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현장에선] 군 고위 장성 행보가 야기한 ‘직업 정체성 혼란 시대’ 논란

김한경 기자 입력 : 2020.05.17 06:27 ㅣ 수정 : 2020.05.17 08:44

청와대부터 정치권까지 다양한 행보 속에 고위 장성의 위상 저하 나타나 / 군 조직의 본질인 '위계질서'도 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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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군 고위 장성의 정치 사회적 위상이 하락하면서 직업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일고 있다. 이런 현상이 문민화 흐름에 따른 시대적 불가피성인지 군 장성들의 잘못된 처신이나 정부 및 정치권의 잘못된 관행 파괴로 인한 것인지 논란이 거세다.

 

최근 장성 인사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에 5군단장을 마친 안준석 중장을 보직한 것이 단초가 됐다. 통상 군단장 이후 보직은 대장 진급에 유리한 자리로 이동해야 영전이다.  그런데 현역 중장을 국가안보실 1차장(차관급) 예하의 1급 비서관 자리에 임명한 것이다. 게다가 현재 안보실 1차장은 예비역 중장 출신이다.

 
상단 좌측부터 안준석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 최윤희 전 합참의장,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이철휘 전 2작전사령관, 김근태 전 1군사령관. [사진출처=연합뉴스 및 각 선거캠프]
 

1급 자리인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에 차관급인 육군 중장 임명

 

이 자리는 이번 인사에서 수방사령관에 발탁된 김도균 전 국방부 대북정책관이 준장 시절 맡았었다. 당시 김도균 준장은 국방개혁비서관을 하다가 소장으로 진급됐고, 국방부 대북정책관으로 옮겼다. 이후 3사단장을 마친 김현종 소장이 국방개혁비서관을 하면서 지난해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중장으로 진급했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다가 이번에 5군단장으로 보직됐다.

 

즉 1급 비서관 자리가 현 정부에서 준장, 소장을 거쳐 중장이 보직될 수 있는 자리로 상향 조정됐다. 군단장을 마친 중장을 무리하게 임명한 청와대의 인사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이번 인사로 3성 장군의 위상은 저하됐다. 일각에서는 정부 조직 내 위계질서가 흐트러질 수도 있어 중장 보직 이유를 설명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비서관 출신인 한 소식통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필요하면 누구라도 데려다가 쓸 수 있는 것이 청와대 비서관”이라고 말했다. 필요하면 위계질서가 좀 흔들려도 그것이 시대정신이고 바람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군은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골간으로 하는 조직이어서 위계질서 파괴가 미치는 여파가 다른 조직과 다르다”고 예비역 장성들은 말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차관급 경호처장에 예비역 대장 임명해 논란

 

군 인사에 정통한 소식통은 “민간 기업에서는 서열 파괴, 세대 파괴가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으나 군은 본질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파격의 출발점은 이명박 정부 때 차관급 자리인 대통령 경호처장에 김인종 예비역 대장이 임명되면서 비롯됐다. 당시에도 군 안팎에서는 격에 맞지 않는 자리를 받아들였다는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고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박흥렬 예비역 대장을 임명했다. 선진국일수록 대통령 경호는 별도의 직속기구 없이 경찰 조직이 주로 담당하며, 경호조직의 수장은 미국조차도 차관보급이다. 육군을 지휘하던 참모총장이 맡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직책이다.   

 

21대 총선에서 예비역 대장 출신 지역구 후보 모두 낙선

 

한편,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에 대거 출마한 최윤희 전 합참의장,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이철휘 2작전사령관, 김근태 1군사령관 등 예비역 4성 장군들이 모두 고배를 마셨다. 여당의 비례대표로 나선 김병주 전 연합사부사령관만 겨우 당선됐다. 군의 최고 계급인 대장 출신의 정치 사회적 위상이 급격히 하락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로 인해 군 안팎에서는 적어도 최고 계급인 대장까지 진출했던 사람들은 군의 위상을 생각해서라도 정치권을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회가 입법기관이기는 해도 초선의원 지위 자체가 하층부를 형성하는 것이어서 군의 위계질서에서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 있을 자리는 아니란 주장이다. 미국도 4성 장군이 의회로 진출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도 예비역 대장이 국회의원으로 진출한 경우가 있었다. 조성태·김장수 전 국방장관, 정호용·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유삼남·김성찬 전 해군참모총장, 서종표·백군기 전 3군사령관 등이다. 이 중 김성찬 대장 외에는 모두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안보 전문가로서 국회에서 일익을 담당하겠다던 포부와는 달리 초선의원의 한계만 느끼다가 하차했다.

 

4성 장군, 공직 진출 또는 명예로운 자리에서 봉사 바람직

 

일부 예비역 대장들은 “군 출신의 정치권 진출은 3성 장군 이하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며 최고 계급인 대장 출신은 그에 걸 맞는 공직에 진출하거나 명예스러운 자리에서 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이렇게 4성 장군부터 새롭게 달라진 모습을 보일 때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싹트고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가 개선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권위주의란 비판이 제기될 수 있고 다른 의견을 가진 예비역 장성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은 계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대단히 중요하고 이것이 흔들리면 조직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군 고위 장성들이 직업 정체성 혼란의 시대에 놓인 상황에서 대장 출신부터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