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직업 : 국군기무사령관]① 정치화된 대표적 요직, 전두환 이후 10명이 하나회 출신

김한경 기자 입력 : 2019.12.19 06:41 ㅣ 수정 : 2019.12.19 06:41

[뉴스 속 직업 : 국군기무사령관]① 전두환 이후 10명이 하나회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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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대전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된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1주기 추도식 모습. [사진제공=육사37기동기회]

군내 유일한 정보수사기관 수장, 대통령 신임에 따라 역할과 권한 달라져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7일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의 1주기 추도식이 대전국립현충원에서 가족, 지인, 육사 선후배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거행됐다. 이 사령관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의 동향을 사찰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지난해 12월 7일 투신해 숨졌다.

박지만 EG 회장의 절친인 이 사령관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4월 중장으로 진급해 육군 인사사령관에 보직됐고, 그 해 10월 국군기무사령관에 임명됐다. 하지만 임기 2년 중 1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갑자기 경질돼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군기무사령부는 군내 유일한 정보수사기관으로 정권마다 대통령이 군을 통수하기 위한 조직으로 활용해 왔다. 따라서 기무사령관은 대통령이 가장 신임할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해왔으며, 앞서 사례에서 보듯이 대통령의 신임이 달라지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자리다.

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전신인 국군기무사령부는 국방부장관 예하부대로서 군사보안과 군 방첩, 군사법원법 제44조 제2호에 규정된 범죄의 수사에 관한 사항, 군에 관한 정보의 수집과 처리에 관한 사항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대정부 전복 관점에서 수도권 주요 군부대와 장교 및 장군들의 동향을 파악하기도 한다.

군사법원법 제44조 제2호에 규정된 범죄는 형법상 내란 및 외환의 죄, 군 형법상 반란 및 이적의 죄, 군 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부정사용,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이다. 이를 위반하면 군인 및 군무원을 비롯해 때로는 민간인도 수사할 수 있다.

◆ 대통령과 주기적으로 '독대'하고 국방부장관 지휘권 벗어나기도

이와 같이 군에 관한 정보와 수사 업무를 관장하며 막강한 권한을 갖는 조직의 수장인 기무사령관은 관련 법령상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부대를 지휘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주기적으로 독대하고 수시로 청와대 비서·경호실장 및 수석들과 대화하는 등 업무 특성상 장관의 지휘권에서 벗어나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는 군의 대표적 실세다.

국군기무사령부는 육군특무부대, 육군방첩부대, 육군보안사령부, 국군보안사령부를 거쳐 1990년 ‘윤석양 이병 민간인 사찰 폭로사건’ 이후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됐다. 1979년 육사 11기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부임한 이후 1993년까지 10명의 보안·기무사령관은 모두 하나회 출신이었고, 대통령의 군 통수권 보필에 앞장섰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하나회가 척결되고 비 하나회 출신인 당시 기무사 참모장(소장 김도윤, 육사22기)이 잠깐 기무사령관을 맡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지 못해 곧바로 학군 출신인 임재문 준장이 기무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임 사령관은 김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면서 소장, 중장으로 진급했고 기무사령관의 권한도 다시 살아났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다시 육사 출신이 기무사령관에 보직됐다. 첫 사령관은 당시 8군단장을 역임한 이남신 중장(육사 23기)이었고, 이어 김필수 소장(육사 26기)과 문두식 소장(육사 27기)이 임기제로 진급하여 임명됐다. 이들은 모두 호남 출신이었고 능력도 출중하다는 평을 받았고, 김 대통령은 이들과 정기적으로 독대하면서 군 통수권을 적절히 행사했다.

노무현 대통령 독대 관행 없애...이명박 대통령 3사 출신 최초 기용

노무현 정부에서는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관행이 사라졌고, 대통령의 신임과 관계없이 장군인사의 범주에서 기무사령관이 임명됐다. 통상 정권 출범 이후 처음 임명되는 기무사령관은 청와대의 신임 여부가 작용해 결정된다. 그러나 첫 사령관이었던 송영근 중장(육사 27기)은 이례적으로 임기 만료 6개월 전에 사표를 내고 물러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최초로 3사 출신의 김종태 중장(3사 6기)이 기무사령관에 임명됐다. 김 사령관은 중장 진급에서 낙마하여 전역을 준비하다가 친척 관계였던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의 후원으로 임기제로 진급하여 기무사령관이 됐다. 당시 정권의 실세라는 평가와 함께 군 내외에 상당한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도 노무현 정부처럼 장군인사의 범주에서 정보병과 출신의 장경욱 소장(육사 36기)을 기무사령관에 임명했다. 정권의 첫 기무사령관을 신임할 수 있는 인물로 임명하던 과거 관행과 달랐고, 인사도 정권 출범 후 2달 가까이 지나 이뤄졌다. 더구나 기무사령관을 소장으로 임명한 전례는 ‘군정 종식’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 외에는 없었다.

장 사령관은 6개월 간 근무하다가 중장 진급도 하지 못하고 경질됐다. 당시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관련된 장군인사 여론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과정에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알려졌고, 이어 이재수 육군인사사령관(육사 37기)이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기무사령관에 임명됐다. 이 사령관은 박지만 EG 회장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항상 옆을 지켜준 유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이 사령관조차도 대통령의 신임을 끝까지 받지는 못했다. 그는 보직 1년 만에 갑자기 경질됐고, 후임 기무사령관은 당시 사이버사령관으로 6개월 간 근무한 조현천 중장(육사 38기)이 임명됐다. 이 사령관의 경질 배경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