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 ⑤ 인터뷰 : 보청기 거부하는 복합소재 대가의 성공 철학

김한경 기자 입력 : 2020.04.27 16:02 ㅣ 수정 : 2020.04.27 16:51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도 없다’/복합소재로 세계 최고기업의 꿈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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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2일 한국화이바 창립자인 조용준 회장을 직접 만나기 위해 본사가 있는 밀양으로 출발했다. 기자가 11시30분경 밀양역에 도착하자 안내차량이 나와 있었다. 회사로 가는가 싶었는데 도착한 곳은 인근에 있는 중식당이었다. 식당에는 조 회장이 큰아들인 조문수 한국카본 대표와 함께 직접 나와서 기자를 맞이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식사를 하며 대화가 시작됐다. 조 회장은 수수한 옷차림에 평범한 외양이었지만 행동과 말투는 단호했다. 그 모습에서 독창력을 경영 철학으로 삼아 복합소재 기술의 국산화를 이뤄낸 저력이 느껴졌다. 조 회장은 91세의 고령이어서 보청기 없이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으나, 조문수 대표는 “아버님이 보청기를 사용하기 싫어하신다”고 말했다.
 
집무실에서 복합소재 개발 과정을 기자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조용준 회장. [사진=김한경 기자]
 
“100억원의 손해는 용서해도 1억원의 추가 실수는 질책”
 
조 회장이 잘 알아듣지 못해 대화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정확한 기억과 빛나는 눈매, 그리고 자기가 개발한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역력했다. 그는 비교적 또렷한 어조로 자서전에서 언급했던 창업과 기술개발 과정을 얘기하면서 “돈을 벌려는 생각보다 일본을 기술로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개발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돼지고기와 조개에 대한 알레르기가 심해서 외부에서 식사를 꺼렸다. 그런 체질 때문에 영업보다는 회사 안에서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이로 인해 영업 활동은 주로 큰아들인 조문수 대표가 도맡아 수시로 국내외 출장을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조 회장이 영업을 잘 모르고 개발에만 몰두하는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조 회장은 “돈이 되지 않으면 기술이 아니라는 지론을 갖고 평생 기술을 개발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그 기술로 얼마나 시장의 단가를 낮춰 제품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생각했고,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영업 마인드가 있었기에 조 회장은 오늘의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다.
 
조문수 대표는 “아버지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 투자를 잘못하거나 개발에 실패해 커다란 손실을 봐도 ‘잊어버려. 가슴에 담고 있다간 몸만 상해’라며 상황을 끝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당하게 최선을 다했다면 100억을 손해 보더라도 나무라지 않았지만 이후 판단을 잘못해 추가로 1억을 손해 보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셨다”고 덧붙였다.
 
식사를 마친 후 한국화이바 본사로 이동했다. 조 회장은 회사에 들어서자 그가 직접 나무를 심고 돌을 옮겨 가꾼 정원인 ‘녹산원’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인 ‘독창력’이란 글이 새겨진 자연석 앞에서 기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전격 회동은 자신의 독창적 아이디어라고 말한 사실을 언급하며 서로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강조했다.
 
담배 한 갑 사주고 하루 종일 책방에서 전문서적 독학
 
이어 조 회장은 조문수 대표에게 시설 안내 순서를 정해주면서 기자와 함께 직접 공장을 돌아봤다. 밀양 공장에는 그가 평생을 바쳐 이뤄낸 산물의 일단이 내부에 펼쳐져 있었다. 그라스페이퍼 생산시설과 LNG화물창 설치 판넬 제작공정 등을 둘러봤는데, 모든 설비와 내부 배치는 그가 직접 구상하고 설계했으며, 시험장비 등 일부 설비만 해외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모든 설비와 내부 배치를 조 회장이 직접 구상하고 설계한 그라스페이퍼 생산라인. [사진제공=한국카본]
 
조문수 대표가 대부분의 설명을 이어갔지만 조 회장도 함께 둘러보면서 일부 공정은 자신이 직접 설명하거나 조 대표에게 설명하도록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마주치는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한 중견 책임자에게는 “20대 청년 때 입사했는데, 이제 50대 중반이 넘었다”면서 환한 미소로 격려하고 대견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장 시설 견학에 이어 한국카본 본사에 마련된 한국화이바 및 한국카본의 역사관을 돌아봤다. 역사관에 들어서자, 두 회사가 성장해온 과정을 연대별로 설명한 전시자료에 이어 창업주인 조용준 회장의 흉상과 그의 의지가 담긴 어록을 전시한 공간이 나왔다.
 
