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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노래에 빠진 남자, 무대가 설레는 이 남자 이 태 권
      ▲ 이태권 [사진=부활엔터테인먼트] (뉴스투데이=백수원 기자) 양희은은 목소리가 굉장히 곱다고 표현했고 이은미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감성에 푹 젖는다고 평가했으며 김태원은 노래 사이사이의 숨소리까지 매력 있게 들린다고 극찬했다. 선배들의 아낌없는 칭찬을 들은 주인공은 바로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 시즌 1의 준우승자 이태권.‘위탄’ 당시 모나리자 눈썹, 무표정한 표정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그는 고(故)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부드러운 음색과 풍부한 감성으로 불러 멘토들을 놀라게 했고, 로버트 팔머의 '배드 케이스 오브 러빙 유(Bad Case Of Loving You)’를 부를 때는 무표정을 벗고 방긋 웃음도 띄는 등 지적 받았던 리듬감을 느끼며 빠르고 신나게 불렀다. 담백한 이태권표 음색은 대중들이 느낌에 따라 다양한 감정의 색깔들로 채울 수 있게 해줬다. 이태권은 간절히 원했던 김태원 멘토 스쿨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영화 같은 스토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태원’이 멘티로 이태권을 선택했고, 또 프로그램이 끝난 후 소속사로 불러들였다. 꿈만 같던 부활 공연 무대에 섰고 지금, 따끈따끈한 그의 첫 데뷔 싱글앨범 ‘사랑에 떨어지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사랑에 떨어진’ 남자, 세상에 노래를 전하다‘위탄’ 결승전 때 이태권은 멘토 김태원에게 생애 첫 곡, ‘흑백사진’을 받았다. 김태원은 “네가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멜로디를 떠올렸다”며 ‘흑백사진’을 직접 기타를 치며 불렀고 그 모습을 본 이태권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힘들었던 일, 기뻤던 일이 영화처럼 지나가면서 ‘내 이름으로 첫 노래 생기는구나!’” 그런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 교차해 눈물이 났다고. 그런 그가 이젠 소속사 대표이자 제작자 김태원에게 ‘사랑에 떨어지다’를 또다시 받았다. “이 곡 부를 때는 정말 사랑하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부른 곡이다”고 잔잔히 노래 부른 소감을 전했다. ▲ 이태권 첫 데뷔 싱글앨범 재킷 사진 [사진=부활엔터테인먼트] -프로 무대에 들어섰다. 첫 데뷔 싱글, 부담도 되겠다. “‘위탄’ 결승전 때 선생님에게 받은 첫 노래 ‘흑백사진’도 있었지만, 그건 ‘위탄’ 때 노래고 이건 진짜 이태권의 처음 곡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었다. 첫 노래라 긴장되는 반면 설레기도 했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김태원이 작사, 작곡하고 부활 연주로 꽉 채운 ‘사랑에 떨어지다’는 어떤 곡인가.“‘사랑에 떨어지다’는 슬픈 발라드는 아니다. 헤어진 다음에 슬퍼서 힘들다는 내용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다가 잘 안 돼서 아픔이 있지만, 그게 사랑할 때 좋았기 때문에 ‘계속 사랑하고 싶다. 평생 사랑하고 싶다’ 등의 그런 메시지가 담긴 감미로운 발라드곡이다.”-사부 김태원의 조언이 궁금하다.“선생님께서 원래 곡 쓰실 때 ‘이 부분에서 보컬이 어떻게 불러야 한다’고 미리 생각해 둔다. 이번 곡 같은 경우는 내가 맨 처음 느낌을 못 잡았을 때는 슬픈 발라드로 불렀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슬프게 부르지 말고, 가사 읽는다고 생각하고 불러라’라며 가사내용 그대로 전달하는 방향으로 잡아줬다.”-가장 신경 쓴 점이라면.“역시 가사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의 마음이 돼서 집중했다. 어떻게 보면 내 얘기일수도 있고. ‘사랑을 하고 싶다’는 내 얘기처럼 표현하고 싶었다.”-대중들이 어떤 부분을 신경 써서 들어줬으면 좋겠는가. 감상포인트.“메시지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디서 듣던지 기분 좋게 편안히 들을 수 있는 곡이 되면 좋겠다. 나중에 내가 만들 곡도 그랬으면 좋겠다.”-김태원을 비롯해 부활멤버들, 그리고 박완규. 생각만 해도 녹음할 때 에피소드가 풍부할 것 같은데.“부활 형님들이 연주해 주셨다. 보컬 동하형이 노래 지적도 해주고. 예전 김태원 선생님은 녹음 한 곡 할 때면 며칠, 몇 달 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는 안 했다. 그래서 (박)완규 형님이 ‘태권이는 우리처럼 심하게 안 하느냐. 태권아, 너 예전 같으면 죽었다’”고 말했다. 하하. 재밌게 한 것 같다.” -호칭은 어떻게 부르나. “다른 부활 멤버들과 박완규 선배님에게는 형님! 김태원 선생님에게는 선생님! 처음 시작을 선생님으로 해서 아직도 어렵다. 선생님은 형이라고 부르라는데.”■이태권의 ‘위대한 탄생’ 어쩌면 필연! ▲ 이태권 [사진=MBC] 학창시절부터 부활 팬이었고 너무나 좋아했던 김태원 선생님. 