요. 저의 작품은 만드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굉장히 어려워요. 정말 배우시는 분들이 막 욕을 할 정도에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해서 완성을 하면 그 감동이 닭살이 돋을 정도로 감동이 밀려옵니다. 과정은 어렵지만 그 과정을 참고 완정하면 정말 최고의 전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비즈공예의 매력입니다.” ▲ 오정표 [사진=양문숙 기자] ■ 공예사랑으로 이룬 한국공예사랑협회와 이오드림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여성들이 공예분야로 많이 진출하면서 여러 가지 협회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어요. 하지만 진정 공예를 위해서는 이렇게 체계 없는 협회 설립은 더 이상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가를 받은 협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던 오정표는 문화체육관광부를 찾아갔다. 공예의 높은 가치를 알고 있던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여주고, 일본에서의 활동, 앞으로 공예의 문화가치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 등을 제시하며 전국적인 협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2006년 ‘한국공예사랑협회’가 정식 출범하게 됐으며, 오정표는 초대 회장을 맡게 된다. - 초대 회장으로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문체부에서 승인을 받을 때부터 지원은 일체 받지 않겠다고 했고, 협회의 다른 임원들에게 돈을 걷지도 않았어요. 지원을 받지 않아도 협회 자체적으로 수입을 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계획했거든요. 지금까지 지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협회에 6천명의 회원이 활동한 다는 것은 다시 보면 공예만으로도 밥벌이가 된 다는 거예요. 공예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증명해보이고 있는 협회라고 자부합니다.” “그렇게 초대회장으로서 시스템의 초석을 만들어 놓고 4년째 되던 해에 회장직을 물려주고 2011년도에 주식회사 이오드림을 설립했습니다.” - 초대 회장직을 내려두고 이오드림을 설립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협회를 만들어 공예로 수입을 내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그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게 뿌리를 내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공예별로 독립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이오드림은 저의 재능을 기부하고 싶기도 했고, 사회적 기업으로 공예 문화를 나누고 싶기도 해서 설립을 했어요. 저는 다친 다리로 인해 장애인 1급입니다. 지금 여기 사무실 공방에서 비즈공예를 만들고 있는 직원 중 2명의 청각장애인이 있고, 다른 장애인 직원들도 여럿 있어요. 이오드림의 설립목적은 함께하는 사회에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고 싶었고, 취약계층에게 조금이라도 그 문화를 함께 나누려 했던 거죠. 저는 취약계층에게 하루 한 끼의 걱정을 해결해주기 보다는 문화갈증을 해소해주고 싶었어요. 재능기부를 통해 취약계층에게는 무료로 재료를 제공해 강의를 해드리고, 그 중 실력이 있는 분들은 채용해 일자리를 주어 제가 만든 기업문화를 함께 누리고 싶어요.” - ‘이오드림’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드림(Dream)’은 꿈을 말하는 것이고요, 앞에 ‘이오’는 경영 개념에서 가져왔다고 볼 수 있어요. 경영은 기획, 제작, 판매, 관리 이렇게 4가지로 나뉘는데, 그런 개념으로 봤을 때 과연 저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론은 무엇이 됐든 최고로 잘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제가 생각한 ‘최고’의 기준이 25%가 되는 것이죠. 100% 중 기획, 제작, 판매, 관리 4가지로 나뉘니까요. 하지만 최고치인 25%만 가지고는 회사가 운영될 수 없겠죠? 최고치 25%를 달성할 수 있는 4가지 분야의 최고들이 모두 모여야 제대로 된 경영이 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우리 공예인들도 공예품을 만드는 제작만 최고라고 해서 잘 될 수 없다는 것이 되죠. 다시 말해 각자의 분야의 최고가 되자는 뜻입니다. ‘이오드림’은 총괄 관리를 하는 회사로 보시면 되고, ‘이오드림’ 외에 이오클래식, 이오와이어 등 많은 브랜드가 있는데 모두 최고를 뜻하는 ‘이오’가 항상 들어가죠.”  - 구슬공예 명인으로서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명인이 되고서 더욱 사명감을 느껴요. 이렇게 된 이상 구슬공예가 뿌리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후세들이 지금 저의 비즈 기법들을 더 개발시켜서 더 훌륭한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자신만의 창작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명인으로서 저의 책임이라 생각해요.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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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6
  • [셀럽 스타일] 오제형 “스타일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있다 없다에요”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옛날부터 제가 봐도 옷을 독특하게 입긴 했어요. 그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오렌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기도 하고, 로고가 크게 들어간 백팩을 들기도 했죠. 제가 보통 남자들 보다는 독특하게 옷을 입으니까 셀럽 스타일로 봐주신 것 같네요. 옷을 잘 입는 방법이요? 옷을 평범하게 입어도 자신감을 가진다면 그게 자신만의 스타일이 돼서 멋지게 보이는 것 같아요” 스타일 쇼를 선보이는 프로그램 ‘겟 잇 스타일’ MC와 PR 마케팅 회사 ‘프레싱크’ 대표로 있는 다재다능한 오제형씨는 디자이너 어머니를 둔 까닭인지 데뷔부터 지금까지 패셔너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를 만나 그의 스타일과 그가 직접 추천해주는 스타일링 팁, 그리고 올 F/W시즌 눈여겨 볼 아이템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자.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 ■ 오제형 스타일이 있기까지 - 어머니께서 디자이너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때문에 어릴 적부터 옷을 잘 입으셨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릴 적엔 어머님이 옷을 잘 입혀주셨던 것 같아요. 일본에서 직접 구매한 양복을 입혀주시기도 하시고, 지금도 제 스타일에 영향을 주고 계세요. 오늘은 옷을 잘 입었네, 못 입었네, 멋있다, 이건별로야, 이런 식으로 평가해 주세요.” - 어머니가 패션 디자이너신데 디자이너를 꿈꾸지는 않으셨나요? “디자이너를 꿈꾼 적은 없어요. 어머니가 너무 고생하시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오히려 절대 옷 디자이너는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그럼 본격적으로 본인이 스타일링해서 옷을 입은 적은 언제부터인지 “고등학교 때인 것 같아요.”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 ■ 셀럽 오제형의 스타일 - 스타일리시한 셀럽으로 불리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처음 듣는데요?(웃음) 그렇게 봐주시니 우선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사실 옛날부터 제가 봐도 옷을 독특하게 입긴 했어요. 그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오렌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기도 하고, 로고가 크게 들어간 백팩을 들기도 했죠. 제가 보통 남자들 보다는 독특하게 옷을 입으니까 셀럽스타일로 봐주신 것 같네요. 옷을 평범하게 입어도 자신감을 가진다면 그게 자신만의 스타일이 돼서 멋지게 보이는 것 같아요.” - 평소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시나요? “전 다 좋아하는 편이예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은 약간 다른 두 가지 요소를 믹스매치 하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예를 들자면 매니쉬한 스타일과 페미닌한 스타일의 옷을 함께 코디하는 거예요. 밀리터리 재킷에 단아한 블랙 미니드레스로 코디를 한다던가, 블레이저에 넥타이를 하고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뒤 부츠로 마무리 하는 거죠. 그러면 굉장히 캐주얼하면서도 독특한 스타일이 되요. 저는 이런 조화를 이룬 스타일을 좋아해요.” - 평소 싫어하는 스타일이 있다면? “요즘 유행하고 있는 특정 캐주얼 브랜드인데, 길거리에 나가면 누구나 입고 있는 특정 브랜드의 티셔츠와 후드티! 이런 옷들로 인해 모두 스타일이 똑같아 지는 것 같아서 그 옷이 요즘 젊은 사람들의 유니폼처럼 느껴지기까지 해요. 누구나 입는 스타일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요.”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 - 오늘은 어떤 스타일로 코디 하셨나요? “오늘은 카모플라쥬 재킷에 이너는 약간 톤다운 된 그레이 컬러로 코디했어요. 밀리터리룩이지만 그레이로 한 컬러 낮춰서 약간 포멀하게 보일 수 있도록 했는데, 지금 입은 카모플라쥬 재킷이 좀 특이하고 화려하죠? 사실 아직 저도 이런 스타일의 카모플라주 재킷을 다른 사람이 입고 다니는 건 못 봤어요.” - 오제형씨가 생각하는 스타일이란? “예전에 인터뷰 했을 때도 이야기 한 적 있는데, 스타일은 좋다 혹은 나쁘다가 아니라 스타일이 있다 없다가 정확한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패션은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G.드래곤 같은 경우 그만의 스타일을 굉장히 화려하거나 과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 스타일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G.드래곤 스타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스타일이 있을 거예요. 어떤 스타일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스타일 아닐까요?”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 ■ 오제형이 들려주는 스타일링 TIP 5 TIP 1. 많은 옷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어 스타일을 체크하자 “옷은 많이 입어보고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 봐야 해요. 그래야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무엇이고, 안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옷장에서 경험치를 쌓으세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자기가 새롭게 도전해 본 스타일은 꼭 사진으로 찍어보세요. 예전에  베르사체의 디자이너 도나텔라를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그녀도 옷을 입은 뒤 꼭 사진으로 확인한다고 하더라고요. 이 방법은 특히 남성들에게 필요한 방법이에요. 여자들은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지만, 남자들 같은 경우 전신사진을 찍는 일이 드물거든요. 거울로 본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틀려요. 꼭 사진을 찍어 자신의 스타일을 체크하세요.” TIP 2. 디자이너 컬렉션을 눈여겨보자 “저 같은 경우 시즌마다 디자이너 컬렉션을 챙겨 보는 편이예요. 런웨이에 오르는 옷들이 예쁘고 멋있어서 보는 것도 있겠지만, 디자이너들이 어떤 아이템으로 어떻게 스타일링을 했는지도 유심히 보는 편이예요. 이번엔 지방시의 컬렉션을 보고 긴 코트에 패딩점퍼를 묶어 놓은 스타일을 보고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꼭 자신이 그 스타일을 입지 않더라도 디자이너 컬렉션을 보면 스타일링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TIP 3. 지나치게 유행을 따라가려 오버하지 마라 “전 35살이 지나면 대부분 자기만의 스타일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저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유행이라며 너도 나도 모두 같은 스타일의 옷을 구매하고는 해요. 정작 중요한건 자기 자신에게 잘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일들이 줄어들게 되는지만, 오버하면서 유행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TIP 4.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을 잘 알고 있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을 잘 알고 있지 않으면, 같은 옷을 여러 벌 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요. 