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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리포트] 매출 10배로 키운 펄어비스 정경인 대표, 장기적 성장 위한 사회적 책임경영 주목
    [뉴스투데이=임은빈 기자] 게임업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펄어비스의 정경인(39) 대표는 게임업계 내에서 실적개선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온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이공계 엘리트 출신이면서 벤처캐피탈인 LB인베스트먼트에서 게임기업에 대한 다양한 투자를 진행했던 경력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 등에 대한 투자 심사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벤처캐피탈에 근무하면서 게임업계 전반에 대한 '내공'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펄어비스의 창업자인 김대일(40) 이사회 의장과 인연을 맺었고, 김 의장의 영입제안을 받아들여 2016년 6월에 펄어비스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정 대표는 운영, 투자 등과 같은 회사경영 전반을 담당하고 김 의장은 신작게임 개발에 전념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경인 대표는 2016년 6월 펄어비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2년 만에 영업이익 7배, 매출액 10배 이상 증가시키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픽=뉴스투데이]   ■ 창업자인 김대일 의장의 '사람 보는 눈' 입증, 2년 만에 영업이익 7배로 키워   정 대표는 취임 이후 김 의장의 사람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실적을 개선했다. 펄어비스의 야심작이라 불리는 '검은사막'이 출시됐던 2015년 매출액은 217억원에 불과했다. 펄어비스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2017년에는 524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4048억원,  2019년에는 5359억원으로 고속순항했다. 정 대표가 경영을 책임진지 2년여 만에 매출액이 10배 이상 증대된 것이다.   영업이익도 보조를 맞췄다. 2년 만에 7배 정도 늘었다. 2015년 117억원에서 2017년 217억원, 2019년 1506억원으로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상을 받기도 했다. 2017년 323명이던 임직원 수가 2018년 638명, 2019년 9월 기준 697명으로 증가하는 등 고용 인력을 늘린 공을 인정받아 ‘2019 일자리 창출 유공 정부 포상 시상식’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대구·경북 지역 소외계층과 의료진을 돕기 위해 5억원을 기부하며 주목받았다.   2019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펄어비스 직원 평균 연봉은 7281만원이다. 31명인 남성 관리직 사무원의 평균연봉은 1억 366만원에 달한다. 펄어비스는 여러 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될만한 일류 직장이라고 볼 수 있다.   ▲ [그래픽=뉴스투데이, 자료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저성과자에 대한 권고사직 인정...솔직하고 유연한 사고방식 드러내 / 장기적 성장 위한 조직문화 재검토 필요성 대두   ‘효율성 높은 일자리 창출 기업’ 이미지를 구축해오던 펄어비스가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은 지난달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오전에 출근한 직원이 오후에 짐을 싸서 퇴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면서부터다. 전현직 펄어비스 직원이라고 밝힌 블라인드 이용자 다수가 “원칙적으로는 권고사직 서류에 사인하지 않아도 되지만 게임업계가 좁아서 이직하기 어려워질까 봐 거부하기 쉽지 않다”면서 “일주일에 한 자리씩 팀 내에 빈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신작중단에 따른 권고사직 논란은 상당수 게임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게임업계가 전반적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 사회적 책임의 이행에서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경인 대표는 지난달 19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이달(3월) 들어 징계해고와 10여명의 권고사직이 이뤄졌고 특정 부서에서 자진 퇴사까지 겹치며 꽤 많은 인력이 한꺼번에 퇴사한 것으로 인식됐을 수 있다”고 논란이 된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펄어비스가 임직원에게 업무와 게임에 대한 열정, 성과에 대한 높은 기준을 요구해왔으며 성과가 부진하거나 일하는 방식이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인력은 가능하면 빠르게 조직을 떠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 대표는 “적절한 절차를 마련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사자가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절차를 충분히 개선하지 못한 것은 모두 경영진의 불찰이다. 앞으로 인사정책과 기업문화를 개선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대규모 권고사직으로 인해 신작 개발이 중단됐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정했다. 한번 시작한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시킨다는 사명을 갖고 있으며 지금 개발 중인 새 게임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 대표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한다는 태도로 풀이된다. 이는 정 대표가 유연하고 솔직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낳고 있다. 정 대표가 이 같은 내용을 공지한 이후 펄어비스 측은 저성과자와 업무방식 부적응자 관리 방안 마련, 권고사직 대상자가 받는 복지 혜택 중단 3개월 유예 등을 개선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불거진 노무문제의 핵심에 대한 대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게 시장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경제적 양극화가 글로벌 경제의 화두로 굳어지면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효율성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유지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 수행은 한국적 정치경제 구조 속에서 기업이 지속적 발전을 하기위해서는 숙명과도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따라서 게임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인 정 대표가 일자리와 관련해 어떤 사회적 책임경영을 펼쳐나갈지 주목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기업들은 신작 경쟁의 성패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 레드오션에서 생존하고 있다"면서 "저성과자 및 업무 부적응자를 가급적 조직에서 빠르게 떠날 수 있도록 했다는 정 대표의 설명은 게임업계 내에서는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일반 대기업의 관점에서는 '무리한 해고'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저성과자에 대한 빠른 퇴출을 요구하는 조직문화 자체를 진지하게 재검토하는 게 조직안정 및 장기적 성장의 관점에서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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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3
  • [역경을 이긴 연예인 (2)] ‘트바로티’ 김호중을 울렸던 5가지 고난, 때론 무릎 꿇었다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김호중 [사진제공=인스타그램]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최종순위 4위. 김호중은 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바로티’로 거듭났다. 트바로티란 트로트와 유명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이름을 합친 말로, 김호중이 원래 파바로티를 꿈꾸던 성악가 출신으로서 트로트 가수가 됐음을 의미하는 별명이다.   김호중은 한국의 아이돌 시대를 열었던 스타 작곡가 용감한 형제와 닮은꼴이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지만 어린 시절부터 길고 긴 방황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다. 용감한 형제는 17살에 구치소에 2년간 수감 당했을 정도로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수많은 유명 아이돌들의 히트곡을 써낸 작곡가이면서 춤 동작을 창조해낸 안무가이기도 하다.   김호중도 노래의 꿈을 이루기까지, 조폭 노릇까지 한 어두운 청소년기를 겪었다. 어린 김호중을 수렁으로 몰고간 절망적 상황은 대략 5가지이다. 그가 언제나 그 절망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때론 무릎을 꿇고 타락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겨냈다. 그게 중요하다. 항상 이기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에 이기는 게 중요할 뿐이다.    [표=뉴스투데이]   ■ 초등학교 3학년 때 찾아온 '부모님의 이혼', 첫 시련 앞에 힘없이 무너져   김호중의 첫째 고난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그는 1991년생, 울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할머니가 홀로 그를 키웠지만 외로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에 함께 놀거나 상실의 아픔을 나눌 형제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늘 혼자였고, 잠자는 일 밖에 할 게 없었다.   결국 그는 문제아가 됐다.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공부는 놓았고, 대신 바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주먹 싸움에도 많이 끼고 다녔다. 첫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 셈이다. 당장의 고난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고 자신을 너무 자학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김호중처럼 결과적으로 이겨내면 되는 것이다.    ■ '파바로티'를 꿈꾼 중학교 2학년 생, 고난극복의 동력은 '인내'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 찾기   두 번째 시련은 중학교 시절의 타락이었다. 김호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공사장을 다닐 정도로 외모가 성숙하고 체격이 건장했다. 경호원을 꿈꿨을 정도로 운동을 잘했던 그는 울산에서 부산까지 원정 싸움을 다니는 불량학생이 됐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전환점을 찾는다. 성악가의 꿈을 처음 품게 된다.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러갔다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네순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듣고 돌연 감동에 빠졌다. "파바로티같은 성악가가 되겠다"고 속으로 되뇌였다.    음악의 길을 걷는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훨씬 늦은 시작이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환경도 아니었다. 대신 성악을 하는 교회 지휘자를 찾아가 레슨을 받았다. 짧은 연습 기간이었지만 놀랍게도 경북예술고등학교에 단번에 합격했다.   ■ 예고생활이 만든 '상대적 박탈감', 자포자기하며 업소관리 '조폭' 생활에 빠져    셋째 시련은 가슴 가득히 설렘을 안고서 입학한 예고 생활에서 찾아왔다. 예고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너무 엄격했고, 생각보다 비싼 학비와 레슨비도 가정형편에 부담이 됐다. 집에 여유가 있는 다른 친구들은 오히려 레슨비를 추가로 내고 레슨을 더 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됐을까. 어차피 난 쟤들한테 질 거야”라는 식의 좌절감에 빠졌다.    '상대적 박탈감'은 원망과 포기를 낳았다. 자신이 예고 입학에 대한 꿈을 품고 노력했던 순간들을 망각했다.   결국 김호중은 중학교 시절처럼 다시 나쁜 길에 빠져들었고, 성악의 꿈도 뒷전이 됐다. 폭력조직에 들어가 낮에는 학생으로, 밤에는 업소 관리를 하며 어린 조폭 노릇을 했다.   ■ 퇴학위기 앞에서 할머니의 사랑과 운명적인 멘토의 도움으로 재기   네번째 시련은 퇴학 위기였다. 김호중은 불성실한 학교 생활로 아예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그나마 남은 희망도 산산조각이 날 위기였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 앞에서, 운명적인 멘토가 나타났다. 경북예고에 있던 후배에게 “소리가 기가 막힌 꼴통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온 서수용 선생님과 만난 것이다. 서 선생님은 김호중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목도 풀지 않고 거침 없이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엘 루 체반 스텔레(별은 빛나건만)’를 부르는 것을 듣고 재능을 알아봤다.   서 선생님은 “넌 노래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야”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은 할머니가 남긴 “하늘에서 지켜볼 테니 똑바로 살라”는 유언과 함께 방황하던 마음을 돌려놓았다. 김호중은 서 선생님이 있는 김천예고로 전학을 갔다.   ■ 폭력조직의 협박과 폭력, 굴하지 않고 음악과 함께하는 미래 선택   다섯번째 시련은 음악의 길을 택한 김호중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 폭력조직의 위협이었다. 폭력배들이 찾아와 7시간동안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김호중은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가혹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조폭과 인연을 끊었다.   서 선생님은 김호중이 조폭생활을 정리할 때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대신 6개월간 김호중을 차에 태워 함께 등교하면서 새로운 학교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음악 인생을 열어줬다.    