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 ⑤ '미투' 시인 최영미, 문단 '괴물'과 성폭력의 '일상성' 고발

박혜원 기자 입력 : 2018.02.07 14:20 |   수정 : 2018.02.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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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투데이=박혜원 인턴기자) 2월 7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최영미 시인 ⓒJTBC 영상 캡처
 
한국사회의 권력기관들이 벼랑끝 위기로 몰리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가 도화선이 돼 다른 현직 검사, 그리고 전직 방송국 PD의 내부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그 이슈도 성폭력을 넘어서 채용비리 문제까지 확산되고 있다. 권력을 쥔 사람에 의한 '갑질'에 대한 고발태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전례없던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 도미노 사태가 한국의 위계적 조직문화를 뿌리부터 변혁시키는 단초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박혜원 인턴기자)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고은 시인으로 밝혀져 논란
 
최영미 시인이 문예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시를 통해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했다.
 
1992년에 등단해 활동을 시작한 최영미 시인은 1994년에 발표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52쇄를 찍으며 시집으로는 보기 드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몇 년간 문단에서 활동을 하지 않았던 최영미 시인의 최신작이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가해자는 20여개국에 시가 번역되었고 2000년대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된 고은 시인으로 밝혀져 더욱 논란이 되었다. 또한 고은 시인은 현재 단국대학교와 카이스트에서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있어 문단의 원로이자 ‘문단 권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또한 고은 시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며 취임식에서 찬시를 헌정하는 등 민주, 진보 진영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바가 있다.
 
폭로 후 두 달여 지나서야 ‘미투’운동에 힘입어 화제
 
지난 2017년 12월 1일,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가 발간되었다. 여기에 실린 최영미 시인의 ‘괴물’은 두 달여가 지나서야 SNS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지난 5일 트위터의 ‘문단 내 성폭력 아카이브’라는 계정에서 해당 시의 전문을 올린 것이 2700여회 리트윗되면서부터다.
 
본문에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몇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노털상 후부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라는 구절을 통해 해당 시에 나타난 가해자가 고은 시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지난 6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고은 시인은 “아마도 30여년 전 어느 출판사 송년회였던 것 같은데, 여러 문인들이 같이 있는 공개된 자리였고, 술 먹고 격려도 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며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고은은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범행을 인정한 셈이다.
 
같은 날 최영미 시인은 JTBC ‘뉴스룸’에 출연했다. 먼저 최영미 시인은 고은 시인의 입장에 대해서는 “굉장히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관해 “내가 등단할 때 일상화되어 있었고 등단 직후 참석한 술자리에서 목격한 풍격은 충격적이었다”며 “문단이 이런 곳인 줄 알았다면 내가 여기 들어왔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최영미 시인은 최근에 문단에서 활동을 하지 못했던 정황에 대해 밝혔다. 최영미 시인은 “어떤 여성 문인이 문단의 메이저 그룹 출판사·잡지 등에서 편집위원으로 있는 등 권력을 지닌 남성 문인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하면 뒤에 그들은 복수를 한다”며 “문제는 그녀들의 피해가 입증할 수도 없고 ‘작품이 좋지 않아서 거절한 거예요’라고 말하면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최영미 시인은 “30대 초반으로 젊을 때 문단 술자리에서 내게 성희롱, 성추행을 한 이들은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다”며 실제 사례는 시에 표현된 것보다 훨씬 방대할 것임을 암시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도, 동등한 기소 권한 가진 검사도 아닌 문단 소외자의 고발 
 
문단 내 성폭력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외국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도 전인 지난해 2016년부터 트위터에서는 ‘#문단 내 성폭력’ 운동이 있었고 수많은 문인들이 가해자로 지목된 바 있다.
 
서지현 검사로부터 촉발되어 임은정 검사, 안미현 검사로 이어진 검찰 내 성폭력 고발과  문단 내 성폭력은 사뭇 다른 쟁점을 가진다. 검찰 내 성폭력이 ‘직장 내 성폭력’이라는 범주에 든다면, 문단 내 성폭력은 ‘예술계 내 성폭력’이라는 좀 더 큰 범주에 든다.
 
좁은 예술계는 대부분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고, 더욱이 핵심 권력은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즉각 ‘경력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자유로움을 표방하는 예술계에서도 활동 경력이나 인지도에 따라 마치 직장처럼 권력 관계가 형성되고, 이는 약자가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는 여론의 평가가 있다.
 
최영미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는 수십명" 주장...서지현, 임은정 등의 진술 흐름과 일치

내부고발자들은 공통적으로 폭로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추가 폭로를 이어갔다. 서지현 검사는 인터뷰에서 “검사 간 성폭행 사건도 이뤄졌으나 전부 비밀리에 덮였다”고 밝혀 조희진 검사를 단장으로 한 검찰 진상조사단은 이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영미 시인 또한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는 ‘괴물’에서 고발한 고은 시인만이 아니라 수십 명에 달한다고 추가 폭로했다.
 
최영미 시인은 자신이 <황해문학>을 통해 청탁을 받은 것이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면서 자신이 남성 문인의 요구를 거절한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보면 내부고발자들은 결코 하나의 사안만을 가지고 폭로를 결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서지현 검사나 임은정 검사는 수차례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최영미 시인 또한 남성 문인들의 성적인 요구에 거절의 뜻을 표현해왔으나 이는 오히려 문예지에서 청탁을 받지 못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최영미 시인은 인터뷰에서 “마흔 무렵 문단에 환멸을 느껴 문단을 떠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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