그리고 전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체형이 변하지 않아서, 지금과 사이즈가 같기 때문에 예전에 입었던 옷들을 꾸준히 입는 편이예요. 정리할 옷들은 정리 하더라도 좋은 옷들은 잘 기억해두고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잘 활용하시는 것이 좋아요.” TIP 5. 소재가 다른 옷들을 매치해보자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인데요. 텍스쳐가 좀 다른 옷들로 코디를 해보세요. 예를 들면 오늘 입은 카모플라쥬 재킷은 코튼 소재에 가까운데 이런 소재의 상의와 함께 하의는 폴리에스테르 같은 소재의 팬츠로 입어보시면 멋진 스타일이 될 수 있어요.”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 ■ 오제형이 들려주는 올 F/W 베스트&워스트 아이템 1. 베스트 아이템 - 바이커 재킷 “라이더 재킷이라고도 하죠. 바이커 재킷은 꼭 하나 장만하세요. 남자던 여자든 이번 시즌 멋지게 보내고 싶으시다면 적극 추천하는 아이템 이예요.” (스타일링 Tip) 바이커 재킷을 처음 도전한다면 디테일이 많지 않은 무난하고 클레식한 바이커 재킷으로 도전해보자. 약간 독특한 스타일을 찾는다면 가죽 블로킹이 된 바이커 재킷도 괜찮다. 바이커 재킷은 무심하게 걸쳐도 스타일리시한 스타일로 연출 할 수 있다! 2. 베스트 아이템 - 남성 레깅스 진 “남자 레깅스 진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진이지만 편안하게 밴딩처리 되어 있는 레깅스 진은 저도 이번에 시도해 보려고 하고 있어요. SPA 브랜드에서 저렴한 가격에 많이 나왔어요. 올 가을, 겨울 남자 분들도 한번 시도해 보세요.” (스타일링 Tip)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벨트를 따로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레깅스 진! 신축성이 좋고 걱정처럼 너무 타이트 하지 않으니 꼭 입어본 뒤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로 구매하시길, 진을 좋아하지만 겨울에 조금 춥다 생각된다면 기모 안감 처리된 레깅스 진을 추천! 3. 베스트 아이템 - 남성 트위드 재킷 “여성분들이 상당히 좋아하는 아이템인데, 남자 분들은 사실 잘 안 입어요. 이번 시즌에 트위드 재킷이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저도 시도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스타일링 Tip) 배가 나와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킷은 꼭 버튼이나 지퍼를 잠근 뒤 입어보자.  1. 워스트 아이템 - 찢어진 데님스커트와 레깅스코디 “언제 유행이 돌아올지 모르니까 버리지는 마세요. 겨울에 많은 여성분들이 찢어진 데님스커트에 레깅스를 코디하신 분들이 계셨는데, 이번 시즌에는 안 입어도 될 것 같네요.” 2. 워스트 아이템 - 평범한 맨투맨티 “남자 분들 맨투맨티 많이 가지고 계신데, 평범한 맨투맨티는 옷장에 넣어두시고 이번 시즌에는 여름부터 유행하고 있는, 실루엣이 좀 독특한 맨투맨티를 시도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겟 잇 스타일 MC [사진=겟 잇 스타일]  ■ 방송인 오제형 - ‘겟 잇 스타일’ MC로 활동 하고 계시는데, 아이템 선정 시 어떤 부분을 고려해 선정하시나요? “절대 아이템 같은 경우 직접 리서치를 합니다. 종합적으로 본 다음 이번시즌에 나온 아이템이면서 가격대는 고중저가로 다 나와 있고, 한 브랜드에서 나온 아이템이 아니라 여러 브랜드에서 나온 아이템으로, 클래식하게 몇 년은 입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선정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찾아 선정하는 거죠.” - 방송에 입고 나오시는 스타일이 굉장히 멋지다 생각 들었는데 직접 코디하시는 건가요? “제가 보여드리는 스타일은 대부분 직접 스타일링 하는 경우가 많아요. 겟 잇 스타일 프로그램에서는 제가 스타일링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체 스타일을 맡고 계시는 한혜현씨가 스타일링 해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 공식적인 자리나 방송에서 컬러풀한 옷들을 자주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컬러풀한 의상을 자주 입기도 해요. 6년 전에 구매한 캐시미어 핑크 니트 같은 경우도 좋아하는 옷 중 하나인데, 그런 옷들이 의외로 하나 구입해두면 여기저기에 잘 입을 수 있더라고요.” - 영화 ‘여배우들’과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에서 불어로 대사 하시는 모습을 봤는데, 듣기로는 영어도 잘 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시는지 “제가 불문학과를 나와서요. 저도 사실 읽는 건 문제가 없는데, 대화하는 것은 자주 쓰지 않아 많이 잃어버렸어요. 지금은 중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 ■ PR 마케팅 회사 대표 오제형 - 현재 ‘프레싱크’의 대표이사로 계시는데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지금 운영하고 있는 프레싱크라는 회사는 PR 마케팅 회사예요. 쉽게 이야기 하면 브랜드 홍보를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크리스찬 디올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시아 전체 프레스를 다 불러서 하는 리저널을 저희 회사에서 했었고, 한류스타 해외 마케팅도 하고 있어요. 이영애씨와 루이비통이 함께 행사도 저희 회사에서 진행했어요. 지금은 베르사체와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 브랜드를 맡고 있어요.” - 해외 유명브랜드 관리를 맡아서 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 저희는 운이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점도 장점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본사와 직접 계약한 브랜드만 맡고 있어요. 브랜드를 맡을 때 사람을 보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 생각하는 방향이 같은 브랜드를 선택하고 있어요. 서로 간에 신뢰가 있는 회사와 일을 하기에 오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는 한국에 진출하려는 작은 해외 브랜드 들이 많아요. 그런데 시장이 좀 안 좋아서, 그런 브랜드들이 좀 더 한국에서 자리 잡기 편리하도록 파트너라는 개념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려 하고 있어요.” - 방송인과 기업가인 오제형씨가 젊은 친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요즘 젊은 친구들은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걱정만 할 시간에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세요. 한 우물만 파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 요즘엔 여러 군데 관심을 가지고 일하다 보면, 많은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해 보세요.” “그리고 정말 소중한 것은 인간관계입니다. SNS를 통해 인간관계가 넓어지기는 했지만, 깊이가 없는 것 같아요. 인간관계는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자산이 될 수 있어요. 사람으로 인해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물론 배신도,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전 아직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꼭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세요.”  ▲ 오제형 [사진=양문숙 기자] ■ 앞으로의 계획 “단기적인 계획은 지금 중국 TV와 패션, 뷰티 쪽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은 재미난 것을 많이 만들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게 제 꿈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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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5
  • [무대 위 그 배우] 강태을 “‘머더 발라드’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어요”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바에서 뛰어 다니면서 자유롭게 하는 모습, 그리고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록발라드 음악이 있는 ‘머더 발라드’ 영상을 보곤 ‘이거다’ 싶었어요.” 뮤지컬 배우 강태을이 국내 초연작 ‘머더 발라드’의 ‘탐’역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오프 브로드웨이 맨하튼 씨어터 클럽에서 초연해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머더 발라드’는 11월 5일 롯데카드 아트센터에서 한국에 초연된다. 배우 김수로가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최재웅, 한지상, 성두섭, 임정희, 린아, 장은아, 박은미, 홍경수, 김신의, 홍륜희, 문진아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막 전부터 뮤지컬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마이클’과 결혼한 ‘사라’가 안정적인 생활에 실증나 불같은 사랑을 나눴던 첫사랑인 ‘탐’을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머더 발라드’에서 강태을은 ‘탐’으로 분해 헤어진 옛 연인 ‘사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강렬한 록발라드 음악에 바(Bar)형식의 무대와 스테이지 객석으로 어느 공연보다도 섹시하고 정열적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데뷔해 그 해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남우 신인상을 수상하며 한국 뮤지컬계에 뮤지컬 스타로 자리매김한 강태을 배우를 만나 ‘머더 발라드’와 그의 뮤지컬 이야기를 듣고 왔다. ▲ 강태을 배우 [사진=양문숙 기자] ■ “그 누구라도 누구도 당신이 될 순 없어…” ‘탐’이 된 강태을 “예전에 아버지께서 ‘배우’라는 직업이 재밌는 이유를 말씀해주셨어요. 실제로 누군가를 때리거나, 남의 여자를 탐하면 범법행위가 되지만, 무대 위에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불륜은 더 깊게 사랑에 빠지면 빠질수록, 살인은 더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더 박수를 받는 곳이 무대이기 때문에 재밌다고. 그 말씀이 이번 ‘머더 발라드’를 하면서 딱 마음에 와 닿았어요. 너무 재밌구나.” 강태을 배우에게 ‘배우’의 기쁨을 알려준 ‘머더 발라드’, 그에게 ‘머더 발라드’는 어떤 작품일까. - ‘머더 발라드’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저희 학교 선배님이신 (김)수로 선배님이 ‘그날들’ 공연을 보러 오셔서 인사를 나누다가 ‘머더 발라드’가 아닌 다른 작품을 말씀하시면서 출연해보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다가 제가 ‘또 준비하고 있는 공연 있으세요?’라고 물으니 이 ‘머더 발라드’ 영상을 보여 주시더라고요. 영상을 보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어서, ‘머더 발라드’ 꼭 하고 싶다고 했죠. 형식이나 노래가 워낙에 제가 좋아하던 거라, 다른 작품들도 고사하고 선택했어요. 그리고 ‘탐’이라는 시놉시스도 저에게 너무 와 닿았고요.” - 영상 속 어떤 점이 끌렸나요. “바에서 뛰어 다니면서 자유롭게 하는 모습도 너무 좋았고, 음악도 제가 좋아하는 락발라드라서 ‘이거다’ 싶었죠. 영상을 보면서 딱 ‘렌트’의 ‘로저’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 처음부터 ‘마이클’이 아닌 ‘탐’역이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네. ‘탐’의 시놉시스를 수로 선배님께 듣고서 개인적으로 제 첫사랑이 생각이 나면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 강태을 배우가 ‘탐’ 입장이여도, ‘사라’와의 사랑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저도 상상을 많이 해봤어요. 제 첫사랑이자 결혼까지 하고 싶었던 옛 애인이 있었는데, 저랑 헤어지고 1년 쯤 뒤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 소식을 듣고, 몇 년이 지나도 그녀가 살던 동네나 함께 갔던 곳을 지날 때면 ‘한 번쯤은 다시 보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고, ‘행복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아마 ‘탐’ 또한 그런 마음이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생각으로 그쳤지만, 탐은 진짜 다시 사랑을 시작 한 거죠. 누구나 지나간 사랑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탐’과 ‘사라’는 둘 만 놓고 본다면 열정적인 사랑이지만, ‘마이클’을 끼고 보면 불륜이 되잖아요.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그렇죠. 