이후 김호중은 2008년 제4회 세종음악콩쿠르에 출전해 1위로 입상했고, 전문 테너들도 어려워하는 네순도르마를 고등학교 3학년이 완벽하게 부르는 영상으로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고등학생 파바로티’라 불리며 SBS ‘스타킹’에 출연해 그의 사연과 재능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스타킹을 본 RUTC 아카데미 관계자들의 제안을 받아 5년간 독일에서 유학을 한 뒤, 마침내 성악가의 꿈을 이뤘다.   영화 파파로티 포스터   ■ 영화 '파파로티'의 개봉과 미스터 트롯 출전은 삶을 바꿔준 2가지 행운   김호중의 삶은 2가지 행운을 거머쥐면서 달라졌다. 우선 2013년 김호중의 학창시절을 소재로 한 영화 ‘파파로티’가 개봉했다. 그는 자신의 스토리에 대한 영화화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다. 자신의 이야기로 조폭의 삶이 미화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어두운 과거의 꼬리표가 영영 따라붙을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자신처럼 힘든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국 수락했다.   2020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깜짝 출전했다. 김호중은 유학시절부터 ‘대중성 있는 성악가’를 꿈꿨고, 성악, 재즈, 트로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미스터트롯’은 그 꿈을 펼치기에 딱 알맞은 무대였다.   [사진캡처=TV조선]   첫 곡으로 진성의 ‘태클을 걸지마’를 불러 압도적인 가창력을 드러낸 이후, ‘이대팔’ ‘무정부르스’ ‘희망가’ 등 무대를 멋지게 소화했다. 특히 본선 3차전 에이스 대결 ‘천상재회’는 마스터들이 나쁜 평가를 내렸지만 시청자들이 ‘어떻게 더 잘하냐’고 들고 일어나 판정논란이 일어 화제가 돼기도 했다.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 미스터트롯 결승전도 피해를 봤다. 결국 가족만 초청한 무관중 무대로 열렸는데, 김호중은 7명의 결승 진출자 중 유일하게 혼자 결승을 치르게 됐다. 이혼한 부모님은 각자 새 가정이 있고, 서수용 선생님은 확진자가 많은 대구에 있어서 서울에 오지 못했다.   김호중은 결승전에서 조항조의 ‘고맙소’를 선곡했다. 방황하던 시절 손을 잡아준 서 선생님을 위한 곡이었다. 비록 서 선생님은 자리에 없었지만 훌륭한 무대를 펼쳤다.   “막상 선생님이 오셨다면 긴장도 더 되고 떨렸을 겁니다. 경연하면서 연락을 자주 하고 응원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너무 고생 많았고 기분이 좋다. 너는 성악이라는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노래만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기억이 납니다”   김호중은 최종 순위 4위로 마감했지만, 미스터트롯을 통해 좋은 동료들과 자신을 믿어주는 팬들을 얻었다.   김호중[사진제공=인스타그램]   그는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고 가장 만족하는 점으로 “청중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리아’는 외국말로 불러 알아듣는 청중이 적지만, 트로트는 한 소절을 불러도 100%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또 팬들과 더 많이 소통하기 위해 팬카페에 일상적인 얘기들을 많이 올리고, SNS도 배우는 중이다.   새로운 분야를 향한 욕심은 여전하다. 요즘에는 ‘미스터트롯’을 통해 만난 윤대만 씨에게 민요와 소리를 배우고 있다. 윤대만 씨는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경기소리를 하는 가수로, 주현미의 ‘짝사랑’을 연습할 때도 도움을 받았다. 국악을 배우면서 몰랐던 발성을 익혀 새로운 무기가 생긴 기분이라고 한다.    김호중이 새로운 발성법으로 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이겨내지 못할 좌절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중의 솔직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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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1
  • [CEO 리포트] 한글과컴퓨터 부활시키는 '마이더스 손' 김상철 회장, 27개 계열사는 AI부터 코로나 마스크까지 진출
    [뉴스투데이=이원갑 기자] 자수성가형 M&A 투자가 김상철(67) 한컴그룹 회장이 ‘매출 1조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호전기 영업사원 출신으로 IMF 외환위기 시절부터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키운 다음 되파는 ‘차익 실현’이 주특기다. 그러나 한글과컴퓨터에 대한 전략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단기적인 재매각 기회를 노리는 대신 한컴그룹의 사업영역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 IT기업의 효시격인 한글과컴퓨터를 완벽하게 부활시키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 구상은 실적을 통해 실현되는 중이다. 김 회장은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도저'와 같은 공격적 경영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내 ‘맏형’ 위치인 한글과컴퓨터는 지난해 연결기준 3192억 555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사상 첫 3000억원 매출을 돌파했다. 김상철 당시 소프트포럼 회장이 한컴을 인수했던 2010년 연간 매출 472억 8201만원 대비 575% 성장한 수치다. 영업이익도 10년간 119억 7914만원에서 332억 723만원으로 177% 늘었다. 직원 수는 65% 늘어난 415명, 평균연봉은 184% 많아진 1억 2800만원이다.   지난해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오른쪽)이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과 '공공기관 서식 아래아한글' 공급 협약을 체결한 모습 [사진제공=한글과컴퓨터]   ■ 자수성가형 M&A 특화 사업가…한컴그룹에 ‘말뚝’ 박고 외연 확장 중   그렇다면 김 회장이 90년대 IT기업의 대명사였던 한컴을 되살린 경영전략은 무엇일까. 첫째,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공격적인 외연확장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각 분야 선도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한 것이다. 둘째, 사업영역을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신기술 쪽으로 이동시켰다.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과 접목해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다. 김 회장은 "10년 전의 한컴오피스와 지금의 한컴오피스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 인수합병은 샐러리맨 출신인 그의 경력 전반에 깔려 있는 단어다.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재학 중이던 그는 1978년 금호전기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학교는 1982년에 졸업했고 금호전기에서는 19년 동안 일했다. 금호전기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계량기 부문 자회사 금호미터텍을 매물로 내놓자 이를 상환 5년 기한 100억원에 인수하면서 M&A 사업가로서 김 회장의 경력이 시작됐다.   [표=뉴스투데이 이원갑]   ■ 이종간 M&A로 한컴 키워내, 문어발식 경영?...4차산업혁명의 경쟁력은 이종간 융복합    2004년에는 LCD장비 기업 두레테크를 인수했고 2005년에는 소프트포럼(현 한컴위드)을 인수해 회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캐피탈익스프레스의 김정실 회장과 결혼해 소프트포럼 아래 캐피탈익스프레스를 두는 구조를 만든다. 이후 소프트포럼과 그 자회사를 거점으로 인수합병과 경영 참여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 매각으로 이어지는 사업 과정을 이어 왔다.   이후 지난 2010년 한글과컴퓨터 인수 컨소시엄의 구성원이기도 했던 소프트포럼은 현재 ‘한컴시큐어’를 거쳐 ‘한컴위드’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과컴퓨터 지분 16.32%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소프트포럼은 계열사로부터의 투자 등을 통해 670억원을 조달해 IBK캐피탈 등 다른 투자사들과 소프트포럼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지분 28%를 매입하면서 한컴그룹의 초석을 얻었다.   인수 후에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사회관계망(SNS), 정보보안, 디지털포렌식 등 이종간 M&A를 연달아 실행했다. 지난 2017년에는 마스크를 비롯한 안전장비 업체 ‘산청’도 인수해 ‘한컴라이프케어’라는 이름으로 편입시켰다. 이로써 한글과컴퓨터는 김상철 회장의 인수 이후 지난해 기준 계열사 27개를 거느린 기업집단 한컴그룹으로 거듭났다.   이 같은 경영전략은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하지만 자유로운 융합과 이종간 교배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강점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표=뉴스투데이 이원갑]   ■ ‘1세대 IT 기업’ 한컴, IMF 이후 우여곡절...김 회장 인수 이후 평균 연봉 1억 2800만원으로 솟아    한컴그룹의 출발점인 한글과컴퓨터는 1990년 10월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서 시작한 소프트웨어 개발사다. 이찬진 초대 사장, 김택진 현 엔씨소프트 대표 등의 창립자들이 모여 한글 워드프로세서 제품군을 만들었다. 초기 대표작 ‘아래아 한글 3.0b(1995년 7월)’, ‘한/글 97(1997년 7월)’ 등이 자리잡고 1996년에는 코스닥에 원년 멤버로 상장했다. 창립자들은 1998년 무렵 한글과컴퓨터를 떠났다.   한글과컴퓨터는 2000년 닷컴 버블을 타고 시작한 포털 사업이 좌초하며 경영난이 시작됐다. 회사는 10년간 대주주 교체가 반복된 끝에 2009년 당시 TG삼보가 주축이 된 셀런 컨소시엄으로 넘겨졌다. 이후 지난 2010년 김 회장이 한글과컴퓨터를 인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기업집단으로 성장하면서 워드프로세서 외의 사업에도 발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달 24일 중국 드론제조사 DJI와 계약을 맺어 ‘드론 아카데미’를 국내에 도입하기로 했고 안전장비 계열사 한컴라이프케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마스크 증산에 들어갔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계열사 한컴MDS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교육 사업자로 선정돼 자율주행 인재 양성에 나설 예정이다.   김 회장 인수이후에 매출과 영업이익만 급증한 게 아니다. 직원 수와 평균 연봉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한컴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10년만에 직원수는 251명에서 두 배 가까운 415명으로 늘었다. 평균연봉도 4500만원에서 1억 2800만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견기업에서 최상위권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수준으로 비상한 것이다.     ■ 한글과컴퓨터 소유구조 눈길, 김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한컴위드가 대주주    한컴그룹의 소유구조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한글과컴퓨터의 지분 구조는 지난해 말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주주 한컴위드(전 소프트포럼)는 지분율을 21.62%로 늘렸고 3대주주였던 김상철 회장의 부인 김정실 씨는 5.94%로 지분이 줄었다. 김상철 회장 개인 지분은 1.49%에 머물렀다. 대신 투자운용사 헤르메스홀딩스 유한회사가 7.61%까지 지분율을 올려 새로운 3대주주가 됐다.   한컴위드는 사실상 김 회장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법인으로 지난 3월 말 기준 김상철 회장이 15.77%, 김 회장의 딸 김연수 씨가 9.07%, 김정실 씨가 4.45%의 지분을 보유하는 등 김 회장 측 특수관계인 지분이 31.46%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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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8
  • [인물탐구]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② 도전 :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복합소재 국산화의 선구자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조용준 회장은 복합소재 분야의 세계 최초 기록을 다시 쓰면서 필요한 생산설비도 모두 국산화했다. 제품과 수단을 국내 최초로 동시에 직접 개발하여 생산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이처럼 전방위적인 혁신을 이뤄낸 기업가는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화이바는 1986년 밀양 공장을 건설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유리섬유 용융로를 개발하여 설치했다. 이른바 가스와 전기의 장점을 살려서 함께 에너지로 사용하는 복합연료 시스템 기반의 용융로가 그것이다.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가 2002년 9월 27일 복합소재 개발과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제공=한국카본]   복합연료 시스템은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도 이론상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적용하기는 불가능한 기술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선진국에서 이 시스템을 개발하다가 어마어마한 재해를 입고 포기한 사례도 있어 그만큼 위험이 큰 기술이었다. 하지만 조용준 회장은 가격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감하게 불가능에 도전했다.   ■ 불가능에 도전해 성공한 복합연료 시스템…백금 가공한 노즐도 개발   그는 복합연료 시스템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용융로가 터져 용액이 흘러서 공장 안이 아수라장이 되는가 하면, 엄청난 불량품이 발생해 전량 폐기처분하는 손실도 입었다. 하지만 갖가지 실패를 겪은 후 성공한 복합연료 시스템은 유리섬유 원가를 낮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조 회장은 이어 백금으로 가공하는 노즐 개발에 도전했다. 용융로에서 유리가 녹아 실의 형태로 나오게 만드는 미세한 구멍이 백금 노즐로 되어 있는데, 유리섬유의 품질은 노즐 가공 실력이 1차적으로 좌우한다. 