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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4.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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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포스터


3월 28일 개봉 / 전국 887개 스크린

(뉴스투데이=클라렌스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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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지금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2045년의 미래 사회. 그러나 조금 더 피폐해진 현실 속의 인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에 빠져 산다. 원하는 캐릭터가 되어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상상이 이루어지는 삶. 10대 소년 웨이드(타이 쉐리던)도 마찬가지. 그의 하루 일과 역시 자신만의 공간에서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일로 시작된다.

그러나 가상 현실의 삶 역시 녹록하진 않다.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걸 순식간에 잃을 수 있으며, 그렇게 캐릭터가 소멸된 사람들은 아무 미련 없이 현실 세계의 삶도 포기하려 한다. 오아시스의 창시자인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가 가상 현실 속에 숨겨둔 3개의 미션을 찾아 해결한 사람에게 자신의 막대한 유산과 오아시스의 소유권을 상속한다 했지만, 아직 첫 번째 열쇠조차 찾은 이가 없다.


>>> 새로운 영화의 길

4,50년대 TV와 경쟁하던 시기의 영화들이 시네마스코프의 거대한 화면으로 극장의 존재와 영화에의 관람 의지를 존속시키려 했다면, 요 사이 부쩍 업그레이드 된 3D, 아이맥스 등의 기술력은 VR로까지 진화한 새로운 영상 체험에 대응하려는 한 방법일 것이다.

다만 차이라면, 반세기 전의 영화들이 TV가 가질 수 없는 ‘사이즈’로 차별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과는 반대로 스필버그는 VR, 가상현실, 게임 등의 아이템을 이야기 소재와 형식에 적극 수렴하는 쪽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차별화’보다는 ‘심화’의 선택. 이것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나 크리스토퍼 놀란이 <덩케르크>(2017)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체험’의 영화를 좀 더 개인적이고 기술적인 영역으로 끌고 간 방식이다.

이는 20세기 후반 <죠스>(1975), (1982), <쥬라기 공원>(1993) 등 선보이는 작품마다 장르적, 기술적 진보에 관해서는 비교 불가능의 선구자적 위치에 있던 스필버그가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여전히 그 위치에 존재함이 증명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 진정한 의미에서의 오마주

80년대의 수 많은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나열해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하는 모양이나, 절대 ‘21세기’적이지 않은 우정과 정의, 사랑의 주제의식은 ‘오글’거리고 ‘힙’하지 못한 20세기식 흥행 키워드지만 이것이 밉거나 우스운 건 아니다.

오히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조금의 상관관계도 찾을 수 없는 이 영화로 끌어와 만나게 하는 이야기 확장과 영화적 기교의 완성도는 상당한데, 한 장면이 아니라 한 시퀀스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이 변주는 전에 봤던 어떤 작가의 어떤 오마주들보다 흥미롭고 훌륭하다. (자신이 영화적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큐브릭의 조언을 구했다는 말을 그가 타계한 이후의 한 인터뷰에서 스필버그는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큐브릭이 먼저 전화해 온 적은 없었다며 웃지 못 할 팩트까지 덧붙이면서.)

오마주가 단순히 따라 그리는 모사 작업이 아닌 심화 발전시키는 창의적 작업이라는 걸 완벽히 설교하는 이 부분은 따로 떼어내어 교재로 씀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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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레디 플레이어 원’ (2018 / 미국 / 스티븐 스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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