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고공비행] 검찰은 왜 기각이 뻔한 영장을 청구했을까

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20.06.09 11:07 |   수정 : 2020.06.09 11:07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 3명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9일 기각됐다. 영장을 심사한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원 부장판사는 또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되었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하여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하였다고 보인다”며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시세조종 등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내용이 이 부회장을 구속할만큼 충분치는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yun.jpg
윤석열 검찰총장(가운데)과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왼쪽),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법조계의 전반적인 반응은 ‘무리수’라는 것이었다. 두가지 측면이었다. 범죄혐의 내용에 대해서도 다툼이 있고, 그런 상황에서 굳이 구속수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따라서 영장발부 전망에 대해서도 영장판사의 개인적 판단이 변수이긴 하지만 기각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게 전망됐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결과적으로 기각될 것이 뻔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까?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수사주체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사이의 갈등설과 의견일치설이 동시에 존재한다.
 
검찰의 영장청구 움직임을 읽은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이 지난 2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수사심의위라는 제도는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018년 너무 막강한 검찰권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검찰개혁 제도다.
 
검찰권 남용 논란이 있는 주요 사건을 외부인들이 참여하는 이 수사심의위원회에 부쳐 제3자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취지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은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굳이 영장청구를 강행하게 되면 “검찰이 만든 제도를 검찰 스스로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올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3일 검찰총장 주례(週例) 보고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올리자 윤 총장은 “이 정도 사안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 안 하면 다른 어떤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영장을 청구할 수 있겠느냐”며 승인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영장은 기각됐고, 검찰의 마구잡이식 영장청구 행태, 즉 검찰권 남용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게 됐다. 검찰은 왜 이런 행태를 반복하는 것일까?
 
통상 윤석열 검찰총장 같은 특수통 검사들은 수사를 통해 사건을 만들어 내는 기획수사를 많이 하다보니 검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입장이다. 반면 과거의 공안통 검사들처럼 전반적인 국가상황이나 여론을 많이 감안하는 소극적인 검찰권 행사론자도 적지 않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등 적극적인 검찰권 행사를 통한 적폐수사로 한때 문재인 정부 출범의 최대의 공로자였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장관 및 울산 부정선거 의혹 수사로 이 정부와 진보세력의 적이 됐다.
 
지금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보수단체는 윤석열 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플래카드를 수십개씩 걸고 시위를 벌이고, 진보단체는 윤 총장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총장 견제를 위해 만들어진 카드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올초 검사장급 인사를 통해 윤석열 사단을 대거 좌천시키고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이자 호남출신인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을 검찰 조직에서 총장 다음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보냈다.
 
윤석열 총장으로서는 검찰권 남용, 검찰권 과잉이 국가적 화두가 돼있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권리인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구하자마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행태가 영 마뜩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윤 총장은 청와대와 법무부를 업고있는 ‘막강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견제할 힘이 없었을 것이다.
 
구속영장 기각이 곧 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 수사가 영장담당 판사가 적시한 기각사유 및 그 행간에서 검찰 수사가 얼마나 무리한 것인지를 읽을 수 있다. 국가를 대신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특수부 검사의 공명(功名), 양명(揚名) 의식이 늘 더 큰 거물을 겨냥하고 때로는 무리수를 두는 것은 백번 이해할 수 있다. 실제 유능한 검사의 기질로도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검찰은 판사 개인이 독립해서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법원과 달리 준사법기관이긴 하지만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통제장치가 있는 엄연한 행정부처이다. 이번 영장청구는 애당초 하지 말았어야 할 검찰권 과잉이었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이상호의 고공비행] 검찰은 왜 기각이 뻔한 영장을 청구했을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

주요기업 채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