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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05)] 멍게 비빔밥의 추억과 '심심한 행복' 찾기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연두가 초록으로 짙어져가고 미풍이 따스한 온도를 머금는 요즈음 가을까지 부지런히 먹기 좋은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멍게 비빔밥인데요.   우렁쉥이라고도 불리는 멍게는 오월이 제철로 이맘때 크기도 적당하고 단맛이 올라 입맛 돋우기 좋은 여름철 별미입니다. 멍게는 붉고 둥근 몸통에 울퉁불퉁한 돌기가 돋아나 있죠. 마치 술이 덜 깬 아저씨를 연상시키네요. 심퉁맞은 외형을 가지고 있으나 속을 갈라보면 향긋한 주홍빛 속살과 특유의 톡 쏘는 향기가 일품인 식재료입니다.   멍게 비빔밥은 너무도 간단하여 레시피라고 메모할 할 것도 없어요. 찬물에 슬슬 흔들어 씻은 멍게를 물기가 빠지길 기다렸다가 밥 위에 올리고, 김가루와 깨, 참기름 한 스푼이면 족합니다. 오이채나 계란지단 등으로 멋을 내기도 합니다만, 부재료는 만드는 자의 기호대로 가감이 가능합니다.   주의할 점은 초고추장을 넣으면 고추장의 강한 향 때문에 멍게향이 묻히기에 조미된 김이나 최소한의 간장을 곁들이는 게 더 좋아요. 고수들은 양념 없이 먹는 것을 즐깁니다. 멍게 비빔밥은 제 고향 통영에서 별다른 반찬이 없을 적에 잘 해먹던 손쉬운 음식인데요.   반찬으로 먹거나 술안주로 내기도 하고 제철을 맞아 수확량이 많을 때는 젓갈로 만들어 두고두고 꺼내먹기도 했답니다. 문득 떠오른 멍게 생각에 마트로 가보았습니다. 수산물 코너 한쪽 귀퉁이에 먹기 좋게 손질되어 모셔져 있는 멍게는 장바구니에 부담 없이 넣기에 적당한 가격은 아니더군요.   몇 번의 유통과정을 거치며 가격을 덧입고 내 손에 떨어진 멍게 한 팩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식은 보리밥에 비벼진 멍게는 미역국과 함께 5분 만에 내 밥통의 블랙홀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멍게는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밟히던 시절이라 굳이 돈을 내고 사먹는다는 개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 생선을 사면 덤으로 얹어 주거나 식당에서 서비스로 주는 군음식이었지요. 어느 해에는 멍게가 풍년이라 집집마다 항아리를 사와서 젓갈을 담기도 했지요. 멍게나 매실, 전어 같은 계절음식은 이와 같은 유행을 부르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소주에 곁들여 먹으려고 멍게 한보따리 사오면 그 양이 차고 넘쳐 손질하기 힘들다고 욱하던 어머니 생각도 나네요. 음식은 기억과 그리움을 떠오르게 합니다.   고향의 남쪽바다를 떠올리면 시퍼렇게 펼쳐진 바다와 그 위를 떠다니는 자그마한 목선들과 파도에 일렁이던 부표들. 해풍에 실려오는 짠내와 선박용 디젤 냄새. 어시장의 비린내와 물고기 비늘처럼 빛나던 여름의 청량함, 그리고 알싸한 멍게향이 코 끝에 감도네요.   그리고 바닷물에 낚싯대를 꽂아놓고 무언가를 끝없이 영원처럼 노려보던 사내들의 뒷모습이 잔상처럼 남아있네요. 해질 무렵 인적 드문 바닷가에 홀로 앉아 작은 물고기와 햇볕에 박제 된 새끼 복어, 불가사리, 소라 등을 동무삼아 소꿉놀이하던 나의 어린시절도 떠오릅니다.   요새는 심심함이 사라졌죠. 각종 전자기기들과 놀거리들이 흘러넘치게 산재해서 도통 심심할 틈을 주지 않아요. 부모님들도 아이가 심심하면 큰일날새라 각종 보드게임과 퍼즐과 장난감, 그림놀이 등을 사들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심심할 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발한 생각과 풍요로운 상상력과 자아는 심심함을 양분 삼아 자라나는 것이거든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심심한 시간을 좀 더 많이 누릴 필요가 있어요.   오늘 나의 계획은 멍게 비빔밥을 먹으면서 심심하게 오후를 보내는 것입니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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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20-05-16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104) 도시락, 그리고 기억
    ▲ [사진=윤헤영]어린시절 경험이 평생을 좌우.. 행복이나 불행은 기억 어딘가에 살아있어아이들이 행복해야 행복한 어른이 되어 따뜻한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딸아이 유치원에서 공문이 왔어요. 급식소 파업으로 인해 점심급식을 이틀간 중단하오니 가정에서 도시락을 준비해오라는 내용이었어요. 좀 귀찮긴 했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만들어주나 싶어 도시락을 준비했어요.워낙 손재주는 잼병인데다 눈썰미가 없어서 닭이랑 병정 캐릭터 만드는데만 30분을 허비했네요.딸아이는 "오~ 엄마 잘만든다. 좀비도 만들줄 아네. 신난다"'장난감 병정인데. . . .'어젯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데 중간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부모들은 늘 자신이 갖지못한 것들을 자녀들에게 주려고 하는것 같다. 빨간 세발 자전거, 오디오세트, 바닷가에서 휴가보내기 같은것들을" 그걸 읽고 흠칫했어요. 제가 그렇거든요. 어린시절 갖지 못했거나 욕망했던 것들을 딸들에게 해주거나 은근히 강요하고 있었어요.욕망의 확장. 혹은 대리만족 같은 것이었죠. 저는 어린시절 부모님이 일찌감치 헤어지시고 냉혹한 조모 밑에서 자랐어요. 그때는 소풍날이 정말 싫었거든요. 아기자기한 친구들의 도시락이 부러웠었고, 특히 운동회날이면 커다란 음식가방들을 이고지고 총출동한 가족들.그들에게 둘러싸여 치킨이나 김밥을 먹으며 행복한 무아지경에 빠진 아이들의 얼굴을 훔쳐보는게 싫어서 수돗가로 운동장 구석으로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숨어다니곤 했어요.제게 행복의 이미지는 이백원짜리 초콜릿이예요. 같은반 친구였던 진욱이가 소풍 때 간식으로 싸오던 얇고 네모난 초콜릿. 그 아이는 작은 사각형을 하나씩 뜯어 입에 넣을 때마다 나를 보며 우쭐한 미소를 짓곤 했어요.어느날 할머니의 쌈짓돈에서 천원을 훔쳐 초콜릿 다섯개를 샀어요. 진욱이의 행동을 떠올리며 초콜릿을 네모나게 뜯어 입에 넣었지요. 그러나 바라보며 욕망할 때 만큼의 달콤함은 아니더군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행복은 김 빠진 사이다 같았어요.아이 친구 중에 놀이터에 늘 혼자서 늦게까지 남아있는 아이가 있어요. 다른 동네에 살지만 우리 아파트에 친구들이 많이 살아서 저녁에는 거의 와있어요.저녁 먹었니? 인사치레로 물었더니 늘 아니요. 괜찮아요. 하길래 의아해 하다가 어느날 엄마 어디가셨냐고 물으니 "아빠는 돈 벌러 가셨고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어요." 대답을 듣고 집에 오면서 조용히 울었답니다.엄마가 보고싶은 아이의 눈물보다 간절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예요. 오늘 아침 도시락을 싸면서 그 아이 생각이 나길래 "00이랑 같이 사이좋게 나눠먹어. 너는 집에 와서 또 해줄께." 라고 이야기 했네요.그 아이 도시락도 싸고 싶었지만 과한 오지랖은 분노나 모멸, 슬픔같은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하니까요. 생각이 멀리까지 흘러갔네요. 요즘 드는 생각은 유년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거예요. 순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소멸되지 않고 기억 어딘가에 늘 살아있는거죠.그래서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아이들이 행복한 어른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널리 행사하면 사회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따스한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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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9-07-0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102) 벳푸에 가다② - 동양최대의 야생 동물원 아프리칸 사파리
    ▲ [사진=윤혜영 기자] 동물원, 115만㎡에 69종의 동물 1.300마리가 있어 정글버스로 50분 운행벳푸는 온천과 미식, 도심 근교 사파리와 수족관·쇼핑타운 등 갖춘 명품도시[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벳푸 입성 이틀째 날, 조식을 마치고 벳푸역 관광안내소로 가서 아프리칸 사파리 티켓을 구매했다. 왕복 버스비와 사파리 입장료, 정글버스 승차권의 패키지를 할인받아 구매했다.옆 뒤편의 버스 승강장으로 가서 줄을 서서 버스에 탑승했다. 사파리행 버스는 직행이 아닌 완행이었다. 벳푸 시내와 지옥온천 등의 유명 관광지마다 멈춰 서서 승객들이 타고 내렸다. 터질듯한 만원버스는 학창시절 이후로 거의 접하지 못했던터라 아이들을 챙기랴 흔들리는 버스에서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으랴 진땀을 흘렸다.그때 중년의 어느 여인이 17개월 둘째를 한팔로 안고 땀을 흘리는 남편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주고 본인은 목적지까지 서서 갔다. 타인을 위한 선한 배려가 참으로 고마웠다.버스는 점점 고원지대로 오르며 달려갔다. 차창 유리에 김이 서려 큰아이가 손으로 글씨를 썼다. 50분쯤 지났을까 지루함에 멀미가 올 즈음 종점인 아프리칸 사파리에 도착하였다.안내소 앞에 정글버스 두 대가 서있었고 동물들이 있음직한 독채 건물들이 보였다. 2시에 한국어로 방송하는 정글버스는 예약이 다 차서 못 타고 그 뒤에 오는 버스를 예약해두고 주변 구경을 했다.길 건너편에 유치원생인 큰 아이와 크기가 비슷한 조랑말들이 우리 속에서 놀고 있었다. 1.5m를 넘지 않는 미니말이다. 30kg미만 어린이들은 말을 탈 수 있다고 하여 500엔을 지급하고 큰아이를 태웠다. 조랑말들은 각자의 명함이 있었고 명함뒤편에는 이름과 나이를 비롯한 상세한 프로필들이 적혀있었다.딸이 탄 말의 이름은 '브리아나'였다. 아기 호랑이관에 갔다가 강아지 까페 등을 구경하고 정글버스를 타러 갔다.▲ [사진=윤혜영 기자]아프리칸 사파리는 약 115만 평방미터의 들판에 69종, 1.300마리의 동물들이 5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고 정글버스는 각 구역들을 통과하며 50분을 운행한다.자리에 앉아 가이드에게 주의사항을 듣고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용으로 나뉘어진 먹이를 지급받았다. 철조망으로 된 문을 통과하여 드넓은 평원 속으로 버스가 천천히 진입했다. 높은곳에서 지켜보는 감시탑이 곳곳마다 있었다. 버스가 멈출때마다 동물들이 다가왔고 승객들은 집게를 이용해 먹이를 주었다.다양한 동물들이 나타났다. 커다란 곰이 창문에 붙어 먹이를 받아먹었고, 목이 긴 기린이 새끼와 함께 나타났다. 하이에나와 표범은 해바라기를 하며 조느라 버스가 나타나도 누워만 있었다.사자와 호랑이의 구역으로 들어섰을 때 하늘 위에서 독수리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먹이를 건낼 때마다 빠른 속도로 나꿔채가며 호랑이를 약올렸다. ▲ [사진=윤혜영 기자]동물원의 좁은 우리에 갇혀있는 그들을 대할 때 마음속으로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했었는데 비교적 자유로워 보이는 동물들의 모습에 안도감이 일었다. 물론 그것조차 그들의 태생적 고향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투어가 끝나고 십분 뒤에 벳푸역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 잽싸게 줄을 섰다가 일등으로 버스에 올랐다. 다시 서서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이들은 구경을 마저 하는듯 버스가 텅텅 비어 있었다.벳푸역에 내려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샀다. 여행 내내 로손이나 세븐일레븐 등의 편의점이 보이면 애용했는데 200엔이 안하는 원두커피의 맛이 참 좋았고, 도시락이나 샌드위치의 맛도 수준급이었다. 스시와 샐러드랑 어묵도 맛있었다. 나중에는 필요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면 본능적으로 달려가게 되었다.계산할 때는 현금이나 신용카드 외에 스이카나 리모카 등의 일본 교통카드로도 결재 할 수 있어 편리했다. 점심을 먹으러 기타하마 버스 정류장 뒤편의 토요츠네로 향했다. 텐동으로 유명한 맛집이었다. 텐동은 덴푸라 돈부리(天ぷら丼)의 줄임말로 밥 위에 각종 튀김을 올리고 소스를 더해서 먹는다. ▲ [사진=윤혜영 기자]1층은 만석이어서 다다미가 깔린 이층에 착석했다. 텐동과 치킨, 정식등을 섞어서 주문했다. 점심시간에 방문하면 주메뉴들을 할인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바삭한 튀김과 달콤한 간장이 스며든 하얀쌀밥. 맛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텐동 외에 따로 주문한 메뉴들은 평범했다. 음식점에 가면 주력메뉴에만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상기하였다.토요츠네의 뒤편으로는 시원하게 바다가 펼쳐졌다. 날이 차가워 바닷물은 먹색에 가깝게 짙푸른 빛깔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쇼핑센터인 유메타운이 있었으나 재래시장에 가보고 싶어 야요이 상점가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일부러 골목과 골목을 드나들며 걸어다녔다.낯설지만 정감있는 일본의 골목길은 한국과 다른듯 비슷하여 언젠가 와본듯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크고 작은 점포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낮에는 영업을 않는지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뒷골목에는 세월에 쇠락한 술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는데 문을 밀고 들어가면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어디선가 나처럼 늙어갈' 그리운 이가 앉아있을듯 지난 세기의 자취를 품은채 남아 있었다. ▲ [사진=윤혜영 기자]길 중간 즈음에 커다란 텐구가 자리잡고 있었다. 텐구는 승려나 도깨비의 모습을 형상화한 액막이 조형물로 붉은 얼굴에 과장되게 큰 코가 특징이다. 코의 모양에 따라 오오텐구, 쇼텐구, 카라스텐구가 있으며 벳부 시장의 텐구는 쇼와시대(1974)때 시장의 화재를 막는 부적으로 탄생했다.텐구는 마츠리(まつり)에 사용되어 위엄과 흥을 돋운다. 일본의 마츠리는 과거 길흉화복을 비는 제의(祭儀)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축제나 이벤트로 점차 변형되어 지역의 이미지 메이킹과 관광객 창출에 이바지한다. ▲ [사진=윤혜영 기자]관광객들이 꾸준히 찾는 도시는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을까? 세계화로의 편입은 도시의 획일성과 몰개성을 가져온다. 메트로폴리탄은 거대한 마천루의 상징적 이미지로 형상화될 뿐 그 속에서 개인의 가치는 매몰된다. 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은 브랜드의 쇼핑센터들과 비슷한 주제의 테마파크, 체인 호텔들은 판에 박힌 여행의 패턴을 무수히 복제한다.결론은 다양성의 확보와 전통의 보존이다. 도시의 아이덴티티가 잘 살아있고, 관광 인프라의 구축, 지역의 정체성이 잘 확립된 도시는 쇠퇴하지 않고 살아남는다. 나아가 노인과 아동, 여성과 장애인을 배려하는 어메니티가 확보되어야 한다.​그런면에서 벳푸는 명품도시의 요건을 다양하게 충족하고 있었다. 온천과 미식으로 즐기는 즐거움, 도심 근교에 위치한 사파리와 수족관, 쇼핑타운 등의 접근성과 편의성은 벳푸만의 지역정체성과 어우러져 웰빙도시의 자격을 잘 갖추고 있다.- 3편에 계속>>>​윤혜영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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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9-03-19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103) 송해용 - 사랑, 꽃 피다
