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② 도전 :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복합소재 국산화의 선구자

김한경 기자 입력 : 2020.04.06 10:52 ㅣ 수정 : 2020.04.06 14:46

기초소재부터 완제품, 모든 생산설비까지 최초로 국산화한 전방위 혁신 이뤄내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조용준 회장은 복합소재 분야의 세계 최초 기록을 다시 쓰면서 필요한 생산설비도 모두 국산화했다. 제품과 수단을 국내 최초로 동시에 직접 개발하여 생산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이처럼 전방위적인 혁신을 이뤄낸 기업가는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화이바는 1986년 밀양 공장을 건설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유리섬유 용융로를 개발하여 설치했다. 이른바 가스와 전기의 장점을 살려서 함께 에너지로 사용하는 복합연료 시스템 기반의 용융로가 그것이다.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가 2002년 9월 27일 복합소재 개발과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제공=한국카본]
 

복합연료 시스템은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도 이론상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적용하기는 불가능한 기술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선진국에서 이 시스템을 개발하다가 어마어마한 재해를 입고 포기한 사례도 있어 그만큼 위험이 큰 기술이었다. 하지만 조용준 회장은 가격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감하게 불가능에 도전했다.

 

불가능에 도전해 성공한 복합연료 시스템…백금 가공한 노즐도 개발

 

그는 복합연료 시스템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용융로가 터져 용액이 흘러서 공장 안이 아수라장이 되는가 하면, 엄청난 불량품이 발생해 전량 폐기처분하는 손실도 입었다. 하지만 갖가지 실패를 겪은 후 성공한 복합연료 시스템은 유리섬유 원가를 낮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조 회장은 이어 백금으로 가공하는 노즐 개발에 도전했다. 용융로에서 유리가 녹아 실의 형태로 나오게 만드는 미세한 구멍이 백금 노즐로 되어 있는데, 유리섬유의 품질은 노즐 가공 실력이 1차적으로 좌우한다. 제품 종류에 따라 노즐 규격이 달라져야 하므로 선진국들도 노즐은 별도의 전문업체가 제작하여 유리섬유 생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노즐 제작을 외국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고, 국내에 노즐 전문업체도 없어 자신이 직접 개발에 나섰다. 비싼 백금을 가공하는 노즐 개발을 위해 돈도 많이 들었지만 끝까지 밀어붙여 지금은 노즐 제작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노즐을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으니 비싼 돈을 지불하며 장시간 기다릴 필요도 없고 품종이 다양해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용융로에서 노즐을 통해 유리섬유 실이 뽑아져 나오면 바인더(풀) 공정이 이어진다. 딱딱한 유리섬유 실이 매끄러우면서 끊어지지 않게 풀을 입히는 작업인데, 유리섬유 업체마다 바인더(풀)의 화학적 배합비가 다르고 이에 따라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화이바는 세계 유명업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새로운 특성의 바인더(풀)도 개발했다. 

 

이밖에 유리섬유 실을 감는 기계와 원단을 짜는 직조 기계도 국내 제품을 사다가 회사 실정에 맞게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유리섬유 원단을 복합소재로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원단에 수지를 바르는 코팅’ 공정을 위해 독자적으로 코팅 기계를 개발해 왔다. 코팅 기계의 성능이 복합소재의 품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복합소재 품질 좌우하는 코팅 기계 개발…최초로 일괄 생산 시스템 완비

 

당시 조 회장은 일본에서 코팅 기계를 구입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격을 알아보니 30억원을 달라고 요구해 결국 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곧 개발에 착수한 그는 3억원 정도의 비용으로 코팅 기계를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 기계보다 성능이 뒤떨어졌으나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 것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화이바의 생산시설을 돌아본 영국 쉐필드 대학의 마크 로빈슨 박사는 “세계 각국의 복합소재 공장들을 방문했지만 한국화이바처럼 일괄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춘 곳은 처음 보았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단순하게 제작된 기계들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저런 기계에서 제대로 제품이 나올까 의심이 들었는데, 품질 좋은 제품이 나오는 현장을 보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유리섬유는 일반적으로 국제적인 규격 속에서 생산되지만, 한국화이바는 그런 규격을 무시하고 제품의 특성에 따라 규격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개발했다. 조 회장은 “외장이 화려한 외국 기계는 특별한 기능이 없어도 장치가 많아 가격이 비싸다”며 “우리는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핵심 기능 위주로 설계돼 제작비가 적게 들고 설비·보수·개선도 용이하다”고 말했다.

 

한국화이바는 유리섬유에 이어 국내 최초로 카본섬유 보강시트도 국산화했는데, 이 보강시트를 개발하면서 건축용 자재 제작에 필요한 접착제까지 개발했다. 카본섬유는 비중이 철의 25%이면서도 인장 강도는 10배 이상이어서 교각 기둥과 터널 등의 건설 구조물 보강에 사용되는 신소재이다. 외부 환경에 대한 내구성이 강하고 부식이나 열화로 인한 노화를 방지해 보강 소재로 각광 받고 있다.

 

국내 유일의 카본섬유 보강시트 개발…건축물 보강 소재 국내 시장 40% 점유

 

한국화이바가 카본섬유 보강시트를 개발한 동기는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외국 바이어가 작은 보강 소재 샘플을 가져왔는데, 담당부서에서 팽개쳐두고 있었다. 그런데 두어 달 뒤 그 바이어가 조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거 한 번 해 보시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그게 뭐냐”고 묻자 각종 건축물 소재로 다양하게 사용한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조 회장은 바이어가 가져온 샘플을 자세히 살펴본 후 카본섬유 보강시트를 여려 겹으로 붙이는 접착제가 관건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가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가장 우수한 접착제는 전량 영국에서 수입해 왔다. 그는 카본섬유 보강시트 개발을 계기로 고급 접착제도 함께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1년여의 연구 끝에 조 회장은 카본섬유 보강시트 생산설비를 개발함과 동시에 고급 접착제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때 생산된 보강시트는 선진국 제품들의 단점을 보완한 ‘무수지 일(한쪽)방향’ 시트이다. 기존 제품들은 시트에 수지를 바르기 때문에 시공이 불편하고 재료 손실도 유발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한 시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기 때문에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화이바의 계열사가 생산한 카본섬유 보강시트는 특히 일본제품과 차별화하여 특허를 출원했고, 건설교통부로부터 신기술로 인정받았다. 이 제품은 250여 개소의 구조물에 보강 소재로 활용돼 뛰어난 보강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건축용 보강 소재에 그치지 않고 고급 접착제 기술과 어우러져 건축용 외장 및 내장 자재로까지 발전했다. 

 

2000년 당시 카본섬유 보강시트 소재의 국내 시장은 한국화이바 계열사인 한국카본이 40%, 일본 업체가 30%, 기타 업체가 30%를 점유했다. 그동안 일본 제품이 상당수 점유하던 국내 시장이 한국카본 제품으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복합소재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 회장은 2002년 9월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