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신(神)의 눈물과 인간의 염치(廉恥)’- 자연의 현상은 신(神)의 마음(心)을 표현하고 있다.

윤재은 수석전문기자 입력 : 2014.04.29 11:14 |   수정 : 2014.04.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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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신(神)의 눈물과 인간의 염치(廉恥)’- 자연의 현상은 신(神)의 마음(心)을 표현하고 있다.

(뉴스투데이=윤재은 수석전문기자) ‘자연의 현상은 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신이 만든 자연에서 신은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자연의 현상으로 표현한다.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애통(哀慟)해 할 때 신은 그들의 아픔을 비와 바람으로 대신한다. 지구상의 역사 속에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나, 고귀한 사람의 죽음이 있을 때면, 신은 언제나 비를 통해 신의 눈물을 대신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산 자들의 애환(哀歡)에는 바람을 불어 위로(慰勞)해 줬다.

신에게서 부여받은 순수하고 고귀한 ‘생명(生命)’이 인간들의 탐욕과 욕망으로 그 빛을 잃게 된다면, 천상의 신들은 인간의 마음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겠는가? 신은 우주와 자연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안식하길 바라며 생명을 부여하였다. 그렇게 고귀하게 태어난 생명이 그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천상의 세계로 발길을 옮긴다면, 인간은 신에게서 어떠한 구원을 얻으려 하는 것 일까?

신은 자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거두어 갈 때, 신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워하는지 ‘신(神)의 자식(子息)’들은 알아야 한다. 신은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가장 소중한 생명을 주었으며, 인간들은 그 은총을 통해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이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희생시킨다면, 신은 그들의 탐욕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죄 값은 죄를 저지른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에게까지 고통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의 세월호 참사로 인해 신은 신의 미소가 담겨있는 태양을 구름 속에 감추고 많은 비를 내려 아픔을 달래고 있다. 차가운 바다 속에 수많은 생명을 묻어버린 인간의 비열한 욕망(慾望)을 꾸짖기라도 하듯, 신은 하염없이 비를 내리며, 바다의 파도를 일렁거리게 한다. 차가운 바다 속 육중한 쇳덩이 속에서 아직도 부모, 형제, 자식을 보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과 육체는 인간의 비열한 욕망을 탓하며, 산 자들의 무거운 죄를 앉고 신의 곁으로 가버렸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서로 다른 길을 간다. 산 자는 죽은 자의 죽음을 뒤로 한 체 자신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수많은 말을 한다. 이러한 말들은 진실을 말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한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저 죽음을 통해 산자들의 욕망(慾望)에 침묵(沈黙)할 뿐이다. ‘침묵(沈黙)은 알고도 말하지 않는 용기 있는 절제’로서 정의롭지 않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 묵언(黙言)이다.

이 글을 쓰는 새벽에도 어제처럼 비는 내린다. 처마를 통해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와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울부짖음이 가슴을 아리는 슬픈 음악소리와 같다. 이 소리는 신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가 하나가 되어 아픔을 표현하는 소리이다. 몇일 째 미소를 감춰버린 태양의 신은 언제쯤 이들의 가슴에 희망의 빛을 보여줄 수 있을까?

모두가 내 탓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당신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슬픔보다 분노가 앞선다. 이들의 무책임과 무능함을 보면서 인간의 ‘염치(廉恥)’없음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말없이 침묵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앎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국민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은 사람들은 ‘염치(廉恥)’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어떤 일이 발생할 때 잘되면 내 탓이고, 못 되면 네 탓이라는 식의 이율배반적 태도는 인간의 사학한 면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염치없는 인간의 모습이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自畵像)인 것이다.

세상에 있어 가장 염치(廉恥) 있는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염치(廉恥)를 알았기 때문에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논하는 과정에서 비굴한 삶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남들이 하는 방법으로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기보다는 당당하게 할 말을 하고 죽겠다는 강한 신념을 택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죽음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비열한 짓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서 정의를 위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일 뿐 아니라 명예로운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에 민감한 사람들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일에 능숙하다. 이들의 눈과 정신은 정의를 쫒기보다 자신의 이득을 쫒는다. 이러한 세태가 오늘을 살아가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가슴에 삶의 의미를 저하시키고 있다.

죽음이란 슬프기도 하지만 고귀하기도 하다. 하지만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선한 사람이 비겁한 사람들의 염치없는 행동 때문에 죽음을 당한다면, 이는 가장 불쌍하고 가엾은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죽음은 고귀하기보다 슬픈 죽음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이번 사건은 염치없는 사람들의 오만과 무책임이 불러온 인재이며 비극(悲劇)이다. 우리들은 소크라테스의 당당한 죽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국가는 국가의 역할을 다하고, 국민은 국민의 역할을 다하면서 국가와 국민이 하나 되는 사회여야 한다. 이러한 국가만이 미래가 있다.

국가는 자신들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국민은 국가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 하는 사회는 불안한 사회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국민이 불안할 때 누군가 책임 있는 사람들은 책임을 지고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한다. 이러한 용기가 ‘인간이, 인간으로, 인간에게 행해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며, 염치인 것’이다. 신은 인간의 최소한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오늘도 비를 내리고 바람을 불어 세상을 정화(淨化)하고 있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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