흉상 좌측 공간에 자리한 어록에는 한글과 영어로 “나는 평생 복합소재 한 분야만 매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복합소재 하나로 세계 최고기업이 되겠다는 꿈만이 있었을 뿐이다. 기술 개발은 언제나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후에야 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도 없다.”고 기록돼 있었다.
 
이처럼 조 회장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세워지면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서 독학으로 해결했다. 낚시대를 개발하던 초창기에는 주로 중고 서점에서 찾아낸 일본 전문서적으로 공부했다. 당시 중고서적도 살 형편이 아니었던 그는 “책방 주인에게 담배 한두 갑을 사주고 양해를 얻어 책방 구석에서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복합소재에 대한 공부는 일본에서 매월 발간하는 ‘공업재료’란 전문잡지와 관련 협회가 발간하는 자료 등을 40년 이상 탐독하는 등 일상이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전문지식을 토대로 그는 세계적인 전문가조차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기술까지 개발에 성공하는 등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다.
 
병원 사환으로 일하며 의사 되려고 독학해 치질약도 개발
 
조 회장은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자신이 평생 동안 이룬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한국카본에 마련된 집무실에 들어서자, 그는 지난해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인 “독창력만이 살 길이다”란 책에 ‘한국화이바, 한국카본 회장 조용준’이라고 직접 서명해 기자에게 건넸다. 그리고 40년 이상 읽었던 공업재료 잡지 전체를 꽂아놓은 서가를 찍은 사진 뒷면에도 서명해서 주었다. 
 
마침 기자의 눈에 일본어로 깨알같이 적어놓은 오래된 서류가 보였다.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초등학교 졸업 후 병원의 사환으로 일할 때 의사가 되겠다고 독학하면서 개발한 치질약 설명서라고 했다. 그가 목표를 세우면 독학으로 뭔가를 이뤄낸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를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보관한 것도 대단했지만, 그 방법이 당시 상당한 효과가 있어 돈도 꽤 벌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이렇듯 조 회장은 한국에 변변한 기술 하나 없던 시절에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꿈을 쫒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오늘의 ‘한국화이바’와 ‘한국카본’을 만들어냈다. 두 아들이 맡아 이끌고 있는 이 회사들은 복합소재에 관한 한 한국 최고의 기업일 뿐만 아니라,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특히 LNG운반선 화물창 설치 패널의 핵심인 가스 차단용 복합재 알루미늄시트는 세계 유일의 독점 기술이다.
 
유리섬유강화우레탄 폼과 복합재 알루미늄시트로 구성된 LNG화물창 설치 패널 생산라인. [사진제공=한국카본]
 
하지만 이렇게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이면에는 조 회장이 엄청난 자금과 시간을 들여 개발했지만 회사에 이익이 될 만큼 실용화되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직접 사업화하지 못하거나 사장된 기술들도 상당했다. 조 회장은 “그런 현실이 안타깝지만 기술을 개발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다”고 말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 회장은 카본 섬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 때 테니스 라켓과 골프채를 만들었다. 그러나 완제품에 너무 신경을 쓰면 소재 사업에 전념하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약화될 소지가 있어 결국 테니스 라켓은 개발한 기술과 시설을 ‘한일 라켓’에 넘겨줬다. 골프채도 품질은 외제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홍보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일본에 수출하는 길을 택했다.
 
조 회장은 상·하수도 및 폐수 처리장의 바닥에 쌓인 슬러지를 제거하는 슬러지 수집기도 개발했다. 하지만 한국 업체들은 그의 제품을 신뢰하지 않아 미국 엔바이어스사 제품을 수입해 사용한다. 안타까운 점은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이 회사가 자사 제품보다 우수하며 생산가격도 저렴한 조 회장의 슬러지 수집기를 구매해 자사 브랜드를 붙여 역수출하기도 했다. 
 