제품 종류에 따라 노즐 규격이 달라져야 하므로 선진국들도 노즐은 별도의 전문업체가 제작하여 유리섬유 생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노즐 제작을 외국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고, 국내에 노즐 전문업체도 없어 자신이 직접 개발에 나섰다. 비싼 백금을 가공하는 노즐 개발을 위해 돈도 많이 들었지만 끝까지 밀어붙여 지금은 노즐 제작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노즐을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으니 비싼 돈을 지불하며 장시간 기다릴 필요도 없고 품종이 다양해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용융로에서 노즐을 통해 유리섬유 실이 뽑아져 나오면 바인더(풀) 공정이 이어진다. 딱딱한 유리섬유 실이 매끄러우면서 끊어지지 않게 풀을 입히는 작업인데, 유리섬유 업체마다 바인더(풀)의 화학적 배합비가 다르고 이에 따라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화이바는 세계 유명업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새로운 특성의 바인더(풀)도 개발했다.    이밖에 유리섬유 실을 감는 기계와 원단을 짜는 직조 기계도 국내 제품을 사다가 회사 실정에 맞게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유리섬유 원단을 복합소재로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원단에 수지를 바르는 코팅’ 공정을 위해 독자적으로 코팅 기계를 개발해 왔다. 코팅 기계의 성능이 복합소재의 품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 복합소재 품질 좌우하는 코팅 기계 개발…최초로 일괄 생산 시스템 완비   당시 조 회장은 일본에서 코팅 기계를 구입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격을 알아보니 30억원을 달라고 요구해 결국 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곧 개발에 착수한 그는 3억원 정도의 비용으로 코팅 기계를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 기계보다 성능이 뒤떨어졌으나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 것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화이바의 생산시설을 돌아본 영국 쉐필드 대학의 마크 로빈슨 박사는 “세계 각국의 복합소재 공장들을 방문했지만 한국화이바처럼 일괄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춘 곳은 처음 보았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단순하게 제작된 기계들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저런 기계에서 제대로 제품이 나올까 의심이 들었는데, 품질 좋은 제품이 나오는 현장을 보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유리섬유는 일반적으로 국제적인 규격 속에서 생산되지만, 한국화이바는 그런 규격을 무시하고 제품의 특성에 따라 규격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개발했다. 조 회장은 “외장이 화려한 외국 기계는 특별한 기능이 없어도 장치가 많아 가격이 비싸다”며 “우리는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핵심 기능 위주로 설계돼 제작비가 적게 들고 설비·보수·개선도 용이하다”고 말했다.   한국화이바는 유리섬유에 이어 국내 최초로 카본섬유 보강시트도 국산화했는데, 이 보강시트를 개발하면서 건축용 자재 제작에 필요한 접착제까지 개발했다. 카본섬유는 비중이 철의 25%이면서도 인장 강도는 10배 이상이어서 교각 기둥과 터널 등의 건설 구조물 보강에 사용되는 신소재이다. 외부 환경에 대한 내구성이 강하고 부식이나 열화로 인한 노화를 방지해 보강 소재로 각광 받고 있다.   ■ 국내 유일의 카본섬유 보강시트 개발…건축물 보강 소재 국내 시장 40% 점유   한국화이바가 카본섬유 보강시트를 개발한 동기는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외국 바이어가 작은 보강 소재 샘플을 가져왔는데, 담당부서에서 팽개쳐두고 있었다. 그런데 두어 달 뒤 그 바이어가 조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거 한 번 해 보시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그게 뭐냐”고 묻자 각종 건축물 소재로 다양하게 사용한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조 회장은 바이어가 가져온 샘플을 자세히 살펴본 후 카본섬유 보강시트를 여려 겹으로 붙이는 접착제가 관건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가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가장 우수한 접착제는 전량 영국에서 수입해 왔다. 그는 카본섬유 보강시트 개발을 계기로 고급 접착제도 함께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1년여의 연구 끝에 조 회장은 카본섬유 보강시트 생산설비를 개발함과 동시에 고급 접착제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때 생산된 보강시트는 선진국 제품들의 단점을 보완한 ‘무수지 일(한쪽)방향’ 시트이다. 기존 제품들은 시트에 수지를 바르기 때문에 시공이 불편하고 재료 손실도 유발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한 시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기 때문에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화이바의 계열사가 생산한 카본섬유 보강시트는 특히 일본제품과 차별화하여 특허를 출원했고, 건설교통부로부터 신기술로 인정받았다. 이 제품은 250여 개소의 구조물에 보강 소재로 활용돼 뛰어난 보강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건축용 보강 소재에 그치지 않고 고급 접착제 기술과 어우러져 건축용 외장 및 내장 자재로까지 발전했다.    2000년 당시 카본섬유 보강시트 소재의 국내 시장은 한국화이바 계열사인 한국카본이 40%, 일본 업체가 30%, 기타 업체가 30%를 점유했다. 그동안 일본 제품이 상당수 점유하던 국내 시장이 한국카본 제품으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복합소재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 회장은 2002년 9월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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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6
  • [CEO리포트] 카이스트 출신 알고리즘 전문가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수수료 인상 등 3가지 난제 풀어야
    [뉴스투데이=오세은 기자] 국내 배달앱 시장점유율 1위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새로운 사령탑인 김범준(45) 최고경영자(CEO)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 대표는 26살에 카이스트(KAIST) 박사 과정을 수료한 과학영재일뿐만 아니라 38살에 대기업인 SK플래닛의 상무로 기용돼 사회적 성취 이력도 화려하다. 김봉진 전 대표가 2015년에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스카우트했고, 5년만에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르게 됐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20일 주주총회를 열고 신임 CEO로 김범준 CTO 겸 부사장을 선임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첩첩산중이다. 사실상 국내 배달앱 시장을 지배하게 됨에 따라 불거진 '독점논란 해소', '수수료 인상 문제', '적자 해소' 등 3가지 과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이와 관련해 우아한형제들과 독일 배달서비스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와의 기업결합 심사에 본격적으로 나선 공정위가 이번 인수합병(M&A)이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인지 여부 등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김 대표가 어떤 카드를 꺼내 대응할지가 주목된다. 더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치명적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취약계층인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사실상의 수수료 인상'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지난해 12월 17일 우아한형제들 본사에서 창업자인 김봉진 전 대표와 김범준 신임 대표(오른쪽)이 직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사진제공=우아한형제들]   ■ 전형적인 이공계 영재 출신, 정치사회적 현안과 직결된 '독점 논란', '수수료 인상'등 해결 해야   김 신임 대표는 전형적인 '과학영재' 출신이다. 1993년에 서울과학영재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 카이스트에 입학해 7년만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카이스트 학부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알고리즘으로 동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한 알고리즘 전문가이다.   김 대표는 2002년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티맥스소프트의 팀장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엔씨소프트를 거쳐서 2013년에 SK플래닛 상무로 발탁돼 대기업 현장에서 온라인 유통 현장에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 실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우아한형제들에 CTO로 입사했다. 그리고 입사 5년 만에 회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처럼 김 대표의 학력과 경력은 화려하다. 하지만 이제부터 풀어가야 할 과제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동안 해온 업무가 주로 시장을 주도하는 기술개발의 영역이었던데 비해, 향후 과제는 미묘한 정치사회적 현안과 직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독점 논란'과 '수수료 인상'은 이공계 영재가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CEO로서 이들 현안의 해결방향을 총괄해야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표=뉴스투데이]     ■ 배민 매각 시 딜리버리히어로가 국내 배달앱 사실상 독점   지난해 12월 13일 우아한형제들은 DH에 회사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매각 총액은 4조7500억원이다. DH는 국내 배달앱 2위인 요기요와 3위 배달통 등의 운영사다. 배민 인수 시 사실상 국내 배달앱 시장 1~3위를 점유하게 된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의 2018년 보고서를 보면 배민이 시장점유율 55.7%로 1위다. 공정위가 금번 인수합병을 세밀하게 살피는 것도 이 때문이다.   DH가 배민을 인수하면 한 개 기업이 국내 배달앱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시스템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 그럴 경우 가맹점주와 소비자들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공정위는 지난 5일 ‘2020년 업무계획’을 통해 배달 플랫폼 등 신산업 분야의 M&A에 대해서 동태적 효율성과 소비자 피해 방지 측면을 균형 있게 심사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현재 진행 중인 우아한형제들과 DH와의 인수합병이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아닌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힘센 한 개의 기업이 시장 독점을 심화할수록 경쟁이 제한되면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 사실상의 수수료 인상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걱정 해소 필요   김범준 대표는 인수합병 발표 사흘 뒤인 지난해 12월 17일 “인수합병 이후에도 수수료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CTO였던 김 대표는 본사에서 진행된 전직원과의 ‘우수타’(우수한 수다 타임)에서 김봉진 전 대표와 함께 자리해 “딜리버리히어로와의 M&A로 인한 중개 수수료를 올리는 경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수료 인상을 언제까지 동결하겠다는 ‘기한’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3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시 김 대표가 말한 그대로”라면서 “수수료 인상은 인수합병 이후에도 계속해서 없을 것이라는 해석에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수수료 동결을 발표한 당시 김 대표는 수수료 동결과 더불어 다음 달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과금 체계를 이미 발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언급한 과금 체계는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 ‘오픈서비스’(중개 수수료 5.8%)다. 오픈서비스의 과금 체계 방식은 예컨대 1만원 음식 주문이 성사되면 가게 사장은 배민에 580원의 수수료를 내는 ‘성과형 과금’ 체계다. 오픈서비스는 ‘오픈리스트’의 중개 수수료 6.8%에서 1%포인트 낮춘 5.8% 수수료율이다. 31일 서비스가 만료되는 오픈리스트는 가맹점주의 상호 노출이 상단 3개로 제한된 서비스였다. 개편되는 오픈서비스는 최상단 3개 광고자리가 사라지고, 누구나 이 자리에 노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월 8만8000원을 지급하고 노출되는 기존 울트라콜 서비스는 3개 이상으로 길어진, 제한없는 오픈서비스 목록 하단으로 밀리게 된다. 매출과 직결되는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오픈서비스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셈이다.   일부 가맹점주들은 오픈서비스 전환 시 수수료율이 급격하게 오른다고 주장한다. 정액제 울트라콜과 달리 정률제인 오픈서비스는 가맹점주가 음식을 팔수록 수수료가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울트라콜로 깃발 3개(26만4000원)로 월 2000만원 수익을 얻은 가게는 개편 이후, 주문 완료된 건수마다 5.8%(VAT 별도)를 내게 돼 100만원이 넘는 수수료를 지불하게 된다. 이달 초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오픈서비스’ 도입에 반대하는 글도 게시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김 대표가 공정위와 가맹점주들의 우려를 어떠한 자구책으로 해결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표=뉴스투데이] ■ 지난해 364억원 영업적자, 전년 대비 영업이익 889억원 손실…김 대표의 묘책은? 인수합병 마무리 후 김 대표는 4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영업이익도 원래 제자리로 돌려놓는 경영에 몰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매출액 5654억원 영업이익 364억원 적자를 냈다. 2018년 영업이익 525억과 비교해 88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국내 음식 배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광고와 마케팅 비용 증가, 라이더 프로모션 비용 등의 지출이 늘면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줄었다”고 설명했다.   실적 발표 당시 김 대표는 “2019년은 국내 음식배달 시장의 성장에 기여하고, 그 과정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기술 경쟁력과 경영 노하우를 축적한 한 해였다. 2020년은 건전한 성장 구조가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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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1
