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군 이야기](17)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생활② 추운 여름에 만난 '반면교사(反面敎師)', 선풍기 찾다 야전잠바 요구한 검열관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2.27 10:23 |   수정 : 2020.03.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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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쌓인 어느 따뜻한(?) 겨울. 선배 장교와 함께 [사진=최환종]


어느 일요일 아침 날이 밝지 않아? 밤새 내린 눈이 장교숙소 전체를 덮어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초급장교 시절을 보냈던 강원도 지역은 겨울철에 눈이 참 많이 내렸다. 부임하던 날(4월 중순인데도), 마을의 시외버스 정류장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고 지난 회에 얘기를 했는데, 필자가 그곳에 근무할 당시 가장 눈이 많이 내렸던 기억은 따로 있다.

두 번째 겨울의 어느 일요일 오전! 필자는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눈을 떴다. 그런데 아직도 창밖이 어두웠다. ‘아직 해가 안떴나?’ 하고 더 잤다. 한참을 자다가 다시 깨어서 창밖을 보니 아직도 어둡다.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시계를 보니, 시간은 낮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장교숙소 현관으로 가보았다. 순간 처음 보는 광경이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서 눈이 장교숙소 지붕을 덮고, 숙소 현관도 눈이 쌓여 밖으로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상황실에 전화를 해서 눈이 얼마나 왔는지 확인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장교숙소(1층 건물) 전체를 눈이 덮을 정도니 적설량이 최소한 1.5 m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전부대가 눈 속에 파묻혀 있었고, 영내에 있는 전 병사는 이미 부대내 제설작업(주요 통로 개척작업 위주)을 하고 있었다.

 

1.5m높이로 쌓인 눈을 삽으로 치우며 장교숙소와 내무반 사이 길을 뚫어 

그날 장교 숙소에는 필자와 야간 근무를 한 장교 1~2명이 있었는데, 상황실에서는 제설작업에 치중하다보니 필자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장교숙소와 내무반 사이의 통로개척 제설작업이 시작되었다. 장교숙소와 내무반 사이의 거리는 대략 농구장 두 개 정도의 거리였는데, 이 거리를 삽으로 제설작업(폭 1.5 미터 정도의 통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병사 두어 명이 비교적 눈이 적게 쌓인 지역을 돌아와서 장교들과 합류 후, 제설작업을 했다. 내무반쪽과 장교숙소 쪽에서 각각 눈을 퍼내며 통로개척 제설작업을 하는데 약 3 ~ 4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도 바람은 불지 않았고, 삽으로 눈을 퍼내다보면 땀이 나서 야전상의를 벗을 정도였다.

 

제설작업 중간에 눈구덩이(정확히 표현하면 양 옆으로 눈이 어른 키만큼 높이 쌓인 통로 속)에 앉아 있으면 편안한 느낌이었다. 쉬면서 건빵과 물로 점심식사를 대신했다. 에스키모인들이 이렇게 살았을까? 그리고 드디어 양쪽에서 눈 치우던 병사들과 서로 만났다. 매일 보는 병사들인데도 얼마나 반갑고 흐뭇하던지. 병사들과 진한 전우애를 느꼈다.

 

강추위와 제설작업 등으로 힘겨웠던 경험은 지휘관의 소중한 자산돼

돌이켜보면, 그 당시 겪은 추위, 눈 등은 그때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그때 겪은 추위나 제설작업, 식수 문제 등 여러 가지 경험은 필자가 이후 부대를 지휘할 때 정말 귀중한 자산이 되었는데,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의 작전수행, 또는 부대원들의 애로사항이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한 예이다.

요즘 TV에서 가끔 “시베리아(또는 알래스카)에서의 생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그때 생각이 나서 출연자의 고통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 당시에 그런 추위와 눈을 경험한 결과, 요즘은 일기예보에서 “금년들어 첫 강추위! 오늘 최저 영하 10도!” 이렇게 얘기를 하면, 속으로 웃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봄날이네!”. 물론 필자가 체감하는 온도는 춥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영하 10도는 추위도 아닌 것이다.