그래도 결국엔 탐도 사라도 서로 사랑했다고 생각했어요. 사라는 탐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가정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탐은 가정이 없다 보니까 그녀의 대한 사랑을 더 맘껏 표현할 수 있었겠죠. 그래도 좀 안타까운 사랑이라고 봐요.” - 극 중 ‘탐’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어요.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그 안에 구체적인 스토리를 만들면서 따라가다 보면 이해가 안 될 부분이 없더라고요.”  ▲ 강태을 배우 [사진=양문숙 기자] ■ 가장 핫하고, 가장 섹시한 뮤지컬 ‘머더 발라드’,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 극 중 가장 좋아하는 곡과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곡은 어떤 곡입니까. “제일 좋아하는 곡도 가장 어려워하는 곡도 같은 곡이에요. ‘i'll be there’이란 곡인데, 탐이 사라에게 집착을 보이는 곡이에요. 사라가 탐에게 이별을 통보하자 탐이 그녀를 붙잡지만 사라는 그냥 떠나요. 그 뒤에 사라가 센트럴파크에 마이클과 자기의 딸과 함께 산책을 오는데, 그 곳에 탐이 밤새 술을 마시고 그 곳을 가죠. 그녀가 마이클을 바라보면서 부르는 노래가 끝나고 나면, 그 뒤에서 탐이 이 노래를 시작을 해요. 배우들끼리는 ‘미저리송’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웃음) 그 장면에서 탐이 가장 많이 무너지고, 가장 절실하면서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요. 그러다보니까 노래 자체도 가장 어려워요. 그렇지만 관객들에게는 와 닿는 것이 있을 거예요. ‘탐이 사라를 얼마나 사랑했고, 둘의 관계가 어떻겠구나’라는 것을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거죠.” - 네 명의 ‘탐’ 중 강태을 배우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을 꼽자면. “극 중 뛰어다니고, 들고 이런 힘쓰는 장면이 많아요. 네 명의 탐 중 제가 덩치도 가장 크고, 운동을 해서 가장 날렵하고, 힘도 쎄고.(웃음) 음색도 ‘락 발라드’에 잘 맞는 다고 생각합니다.” - 네 명의 ‘사라’, 어떤 배우와 가장 호흡이 좋은가요. “4명의 색깔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각기 아주 달라요. 음색이나 노래에 대한 에너지를 주고받는 건 은아가 잘 맞고, 연기적인 부분은 린아가 잘 맞아요. 또 정희 같은 경우는 순간순간 나오는 정희만의 도발이 있어서 좋고, 은미는 워낙 뮤지컬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가장 마음 놓고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아요.” - ‘머더 발라드’는 대사가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송스루 뮤지컬(Song-Through)인데, 송스루 뮤지컬이 다른 뮤지컬보다 더 힘드시죠? “그렇죠. 한곡 한곡 끊어서 부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힘들어요. 또 이번 공연은 ‘점핑’이라고 하나하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큰 갭이 느껴지는 장면을 연기하는 게 많아서, 그 갭을 넘기 위해선 자신만의 스토리가 필요한데, 그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 어려워요.”  ▲ 강태을 배우 [사진=양문숙 기자] ■ ‘머더 발라드’, 함께 즐겨요! - 이번 공연은 11시 공연도 있고, 스탠딩 석도 있어 더 기대가 큰데요. 관객들이 공연을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한 관람팁을 말씀해주신다면. “공연을 보시는 동안만큼은 마음껏 상상하시고, 금지된 것들을 마음껏 즐기시면 누구나 꿈 꿔왔던, 혹은 상상했던 것들을 마음껏 생각하면서 마음 편히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너무 극 안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하기 보다는 느껴지는 대로 느끼세요. ‘쟤네가 왜 저러지?’라며 분석하기 시작하면 그만큼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공연에서 느껴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즐겁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웃음)” - 밤 11시 공연은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기대되는 시간일 것 같아요. “그렇죠. 보통 락 공연은 밤 공연을 하곤 하는데, 그 ‘11시’라는 단어와 시간대가 주는 느낌이 아무래도 다른 공연보다는 다르다보니 관객과 배우의 첫 호흡부터가 달라요. 관객들과 배우들 모두 상기된 상태에서 시작하다보니 그렇겠죠. 막차를 포기하고 보는 열정이 있잖아요.(웃음)” - 무대가 앞, 옆, 뒤까지 객석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부담이 되진 않나요? “배우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관객들이 앞에만 있을 때는 뭘 하다가도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하는데, 이 무대에선 그런 것이 많이 없다보니까,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부담되기 보다는 재밌을 것 같아요.” - ‘머더 발라드’를 추천해주고 싶은 관객이 있다면. “쳇바퀴 같은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 무언가 신선한 충격과 영화 같은 상상을 하고 싶은 분들이 오시면 즐겁게, 머릿속에 음란마귀를 꺼내서 재밌게 보실 수 있으십니다.(웃음)” - 마음 속 음란마귀를 꺼낼 만큼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나요? “하하. 그런건 아닌데요. 요즘 ‘음락마귀’라는 말을 연습하면서 많이 쓰거든요.(웃음) 탐과 사라가 다시 만났을 때 굉장히 빠르게 관계가 진행이 되는데, 그런 장면들에서 섹시하면서도 농염한 느낌이 많이 묻어나요.” - 우와 그럼 ‘머더 발라드’를 보러 가면 강태을 배우의 섹시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나요? “저의 멋진 등 근육을…(웃음)”  ▲ 강태을 배우 [사진=양문숙 기자] ■ 성공적으로 개막한 배우 인생 제2막 2004년부터 5년간 일본 극단 사계(四季)에서 활동해오던 강태을 배우는 2008년 한국 뮤지컬 무대에 데뷔으며, 그 해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남우신인상을 수상하며 안정적으로 한국 뮤지컬계에 입성했다. 강태을 배우는 ‘돈주앙’, ‘록키호러쇼’, ‘어쎄신’, ‘몬테크리스토’, ‘모차르트’ 등 주로 대형 라이센스 뮤지컬 무대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행보가 올해부터 변하는 양상을 보였다. 바로 창작뮤지컬 ‘그날들’과 국내 초연작 ‘머더 발라드’를 선택한 것. 그에게 작품을 선정하는 다른 관점이 생긴 건지 물었다. “네. 달라졌어요. 제가 작년에 딱 한 작품(모차르트)만 하고 쉬었거든요. 쉬지 않고 계속해서 공연을 하다가는 껍데기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휴식시간을 갖고, 그 뒤로 만난 작품이 ‘그날들’이죠. 그 동안 뮤지컬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궁금증이 ‘그날들’을 통해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날들’을 만나기 전에는 무대에서 무조건 잘하려고 했고, 뭔가 대단한 걸 보여주기 바빴어요. 그게 몇 해가 넘어가니 지치더라고요. 남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또 그 전에는 겹치기 공연도 많이 했어요. ‘그날들’부터는 풀로 연습부터 참여해서 끝날 때 까지 ‘그날들’ 공연만 참여를 했어요. 그러다보니 조금씩 솔직해지고 편안해지더라고요. 뭔가 대단한 걸 굳이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보여주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듣고, 반응하고, 말하는 것들이 되기 시작하니까.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죠.” - 이번 ‘머더 발라드’도 연습 때부터 한 작품에만 매진하고 있죠? “‘그날들’ 지방 공연 끝나자마자 바로 ‘머더 발라드’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정말 개근상 받아야 돼요.(웃음)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거든요. 연습하는 걸 좋아해요. 공연을 하게 되면, 약속된 것들을 서로 정해진 만큼 나눠서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껏 내지르지 못하는데 연습 때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 볼 수 있고, 상상했던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있기 때문에 즐겁거든요.” “뮤지컬배우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지가 얼마 안됐어요. 그 전에는 정말 바빠서 자고 일어나서 연습하고, 공연하고. 그래서 정말 입버릇처럼 ‘빨리 공연 끝났으면 좋겠다’, ‘좀 쉬고 싶어’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공연을 딱 쉬고 다시 재충전해서 ‘그날들’을 하고 나니깐 이제는 행복한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고, 연습하는 것, 공연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요. 예전에는 말 그대로 ‘일’이었는데, 이제야 재미를 찾은 거죠.”  ▲ 강태을 배우 [사진=양문숙 기자] ■ 그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 걸어갈 수 없는(?) 길 - 지금껏 해온 역할들 중에 다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돈 주앙’, ‘록키호러쇼’ 그리고 ‘그날들’. 이 세 작품은 제가 가장 행복하게 한 작품들이라 언제라도 제안이 들어오고, 공연 시간만 맞는다면 꼭 하고 싶어요.” - 그 세 작품들을 다시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돈 주앙’의 ‘돈주앙’역. 6개월에 걸쳐 오디션을 봤고, 아무런 정보도 없던 저를 신인으로서 얻은 첫 타이틀 극이라 애정도 많이 가고, 그 과정들도 참 소중하다 느껴져요. ‘돈주앙’의 ‘돈주앙’역. 첫 타이틀이기도 했고, 첫 송스루 뮤지컬이기도 했어요. 저를 세상에 가장 많이 알려준 작품이자 역할이기 때문에 ‘돈주앙’ 다시 해보고 싶어요.” “‘록키호러쇼’는 그 작품을 통해 제가 처음으로 스타킹을 신었죠.(웃음) 드랙퀸 역할이었는데, 손 한 뼘만한 통굽을 신고, 가터벨트에 스타킹, 팬티만 입고, 화장을 하고. 그 쇼킹함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정신없이 공연을 준비하고, 첫 공연에서 바바리를 입고 분장을 가린 채 등장했다가, 바바리를 딱 벗는 순간! 와 그 함성소리는 정말…. 극장이 떠나가라 들리던 함성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너무나 짜릿했죠. 마지막으로 ‘그날들’은 뭔가 배우로서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 해보고 싶어요.” - 만약에 강태을 배우가 여자라면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을까요? “있어요! 뮤지컬 ‘아이다’에 ‘암네리스’ 공주 하고 싶어요.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하얀 결혼식 예복을 입으면서 부르는 노래를 너무 좋아해요. 또 패션쇼를 하면서 부르는 곡 등 암네리스는 무대 위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여자라면 ‘암네리스’역할 꼭 해보고 싶어요.(웃음) 너무 매력적이에요.” - 지금보다 10살이 어려진다, 해보고 싶은 역할은요?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스프링 어웨이크닝(사춘기를 겪고 있는 10대들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록 음악과 파격적인 연출로 풀어낸 작품)’이요.” - 10년 후에 해보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가요. “10년 후에도 지금 이 모습에서 많이 안변했으면 좋겠네요.(웃음) 저는 40대 후반이 되면, ‘지킬앤하이드’랑 ‘헤드윅’을 해보고 싶어요.” - ‘헤드윅(2009)’은 이미 출연을 하셨는데, 굳이 10년 뒤에 하고 싶으신 이유가 있나요? “네. 했었죠. 그 당시에는 헤드윅을 담아 낼 수가 없었어요. 40대 후반쯤 되면, 더 깊은, 그리고 더 쓴 웃음이 지어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 내면에 더 깊이가 생긴다면 ‘헤드윅’을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 절대 하기 싫은 역할도 있나요? “음..‘쓰릴미’요.(웃음)” - 왜요?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한데. “음..저는 ‘쓰릴미’ 못 하겠어요.(웃음) 정말 연기라 하더라도 ‘그’를 사랑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아직 제가 그만큼 열려있진 않은 것 같아요.” - 유난히 록 뮤지컬을 많이 출연했는데, 평소에도 록 음악을 많이 좋아하나요?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 록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우연하게 학교에서 록밴드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선,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웃음) 친구가 록밴드 오디션 보러 간다기에 저도 같이 갔다가 덜컥 제가 된 거예요. 