  • [인물탐구]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① 경력 : 실패를 먹고 사는 위기의 승부사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한국화이바(Hankuk Fiber)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재료연구소를 기반으로 복합소재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영역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유리섬유와 카본섬유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신소재 전문 기업이다.   한국화이바는 1972년 설립됐으며, 1978년에 방위산업체로 지정됐다. 본사는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으며, 차량사업부의 공장은 함양군에 있다. 사업 분야는 유리섬유, 버스, 철도차량 부품, 파이프, 케이블카, 우주항공, 방위사업 등이다.   지난 1997년 9월 29일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가 조선대학교 개교 51주년 기념식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카본]  이 회사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는 1930년생이다. 지난해 자신이 걸어온 90년 인생을 되돌아보며 수많은 성과와 함께 뼈아픈 실수까지 가감 없이 담아낸 ‘독창력만이 살 길이다’란 제목의 자서전도 발간했다.   조 회장은 일제시대인 1944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이다. 호기심 많던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동네병원에서 사환으로 일하면서 원장실에 있는 일본어로 된 의학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의사 자격시험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세상은 바뀌어 독학으로 의사가 되기는 어려워 우여곡절을 겪다가 고향인 담양을 떠나 부산의 한 병원에서 원장의 조수로 일하게 됐다. 어느 날 그는 낚시를 좋아하는 병원장이 당시 쌀 한 가마 값으로 일본에서 밀수입된 낚시대를 구입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낚시대 소재인 ‘유리섬유’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외국어 서적을 파는 책방을 뒤지면서 일본어 공업서적을 독학했고, 급기야 병원장을 설득해 병원 옥상에 작업장을 마련하고 자금을 지원 받은 후 일본에서 유리섬유 원단을 들여와 각고의 노력 끝에 국내 최초로 수제 유리섬유 낚시대를 개발했다.   이후 제품의 질이 향상되면서 낚시대는 생산하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그는 대량 생산체제를 갖춘 낚시대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새로운 투자자를 찾았고, 1966년 ‘은성사’란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국내 낚시대 시장은 은성사가 장악했지만, 일본에서 유리섬유 원단을 적기에 공급받지 못해 생산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 국내 최초로 유리섬유 낚시대 개발, 공급 차질 빚자 ‘역발상’ 도전   조 회장은 결국 1972년 한국화이바공업사를 설립하고, 원사만 일본에서 수입해 유리섬유 원단을 직접 만드는 작업 공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신식방직기를 살 돈이 없어 농촌에서 쓰던 베틀 두 대를 구입해 직조에 들어갔는데, 원시적 방법이긴 했으나 유리섬유 천이 짜져서 국내 최초로 원단을 생산했다.   이 당시 원단의 품질은 일본 수입품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상품화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낚시대를 만들 때 수지를 연탄불에 끓이면서 오랜 기간 실험을 통해 얻은 수지의 응용기술을 잘 접목시켜 원단의 품질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그는 일본에서 수입하던 유리섬유 원사를 직접 생산하겠다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원사를 만드는 재료들을 배합하여 녹인 후 미세한 구멍의 백금 노즐을 통해 원사를 뽑아내는 ‘용융로(熔融爐)’가 있어야 했다.   1977년 그가 용융로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회사 간부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벌이기보다 일본에서 용융로 설비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그는 “만약 우리가 일본에서 시설과 기술을 도입하면 영원히 그들에게 끌려갈 것”이라며 개발을 밀어붙였다.   이후 몇 번 일본에 드나들며 어렵게 유리섬유 생산 공장을 견학할 수 있었지만 시설을 보면서 메모도 할 수 없어 머릿속에 기억해두는 정도에 그쳤다. 그들이 겉모습만 보여줬지만 그래도 큰 도움이 되었고, 용융로 제작에 필요한 정보와 관련 서적들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 기술 독립 위해 목숨 걸고 용융로 개발, 비웃던 일본인 기술자도 놀라  조 회장은 자신이 직접 공부하고 엔지니어들과 토의하면서 제작비가 적게 드는 간접 가열식 용융로 개발에 착수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특한 방식이었지만 일본식 용융로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 당시 회사 형편에서 제작 가능한 용융로였기에 연구에 몰두했고, 2년여 만에 개발을 완료했다.   그동안 연구에 몰두하다가 건강이 악화돼 입원한 병실에서 기술 서적을 보다가 아내가 책을 빼앗으며 목숨이 중하지 용융로가 뭐냐며 울부짖던 일도 생각났고, 공장 안에서 용융로만 생각하다가 쇠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한동안 고생했던 일 등 어려웠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 기술로 만든 용융로에 불을 붙이는 순간, 그는 고통스러웠던 지난날들을 모두 잊고 직원들과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기쁨의 시간은 잠시였다. 가동된 지 한 달도 못돼 용융로가 파열됐다. 경제적 손실은 물론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그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의 조롱이었다.   용융로를 처음 설계할 때 일본인 기술자에게 자문을 의뢰했는데, 현재 설계 방식대로 만들면 생산성은커녕 실험용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자기 방식대로 밀어붙였고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일본인 기술자는 자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탓이라며 비아냥거렸고, 개발팀 중에서 반대하던 직원들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조 회장은 결코 좌절해선 안 된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직원들 앞에 섰다. 그는 “비록 개발에 실패했지만 그만큼 기술을 축적했다”면서 다시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어 개발팀을 독려하면서 곧바로 두 번째 용융로 개발에 착수했다. 처음 개발한 용융로가 폭발한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여러 가지 기술을 보완하여 1년 만에 새 용융로를 완성했다.   첫 번째 용융로보다 용량이 크고 원사를 뽑는 방사구가 5대인 것이었다. 행여 또 다시 파열될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석 달이 지나도 이상 없이 원사를 뽑아냈다. 드디어 원사에서 원단까지 완전 국산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설계 방식을 비웃던 일본인 기술자도 공장을 돌아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두 번 실패 후 성공해 세계 시장 석권, ‘나프타’ 승부수로 연료비도 낮춰   그러나 가동된 지 6개월 만에 두 번째 용융로도 파열됐다. 그럼에도 조 회장은 놀라지 않았으며, 이미 축적된 기술이 있으니 계속 도전해야겠다는 의지만 불태웠다. 하지만 개발팀 기술자가 이런 방법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자 회사 내부에 용융로 개발 반대파가 결성됐다. 그는 이들을 설득하다가 결국 일부 간부들을 퇴출시키는 용단을 내렸다.   그리고 더욱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이전보다 생산용량을 늘린 세 번째 용융로 제작에 들어갔다. 불과 6개월 만에 새로운 용융로가 완성됐고, 좋은 품질의 원사를 뽑을 수 있었다. 아직은 일본에서 수입한 원사보다 품질이 다소 뒤떨어졌지만 낚시대 소재로는 충분하여 일본 제품보다 훨씬 싼 값으로 낚시대를 공급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의 낚시대 소재는 1㎡당 10,000원을 호가했으나 한국화이바는 이를 국산화해 1㎡당 3,000원에 공급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국산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고, 1977년 한국이 100억불 수출을 달성할 때 낚시대류만 4억불을 차지해 세계 시장의 70%를 석권하는 등 한국 수출의 원동력이 됐다.   조 회장은 생산원가를 줄이기 위해 연료 개발 과정에서도 엄청난 모험을 했다. 당시 용융로에 사용되는 원료는 LPG 가스였는데 값이 비싸게 들었다. 그는 LPG의 반값인 ‘나프타’로 대체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나프타에 열을 가해 기체화하면 LPG처럼 사용할 수 있으리란 엉뚱한 발상을 해 본 것이다.   하지만 화학 엔지니어들은 펄쩍 뛰었다. 나프타에 열을 가하면 휘발유에다 불을 댕기는 것과 같은데 그처럼 위험한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적당한 온도의 열을 일정하게 가하면 기체화할 수 있으리란 믿음을 버릴 수 없어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험에 들어갔다. 그런데 실험 과정에서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 두려움 접고 1% 가능성 도전…조선대, 명예공학박사 학위 수여   폭발음이 워낙 커서 공장 주위에 사는 주민들이 놀라고 공장 유리창도 모두 깨졌지만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중단하지 않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 열의 전달이 일정하지 않아 폭발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이번에는 옥상에 설비를 하여 다시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이었고, 이후 연료비를 절반으로 줄여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    조 회장은 기술 개발에 착수할 때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시작하지 않는다. 그는 일단 가능할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을 갖고 검토에 들어가 가능성의 끄트머리만 발견하면 도전하고 본다. 실패할 확률이 더 많지만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작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7년 9월 조 회장은 조선대학교에서 개교 이래 두 번째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조선대학교가 학위를 주겠다고 제의하자 조 회장은 연구 업적도 없다며 망설였다. 하지만 당시 김기삼 총장은 “조 회장님의 복합 소재에 관한 연구 업적은 단순한 박사학위 논문에 비할 수 없으며, 소재 분야에 끼친 업적을 높이 평가해 드린다”고 말했다.   학위 수여식을 마치고 오랜만에 고향에 들른 조 회장은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오늘 당신 아들이 배우지 못한 설움을 이기고 왔노라”고 고했다. 그는 “아들을 중학교에 진학시키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다가 한을 품고 돌아가신 어머님이 박사모를 쓴 내 모습을 보고 당장에라도 뛰어나와 껴안으실 것 같았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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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30