    ▲ [사진=윤혜영]화가 송해용, 절정의 아름다움 담은 꽃 그림으로 전하는 감동생생한 입체감에 눈 앞에 환한 꽃밭 펼쳐진 듯[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경주 예술의전당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B1층에 내려 왼쪽으로 꺾었다. 바로 접해있는 전시장에 들어서자 환한 꽃밭이 나타났다. 당혹스러웠다.벽에 설치된 그림들의 색감이 너무 환하여 순간 착각을 했던 것이다. 노랑, 초록, 하양, 주홍, 보라, 연두의 총천연색 꽃들이 캔버스 밖으로 쏟아지는듯 했다.“조금 멀리서 보면 입체감이 살아나요”도슨트가 살갑게 다가섰다. 뭔가 설명을 해주고픈것 같았는데 한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녀와 나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화폭 가득 수선화, 금작화, 나팔꽃, 달맞이꽃들이 만개했다. 꽃들의 상태는 절정의 아름다움에 이르렀다. 나비, 달, 새, 닭등이 꽃의 곁을 지켰다. 바야흐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다. ▲ [사진=윤혜영]작가적 윤리로서의 사회적 실현은 무엇일까? 예전에 니체는 말했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들을 통해 순화된 정서를 가지게 된다고.화가 송해용은 그런 의미에서 작가적 윤리를 충실히, 일관되게 수행하고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꽃은 그 영속성에 있어 고갈되지 않는 소재이며 친숙한 이미지로 마당 한켠이나 담장 위, 울타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토착식물로서 한국적인 미의식을 간직하고 있다.작품명 ‘님마중, 님맞이, 그리움’ 등은 결이 고운 기다림을 함축하고 있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소원, 마법이다. 동시에 화가의 페르소나로 존재한다. ▲ [사진=윤혜영]미술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단순히 사물의 구현이나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이는 존재적 가치의 정체성 전복과 대상의 독자적인 해석에 따른 꼬리를 무는 새로운 창조성에 있다.실제와 또다른 생명으로 태어나는 캔버스 속 꽃들캔버스 위에 붓으로 피워낸 꽃들은 작가의 숨결과 염원이 담겨있다. 모방(mimesis)을 넘어선 현실감(reality)은 그만의 화풍으로 재해석되어 전혀 다른 생명으로 되살아난다. 어린시절, 거실 한켠에는 외갓집에서 얻어온 작은 풍경화가 걸려 있었는데 나는 그 그림이 참 좋았다.인적이 없는 바닷가에 나룻배 한 척, 그 위에 앉아 쉬고있는 뱃사공의 뒷모습. 몇 개의 선으로만 살려낸 그 풍경은 심리적 만족감과 더불의 위로의 기운까지 전해주었다.소파에 널부러져 아무것도 않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편안해졌던 것이다. 파라다이스가 그 그림 한폭에 존재했다. 대량으로 찍어낸 이미지에서는 결코 얻을수 없는 차별화된 감동이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에서 얻는 만족과 비슷하다.꽃피고 나비가 나는 춘삼월이 무색하게 미세먼지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맑은 공기를 쐬며 공원을 산책하고 싶지만 먼 산을 지워버린 회색 스모그를 바라보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멀지않은 미래에는 꽃구경이 귀한 유람(遊覽)이 되지 않을까 너무 두렵다. 오늘도 바깥산책은 접어두고 미술관으로 꽃구경이나 가야겠다.송해용의 <사랑, 꽃 피다>展은 2019년 4월 21일까지 경주예술의 전당 갤러리달 B1에서 전시된다. ▲ [사진=윤혜영]​윤혜영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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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9-03-06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102) 일본 최대의 온천도시 벳푸를 가다 -1
    [사진=윤혜영] 후쿠오카 터미널에서 2시간, 온천마을 '벳부'에 가다원천수 2300개, 온천욕탕만 100개..세계적인 온천관광지[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후쿠오카 국제선 터미널에서 출발한 고속버스가 벳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는 2시간 10분. 달리는 버스의 양옆으로 숲들이 빠르게 밀려났다. 삼나무, 편백과 같은 쭉쭉 뻗은 수종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친 일본의 숲은 둥글게 옆으로 퍼지며 주변을 감싸안는 한국의 숲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버스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굽이를 돌고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다가 이윽고 멀찌감치 도시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짙푸른 먹색의 바다를 끼고 펼쳐진 도시에는 곳곳에 온천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인 유케무리(湯けむり)가 자욱하여 비현실적인 아우라를 자아냈다.동시에 차 안에서 똥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다급히 17개월인 둘째의 기저귀를 살펴보았지만 아니었다. 그건 유황(sulfur)의 냄새였다. 벳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광광지이며, 일본내 원천수와 용출량이 1위이다. 원천의 수가 2,300개, 공중 온천욕탕만 100여개에 달한다.료칸이나 호텔에서도 24시간 온천을 즐길 수 있으며 거리 곳곳에 온천이 흘러 길을 걷다가도 언제든 손을 담그거나 족욕을 할 수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테마화시킨 관광지가 아니라 온천이라는 천연자원을 특화시켰기에 전통성이 있고 자연친화적이다. ▲ [사진=윤혜영]벳푸 교통의 중심지이자 랜드마크인 벳푸역에 도착했다. 역 중앙에 럭비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아부라야 쿠마하치'의 동상이 보인다. 하회탈과 같은 얼굴이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실존인물로 벳푸를 국제적인 온천도시로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고 한다. 만약 근엄한 흉상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면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뭔가 이탈적이고 틀을 깨고, 상식을 전복시키고, 권위를 파괴시키는 시도들은 신선하다.동상 앞에는 ​손을 담글 수 있는 온천 '테유'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동상을 보고는 즐거워하며 포즈를 따라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유머란 바로 이런 것이다. 역 내부에는 관광객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는데, 영어에 능통한 아주머니들이 길을 묻는 여행객들을 응대하면서 벳푸 주요 관광지들의 쿠폰도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었다.역 뒤쪽의 주차장으로 걸어나가니 숙소인 '스기노이 호텔'의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돌아서 높은곳으로 올라간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호텔이 위치하고 있었다. 일단은 짐을 풀고 다다미 방에 누워 좀 쉰 다음에 여유롭게 노천온천을 즐겨보자는 내 머릿속 계획은 도착과 동시에 박살이 나버렸다.1층 로비에는 짐을 떠안은 투숙객들이 빼곡히 몰려앉아 진을 치고 있었고 동굴처럼 어두컴컴한 호텔 내부는 놀라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의 한숨소리로 터져나가고 있었다.대체 이게 무슨 사태인지?리셉션의 직원이 정전으로 인해 호텔 전체가 멈춰버렸다며 빠른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일단은 기다려주라고 설명하였다. 계획에 없던 변수에 당혹감이 일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을 쳤고 주변의 편의점을 찾아가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였다.정전사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지루한 기다림 중에 직원들이 객실로 들어가 기다리라고 안내를 했다. 열쇠를 받아드니 무려 12층. 애 둘을 이끌고 계단을 타고 배정된 객실로 이동했다. 중간중간 쉬고 싶었지만 무거운 내 짐을 들고 뒤따라오는 가녀린 여직원을 보니 눈치가 보여 부지런히 발을 놀려 방에 도착했다.그리곤 또 암흑 속에 무한정 기다림. 5시가 넘어갔고 10분 뒤였나? 형광등에 환한 불이 들어오더니 호텔 전체가 빛으로 되살아났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지하 1층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을 몇 개나 이어붙인듯 엄청난 규모의 홀에 각국의 산해진미들이 넘쳐났다.바닷가에 접한 도시여서 그런지 생선회도 몇 종류가 있었고 아이스크림이나 초코분수와 같이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메뉴들도 다양하였다. 또한 정전사태를 사과하며 모든 주류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하니 샴페인과 사케를 주문하여 만족스런 식사를 하였다. ▲ [사진=윤혜영]손님들은 가족단위의 단체객들과 몇몇 휠체어를 탄 사람들, 노인들이 비중있게 눈에 띄었다. 식당의 한쪽에는 엄청난 수의 휠체어들이 대기중이었는데 일반 병원의 휠체어 수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고보니 셔틀버스에도 장애인 보조기구 탑승 마크가 부착되어 있었다.한국이었으면 그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 숨겨두었거나, 휠체어를 탄 이들이 다른 손님의 눈치를 보았을 것이다.벳푸시는 일본에서도 장애인에게 친화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대기업과 민간기업이 장애인 고용을 독려하고 급여차별도 두지 않으며 공평하게 일하는 기회를 주어 자립을 도운다. 요점은 '차별이 아닌 공생'이다.호텔에는 문턱이 없었고 비탈길이 많았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직원 한명이 대동하여 밀착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몇 년 전 한복을 입은 손님이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해 이슈화 되었던 한국의 모 호텔이 떠올랐다. 상반되는 접객 응대 수준에 쓴웃음이 났다. ▲ [사진=윤혜영]이후 노천온천을 하고 돌아오니 2시간 정전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하루 숙박비를 전액 환불해주겠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이토록 호쾌한 보상이라니! 정전이 되어 다소 불편함은 있었지만 여행하다 일어날수 있는 해프닝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렸는데 충분한 보상을 해주니 호텔에 대한 이미지가 상승했고, 여행의 시작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대인배 스기노이였다.나이가 들어가니 소박한 행복이 주는 의미를 어느정도 알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대도시의 현란함이 좋았다. 공격적이고 역동적인 화려함은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했고, 분위기에 도취되어 술에 취해 왁자지껄하게 흘려보낸 의미없는 시간들이었다.도시 콘크리트 숲 아닌 작고 나즈막한 마을은 시시콜콜한 일상의 '특별함'사십이 넘어가고 어느 정도 인생의 패배와 소소한 성취들과 시간이 주는 어쩔수 없는 수긍들을 차례로 지나치게 되면서 비로소 작디작은 나의 일상이 소중해졌다. 획일화되고 몰개성적인 도시의 콘크리트 숲보다는 작고 나즈막한 마을들과 계절의 무르익음을 간직한 자연들과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네들의 시시콜콜한 일상들이 더 특별하고 의미있어졌다.​나이들어가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지만 장점도 없지는 않다. 내것이 아닌것에는 빠른 체념을,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시작되는 평범한 하루에 감사를, 특출나지는 않아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그저 고요히 지나가는 모든것들이 기적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러나 언제나 흐르고 있지만 고여있는 것 같은 시간들, 반복되는 뻔한 일상들이 지리멸렬로 다가올때 우리는 훌쩍 떠나야 한다. 각자의 인생에 더욱 감사하기 위하여! 살아있는 축복을 더더욱 만끽하기 위하여!- 2편에 계속>>>​ 윤혜영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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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9-02-27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101) 끝날때까지 끝난것이 아니다
    “만나서 한번만 물어보고 싶어. 그때 왜 그랬었냐고.”추억하기엔 반갑지 않은 흘러간 과거들[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하니 새벽에 동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그 여자, 꼭 찾고 싶어. 만나서 한번만 물어보고 싶어. 그때 왜 그랬었냐고.”간밤에 또 술을 마신듯 했다. 그 애는 술이 취하면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그 여자 이야기를 꺼내고는 했다. 꼭 한번 만나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여자에게 지원희.이미 여러번 들어 낯설지 않은 그 이름. 꼬깃꼬깃 뭉쳐서 기억 너머에 쳐 박아둔 옛날이 떠오른다. 추억하기엔 반갑지 않은 흘러간 과거들이.때는 1980년대 후반이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남쪽 도시에서 살아오다가, 어느 날 짐 보따리 몇 개와 함께 동생과 나는 대구의 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다. 방학 때 몇 달만 있을 거라고 엄마는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 몇 달이 몇 년이 되는 동안 그 동네는 지우고 싶은 내 과거의 일부가 되었다. 옛 지명 월배. 대구 시 진천동의 어느 골목길에서의 나날들.섬유공장이 특화된 도시였다. 곳곳에 방직공장이 있었고, 그 주변을 에워싸며 급조된 슬레이트집들이 난무했다. 돈을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하류인생들이 흘러들어왔다. 먹이사슬의 최하층을 이루는 단순노무자들이 개미굴들을 하나씩 차지하고 밥을 벌어먹었다.방직공장 근처에는 독한 화학냄새가 안개처럼 부유했다. 골목과 집들과 사람들의 의복까지 온통 잿빛이었다. 들꽃 한 송이 피어나지 않는 척박한 골목길에서 잿빛의 아이들이 쌍욕을 하며 뛰어놀았다.아이들은 낯선 이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거칠고 공격적이었다.부모 없이 노인네 손에 맡겨진 두 아이들은 놀림감으로 좋은 먹이였다. 할머니는 골목에서 '욕쟁이 할매'라고 불려졌다. 젊은 날 첩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날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험하게 살아온 그녀에게서 살가운 할머니 역할을 기대하긴 무리였다.“짐승이면 삶아서 먹을 수라도 있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개 같은 년들. 내가 말년에 무슨 죄가 많아 저년들까지 떠맡았나. 더러운 년의 팔자” 욕은 시도 때도 없이 매질과 함께 빗발쳤고 수치심과 분노는 시간이 흐르며 딱지위에 딱지가 앉아 어떤 거친 욕설에도 귀가 무뎌져갔다.동생을 놀리고 끈질기게 괴롭혔던 동생의 담임선생님동생은 여덟 살이었다. 이가 들끓어 짧게 친 머리칼에 얼굴에는 늘 시퍼런 콧물이 번져있었고, 씻지 않은 손등은 때가 앉아 터지고 갈라졌다. 그러나 눈만은 물로 씻은듯이 항상 반들반들하였다. 그 눈으로 늘 눈치를 살폈고, 밤에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면서 잠들었다.학교에선 반 아이들의 놀림감이자 장난감이었다. 더럽다고 냄새난다고 공처럼 차고 샌드백처럼 두들겼다. 그 놀림을 주도했던 이가 동생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지원희. 이십대 후반의 여선생.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날렵한 스틸레토 힐을 신고, 턱을 높이 치켜들고 복도를 활보하던 여자.그 여자는 동생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수업시간 중에 어려운 질문을 해서 대답을 못하면 아이들에게 바보라고 외치라고 주도했으며, 지휘봉으로 배를 찌르며 교실 뒤편까지 밀고 갔다. 매일 손톱검사를 하며 대나무 자로 손등을 세차게 내리쳤다. 수업시간에는 뒤에 나가서 손을 들고 서있게 했으며, 너 같은 애는 왜 사느냐고 이해가 안 간다고 인격모독을 일삼았다. 공개적인 망신과 따돌림.교사가 공개적으로 주도 하니 아이들은 신이 나서 더 괴롭혔다. 학년이 바뀌면 같은 반 아이들이 또 한 반이 되면서 괴롭힘은 졸업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안과 밖으로 만신창이였던 시절이었다.