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전쟁사](40) 중공군의 '유엔군 보급선 차단'을 막아낸 호주대대의 마량산 전투

김희철 기자 입력 : 2020.06.15 16:11 |   수정 : 2020.06.15 16:11

‘코만도 작전’의 격전지이자 참호전 직전에 치루어진 마지막 기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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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6.25남침전쟁에서 '코만도 작전(Operation Commando)'은 1951년 10월 3일부터 10월 15일까지 유엔군에 의해 수행된 공세적 기동전이다. 

국군 1보병사단과 1영연방사단을 포함한 미 1군단은 제임스타운 선을 포위하여 중공군의 제42군, 제47군, 제64군, 제65군을 섬멸하였다. 317고지 또는 마량산이라 불리는 이 고지는 코만도 작전의 격전지였으며 참호전이 되기전에 치루어진 호주군의 마지막 기동 전투였다. 이 공세 이후 공산군은 서울 인근의 유엔군 보급선을 차단하는 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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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남침전쟁 중인 1951년 6월, 센츄리온 탱크에 올라타고 임진강 북쪽 진지로 이동하는 호주군 모습 [자료제공=(사)월드피스 자유연합]

 

임진강 일대의 ‘마량산(317고지) 전투’로 유엔군의 ‘코만도 작전’ 완결 

미 1군단의 공세인 ‘코만도 작전’은 민덴 작전 동안 새로 형성된 와이오밍 선에서 1951년 10월 3일부터 시작되었다. 

1951년 10월 8일까지 공세는 지속되었고 와이오밍 선 남쪽의 몇몇 고지가 공산군의 수중에 있었지만 유엔군은 와이오밍 선 대부분을 수복했다. 폴차지 작전을 통해 남아있는 고지들이 포위되었고 전선도 10km 북상했지만 미국 1기병사단은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 일본으로 철수했다.
 
코만도 작전의 마지막 전투는 10월 8일까지 이어졌지만 양측 간의 공방전은 중공군 춘계공세 때와 유사하게 임진강 일대에서 벌어졌다. 이 작전에서 승리한 결과로 공산군의 유엔군 보급선 차단 기도를 거부시킨 성과도 올렸다.   
 
 
이 전투 이후 중공군과 유엔군은 전면적 공세보다는 지연전과 교착전에 초점을 두었다. 호주군이 참전한 전투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제1차 마량산 전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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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10월, 1영연방사단의 ‘마량산과 고왕산 전투’ 상황도와 현재 임진강 필승교 옆 ‘태풍전망대’ 모습 [자료제공=국방부]


호주군의 ‘능선 달리기(Running the ridges)’ 기동전을 끝으로 참호전으로 고착화돼 

마량산 전투(Battle of Maryang-san)는 전선이 고착되어 지루한 참호전이 되기 직전인 1951년 10월 3~8일에 치루어진 호주군의 마지막 기동 전투였다. 호주군 3대대가 소속된 1영연방사단은 임진강을 건너 중공군 19사단으로부터 고지 전선을 탈취하려 시도했다. 중공군의 전선은 연속적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주요 고지위에 중대 및 대대 규모의 참호들로 포진되었다.

3대대를 지휘하는 프랭크 하세트 중령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뉴기니 전역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처음 개발된 전술을 사용했다. 일명 ‘능선 달리기(Running the ridges)’라 불린 이 전술은 산비탈을 올라가는 대신 고지의 이점을 살리며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능선을 따라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10월3일, 뉴질랜드 16야전 포병연대 및 영국 국왕의 아일랜드 8기병대의 센츄리온 탱크를 지원 받은 28여단의 공격으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먼저 3대대 B중대는 199고지를 확보했으며 하세트 중령은 이 고지를 이틀 후 마량산 능선을 따라 가할 집중공격을 위한 기지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한편 C중대는 남쪽의 다음 고지인 고왕산을 공격하는 영국 국왕의 슈톱샤이어 경보병대(KOSB)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진격하였다. 그러나 슈톱샤이어 경보병대(KOSB)의 공격은 실패하였고, 그 다음날 C중대가 북동쪽으로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비로서 ‘능선 달리기(Running the ridges)전술’ 시행을 위한 여건이 조성된 마량산에 대해 10월5일부터 위의 상황도처럼 대대적인 공격이 개시되었다.

우선 호주군이 마량산 남쪽으로 집중공격할 것이라고 중공군을 속이면서 A중대는 평행 능선을 따라 서쪽을 공격하여 진지를 확보하고 그 지역에 중공군의 예비대를 끌어들였다. 

최북방 능선을 타고 가해진 집중 공격은 일련의 중대 공격들로 이루어졌다. 먼저 B중대는 위스키 지형을 확보하고 D중대가 돌파 공격으로 중공군 진지 2개를 확보하는 동안 화력 지원을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고왕산으로부터 우회로로 진격한 C중대는 능선 봉우리를 따라 B중대와 D중대를 초월해 마량산 정상을 신속하게 점령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경첩고지(The Hinge)’와 ‘217고지’가 중공군 수중에 남아 있었다. 3대대가 고지 전체를 확보하기 위해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단장은 왕립 노섬벌랜드 퓨질리어(RNF)를 파견해 217고지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10월7일, 마량산 줄기를 따라 전선을 수습한 용맹한 3대대는 계속 공격하여 ‘경첩고지(The Hinge)’마저 점령했다. 

때마침 역습을 위해 중공군 571연대 3대대가 도착했고 호주군 참전이래 최악의 경험이었던 적의 포격과 방금 도착한 중공군 대대의 연속 공격이 이어졌으나 호주군은 결사적으로 막아냈고 영국군 대대가 마량산에 도착하면서 전투는 끝났다. 이 과정에서 양쪽 모두 큰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중공군은 패배를 인정하고 2km 떨어진 다음 고지선으로 후퇴하며 ‘217고지’에서도 철수 하였다. 결국 코만도 작전이라 불리는 미국 1군단의 제한 공세 기간 전투에서 중공군은 결국 임진강에서 제임스타운 선까지 밀려나게 되었고, 중공군의 4개 사단은 전투력을 상실했다. 

이후 휴전 협정이 진행되면서, 이 전투는 6개월 간 이어진 기동 공세의 마지막 전투로 남게 되었다. 이후 6.25남침전쟁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서부 전선과 비슷하게 고지전 또는 참호전이라 불리는 지루하고 고착된 전선에서 제한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고, 이 전선은 휴전협정 조인 시까지 밀고 당기는 접전이 계속되다가 현재의 군사분계선으로 결정되었다.  

오늘날, 이 마량산 전투는 용맹한 호주 육군이 6.25남침전쟁에서 중 보여준 뛰어난 활약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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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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