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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2.2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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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지된 복제 _ Reproduction prohibited _ Rene Magritte, 1937. [출처 : mattesonart]


(뉴스투데이=김준홍 객원기자) 자기계발서의 열풍이 지나가자 인문학 서적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 전국민적인 교양 수준이 상승했다면 참 좋은 이야기였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잘 팔리는 인문학 서적들은 기존 자기계발서에 그럴듯한 심리학자의 이름이나 심리학 용어들을 양념처럼 뿌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최초로 인문학 서적 열풍을 일으킨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가 그랬고, 올해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움받을 용기>가 그렇다. 실제로 <미움받을 용기>는 인문학 서적으로 분류된 동시에 자기계발 서적으로 분류되어 있다.

직접적으로 성공 비법을 제시하는 유형부터 인문학의 탈을 쓴 유형까지, 모든 자기계발서들의 핵심 주장은 "삶의 기준을 외부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나를 찾아라',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라',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등의 다양한 변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시대의 가장 모범적인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는 <미움받을 용기> 역시 예외가 아니다. '타인이 세운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라'가 이 책의 한 줄 요약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외부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설파하는 사람들이 정작 누구보다도 사회적 성공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는 탓도 있다. '남들의 시선과 기준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그들이 돈과 명예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던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면 십중팔구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그러한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며 빠져나갈 테니 그들의 언행 불일치를 입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도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기'가 근본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적 인정을 위해 힘들게 노력하는 대신, 스스로 만족할 만큼 적당히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분명 솔깃하다.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어떤 삶이 행복한지 판단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기준은 우리 혼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부모님, 선생님, 친구, 책, TV 등으로부터 학습한 것이다.

심지어 아름다움의 기준 역시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것은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하는 옷들이 촌스러워 보인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작년의 자기계발서가 자신과 맞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올해에는 더 약발이 센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는다. 하지만 애초에 자기계발서가 제시하는 인간상이 실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내년에도 새로운 자기계발서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자기계발을 포기하거나 자기계발서를 불신하기 전까지, 그는 매년 이 무의미한 구매를 이어나갈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동안 베스트셀러가 자기계발서로 채워지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의 미움을 견딜 용기가 아니라, 남들의 미움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할 용기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것이 대단히 쿨하지 못한 품성으로 여겨지는 오늘날이긴 해도 사람은 언제나 남들의 시선을 신경써오지 않았는가.

만약 자기계발서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부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정상적인 사람이 아닐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실행에 옮기는 사람……. 어쩐지 사이코패스가 연상된다면 내가 너무 많이 나간 걸까.


(
lookane@gmail.com)


심리학과 철학, 그리고 정치를 재미있어 하는 20대 청년. 2014년에는 정치 팟캐스트 '좌우합작'을 진행했으며 지금은 흡연문화 개선을 위한 잡지 '스모커즈'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
http://www.thesmoker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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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그림읽기] (27) 금지된 복제 : 미움 받지 않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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