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 ④ 철학 : 시장의 승자는 학력 이긴 ‘독창력’

김한경 기자 입력 : 2020.04.20 07:27 ㅣ 수정 : 2020.04.20 07:33

‘독창력만이 살 길이다’란 자서전 통해 어려움 극복하며 성공한 과정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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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조용준 회장의 인생은 ‘독창력’이란 단어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독창력을 무기로 복합소재 분야의 다양한 기술들을 개발하면서 평생을 살아왔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 독창력만이 살 길이란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조용준 회장은 지난해 10월 자신이 걸어온 90년 인생을 반추해보는 ‘독창력만이 살 길이다’란 제목의 자서전을 발간했다. 1999년에 처음 발간했던 책의 증보판 같은 성격인데, 이 책에서 그는 복합소재와 관련된 여러 기술과 생산설비 개발에 도전하여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성공에 이른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조용준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낚시대를 만들던 은성사 시절에 근무했던 동료들과 녹산원의 ‘독창력’ 자연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한국카본]
 

쌀 한 가마 값 낚시대 사는 병원장 보며 복합소재에 호기심 가져

 

이 책의 서문에서 조 회장은 1962년 어느 날  쌀 한 가마 값을 주고 낚시대를 사는 병원장을 보면서 갖게 된 낚시대 소재에 대한 ‘호기심’과 그 소재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막연한 ‘꿈’이자신이 복합소재 분야에서 성공하게 된 동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남보다 특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험난했던 그 길을 가야만 살 수 있다는 절박감이 그를 사로잡아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노력한 결과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회사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조 회장은 “IMF를 맞아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는 상황에서도 한국화이바는 지속적인 성장의 발걸음을 내딛었다”면서, 그런 행운의 배경에는 “오직 복합소재라는 한 영역만을 고집하면서 독창력을 발휘한 기술 개발로 선진국들의 기술과 차별화시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조 회장이 복합소재라는 대단히 생소하고 전문적인 분야에 뛰어들어 평생을 바치면서 독창력을 삶의 철학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를 위해 1960년대 방위산업 초창기에 그가 경험했던 사례가 답이 될 듯하다.

 

나이키 유도탄 탄두 생산권한 빼앗긴 뒤 독자적 기술 개발 다짐

 

1969년 조 회장은 알고 지내던 방위산업연구소 관계자로부터 FRP 소재가 없어 대전차지뢰를 미국에 의존한다는 말을 들었다. 샘플을 얻어 해체해보니 외관은 플라스틱인데 뇌관을 치는 격발장치인 스프링이 FRP 소재였다. 2주 만에 스프링 견본을 만들어 보내자 그 관계자는 깜짝 놀라며 방위산업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이후 선진국에서 쓰는 플라스틱 헬멧 개발도 요청했다. 조 회장은 한 달 남짓 연구를 통해 나일론 섬유에 자신이 개발한 수지를 결합시켜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뛰어난 플라스틱 헬멧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헬멧을 직접 도끼로 찍어보고 이상이 없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플라스틱 헬멧은 60만 국군이 사용했고, 이란에도 수출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화이바는 방위산업체로 지정돼 대전차지뢰, 소총·유탄발사기 개머리판, 헬멧 등을 만들어 국방부에 납품했고, 후에 나이키 유도탄 탄두까지 개발했다. 하지만 유도탄 탄두 생산 권한을 힘이 없어 다른 업체에게 빼앗기면서 조 회장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나만의 독자적인 기술 개발의 길을 열어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그가 스스로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회사 임직원들에게 수시로 ‘독창력’을 강조하고 ‘독창력만이 살 길’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해온 배경에는 이와 같이 방위산업 초창기에 겪은 아픈 추억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절실함이 조 회장의 평생 철학이 된 ‘독창력’을 태동하게 만든 근원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화이바는 복합소재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몇몇 제품들을 갖고 있다. 유리섬유 파이프와 LNG화물창 자재가 대표적이며, 아직 실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초저상버스와 틸팅열차 등도 이에 해당한다. 특히 복합소재를 이용해 일체형으로 만든 틸팅열차는 세계의 기술자들이 놀란 불가사의한 기술로서 오로지 그의 독창력이 성공시킨 프로젝트다.

 

독창력의 출발은 초등학교 졸업 학력, 독학으로 남다른 기술 개발

 

2006년 9월 조 회장은 일본 복합재료학회 초청으로 고베에서 열린 행사에서 특별 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복합소재 공부를 위해 일본에서 발간된 책자와 관련 잡지를 40여 년 동안 빠짐없이 탐독했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기술 원천이 일본임을 솔직히 시인했다. 하지만 독창력으로 일본의 기술과 차별화시켜 세계 유수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당시 조 회장의 강연 내용은 언론에 자세히 보도됐고, 이후 세계적인 복합소재 학자인 한또 박사가 밀양의 회사로 찾아와 그와 장시간 얘기를 나눴다. 얘기가 끝날 무렵 한또 박사는 “어느 공과대학에서 공부했느냐”고 물었고 “초등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전부”라고 밝히자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참으로 놀랍다”며 그의 독창력에 혀를 내둘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밀양에 있는 한국화이바 본사에는 공장 중앙에 200여 평 규모의 작은 정원이 조성돼 있다. 조 회장은 이 정원에 자신의 호인 녹산(鹿山)을 붙여 ‘鹿山苑’이라고 이름 지었다.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머리를 식히는 휴식 공간인데, 이 정원에 들어서면 2미터 이상 높이의 자연석에 한자로 ‘獨創力’이라고 크게 새겨져 있다.

 

조 회장은 직원들이 이 정원을 드나들 때 독창력이란 글자를 보면서 의미를 마음속에 새기길 기대했다. 하지만 직원들이 실제로 그 글자를 바라보며 독창력을 발휘하겠다고 다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직원들이 퇴근한 이후 가끔 녹산원을 찾아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과연 나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가?”라고 자문해 본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이 질문에 자신이 답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평가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카본을 맡고 있는 큰아들 조문수 대표는 “아버지의 독창력은 천재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특히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감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독창력을 발휘한 기술의 결과물들이 이런 통찰력에서 나온 것이란 얘기다.

 

개발 실패로 인한 손실은 잊어라…지금도 신기술 연구 중

 

게다가 넓은 가슴을 가진 분이란 말도 했다. 조 회장은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 엄청난 손실을 보았어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내 잊어버리곤 했다. 또한 직원들이 실수를 해도 정당한 방법이면 나무라지 않았다. 사업을 하면서도 여러 번 큰 손실을 봤지만 그 때마다 “잊어버려. 가슴에 담고 있다간 몸만 상해”라며 한 마디로 상황을 끝내버렸다. 
     
이와 같이 조용준 회장은 자신이 정한 삶의 주제인 독창력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대로 자신의 평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복합소재라는 한 분야에서 세계의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위업을 달성했다. 아직도 그의 머리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차 있고, 조문수 대표에게도 가끔 기술에 대한 조언을 하신다.

 

그와 40년 이상 인연을 맺어온 일본인 용융로 제작 전문가(이노우에 히로요시)는 “조 회장님은 몇 달 만에 만나면 항상 새로운 연구결과를 내놓곤 해서 작업복을 걸치고 연구실에서 골몰하는 모습을 뵈면 ‘저 양반이 또 무슨 깜짝 놀랄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