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 (18)]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생활③ 멘토가 된 대대장과 스나이퍼 스토리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3.19 11:16 |   수정 : 2020.03.24 14:46

영하 55도 속 장교들의 순찰을 지시한 대대장, 책임감의 본질을 깨닫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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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리스트] 강원도 부대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있었고 좋은 점도 있었지만,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훌륭한 분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즉, 필자가 군생활 하는 동안 정신적인 스승으로 삼았던 선배 장교를 알게 되었고, 지금도 만나서 격의없이 지내는 동료 장교들을 사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후에 지휘관 임무를 수행할 때 멘토가 되었던 분은 체감온도 영하 55도일 때 장교들에게 순찰을 지시했던 대대장, 그분이다. 이 분은 사관후보생(현재는 학사장교)으로 임관한 분으로서 이 분의 지휘 스타일은 처음에는 엄격하게만 보았다. 그러나 이 분의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교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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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후 중대원들과 함께.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진=최환종]

 

예를 들면, 어느 조직이나 ‘규정’이 있다. 그러나 세세한 부분까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거나 애매한 경우에 일부 지휘관(또는 상급자)들은 결정을 유보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분은 본인이 가진 권한과 책임 내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주저없이 시행하는 성격이었다. “그것은 내가 책임진다. 시행하라.” 이런 식이었다. 물론 불합리한 것은 위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분이었다.

 

훗날 본인이 지휘관 임무를 수행할 때, 필자가 사관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것과 더불어 나도 모르게 이 분의 지휘 스타일을 따르고 있음을 느꼈다.

 

■ '정의'를 실천했던 군의관 장 대위, 지금은 명망있는 의사로 활약

 

친하게 지낸 장교 중 1명은 군의관인데, 필자가 군생활을 하면서 본 훌륭한 군의관 2인 중 한명이다. 군의관 중에 그렇게 직업의식(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책임감 있는 군의관은 거의 못보았다. 부대 군의관인 '장 모(某)' 대위는, 일과 중에는 군의관으로서 환자 진료에 충실함은 물론이고 가끔 버릇없는 병사들이나 복장 위반하는 병사가 있으면 현장지도는 물론, 불응하는 병사일 경우에는 헌병반장(중위)에게 얘기해서 잘못된 점을 시정토록 하는 ‘정의’가 살아있는 장교였다. 그러다보니 대대장도 당연히 군의관을 신뢰하였고, 우리들도 좋아했다.

 

군의관 ‘장 모(某)’ 대위는 일과 이후에는 늘 책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 이 분은 전역 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 00병원에서 중요 직책을 역임하였고 지금도 명망 있는 의사로 활약하고 있다. 필자는 군의관 ‘장 모(某)’ 대위와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인생의 선배인 그에게 여러 가지 많은 조언을 들었고, 룸메이트가 매일 저녁공부를 하니 필자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영어 공부라던가 독서 등은 군의관 ‘장 모(某)’ 대위에게 받은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도 만나는 장교는 2명이 있는데, 두 장교 모두 학사장교 출신으로 단기장교로 근무했다. 한명은 필자와 동기급으로 인사장교였고, 다른 한명은 필자보다 1년 후배 기수로서 보급장교였는데, 서로 나이가 엇비슷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셋이서 같이 강원도 부대에서 같이 근무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거친 환경에서 동고동락하면서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고, 지금도 가끔 만나 골프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필자가 부대 배치받은 다음 해 봄, 부대는 공군작전사령부 전투태세 검열을 받게 되었다. 부대 특성상 작전분야를 제외한 부대원의 전투태세 검열 주 내용은 제식훈련, 총검술 등 기본군사훈련 과목이 주가 되었다. 당시 장교중에 필자가 가장 막내이자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라는 이유로 필자가 기본군사훈련 전 과목에 대한 교관 및 지휘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때 기본군사훈련 전 과목을 지휘하면서 부대 부사관 및 병사들과 많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약 한 달간의 준비를 거쳐서 드디어 검열 당일이 되었다. 검열대상으로 무작위 선정된 부대원들을 지휘하여 한 과목씩 무사히 진행해 나갔다. 3번째 과목이 되자 검열관은 필자를 보더니 “또 귀관이 지휘하나?” 하면서 씩 웃는 것이었다. 기본군사훈련 모든 과목 검열을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으로 사격 평가에 들어갔다.

 

■ 스나이퍼 수준이었던 필자의 사격 실력, 총구에서 나가는 탄두 볼 정도로 시력 좋아

 

필자는 권총 사격자 명단에 포함되었고, 38구경 권총으로 사격을 실시했는데, 검열관은 그해 검열한 부대중에 필자의 사격점수가 가장 우수한 점수라고 얘기했다. 옆에서 사격을 지켜보던 부대장은 이 얘기를 듣자 얼굴이 환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필자에게 특별휴가(4박 5일)를 주었다. 세상에! 난 내 임무를 수행했을 뿐인데, 휴가라니! 검열관과 부대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검열이 종료된 후 필자는 오랜만에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뵈었다.

 

사격 얘기가 나왔으니, 그 당시 필자의 시력과 사격 성적을 잠시 얘기하자면, 거의 스나이퍼(Sniper) 수준이었고, 시력도 좋았다. 시력이 얼마나 좋았는가 하면, 중위때 필자가 사선에서 사격 통제를 할 때였는데, 타 장교가 권총사격 시 38구경 권총 총구에서 탄두가 나가는 것을 순간적으로 보았다.

 

권총 총구에서 탄두가 나가는 것을 본 것은 이때가 유일한데, 그 만큼 필자의 시력이 좋았다. (필자는 지금도 시력이 2.0이 나올 때가 있다.) 중위 때는 20대이고 공기 좋은 산속에서 생활했으니 시력이 매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초원에 사는 몽고 사람들의 시력이 어머어마하게 좋다는 얘기같이.

 

그리고 M-16 소총, 권총(38구경) 사격은 합격 불합격이 문제가 아니고 부대원 중에 누가 1등이냐 2등이냐를 다툴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표적지 한가운데에 담배를 붙여놓고 사격해서 순위를 정할 만큼 사격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는 전역할 때까지 공군 지상사격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공군 지상사격대회 출전자는 무작위로 선발하는데, 필자는 그 무작위 명단에 선발되는 행운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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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최환종 칼럼니스트기자 3227chj@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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