동생은 그 시절 학교 문턱을 넘는 것이 지옥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나는 동생의 괴로움을 절반은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말려주지도 해결해주지도 못했었다. 그때는 나 역시 눈을 뜨고 있는 시간들이 힘겨웠었다. 한겨울에 수돗가에 앉아 찬물로 빨래를 하다가 손등이 찢어졌다. 피가 흐르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빨래를 마쳐야 하는데 어떡하지, 남아있는 산더미 같은 빨래 걱정을 했던 나는 열두살이었다.우연히 알게 된 러시아 시인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를 주술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빌었던 나날이었다.어떤 기억은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 모두 잊었다고 말했지만 삶의 언저리마다 기억들은 무시로 튀어나왔다. 기억의 돌멩이들은 술을 마시게 하거나, 자식에게 화풀이를 하게 하거나, 배우자와의 다툼을 유발하는 등 여전히 인생을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과거에 발목을 잡혀 있었다.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다. 그 선생은 너의 이름조차, 너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은 채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네가 그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아직도 몸살을 앓으면 그 여자는 너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거고, 넌 결국 그 여자에게 굴복한 거라고. 모두 털고 잊어버리고 잘 살아남아 네 새끼 어여쁘게 잘 키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동생을 위로하며 내 자신도 위로해 주었다.따뜻한 말 한마디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격려, 관심으로 자라는 아이들가끔 생각해본다. 그때 우리가 절망에 빠져 캄캄한 어둠 속을 헤메일 때, 누군가 다가와 손 잡아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어 주었더라면 우리를 숨 막히게 했던 불안한 현실들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졌을까.학교 선생님이나 주양육자나 모두가 가해자이며 방관자들이었다. 벌거벗은 채 야수들에게 제 살을 조금씩 뜯어주며 하루살이처럼 살아냈던 시절이었다.아이들은 스펀지 같은 존재이다. 부모와 주변인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아이는 내면과 외면이 단단한 어른으로 흔들림 없이 성장하여 자신이 설계한 인생을 곧잘 살아낸다.방치와 학대 속에 자란 아이는 불안과 우울을 머금고 자라며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불행을 되물림 한다.인생은 녹록치 않다. 삶의 굽이굽이 마다 행운과 불행이 요동친다. 우리들은 그 파도를 잘 이겨내야 한다. 항해의 고단함을 이기는 것들은 물질의 풍요가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격려, 관심이다. 변곡점을 잘 만나면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그러니 버텨라.지금 삶이 괴롭고 힘든 사람들에게 뉴욕 양키스 포수 요기 베라(Yogi Berra)의 입을 빌어 말해주고 싶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시작이 이어진다. 모두들 파이팅! 윤혜영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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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12-21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100) 휴가갈 때 추천하는 도서 목록 2탄
    여행 떠나기 좋은 가을…휴가지에 동행할 책들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 담은 ‘유라시아 횡단 기행’, 아버지의 의미 재발견하는 ‘아버지’ 등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여행은 그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출발할때의 설레임이 주는 기쁨도 매우 크다. 사진을 찍어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기록하는 것도 좋지만, 재미있는 책과 함께 하는 비행이나 기차여행, 수영장에서의 휴식은 즐거움을 배가시킨다.휴가지에 가지고 가면 좋을듯한 책들을 몇 권 추려보았다. 학문적 소양에 도움이 되는 심도깊은 책들은 제외하고, 몰입도가 좋아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빠른 페이지 터너 (page turner)위주로 몇 권 소개드린다. ■ 폴 써루 (Paul Theroux) - 유라시아 횡단 기행인도와 스리랑카를 잇는 열차, 만달레이 특급 열차, 말레이시아 황금화살호, 베트남의 완행 열차들, 오리엔트 특급 열차, 북극성호, 시베리아 횡단 열차. 폴 써루가 유라시아를 횡단하며 탔던 열차들이다."나는 기차에 올랐고 거기에 사람들이 있었다""보스턴과 메인이 맞닿은 거리에 살던 어린 시절, 기차가 지날 때면 나는 늘 거기에 타고 있는 내 모습을 꿈꾸었다."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과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 적당히 두껍고 내용도 재미있어 여행을 떠날때 가지고 가기에 제격인 책이다. ■ 현태준의 대만 여행기요즘 젊은 세대들은 더이상 서적에서 여행정보를 구하지 않는다. 더 나이든 세대도 마찬가지다.인터넷에 실시간으로 현지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최신판 여행서적을 사서 부록으로 딸린 지도를 탐독하고 줄을 치던 시절도 이젠 과거형이 되어버렸다.'현태준의 대만여행기'는 단순히 재미있는 책을 보는 기쁨으로 구입하였다. 재밌는 그림과 함께 대만여행기를 읽다보니 그 나라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머지않은 시일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책과는 별개로 대만 여행을 계획한다면 '허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비정성시'도 보면 대만의 역사적 유물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보일듯 하다. ■ 다니구치 지로 - 아버지'다니구치 지로'를 좋아한다. 가끔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러 책구경을 하는 것을 즐기는ㄴ 데 눈에 그의 책이 보이면 내용도 보지 않고 그냥 가지고 온다. 그가 쓴 책은 어떤책이든 '이름값'은 한다.이 책은 며칠전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한 만화책인데 '아버지'라는 다소 진부한 이름에서 대충 스토리가 연상되어 지나치려다가 저자의 이름을 보곤 챙겨온 책이다.1994년'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터벌'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한사람의 어른을 성장시키는 데에 가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겠는지 생각해본 책이다. ■ 다니구치 지로가 만든 책들집에 있는 '다니구치 지로'의 책을 꺼내 보았다. 고독한 미식가, 열네살, 도련님의 시대가 있다. 고독한 미식가는 인기 드라마로 방영되었고, 열네살은 1998년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수상작이다. 타임슬립을 주제로 한 만화책으로 재미가 좋아 책장 넘어가는 속도에 가속도가 점점 붙는다.'도련님의 시대'는 메이지 시대를 살았던 '나쓰메 소세키'와 그 주변 지식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 이우일 -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도날드 닭'으로 유명한 만화가 이우일씨가 미국 포틀랜드에 일년간 살면서 쓴 여행산문집이다. 삽화가 생각보다 적었지만 포틀랜드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그 도시에 가본듯 머릿속에 그려졌다.연중내내 비가 오는 포틀랜드, 면세지대라서 쇼핑하기 좋은 포틀랜드, 문신을 좋아하고 수다를 좋아하는 포틀랜드 사람들. 나도 기회가 되면 이우일씨처럼 포틀랜드에서 집을 렌탈해 세 달 쯤 살아보고 싶다. 저자가 좋아했던 'Powell's Books' 서점에서 매일매일 책을 읽고, 드래프트 비어를 마시고 벼룩시장이나 장미공원으로 나들이 가고 싶다. ■ 이문구 - 관촌수필몇 번을 보아도 언제나 새로운 재미가 있는 책이 다들 몇권씩 있을 것이다. 내게는 이문구의 '관촌수필'이 그러하다.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던 시절. 유교문화가 엄격했던 농촌에서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주변인들의 인생을 담고 있다.소설을 읽는 재미와 더불어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가는 갑남을녀들의 애환을 묵직하게 풀어놓았다. 재미있는 사투리 해석은 이문구 책의 또다른 재미이다.오래 끓인 진한 숭늉을 들이키는듯한 구수한 맛이 살아있는 소설이다. ■ 히가시노 게이고 - 백야행백야행은 수년 전 한국에서 영화로도 리메이크 되었다. 손예진씨가 주인공 역을 맡았는데, 괜찮은 소설들은 영화화 안되는게 좋을 것 같다. 원작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아무리 완성도 있게 만들어져도 소설적 환상에 대한 기대감을 뛰어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비행시간이 긴 곳으로 떠난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나 비행의 소음 정도는 가볍게 잊힐만큼 재미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 공지영 - 딸에게 주는 레시피몇달 전 이석증으로 쓰러져 5일 정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이틀은 그럭저럭 견딜만 했지만, 삼일이 지나니 지루해서 몸살이 났다. 외출증을 끊어 근처의 서점으로 가서 책을 두 권 사왔다.그러자 잉여의 시간이 견딜만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책의 내용은 엄마가 딸에게 전달하는 '인생'의 이야기이다. 인생이 녹록치 않지만 그렇다고 계속 힘든것만도 아니며, 살아가는 중간중간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잘 살아가라는 메시지이다. 쉽고 간편한 요리 레시피도 맛깔나게 소개하고 있어 책을 덮고 나니 버터에 구운 바나나와 소고기 콩나물국이 먹고 싶었다. ■ 천명관 - 고래마치 영화를 보는듯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함이 끝날때까지 휘몰아치는 소설이다. 책장을 한번 열면 결말을 볼 때까지 책을 닫을 수 없을만큼 소설적인 재미가 뛰어나다.다음 내용이 궁금해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에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페이지 터너'라고 지목할만 하다. 이 책을 보고 '천명관'에 대한 다른 책들도 찾아봤는데 영화화 된 '고령화가족'도 재미있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만만치 않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누구도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다. 안타깝게도.소설이 끝나고도 오래도록 'Georges Brassens'의 “행복한 사랑은 없다네”가 귓가를 맴돌았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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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10-18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9) 경주 세계 茶문화 축제 - 가을날 누리는 우아한 사치
    [사진=윤혜영] 茶 향기 넘실거리는 경주 세계 차 문화 축제 9월 실시 생소한 차(茶)의 세계 흥미 진진하게 펼쳐져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가을이 무르익는 9월의 경주. 보문호숫가는 茶향기로 넘실거린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푸르름이 아련하고 아련한 물안개 내려앉은 보문호숫가는 세계 곳곳에서 진귀한 차를 가지고 당도한 이들이 우려내는 차향기가 향긋하게 퍼져나간다. 올해로 3회 째를 맞이한 경주 세계 茶문화 축제는 구월 어느날에 단 하루만 시행된다.장소는 보문단지 호숫가를 둘레로 50개의 부스가 설치되고 중국과 대만, 일본, 스리랑카 외에 국내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차회들이 가져온 최상품의 차들과 다과들을 선보인다. 1만원 짜리 티켓 한매를 구매하면 세 곳의 찻자리를 선택해 차를 마실 수 있다. 행사진행은 오전 10:30부터 17:30까지 이어진다. [사진=윤혜영] 스타벅스 뒤편에 주차를 하고 티켓을 받은 다음 차부스를 둘러본다. 오전이어서 조용한 가운데 만반의 준비를 끝낸 차부스들은 미소를 띠고 손님들을 맞이했다.홍차로 시작을 했다. 차맛은 잘 모르지만 찻잔과 그릇들이 너무 예뻐 차 맛을 돋우웠다. 차를 마시는 동안 홍차부스의 주인장이 그날의 홍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고 찻잔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준다. 설명을 들으며 차를 마시니 더 의미가 깊었다. [사진=윤혜영] 호숫가를 천천히 걸어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부스가 있으면 들어가서 또 차를 마신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커피는 빠르고 강렬한 반면에 차는 느리고 고즈넉하다. 매번 커피만 마시다가 평소 접하지 못하던 차의 세계는 매우 흥미진진했다.연잎차, 보이차, 말차 등을 마신다. 호숫가 중앙부스 쪽에는 무대가 설치되어 가야금과 대금, 해금등의 연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음악소리는 고요히 흥취를 돋우웠다. [사진=윤혜영] 중국과 일본인이 시연하는 부스에는 통역자들이 따로 있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을 듣기 좋았다. 몇 곳을 돌다보니 두시간이 훌쩍 지났다. 함께 간 딸아이는 오끼나와에서 온 부꾸부꾸 차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다.부꾸부꾸는 현미와 함께 차를 우려 거품을 내어 마시는데, 아마도 아이는 차보다도 사브레 같은 오끼나와 과자가 맛있어서 좋았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사진=윤혜영] 2016년 첫회 때는 100곳의 차부스가 출전을 했는데, 3회째를 맞는 올해는 50곳이 출전을 하여 절반으로 규모가 줄었다. 개인적 소감으론 경주에서 열리는 많은 축제들 중에 가장 좋아하고 가을이 되면 차축제가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경주시에서 시행하는 수많은 그렇고 그런 행사들. 가수들을 초청하거나, 떠들썩한 먹거리 축제를 하거나,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판에 박힌 복제에 복제를 거듭한 행사들 속에서 '세계 차문화 축제'는 독보적으로 돋보인다. 참고로 이 행사는 경주시에서 주최하는 것이 아니라 경주 세계 차문화 축제 조직 위원회(주관 : 아사가차회)가 기획하여 이제껏 추진하여 왔다.이와 같은 참신한 행사들이 조금씩 늘어났으면 하면 바램이다. 세계 茶문화 축제는 경주시 보문호숫가 일대에서 매년 가을에 개최되며 날짜는 9월 중에 유동적으로 우천시를 피해 정해진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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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9-19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8) 독서의 계절에 추천하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모음
