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이긴 연예인 (10)] '빈 술독'에 갇혔던 진성, 세 차례의 '절망'을 딛고 '사랑'을 노래

염보연 기자 입력 : 2020.10.02 04:26 ㅣ 수정 : 2020.10.02 04:26

부모에게 버림받은 황폐함을 딛고 '늦게 켜진 등불'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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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사진제공=TV조선]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트로트 가수 진성은 각종 트로트 예능에서 심사위원이자 가수로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해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무명가수들을 토닥이는 모습을 보여줘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캐릭터로 각인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에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진성도 사실은 늦게 켜진 등불이기 때문이다. 50대에 볕이 들기까지, 무려 40년 동안 무명시절을 보냈다. 어릴 적 부모님에게 버려진 후, 삶은 고난이 가득했다. 그를 위로하고 곁을 지켜준 것은 노래뿐이었다. 그렇게 노래는 그의 운명이 됐다.

 

그 운명의 끈을 잡고 3차례의 절망을 이겨내고 마침내 부모님의 '사랑'앞에 서게 됐다. 무명가수들을 격려하며 베푸는 사람이 된 것은 이러한 내면의 변화가 이끌어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 첫 번째 절망, 부모님에게 버림 받은 유년기…노래로 외로움 달래

 

1960년, 진성은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3살에 가정불화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집을 나가고, 형과 함께 친척집을 옮겨 다니는 신세가 됐다. 고구마 하나로 하루를 버티고, 술밥을 훔쳐먹다가 빈 술독에 갇히기도 했다. 친척들 사이에서 눈칫밥을 먹은 시절은 평생 가장 괴로운 기억으로 남았다.

 

8년 만에 부모님이 돌아왔지만 더 큰 상처만 남았다. 일 년 남짓 함께 사는 동안 부모님은 끝없이 다투었고, 결국 어머니는 외삼촌과 다시 떠났다. 12살 시절에 어머니를 태운 버스가 떠난 터미널에 홀로 남겨진 진성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에 불탔다.

 
[사진제공=TV조선]
 

서러운 유년기, 부모님 대신 진성을 지켜준 것은 노래였다. 5살 무렵 말보다 노래를 먼저 배웠다. 노래는 사람들에게 신동이라는 칭찬을 듣게 해주었다. 노래를 부르면 가슴에 맺한 외로움과 슬픔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다. 진성은 ‘서울에 가서 가수가 되야겠다’는 꿈을 품고 고향을 떠났다.

 

■ 두 번째 절망, 32년여간의 무명 가수 생활…가수의 꿈 버리지 않아

 

진성은 17살부터 성인으로 나이를 속이고 유랑극단과 밤무대를 전전했다. 노래를 부르는 일은 좋았지만, 유랑생활은 고달팠고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적은 돈이 쥐어졌다. 결국 생계를 잇기 위해 과일 장사, 김밥장사, 리어카 행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20대부터 메들리 음반을 녹음하기 시작했고, 30대가 넘어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첫 앨범 ‘님의 등불’을 발표했다. 이후 메들리 음반 외에도 ‘내가 바보야’, ‘태클을 걸지마’ 등 여러 오리지널 곡을 내며 이름을 알렸지만, 여전히 빛을 보지 못했다.

 

무엇하나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 없이 세월만 흘렀다. 지긋지긋한 반지하방에서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겨운 날들이었다. 고달픈 생활을 버티게 한 것은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노래에 대한 열망과, 청중의 환호였다.

 

49세에 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부인은 진성의 메들리 음반을 오래도록 들어온 팬이었다. 마침 진성이 다니던 식당 사장이 부인의 친구여서 인연이 닿았다.

 

2012년, 진성의 인생곡 ‘안동역에서’가 그의 가수 인생을 뒤바꿨다. 2008년 발매 당시에는 반응이 없었다가, 정경천 작곡가가 편곡을 한 버전이 그해 발표되면서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히트를 쳤다. 심지어 음원차트까지 올랐다.

 

안동역 역사에 노래비가 세워질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진성은 드디어 인기가수로 올라섰다.