그리고 또 저와 같은 농구부 주장을 하던 다른 친구는 나중에 록밴드 보컬이 됐어요. 그 친구랑 같이 노래방을 갔는데, 완전 높은 고음의 록 노래를 잘 부르더라고요. 저는 그때 고음이 안 됐거든요. 제가 그 모습에 반해서 그 친구와 더 친해졌고, 그 친구를 통해 본조비(Bon Jovi), 파이어하우스(Firehouse) 등 서양의 록 음악을 다 접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록 음악에 빠져서 테이프에 다 녹음해서 매일 들으며 노래 연습했을 정도에요.”  ▲ 강태을 배우 [사진=양문숙 기자] ■ 요즘 뮤지컬은 괴물들의 전쟁? - 뮤지컬 배우는 타고나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뮤지컬은 배우의 실력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우선은 노래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 필요하죠. 이미 지금 뮤지컬계에는 타고난 사람들끼리 모여서 경합하고 있거든요.” - 이미 뮤지컬계에는 타고난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제가 인정하는 뮤지컬계에 몇몇 괴물들이 있어요.(웃음) 그 괴물들은 보통 뮤지컬 배우들보다도 더 많은 걸 가지고 태어난 것 같아요.” - 강태을 배우가 인정하는 그 괴물들이 누군가요. “일단 ‘콰지모도’하는 ‘콰지 괴물’ 윤형렬이 있고요.(웃음) 미친 고음을 내는 (한)지상이가 있고, 아주 팝 적인 느낌과 클래식한 느낌을 갖고 있는 (홍)광호도 있죠. 그 외에도 많고, 또 괴물들이 점점 나타나더라고요.(웃음)” - 강태을 배우도 괴물 아닌가요? “음. 저는 괴물은 아니더라도, 저 만의 톤이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허스키하면서도 날카로운 저만의 톤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 강태을 배우 [사진=양문숙 기자] ■ 강태을, 미래를 그리다 - 뮤지컬 외에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영화에도 관심이 굉장히 많아요. 영화하고 싶어요. OST도 해보고 싶고요. 가수 데뷔는 좀 힘들더라도 OST는 한 번 불러보고 싶어요.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40대 즈음에 앨범을 내고 싶기도 해요.” - 40대, 남자가 가장 멋있다는 나이네요. “맞아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고등학생 때도 친구들이랑 ‘우리 나중에 몇 살이 되면 이렇게, 저렇게 살자’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그 친구들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각자 꿈꾸던 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꿈을 꿔야 그 모습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저도 40대의 저의 모습, 50대의 저의 모습을 많이 그려보죠.” - 강태을 배우가 그린 50대의 모습은 어떤가요. “머리 군데군데 좀 하얗고 짧게 나서, 조지 클루니 처럼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얼마 전에 ‘그래피티’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가 왜 섹시한지 그 이유를 알았어요. 사실 전에는 그가 왜 섹시한지 잘 몰랐거든요. 조지클루니는 여유와 위트가 있는 남자라 생각해요. 그 여유가 자신만을 위한 여유가 아니고 같이 있는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 여유더라고요. 저도 그런 여유와 위트가 있는 사람과 있다면 극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든든할 거 같아요. 50대에는 그렇게 여유와 위트로 주변인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 ‘머더 발라드’ 끝난 뒤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끝나고 2014년 2월에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계약을 안 해서(웃음). 확정된 후에 말씀드릴게요! 어찌됐든 내년에 뮤지컬 무대에도 서고, 오디션도 많이 보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분야들에 계속해서 도전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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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4
  • [인터뷰 비하인드] 김준희편/ 당차지만 따듯한 마음을 가진 여자
      ▲ 김준희 [사진=양문숙 기자](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수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김준희씨! 이번에 첫 번째로 선보이는 ‘셀럽 스타일’에서 스타일 아이콘 김준희씨를 만나 봤습니다. 스타일과 뷰티에 관련된 프로그램 MC와 쇼핑몰 CEO, 서울 종합 예술 전문학교의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 인 팔방미인 김준희씨! 셀럽 스타일이라는 코너를 처음 선보이게 되서 첫 번째 셀럽을 누구로 할까 많이 고민했는데요. 요즘 20~30대 여성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리시한 김준희씨가 먼저 떠올랐어요. 여러 활동으로 바쁘신 와중에도 어렵게 시간을 내주셔서 역삼동 ‘에바주니’사무실로 김준희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 김준희 [사진=양문숙 기자] 에바주니의 사이트만 봐왔던 터라 사무실은 어떨지 궁금했어요. 한쪽에서는 택배 배송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여직원들이 보였어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을 보니 ‘김준희씨가 선보이는 옷들을 입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셀럽 스타일과 잘 맞는 분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얼마 뒤 김준희씨의 사무실에 들어가 인터뷰를 시작했는데요. 처음에 화면보다 실물이 너무 예쁘셔서 놀랐네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관리 비법이 궁금해져 뷰티 팁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어요. 많은 분들이 김준희씨처럼 예뻐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으실  것 같아서요.   ▲ 김준희 [사진=양문숙 기자]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해서 다소 귀찮게 느껴질 법 한데 너무 친절히 대답해 주셨어요. 사실 조금 새침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성격이 너무 좋고 쿨 하시더라고요. 인터뷰 중 햇살이 얼굴 쪽으로 바로 들어왔는데, 혹시 눈부시지 않냐며 인터뷰 중 벌떡 일어나 블라인드도 쳐주시고, 사진 촬영하시는 기자님 다리는 아프지 않은지 걱정해주시며 챙겨주시는데, 왠지 새침해보여서 인터뷰 할 때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내 모습이 바보 같다 생각됐어요.  ▲ 김준희 [사진=양문숙 기자]또 개인적으로 8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공개 연애한 것에 대해서도 궁금해져 물어봤는데, 아주 쿨하게 이야기 해주셨어요. “8살 연하남과의 만남으로 한동안 화제가 되었는데, 아직도 잘 만나고 계신가요?” “그럼요! 아주 잘 만나고 있어요.” “ 방송과 사업 그리고 강의까지 바쁘게 활동하시느라 남자친구 만나기 힘드시겠어요. 남자친구분이 서운해 하지 않으세요?” “절대 안 서운해 해요. 그 친구도 바쁘고 또 제가 아무리 바빠도 보고 싶을 때는 어떻게든 보거든요. 그리고 서운해 하지 않을 정도로 제가 다독이며 잘 만나고 있어요. (웃음)”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당차지만 마음이 참 따듯한 내면과 외모가 모두 아름다운 여자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기념 셀카를 찍었습니다.  ▲ 김준희씨와 기념 셀카바쁘신 와중에도 어렵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방송인, CEO 그리고 새롭게 준비하는 주얼리 디자이너로써 승승장구 하시는 모습 기대할게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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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1-01
  • [리 스타트] 이기명 프리메라 미용학원장 “철저히 준비 후 바닥부터 출발”
    ▲ 이기명 원장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박수연 기자) “저처럼 늦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남 같지가 않아요. 준비가 되지 않으면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해서 제2의 인생에서 낙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하고 폭 넓은 활동으로 미용계에서 유명한 이기명 원장은 '헤어이미지'라는 미용실을 운영하며 '프리메라 미용학원'도 함께 이끌어 나가고 있다. 또한 그는 다양한 곳에서 커트에 관한 강의도 하고 있으며 헤어 일러스트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 이기명 원장 [사진=양문숙 기자] ■ 많은 나이에 바닥청소부터 시작해그는 홍익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학창시절 ‘삼성 파사드 디자인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학교 졸업 후 기업 홍보맨으로 광고, 언론홍보를 담당했다. 기업의 홍보팀에서 일하며 그는 그 당시 안정된 급여를 받으며 부족함 없는 일상이었다. 이 원장의 첫 직장은 장은신용카드였다. 그 후 KB국민은행을 거쳐 KTB네트워크에서도 홍보 일을 맡아 했다. 그는 회사생활을 하며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회에서의 성공과 자신의 미래의 꿈을 위해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뭘 할까 고민 하다가 헤어뷰티업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가족에게 일체 비밀로 하고 회사 업무가 끝난 후 저녁시간을 이용해 6개월 동안 미용을 배웠죠”라며 미용사업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바닥청소부터 시작해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그는 국내에서 손가락안에 드는 아비다선에게 미용을 배웠다.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도, 또 전혀 새로운 곳에서 시작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기업의 홍보 일을 맡아 할 때에는 인맥이 굉장히 넓었는데 새로 들어온 미용계에는 인맥이 전혀 없어 조그만 정보를 알아내는 것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죠.”가족들의 반대도 있었다. 이 원장은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회사를 나와 2년 넘게 수입 없이 미용을 계속 배우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책임져야 하고 또 기술을 배워 새로운 직업을 얻는 것을 동시에 해야 했으니 그 시절을 가장 힘든 시절로 꼽을 수밖에 없었다.    ▲ 이기명 원장과 학생들 [사진=프리메라] ■ 철학을 가르치는 미용학원이 원장은 미용학원의 경영 노하우로 철학을 꼽았다. “프리메라 미용학원은 기술과 철학을 같이 가르쳐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미용하는 자세부터 미용을 할 때 어떤 마인드로 해야 하는지는 중요한 것이에요. 인생에서 어떤 좌우명을 가지냐에 따라 일을 끝까지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정해지거든요. 저는 학생들이 일을 시작했을 때 장사가 아닌 자기 자신의 철학을 갖고 미용일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요.”그는 직장에 다닐 때보다 사업을 시작 하고나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직장인 시절에는 주말이 보장되어 있어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고 함께 할 시간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요즘 들어 친구들이 직장을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요즘은 전보다 더 빨라졌으니까요. 그런 것을 보면 늦지 않았었단 생각이 들어요. 물론 중 고등학생 때부터 미용을 배우는 젊은 친구들에 비하면 애 아빠가 미용을 배우는 것이 매우 힘들고 늦은 것이죠. 하지만 바닥부터 성실하게 쌓아 오니까 이 나이에 끝이 아닌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 이기명 원장 [사진=양문숙 기자] ■ 제2의 인생을 원하면 더욱 더 철저하게이 원장은 앞으로 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라며 학위가 나오는 미용학교를 만들어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는 것을 최종 꿈으로 밝혔다.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저처럼 늦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남 같지가 않아요. 그분들에게 준비가 되지 않으면 리스크가 크니 철저하게 준비해서 제2인생에서 낙오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준비라 하면 기술은 기본이고 마케팅과 네트워크가 중요해요. 다시 말해 경영 철학, 노하우와 인맥이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모든 것을 알기엔 혼자선 절대 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정보를 얻기 위해선 네트워크를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하고 또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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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2막의 창업자들