  • [뉴스 속 직업 : 군법무관] 최강욱·전원책 등 방송에서 활약한 유명 법조인 산실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최근 열린민주당 공천에서 2번을 받아 조만간 국회의원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제11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을 통해 10년 간 군에서 복무한 후 변호사 자격을 얻어 2005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한때 KBS에서 ‘최강욱의 최강시사’란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유명세를 탔다.   진보적 입장인 최 변호사와 달리 보수의 입장을 대변해온 전원책 변호사도 제4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을 통해 군에서 복무한 후 1991년 중령으로 전역했다. 그는 JTBC ‘썰전’과 TV조선 ‘강적들’은 물론 다양한 토론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했고, 한때 TV조선 9시 뉴스의 메인 앵커로 활약하는 등 활발한 방송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군법무관 임용시험 출신인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왼쪽)과 전원책 변호사(오른쪽).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들이 모두 변호사가 되기 위해 거친 코스가 군법무관이다. 과거에는 사법시험 외에 군법무관 임용시험이 따로 있었다. 군대 조직이 워낙 크고 법조 인력이 필요한데 사시 출신들은 직업군인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아 별도로 만든 채용 방식이다.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다음 10년 간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었다.   지금 활동하는 변호사 중에도 군법무관 임용시험 출신들이 상당수 있다. 그런데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300명, 500명, 1,000명으로 점차 늘면서 군법무관 임용시험은 2005년 합격한 제19회를 마지막으로 2007년에 폐지됐고, 사법연수원 수료생 또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만 군법무관에 지원할 수 있게 바뀌었다.   ■ 중위로 임관해 3년 간 병역 의무 이행하는 단기 군법무관 인기 높아   2020년 현재 군법무관 선발의 경우 사법시험의 폐지로 인해 신규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자(합격 예정자)만을 선발하게 되므로, 로스쿨과 기성 변호사 외에는 군법무관으로 진입할 통로가 없게 됐다. 군법무관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단기 군법무관과 직업군인의 길을 가는 장기 군법무관으로 구분된다.   단기 군법무관은 사법연수원 수료생 또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들이 3년간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으로, 중위로 임관해 대위로 전역한다. 단기 군법무관은 인기가 좋아서 사법연수원 수료자는 수료성적 상위 20~30% 안에 들어야 임용이 가능했다. 이에 탈락한 사람은 공익법무관으로 임용돼 각지의 검찰청, 법률구조공단 등에서 3년간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은 2014년에 입대한 3기부터 지원제를 도입하여 지원자가 정원보다 많으면 성적순으로 선발했고, 2015년에는 이를 사법연수원에도 확대 적용했다. 사법연수원은 여전히 상위권 수료자들이 과거의 기억에 따라 군법무관을 지원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 대위로 임관하는 장기 군법무관, 로스쿨 도입 이후 경쟁 치열해져   장기 군법무관은 사법연수원 수료생 또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 중 직업군인으로 복무하기 위해 지원하는 사람들로서 대위 계급으로 임관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원자가 부족해 인력난이 매우 심한 편이었다. 왜냐하면 변호사 개업을 해도 군법무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군법무관이 맡는 법률 사무가 한정적이어서 전역 후 개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이에 대한 유인책으로 임관 2년 만에 소령으로 진급할 기회를 주기도 하고, 의무복무 연한을 10년에서 5년으로 축소하는 등 혜택을 주었지만 수요를 충족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급증하며 변호사 시장이 좋지 않자 조금씩 지원자가 늘어나 간신히 수요를 맞췄다.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이후 변호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군법무관 수당이 기본급의 40%로 상당히 높아졌으며,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적 장점도 있어 경쟁이 치열해졌다. 특히 여성과 지방대 로스쿨 출신들의 관심이 높아 첫 로스쿨 출신 군법무관을 선발했던 2012년에는 경쟁률이 8:1을 상회했고, 2014년에는 10: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육·해·공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법학전문대학원 위탁교육을 받고 군법무관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로스쿨 도입 이전에는 민간 법대에 학사 편입한 후 사법시험을 준비했는데, 이들은 소위 임관 당시 이미 장기복무 자원이므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당연히 장기 군법무관이 된다.   ■ 최고위직은 법무관리관(소장), 최강욱 제보 후 ‘개방형’ 직위로   군법무관의 진급 상한선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소장)이었다. 하지만 2002년 최강욱 군법무관이  법무관리관의 비리를 참여연대에 제보하면서 시끄러워졌고, 이후 개방형 직위로 바뀌어 2006년부터 민간 변호사가 임명되며 통상 장기 군법무관 출신 중에서 선발된다. 이외에 육군본부 법무실장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 등 2개의 현역 장군(준장) 직위가 있다.   첫 여성 군법무관이자 법무 병과의 최초 여성 장군인 이은수 변호사는 1990년 제9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한 후 23년간 군 복무를 했다. 육군본부 법무실장을 거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마지막으로 2014년 전역했다. 로펌에서 인생 2막을 연 이 변호사는 “난 유리천장 깨는 전문가”라고 말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홍준표 전 경남지사 등은 병역을 필하고 법조인이 돼 군법무관으로 복무하지는 않았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은 병역을 면제받은 케이스다. 그리고 이회창·천정배·강용석 등은 공군에서, 김기춘·황우여·조응천 등은 해군에서 단기 군법무관으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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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9
  •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 숙환으로 별세…향년 86세
    [뉴스투데이=이원갑 기자]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이 28일 오전 11시15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의 첫째 동생이자 창업 동지인 고 구철회 전 LIG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지난해 12월 숨진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사촌동생이다. 1935년 경남 진양군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법대와 독일 퀼른(KOLN)대에서 법률학을 전공했다.   구자원 LIG 명예회장 [사진제공=LIG그룹]   그는 1964년 락희화학에 입사한 뒤 럭키증권 사장, 럭키개발 사장, LG정보통신 부회장을 거쳤다. 1999년 LG에서 계열분리하며 금융업계에 뛰어들었다. LIG그룹의 모태가 됐던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을 이끄는 등 LIG그룹 경영을 이어왔다. LIG손해보험 매각 후에는 방산 회사인 LIG넥스원의 명예회장 직을 맡았다.   유족으로는 구본상 LIG 회장과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구지연 씨, 구지정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일시는 31일 오전이고 장지는 경남 진주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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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8
  • [CEO리포트] 우리사주가 지지한 우리금융 '손태승 연임', 그 속에 담긴 3가지 ‘시장혁신'과제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25일 열린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함에 따라 국민연금 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과의 전선에도 상당한 변화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우선 국민연금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손 회장의 연임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지만 결국 다수 주주들은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은 효성 주총에 이어 우리금융 주총에서도 자신의 반대표가 거듭 무력화되자 ‘개혁 명분’마저 퇴색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감받지 못하는 개혁론이 지속될 경우 국민적 피로감만 누적될 뿐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입장도 곤란해졌다는 평가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손 회장에 대해 취한 문책경고 ‘효력정지 신청’을 수용했다. 금감원은 행정법원 결정에 불복해 금명간 서울 고등법원에 즉시 항고장을 낼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다수 주주가 손 회장 체제를 지지함으로써 금감원의 즉시항고 명분이 약화됐다는게 금융권 안팎의 해석이다.   ▲지난 25일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이 승인됐다.   금융당국의 제재에도 손 회장의 연임이 의결된 것은 결국 시장개입을 앞세우는 정부의 금융권 혁신논리와 시장논리의 정면대결에서 후자가 승리한 것이다.  따라서 금융권 안팎에서는 손 회장의 연임은 격변기에 직면한 금융시장의 혁신방향과 관련해 3가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 DLF사태 책임론? 정부의 ‘금융권 혁신논리’ 이긴 ‘시장논리’ 손 회장 연임이 던진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정부 주도의 금융권 혁신논리보다 시장논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주들의 입장이 확인됐다는 점에 있다. 국민연금(지분율 7.89%)이 손 회장 연임에 반대하면서 내세웠던 주 논리는 DLF사태에 대한 책임론이었다. DLF사태가 우리금융의 기업가치를 훼손했고 이에 대해 손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역시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을 용인한 최고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수수료 등 금융사 가격 개입을 통해 ‘시장 안정화’를 꾀하는 금융혁신 정책 기조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금융권은 문제 해결도 시장논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분위기이다. DLF사태는 과도한 실적주의가 낳은 참사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은행은 최대 피해의 80%까지 보상하는 안을 마련하는 등 적극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다수 주주들이 시장논리를 택한 것은 주총 결과에서 나타난다. 지분율 24.58%인 6대 과점주주(IMM PE·푸본생명·키움증권·한국투자증권·한화생명·동양생명)와 우리사주 6.42% 등은 손 회장의 연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우리금융의 최대주주(17.25%)인 예금보험공사도 찬반비율을 감안하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목적에 대한 근본적 의문 제기돼 손 회장 연임 결정은 국민연금이 다수주주로 있는 금융기관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의 차원에서 의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도 ‘국민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금융주는 최근 수년 간의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금융환경의 급변으로 인해 대세적으로 하락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까지 터지면서 심각한 국면이다. 이는 주주이익의 상실일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책임지고 있는 ‘국민 노후’의 위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국민연금이 투자한 금융기관들의 실적과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적개선과 무관해보이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다수 주주들이 손 회장 연임을 지지한 것은 그러한 선택이 우리금융지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경제적 계산을 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 손태승호 실적개선·혁신경영에 대한 기대감도 남겨진 과제   [표=뉴스투데이 / 자료제공=우리금융그룹]   결국 주주들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은 DLF사태, 코로나 등 잇따른 악재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이 실적개선과 혁신경영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연금이나 금감원이 아닌 손 회장이 안게 된 과제이다.  그동안 실적개선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손 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1조 9041억원(2019년 3분기 누적순이익)으로 경상기준 사상 최대실적을 견인한 바 있다. 이는 중소기업 중심의 대출성장 및 핵심예금 증대를 통한 수익구조 개선과 건전성 비율 개선으로 안정적인 대손관리가 강화된 결과다. 지난해 3분기 순영업수익도 2018년 동기대비 3.4% 증가한 6조9417억원을 기록했다. 비이자 이익은 1.3% 감소한 반면, 이자이익은 전년대비 4.3% 증가했고 수수료이익도 3.1%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손 회장은 자산운용사 2곳(우리자산운용, 우리글로벌자산운용)과 부동산신탁회사(우리자산신탁)을 인수합병(M&A)하면서 비은행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노력을 펼쳤다. 이를 통해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금융의 글로벌 부문을 강화하기도 했다. 우리금융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부문의 3분기 누적순이익은 2240억원을 달성하며 전년대비 15.8% 상승했다. 주주들은 이러한 손 회장의 실적경신 경험과 혁신경영 노력을 높게 산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이 DLF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혁신과 실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야 한다는 것은 주주들의 지지가 남긴 또 다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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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6
