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JOB채(45)] 금융위기 만든 월가와 다른 이재용의 삼성전자, 샌델의 정의론으로 평가하기

이태희 편집인 입력 : 2020.04.01 07:17 |   수정 : 2020.04.01 07:17

팬데믹 앞에 절망한 사람들, 글로벌 기업의 선택을 통해 실존적 미래를 가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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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앞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다. 실업의 절망이나 심연의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에 빠져든 사람들 입장에선, 그 선택이 자신의 실존적 미래를 가늠케해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기업이 현재적 타격에 휘청거린다면 사람들의 내면적 절망은 깊어진다. 반면에 기업이 최대한 생산활동을 지속하며 인재 채용과 미래투자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실낱같은 희망의 단초를 잡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아담 스미스는 틀렸다.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유일한 목적은 이윤추구라는 국부론의 논리는 단편적 사고이다. 개별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면 그 총합인 국부가 증진된다는 논리는 과거의 유물에 불과하다. 물론 아담 스미스의 시대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금’이 아니라 ‘이윤추구’가 국부의 원천이라는 생각은 중상주의 시대의 도그마를 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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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달 19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을 방문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하지만 전대미문의 팬데믹 앞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목전의 이윤만 추구한다고 가정해보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무자비한 인력감축, 봉급 삭감 등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더 깊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의 주요한 존립목적 중의 하나로 위기 이후의 ‘희망 만들기’가 절박하게 요구되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이처럼 존재의 목적은 영구불변하지 않는다. 가변적이고도 확률론적으로 규정된다.

 

■ 마이클 샌델, 금융위기 당시 월가의 보너스 지급을 ‘악덕’과 ‘부정의’로 규정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텔로스(목적)을 갖고 있다. 텔로스를 충족시키는 게 미덕이고 성공이다. 충족시키지 못하면 악덕이거나 실패이다. 그렇다면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미덕에 포상하고 악덕을 처벌하는 행위나 제도가 된다. 그 순서도가 뒤집어진다면 ‘부정의(不正義)’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다.
 
하버드대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관’을 적용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뉴욕 월가의 행태를 분석했다. 샌델이 볼 때, 세계금융자본주의를 주물러온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악덕’이면서 ‘부정의’였다. 

왜 그랬을까.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은행이나 AIG같은 보험회사의 임원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의 상징이었다. 부의 피라미드 정점에 올라서서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부러움을 샀던 그들은 원망의 계곡 아래로 추락했다. 그들의 이마에는 ‘탐욕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월가의 엘리트들이 그런 치욕스러운 낙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위기의 원인과 이후 대응과정을 살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사태로 촉발된 위기는 수많은 금융상품들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화근이었던 주택시장은 수직낙하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가정경제는 거덜이 났다. 그해 연말 기준 가계 손실만 11조 달러에 달했다.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이윤창출이라는 기업의 텔로스와 정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악덕’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 정부는 가계보다도 금융회사들을 먼저 챙겼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무려 7000억 달러규모의 구제금융을 풀었다. 이는 요즘 코로나19로 세계각국 정부가 앞다퉈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 조치의 효시였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달러를 찍어내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빈사상태에 빠진 월가를 살리는 게 최대 목적이었다.
 
시장을 망친 주범이라고 볼 수 있는 금융기관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의 구제금융을 받음으로써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구제금융으로 임직원들이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는 점이다. 미국 최대의 보험회사인 AIG보험은 173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는데, 그중 1억6500만 달러를 무분별하게 파생상품을 구입해 파멸을 초래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서의 임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는 데 썼다. 직원 73명도 각각 100만 달러 이상의 상여금을 챙겼다. 경제를 망친 자들이 국민혈세로 축제를 즐긴 것이다.
 
비판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AIG의 최고경영자는 천연덕스러웠다. 그는 “재무장관의 지속적이고 임의적인 개입으로 임직원들의 보수가 오락가락한다면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인재를 끌어올 수 없다”면서 “우리 회사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납세자들을 위해서라도 직원들의 재능에 부실자산이라는 짐을 얹어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미국인들은 격분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그 유명한 시위도 그래서 시작됐다. “그만 해먹어라 이 탐욕스러운 자식들아”라는 시위대의 구호가 월가에 울려퍼졌다. 월가의 정치자금으로 정치를 해온 부시 대통령과 하원도 분노의 대열에 합류했다. 나란히 손을 잡고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이 임직원들에게 지급한 상여금의 90%를 환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구제금융으로 상여금을 나눠가진 금융기관에 대한 미국의 분노는 ‘탐욕’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당시 미 유력 언론들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샌델은 미국인들의 분노는 탐욕을 포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포상했기 때문에 폭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월가의 금융맨들이 돈을 잘 굴려서 큰 이득을 내던 시절에 그들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을 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성공을 포상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큰 실패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상여금을 받은 것은 실패에 대해 포상을 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그러한 모순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게 샌델의 해석이다.
 
11년전 월가와 대조적인 삼성전자의 행보는 ‘미덕’, 칭찬하는 게 ‘정의’
 
삼성전자의 최근 행보는 11년 전 월가와는 대조적이다. 월가의 금융기관들이 위기의 원인을 제공해놓고도 스스로에게 포상하는 부정의한 짓을 저질렀던데 비해, 삼성전자는 전염병이라는 외부요인(외부불경제)에 의해 글로벌 경제가 전대미문의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대기업 총수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위기 이후의 희망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인 투자와 채용에 나서고 있다. 이는 무심코 넘길 풍경이 아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어두운 터널에 갇힌 사람들 입장에서는 용기를 갖게 만드는 사건이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초부터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 과정을 시작한다. 디바이스솔루션 부문 메모리사업부에서만 1300명을 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에만 최대 1만 3000여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강점인 D램, 낸드플래시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뿐만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인공지능(AI), 5G, 전장사업 등 신성장 사업에 대한 투자도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8년 “향후 3년 동안 180조원 규모의 신규투자와 4만여명의 직접 채용을 실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1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채용과 투자에 대한) 2년 전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팬데믹 이전의 사회적 약속을 팬데믹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주는 긍정적 효과는 숫자로 표현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하다. 투자와 채용을 통해 풀려나가는 돈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초월하는 수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에 입각하면 이 같은 삼성전자의 선택은 ‘미덕’에 해당된다. 현 시점에서 기업의 존립 목적(텔로스)은 이윤창출에 그치지 않고 창출된 이윤을 바탕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팬데믹 앞에서 글로벌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선, 그래야 소비가 진작되고 시장경제는 선순환의 고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기업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곳간에 쌓아 놓는다고 하면 소비가 단절돼 시장 자체가 붕괴하기 마련이다.
 
미국인들이 월가의 탐욕을 부정의의 표상으로 지탄했던 것처럼, 삼성전자가 미덕을 실천하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칭찬과 포상을 하는 게 정의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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