겨울의 추위가 어느 정도 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부대내 BX(육군은 PX라고 한다)는 인행계장 소관인데, 친하게 지내던 인행계장이 어느 날 이런 푸념을 하는 것이다. “BX 창고에 있는 소주가 모두 얼어서 터졌어...” 당시 소주 도수는 24도로 기억한다. 24도라면 왠만한 추위에는 얼지 않을텐데, 얼마나 추웠으면 소주가 얼어서 소주병이 터졌을까. 대단한 추위였다. 

 

여름에 찾아온 공군본부 검열관, 선풍기 찾다가 야전잠바 요구해


부대사정도 모르고 검열하겠다는 상관은 존중받을 수 없어

기상에 따른 에피소드는 한가지만 더 얘기하고 마무리하려 한다. 아마 둘째 해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8월의 어느 여름날, 공군본부에서 검열팀이 온다고 연락이 왔다. 인근 비행장을 거쳐서 필자의 부대로 오는데, 헬리콥터 편으로 온다고 한다. 헬리콥터로 온다는 것은 헬기 운용이 가능한 ‘양호한 기상’이라는 얘기다. 그날 기상은 보기 드물게 맑은 날씨였고 시정은 매우 양호했다. 바람도 구름도 없었고. 따라서 제 3자가 보았을 때 경치가 매우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대원들은 8월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전상의를 착용하고 있었다.

중령이 선임자인 검열팀은 대대본부에 도착하여 상황실에서 부대현황 브리핑을 받았다. 브리핑 도중에 검열관이 이렇게 얘기한다. “너희들은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근무하니 좋겠구나!” 자기들은 격려한다고 한 것 같은데, 우리들은 순간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필자의 부대는 1년 중 안개일수가 80% 이상이고, 부대 업무의 많은 부분이 추위와 자연과의 싸움인데, 날씨 좋은 날 헬기를 타고 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 정도라니. 우리는 거의 동시에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당신들도 여기 일주일만 있어보시오. 그런 얘기가 나오나!’

브리핑 이후 복도에서 우연히 필자를 만난 검열관은 “중위! 날씨가 더운데 선풍기 없나?” 하는 것이었다. 하긴 자기들은 무더운 여름날에 인근 비행장에서 있다가 왔으니 더울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 부대는 한여름에도 야전상의를 입고 다니는 부대인데, 선풍기가 있을리 없다. 필자는 “부대에 선풍기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검열관 왈 “어떻게 부대에 선풍기도 없나? 형편없는 장교구만!” 표현을 점잖게 해서 그렇지 검열관의 말투는 필자를 경멸하는 욕설이 섞인 말투였다. 황당했다. 공군본부에서 올 정도면 예하부대 사정을 잘 알고 올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다니.......

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그 검열관과 마주쳤다. 그리고 필자에게 묻는다. “중위! 야전잠바 없냐?” 이번에는 추운가보다.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그때 그 ‘검열관’들의 언행은 필자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고, 이후 필자는 타군 또는 타부대 검열을 가거나 지휘순찰을 갈 때 절대 그런 ‘무책임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장교, 부사관들에게도 그 얘기를 들려줬다. 그런 ‘무책임한’ 언행을 하지 않도록.

 

틈틈이 공부했던 영어가 많은 도움이 될 줄은...

한편, 부대로 숙소를 옮긴 이후, 퇴근 이후에는 몇 백 미터 떨어진 숙소에 가서 생활을 하니 저녁에 가용시간이 많이 남았다. 물론 주말에는 가끔 인근 도시에 가서 목욕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부대로 복귀했지만, 타부대로 이동할 때까지 주로 부대 내에서 생활했다. 그 부대에서 근무기간은 거의 3년이었고, 그중 2년여는 부대 장교숙소에서 생활했다.

장교숙소에서 거주한 기간에는 일과 이후에 비교적 책도 많이 보았고, 영어 공부도 했다.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이 인터넷 강의 같은 좋은 교보재가 없던 시절이라 영어 공부는 예전에 보던 영어 참고서, 영어 회화 카세트 테이프 등을 이용해서 공부를 했다. 그때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언젠가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때 틈틈이 공부하며 기초를 닦은 것이 후에 많은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최환종 칼럼니스트기자 3227chj@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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