  • BC 카드, 이동면?사장 공식 취임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BC카드는 서울 을지트윈타워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를 통해 이동면 사장이 공식 취임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사장은 별도의 취임식 없이 업무를 시작했으며, 사내 메시지 등을 통해 △본업 경쟁력 강화 △신규 사업 적극 발굴 △디지털 역량 강화 등 세 가지 중점 경영 방침을 밝혔다.  ▲BC카드는 서울 을지트윈타워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를 통해 이동면 사장이 공식 취임했다고 25일 밝혔다.  본업 경쟁력에 대해 이 사장은 “업계 최고 수준의 품질과 비용, 효율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프로세싱 분야에서  1위가 돼야 한다”며 역량 강화를 주문했다. 현장에서 고객과 만나는 고객사(결제 사업자) 업무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기민함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BC 카드는 올해 최신 차세대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어 고객사 니즈에 가장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신사업은 글로벌 사업 확장과 마케팅 플랫폼 강화를 주문했다. 앞서  BC 카드는 국내 금융권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결제 기술을 수출한 바 있다. 이어 베트남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 인프라’ 조성 및 디지털 결제 플랫폼 지식 이전 등 글로벌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마케팅 플랫폼 강화는 페이북 등을 통해 고객과 가맹점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고도화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사장은 디지털 역량에 대해선 “빅데이터·AI  등은 ‘Smart BC’로 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회사의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BC 카드는 금융·정부기관·유통·상권 등 다양한 영역의 빅데이터 분석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데이터 기반 맞춤형 고객 서비스와 마케팅 추진, 상품 개발이 가능하다. 앞으로  AI 를 적극 활용해 디지털 분야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 사장은 끝으로 “BC 카드는 프로세싱 역량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이같은 저력 위에 도전이 더해지면 변화를 주도하는 ‘BC 만의 길(BC Way)’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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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5
  • 신한금융투자, 이영창 사장 취임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신한금융투자 이영창 대표이사 사장이 3월 25일 취임했다. 이영창 사장은 증권업계 CEO중 보기 드물게 27년간 증권업의 본질적 업무인 주식중개(Brokerage), 운용(Dealing), 투자은행(IB)은 물론 기획·관리 업무까지 두루 경험한 자본시장 베테랑이다.   ▲신한금융투자 이영창 대표이사 사장이 3월 25일 취임했다.  각 업무에 대한 풍부한 경험은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니즈를 만족시키고 씨줄날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증권업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신한금융투자의 고객신뢰 회복을 위한 해결사 역할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사장은 단기간의 이익보다는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고객중심 경영으로 WM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면서 대우증권 사장 후보에 올랐던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직원들이 해당분야 전문성 강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습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하여 도곡동지점장 시절에는 꼴찌지점을 전국 1등으로, 딜링룸부장 시절에는  전체 증권사 딜링룸과 국내 전체 주식형펀드 대비 운용수익률 1위를 달성한 바 있다. ‘직원에 대한 최고의 복지는 직원을 전문가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이 사장의 신념이 ‘직원전문성강화-고객수익증가-신뢰확보-고객확대-실적상승’ 등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마법을 한번 더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신임 이대표는 3년간 끈질긴 법률 검토와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2009년 한국 자본시장의 대표적인 IB 상품인 한국형 SPAC(기업인수전문회사)을 만든 장본인이다. 이 대표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한국형 SPAC은 스팩시장의 표준이 되어 시장 확대에 기여하였다. 한국형 스팩은 M&A시장에서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고,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투자기회를 제공한 바 있다. 또한 WM부문 대표시절에는 기존의 주식중개 중심 사업구조를 종합자산관리체제로 성공적으로 전환시켰다. 자산관리영역에 세무·회계·부동산·보험 분야의 전문 컨설팅인력을 충원하여 자산관리영업을 밀착 지원하였으며, 종합가문관리 서비스인 패밀리 오피스 등을 도입하고, IB를 융합시킨 PIB센터를 신설하여 거액자산가 유치 및 수익원 다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영창 사장은 “중요한 시기에 신한금융투자 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 동안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금융위기 전후 일선현장과 경영지원책임자로서 체험한 위기관리 노하우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신한금융투자가 빠른 시일내에 고객신뢰를 회복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특히 고객의 수익과 직결되는 직원들 역량 강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직원전문성강화를 통한 직원-고객-회사의 동반성장’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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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5
  • [CEO리포트] KT 새수장 구현모의 '실용주의', 코로나19속 3가지 경쟁력 시험대 올라
    [뉴스투데이=김태진 기자] 오는 30일 서울 서초구 태봉로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리는 KT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구현모(56) 사 사장이 황창규 회장의 뒤를 잇는 KT의 새 대표로 공식 선임된다. 구 사장은 12년 만에 배출되는 내부 출신 CEO로, KT에서만 주요 보직을 거쳐온 ‘KT맨’이다. 이는 구 사장이 향후 경영과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필요한 리더십의 원천 중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역대 회장들과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코로나19라는 지구적 재난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새로운 KT수장으로서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차별화된 경영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구현모 사장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스퀘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IPTV 3대 혁신 서비스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구 사장은 지난해 연말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이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왔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실용주의'로 표현할 수 있다. 김종구 KT이사회 의장은 지난해 구현모 사장을 차기 회장 후보 확정 이유에 대해 “구현모 후보는 ICT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췄으며,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민첩한 대응이 가능하고, 확실한 비전과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해 KT의 기업가치를 성장시킬 최적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구 사장에게 거는 KT의 기대와 바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직을 통합하고 성과주의 임원인사를 단행하면서 전문인력을 충원해왔다. 인사혁신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신입사원 정기 채용을 폐지하고 수시채용을 도입한다. 이는 모두 불필요한 비용을 감소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 성과를 도출하는 ‘실용주의 전략’이다.   구 사장의 실용주의는 세 가지 시험대 위에 오를 전망이다.   구현모 사장 역대 성과 요약[표=뉴스투데이 김태진 기자]   ■ 복수사장 체제의 안정적 운용과 실적 극대화   '복수사장'체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로 꼽힌다. 지난해 12월27일 KT는 구 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확정 발표하면서 “국민기업인 KT에 회장 직급이 정확하지 않다”며 “현행 ‘대표이사 회장’ 제도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KT 내 회장 명칭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난 16일 인사에서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박윤영 기업부문장(58)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구 사장과 투톱체제를 이루었다. KT 역사상 전례 없던 '복수사장 체제'라는 지도체제이다.   다만 구 사장은 자신을 사장이 아닌 대표로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박 사장과는 구별되는 호칭이다.   투톱체제는 각 분야 전문성을 살려 실적 극대화를 노린다는 목표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번 인사 및 조직개편을 통해 9부문·5실·1원·1소였던 조직을 7부문·3실·1원·1소로 재편했다.   지난해 11월부터 구 사장이 맡아온 커스터머 부문은 5G, 기가인터넷을 중심으로 유무선 사업과 IPTV, VR 등 미디어플랫폼 사업에 대한 상품, 서비스 개발과 영업을 총괄한다. 디바이스 사업 역시 포함돼 KT의 미래 먹거리를 담당해왔다. 차기 커스터머 부문장은 강국현 KT스카이라이프 사장이 유력시 된다.   박 사장은 기업부문을 맡는다. 기업부문은 기업사업 부문, 글로벌사업 부문, 미래플랫폼 사업 부문이 통합되면서 탄생했다. 전국 11개 지역고객본부와 6개 네트워크 운용본부를 6개 광역본부로 합쳐 국내외 기업고객들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디지털 혁신“이 활성화되도록 한다.   또한, KT는 조직 변화에 맞춰 임원의 수를 전년 대비 약 12% 적은 98명으로 줄였다. 임원의 평균 연령은 52.1세로 전년(52.9세)보다 한 살 가량 낮아졌다. 성과와 역량을 인정받는 젊은 인재를 중용한다는 인사원칙으로 구성원들의 성취동기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 KT측의 설명이다.   복수사장 체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해 실적을 극대화함으로써 실용주의 경영전략의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 수시인턴채용제로 전환, 인재관리에서 실용주의적 혁신 안착시켜야   인재관리 면에서도 실용주의적 혁신을 안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구 사장은 이미 신입사원 채용 절차에도 큰 변화를 줬다. KT는 지난해 하반기까지 공개 채용으로 총 540여명의 신입사원을 모집했지만 올해부터는 수시·인턴 채용을 도입한다. 이는 민영기업인 KT가 인재관리 측면에서도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해 본격적인 업무에 투입하기까지는 18~26개월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기업들은 교육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비용을 지불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3년 발표한 대졸 신입사원 1인당 교육비용은 평균 5960만원, 대기업은 8630만원에 육박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올해 기준으로  신입사원 1명당 교육비용은 1억2000만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업계측의 추정치이다.    KT가 33년만에 정기 공개채용을 폐지하고 6주의 인턴기간을 거쳐 정직원 전환여부를 결정하는 ‘수시 인턴 채용제’를 선택했다. 대규모로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대신에 부서별로 전문 인력을 수시로 뽑을 수 있게 됐다. 정기공채로 인한 과도한 비용을 감축하고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뽑아서 쓰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는 것이다.    ■ 실용주의 끝은 '미래 먹거리' 만들기···구 사장의 경력은 '파괴와 창조'에 부합   실적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일이다.  특히 KT는 이동통신이라는 전통적 시장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ICT 시장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구사장의 주요 경력은 '파괴와 창조'로 상징되는 혁신을 통한 미래먹거리 만들기에 부합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해 1987년 KT에 공채로 입사했다. 그는 2007년 KT 전략CFT그룹 전략1담당 상무 대우로 임원에 오른 후 KT 개인고객전략본부장, KT T&C부문 T&C 운영총괄 전무, KT 경영지원총괄 부사장 및 사장 등을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구 사장은 전략 및 기획에 관해서 실질적 영향을 행사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 중에서도 2009년 통신업계 최대 화두였던 KT-KTF 합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또한, 2016년 9월 국내 최대 디지털 미디어랩인 ‘나스미디어’를 인수하는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구 사장이 유료방송 M&A, 미디어 사업 확장 추진에 적극 나설 것이란 관측이 존재한다. 지난해부터 IPTV 사업을 진두지휘해온 만큼 통신 분야 외에도 미디어 사업 등에서 경영 수완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구 사장이 커스터머 부문장 시절 거둔 성과도 기대감을 뒷받침한다. KT는 IPTV에서 가입자 700여만명을 확보하며 유료방송업계 독보적 1위 기업이다. 자회사 KT스카이라이프와 합한 단순 수치로는 국민 5명 중 1명이 KT의 유료방송 플랫폼을 이용 중이다.   지난해 국내 이동통신 3사가 모두 미디어 부문에서 두 자릿수 성장을 이뤄냈다. 그리고 KT를 제외한 두 이동통신사가 미디어 사업 부문에서 인수합병을 진행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고 KT를 빠르게 추격 중이다. 격화되는 미디어 시장에서 구 사장이 KT의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이다.    구현모 사장 학력 및 경력 요약[표=뉴스투데이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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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5
