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제승 칼럼] 북한 목선 귀순 사건과 군의 ‘심각한’ 정신적 대비태세 이완

류제승 입력 : 2019.06.24 10:50 |   수정 : 2019.06.2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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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북한 목선 삼척항 진입 장면과 정박지 부근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최근 북한목선 한 척이 우리의 경계망을 뚫고 귀순한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우리 군이 동네북처럼 뭇매를 맞고 있다. 야당은 물론, 청와대와 여당까지도 군사대비태세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책임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방부의 뒤늦은 발표도 문제지만 조직적인 은폐·축소 의혹도 제기되었다. 이런 중대한 발표가 청와대와 사전 조율과 승인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만일 국방부·합참이 청와대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면 이 또한 명백한 직무유기다.

◆ 사건 은폐·축소 의혹 제기...정치와 군사의 조화 무너져

이번 사태를 불러온 근본 원인은 지난 2년 동안 정치와 군사의 조화로운 관계가 무너진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군은 대적관(對敵觀) 포기로 정신적 대비태세의 이완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나타난 몇 가지 대표적 사례들을 살펴보면 전체 맥락이 선명해진다.

이 정부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이루기 위해 ‘책임국방으로 강한 안보를 구현’하는 전략을 겉으로만 채택하고 있다. 이 전략의 실천적 의미는 “국가의 책무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지켜 국민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데 있다”는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왜 안보를 걱정하는 분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가.

◆ 문 대통령, 힘을 통한 평화에서 ‘대화’ 강조...군인들 혼란스러워

문 대통령은 작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군인들에게 ‘힘을 통한 평화’를 주문했지만, 최근 스웨덴 순방에서는 “남북 간의 평화를 궁극적으로 지켜주는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라고 강조했다. 국방일보는 이 발언을 1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大書特筆)했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남북 간 전략적 균형이 무너져 한국군의 자강노력에 박차를 가해도 부족한 상황인데 말이다.

북핵 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면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상식에도 어긋난다. 우직하게 임무에 정려해야 할 군인들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정치와 이념의 논리가 안보적 관점을 지배하면서 군의 고유한 역할은 위축되고 있다.

지난 5월 3일 문 대통령은 군 지휘부에게 ‘9·19 군사합의의 성실한 이행과 한반도 긴장 완화를 통한 남북 간 신뢰구축’을 지시했다. 그 다음 날과 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잇따라 발사했다. 이와 같은 북한의 행동은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와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는 9.19 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북한의 위협을 당시 청와대와 여당, 국가정보원뿐 아니라 합참까지도 한목소리로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새뮤얼 헌팅턴은 ‘군인과 국가’에서 “군인은 상대의 의도보다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의도는 본질상 정치적이고 변하기 쉬워 올바로 평가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합참은 위협 평가에서 군사 전문적 관점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 북한은 비핵화 협상 막후에서 핵탄두 6개 증가...여전히 위협적

지난 5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은 “김정은은 자유민주 사상에 접근한 상태”라고 말하고 북한 핵과 화생무기를 뺀 재래식 군사력은 위협이 아니라고 했다. 이 정부 초대 국방수장의 발언이라 황당하고 충격적이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목함지뢰 도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연이은 도발은 우리가 불안정한 평화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은 지난 한 해 동안 비핵화 협상 막후에서 핵탄두를 6개 정도 늘렸고 실전능력을 고도화시키는 중이다. 북한 경제난으로 전쟁 지속 능력이 형편없지만, 북한 육군의 70%와 해·공군의 50%가 평양-원산 라인 이남에서 공세적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력은 전쟁 초기 며칠 동안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만큼 여전히 위협적이다.

이 정부 들어 ‘국가안보전략서’ ‘2018 국방백서’ ‘군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서 ‘북한 정권과 군이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북한이 남조선 혁명의 성격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는 사실도 적시하지 않았다. 물론 북한은 교류 협력의 대상이지만, 설혹 평화체제가 수립되어도 북한정권과 ‘혁명무력’인 북한군은 ‘잠재적 적’이다.