    만화의 변신, '그래픽 노블'인 '사브리나'가 문학 경계 허물어여장남자와 살인마, 사치와 평온과 쾌락, 타나토노트 등(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과거 만화책은 그것이 베풀어주는 즐거움과는 별개로 예술의 변방에서 취미생활의 하위장르로 업신여김을 받고는 했다.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반기는 분위기였지만(나를 보면 상시 어두웠던 모친의 낯이 찰나 밝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만화방에 간다고 하면  등짝을 두들겨 맞았다. 누구나 대놓고 만화를 본다고 하면 환영받지는 못했다. 만화가 가진 가벼움과 키치적인 속성이 그랬다.어린시절 동네에 두어 곳 위치한 만화방은 하릴없는 청춘들의 소굴이었다. 대본소라고 부르기도 했던 그곳은 암굴처럼 어둑시글 했고, 짜장면과 담배와 곰팡이와 발꼬랑내가 뒤섞인 복합적인 냄새로 정체성을 다졌다.의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사람이 출입하는 곳은 절대 아니라는 선입견을 심어주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엔 늘어난 츄리닝이나 누렇게 뜬 런닝을 걸친 차림의 동네 백수들이 발가락 사이를 후빈 손으로 코를 파거나, 라면 건더기가 낀 잇몸을 쑤시며 만화책이나 무협소설을 읽는 곳이었다.그러나 만화가 가진 천박한 이미지와는 반대로 그것들이 가져다 준 꿈과 모험이 가미된 오아시스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대의 하루살이들에게 신세계를 펼쳐주었다. 우리들은 저마다의 골방에 틀어박혀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꿈은 멀고 현실은 남루하다.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만화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소설과 에세이와 시와 각종 월간지, 계간지들과 외도하다가 다시 만화와 재회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를 꽤 많이 읽는 편이다.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은 만화 소설의 조합으로 문학이 깊이 개입하여 예술성이 강한 만화를 지칭한다. '만화=가볍다'는 오해 덕에 '예술이다 아니다' 정체성의 논란이 계속되기는 했지만, 2018년 세계 3대 문학상중 하나인 맨부커상 후보에 닉 드러나소의 '사브리나'가 선정되면서 그래픽 노블이 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물결로 나아가는 시도를 보여주었다.아트 슈피겔만(Art Spiegilman), 제프 르미어(Jeff Lemire), 자크 타르디(Jacques Tardi)의 작품들을 그래픽으로 칭할까? 노블로 칭할까? 나는 그 어떤 노블보다 더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좋은책은 일회성의 오락거리로 휘리릭 읽고 그치는 책이 아니라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사골곰탕처럼 의미가 깊어지는 책이라고 생각한다.그악스럽던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꺽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다. 그 어느때보다 대기가 맑고 깨끗하여 머릿속이 청명하기 그지없다. 올해 들어 재미있게 읽었던 그래픽 노블들을 몇 권 소개한다. 선정은 나의 개인적 취향에 근거하므로 비난을 하시려거든 별도의 이메일을 이용해 주시길 바란다.■ 클로에 크뤼쇼데(Chloe Cruchaudet) - 여장 남자와 살인자 부제는 '살기위해 여장을 선택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평범하게 살아오던  한 남자가 군인으로 징집된다. 전쟁에서 몇 차례 참담한 살육을 경험하며 전투에 나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절단하는 자해를 한다. 그러나 그조차 맘대로 되지 않자 탈영하게 된다.이후 살아남기 위해 종전이 될 때까지 여장을 하며 살아간다. 여자가 된 그의 인생. 그리고 그의 아내. 소소한 행복에 즐거워하며 살아가던 소시민들의 인생을 전쟁은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앙굴렘 국제 만화제 수상작이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알프레드(Alfred) - 코메 프리마 : 예전처럼 이탈리아 칸초네 코메 프리마(Come prima)는 '예전처럼'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면서 주인공이 염원하는 바를 시사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작은 어촌이 지겨웠던 파비오는 모험을 찾아 고향을 떠난다.중년이 되어 실패한 권투선수의 비루한 일상을 드문드문 살아내고 있는데, 어느날 아버지의 유골과 함께 동생이 찾아오고, 우여곡절 끝에 두 형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예전처럼'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책을 보는 내내 '테일러 쉐리던' 각본의 '로스트 인 더스트'가 연상되었다.어느 쪽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분위기가 꽤 비슷하다. 2014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자크 타르디(Jacques Tardi) - 제 1차 세계대전 프랑스 국민 만화가 칭호에 빛나는 '자크 타르디'와 역사학자 '장 피에르 베르네' 공동 집필.스토리는 재미를 위한 픽션이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철저한 고증에 바탕했다. 1914년 부터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이 연대기적으로 펼쳐진다. 거대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국가와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몰락하고 피폐해져 가는지 스펙타클한 스토리로 휘몰아치듯 이끌고 간다.인간의 숭고함을 말살하고 영혼마저 철저히 파괴시키는 전쟁의 참혹함. 몸과 마음이 불구가 되었으나 끝내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기억은 인생은 지배한다. 이 전쟁에서 승자는 누구인가? 살아남은 자? 죽음으로 기억에서 해방된 자?■ 쟝 쟈크 샹페(Jean Jacques Sempe) - 사치와 평온과 쾌락 어린시절 쟝 쟈크 샹페와 르네 고시니가 함께 만든 '꼬마 니콜라'를 만난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변변한 놀잇감이 없던 시절에 엄마 손을 이끌고 서점에서 직접 구입한 '꼬마 니콜라' 세 권은 귀한 보물이었다.아직도 표지의 질감과 디자인, 책의 내용이 생생히 펼쳐질만큼 읽고 또 읽었던 책이다. 그만의 전매특허인 데생은 평생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유니크함을 선사한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은 보들레르의 시에서 따온 글귀로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위의 책 외에도 '속 깊은 이성 친구, 뉴욕 스케치, 얼굴 빨개지는 아이, 파리 아름다운 날들'은 허를 찌르는 풍자와 해학의 미가 넘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작은 행복들을 끊임없이 노래한다. Seize the day 놓치지 않을 것, 최대한 누릴 것!■ 다니구치 지로(谷口ジロ) - 아버지 다니구치 지로는 현실에 바탕하여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의 대가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감정이 이입해 더러 눈물이 맺히기도 하는데. 리얼리즘의 대가답게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듯 하다. 시대가 달라져도 정서는 쉬이 변하지 않는다.어느 누구의 삶도 스스로에게 하찮은 인생은 없으며 사랑이 깊은 사연일수록 페이소스는 짙어진다. '아버지'는 1950년대 일본 돗토리현에서 일어난 대화재를 큰줄기로 평범한 집안에서 일어난 가정의 붕괴와 그에 따라 변해가는 한가족의 이야기이다.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열네 살'도 함께 추천한다. 두 작품 모두 앙굴렘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잔잔하고도 깊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대표작은 '고독한 미식가'라는 생각이다.■ 피에르 타랑자노(Pierre Taranzano) - 타나토노트 한때 우리나라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스'가 그래픽노블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타나토노스는 Thanatos(죽음)과 Nautes(항해자)를 합친 말이며, 저승으로 가는 기계를 이용해 사후세계를 탐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SF노블이다.어린시절의 두 친구가 과학자와 의사가 되어 조우했다. 그들이 저승 탐사대를 꾸려 전인미답의 세계인 지옥으로 여행을 떠난다. 잠시 숨이 끊어진 코마 상태가 되어 제 7천계에 이르는 저승세계를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체험하는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간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미치도록 궁금해진다. 죽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그 세계.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죽으면 천국으로 가는 것일까?김수박 - 아재라서 시사고발 옴니버스 만화 '내가 살던 용산'을 읽다가 김수박이란 작가가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커다란 라디오를 들고 있는 표지가 궁금하여 '아재라서'를 읽어보게 되었다.지방의 어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무력으로 반장이 되어 군림하는 인물을 통해 권력의 속성과 비열함, 절대권력에 무기력한 학우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살아왔던 한국사회의 단면을 비유한다.불온한 이익을 취하고 권력에 빌붙는 이들, 방관자들, 아슬하게 이어지는 작은 평화, 그러나 끝까지 맞섰던 영도라는 인물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나아가는 '희망'을 보여준다.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의 엄석태도 오버랩 되고. 교실에 빗댄 우리사회의 축소판으로 고발하는 에피소드들은 현실이나 다름없어 실소와 함께 부끄러움을 자아낸다. 현재 김수박 씨는 한겨레 신문에 '민들레'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제프 르미어(Jeff Lemire) - 에식스 카운티 에식스 카운티는 캐나다의 어느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 곳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담았다. 그림은 블랙&화이트의 구성으로 무척이나 건조하다. 바싹 마른 지면을 보고 있노라면 목이 말라온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순무처럼 길고 허여멀건한 얼굴에  건포도 같은 두 눈을 붙이고 있다. 그러나 그 건조한 인물들이 대사를 하고 살아 움직일때 가슴이 쓰릴만큼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장식을 날려버리고 최소한의 배치만으로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든다.내용은 3부작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모두가 연결되는 스토리이다. 인생이라는 수수께끼. 가슴이 아려오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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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9-11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7) 경주살이 - 경주 세계 茶문화 축제
    ▲ 사진제공=아사가차관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오는 9월 15일 경주 보문단지에서 세계 차문화 축제가 열린다. 올해로 3회 째를 맞는 세계 차문화 축제는 경주의 대표적 관광지인 보문호수를 둘러싼 세계 차 시음회로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대만, 일본,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진귀한 茶들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약 60석의 찻자리가 배치될 예정이며 차를 마시며 가야금과 대금 등의 한국의 전통음악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향긋한 차와 함께 아름답고 우아한 경주의 가을날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티켓은 예매 및 현장판매로 구할 수 있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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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9-07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6) 경주살이 - 경주 예술의 전당 나들이
    ▲ 경주 예술의전당 전경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경주 예술의전당, 일 년 내내 공연과 전시 진행하며 문화 허브 역할아이 눈높이에 맞춘 전시회도 진행…세대 아우르는 관람 가능경주에 자리 잡은 지 6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못 가본 곳이 많다. 어린 자식이 두 명이 있으니 아무래도 아이들 위주의 체험으로 돌아다니게 되는데 그중 경주 예술의전당에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에밀레종을 본뜬 멋있는 외양의 경주 예술의전당은 일 년 내내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끊이지 않아 경주시의 문화 허브로서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토요일을 맞아 큰애, 작은애를 데리고 예술의전당으로 나들이 가본다. 어느 때를 방문해도 항상 크고 작은 전시가 있기에 소소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놀이터이다. 1층 로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품전이 있어 좋은 미술품들이 7달째 전시되고 있다.큰 애는 그림을 보고 그 나이의 눈높이에 맞는 질문들을 쏟아낸다. 똥색이라며 웃기도 하고, 벌레가 사실적이라 무섭다고 소리치기도 하며, 예쁜 언니 그림이 마음에 드니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1층을 훑고는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에 있는 ‘갤러리 달’에선 일 년 내내 '경주작가 릴레이展'이 펼쳐진다. 방문한 날은 서지연 작가의 나무에 옻칠과 나전을 이용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제2전시실에는 프랑스 화가 펜델리오와 김홍광의의 초대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이는 펜델리오의 그림을 보고 동화속에 들어온것 같다며 좋아한다. ▲ [사진=윤혜영 기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의 대전시실로 이동한다. 광복 73주년을 맞이하여 '만화의 울림 - 전쟁과 가족'이란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국만화박물관과 공동기획인 이 전시는 1910년의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의 용산 참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의 역사적인 사건들 속에 휩쓸리는 민초들의 아픔을 그렸다. 김광성, 김준기, 허영만, 윤태호, 박건웅 등의 만화가들의 대표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위안부 문제, 전쟁고아들의 아픔, 노근리의 양민학살, 이후 대한민국의 초고속으로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며 터전을 빼앗긴 이들의 용산참사와 노동자들의 인권을 다룬 전태일 분신자살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는 목소리는 '잊혀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 [사진=윤혜영 기자] 특히 박건웅 작가의 작품들은 너무 사실적이라 보는 자체가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노근리 이야기를 보며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전쟁과 가족'전시를 보고 건너편으로 가서 홍승혜 작가의 '점, 선, 면'까지 관람한다. 어린이 체험전이라 큰 애는 갈 때마다 가서 뛰어논다. 모든 전시를 다 보고 나니 3시간 반이 흘렀다. 세대를 아우르는 관람과 체험이 가능하니 엄마도 아이도 즐겁다. 8월 23일에는 뮤지컬과 재즈 공연을 보러 갈 예정이다. 무료공연인 데다 선착순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나눠준다니 이보다 좋을수가 없다. 경주에 사는 즐거움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참고로 전쟁과 가족展은 9월 9일까지이며 매 달 마지막 주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날'에는 입장료가 무료이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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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8-20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5) 나의 마카오 여행기② ‘골목길’