  • [CEO리포트] 역할 다양한 조대식 의장은 누구? SK 최태원 회장식 '집단지성'의 리더
    [뉴스투데이=김태진 기자] SK그룹이 20일 SK하이닉스를 시작으로 주주총회가 본격화되면서 주요 계열사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다룬다. 이 때 첫 이름을 올리는 사내이사도 있지만 여러 이사회에서 활동중인 인물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SK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이성현 SK재무부문장(CFO) 등이 있다.    그 중 조대식 의장이 가장 많은 계열사에서 이사를 맡고 있다. 이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영방식과 직결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은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핵심계열사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공통된 방향을 도출해내는 경영전략을 취해왔다. 총수 개인이 아니라 일종의 '집단지성'이 SK그룹을 움직여나가도록 한 셈이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지난해 5월28일 오전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에서 열린 소셜밸류 커넥트 2019 행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조대식 의장은 그러한 시스템의 중심인물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좌장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다양한 계열사의 현안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조 의장이 다양한 계열사에서 이사로 활동하는 것은 필수사항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조 의장은 △SK 사내이사 △SK텔레콤 기타비상무이사 △SK네트웍스 기타비상무이사 △SK실트론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아 총 4곳의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3년 조 의장은 SK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른 뒤 현재까지 사내이사직을 유지 중이다. 임기는 2021년 3월까지다. SK텔레콤 기타비상무이사는 2017년 3월 선임돼 오는 26일 주주총회에서 재선임 안건이 다뤄진다. SK네트웍스 기타비상무이사는 2016년 3월 처음으로 선임되었으며 2019년 재선임됐다. 2022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SK실트론 이사회도 2017년 기타비상무이사로 합류했으며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된다.   ■ 최태원 회장으로부터 독립된 '협의기구', 최종 결정은 계열사가 수행   즉, 수펙스추구협의회는  SK그룹의 최고 협의·조정기구이다. 조 의장은 전략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분야별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통해 기업의 최고수준 경쟁력 확보에 나서는 ‘따로 또 같이’ 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20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의사결정을 하는 곳은 아니다"며 "전반적인 그룹 운영 방안에 대해서 각 분야별 CEO들이 모여 논의하는 협의체 기구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협의회 회의가 최종적으로 안건을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는 아니고 같이 의논하기 위함이다"며 "안건에 대한 결정은 해당 관계사가 담당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최태원 회장의 의견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최 회장은 협의회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에 지분, 권한, 역할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협의회 회의에서 나온 안건 중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보고할 뿐이다"고 말했다. 즉,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최 회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고 위원장들이 한 데 모여 '집단지성'을 발휘하며 그룹의 경쟁력 강화를 논의하는 자리인 것이다.   이를 총괄하는 사람이 바로 조 의장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총 7개의 위원회, 21명의 구성원을 두고 있으며 주요 CEO들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의장과 위원장들은 한 달에 한 번 SK서린빌딩에서 회의를 가진다. 이 때 조 의장은 제시된 안건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고 그에 따른 대안을 도출한다. 그 이후 조 의장은 중요 안건에 대해 최 회장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조율한다. 즉, 조 의장은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전반적인 논의과정부터 최 회장과의 소통까지 담당하는 집단지성의 리더로 볼 수 있다.   ■ 조 의장 보수는 최 회장보다 많아   SK의 2018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조 의장은 급여 11억5000만원, 상여금 23억5000만원으로 총 35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최 회장의 보수 30억원보다 많은 금액이다. 이는 조 의장의 상여금이 최 회장의 상여금(10억원)보다 2배 이상 많은 데 따른 결과이다.   그룹 내 최고 수준의 상여금은 조 의장의 집단지성 리더 역할에 대한 공로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조 의장은 2018년 12월6일 SK그룹 2019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만장일치로 연임이 결정됐다. 2017년 조 의장 선출을 만장일치로 찬성한 데 이어 연속 만장일치다.  조 의장의 임기는 2020년까지다.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경력[표=뉴스투데이]      ■ 고대 졸업 후 삼성물산 들어가, SK 입사 6년 후 사장으로 승진   조 의장은 최 회장과 1960년생으로 동갑이자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동기동창으로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인물이다. 하지만 조 의장의 첫 직장은 SK그룹이 아닌 삼성물산이었다. 그는 영상사업부 관리부서로 입사해 재무책임자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다 2007년 SK그룹에 영입됐다. 당시 최 회장이 평소 친분이 있던 조 의장 영입을 위해 직접 나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 의장은 삼성물산의 재무경험을 토대로 SK그룹에서도 재무 역량을 한껏 발휘했다. 재무담당 상무를 시작으로 △2010년 사업지원부문장 △2011년 자율책임경영지원단장 △2012년 재무팀장을 거쳐 2013년에 SK 사장으로 승진해 SK 공동대표를 맡았다. 경력임원으로 입사해서 지주회사 SK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른 뒤 현재까지도 사내이사직을 유지 중이다.   조 의장은 SK 사장으로 승진한 2013년에 SK China 이사회 의장과 SK텔레콤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2014년엔 최 회장이 모든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사임하자 SK의 단독대표가 됐다. 그 이후에도 그룹 내 입지를 넓혀 2015년 SK바이오팜 대표와 SKC 이사회 의장, 2016년 SK머티리얼즈·SK네트웍스의 각 이사회 의장에 선임됐다.   여러 계열사 이사회에 이름을 올린 조 의장은 김창근 전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시절 전략위원회 위원장을 거친 후 2017년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선출됐다.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성과[표=뉴스투데이]   ■ 재무·인수합병·기획·신성장 발굴에서 능력 발휘한 재무전문가, '형식'보다 '실용' 중시   그러나 조 의장의 승진을 최 회장과의 인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조 의장이 2013년 SK 대표이사가 된 후 이뤄낸 실적 때문이다. 그는 SK그룹의 체제 및 경쟁력 확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이뤄내 재무 전문가로 불리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인수합병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조 의장은 2015년 8월1일 지주회사 SK와 IT 자회사인 SK C&C 합병을 지휘하면서 현 지배구조를 완성시켰다. 당시 SK C&C 대표였던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호흡을 맞추며 SK그룹의 지배구조를 완성해나갔다고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조 의장과 박 사장의 성공적인 합병 마무리가 최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게 된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2016년 SK머티리얼즈 이사회 의장으로서 OCI가 보유한 SK머티리얼즈 지분 49.1%를 4816억원에 인수했다. 반도체용 특수가스 생산업체인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며, SK하이닉스와의 호흡으로 SK의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갖췄다는 평가다. 실제로 SK머티리얼즈는 연결 기준 지난해 영업이익이 2157억원으로, 전년 보다 17.9% 증가해 SK그룹에 활력을 넣어주고 있다. 인수합병 외에도 조 의장은 신성장 사업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조 의장은 2015년부터 2019년3월까지 SK바이오팜 사내이사로서 뇌전증(간질) 치료제 ‘엑스코프리’를 개발해 그룹의 신성장 동력인 바이오 사업을 안착시켰다. 이 치료제는 지난해 11월 판매허가를 받아 미국에서 직판을 앞두고 있는데 예상 연매출은 1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조 의장은 2017년 10월20일 경기도 이천 연구소에서 열린 CEO세미나에 참석해 “자산효율화, 시나리오 플래닝, 기업가치 더불-업, ‘따로 또 같이’, 사회적 기업과 같은 화두를 관통하는 핵심이 바로 공유인프라 구축을 통한 성장이다. 공유인프라를 활용해 현재의 SK를 강한 기업을 넘어 존경받는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형식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조 의장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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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3
  • [뉴스 속 직업 : 사이버 전사]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사이버작전사로 옮겨간 엘리트 장교들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2012년 국방부는 국방 사이버 분야의 정예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고려대와 계약을 맺고 ‘사이버국방학과’를 신설했다.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는 사이버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할 사이버보안 전문장교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로 이스라엘의 ‘탈피오트’를 모델로 삼고 있다.   이 학과에 입학하면 대학 4년간 등록금 전액을 군에서 지원하며, 매월 50만원의 학업 장려금도 받는다. 졸업 후에는 육·해·공군 장교로 임관해 7년 동안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근무하며, 전역 후에는 세계 보안시장을 선도하는 국내외 기업, 정부 및 공공기관, 관련 연구소의 스카우트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의대에 합격할 수준의 우수한 학생들이 매년 지원한다.   지난 2014년 2월 21일 대전 유성구 자운대 육군정보통신학교에서 '2014년 육군 해킹방어대회'가 열려 대회 참가자들이 해킹 방어능력 평가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처음으로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학생들도 참여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이 학과는 컴퓨터, 암호, 해킹, 디지털 포렌식, 보안성 평가, 블록체인, 인공지능, 개인정보 보호, 사이버 정책 분야 등에 역량 있는 20여 명의 교수진으로 구성된다. 사이버보안 분야 현장과 연구소 경험을 가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교수들이 많은 것도 교육의 질을 높이는 요인이다. 또 국내 최초로 해킹 공격과 방어를 실습할 수 있는 최첨단 워룸을 갖추고 있다.   학생들은 뛰어난 교육 인프라와 군부대 실습을 포함한 다양한 해킹 실전을 연마해 각종 세계 해커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뛰어난 역량을 증명하고 있다. 세계 해커 올림픽인 데프콘에서 아시아권 최초로 2015년과 2018년 우승한 것을 비롯해 일본, 대만 등에서 열린 해킹 방어대회서도 우승과 상위권에 입상했다.   