◆ 클라우제비츠, “전쟁에서 정신력이 3/4” vs. 지난해 대북심리전 폐기

이런 의미에서 남과 북을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인 군까지 대적관(對敵觀)을 포기해야 하는가. 조국 프로이센이 주권을 잃었을 때 “전쟁에서 정신력이 4분의 3, 물리력이 4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한다”면서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고 외친 클라우제비츠의 경고를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한다.

송영무 전 장관은 또 2017년 국회 청문회에서 수십 년간 지속해온 우리의 기본 방어체계를 완전히 바꾸겠다고 장담했다. 너무나 충격적이라 당시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문민정부의 각료인 그가 방어체계에 정통한 군사리더십의 판단을 무시한 월권적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한미연합방위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여서 한·미 양국 군사리더십의 면밀한 검토과정을 거친 후 건의돼야 옳았다.

9.19 남북군사합의 역시 채택될 때까지 야전군 급 이하 전방지휘관들이 의견 개진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청와대-국방부-합참의 소수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논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해 5월 정치리더십이 나서서 그동안 북한이 체제 위협이라 여겨 예민하게 반응했던 대북 심리전 수단을 서둘러 폐기했다. 우리에게 유리한 전략적 도구를 포기한 것이다. 이어서 9.19 군사합의로 우리 공군력과 해군력이 유지해온 막강한 비대칭 우위를 현저히 약화시켰다. 남북 11개씩 동수의 GP 시범철수로 우리가 훨씬 더 큰 감시 공백을 감수해야 한다. 전방 사·군단의 눈인 정찰무인기도 무용지물이다.

◆ 통 큰 양보에도 북한 비핵화 답보 상태..도발 가능성 커져

이처럼 ‘통 큰’ 양보에도 북한 비핵화는 답보상태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합의였는가. 추후 북한이 전략적 게임 플랜에 따라 점차 도발 강도를 높여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허술한 상태에서는 서해 또는 내륙지역에서도 이번 삼척항 ‘대기 귀순’보다 더 한 북한군의 기습적 침투·강점(强占)·포격 도발이 벌어질 수 있다.

그 때에도 현장 작전지휘관들이 도발 억제에 실패하고 즉응하지 못해 그 책임을 온전히 떠안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그동안 최종 의사결정 책임이 있는 정치리더십과 문민장관이 군사대비태세의 결정적 이완요인을 제공하지 않았는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후 연합연습은 줄줄이 중단·축소됐다. 한미연합방위태세는 약화 추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전에 한·미 군사지휘부는 이 문제를 긴밀하게 의논했어야 맞다. 또 당연히 그런 과정이 있었기를 믿고 싶다.

◆ ‘정치’와 ‘군사’의 고유 영역 간 조화로운 관계 유지돼야

그나마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과 던 포드 합참의장은 북핵 외교의 실패에 대비한 태세유지 훈련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 군은 북한을 자극할까봐 훈련 사실도 쉬쉬하는 실정이다. 앞으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지켜보면서 연합연습 재개만큼은 시의 적절하게 당당한 자세로 건의해주길 바란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밀 교시에서 “어떤 광풍이 불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위장 평화 뒤에 숨어 총칼을 벼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인은 문민 통치의 원칙을 철저히 존중해야 하겠지만, 정치인은 군사의 고유 영역을 침해해선 안 된다.

하루 빨리 우리 정치와 군사의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고 정신적 대비태세를 확립해야 한다.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정치·군사 리더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리스 가믈랭 프랑스 육군총사령관이 독일군의 전격전을 저지하지 못해 주권을 상실한 책임 때문에 반역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 前 국방부 정책실장
- 前 교육사령관(예비역 육군중장)
- 前 한미연합사 기획참모차장
- 前 합참 전략기획차장
- 독일 보쿰대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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