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3.03.10 05:00 ㅣ 수정 : 2023.03.10 05:00
경기둔화·고물가에 기업 채용 시장 얼어붙어 삼성, 19개 계열사별로 상반기 1만명 공채 나서 SK·현대차·LG그룹, 공채 아닌 수시채용 펼쳐 4대 그룹, 경기침체속 '미래인재 확보'와 'CSR' 돋보여
[사진 =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경기둔화·고(高)물가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 가운데 기업 채용 시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대기업 절반 이상이 상반기 신규 채용이 없거나 아직 정하지 않아 극심한 취업시장 한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하듯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취업자 증가 폭 축소와 경기 둔화가 맞물려 체감되는 고용 둔화는 보다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주요 그룹이 인재 채용에 시동을 걸었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19개 관계사가 9일 채용 공고를 내고 신입사원 공채 절차에 돌입했다. SK그룹과 LG그룹도 주요 그룹 계열사가 신입사원 수시 채용 중에 있으며, 현대차그룹은 10년 만에 기술직(생산직) 신입사원 채용에 나섰다.
재계에서는 미래 인재 확보와 더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풀이한다.
‘2023년 상반기 대기업 신규채용 계획 조사’ 결과 [사진 = 전국경제인연합회]
■ 대기업 절반 이상, 올해 상반기 신규채용 ‘불투명’
전 세계적인 경기둔화로 올해 취업 시장은 혹한기가 예상되고 있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신규 채용은커녕 기존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받거나 권고사직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대기업도 녹록지 않은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23년 상반기 대기업 신규채용 계획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의 54.8%가 올해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채용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기업은 39.7%, 신규채용이 아예 없는 기업은 15.1%로 집계됐다. 신규채용 계획이 없는 기업 비중은 전년 동기 7.9% 대비 7.2% 포인트 늘었다.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한 기업 비중은 45.2%인데 이 가운데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채용을 축소한다는 기업은 24.6%로 나타났다.
신규채용 계획이 없거나 채용 규모를 늘리지 않는 이유로는 △국내외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서(29.0%) △회사 내부상황이 어려워서(29.0%) △내부 인력 수요 없음(19.4%)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증가 대비 비용 절감 차원(16.1%) △탄력적인 인력 구조조정의 어려움(14.5%) △필요 직무능력을 갖춘 인재 확보 어려움(14.5%) 순으로 집계됐다.
전경련은 “고물가․고금리 기조 지속, 공급망 불안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기침체 장기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규채용 규모 축소나 채용 중단 등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진 = 청와대 유튜브 청년희망ON(溫, On-Going) 관련 영상 캡처]
■ 채용 혹한기 속 ‘인재 발굴’ 시동 건 ‘삼성·SK·현대차·LG’
이런 가운데 최근 주요 그룹사에서 신규채용을 시작해 혹한기 속 한줄기 훈풍이 불어왔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 8일 각 관계사별로 ‘2023년 상반기 공채’ 공고를 내고 신입사원 공개 채용 절차를 시작했다.
국내 주요 그룹사 가운데 공채 시스템을 운영하는 그룹은 삼성이 유일하다. 청년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한 취지로 공채를 유지 중이다.
이번 공채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등 19개사가 참여한다.
채용 절차는 직무적합성평가(3월)-삼성직무적성검사(GSAT, Global Samsung Aptitude Test, 4월)-면접 전형(5월)-채용 건강검진(6월) 등 4단계다.
이른바 ‘삼성고시’라고 알려진 지원자의 학습능력, 문제해결 능력 등 전반적인 직무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GSAT는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다만 S/W(소프트웨어) 개발 직군 지원자들은 GSAT를 대신해 문제를 직접 코딩하는 ‘S/W 역량 테스트’를 치른 후 선발된다. 또 디자인 직군 지원자들은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통해 역량을 평가받는다.
구체적인 채용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5월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해 향후 5년간 8만명을 신규 채용한다고 밝혀 1만명 이상 선발한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SK·현대차·LG그룹은 공개채용 대신 월 단위 수시채용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SK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가장 먼저 신입사원 모집에 나섰으며 SK하이닉스도 상반기 신입·경력 채용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엔무브, SK인천석유화학,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계열 내 6개 사업 자회사에서 직무에 따른 인재를 각각 모집한다. SK이노베이션에서 R&D(연구개발)를 담당하는 환경과학기술원에서도 석·박사 대상 신입사원을 발탁한다.
현대차는 10년 만에 기술직 신입사원 채용문을 활짝 열며 채용 홈페이지가 마비될 만큼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번 채용은 차량 전동화·제조 기술 혁신 등 산업 트렌드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추진된다. 총 2개 차수별 1차 면접, 인성·적성검사, 2차 면접, 신체검사 등 절차를 거쳐 400명가량 최종 선발될 예정이다.
대개 3·5·7·9월이 집중 채용기간으로 알려진 LG에서는 LG CNS, LG마그나, LG화학에서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게재했다. LG는 전자, 화학, 통신 등 주력사업 확대와 AI(인공지능),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해 오는 2026년까지 5만명을 직접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채용 규모는 1만여명 수준으로 예측된다.
산업 전반이 올해 상반기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서도 주요 기업들이 채용에 발 벗고 나선 데는 ‘미래 인재 확보’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주요 그룹 회장들은 그동안 ‘인재 확보’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 왔다.
예컨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각종 사업 현장과 행사에서 ‘미래기술 확보는 생존의 문제’, ‘최고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 낸다’, ‘인재 투자는 아끼지 말라’ 등 어록을 남겼다.
최태원 SK 회장도 “역량 있는 인재를 선점하는 것은 기업의 중장기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경쟁력”이라며 “전 세계 경영환경이 불확실하고 어려워질수록 인재를 통한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 설문조사에서도 신규채용을 늘리겠다고 응답한 기업들은 그 이유에 대해 ‘경기 상황에 관계없이 미래 인재 확보 차원(42.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재계의 관계자는 “지난해 대비 대기업의 채용시장 규모는 확실히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반적으로 어려운 기업들이 많아졌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그럼에도 일부 기업들은 ESG경영(환경·사회·지배구조)에 따른 사회적 책임과 미래 인재 확보를 위해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며 “어떤 이유에서든 채용에 적극 나서주는 것은 상당히 다행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어 기업으로서는 채용도 투자이기 때문에 경제적 면에서는 투자를 줄이고 관망하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일 수도 있다”며 “그렇지만 기업들이 채용을 늘려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재계 1·2·3·4등 마저 채용을 하지 않으면 국가 경제에도 타격이 크다”며 “미래 인재를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CSR의 성격도 띠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