    ▲ 마카오 타이파 빌리지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주거인들의 삶과 개성이 묻어나는 ‘골목길’ 이방인들에겐 소소한 구경거리이자 즐거움 아침 일찍 눈을 뜬 아이들과 남편은 라운지로 조식을 먹으러 향하고 나홀로 타이파 빌리지로 외출을 감행했다. 날씨가 많이 무더울거라 미리 걱정을 했었지만 소나기가 자주 내려서 그다지 덥지 않았다. 길은 찾기 쉬웠다. 갤럭시 호텔의 푸드코트쪽으로 내려가서 East square이정표를 보고 계속 걸었더니 카지노가 나왔고 그 옆의 큰 문을 밀고 나가니 길 건너편에 타이파 빌리지의 정문이 보였다. 출근시간대라 사람들이 많이 오갔고,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횡단보도에는 따로 신호등이 없어 쭈뼛거리며 도로로 나섰는데 멀리서 달려오던 차들이 사람을 발견하고는 서행을 하여 일제히 정지선에 멈추었다. 순간 살짝 충격이 올 정도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차를 피해다니는게 정석이다. 횡단보도에서도 우회전을 하는 차들이 사람을 보고도 아랑곳없이 주행을 하기 때문에 알아서 피해가야 한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인 마카오 시민들의 의식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고 생각된다. 참고로 마카오의 GNP는 세계4위에 이른다. 타이파 빌리지로 들어서 실핏줄처럼 곳곳으로 뻗어나간 골목의 어느 한 곳을 택해 걸어본다. 나는 골목이 좋다. 골목길은 주거인들의 삶과 개성이 묻어나기에 소설만큼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된다. 어느집 마당에 심어놓은 꽃과 나무들은 주인의 취향을 드러냄과 동시에 구경꾼들에게도 즐거움을 나누어준다. 상점들과 주거환경이 뒤섞인 골목길은 이방인에게 소소한 구경거리를 던져주었다. 골목의 구석에는 드문드문 작은 향로가 놓여있었다. 하루의 무사(無事)를 기원하는 작은 소망들이 푸르스름한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 마카오 타이파 빌리지 [사진=윤혜영]  무심히 걷다보니 땀이 제법 흘러 옷이 젖어들었다. 바람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드라이함이다. 그러나 즐겁다. 오래전 좋아하던 이에게 전화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공중전화가 사랑의 메신져였었다. 사각의 유리로 된 내부는 완전 밀폐되어 한여름에는  한증막 그 자체였지만 더운줄도 모른체 수다를 떨던 기억이 난다. 통화를 끝내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오히려 상쾌했던 기억.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는지. 낯선 도시에서 문득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나의 상태를 전하고 너는 잘 지내냐고 괜찮냐고 묻고 싶어졌다. 기억의 갈피를 뒤지다 이내 풀이 죽는다. 허물없이 마음을 전할 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걷다보니 작은 사원이 나타났다. 매캐한 향내에 이끌려 들어간 내부에는 칼을 든 장군이 지키고 있었다. 부탁할것이 떠오르지 않아 손을 모으고 머리만 조아린다. 문득 시계를 보니 두시간 가까이 돌아다닌 것이었다. 목도 마르고 배가 고파졌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정문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가베(咖啡)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 타이파 빌리지 - 청주조기가베가게 [사진=윤혜영]  내부는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마시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구석자리에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고 타인들이 뭘 먹고 있는지 살짝 훔쳐보았다. 눈썰미 있는 종업원이 사진메뉴판을 가져다주었고, 남들이 먹고 있는것과 비슷한 사진을 보며 주문하였다. 낯선 세계에서 낯선 음식을 먹는것은 꽤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다국적 호텔의 스텐다드한 요리들만 먹어서는 결코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없다. 현지식당에서 어울려 먹는 음식들이 여행의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이윽고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토마토 국물에 마카로니와 고기를 넣고 푹 끓인 스튜, 그리고 버터 바른 식빵이다. 스튜는 칼칼하고 감칠맛이 있었다. 식빵은 너무도 부드럽고 고소하여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씩 생각이 났다. 다음에 마카오를 간다면 다시 찾아서 식빵을 꼭 먹을 것이다. 마카오의 미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포르투칼 식민지 400년을 거치면서 융합된 문화가 낳은 매케니즈(Macanese)요리는 중국과 포르투칼의 장점만을 취한 퓨전요리들을 탄생시켰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 짐을 꾸려 포시즌스 호텔로 이동했다. 타 국가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한 마카오 포시즌스 호텔은 세심한 고객맞춤 서비스로 특급호텔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 마카오 포시즌스 호텔 [사진=윤혜영]  수시로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살폈고 정중한 서비스로 매우 만족한 호텔스테이를 누릴수 있게 해주었다. 앞서 묵었던 메리어트의 직원들은 물어뜯긴 소 마냥 퉁퉁 불어있던 표정들이 말을 걸기도 무서웠는데 이곳 직원들은 어찌나 친절하던지 마치 '우리가 대동단결해서 널 감동시켜 버릴거야'라고 마음 먹고 덤비는듯 하였다.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큰 아이를 데리고 다시 타이파 빌지로 나섰다. 이제 여섯살이 되어 세상 모든것이 궁금하고 호기심이 무한대인 첫째 아이에게 되도록 현지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녁이 되자 주민들은 선선한 바람을 쫓아 광장이나 골목의 너른 곳으로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복 차림의 할아버지가 부채를 부치고, 젊은 엄마는 유모차를 태워 아기를 어른다. 아이들은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관광객들은 무심한 얼굴로 바삐 오간다.   ▲ 세기까페의 쭈빠빠오 [사진=윤혜영]  삶이란 어느곳이나 다르지 않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시간을 살고 있었다. 아이에게 쭈빠빠오를 한 개 사먹이고 아이크림을 하나씩 사서 우리도 그들처럼 벤치에 앉았다. 이런 시간에는 대화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그냥 이 느낌을, 이 공기를 즐기면 그만이다. "내가 네게 줄 수 있는건 단 하나 시간이라는 선물이야, 너는 아직 내 선물의 가치를 몰라. 내가 준 그 선물로 니 인생이라는 것을 완성해야 하는거야." 미카엘 엔데의 모모가 생각나던 그날 저녁. 나는 딸에게 말해주었다. "린이야. 꿈이란 것은 그것을 쫓는 과정의 가치를 말하는 거란다. 네 삶을 즐기며 있는 그대로의 네 자신을 사랑하렴" (3편에서 계속)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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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8-17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5) 나의 마카오 여행기 (1)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스테이’와 ‘엔터테인먼트’ 결합한 ‘스테이트먼트’, ‘호텔’과 ‘바캉스’ 결합한 ‘호캉스’ 등…최근의 여행 트렌드는 ‘힐링’   과거에 유흥의 도시였으나 현재 가족을 위한 휴양지로 탈바꿈한 도시 마카오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변화하면서 휴가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물 좋은 계곡을 찾아 텐트를 치거나 민박을 했다. 형편이 보다 나은 집의 경우 펜션을 잡아 물놀이를 즐기고, 고기를 구워먹는식이 보통이었다.  아이들은 튜브를 타거나 다슬기를 잡으며 좁은 계곡을 떠다니고 남자들은 둘 이상 모이면 내기 화투나 술추렴, 여인들은 코펠로 밥을 짓거나 고기를 굽거나 식칼로 수박을 가르며 땀을 훔쳤다. 내 유년기의 휴가란 그러했다. 해수욕장이라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계곡이 바다로 바뀌었을뿐. 명당자리를 찾기 위한 눈치작전과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더러운 파도에 몸을 날린다. 쓰레기와 페트병과 함께 떠다니다가 배달 통닭을 먹으며 여기가 어딘가, 나는 무엇인가 망중한 속에 취객들의 아귀다툼을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지루함이 더해지면 난방이 잘 되어 있는 텐트 안에서 땀을 흘리며 만화책을 읽는다. 그러다 밥 때가 되면 어머니가 (그녀의 표현에 의하자면)중공군이 몰려온듯한 인파를 뚫고 공동어시장에서 사 온 뜨뜻한 회를 먹는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휴가가 끝나고 터져나가는 짐들과 함께 비좁은 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오면 부모님은 한숨과 함께 웃으며 말한다. "역시 집이 최고지?" 결론적으로 나는 휴가가 싫었다! 최근의 휴가트렌드는 ‘호캉스’다. Hocance는 호텔과 바캉스를 합친 말로 호텔에서 즐기는 휴가를 말한다. 전세계 호텔 체인들이 세일하는 시즌을 노려 미리 날짜를 잡고, 항공사들이 세일할때 비행기 티켓도 구입해두면 나름 저렴한 가격으로 편안한 휴가를 즐길 수 있다.  나에겐 여섯살, 두살의 어린아이가 둘이 있어 관광형 여행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 되도록 많이 걷지 않고 호텔 안에서 휴식과 수영, 식사와 쇼핑이 모두 가능한 곳을 찾는다. 그러다보니 우리에겐 휴양형 호캉스가 제격이다.   그런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 스테이(stay)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가 되는 Staytainment가 가능한 곳을 찾다보니 마카오가 적합이었다. 비행시간도 3시간 10분이어서 무리가 없었다.   첫날, 숙박한 그랜드 라파 호텔은 공항에서 택시로 15분 가량 걸렸다. 택시기사분들은 영어를 잘 모른다고 하여 ‘마카오 택시’라는 app을 이용했는데, 한문으로 호텔 이름을 번역해주니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편했다. ‘그랜드 라파’는 (구)만다린 호텔을 리노베이션 했다고 한다. 룸은 좀 클래식한 느낌이었으나 응접실이 있어 공간활용이 좋았고, 슬라이드가 있는 큰 수영장과 키즈까페 두시간 이용이 무료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간 식당 ‘벨라비스타’는 마카오 디저트인 '세라두라'를 잘한다는 평이 있었는데 먹어보진 못했다. 채광이 잘 들어오는 넓은 창이 아름다운 레스토랑이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남편은 키즈까페로 가고 나는 마트에 가서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사오겠다며 홀로 나섰다.  낯선 나라의 이름모를 골목들을 헤매이는 것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즐거움이다. 다국적 체인 호텔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그네들의 민낯. 우리들과 다를바 없는 그들의 일상. 모퉁이를 돌다 우연히 발견하는 맛집이나 거리곳곳에 피어난 꽃들과 이름모를 식물들과 현지인들의 미소.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도보에는 네모난  석회석을 박아 물결무늬나 소용돌이 무늬, 태양과 물고기로 아름답게 장식을 해놓았다. 칼사다(calsada)라는 이것은 포르투칼이 식민지배를 하며 퍼진 건축양식이다.  [사진=윤혜영] 거리에는 차찬탱들과 테판야키 식당, 금방과 마사지 샵, 슈퍼마켓들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현지 슈퍼마켓인 來來로 가서 컵라면과 우유, 과자등을 샀다. 오전 10시이지만 마트 외에는 문을 연 상점들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정오에 문을 연다고 한다. 골목의 모퉁이를 두어번 돌았을 즈음 소나기가 쏟아졌다. 서둘러 호텔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마치곤 Wynn호텔의 Wing Lei로 향했다. 미슐랭 one star를 받은 광둥식 요리집인데 런치에는 인당 MOP 188으로 6종류의 딤섬을 고를 수 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엄청난 돌풍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졌다. 겁이 많은 남편은 우산이 없는데 어떡하냐를 연속으로 외치며 호들갑을 떨며 방방 뛰었다. 그 꼴을 보니 울화가 치밀어 육두문자가 입밖을 탈출하려는 찰나, 귓가에 “마담? 웨 아 유 고잉?”하는 부드러운 저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금성무를 닮은 호텔직원이 우산을 들어보이며 식당은 카지노 때문에 많이 돌아가야 하니 우산을 쓰라며 두 개를 들이밀었다. 천사의 강림이었다. 덕분에 비를 맞지 않고 오갈 수 있었다. 다음에는 꼭 윈호텔에 묵어보고 싶다. 물론 금성무 때문만은 아니다. 마카오는 미식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2017년 기준으로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곳이 이 좁은 도시에만 19곳이다. 주목할 만한 식당인 Bib Gourmand까지 합치면 종일 식당만 다녀도 모자랄 판이다. 윙레이에서 맥주를 곁들여 서브들이 추천하는 딤섬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두번째 숙소인 JW 메리어트로 향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첫째는 하루종일 물놀이를 하겠다고 잔뜩 들떠 있었다. 수영장이 훌륭하다는 평이 많았기에 선택한 호텔인데 기대 이상이었다. 네 개의 호텔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Grand Deck은 인공파도가 휘몰아쳤고 투명창을 지나는 유수풀은 튜브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저절로 흘러갔다. 곳곳에 모래사장과 크고 작은 풀장이 있어 이틀 동안 물놀이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사진=윤혜영] 이그젝큐티브 룸을 예약했기에 간단한 식사와 칵테일이 제공되었지만, 아이들이 주전부리를 찾아서 또 홀로 출격을 해보았다. 호텔들은 아케이드로 연결되어 굳이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메리어트 호텔 로비로 내려가 갤럭시 호텔 방향으로 걸어가면 다국적 쇼핑센터들과 푸드코드가 있어 손쉽게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고, 좀 더 걸어 무빙워크를 타면 브로드웨이 호텔의 푸드 스트리트와 이어졌다.팀호완을 찾아 갈비덮밥과 샤오롱빠오, 창펀 등을 주문하고는 포장이 되는 동안 맞은편 퍼시픽커피로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마셨다. 비싸지만 맛은 없는 커피였다. 이럴때는 본전 생각이 나서 화가 난다. 옆에 앉은 대머리 남자 두명이 침을 튀기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햇살이 비춰 그들의 대머리와 금반지가 영롱하게 반짝거렸다.마카오의 한낮은 많이 무더웠지만 가끔씩 소나기가 쏟아져 견딜만한 더위였다. 꼬마기차에서 한무리의 가족들이 내렸고, 팀호완에서 요리사들이 갑자기 뛰어나오더니 식칼로 도마를 두드리며 춤을 추었다. 여행의 재미는 이런것이다. 뜻밖의 상황, 예기치 못했던 즐거움. 인생이 정해놓은데로만 흘러가면 너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사진=윤혜영]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 가는데 중간에 H&M이 있어 둘러보았더니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 꼴라보 제품들이 많이 있었다. 물놀이 하고 있는 첫째를 데리고 나와 겨울왕국 원피스와 목걸이를 사주었더니 동동 뛰며 좋아하였다. 