    2013-10-31
  • [인사] 식품의약품안전처
    ■과장급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안만호
    • 사람들
    • 인사·부음
    2013-10-30
  • [한국의 명장] 변도연 “닥종이 인형, ‘인형’아닌 ‘작품’으로도 봐주길”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아직도 닥종이 인형 공예를 ‘인형’으로만 보고, ‘작품’으로 보는 시선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 인형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많이 이해해줘야 하는데, 그 과정을 궁금해 하지도 않고, 이해해주지도 않은 채 그저 인형으로만 보는 시선들이 안타까워요.” 손재주가 좋아 어린 시절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변도연은 20살이 되어 대학생이 되자 본격적으로 다양한 생활 공예를 찾아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 꽃꽂이, 한지공예 등 손으로 만다는 것은 뭐든 좋았다고.  부모님의 반대로 공예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취미로 다양한 공예를 끊임없이 배워왔다. 말 그대로 ‘좋아서’ 계속 한 것이다. 큰 꿈을 안고 시작한 여행사가 IMF를 겪으면 좌절하게 되자, 그녀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리라 결심한다. 그렇게 그녀는 조금 늦었지만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바로 공예인으로 말이다. “사업을 접고 공예활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내가 작가로서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 고민할 때 ‘한지’를 선택하게 됐어요. 어린 시절 이웃집에 살던 어르신에게 한지를 배울 때 한지가 주는 오묘한 매력에 빠졌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다양한 것을 창작해 낼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느꼈죠.” 그렇게 한지공예를 시작했다. 한지공예를 배우던 변도연은 돌연 닥종이 인형에 빠졌다. 어떤 사연이었을까? 창덕궁 성벽을 따라 자리 잡고 있는 고즈넉한 한옥에서 그녀의 닥종이 인형 공예 이야기를 듣고 왔다.  ▲ 변도연 [사진=양문숙 기자]■ 변도연과 닥종이 인형이 만났을 때 - 닥종이 인형과의 첫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닥종이 인형과의 인연은 인사동 전시장에서였어요. 우연히 인사동 전시장에서 젊은 작가의 닥종이 인형 전시를 보게 됐어요. 보는 순간 가슴에 딱 닿았어요. 살포시 웃고 있는 인형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아, 닥종이 인형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그냥 바로 들었어요.” “전시장에서 도록을 가져와 작가에게 무작정 연락을 했죠. 그랬더니 그 작가가 군포에서 주3회 수업을 하는데 그 시간이 저랑 안 맞아서 배울 수가 없었어요. 순간 가슴에 와 닿았던 작품이었기에 꼭 그 작가에게 배워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죠. 그 뒤로 닥종이 인형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바로 찾아보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닥종이인형작가로 활동하는 분도 많지 않고, 교육하는 곳도 흔치 않았는데 발표된 작품들을 보고 그중 표정이 섬세하고 표현이 남다른 선생님을 교실을 찾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때 제 스승이신 박순애 선생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탁월한 선택이고 행운 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렇게 닥종이 공예를 시작한지가 얼마나 됐나요. “닥종이 공예를 작업한지는 15년 정도 됐네요.” - 닥종이공예도 한지공예에 속하죠? “네. 한지공예에요. 닥종이가 한지의 다른 이름이에요.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기 때문에 이를 닥종이라 하거든요. 한지공예 분야에는 만드는 기법에 따라  ‘지호공예’ ‘지승공예’ ‘지장공예’ ‘전지공예’ ‘색지공예’ ‘지화(紙花)공예’ ‘닥종이인형’ ‘후지공예’ ‘줌치공예’로 세분화 되어 있습니다. 한지공예 작가라면 이런 부문들을 모두 배워야 하는데 대부분 한 분야만 공부하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 또한 닥종이인형 작가로 활동하지만 한지공예의 다양한 종목들을 모두 공부했습니다.” - 염색도 배우셨던데, 닥종이 인형 공예를 하는데 도움이 되나요?  “염색도 필요해요. 시중에서 판매되는 색한지는 화학 염색지로 대중적으로 흔한 색들이라 저만의 독창적인 색을 갖기 위해서는 직접 염색하여 색을 입혀 사용해야 하거든요. 특히 한지는 천연 염색을 하면 은은한 색감을 갖게 되는데 작은 차이에도 다양한 색이 발색되어 나만의 독특한 색으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공예라는 분야가 다른 분야를 공부하여 접목하면 새롭고 흥미로운 창작품을 만들어 낼 수가 있어요. 그래서 가능한 많은 분야를 공부할 필요성이 있죠.”   - 앞으로 더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습니까. “전통분야에서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요. 매듭도 배우고 싶고, 민화도 배우고 싶고.(웃음) 일단은 제 작품과 접목이 가능한 것은 무조건 배우고 싶고, 접목이 불가능한 것은 전통에 대해 많이 알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배우고 싶은 거죠.” “현재는 옻칠을 배우고 있어요. 제가 지금 개인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것 중에 우리나라 전승적인 부분에 ‘지불(紙佛)’을 연구하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작을 시작하고 있어요. 지불은 한지로 만든 불상인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죠. 우리나라에 지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박물관 및 사찰 등 27여 군데 정도밖에 없습니다. 지불 작업을 하는 분도 많지 않아요. 사라져가는 유물 중 하나가 되어버린 지불을 재현해보고자 시작한 작업입니다. 이런 지불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옻칠이거든요. 특히 옻칠에서도 건칠기법을 배워야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옻칠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 공예분야가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적어도 10년 이상은 지속적으로 할 생각으로 배워야 하는 것들이거든요. 옻칠 공부를 시작한지 1~2년 밖에 안됐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공부할 예정입니다.”    ▲ 변도연 [사진=양문숙 기자]■ 다작을 꿈꾸다 - 평소 작업량은 얼마나 되나요? “특별한 작업이나 강의가 없으면 보통 하루에 12시간은 계속해서 하는 것 같아요. 저희 작업이 한 번 시작하면 기본 6시간 정도를 하니까요. 갑작스럽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작업을 하다보면 시간이 가는지도 몰라요. 밤새는 경우는 뭐 대다수고요. 나이가 드니 요즘엔 밤샘이 힘들긴 힘들더라고요.(웃음) ” - 주로 어떤 작품을 만드시나요?  “작품은 주로 다양하게 작업하는 편입니다. 순간순간 작품 구상이 될 때마다 메모하고 스케치해두었다 선별하여 작업을 시작하죠. 그러다 보니 작품으로 탄생되지 못한 기본 스케치들이 정말 많아요. 작업하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시간이 모두를 허락하지는 않죠. 제 작업이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작업을 요하다보니 열심히 작업해도 완성되는 작품 수가 많지 않아요. 가끔 스케치한 것들을 보다보면 이것 먼저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정말 작의 욕심이 발동하죠.(웃음)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작업을 해 나가면서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해요. 작품 하나하나마다 따뜻한 마음이 피어나고 생명이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고 싶거든요.”   “의도한 표정이 나오지 않을 때는 고통스러운 진통도 겪지만 작업하는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해요. 이 외에 콜라보레이션 또는 초대 기획전에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는 경우도 많아요. 요즈음도 11월에 전통 한복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행하는 전시가 있어 우리 풍속화를 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전체적인 구도와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의상 표현이 더 중요한 작업이죠. 가급적 고증된 의상을 한지로 구체적인 표현을 주기 위해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 해설집까지 판독하며, 작품 표현에 온힘을 다하고 있죠. 전시일자가 가까워지니 바쁜 마음과 긴장감이 마치 홍역을 치르고 있는듯해요.”   “제 작업은 크게 나누면 창작품과 우리의 문화를 주제로 한 작품, 유물재현 작품으로 나눌 수 있어요. 해외 초대전인 경우 인형 컨퍼런스나 인형작가 협력전시인 경우는 창작품으로 한지의 독창성을 강조하지만 그 외에는 우리 전통 문화를 보여주는 작품을 주로 선보입니다. 닥종이 인형 작품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를 보여주고 이해를 돕는 거지요. 해외 전시를 위해 현재 작업하고 있는 것은 ‘시집가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전통 혼례식 과정을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하는 작품입니다. 작년 해외 전시 때 선을 보였는데 흥미롭게 관심을 갖는 관람객들이 많았고 우리의 전통 혼례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이 많아 작품을 좀 더 구체적인 현장 모습으로 보강하고 있죠. 간단한 혼례식 장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기럭 아범과 오는 신랑 모습부터 시작하여 초례청, 초야의 모습, 시집으로 가는 장면까지 혼례의 전 과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거죠. 초례상의 상차림부터 전통에 기반해 완벽하게 재현하려고 하고 있어요.” - 닥종이 인형 전시를 개최하면 판매는 어느 정도 되나요? “주로 소수 마니아층이 구매 하거나, 외국인 관광객이 사는 경우가 있지만, 거의 판매되지 않죠. 아직도 닥종이 인형 공예를 ‘인형’으로만 보고, ‘작품’으로 보는 시선이 부족한 것 같아요. 닥종이 인형 공예에도 ‘공예’를 빼고 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 그럼 주요 수입원은 무엇인가요. “박물관이나 과학관에서 닥종이 작품 의뢰가 들어오곤 해요. 그건 사실 작품이라기보다는 재현을 하는 거죠. 작품이 판매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그런 의뢰가 들어오면 닥종이 공예 하는 사람에게 큰 수입원이 되는 거죠. 그런 작품은 혼자는 못 하고, 협회 사람들끼리 여러 명이 뭉쳐서 작업을 하죠. 아마 혼자하려면 몇 년을 걸릴걸요?(웃음)” ▲ 변도연 [사진=양문숙 기자] ■ 닥종이 인형을 배우고 싶으십니까? - 닥종이 인형을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나요? “인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긴 한데, 인내심을 갖고 하는 분들은 많지가 않아요. 중간에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초보자가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3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앞선 마음만큼 완성도가 빠르지 않다보니 흥미가 떨어지는 거죠. 인형의 예쁜 모습만 보고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과정의 어려움과 인내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 지금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 연령층은 다양한가요? “그럼요. 연령제한을 따로 두지 않으니까요. 