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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1.0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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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묘사 _ Youth illustrated _ Rene Magritte, 1937 [출처 : pinterest]

(뉴스투데이=김준홍 객원기자) 우리가 어린 아이에게 지혜로움보다 천진난만함을 기대하듯, 인생의 각 시기마다 세상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요구한다. 가령 집-학원-학교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10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근면함과 인내심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이 덕목을 잘 따르는 편이었다. 나는 아프다고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을 대단한 일탈로 여겼고, 그 결과 12년의 교육과정 내내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다. 그건 내게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무난하게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자 세상은 내게 다른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술이었다. 대학 첫 학기 나는 일주일에 네 번에서 다섯 번은 술을 마셨다. 날 포함한 또래의 아이들은 20년 동안 공개적으로 마시지 못했던 술을 다 마시겠다고 선포하듯 술을 마셔댔다. 술을 얼마나 잘 마시는가, 그리고 술자리의 분위기를 얼마나 잘 띄우는가가 중요한 덕목이었다.

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연애였다. 종종 '불순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10대의 이성교제와 달리 20대의 이성교제는 적극 권장되었다. 남자들끼리의 술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남자와 여자가 합석한 술자리에서는 추파가 난무하는 진실게임이 벌어졌다. 이성의 관심을 차지한 자는 승자였고 그렇지 못한 자는 패자였다.

이런 생활에서 수업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지각은 예사였고 축제 당일이나 전날에는 인원의 절반 이상이 결석하는 일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출석하기 힘든 1교시를 기피했고 대리출석의 비법을 공유했다. 10대의 중요 덕목이었던 근면함을 고수해온 이들은 남들의 출석을 대신해줄 공범자가 되었다.

거기서 또 꽤 논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당구 실력을 갖춰야 했다. 숱한 유형의 문제를 풀어 본 수험생이 수학 문제를 보자마자 풀이를 떠올리듯, 내 친구들은 당구공의 배치를 보자마자 공을 맞힐 방법을 생각해냈다. 육체보다 뇌의 운동이 주가 되는 이 스포츠는 천재들이 즐기는 지적 유희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나는 몇 차례 그들의 모임에 끼기 위해 애써보았지만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만 분명해질 뿐이었다.

이런 놀라운 나날들은 20대 후반이 되면 끝난다. 어느 순간 술자리를 피하고 싶어지고 연애에 시큰둥해지며, 나태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이 한심하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20대 초반을 졸업했다는 증거다. 그 이후에는 10대 시절의 덕목이었던 근면함과 인내심을 다시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아마도 30대, 40대에게도 요구되는 덕목일 것이기에, 20대 초반은 인생에서 무척 특별한 시기다. 비록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제 막 20대 후반이 되고 말았지만.

(
lookane@gmail.com)



심리학과 철학, 그리고 정치를 재미있어 하는 20대 청년. 2014년에는 정치 팟캐스트 '좌우합작'을 진행했으며 지금은 흡연문화 개선을 위한 잡지 '스모커즈'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
http://www.thesmoker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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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그림읽기] (29) 청춘의 묘사 : 20대 초반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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