마침 시간이 나면 들리려 했던 CHA BEI커피셥이 눈에 띄길래 아이에겐 초코케익을 사주고 나는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셨다.옆테이블에 아이와 아주머니들이 앉았는데, 대여섯살 즈음 되었을까, 번잡스러운 사내아이가 신발을 신고 소파를 구르고 매장을 질주해도 여인들은 흐뭇한 눈길로 바라볼뿐 아무런 재제도 가하지 않았다. 딸이 타고 있는 그네에도 와서 기어오르고 마구잡이로 흔드는데 엄마로 짐작되는 여인은 광둥어로 수다만 줄창이었다. 서둘러 자리를 피해버렸다.  [사진=윤혜영]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것 같다. 물놀이에 지친 아이들은 저녁을 먹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아이들을 눕히고 침대에 누우니 마카오 호텔들의 화려한 야경들이 앞다퉈 번쩍거렸다. 은은하고 어여쁜 반짝반짝이 아닌, 모든것을 집어삼킬듯 압도적으로 현란한 번쩍임이었다. 카지노 왕국의 현란함은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위압감이 서려있었다.정보화 사회의 이후는 무엇일까? 정보가 상상으로 전환되는, 감성과 꿈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변할것이다. 스토리텔링, 이야기와 신화, 꿈이 현실처럼 펼쳐지고 기업과 상품의 가치는 그것들과 결합된다.호텔 수영장에는 인어가 헤엄치고, 로비에는 에이리언과 공룡들이 돌아다닌다. 에펠탑이 거리에 솟아나 있고, 바닥에서 용이 튀어나와 불을 뿜는다. 곤돌라를 타고 인공호수를 가로지르고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춘다. 마카오에서는 상상이 곧 현실이 된다.한때 어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였던 환락의 도시 마카오는 휴양과 오락 기능을 두루 갖춘 ‘가족 단위 복합휴양지형 레저공간’을 창출하여 초일류 관광도시로 우뚝섰다.홍콩과 주하이, 마카오를 잇는 세계 최장 해상대교인 강주아오(港珠澳)대교가 완공되면 문화관광으로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더욱 엄청나게 성장할 것이다. 마카오는 이미 아시아의 허브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2부에 계속)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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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7-26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4) 휴가철 대비 “내맘대로 선정한 경주 인기 까페 모음”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다가온 여름 휴가, 관광휴양도시 다운 경주의 트렌디한 카페 '눈길'경주다방, 로드100, 커피명가 보스케 등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사시사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경주는 관광휴양도시답게 고객의 니즈를 최대한 반영한 트렌디한 까페들이 즐비하다. 많이들 즐겨찾는 보문단지나 황리단길 외에도 경주 시내 곳곳에 개성만점 까페들이 숨어있어 하루에 한두곳씩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이번에 소개하는 까페들은 유명 관광지에 위치한 곳 외에도 시민들이 거주하는 한적한 주택가에 숨어있는 오래된 까페도 곁들였다. 경주 여행때 참고하여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가시기를 바라며. ▲ 경주다방 [사진=윤혜영] 경주다방 - 경주시 태종로 801. 경주장 여관 1층. 12:00~21:00 (매주 화요일 휴무)모래시계 드라마의 세대들은 엄청 반가워할 빈티지한 까페. 길을 걷다 어느 어둑한 지하다방에 들어가 시킨 설탕2, 프리마3의 커피를 기억하시는가! 과거로 빨려들어간 시간의 어느 지점을 통과해 들어간 듯한 착각. 까스렌지 위에는 모카포트들이 들끓으며 진한 커피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까페 내부는 비좁고 세월의 때를 입은 소품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시그니처 메뉴인 '첨성대 라떼'가 6,000원 ▲ 로드 100 [사진=윤혜영] 로드 100 - 경주시 보불로 100. 10:30~23:00까페주소가 곧 상호인 곳. 시설이 넓고 주차장이 크다. 여러가지 브런치 메뉴들과 샌드위치, 케익을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곳. 무엇보다 키즈존이어서 아이들과 눈치보지 않고 방문할 수 있다. ▲ 커피명가 보스케 [사진=윤혜영] 커피명가 보스케 - 현곡면 용담로 477-53. 10:00~23:00시가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Bosquet라는 이름이 시사하듯 골프장과 같은 전원속에 위치해 있다. 오래전부터 커피가 맛있기로 유명한 커피명가답게 커피가 맛있고 딸기케익은 오후에 가면 완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1층은 키즈존, 2층은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며 빈백들이 자리한 곳은 누워있기 좋아서 늘 사람들로 붐빈다. ▲ 아덴 [사진=윤혜영] 아덴 - 경북 경주시 사정로 57. 11:00~22:00경주에는 두 곳의 아덴이 있다. 보문에도 있고 황리단길에도 아덴이 오픈했다. 아덴의 멋진 인테리어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세련미를 뽐낸다. 키즈존과 노키즈존 두 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다. 커피숍 내에 베이커리도 같이 운영한다. ▲ 파티쉐 원 [사진=윤혜영] 파티쉐 원 - 경주시 봉황로 89. 일요일 휴무이곳은 원래 ‘이재원의 과자공방’이란 이름으로 경주에 사는 주부들에게 꽤 유명한 빵집이다. 최근에 베이커리 앞에 커피숍을 오픈해서 음료와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조각케익들이 한개 3.500원인데, 6개를 고르면 15.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케익을 주문하면 음료도 할인해서 함께 먹을 수 있다. ▲ 야드 [사진=윤혜영] 야드 - 경주시 천군2길 2. 10:00~12:00보문단지에 있는 브런치 맛집이다. 브런치 주문시 음료가 할인된다. 가게 앞에는 텐트가 몇 있었는데, 아이들이나 연인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애들과 연인들은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다. 나도 텐트 속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남편과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부러워만 하였다. 뒤쪽으로 전통찻집인 아사가차관, 커피명가, 벨루스, 쿠치나 이탈리아가 몰려있어 까페 벨트를 형성한다. ▲ 커피소리 쿠키향기 [사진=윤혜영] 커피소리 쿠키향기 - 경주시 성건동 683-16화려한 인테리어는 없지만 경주 토박이들에게는 인기있는 커피맛집이다. 성건동 주택가의 다소 허름한듯한 외관. 들어서면 실내를 꽉 채운 커피향과 향긋한 빵냄새가 콧속으로 들이친다. 테이블은 손님들로 빼곡하고 모두의 테이블에 갓 구운 빵들이 하나씩 올려져있다. 요일별로 다루는 빵이 달라지며, 서빙하는 분과 로스팅하는 분들 모두 중년의 아주머니들이라 동네 목욕탕에 온 듯 편안한 분위기이다. ▲ 오늘 따옴 [사진=윤혜영] 오늘 따옴 - 경주시 황성동 602주부들이 즐겨찾는 곳은 실패확률이 적다. 숙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맛과 가성비를 따지기 때문이다. '오늘 따옴'은 오전부터 브런치를 즐기는 주부들로 북적인다. 가격도 착하지만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듬뿍 넣어 더 좋다. (쓰다보니 군침이 흐른다)단점은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는 점. 그러나 그만큼 제대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좋을듯 하다. 황성동 이편한 아파트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 로스터리 동경 [사진=윤혜영] 로스터리 동경- 경주시 사정로 57번길 11:00~21:006년 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경주로 이사오게 되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직 아기였던 첫째를 업고, 버스를 타거나 운전을 해서 경주의 사방팔방을 돌아다녔다. 어느날 우체국 옆의 조그만 커피숍을 알게 되었는데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그 뒤로 매일을 출근도장 찍듯 하였다.첫째가 어느정도 자라서, 우리는 그 동네를 떠났고, 후일 그 커피숍을 찾았더니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며칠전 황리단길에서 약속이 있어 '동경'을 찾았는데 반갑게도 그때 그 커피숍의 주인이 커피콩을 볶고 있는 것이었다. 시그니처 메뉴인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명불허전, 과연 커피맛은 경주에서 최고이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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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7-06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3) 내 맘대로 선정한 - 휴가갈 때 추천하는 도서 목록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휴가지에서의 기다림 달래줄 도서 추천대니얼 클로즈 ‘페이션스’, 크리스토프 바타유 ‘다다를 수 없는 나라’ 外휴가시즌이 다가온다. 여행의 즐거움은 출발 전에 준비를 하는 설레임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 새로운 수영복을 구매하고 비행기와 휴가지 수영장에서 읽을 책도 선정한다.여행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지만 긴 비행시간과 어느 소도시의 출입국 카운터의 긴 줄은 여행시작 전의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나는 그 대안으로 정신을 쏙 빼놓을만큼 재미있는 책을 가져가 잠시 지루함을 잊는다. 이제껏 휴가지에서 읽었던 책 중에서 나름 재미있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몇 권 소개해본다. ▶ 대니얼 클로즈 - 페이션스요즘 한국 드라마는 타임리프가 큰 유행인것 같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회귀하는 내용들이 지루할만큼 쏟아져 나온다. 대니얼 클로즈는 미국 출생으로 그래픽노블계에서 상당한 위치를 확고하고 있다.고로 어떤 책을 선택해도 실패는 드물다. 영화의 원제인 'Patience'는 '인내'이다. 살해 당한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여행을 하는 남자의 인내심 있는 고군분투기를 미국식 블랙유머와 함께 재미있게 그려냈다. 영화로도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 대니얼 클로즈 - 고스트 월드책은 얇지만 내용은 풍만하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는 청소년들의 삶을 시크하게 그려낸 그래픽노블이다. 주인공 이니드의 아버지는 집에 쳐박혀 빈둥거리는 그녀에게 말한다. "네 나이에는 돌아다니며 뭣 좀 훔치고 몰래 마약도 좀 하고 그래야 되는거 아니냐?"대화는 신랄하며 그 시절 소녀들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완벽하게 묘사한다. 나도 그때는 한밤중에 소나기를 맞으며 그네를 타고 비디오 대여점의 영화 포스터를 훔치기도 했으며 모든것이 끝도 없이 따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년의 아저씨가 소녀감성을 어찌 이리 잘아는지 경악스럽다.나의 소녀시대...책장을 덮자 까닭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 크리스토프 바타유 - 다다를 수 없는 나라수영장에서 감자튀김과 맥주를 시켜놓고 온종일 노닥거리며 읽으면 좋을 책. 크리스토프 바타유가 불과 21세에 이런 책을 썼다는 사실에 역시 천재는 타고난다는 생각이 든다.프랑스의 신부와 수녀가 베트남에서 선교활동을 위해 배를 타고 긴 여행을 떠난다. 선교자들은 병에 걸려 죽고 정착하며 죽고 살아남은 자들이 종교와 삶의 경계에서 찾아가는 행복과 인생의 진정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과연 믿음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인간을 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나는 실제로 베트남 다낭에 여행갈때 이 책을 가지고 갔다. 읽으면서 참 슬펐고 아득했고 행복했다. ▶ 아고타 크리스토프 -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책장을 덮을 때까지 절대 손을 뗄 수 없는 괴물같은 흡입력을 가진 소설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헝가리 어느 시골마을의 쌍둥이 형제가 전쟁에 휩쓸리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풀어간다 소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마지막까지 이야기는 폭주기관차처럼 독자들을 끌고 가며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만든다.책 소개에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해서 그에 관해 찾아보았는데 마음을 끄는 문구가 있어 첨부한다.“자본주의적 교환은 잉여가치에 의해 지속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결코 닿지 않는 근원적 욕망을 향한 추구를 멈추지 못한다. 그러나 막상 대상을 손에 넣는 순간 그 실체는 텅 빈 껍데기로 남아 '욕망과 미끄러지면서'결핍을 낳는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이 결핍이 곧 '잉여쾌락'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에너지이다.” ▶ 잔 알폰조 파치노티 - 아들의 땅문명이 사라진 세상에서 아버지와 두 아들이 생존하는 서바이블 게임같은 스토리. 아버지가 사망하며 일기장을 남겼고 글을 모르는 아들들은 일기장의 내용을 해독하기 위해 글을 아는 사람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미국작가 Cormac McCarthy의 The Road와 내용이 비슷하다. 더 로드는 아버지가 아들을 이끌고 가고, 아들의 땅은 아들 두명이 스스로 생존해나가는 차이이다.종말이 도래했을때 야만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존기술 중에 글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두 책을 비교하며 같이 읽어봐도 좋을듯 하다. ▶ 김연수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책 제목을 미국 시인 Mary Oliver의 Wild Geese의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쟁과 독재정권과 시대상황이 불러오는 이데올로기에 갇힌 인간들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파도에 휩쓸린 주변 인물들의 인생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1990년의 학생운동과 5.18과 남북상황과 종전 후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해 이어진다.우리는 무엇일까? 역사의 부스러기, 감정을 가진 주체적 인간.소설속 '나'는 말했다. "내게 조국은 하나입니다. 선생님. 나 자신이죠"시대와 국가, 그 틈 속에 흘러가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나. ▶ 스티븐 킹 - 별도 없는 한밤에비행시간이 긴 나라로 떠날 때 꼭 추천하고 싶은 책. 추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일단 책장을 연 순간 끝이 날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한 단편들이 모여있는 쨍한 추리소설이다. ▶ 김훈 - 자전거 여행문장이 너무 유려하고 아름다워서 몇 번씩 곱씹으며 읽으면 좋을 책. 밑줄을 치면서 읽고 싶은 글들로 가득하다.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대나무는 죽순이 나와서 50일 안에 다 자라버린다. 더이상은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다. 왕대는 80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 눈이 내리듯이 흰 꽃이 핀다.노 작가의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 독서의 참의미와 글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 김주영, 김별아, 권지예, 구효서, 성석제 外 화가들의 동행소설가와 화가들이 거제도로 떠났다. 작가들은 글을 쓰고 화가들은 그림으로 그렸다. 글로벌이라 하여 외국으로 많이들 떠나지만 우리나라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들이 너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이 느낀 거제도는 어떨까? 또 화가들은 거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그려냈을까?우리가 미쳐 몰랐던 거제도의 비경과 역사, 소설가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읽는 재미와 함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기쁨을 주는 책이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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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6-1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2) 여자의 일생 -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 3부
