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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5.10.2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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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거인 _ The giantess _ Rene Magritte, 1929 [출처 : wikiart]


(뉴스투데이=김준홍 객원기자) 함부로 입 혹은 손가락을 놀렸다가 패가망신에 이른 숱한 사례들로 미루어 볼 때, 인터넷에서 남자가 어떻다느니 여자가 어떻다느니 말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고 존중과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파한다면 도덕적으로 지당한 답일 테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만큼이나 공허하다. 혹은 - 인터넷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 노잼이다. 그래서 댓글수와 조회수가 바람직함의 지표가 되는 인터넷 세상에서 남녀는 서로를 비하하기에 바쁘다.

이를 두고 기자들은 '인터넷에서의 남녀 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지만 그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주관적 의견에 가깝다. 서로를 댓글을 통해 매도하는 것으로 모자라서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감으로 뭉친 대형 커뮤니티를 결성하는 요즘, 남녀 갈등은 앞으로도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남녀가 그토록 맹렬하게 서로를 비하하는 것은 그 행위 자체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남녀 간의 갈등은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과 매우 닮은 데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소속이 정해지며 그것을 어지간해서는 바꿀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상대의 못남은 곧 자신의 잘남이 된다는 점에서 두 갈등은 흡사하다. 한일전 축구 경기를 보며 한국 팀에게 편파적인 응원을 보내는 것이 정상이라면 남녀 간의 비하 또한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행동인 셈이다.

남녀가 극적인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은 둘을 중재해 줄 존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심화될 경우에는 제3국이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에서 둘의 화해를 촉구하기도 한다. 이렇듯 중재자라고 하면 어떤 입장으로 치우치지 않아 공평무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남녀 갈등에는 그런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없다. 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남자 아니면 여자로 태어난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대로 남녀는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기에 바빠 상대가 어떤 고충을 가지고 있는지 신경 쓰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관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마그리트의 그림 <여자 거인>은 흥미롭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꽤 오랫동안 '여자 거인'이라는 제목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를 내려다보는 여자의 오만한 표정은 그 생각을 더욱 부추겼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자. 문과 탁자의 크기를 고려해 볼 때 이 여자는 거인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나는 <남자 난쟁이>라는 제목보다 <여자 거인>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내가 그림 속 남자의 관점에서 여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내 관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김준홍 객원기자
=lookane@gmail.com)


심리학과 철학, 그리고 정치를 재미있어 하는 20대 청년. 2014년에는 정치 팟캐스트 '좌우합작'을 진행했으며 지금은 흡연문화 개선을 위한 잡지 '스모커즈'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
http://www.thesmoker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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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그림읽기] (18) 여자 거인 : 관점으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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