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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1.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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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의 증거 _ The eternal evidence _ Rene Magritte, 1930 [출처 : wikiart]


(뉴스투데이=김준홍 객원기자)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보통 신을 찾는다. 중요한 시험이나 사업의 성패가 달린 미팅을 앞두었을 때는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마음속으로 신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앞으로 착하게 살겠다는 일종의 협상을 벌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인간의 교활함일 것이다.

이것은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라서, 그들 역시 진리를 탐구하다 거대한 벽에 부딪힐 때 신을 찾았다. 내가 부모로부터 왔다면 한없이 거슬러 올라간 나의 조상은 누구로부터 온 것일까. 나아가 이 우주는 무엇으로부터 온 것일까.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 분명 최초의 순간에 근원적인 무언가가 있었을 것인데, 중세의 철학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도통 알아낼 수가 없었다. 오랜 고민에 지친 그들은 그것이 바로 '신'이라고 말하며 고민을 끝냈다. 더 고민한다고 해서 답을 알아낼 수 있는 종류의 의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신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세상의 근원이 '있어야 하는데 뭔지 모르겠는 것'이었다면, 영원한 것은 '있었으면 좋겠는데 뭔지 모르겠는 것'이었다.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매장 풍습은 죽은 이후에도 삶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반영하며, 신은 그 영원한 사후세계가 있음을 인간에게 보증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신은 전지전능에 더해 영원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나 같은 무신론자는 신으로부터 영원을 찾지 못한다. 대신 나는 사랑에서 영원을 찾는다.

물론 '과거 · 현재 · 미래에 걸쳐서 끝없이 계속되는 시간'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의 영원을 사랑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었고 미래의 어느 순간에 끝나기 때문이다. 설령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랑 역시 죽음이라는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영원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로서의 영원은 인간에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 과거가 어쨌건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음이 중요하며, 죽은 후의 일은 어차피 경험하지 못할 일이라 신경 쓸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에게 영원은 거창할 필요 없이 '지금 이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정도의 의미면 충분하다.

마그리트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 조르제트 베르제를 그린 뒤 <영원의 증거>라는 이름을 붙여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오늘날 연인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두 손 잡고 남산으로 올라가 사랑의 자물쇠를 단다.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 아니면 어떤가. 자물쇠 달 때의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말할 자격은 충분한 셈이다.

(김준홍 객원기자
=lookane@gmail.com)



심리학과 철학, 그리고 정치를 재미있어 하는 20대 청년. 2014년에는 정치 팟캐스트 '좌우합작'을 진행했으며 지금은 흡연문화 개선을 위한 잡지 '스모커즈'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
http://www.thesmoker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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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그림읽기] (20) 영원의 증거 : 영원한 사랑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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