나이 지긋하신 분부터 고등학생 까지 다양합니다.” - 닥종이 인형 공예를 배우기 가장 제격인 연령층이 있을까요? “어르신들은 이해력이 빨라서 좋고, 어린 친구들은 손이 빨라서 좋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에요. 하고자 하는 마음, ‘열정’이 가장 중요하죠. 열정이 있으면 마음처럼 작업이 되지 않아 어려움과 좌절이 부딪쳐도 그 순간들을 잘 극복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열정이 없으면, 금방 포기를 해버려요. 당연히 거기에 타고난 손재주가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손재주는 열정 다음에 문제에요. 손재주가 없으면 타인보다 조금 느릴 뿐이지 기본적인 과정만 지나면 차이가 없어요. 공예분야도 숙련이에요.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많이 작업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거죠.”   - 닥종이 공예를 하면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 말했던 ‘열정’과 ‘인내’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관찰력이 정말 중요해요.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작품에 담기 위해서는 많은 표정과 모습을 표현 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창작하고자 하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변 사물이나 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도 무심히 넘기지 않고 관찰하는 습관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다른 분야의 작품 관람도 좋은 공부가 되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색채 공부도 자연스럽게 되죠. 닥종이 인형을 작업하는데 색채 부분도 아주 중요하거든요.  교육과정 중 제자들이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이 인형의 옷감(한지)선택입니다. 물론 색에 대한 고민이죠. 이런 부분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들을 감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터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기적인 전시장 방문을 권유하고 있어요.”  - 닥종이 인형 공예, 앞으로의 전망을 예측해본다면. “전망은 두 가지로 볼 수가 있겠죠? 상업적이냐 아님 작가로서의 예술성이냐. 전문적인 작가는 말 그대로 본인이 좋아서 창작을 위주로 하는 분야이고, 상업적인 분야는 인형 제작 의뢰를 받아서 상품을 만들어 판매를 하는 분야죠. 상업적으로 본다면 그 중에서도 콘텐츠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전망은 매우 밝죠. 캐릭터 산업이 커나가고 있어서 닥종이 인형과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참 많거든요. 어린이 동화책에 그림 대신 닥종이 인형으로 대체하기도 하잖아요? 디지털 시대의 젊은 친구들이 아날로그적인 닥종이 인형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목을 시킨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문화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닥종이 인형도 권해드리고 싶어요.”  ▲ 변도연 [사진=양문숙 기자]■ 한옥마을서 전통공예 배우세요! 북촌 한옥에 살고 있는 변도연은 북촌한옥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공예인들의 모임 ‘북촌공예협의회’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다. 또한 그의 공방은 ‘지형공방 홍벽헌’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 고즈넉한 한옥에서 거주하셔서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공방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다 그렇게 말씀하셔요. 한옥에서 산다는 것이 좋은 점도 많지만 불편한 점도 많아요.(웃음) 이곳 한옥마을은 관광객들이 오지 않는 시간에는 정말 조용해요. 그러나 단체나 학생들이 오면 시끌벅적하죠. 겨울에 너무 추워요. 그래도 버텨야죠.(웃음)” - 북촌공예협의회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북촌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다양한 전통공예 장인들이 모인 단체에요. 약 30여 명이 함께 있어요. 옛날의 북촌은 궁궐의 경공방들이 운영되었던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전통 공예의 맥을 전승하며, 국내외 많은 방문객들에게 우리의 아름답고 훌륭한 전통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또한 다양한 전통 공예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 해 볼 수 있는 ‘북촌전통공예체험관’을 운영하며 학생 및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우리 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있어요.”   - 주로 어떤 사람들이 체험하러 오나요?  “가족 및 학생 단체, 외국인 관광객, 기업 바이어 등 다양한 분들이 방문 또는 예약으로 신청합니다. 꼭 체험을 목적으로 오는 분도 있지만 한옥을 관람하기 위해 찾는 관광객들도 많아요.”  - 체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까. “북촌 전통공예 체험관은 요일별 3종목으로 진행되며, 체험객이 짧은 시간에 완성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요. 닥종이 인형의 경우도 미리 한지로 만든 몸체를 준비하고 옷과 표정을 지기접 표현해 볼 수 있도록 하죠. 이렇게 체험을 한 번 해보면 기본적으로 닥종이 공예를 하는데 사용하는 기법 5~6가지는 경험을 하는 거죠. 인기가 좋아요.”   - 다수의 인원과 한꺼번에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힘드시겠어요. “정신없을 때가 많죠.(웃음) 어제 100명 단체 체험단을 받았어요. 견본품으로 인형 4개를 진열해놨는데, 체험 끝나고 보니 한복 입혀놓은 인형 2개가 없더라고요. 100명이 동시에 진행하니까 각자 만드는 것 돌보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누군가 가져간 거죠. 속상하네요. 그래도 끝나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 변도연 [사진=양문숙 기자]■ 닥종이 인형 공예가로 살아가기 - 닥종이 인형 공예만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매력이 굉장히 많아요. 가장 큰 매력은 내가 원하는 표정과 감정을 담아서 또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아서, 매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느끼는 희열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닥종이 인형을 하면서 가장 큰 만족감은 바로 그 희열감이죠.” “또 전시장에서 작품을 선보였을 때 제 작품을 본 관람객이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를 그대로 보고 느꼈을 때는 그 희열감이 배가 되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보고도 평가가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가끔 공감되는 평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땐 특히나 기쁘죠.” - 닥종이 공예를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나요? “사실 작품 때문에 힘든 것은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뽑자면 짧은 시간에 작품이 나오지 않으니 계획한 작품을 다 하지 못 한다는 게 개인적으로 괴로워요. 그리고 교육이나 체험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작품에만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없다는 것도 조금은 아쉽고요. 교육이나 체험을 할 때 딱 그 시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그러니 그 만큼 작품 시간이 줄어드는 거죠. 온 종일 작업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웃음) 제자를 양성하는 것에 의미가 있어 필요하지만, 아무래도 작업시간이 줄어드니 외부활동을 좀 줄였으면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있는 거죠.” “결론적으로 저는 지금까지 닥종이 공예를 해오면서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아직도 아쉬운 부분은 이것만 하고 싶다는 거죠.(웃음)” - 외부활동을 줄이고 싶다는 바람과는 달리 한국닥종이협회에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닥종이 인형 작가들간 상호 정보 교류와 창조적 연구 활동을 하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작가들과 5년 전 발족시켰습니다. 동안 6회의 회원전을 하였고, 닥종이인형 작가를 양성하는 교육과 양로원의 정기적인 프로그램 봉사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우리 분야를 많이 알리고 활동 하기위해서는 협회도 필요하고, 협업도 필요한 거죠.”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전시는 늘 꾸준하게 있고, 2014년이나 2015년에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 전승 작업으로 지불작업도 계속 할 거예요. 1, 2년 한다고 완성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공부하면서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고, 완성이 되면 그 분야를 이끌고 나갈 제자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 닥종이 인형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닥종이 인형 박물관과 세계 인형 작가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다양한 작업으로 만들어진 많은 작가들의 닥종이 인형 작품을 보여 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싶어요. 닥종이 공예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더 나아가 닥종이 인형에 국한하지 않고 국내의 많은 인형작가와 해외의 훌륭한 인형 작가들과의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고 있어요. 북촌 한옥마을에 마련된다면 정말 더 좋고요.(웃음)”     “미국이나 유럽은 인형 작품이 예술적 가치가 높은 나라들입니다. 다양한 소재로 활동하는 인형 작가들도 많고요. 특히 독일은 ‘인형’을 예술적으로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나라로서 인형 컨퍼런스도 매년 열려요. 저도 독일 인형 컨퍼런스에 출품해 수상을 했는데 닥종이인형에 대한 호평과 관심이 대단했어요. 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출품한 행사였는데 정말 훌륭하고 좋은 작품들이 많았어요. 그걸 계기로 갖게 된 앞으로의 계획 중 하나가 세계 인형작가들과 교류입니다. 그 첫발로 내년에 미국 컨퍼런스에 참가 합니다. 전 세계 인형 작가들과 함께 한국의 닥종이 인형도 처음으로 참여하는 의미 있는 행사이죠.” ▲ 변도연 [사진=양문숙 기자]
    • 사람들
    • 지난기획
    2013-10-30
  • [인사] 한전 해외부문 부사장에 박정근 前인사처장
    한국전력은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서 상임이사 선임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신임 해외부문 부사장에 박정근 前인사처장을 임명하였다. <신임 상임이사 프로필 > - 직위명: 부사장(해외부문) - 성명: 박정근(朴貞根) - 학력: 여의도고등학교 / 중앙대 경제학과 - 주요경력: 뉴욕지사장, 자재처장, 해외사업전략실장, 인사처장
    • 사람들
    • 인사·부음
    2013-10-29
  • [동정] 남주현 교수 AOFOG 차기 회장 선출
    남주현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최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 23차 아시아․오세아니아 산부인과 정기 학술대회에서 아시아․오세아니아 산부인과 연맹(AOFOG: Asia&Oceania Federation of Obstetrics&Gynecology)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남주현 차기 회장은 2015년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열리는 제 24차 학술대회에서 취임하며, 임기는 2년이다.남주현 차기 회장은 현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아시아․오세아니아 산부인과 연맹 부회장, 아시아․태평양 부인과 내시경학회 회장,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산부인과 연맹은 한국,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을 대표하는 27개국 산부인과 학회 모두가 참여하며, 산부인과 및 부인종양학, 생식내분비학 등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이다.
