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전쟁사](42) 청춘들의 출혈이 계속된 적근산 735(김일성)고지 전투(상)

김희철 기자 입력 : 2020.07.13 15:20 |   수정 : 2020.07.13 15:20

대대적인 공방전 대신 전선일대의 요충지 탈환을 위한 치열한 국지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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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필자가 소·중대장 시절에 적근산 주변의 735, 633, 602고지 등을 수색할 때 6·25남침전쟁 당시 치열했던 전흔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휴전 직전 필자의 장인(故강철 대령, 종합1기)이 11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했던 일화와 관련된 현장도 발견했다.

 

1950년 10월말 한국전에 개입한 중공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서울까지 점령 하였으나 아군의 반격으로 후퇴, 현재의 휴전선을 따라 전선이 형성되었다. 그 후로는 대대적인 공방전대신 전선일대의 요충지 탈환을 위한 국부적이고 치열한 고지전이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적근산고지전.png
▲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 [사진제공=동영상 캡쳐]

 

735(김일성)고지의 처절한 공방전, 야릇한 고요함과 정적이 전해준 공포

 

1951년 8월초에 국군 2사단은 중부전선 적근산과 김화를 연결하는 산악지대에 주저항선을 형성하고 사단 좌측에 31연대, 우측에 17연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17연대 정면에 위치한 735고지는 일명 ‘김일성 고지’로도 불리웠고 피아간 상대방을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따라서 쌍방이 이 고지를 점령확보하기 위해 수차에 걸쳐 뺐고 뺐기는 공방전이 전개 되었다.

 

2사단장 함병선 준장은 8월3일에는 사단유격대대와 17연대 1대대로 하여금 735고지를 공격, 탈취하였으나 적의 역습으로 후퇴하는 등 수 차례에 걸친 탈환전이 되풀이 되었다. 1951년 8월8일 17연대가 이 고지를 확보하자 사단 예비연대였던 32연대와 전선방어 임무를 교체하였다.

 

32연대는 예하 7중대를 735고지에 배치하고 그 후방 약 2km 지점에 735고지를 바라볼 수 있는 785고지정상에 2대대OP(관측소 또는 지휘소)를 설치하였다. 7중대장은 대대관측장교 윤영목 중위(현재 미국 오레곤 6.25참전 유공자 회장)와 육군종합학교 9기 동기생인 김영국 중위였고 그의 직속상관은 2대대장인 박동석 소령이었다.

 

최전방 요충지 735고지에는 윤중위의 후배관측장교인 이소위가 관측병, 통신병, 연락병 3명과 함께 7중대장을 위한 관측 및 포병지원임무를 맡고 있었다. 김영국 중위는 평소 친밀했던 군 동기인 관계로 수시로 윤중위에게 포지원을 잘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참고로 당시 2사단에는 105mm 곡사포 1개대대라는 미약한 화력지원력이 전부였다.

 

1951년 9월, 32연대 7중대가 735고지 방어임무를 맡고 있던 중 9월1일 밤 20:30시경부터 중공군 80사단 239연대가 대대적인 기습공격을 가해왔다. 735고지에 배치된 포병관측장교 이소위는 즉시 긴박한 상황을 보고하고 동시에 포병지원사격을 요청해와 735고지 능선 넘어에서 공격해 오는 중공군에 고사계 사격으로 저지 및 선멸을 시도하였다. 동시에 적군 상공에 조명탄을 계속 발사하여 아군의 적정관찰과 방어사격을 용이하게 하였다.

 

그러나 적군은 극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방어하는 7중대의 6배가량 되는 2개대대 병력의 절대다수 인해전술로 물밀듯 중대경계초소와 소대방어선을 강타하며 735고지 정상을 향하여 공격해왔다.

 

적이 아군 주진지에 접근함에 따라 포병의 화력지원은 아군 피해를 우려해 점점 어려워졌다.  7중대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포병관측장교의 유선망도 단절돼 무전기로만 교신했다. 윤중위는 대대OP에서 보병대대장 박소령과 긴밀한 보·포협동을 유지하면서 계속 포병대대본부에 전황을 보고하여 화력지원을 요청했다.

