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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1.17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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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수(오른쪽) GS 회장이 지난 13~14일 서울 역삼동 디캠프에서 열린 '스탠퍼드 디자인 싱킹 심포지엄 2020'에 참석해 래리 라이퍼 스탠퍼드 디자인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GS그룹]

래리 라이퍼는 1962년에 미 스탠퍼드대 졸업한 80대 노인

30대보다 ‘첨단지식’은 밀리지만 ‘혁신적 사유’에선 대가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허태수(63) GS그룹 회장이 ‘혁신’과 ‘퍼스트 무버’를 새해 경영 화두로 던지면서 선택한 방법론은 모순적이다. ‘원로 학자’와의 대화이다.

지난 14일 '모호함과 함께 춤을'이라는 주제로 행해진 래리 라이퍼(Larry Leifer) 미 스탠퍼드대 디자인 센터장의 강연을 들었다. 라이퍼 교수는 1962년 미 스탠포드대 기계공학과(BS, Stanford University, Engineering Science)를 졸업했다. 올해로 80대의 나이다. 첨단 경영 이슈에 대한 이 올드보이의 강연에는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 허용수 GS에너지 사장,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등 GS그룹 오너 일가 겸 사장단들도 함께 참석했다.

평범한 인간을 괴롭히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기술 격변’의 시대에 허 회장이 30대 신진기예가 아니라 원로 학자의 견해를 청취하면서 4차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을 외친 까닭은 뭘까? ‘혁신’과 ‘늙은이’는 누가 봐도 부조화이다.

강연 장소는 혁신적이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디캠프(은행권 청년창업재단) 내 작은 강의실이었다. GS그룹이 대형 회의실이 없어서 그룹 총수가 디캠프를 찾았을 리는 없다. 디캠프는 유니콘 기업을 꿈꾸는 금융스타트업 야심가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장소는 협소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눈빛은 이글거린다.

해답은 래리 라이퍼 교수가 이런 창업가들을 키워내는 인물이라는 사실에 있다. 스탠퍼드 대학이 위치한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고령의 라이퍼는 아직도 소문난 멘토이다. 첨단기술과 번뜩이는 열정으로 무장한 야심가들에게 멘토로 인정받는 비결은 첨단지식에 있지 않다.


라이퍼의 디자인 싱킹, ‘첨단지식 습득자’보다 ‘지혜로운 활용자’키워 내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라는 사유방식이 그의 힘이다. 디자인 싱킹은 전통적인 의미의 철학적 사고는 아니다. 인식론이나 존재론을 다루지 않는다. 객관적 인식이 가능한지를 논쟁하거나, 물질과 정신 중 무엇이 본질인지를 따진 적이 없다.

즐거움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어떻게 충족시킬지에 대한 방법론이다. 이 사유방식은 언제나 깨달음의 결과물을 ‘시제품’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래서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4차산업혁명시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자가 되지 못하면 도태되는 기업가들 입장에서는 디자인 싱킹이야말로 꼭 필요한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기술홍수 시대의 승자는 ‘첨단기술의 습득자’가 아니다. ‘지혜로운 활용자’이다.

라이퍼는 최첨단 AI지식이나 프로그래밍 언어 실력으로 따지면 30대 야심가들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그런 최첨단 지식을 어떻게 제품화할지에 대한 멘토링과 협업에 관한한 탁월함을 갖고 있다. 라이퍼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에서 건재를 과시하면서, 승리를 갈망하는 한국의 재벌총수에게 한 수를 전수하는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노인의 현명함, 농경사회 아닌 4차산업혁명시대에 입증

그의 혁신철학인 디자인 싱킹은 공감(Empathy)에서 출발한다. 소비자 혹은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서 혁신은 출발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숨겨진 욕망과 불편함을 이해하는 게 출발점이다. ‘문제 정의’가 그 다음단계이다. 소비자와 공감하면 기존 제품의 문제가 보인다는 논리이다. 문제를 정의하면 시장이 요구하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이다. 아이디어를 고안해서 시제품을 만들고 그 시제품을 평가하면 된다.

노인운전자의 높은 교통사고율이라는 현상을 예로 들어보자. 라이퍼에 따르면, 노인 운전자라는 소비자의 불편함을 공감하면 문제점이 보인다. 노인운전자의 좌우와 전후방에 대한 주의력이 젊은 세대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를 토대로 “노인 운전자는 청년에 비해 사각지대가 넓어 교통사고율이 높아진다”라는 문제를 정의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시제품을 만드는 것은 젊은 개발자들의 몫이 된다. 그 결과 노인을 위한 혁신적 자동차가 시장에 출시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디자인 싱킹'으로 개념화하고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에게 세일즈 해왔다. 이는 실리콘밸리에서 여전히 인기상품이다.

물론 시제품을 만드는 첨단 기술은 라이퍼 교수의 영역이 아니다. 조언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청년 개발자들이 기술적으로는 더 탁월하다.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라이퍼 교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미세한 기술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원칙적 사유방식의 대가인 것이다.

라이퍼는 농경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4차산업혁명시대에도 노인이 최고의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라이퍼의 비결은 ‘탈꼰대’, ‘강의’를 버리고 ‘멘토링’ 지향

허태수 회장, ‘거죽’보다 ‘본질’에 집중

라이퍼의 비결은 ‘탈 꼰대’에 있다. 50대 중반만 넘겨도 인생 해탈한 사람처럼 행보한다면 달관자가 아니라 꼰대이다. 그런 사람은 가르치려고 든다. 화려했던 과거나 성공의 기억에 파묻힌다면 100세 시대에 30~40년을 청년들이 외면하는 고독한 꼰대로 살아가야 한다.

이 점에서 교수로서의 라이퍼는 전향적이다. 아예 ‘강의식 수업’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스탠포드대학 수업의 98%가 여전히 강의식이지만, 혁신은 프로젝트 수행형 수업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리 시대에 지식의 전수자라는 오만한 직업은 불필요해졌다는 인식이다. 실제로 지식은 포털과 클라우드 서버에서 넘쳐나고 있다. 그 지식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목표달성에 필요한 지식을 학습하는 능력이 관건이다.

교수도 마찬가지이다. 우수한 학생과 지식을 겨루면 패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협업의 방향을 잡아주는 멘토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경륜과 통찰력은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 해 연말 그룹 총수에 오른 허태수 회장이 혁신을 위한 첫 행사에서 라이퍼를 강사로 모신 사건은 긍정적이다. 거죽보다는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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