    • 사람들
    • 인사·부음
    2013-10-29
  • [무대 위 그 배우] ‘연애시대’ 심은진 “하루와 리히치로, 얄밉고도 사랑스런 커플”
    ▲ 심은진 [사진=양문숙 기자](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여러 사람에게 상처주고 다시 재결합한 ‘하루’와 ‘리히치로’, 얄밉고도 사랑스러운 것이 공존하는 커플이라 생각해요. 모든 연애가 다 그렇지 않나요?” ‘심은진’이란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떠오르는가? 물론 심은진이 속했던 그룹 ‘베이비복스’를 떠올리는 사람이 다수겠지만, ‘배우 심은진’이 어색하다는 사람도 소수라 생각된다. 심은진은 같은 멤버였던 윤은혜를 비롯해 유진, 성유리, 이진, 정려원 등 이제는 연기자로 전향한 1세대 아이돌 중 연기논란이 가장 없었던 배우다.  지난 2006년 KBS1 드라마 ‘대조영’에서 장군 ‘금란’역을 맡았을 때부터 거부감 없는 편안한 연기로 가장 무난하게 연기자의 길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드라마 ‘스타의 연인’, ‘태양을 삼켜라’, ‘거상 김만덕’, ‘그녀의 신화’ 등에 출연하며 계속해서 안방극장에서 인사를 해오고 있으며, 2010년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로 공연계에 발을 딛더니, 이번에는 ‘연애시대’로 연극 무대까지 진출했다.  ▲ 심은진 [사진=양문숙 기자]■ 싸우는 여자, 도망치는 남자…‘연애시대’ 심은진은 첫 연극 데뷔작품으로 ‘연애시대’를 선택했다. 본 극은 그녀의 첫 데뷔작이기도 하지만, 그녀와 절친한 김수로가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故 노자와 히사시 일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연애시대’는 사랑으로 만난 하루와 리이치로가 이혼 후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간직하며 헤어지고 시작된 이상한 연애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 중 심은진은 아이를 사산한 뒤 남편 리히치로와 계속해서 어긋나며 이혼 후 다시 그를 사랑하는 ‘하루’역을 맡았다. - 사산과 이혼을 겪는 ‘하루’역, 경험하지 못 한 감정들이라 어려웠을 것 같아요.  “또 ‘하루’역을 맡으면서 상상을 많이 했어요. 주변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많고, 조카도 있는데 그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안 좋은 일을 겪는다면 어떨까…. 굉장한 충격일 것 같아요. 아마 평생 지우지 못 하는 트라우마 하나를 가져가는 것이 아닐까. 결혼도 안 해봤고, 이혼도 안 해봤고, 사산도 안 해봤지만,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 ‘사랑’을 매개체로 한다고 생각해요. ‘하루’도 마찬가지로 사산, 이혼 등이 30대 여자의 ‘트라우마’라고 봤고, 때문에 심리적으로 이해가 많이 됐어요. 제 나이가 조금만 더 어렸다면 이해를 못 했을 수도 있는데, 나이가 좀 있다 보니 이해는 가더라고요.(웃음)”  - 캐릭터 분석을 위해 특별히 한 것이 있다면.  “우선 ‘연애시대’ 드라마, 소설을 전혀 보지 않아서 소설책을 보려했는데, 이미 절판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중고서적으로 구해서 소설책을 봤어요. 극에는 중간 중간에 빠져있는 부분들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를 했죠. 그리고 제가 사람들의 심리에 관심이 많아서 심리학책을 아주 좋아해요. 그래서 트라우마와 관련된 책이랑 영화를 많이 찾아 봤어요. 우선은 심리를 파악을 해야 접근을 할 수 있기 때문에요.”  - 드라마는 그 이후로도 안 보셨나요?  “네. 아직까지 못 봤어요. 주변에서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 원작 드라마나 영화가 있는 경우에 오히려 원작 캐릭터에 영향을 받을까봐 일부러 안 보는 배우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저도 그런 경우에요. 드라마를 보면 모든 부분에서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그 캐릭터에 좀 갇히고, 따라하게 될까봐 안 봤어요. 글로 보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거든요. 그게 굳이 중고서적까지 찾아본 이유이기도 하고요.”  - 소설과 연극, 무엇이 다른가요?  “아무래도 연극은 관객들 앞에서 하는 공연이니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보도록 유머코드가 더 많아요. 무거운 소재일수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죠. 사실 소설도 무거운 느낌은 아니지만. 마냥 가벼운 정도는 아니어도, 연극이 아무래도 관객들의 졸음방지 차원으로 유머코드가 많이 있습니다.(웃음)  “그리고 소설이랑은 워낙 장르가 다르니까, 아무래도 볼거리가 풍성하죠. ‘하루’의 친구인 ‘사유리’가 극 중 레슬링을 하는 장면은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주고, 또 묘미가 있다면, ‘나가토미’와 ‘기타지마’역할을 맡은 배우 중 최동현에요(웃음). 극 중 수영장 장면에서 같은 더블인 이원 배우는 전신 수영복을 입는데, 최동현 배우는 하의만 입거든요. 아주 아슬아슬한.(웃음) 여성분들의 설레임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저도 보면 콩닥콩닥해요.(웃음) 이렇게 쏠쏠한 비주얼을 보는 재미가 있답니다.”   ▲ 심은진 [사진=양문숙 기자] - 극 중 공감되는 대사들이 많아요. 어떤 대사가 가장 공감이 가던가요?  “공감되는 대사 굉장히 많아요. 정말 대사가 다 시(詩) 같아요.” “하루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리히치로’에게 화내며 처음으로 속마음을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결혼은 한 방의 공기를 둘이 나눠 마시는 거야. 숨이 좀 막히는 게 당연하지. 안 그래?’라는 대사가 있는데, 제 주변 지인들이나 여성 관객들이 가장 많이 공감하는 대사에요. 이 말에 많은 여성분들이 ‘아오 맞어!’라며 격하게 공감하시더라고요.(웃음)” “원래 제목이 ‘도망치는 남자, 싸우는 여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 제목 자체도 많이 공감 하고. 또 ‘내가 평생을 걸고 다 갚을게. 평생을 걸쳐 사과할게’라는 대사로 ‘리이치로’의 모든 잘못을 용서할 수 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 중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모든 게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워’라는 말이 참 좋아요.”  - 남자들은 항상 도망치던가요?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닌 남자도 있었고. 뭐 다들 무언가가 안 맞아서 헤어졌겠죠.(웃음)” - 하루와 심은진, 닮은 면이 있다면.  “사실 결혼, 이혼, 사산만 빼면 하루와 성격은 정말 비슷해요. 애인과 싸우더라도 그때그때 말로 푸는 스타일이에요. 쌓아두는 게 더 큰 싸움이 되는 것 같아서 그때그때 푸는데, 하루처럼 ‘따다다다’하지는 않아요. 연애할 때 남자친구에게 속에 담아두지 말고 바로 말해달라고 항상 얘기하거든요. 그래야지 관계가 오래 유지되는데, 항상 그게 잘 안돼요.(웃음)”   - 리히치로와 재결합을 원하지만, 선뜻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하루처럼 속마음을 꺼내지 못한 적도 많이 있나요?  “있긴 있었죠. 재결합을 말 할 순 있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평화가 깨진다면 저 같아도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루와 리히치로는 서로 상대에게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에 이야기를 못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사랑하는 마음만 있고, 그런 죄책감이 없었다면 이 두 사람은 분명 한 명이라도 재결합을 이야기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서로 곁에 있는 것이 상처라는 죄책감 때문에 쉽게 이야기를 못 하는 거겠죠. 사실상 바보 같은 생각일 수 있지만, 저 또한 사랑하지만 함께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는 다고 하면 놓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둘이 이해가 돼요.”  - 하루와 리히치로, 아름다운 사랑이라고만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니까요.  “맞아요.(웃음) 그래서 최대한 둘의 사랑이 정말 가슴 아파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하루’와 ‘리히치로’라는 인물이 사랑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지만 그나마 관객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둘이 맨 처음의 사랑이었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 곁에 있는 그 사람을 빼앗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실 ‘배신’은 우리나라 정서상 관대하게 볼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게 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또 둘이 있을 때 항상 사랑스워야 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마지막에 하루와 리히치로가 재결합해서 신노스케 납골당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충분히 다른 이들에게 미안함을 가진 것이 전달될 수 있도록 연습 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답은 ‘사랑스러움’이죠.”  - 하루와 리히치로, 얄미운 커플인가요? 아님 사랑스러운 커플인가요?  “사실 둘 다 맞죠. 어느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나가토미’와 ‘가츠미’, ‘기타지마 교수’, ‘다미꼬’ 입장(하루와 리히치로가 이혼 후 교제했던 이성들)에서 보면 얄미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한 대 때리고 싶었을 거예요. ‘저런 것들이 다 있냐’며. 그런데 하루와 리히치로 그리고 ‘사유리’, ‘가이에다’(하루와 리히치로의 친구) 입장에서 보면 또 이들의 사랑이 너무 아름답고 고귀할 정도에요. 그러니 이 둘은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그래서 얄밉고, 사랑스러운 것이 다 공존하는 커플이죠. 모든 연애가 다 그렇지 않나요?”  - 극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라기보다 제가 제일 몰입해서 하는 장면은 결혼식 장면과 기차 장면이에요. 그 장면이 제대로 안되면 정말 둘의 사랑을 용서받을 수 없거든요.