    ▲ 畵 : 박경혜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한국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시각 ‘양성평등 vs 여성우월주의’초등학생 때 나는 키가 크고 발육이 좋은 편이었다. 당시 담임은 오십대의 남성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시키고는 내 뒤로 다가와 어깨를 주물러 주는척 하다가 가슴을 움켜쥐고 비비곤 했다. 그 일은 가끔씩 학기내내 반복되었다.당하고 나면 수치스럽고 불쾌한 감정이 하루를 지배했지만, 그때는 부모와 스승은 동급이라고 세뇌시키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승의 탈을 쓴 범죄자이고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었다. 그러나 어렸던 나는 엄청난 두려움에 감히 입밖으로 꺼내 이슈화시키지 못했다.살아오면서 성폭력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것은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된 시점까지도 꾸준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학창시절의 만원버스, 동네꽃집의 할아버지, 학원의 선생님, 지나치던 행인, 친척오빠, 직장내 상사. 모두가 근접한 곳에 있고 친절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흉악범만 멀리해야 할게 아니다. 성범죄는 불특정인보다 주변인들에게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성추행은 어디서나 어느때나 만연하였지만  가해자들은 직장이나 학교, 친인척 등등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났기에 피해사실을 호소하기가 더 어려웠다. 괜한 분란을 일으켜 일상을 뒤집어놓고 싶지 않았다.웃는 얼굴로 성적인 농담을 던지던 상사들, 회식 때 블루스를 추며 더듬던 유부남 상사들, 술기운을 가장하여 터치를 하던 학교선배들.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옷차림이 문란하거나 색기가 있거나 평소에 음전치 못하여 그런 일을 당했다는 이른바 '행실'에 대한 2차 공격이 더 놀랍고 억울했다고 말한다.남성들은 정치공작이나 꽃뱀설로 가해자를 두둔하며 사건을 무마시키려 한다. 여성들은 이제 연대를 이루어 불꽃페미액션으로 반격한다. 남성과 여성이 나뉘어져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me too열풍 이후 '홍대 몰카 사건'으로 싸움은 더욱 촉발되었다. 남성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해 유포한 이 사건은 여성이 '가해자'이다.이제껏 여성상대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소라넷 등에 관대하고 미온적인 수사를 해왔던 경찰은 긴급체포와 구속수사, 포토라인 세우기로 남성이 여성에게 어떻게 '백래시'를 가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고 여성들은 분노했다. (경찰청 성폭력 대책과에 따르면 2018년 붙잡힌 몰카 피의자 총 1288명 중 남성은 123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34명이 구속됐다. 여성이 구속된 사례는 홍대 몰카 사건의 '안모' 씨가 유일하다)여성, 시민단체 모임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2주기를 맞은 지난 17일 사건 발생 장소 인근인 신논현역 앞에서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개최했다.'몰카 편파 수사'를 의제로 들었고 경찰은 당시 시위대를 약 500여명으로 예상했으나 참가자는 1만명이 넘어섰다. 시위자들은 빨간색 옷을 입고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외치며 수사의 부당함을 호소하였다.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성도 국민이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3일 만에 참여인원 35만명이 넘어섰다.한국에서 꺼내기 부담스러워 지는 단어 ‘페미니즘’최근 종영된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는 작금의 시대상황을 잘 반영했다. 회사 상사들의 상습적인 성추행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던 여주인공이 어느날 용기를 내어 반기를 들자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커녕 피해 당사자만 좌천되고 목소리는 근절되었다. 이것이 미투운동의 현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운동은 꾸준히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물론 만만치 않다. 처음에 미투를 응원했던 '위드유'는 남성들의 반기로 인해 옹호론에서 회의론으로 변질되는 분위기이다. 페미니즘의 본질은 양성평등인데 이 단어의 의미가 여성의 권리만 주장하는 '꼴페미, 메갈' 로 둔갑하여 여성혐오와 비아냥을 낳고 있다.여성의 권리신장에 대한 남성의 집단적 반발인 '백래시(Backlash)현상도 만만치 않다. 기업에서는 펜스룰을 지지하고 여성을 고용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배척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미투운동(나도 당했다)을 단순히 여성우월주의로 왜곡하여 바라보면 곤란하다. 이는 남성들의 일상적인 성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주체적인 권리회복 운동이다. 정부가 나서서 여성혐오 범죄에 엄단을 내리고 적극적인 지지를 펼쳐주어야 반복되는 여성혐오 확산과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다.여성은 남성보다 미개하지 않으며 성적인 쾌락의 도구가 아니다. 남성들은 본인이 여성에게서 태어나 길러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딸들이 살아갈 이상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건강하고 건전한 성윤리가 심어져야 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모든 행복한 사회의 뿌리는 행동하는 한사람의 인격, 올바른 가치관과 이를 지켜주고 응원하는 하나의 가정에서 출발한다.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된다. 네 생각은 네 말이 된다.네 말은 네 행동이 된다. 네 행동은 네 습관이 된다.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된다.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 간디-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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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5-25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1) 행복이란 무엇일까?
    ▲ 畵 : 이동국 - 별밤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항상 곁에 있어 몰랐던 가족의 소중함익숙함 속에서 찾지 못했던 '행복'의 발견며칠전이었다. 아침에 딸아이를 유치원에 바래다 주고 잠시 누웠다가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주변이 빙글 돌더니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어지럼증이 몰려왔고 쓰러지길 반복했다. 급히 근처의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진단결과는 이석증이었다. 귓속에서 어지러움을 유발시키는 돌이 자연스레 녹을때까지 이삼일간 입원하며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않으며 아이 둘을 돌보랴, 살림까지 완벽하게 해내려 하다가 몸에 무리가 온 것이리라 짐작되었다. 그동안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다. 속으로 꾹꾹 누르던것이 터져버린 것이리라.8인실과 2인실이 비어있다고 했다. 쉬고 싶었다. 완벽한 고립을 원하면 군중속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2인실에서 낯선 이와 단둘이 있느니 사람이 북적거리는 8인실이 차라리 나을듯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간호사가 휠체어에 실어 병실로 이송해주었다.8인실은 환자와 그들의 보호자로 시끌벅적했다. 새로운 얼굴이 들어서자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돌아가며 물어보더니 일시적인 수군거림이 있었다. 짐작대로 그들은 금새 흥미를 잃었고 화제성이 만발하는 드라마로 관심을 돌렸다.링거바늘을 꽂고 침상에 누웠다.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밀린 빨래가 떠올랐고 당장 저녁에 먹을 반찬이 제대로 없다는 것이 떠올랐지만 약을 먹자 이내 깊은잠으로 빠져들었다.병원생활은 단순하고 규칙적이었다. 시간마다 식단에 맞춘 밥이 나왔고 식사를 하고 약을 먹고는 다시 잠에 빠졌다. 이틀쯤 지나니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부재중 전화가 수십통이 와있었다. 발신지는 남편의 핸드폰이었다. 전화를 거니 기다렸다는듯 즉각 딸아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엄마. 아직도 아파? 엄마 목소리 듣고 싶었는데 왜 지금 전화해? 엄마 아픈건 괜찮아? 물 많이 마시고 채소랑 골고루 많이 먹어야 빨리 나아. 알겠지?”아이는 평소에 내가 자기에게 해주던 말을 돌려주고 있었다. 딸의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그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져 가슴이 사무쳤다. 아이가 걱정할까봐 눈물을 참으려 부러 무뚝뚝함을 가장했다. “아빠 말 잘 듣고 밥 잘 먹고 동생이랑 놀고 있으면 엄마가 곧 갈거야"소중함을 환기시키는 삶의 작은 변화전화를 끊고 나면 항상 눈물이 났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하루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점점 좋아질것이고 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컷 보고 만질 수 있고 더 많이 사랑해줄 수 있는 것. 내겐 그것이 가장 절실했다.항상 곁에 있기에 잊어버리는 소중함을 환기시키기 위해 삶은 순간순간 위기에 봉착하곤 하나 보다. 이튿날 회진을 온 의사가 많이 좋아졌으니 다음날 퇴원을 해도 된다고 했다.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났더니 저녁 어스름이 내려 있었다. 주위가 어둑하니 사위고 바람이 불었다. 창 밖의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자기 앞의 生으로 종종걸음을 친다.아무 생각없이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딸아이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엄마. 밥은 먹었어? 뭐해? 나 유치원 갔다와서 손 씻고 장난감 갖고 놀았어. 엄마는 아직도 아파?”“린이야. 엄마도 밥 먹었어. 아빠랑 하윤이랑 놀고 있어. 엄마 내일 집에 갈거야”“엄마. 집에 오면 동화책 읽어주세요. 일부러 동화책은 안 읽고 있었어. 엄마가 동화책 읽어줄때 나를 사랑하는거 알아요”아이의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어느새 알게 모르게 철이 들고 있는 딸. 불현듯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중 한대목이 떠올랐다.- 행복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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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5-16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0) 여자의 일생 -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 2부
    ▲ [사진/뉴스투데이=윤혜영 기자]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여성은 유년기부터 현모양처에 며느리로 세뇌살림 배우고, 아이 키우는 게 미덕으로 자리잡아우리사회의 남녀불평등의 근간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부모와 조부모, 친지와 이웃에 의해 유년기부터 세뇌되고 학습되어 성인에까지 이른다. 남아선호사상은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왔고, 여성은 현모양처가 되어야 하고 며느리의 도리까지 훌륭하게 지켜내도록 학습되어 왔다.무심코 시청하는 TV드라마에서 조차 아내는 남편에게 존대를 하고 남자는 하대를 하며 남편이 술을 마시고 낯뜨거운 실수를 하는것은 바깥일의 스트레스로 인한 해프닝으로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일이고, 반대로 주부가 같은 일을 행하면 온 집안이 난리법석이 나고 경범죄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보여진다.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는 것은 고추가 떨어질만큼 큰일이고, 여자가 살림을 배우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성의 바람직한 미덕이다. 요즘은 육아까지 완벽하게 해내며 돈도 벌어야 하므로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모든 일에 만능인 슈퍼우먼과 같은 존재이다.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는 시대이다. 혹자들은 결혼을 하면 얻는것보다 잃는게 더 많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결혼을 하여 두아이를 둔 주부이다. 나의 결혼생활을 돌이켜 갈등의 요소들을 생각해보면 부부 둘만의 문제보다 시댁이나 친정의 문제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들이 더 많았다.그 중 가장 많은 트러블을 일으킨 요인은 '제사'였다. 남편은 종갓집의 장손으로 명절외에도 여러번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 나는 장손의 며느리로서 응당 제사에 성실히 참석하여 요리와 청소와 설겆이와 손님의 식사대접과 모든 뒷처리까지 '당연하게' 웃으며 해내는걸 요구받았다.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음식을 사고, 부엌에서 하루종일 요리를 하고, 중간중간 손님이 오면 술상이나 다과상을 차려내야 하고, 엄청난 설겆이에 허리가 끊이질 듯 했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여자들이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동안 남자들은 드러누워 빈둥거리거나 술을 마시거나 잡담을 하며 놀았다.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되었다.결혼을 하면 아내와 자식이 가족인데 왜 죽은 사람을 위한답시고 아내를 노예처럼 부려가며 갈등을 야기하는지 끝없이 생각해도 해결점은 보이지 않았다.남녀의 사회적 불평등은 가정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언젠가 명절을 앞두고 이혼이 급등한다는 신문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에는 “조상 덕 본 놈들은 명절에 비행기 타고 해외에 놀러간다. 조상 덕 못 본 놈들이 명절에 돈쓰며 제사 지내고 집에 와서 마누라랑 피터지게 싸운다” 엄청난 추천수를 보면 다른 이들도 많은 공감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언젠가 제사를 지내고 산더미 같은 설겆이를 할 때 아랫동서가 “형님, 우리딸들은 나중에 우리처럼 안살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말에 뭔가 참 서글프면서 가슴 깊은곳에서 뜨거운 울분같은 것이 솟구쳤던 기억이 있다.