틸팅열차, 굴절버스, 초저상버스도 조 회장 개발 작품
 
조 회장이 개발한 ‘틸팅(tilting)열차’는 세계 최초로 복합소재를 이용하여 거대한 차체를 한 덩어리로 제작한 것이다. 틸팅이란 원심력을 줄이기 위해 기존 철로의 곡선구간에서 안쪽으로 열차를 기울게 만들어 제 속력을 내는 기능이다. 조 회장은 자체 기술로 만든 대형 성형기(오토 크레이브) 안에 복합소재를 넣고 고온과 고압으로 마치 오븐에서 빵을 구워내듯이 틸팅열차 1량을 한 번에 뽑아냈다.
 
이렇게 제작된 6량의 틸팅열차는 2007년 3월부터 시험 운행에 들어갔고, 기술적 하자는 전혀 없었다. 차량이 가벼워 전기로 운행할 때 에너지 절감 효과도 있고 철로 마모를 줄이면서 지반을 보호하는 등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이 열차는 시장성이 형성되지 않아 안타깝게도 생산이 중단됐고, 시범 제작한 틸팅열차는 지금 철도기술연구원 창고에 보관돼 있다. 
 
조 회장은 이후 건설교통부의 제안으로 도로와 궤도 양쪽에서 모두 운행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인 ‘굴절버스’도 제작했다. 네덜란드 APTS사와 기술 제휴로 차체와 내장재 일체를 자체 제작하고 엔진의 조립까지 한국화이바가 맡아 2009년 출시됐다. 이 버스는 동력원을 연료전지나 천연가스를 사용해 대기오염이 없는 차량이지만 역시 시장성이 없어 생산이 중단됐다.
 
이 버스를 개발하는 도중에 ‘초저상버스’를 개발하라는 추가 과제가 주어졌다. 장애인·노약자 들이 승하차가 편리하도록 기존 저상버스보다 바닥을 낮게 하고 승차감을 높인 버스다. 설계에서부터 차제제작 및 내부시설까지 한국화이바가 만들어 국가 표준형저상버스로 과천정부청사에서 공개 시승식까지 가졌으나, 회사 내부사정으로 기술과 생산설비를 타 업체에 넘겨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와 같이 조 회장은 자신의 의지나 시장 상황 또는 회사 내부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세계적 수준의 다양한 제품을 계속 개발하면서도 회사에 이익을 가져올 만큼 실용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소재 분야에서는 그라스페이퍼, 유리섬유 파이프, LNG화물창 설치 패널 등에서 대단한 성과를 이뤄내면서 계속 확장되는 추세이다.
 
조문수 대표, “아버지의 천재성, 통찰력, 추진력은 대체 불가”
 
조문수 한국카본 대표는 “아버지의 천재성과 통찰력 그리고 추진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고 대신하기 어렵다”면서 “지금도 여전히 기술 개발과 관련해서는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이제 큰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뒤로 물러선 입장이다. 자신처럼 직접 기술 개발은 어렵지만 경영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평생을 복합소재만 연구한 조 회장은 이날 대화 중에 핵폐기물 저장과 관련된 해결책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의 유리섬유 용융로 기술을 이용하여 “유리 속에 핵폐기물을 넣으면 빠져나오지 못해 안전하다”며 “이런 방식으로 처리해 바닷물 속에 저장하면 영구 보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 방법의 효용성을 신뢰하지 않아 프랑스가 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조 회장은 복합소재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접근해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했고 세계적 수준의 제품들을 생산해 국익 창출에 기여해왔다. 그가 평생 동안 독학으로 이뤄낸 기술적 성과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것이며, 사람들은 복합소재 산업의 선구자인 그를 가리켜 ‘진정한 한국의 보배’라고 말한다.
 
조 회장의 인터뷰는 청력의 문제로 원활히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고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는지는 회사 곳곳에서 느껴졌다. 조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기자에게 조용히 당부했다. “우리 아들 좀 잘 도와 달라”고. 아버지의 도움이 아직 필요하다는 아들과 아들이 잘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을 가슴 깊이 느끼면서 기자는 밀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