이들은 졸업하면 정보통신 장교로 임관하고 사이버 부특기가 부여된다. 7년간 의무 복무한 후 전역하지만 장기복무를 원하면 일부 인원은 계속 군 복무가 가능하며, 국내외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 위탁교육도 받을 수도 있다. 2016년 1기 30명(육군 24명, 해·공군 각 3명)이 처음 졸업했고, 현재 4기까지 120여 명이 장교로 임관해 복무 중이다.   ■ 1기부터 3기까지 ADD 배치했으나 활용 계획 부실해 성과 미흡   1기부터 3기까지는 임관 후 전원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3년간 근무한 다음 국방부에서 사이버작전사를 비롯해 정보기관 및 육·해·공군 사이버작전센터 등에 배치하고 있다. 현재 1기생은 지난해 7월에, 2기생은 지난해 12월에 ADD 근무를 끝내고 새로운 보직을 받은 상태다. 지난해 임관한 4기부터는 최초 3년간 근무하는 곳이 ADD에서 사이버작전사령부로 변경됐다.   고려대에 사이버국방학과를 만들 당시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었던 박대섭 세종대 교수는 “이스라엘의 엘리트 군인 육성 프로그램인 ‘탈피오트’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탈피오트는 이스라엘군이 히브리대 교수들과 함께 선발, 교육, 훈련, 복무, 활동 등 모든 과정에 대해 종합적이고 세밀한 검토를 거쳐 만들어진 제도임을 당시 국방부는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학과 신설 후 4년이란 시간이 있었지만 첫 졸업생이 나올 때까지 국방부는 이들을 군에서 어떻게 양성 및 활용할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즉 탈피오트를 생각했지만 이스라엘이 인재를 양성하고 활용하는 과정은 정확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 결과 1기 30명의 진로는 졸업 직전 여러 가지 논란 끝에 ADD로 정해졌다.   당시 임종인 고려대 교수(전 청와대 사이버안보 특보)는 아직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야전부대에 곧바로 배치하기 보다는 ADD에서 인턴십 개념으로 각종 연구와 프로젝트를 경험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타당하게 여긴 국방부가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ADD가 이들을 받아들여 효율적인 사이버인재 양성이 가능할지는 국방부의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않았고, 시간은 흘러 3년이 경과했다. 지난해 8월 사이버작전사령부 관계자는 “ADD 근무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4기부터는 모두 사이버작전사령부로 배치해 3년 동안 근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사이버작전사에서 안착 중…인재 활용 효율성 두고 설왕설래도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장(예비역 육군 중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역임)은 “인재 양성은 지속적인 진단과 관리·보완이 필요하며, 양성된 자원의 활용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한 추적 관리가 되지 않으면 본래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례가 계획적 인재 육성의 대표적 모델이라고 말했다.   정 전 소장은 “이스라엘은 분야별로 필요한 인재 소요를 판단하고,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이 무엇인지를 먼저 식별한다. 그 다음 심리학자를 포함한 전문가팀이 분야별 특성에 맞는 자질을 가진 인재를 선발하고, 학문적 지식을 갖추기 위한 전문교육에 이어 실무 경험을 쌓는 양성과정을 거친다. 그 후 목적에 맞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한국군 수뇌부들이 이스라엘처럼 사이버 인재 양성과 활용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아 사이버국방학과 출신 장교들의 군 복무 시작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효율성도 떨어지는 측면은 있었다. 하지만 사이버사령부도 창설 초기여서 이들을 수용할만한 역량이나 환경이 구비되지 않아 당시로서는 ADD 근무가 최선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ADD 근무를 마치고 새로운 자리로 이동한 사이버국방학과 1∼2기생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장교들은 근무하는 부서나 부대에서 호평을 받고 있고, 각자 열심히 근무하면서 계속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다. 조만간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장교도 나올 것 같다.   이들이 이스라엘군 8200부대(사이버 첩보부대)를 이끄는 탈피오트 출신들처럼 한국의 사이버안보를 책임지는 인재로 거듭나려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사이버국방학과 출신 장교들의 양성 및 활용에 관심을 갖고 명확한 비전과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파격적 지원과 혜택을 부여하여 ‘사이버 전사’로 군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길 원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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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1
  • IBK캐피탈 대표이사에 최현숙 전 기업은행 부행장 선임
    [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IBK캐피탈 대표이사로 최현숙 전 기업은행 부행장이 선임됐다. 기업은행 자회사인 IBK캐피탈은 지난 19일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열어 최 전 부행장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고 20일 밝혔다. IBK캐피탈 대표이사로 최현숙 전 기업은행 부행장이 선임됐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최 대표는 숭의여고와 이화여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기업은행에 입행했다. 2013년 여신관리부장, 2017년 카드사업그룹장, 이후 여신운영그룹장을 맡아 기업은행의 여신운영을 총괄했다. 최 대표는 취임사에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위기극복과 미래성장 기반 마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혁신금융을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 △견고한 건전성 관리 △고객 만족 극대화 △직원 역량 제고 및 정도경영 등 4가지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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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0
  •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에 김남구 부회장 선임
    [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한국투자금융지주는 20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정기 주주총회에 이어 이사회를 열고 김남구 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2011년 부회장으로 선임된 후 9년만의 승진이다.   김남구 회장은 1987년 동원산업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1년 현재 한국 투자증권 전신인 동원증권 대리로 입사해 금융업에 입문해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 2004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김남구 대표이사 부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한국투자증권] 이후 2005년 김남구 회장은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으로 선임됐으며, 30년 간 금융업계에 몸담아오며 한국금융지주를 모든 투자금융 사업부문에서 업계 최고로 성장시켰다.   김남구 회장은 앞으로도 국내유일 증권 중심 금융지주회사 최고경영자로서 글로벌 신사업 확대, 인재경영, 디지털 혁신, 사회적 가치 실현에 더욱 중점을 두면서 현재의 글로벌 금융난국을 헤쳐 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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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0
  • IBK기업은행, 신임 전무이사에 김성태 IBK캐피탈 대표 임명
    [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IBK기업은행은 19일 신임 전무이사(수석부행장)에 김성태 IBK캐피탈 대표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김성태 신임 전무이사는 1989년 기업은행에 입행한 이후 2009년 전략기획부 미래혁신팀장, 2012년 종합기획부장, 2017년 경영전략그룹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해에는 IBK캐피탈 대표이사를 맡아 회사를 이끌기도 했다. IBK기업은행은 19일 신임 전무이사에 김성태 IBK캐피탈 대표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연합뉴스]   김 전무이사는 IBK기업은행 내에서 은행의 경영목표 수립과 평가, 중장기전략 등을 담당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2017년 경영전략그룹장 시절 당시 최고 당기순이익인 1조7643억원을 달성했으며 지난해 IBK캐피탈 대표이사 때에는 IBK캐피탈 설립 이후 최대 이익인 1084억원을 시현하기도 했다.  IBK기업은행은 김성태 신임 전무이사 선임에 대해 “글로벌 금융그룹 도약에 기여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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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0
  • 한화손해보험, 강성수 대표이사 선임
    [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한화손해보험(한화손보)은 19일 주주총회를 열고 강성수 한화손보 사업총괄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강성수 대표이사는 1988년 한화증권 자금과에 입사해 한화건설을 거쳐 한화 무역부문 상무, 한화 화약부문 상무 등을 역임했다. 이후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한화손보에서 재무담당 전무를 맡았으며 2018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는 한화의 지주경영부문 재무담당 부사장을 맡기도 했다.   강성수 한화손해보험 대표이사. [사진제공=연합뉴스]   올해 초 한화손보 사업총괄 부사장으로 돌아온 그는 재무통으로 통하는 인물로 2014년 이후 5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한화손보의 경영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한편 한화손보는 주주총회를 통해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 △이사 선임의 건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 △사외이사인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의 건 △이사보수 한도액 승인의 건 등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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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9
  • 삼성생명, 전영묵 시대 개막
    [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삼성생명이 19일 주주총회 열고 전영묵 사장의 선임안을 의결했다.   전영묵 사장은 삼성생명에서 투자사업부장, 자산운용본부 상무, 자산PF운용팀장 전무, 자산운용본부장 전무 등을 역임했으며 자산운용업무에서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2015년 삼성증권의 경영지원실장(CFO)과 2018년 삼성자산운용 대표를 맡은 바 있어 증권과 생명의 경력을 모두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전영묵 삼성생명 신임 사장. [사진제공=연합뉴스]   5년 만에 삼성생명으로 돌아온 전영묵 사장은 내부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신속한 조직개편을 통해 내실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로금리 시대의 도래에 따라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삼성생명에 차별화된 자산운용 전략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에 자산운용 전문가가 전영묵 사장을 선임한 것은 경영성과 측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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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9
  • 삼성카드, 신임 대표이사에 김대환 삼성카드 부사장 선임
    [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김대환 삼성카드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공식 취임했다.    삼성카드는 19일 제3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김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삼성카드는 원기찬 사장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김대환 부사장을 후임 대표이사로 추천했다. 김대환 삼성카드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공식 취임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김 대표는 삼성생명으로 입사해 마케팅전략그룹 담당임원, 경영혁신실 담당임원, 경영지원실 담당임원, 경영지원실장(CFO)을 역임했으며 이번에 삼성카드의 CEO에 올랐다.   삼성카드는 지난달 21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개최 시 김 대표를 추천하며 “그간 디지털 혁신으로 새로운 변화와 성장을 리드해온 원기찬 사장에 이어 김대환 부사장이 참신한 전략과 과감한 혁신으로 회사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카드의 새로운 수장이 된 김 대표는 수익성 중심의 사업재편과 디지털 혁신 등 삼성카드의 기존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카드는 이날 “카드업계의 불확실성과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질과 역량을 확보하고,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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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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