나는 딸이 둘이다.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으며 눈물 흘리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늘 딸아이게게 '여자라서' 못할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여성으로의 권리만 주장하는 '뷔페미즘'은 아니다. 여성이기에 부당하게 치뤄야 하는 '의무'로부터의 해방을 원한다.가정에서부터 바뀌어야 하고 남녀노소 모두의 의식이 변해야 사회적 불평등이 차츰 해소될 것이다.남성들이여! 자신의 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면 당신들의 아내를 행복하게 하라. 딸들은 존중받는 어머니를 보며 자존감을 키우고 자신들의 미래도 현명하게 설계할 수 있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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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4-18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89) 힐튼 부산을 가다 - 2부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인생의 '소확행' 챙기기, 아이에게 배우다 대가족의 식비 아끼기 위해 호텔에서 밥을 하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  수영을 하고 단잠에 빠졌던 아이들이 깨어나자 간단한 간식을 먹기 위해 미팅룸4로 향했다. 5시부터 7시까지 간단한 주류와 함께 핑거푸드를 제공하고 있었다. 맥주와 와인, 위스키등이 구비되어 있었고 살라미 피자, 컵 샐러드, 버팔로 윙, 미니케익과 음료등의 먹거리가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고객 응대 장소인만큼 어린이 손님이 많았는데 좁은 룸은 아이들 특유의 소란스러움으로 꽤 시끄러웠다. 두 명의 아이가 서로 붙잡고 도망치며 고성을 지르며 뛰어다녔는데 아이의 부모들은 맥주를 마시며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저지도 하지 않았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이어폰 없이 애니메이션을 큰 소리로 틀어주고 있었다. 놀러와서 즐기는건 좋지만 본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기분을 망치는 행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심. 이런 타입의 성인에게는 정중히 양해를 구하더라도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많다. 그저 조용히 피하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서둘러 음식을 먹고 나와버렸다.  ▲ 사진=윤혜영 다시 이터널 저니로 가서 큰아이에게 동화책을 좀 읽어주고는 객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킹베드는 성인 두 명과 아이 두 명이 함께 자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 눈이 뜨인다. 부스럭거림에 깨어난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 조식을 먹으러 B2층에 위치한 다모임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어서 창가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바닷가에 해가 떠오르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지만 식당 내부가 워낙 넓어 음식을 가지러 두어번 다녀오니 힘들다. 해가 바다 위로 올라오자 용암이 끓듯 바다가 붉게 번졌다. 회색빛 바다는 오렌지빛으로 서서히 물들다가 잿빛으로 짙어지다가 해가 완전히 솟아오르자 차가운 블루로 시시각각 변해갔다. 이런 멋진 풍경을 가슴에 담는 것. 그것이 인생의 소확행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아이는 초콜렛 분수대를 좋아하여 마시멜로를 초코에 적셔 두 번 먹고 기분이 좋아 수다를 조잘거렸다. 유치원에 있는 남자친구랑 결혼할거라고 한다. "너 혼자 결정한거야? 그 아이에게는 결혼할건지 물어봤어?"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니. 유치원 가는 날 나랑 결혼할건지 물어봐야지" "하린아. 결혼이 뭐야?" "좋아하는 사람이랑 맛있는것 먹으러 다니고 같이 테레비전 보는거야. 매일매일 같이 노는거야" 아이의 말대로 인생을 이렇게 단순하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식사를 마치고 아이가 타고 싶다던 디트로네를 타러 갔다. 만원을 주고 15분의 시간 동안 아난티 타운을 몇 바퀴 돌았다. 나는 유모차에 둘째아이를 태우고 해바라기를 했다. 해풍에 실려온 짭쪼름한 향에는 미역과 김, 홍합, 물고기 비늘, 돌멩이와 소금의 냄새가 스며 있었다.  ▲ 사진=윤혜영 호텔에서 제공하는 워터하우스 온천 쿠폰으로 다시 수영을 하러 갔다. 아난티코브 앱이 깔려있으면 30%할인을 해주었다. 지하 600M에서 뽑아내는 온천수라고 한다. 사우나 시설과 크고 작은 온수풀, 야외풀로 무척 넓고 다양하여 연령층에 상관없이 놀기 좋았다. 돈과 정보를 잘 활용하면 참으로 놀기 좋은 세상이다. 나는 이십여년 전에 처음으로 호캉스라는 것을 경험해보았다. 당시 큰 회사를 운영하던 작은아버지가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할머니, 고모, 우리식구들까지 포함해 부산 그랜드호텔에 데려가주었다. 그전에 나에게 바캉스란 다리 밑에 텐트를 치고 물에 수박을 한덩이 띄워놓고 짜증스런 더위를 견디는 것인줄 알았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작전이 치열하고 겨우 자리를 찾아 돗자리를 깔고 나면 미친듯이 엉겨붙는 똥파리들을 날리며 무더위의 지리멸렬함을 견디는 것이었다. 그런데 호텔에서의 바캉스라니! 에어컨이 나오는 쾌적한 객실에서 바라보는 한낮의 백사장은 아비규환 그자체였다. 내가 그곳에 속하지 않은것을 감사해하며 수영장과 로비를 유유히 다니며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들. 그래 이게 바로 휴가라는 것이지.  로비 소파에 반쯤 누워 뜻도 모르는 영자신문을 펼쳐놓고 거드름을 피우다가 객실로 올라갔을 때였다. 문을 열자마자 훅 다가오는 된장의 냄새. 눈 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할머니가 부탄가스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전기밥솥의 추가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때마침 객실정리를 하러 메이드가 도착하였고, 그녀가 기함을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찰나 할머니가 만원짜리를 손에 얼른 쥐어주며 손가락으로 '쉿'을 하였다. 할머니는 대가족의 식비를 아끼기 위해 점심밥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일인데 가끔 떠올리면 호텔 객실에서 밥을 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터지곤 한다.  그때 이십대였던 나는 어느새 불혹을 넘겨 아이를 둘이나 두고 있고, 그 시절의 사람들은 세상을 등졌거나 어른들은 노인이 되었고, 아이들은 청년이 되었다. 간혹 삶이 우울하거나 슬픈 날에는 지나간 시절과 그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립다. 기억은 시간의 창고이다.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쌓기 위해 더 의미있게 오늘을 살아야겠다.  ▲ 사진=윤혜영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평범한 일상보다 훨씬 빨리 흐른다. 어느새 오후가 되었고 석양이 물들기 시작했다. 인생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아름답고 획기적이지 않다. 일상은 지루하고 걱정거리는 산재해 있으며 나이에 따른 의무도 피해 갈 수 없다. 그 괴로움을 잊기위해 우리는 중간중간 여행을 떠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를 달래야 한다. 인생은 스스로 가꿔야 하는 화단이다. 토양이 좋지 않으면 양질의 퇴비를 써서 나만의 꽃을 아름답게 피워내야 한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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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3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89) 힐튼 부산을 가다 - 1부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반복된 일상 속 치유제가 되는 여행 국내 최대 규모 복합휴양시설 갖춘 부산 힐튼 호텔 인생은 일상의 반복이다. 때로는 단조롭고 때로는 힘에 부칠때도 있다. 삶에 지친 인간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유제는 여행이다. 여행은 좋지 않았던 기억은 털어버리고 좋은 추억을 만들수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망각과 기억은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좋았던 시간들의 중첩은 다가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부모님과 함께 했던 몇 번의 여행이 떠오른다. 부족하고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여름이 되면 이십만 키로도 넘게 탄 낡은 에스페로에 온 가족이 타고 산과 계곡으로 떠났다. 슈퍼마켓을 통째로 떼온 듯 갖은 먹거리들을 트렁크와 좌석 아래까지 쑤셔넣었다. 밥 해먹을 쌀과 약수통에 담긴 물도 두 통 실었다. 바캉스 철이 되면 계곡은 이쑤시개 꽂을 자리도 없이 터져나갔다. 위에서부터 차로 훑어 내려오지만 명당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다리 밑 자갈 위에 텐트를 친다. 마을버스가 이따금 지나가면 다리 아래로 흙먼지와 매연이 휘몰아쳤다. 정말 짜증스러웠다. 왜 무거운 수박을 굳이 들고와서 계곡물에 담궈둬야 하는지, 머리가 익을 듯한 더위 아래 꼭 삼겹살을 구워야 하는지, 간단하게 한끼 사먹으면 될 것을 내 눈에는 모든것이 궁상맞았다. 극성스러운 파리떼도 넌덜머리 났고, 소주를 오버해서 마신 남자들이 화투를 치며 질러대는 고성도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 그 공간에 속한 내 삶이 싫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 부모도 삶에 지친 가련한 인간이라는 것을. 일년에 한번 떠나는 그 극성스러웠던 휴가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방식 중 하나라는 것을.  몇 달 전 힐튼 플래쉬 세일이 있었고, 이그제큐티브 객실을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었다.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기분이 좋다. 여행의 묘미는 다가오는 날짜에 대한 설레임이다. 시간은 예상보다 금방 흘렀다. 여섯살 첫째와 6개월 둘째를 데리고 부산 힐튼을 향해 출발했다. 한시간 남짓 차를 달려 부산 기장군에 도착했다. 호텔 근처 풍원장에서 불고기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힐튼호텔 아난티코브는 2017. 7월에 개장한 곳으로 힐튼호텔, 아난티 펜트하우스, 아난티 레지던스, 워터하우스 온천, 아난티 상점으로 구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휴양시설이다. 주차장인 B3층에 차를 주차시키고, 10층 맥퀸즈 라운지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호텔 이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고, 어린 아기를 보고는 비워져있는 객실을 찾아 바로 입실이 가능하게 배려를 해주었다. 객실은 4층에 위치해 있었고 거실과 침실, 욕실이 나뉘어져 있었다. 18평 크기로 해운대의 타 호텔들보다 넓었고 발코니가 따로 있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거실과 침실에 각각 TV가 비치되어 있었고, 개인 금고와 네스프레소 머신과 캡슐 3개, 아너스 회원은 스텐다드 인터넷 무료, 비회원은 5000원대, 프리미엄 인터넷은 1만원 후반대에 이용 가능하다. 가습기, 아기침대는 미리 요청해두었었고, 키즈어메니티는 해당일에 모두 소진되었다고 했다. 유모차와 젖병소독기는 당일 순차적 지급이었고 유모차 최대 6시간 이용, 시간연장은 컨시어지에 재요청하였다. 욕실 어메니티는 크랩&에블린 제품으로 투숙기간내 듬뿍듬뿍 넘치게 채워주었다. 생수는 2병이 무료로 비치되어 있었고 요청시 몇 병씩 더 가져다 주었다.  ▲ [사진=윤혜영]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10층에 있는 맥퀸즈 POOL로 수영을 하러 갔다. 노천탕과 키즈풀, 자쿠지, 인피니티 풀로 구성되어 있었고, 물이 온천수라고 했다. 이그제큐티브 이용객은 사우나와 맥퀸즈 풀 이용이 무제한이라고 하여 마음에 들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수영하고 있는 다른 투숙객이 없어서 우리 가족들끼리 여유롭게 한시간이 넘게 온천욕을 즐긴후 티타임을 하러 갔다. 타 호텔들은 아이를 동반하면 라운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기에 그동안 국내호텔에서는 일반객실만 이용해야 했었다. 힐튼 부산은 아이동반 고객에게 별도의 장소를 제공하여 라운지 서비스를 같이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B1층의 미팅룸 4에서 티타임과 칵테일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메뉴는 커피와 탄산음료, 타르트와 작은 케익들, 미니버거 등등이 있었으며 구성이 단촐하였다. ▲ [사진=윤혜영] B2층으로 나가면 아난티 타운과 연결된다. 서점, 커피숍, 레고방, 의류샵, 식당, 편의점 등의 상점들이 운영중이었다. 타운내에 거의 모든것이 갖춰져있어 외부로 나갈 일은 없어보였다. 서점 '이터널 저니'로 가보았다. 철학, 여행, 동화, 그래픽노블, 시, 소설 등등 엄청난 책들이 500평이 넘는 공간의 벽면을 채우고 구석구석 쌓여져 있었다. [책은 우리가 알게 된 모든 것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도구이자 어느 시대, 어느 곳으로도 보내주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여행 도구입니다. 아난티 코브는 이터널 저니를 통해 책의 가치를 부산 시민들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라고 벽에 씌어져 있는 문구가 좋았다. 서점 한켠에는 커피숍도 있었고, 마음껏 볼 수 있도록 비닐을 벗겨놓아 많은 이용객들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동화책 코너도 따로 있었고 책상과 의자들을 구비해두어 부모들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서점에 들렀다 밖으로 나오니 바로 옆에 레고방이 있었으며, 유로에 이용이 가능하다. 객실로 다시 올라가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아난티 타운으로 내려왔다. 이곳 타운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Sant'Eustachio Il 이라는 커피숍이었다. 로마에 가면 꼭 들려야 한다는 유서깊은 커피숍인데 한국에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 [사진=윤혜영] 유서깊은 사연이 있는 커피숍이다. 로마의 장군 에우스타끼오가 사슴의 뿔을 십자가의 환영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교에 귀의했다가 박해받아 순교했고, 그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신전 옆에 커피숍을 지었다고 한다. 1938년에 문을 열었고 참나무 장작불에 커피콩을 볶는다고 했다. 가게 내부에는 사슴 트로피가 보였고, 노랑색 띠를 두른 커피통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하여 스페인광장을 본 뜬 듯한 야외 계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향긋한 커피향. 이 순간이 너무 좋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말했다. '참 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행복은 재화의 값어치에 따르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내 마음의 평안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2부에 계속)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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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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