(웃음) 그 두 장면이 두 사람의 절실한 사랑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라 생각해요. ‘정말 저 두 사람의 속이 얼마나 너덜너덜 할까’, ‘안쓰럽다’라는 공감을 얻어야 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가장 힘을 주는 장면이에요. 한 번 연기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요.(웃음)”    ▲ 심은진 [사진=양문숙 기자]  - 연극 첫 도전 소감은 어떠신가요.  “뮤지컬 두 편을 해봤고, 그 전에 가수로 생방송 무대에 선 경험이 많기 때문에 무대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단 대사량이 많다는 거에 부담감이 좀 있었죠. 왜냐면 뮤지컬의 경우에는 노래 반 대사 반인데, 연극은 노래 양이 다 대사가 됐으니. 이거는 정말 부담이 됐지만, 그 부담을 떨치기 위해서는 ‘연습’ 밖에는 답이 없어요. 제가 그 대사들을 다 처낼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웃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실에서 계속 상대배우랑 눈만 맞으면 대사를 맞춰봤어요. 예전에는 대사량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이제는 조금 편해졌어요.”  - 처음 연극 연습하실 때는 드라마 촬영도 하고 있을 때 였죠?  “네. 그래서 더 힘들었어요. 드라마 대사 외우려면 연극 대사가 안 외워지고, 연극 대사 외우려면 드라마 대사가 안 외워지고.(웃음) 사람 머리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또 연극은 대사를 외우고 가만히 가지고 있어야 되고, 드라마는 외우고 버리고, 외우고 버리고를 반복해야 하니 더 힘들었어요. 매체가 다르니 연기하기는 쉬웠는데, 대사가 안 외워져 곤혹을 치뤘어요. 연극 연습하다가 드라마 NG 많이 냈어요.”  - 연극 도전,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관객들은 모르시겠지만, 무대 뒤는 정말 전쟁터에요. 옷을 5초, 10초 만에 갈아입어야 하고.(웃음) 울면서 연기하는 결혼식 장면이 끝나면 거의 6~7초 만에 눈물 다 닦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무대로 나가야 돼요. 정신없이 막 하고 아무렇지 않게 무대 위로 올라가 분위기가 완전 다른 회상장면을 연기해야 해요. 그 때는 정말 가끔가다 멘붕이 와요.(웃음) 가끔 다 닦지도 못하고 나가기도 해요. 옷 입기가 바빠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 심은진 [사진=양문숙 기자]■ 베이비복스, 이제는 모두 연기자로 - 함께 그룹으로 활동했던 베이비복스 멤버들(심은진, 간미연, 김이지, 윤은혜, 이희진)이 전부 연기자로 전향을 했는데, 그룹 활동 당시 ‘전원 연기자 전향’을 생각한 적 있었나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지금 아이돌도 많이 그럴 것 같은데, 그 때는 모두 어렸고, 우리가 평생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끝은 없을 것 같다고.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그룹이 끝나면,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멤버들 중 마지막으로 연기에 입문한 (간)미연이는 제가 꼬셔서 하게 됐는데, 맨 처음에는 잘하는 짓인가 싶었어요.(웃음) ‘미연이가 하고 싶다고는 했는데, 얘가 과연? 상처받는 건 아닐까’하는 괜한 노파심에. 그런데 지금 뭐 재밌어 죽을라 그래요. 잘 한 것 같아요.(웃음)”  - 간미연 씨의 어떤 부분을 보고 연기를 권하게 됐나요? (현재 김수로 연출의 연극 ‘발칙한 로맨스’ 출연 중)  “미연이는 원래 뭐든지 시키면 잘 해요. 겁이 좀 많아서 그렇지. 멤버 중에서 프로의식은 가장 투철한 아이였어요. 미연이가 노래만 고집했던 이유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부분에 도전하는 것에 겁을 먹어서 그랬거든요. 대신 미연이에게 무언가 시켜서 실망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미연이가 ‘발칙한 로맨스’하기 전에 (김)수로 오빠랑 친해서 공연을 한 번 봤어요. 그 때 본 극 중 ‘마수지’라는 캐릭터가 그냥 딱 미연이 같았어요.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미연이를 잘 아는 스타일리스트 언니도 ‘완전 미연이 같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같이 그런 얘기를 막 했죠.”  “이번 ‘발칙한 로맨스’에 ‘마수지’ 역할이 공석으로 비어있었는데 수로오빠가 저에게 ‘연애시대’의 ‘하루’역과 ‘발칙한 로맨스’의 ‘마수지’역으로 캐스팅 제안을 했고, 그 중 저는 ‘하루’역을 하게 됐죠. 그렇게 그 역할을 계속 비어있었는데, 미연이가 어느 날 ‘연극 재밌을 것 같다’고 하길래 제가 ‘옳다커니’하고는 수로 오빠에게 제안을 해서 하게 된 거죠.”  “그런데 막상 수로 오빠는 좋다고 했는데 미연이가 망설이기도 했어요. 노래는 소극장이든 대공연장이든 얼마든지 할 수 있겠는데, 연기는 안 해봐서 겁이 난데요. 그 때 제가 한 번 해보라고 많이 격려해줬죠. 그렇게 일주일 고민하다가 하게 ‘마수지’역을 하게 됐죠.”  “요즘처럼 그렇게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제가 다 뿌듯하고, 엄마 미소가 지어져요.(웃음)”  -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대학로)에서 하니 더 좋으실 것 같아요.  “네. 그런데 의외로 자주 보지는 못 하더라고요. 너무 겹쳐서.(웃음)”  - 김수로 씨와는 어떻게 친분이 생기신 건가요?  “한 10여 년 전에 ‘보이아르 원정대’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면서 수로 오빠랑 친해졌죠. 그 때부터 ‘의리 동생’, ‘의리 형’ 이라며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 심은진 [사진=양문숙 기자]■ 카리스마 심은진? 애교쟁이! - 베이비복스 때는 ‘여전사’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새는 그런 이미지보다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느껴져요. 극 중 ‘리히치로’의 상상 속에서 잔소리 하는 장면이 특히 귀여우세요.  “아~ 모르셨구나. 제가 원래 귀여움의 아이콘이에요. 나름대로 연약하고, 귀여운 이미지랍니다.(웃음) 베이비복스 멤버들 다섯 명 모두가 애교가 많았어요. 엄청 쎄 보이잖아요. 그런데 (김)이지 언니 애교 정말 최고에요. 저희 4명이 이지 언니에게 애교를 다 배웠어요. 혀 반 토막 잘라 낸 소리 내고, 이상한 의성어들 말하고. 상상이 안 가시죠? 저희들 끼리 있으면 정말 주변 사람들이 귀여워 죽을라고 했어요.(웃음) 대중들 앞에서는 강한 이미지였지만, 사석에서는 귀여운 이미지라는 걸 주변 사람들은 알아요. 이번 ‘연애시대’ 팀 안에서도 애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웃음) 평소에 개다리 춤추고 그런 행동을 많이 해요. 오늘도 아침에 나오는 데 너무 기분 좋아서 날갯짓을 하니까 옆에 친구가 ‘언니, 왜 술도 안마셨는데 아침부터 날갯짓을 시작했지?’하더라고요. 술 마시면 신나서 그러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날갯짓을…(웃음)”  - 제작발표회 날 가장 기사화 많이 된 말이 ‘연습 끝나고 나면 술 땡긴다’였는데, 본 공연 올리고 나서도 술이 많이 땡기나요?  “그 기사 많이 쓸 줄 알았어요!(웃음) 공연 올리고 나서는 많이 못 마셔요. 공연이 끝나고 다음 날 스케줄이 비어있어야 마음 놓고 마실 수 있을 텐데, 공연 스케줄이 좀 애매하게 있어서 많이 못 마셔요. 목 관리도 해야 하고요.”  - 주당 이미지가 있으세요. 술 좋아하시죠?  “네. 술, 좋아해요. 즐기면서 마시는 스타일이에요. 기분 나쁜 때는 절대 술 안 마셔요. 제가 지금까지 그렇게 ‘주당 연예인’으로 소문이 많이 났지만, 음주에 관한 구설수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죠. 기분 좋아서 대학로를 뛰어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기분 나쁠 땐 때는 안 마셔요.”    ▲ 심은진 [사진=양문숙 기자]■ 앞으로의 ‘배우 심은진’을 말하다 - 스스로 ‘배우 심은진’은 어떤 이미지라고 생각하나요?  “예전보다는 조금 친근한 이미지가 됐다고 생각해요. 사실 예전에는 너무 쎄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라서 처음 만나는 분들이 저에게 말을 잘 못 거셨어요. 제가 웃으면서 말을 걸면 더 무서워하시고, 안 웃어도 무서워하시고 그랬죠. 주변에서 다가오는 분들이 없더라고요. 항상 제가 먼저 노력을 했어야 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좀 쎈 게 덜어지고, 친근한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요. 지금도 그 이미지가 아예 사라지진 않았는데,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없어졌죠. 그래도 아직까지는 쎈 역할이 주로 들어오긴 해요. 그게 그렇게 싫진 않아요.”  -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다면.  “저 한 번 되바라지게 망가지는 역할 배보고 싶어요! 무릎 튀어나온 추리닝 입은 백수나 폐인 같은 ‘헐랭이’ 캐릭터. 예쁜 거에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캐릭터 있잖아요. 제 속의 그런 부분이 많이 있거든요.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아! 또 있어요. 이건 제 이미지랑도 잘 맞을 것 같아요. 저는 수사극을 해보고 싶어요. 제가 수사극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CSI시리즈 다 봤어요.”  - 범죄자 역할도 괜찮으신가요?  “그럼요. 대신에 범죄자라면 정말 제대로 완전 범죄자였으면 좋겠어요. 사이코패스 같은 걸로. 경찰이든, 과학 수사반이든, 범임이든 어떤 역할이라도 수사극이라면 뭐든 재밌을 것 같아요.”  - 영화를 보더라도 스릴러나 액션 장르를 많이 보시겠네요?  “액션 정말 좋아해요! 많이 봐요. 통쾌한 액션. 제가 안젤리나 졸리랑 브래드 피트 팬이거든요. 그 둘이 결혼할 때 너무 행복했어요.(웃음) 안젤리나 졸리 처럼 총 쏘는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올해 말 까지는 ‘연애시대’ 연극 계속 하고요. 제목이 확정이 안 되어서 제가 정확하게 말씀을 못 드리는데, 내년 초에 뮤지컬 무대에 오를 것 같고, 그리고 드라마로도 인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연극 무대에서도 또 심은진 배우를 볼 수 있을까요?  “들어와야죠.(웃음) 좋은 연극 있으면, 다시 하고 싶어요. 재밌어요. 수로 오빠가 ‘김수로 프로젝트’로 좋은 공연 많이 하고 계시니까, 기회가 된다면 같이 또 하고 싶어요.” ▲ 심은진 [사진=양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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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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