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66)]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GOP철책 이중화공사

김희철 기자 입력 : 2020.06.22 19:17 ㅣ 수정 : 2020.06.22 19:18

지뢰사고로 인접 사단 육사동기 이충원 대위 중상, 소대장 근무시절엔 분대장 순직하여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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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이번 16일 북한은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고 그곳에 포병부대 등을 주둔시키며 우리 군과 국민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중대장 시절에도 이러한 북한 도발과 위협에 대비한 경계태세 강화를 위해 GOP철책 이중화공사가 있었다.


공사를 앞두고 필자가 소속된 독수리연대의 창설기념일인 6월13일에 연대체육대회가 있었고 이를 대비하여 대대에서도 5월말에 중대 대항 체육대회를 했다. 이때 군계일학의 멀티플레이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란 무리 지어 있는 닭 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뛰어난 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분야에 지식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칭한다.


▲ 2015년 북한군이 불법매설한 목함지뢰 3발이 폭발하여 수색작전 중인 우리 부사관 2명에게 중상을 입힌 DMZ 지뢰도발 현장 [사진자료=동영상캡쳐]

  

연대 창설기념 체육대회 종합우승은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GOP철책 이중화공사’에 투입시키는 미끼?


5월말 대대의 중대 대항 체육대회에서 소대장 함재명 소위(육사42기)가 달리기 등 모든 운동을 월등히 잘했고, 중대본부의 김석동 일병이 큰 키에 만능 스포츠맨이라 축구, 배구 등 모든 종목에 참가하여 배구, 족구, 줄다리기에서 우승하며 결국 종합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물론 연대 창설기념 체육대회에서도 중대가 주축이 된 종목인 ‘군무’에서 우승, ‘축구’는 준우승으로 대대가 ‘종합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였다. 필자를 신뢰하며 아껴준 대대장에게 몫을 다한 부하의 도리를 다한 것도 좋았지만 대대와 연대에서 연속 우승함으로써 중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어쩌면 이 우승은 미끼였는지도 몰랐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시행하는 GOP철책 이중화공사에 곧 투입해야 할 대대를 우승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가졌지만 아랑곳 없이 종합우승으로 넘치는 사기속에서 우리는 다음 임무 수행에 몰입했다. 


허나 2015년 GOP 철책 통문에서 북한군이 불법 매설한 목함지뢰 3발이 폭발하여 수색작전 중인 우리 부사관 2명에게 중상을 입힌 DMZ 지뢰도발 사건에서 보듯이 GOP철책 이중화공사는 매우 위험한 임무였다. 


인접 사단 지뢰 사고로 긴장된 가운데 시작된 GOP철책을 이중화 공사


당시 GOP철책 앞의 불모지에는 매설된 지뢰 뿔들이 식별되고 철책 뒤에는 미확인 지뢰지대였다. 이 단일 GOP철책을 이중화 시키려면 당연히 주변 지뢰지대를 확인하여 제거 후 공사를 시작했기에 사전 준비와 교육이 더 중요했다. 


때마침 인접 사단에서 육사 동기 이충원 대위가 지뢰사고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후송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필자가 소대장 근무시절 같이 근무했던 분대장도 지뢰 사고로 안타깝게 순직했기에 필자는 중대원들 보다 더 긴장했다. 하지만 ‘인명재천(人命在天)’이고 어차피 임무는 수행해야 했다.


공사 투입할 GOP ㅇㅇ산 구 1통문 지역에 연대체육대회 1주일 뒤인 6월 20일 도착하여 숙영지를 편성했다. 약 한 달간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여 완전히 야외 생활관처럼 24인용 텐트에 침상까지 준비했다.


우리 중대는 9개월전에 이미 폭우로 전도된 150m의 GOP철책 수해복구 공사([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4)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굼벵이의 '구르는 재주' 발견”참조)를 경험했기에 타 중대 보다는 더 숙달되어 효율적으로 공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뢰 탐지 및 제거 작업에 투입하는 병사들에게는 사선(死線)을 넘나들어야 하기에 유서와 머리카락 등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를 하고 단단한 각오로 공사에 임했다. 


이미 경험했던 GOP철책 수해복구 공사처럼 신속히 끝내야 할 이유도 없고, GOP지역은 야간 경계근무 때문에 낮에만 작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이 있는 우리 중대의 공사 진도는 타 중대와 비교될 정도로 신속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2주일이 지나면서 긴장이 다소 이완되는 현상도 식별되어 간부들에게 안전을 재차 강조했다.

 


▲ 현재 2중화된 GOP철책에서 순찰하는 근무조와 지뢰지대에서 지뢰탐지 및 제거하는 모습[사진자료=국방부]


완승 위해 군계일학의 멀티플레이어와 하찮아 보이던 굼벵이의 '구르는 재주'도 필요


제나라의 환공은 ‘양장불기후목(良匠不棄朽木), ‘명장무유일능(明將無遺一能)’이란 말을 남겼다. ‘양장불기후목(良匠不棄朽木)’은 훌륭한 장인은 썩은 나무라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고, ‘명장무유일능(明將無遺一能)’이란 현명한 장수는 단 한가지 재능 있는 자라도 버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떤 조직이든 군계일학의 멀티플레이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완벽한 마무리로 최종 승리하기 위해서는 제나라 환공의 말처럼 인재를 아끼며, 하찮아 보이던 굼벵이의 '구르는 재주'도 필요하다.


소대장과 분대장 및 고참병사들은 9개월전에 GOP철책 수해복구 공사의 경험으로 지시를 내리기 전에 다음일들을 찾아 스스로 할 수 있었고, 그들의 경험에 따른 지휘통제 아래 하찮은 굼벵이같은 하급자들도 적극적이고 성실한 자세로 나름대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사 기간중 사단장, 부사단장, 연대장의 현장지도가 수시로 있었는데, 지역 터줏대감인 필자의 공사 현장에 집중되었고 지뢰확인, 공사 조편성, 경계 및 안전 대책 등의 설명을 듣고 현장 확인후에는 모두 ‘안심하며 고생한다’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당시에 대대의 간부들이 이용했던 오토바이는 대부분 125cc였는데 필자는 전출간 권성룡 군의관이 사용하다가 넘겨준 88cc의 작은 스쿠터였지만, 좁고 긴 담당구역을 쉽게 넘나들며 전 중대원을 지휘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퇴근을 못하는 시간이 한달이나 되어 기간 중 휴식 및 취침 시간에 88cc의 작은 스쿠터를 이용하여 독수공방하는 가족을 만나러 잠시 빠져나가는 일탈도 할 수 있었다. 그때 안전 걱정만 하고 있던 남편의 기습 방문에 반가워하며 안심하던 가족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느덧 공사를 시작한지 한달이 지나 7월22일이 되자, 다행이도 타 부대와 같은 안전사고 한 건도 없이 대북 경계태세를 강화시키는 GOP ㅇㅇ산 구 1통문 지역의 철책 이중화 공사는 마무리 되었고, 그 이후 우리가 공사한 지역으로 북한군이 침투에 성공한 사례 역시 한 건도 없었다.


‘양장불기후목(良匠不棄朽木)’, ‘명장무유일능(明將無遺一能)’의 마음으로 능력 여부를 떠나 모든 부대원들을 아꼈고, 또한 전 중대원이 일치단결하여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을 추구한 결과였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