 

얼마 후 735고지에 이소위와 함께 있던 관측병이 무전으로 “이소위님이 쓰러졌습니다. 적군이 중대OP 부근까지 접근해 왔으며 이 상황에서 도저히 포병 지원 임무를 수행할 수 없으니 일단 대대OP로 철수해야 되겠습니다.”라고 보고해 왔다. 사실상 적과 밀집된 이 시점에서 조명탄 이외의 포격지원이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상황을 즉시 포병대대본부에 보고하고 7중대 관측장교 이소위의 철수를 통보하였다. 약 1시간 후인 23:30시경에 이소위가 관측병 등에 업힌 채 통신병, 연락병과 함께 윤중위가 있는 대대OP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 당시 이소위는 완전히 실신 상태였으며 다행히 상처는 없기에 나의 야전 천막속에 눕히고 안정을 되찾도록 하였다.

 

7중대의 전방 관측반이 735고지에서 철수한 후부터 포병지원 임무는 전적으로 대대 관측장교인 윤 중위가가 맡게 되었고 보병대대 OP에서 대대장과 긴밀한 협조하에 모든 포병사격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하루가 지난 9월2일 자정이 넘어서도 전투는 계속됐고 01:00시경에는 735고지 도처에서 백병전이 감행되었으며 적군은 7중대 OP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김영국 중대장은 시시각각으로 대대장에게 중대의 위급상황을 보고하였으며 대대장은 수차에 걸쳐 중대장에게 “후퇴하지 말고 결코 사수하라”고 지시하였다.

 

그 후 01:30시경에 김영국 중대장으로부터 “적이 735고지 중대OP까지 침투했고 중대 잔여병력이 분산되었으니 이제는 아군 피해를 염려 말고 735고지 정상에 진내사격을 가해 적군을 저지해 달라”는 최후의 요청이 들어왔다.

 

이후 김영국 중대장과 그의 통신병과의 통신은 두절되고 02:00시경에는 쌍방의 총포성이 완전히 멈췄다. 그 후에 닥쳐온 정적,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야릇한 고요함이 공포로 밀려왔다. 이로써 735고지는 적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일부잔여 7중대원은 고지 각처에 은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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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근산 지구 전적비와 당시 전투에 참가한 2사단을 작전통제한 미9군단의 예하 사단 배치도 [자료제공 = 국방부/육사]

 

7중대의 원한을 갚은 6중대의 735고지 탈환전

 

그런데 적은 735고지를 점령한 후 새병력을 투입해서 대대OP(관측소)를 향해 계속 공격해 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2사단에서는 735고지 재탈환작전을 계획하고 역습부대로 32연대 6중대를 선정해 다음날 9월2일 06:00시에 제6중대 병력을 735고지 산기슭에 배치하고 공격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이때 대대OP에는 제2사단장 함병선 준장이 참모진과 미고문관을 대동하고 6중대 탈환전을 지휘하기 위해 도착했다.

 

6중대의 공격개시에 앞서 사전에 준비된 작전계획에 따라 공격준비사격으로 미군 함제 전폭기의 735고지 폭격이 시작되었다. 대대관측장교 윤 중위는 이 전폭기들을 위해 WP(백린)탄을 735고지 정상에 발사해서 목표확인을 도와주었다.

 

전폭기 4대 편대가 계속 교대로 날아와 고지에 새로 구축한 적의 방어진을 강타했다. 약 30분간 계속된 폭격이 끝난 다음 제2사단을 지원하는 18포병대대는 물론 인접 미9군단 예하의 8인치와 240mm 대형 장거리포까지 동원하여  포사격이 계속되었다.

 

공중에서의 폭격과 지상에서의 집중포격으로 735고지는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 이로 인해 지도상의 735m고지가 1m낮아진 734m고지로 부르게 되고 후일 일부 전사에도 734고지로 기록하게 되었다.

 

06:00시 포격이 멈추자 6중대는 일제히 735고지를 향해서 공격을 개시했다. 중대가 고지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 아군의 폭격과 포격을 피해 참호속에 피신해 있던 생존 중공군이 일제히 밖으로 나타나 소총,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반격을 가해왔다.

 

6중대의 공격은 일진일퇴를 거듭했으며 그 중간중간에 정밀포격지원으로 적의 반항을 약화시켰다. 6중대는 약4시간에 걸친 격전 끝에 735고지 부근에 산재해 있던 7중대원들과 합세하여 10:00시경 드디어 735고지를 탈환하였다.(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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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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