 

■ 세 번째 절망, 인생의 황금기에 덮쳐온 병마… 아내의 사랑으로 이겨내 

 

가수로서 성취를 이루고, 반백년을 시달리던 가난에서 벗어났다. 삶의 기쁨을 누릴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병마가 진성을 덮쳤다. 2016년에 림프종 혈액암과 심장판막증 진단을 동시에 받았다.

 

투병 한 달만에 몸무게가 20kg이나 줄어들었다. 병원에 입원한 진성은 해가 뜰 때까지 복도를 서성이며 밤을 지새웠다. 의사가 없는 밤에 자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절망 속에서 진성을 지탱한 것은 부인이었다. 부인은 집안에서 무공해 채소를 키우고, 직접 장을 담그는 등 진성을 간병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산에 가서 진성을 위한 약초를 캐다가 미끄러져서 머리를 크게 다치기도 했다. 다행히도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사진제공=채널A]
 

불우한 가정에서 외롭게 살아온 진성은 부인의 헌신에서 큰 힘을 얻었다. 그만큼 삶이 간절해졌다. 삶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지면서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분노와 원망이 흐려졌다. 무엇보다도 팬들의 환호성과 무대가 그리웠다.

 

결국 진성은 3년 6개월여만의 투병 끝에 증세가 완화되자 다시 무대 앞에 섰다. 림프종 혈액암은 완치가 없는 병이기에 언제 다시 상태가 악화될지 모른다. 하지만 진성은 평생 그랬듯, 이번에도 노래를 선택했다.

 

■ 방송가 트로트 열풍 타고 맹활약…“부모님, 건강한 몸과 재능 주셔서 감사”

 

진성은 2019년 9월 MBC ‘놀면 뭐하니?’에서 신인가수 유산슬의 활동명을 지어주고, 멘토로 활약하면서 대중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낙천적인 성격, 재치있는 입담, 인생의 무게가 실린 깊이 있는 무대가 젊은 세대에까지 재조명됐다.

 

2020년, 더욱 뜨거워진 트로트 열풍을 타고 ‘미스터트롯’, ‘트롯신이 떴다’, ‘히든싱어’, ‘보이스트롯’ 등 케이블과 공중파를 막론하고 방송가 블루칩으로 누비고 있다.

 
[사진제공=MBC]
 

진성의 노래 가사는 그가 걸어온 고된 삶의 뒤안길이다. ‘님의 등불’은 고된 시련들을 헤쳐갔던 의지가 담겼고, ‘보릿고개’는 부모님 없이 배고팠던 유년기의 설움이 녹아있다.


진성의 노래는 마치 창을 하는 듯, 한이 서리고 애절하면서도 어려움을 극복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그렇기에 가난, 외로움, 이별, 투병 등 비슷한 시련을 겪어온 사람들에게 더 큰 위로와 응원으로 와닿는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딛고 '사랑'을 회복


진성에게 부모님은 평생 원망과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힘들 때면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났다. 힘든 일이 있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아버지의 산소를 찾았다.


사실 진성의 노래 실력은 아버지를 닮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원망을 하면서도 아버지의 삶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기도 했다.


살아서는 부자의 정을 나눈 일이 거의 없었지만, 긴 무명시절에 지쳐 아버지의 산소를 찾은 날, “누가 너한테 태클을 거냐? 내가 다 지켜줄게!”라고 응원해주는 환청을 들었다. 그 기억을 담아 만든 노래 ‘태클을 걸지마’는 진성이 가수로서 좀 더 뚜렷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의 삶이 점점 이해가 가고, 미움이 흐려졌다. 가수로서 조금씩 성공할수록, 가장 자랑하고 싶은 상대는 어머니였다. 처음으로 가요무대에 나서게 됐을 때 결국 어머니를 맨 앞자리에 초대했다.


“세월이 좀 더 지나면 어머니와 눈을 마주하고 그동안 불효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모님이 두 발로 걸어다니게 건강하게 낳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 나이가 됐잖아요. 좋은 목과 재능을 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사랑 받는 가수가 되었어요. 그것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세 차례의 절망을 딛고 '사랑'을 노래하게 된 진성은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희망을 주는 인물이 됐다.

 
[사진제공=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