그분이 ‘위탄’ 멘토로 간다는 말을 듣고 지원한 오디션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이태권은 ‘이겨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거기 가면 김태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갔단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봐서인지 지금 기나긴 인연의 끈으로 연결돼있다. “지금 생각하면 김태원 선생님과 내가 통했던 것 같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싶었는데…”라며 욕심 없이 도전했던 오디션이었고, 그랬기에 매번 즐기는 무대였다고 털어놨다. -서바이벌 오디션, 어떤 곳인가. “나의 첫 오디션이었고 생방송 자체에 올라가는 게 신기했다. 노래하고 싶어서 실용음악과 관련해 공부하고 있었지만, 홍대에서 밴드 하는 게 원래 꿈이었다. 그래서 대중음악 한다는 건 다른 사람 이야기 같았다. ‘위탄’ 전에 ‘슈퍼스타K' 볼 때도 도전하고자 하는 생각 안 들었다. 그런데 김태원 선생님께서 멘토로 누군가를 가르쳐 준다는 소리 듣고 주저없이 ‘위탄’에 지원했다. 그리고 진짜 한번 만나고 싶어서 도전했다.”-만약 지금도 가수지망생이라면 어떤 오디션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싶은가.“‘위탄’ 시즌1이 지나갔다면 아예 지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 혼자서 밴드 했을 것 같다.”-그럼 언제부터 그렇게 가수를 갈망했나.“부모님 반대가 심해서 좀 늦게 고3 때부터 입시 준비하면서 음악 공부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TV에 나오고 싶었고 또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거 좋아했다. 진로 정하면서 가수로 굳혀서 고3 때 부모님 설득시키고 그때부터 배워서 미친 듯이 열심히 했었다. 결정적으로 그때 한 이유는 정말 가고 싶은 대학이 없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간다고 하더라도 행복할 것 같지가 않더라.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한 번 사는 인생, 진짜 하고 싶은 거 한 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부모님을 설득했다.” ▲ 이태권 [사진=MBC] -‘위대한 탄생’ 뗄래야 뗄 수 없다. 오디션 출신자들은 그 꼬리표를 떼고 싶어 하는데 어떤가.“어떻게 보면 좋은 꼬리표인 것 같다. ‘위탄’ 없으면 나도 없고. 뗀다는 표현은 그렇고 살짝 뒤에 있으면 좋겠다. 하하. 이태권 생각하면 ‘위탄’이 먼저 나오는 것보다 이태권이 무슨 노래를 부른 가수인지. 먼저 가수로서 이름을 떠올리면 좋겠다.”-‘위탄’ 하면서 지적받았거나 고쳐야 할 버릇들을 어떻게 고쳤나.“‘위탄’ 때는 무대에서 동작이 아무래도 좀 어색했다. 얼어있기도 했고. 그때는 그런 모습이 순수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는데 이젠 프로가수가 됐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점들 신경 썼다. 부활 전국 투어 공연 게스트로 서면서 무대 경험도 많이 쌓았고, 또 무대에 선 모습을 모니터하면서 무대매너에 대해 많이 배웠다.” -가장 듣기 좋았던 말.“처음 김태원 선생님을 뵀을 때 선생님께서 내게 ‘노래 듣고 소름이 돋는다. 그 기분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지만, 그 감을 믿고 가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좋아했던 분이 그런 말씀 해주셔서 희열을 느꼈다. -언론에서는 오디션 출신 가수들 존박, 허각, 서인국 등 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라이벌 의식 있는가.“그건 오디션 때 경쟁해야 하는 거고 지금은 모든 가수와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디션 출신끼리 라이벌 경쟁은 의미가 없다. 어떻게 보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료 입장 아닐까.-마지막 생방송 때 백청강과 우승 경합. 우승하고 싶지 않았나.“청강이 형 우승 진심으로 축하했다. 나는 노래 외적으로 어필 못했고 인간적으로 끌어당기는 것에 있어서 부족했다. 그리고 둘이 합숙소 살면서 친형제처럼 살았기 때문에 서로가 우승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요즘 (손)진영이 형이 드라마 출연하면서 잘돼서 좋다. 시작이긴 하지만 나름의 위치를 잡아서 그런 모습 보니 좋더라. ‘남이 잘돼서 기분 좋을 수 있구나!’ 그런 생각 많이 했다. 그리고 청강이 형 진영이 형을 비롯해 다른 ‘위탄’ 사람들 종종 만나거나 전화 또는 문자 보내는데 이번에 내가 싱글 앨범 낸 것 알고 ‘잘 들었다.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다. ‘위탄’ 12명은 같이 힘들 단계를 거치면서 올라왔기 때문에 경쟁이 없다. 서로 어떻게 올라왔는지 알기 때문에 다 잘됐으면 하는, 제2의 가족이 된 것 같다.”■이태권의 위대한 멘토, 김태원 ▲ (왼쪽부터) 이태권 백청강 김태원 손진영 [사진=MBC] “모든 기적은 우연으로 가상돼 있다”는 김태원의 말처럼 이태권이 평소 존경했던 ‘김태원’을 보고 오디션에 응모한 날부터 그리고 오디션 첫날 서로에 대한 강한 이끌림으로 지금의 이태권이 음악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게 아니었을까.당시 김태원의 멘티였던 백청강 손진영 이태권은 ‘외인구단’이라 불리며 김태원의 멘토법이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이들 모두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가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우상이었던 김태원 멘토의 러브콜을 받았다.“프로그램 끝나고 기획사 몇 군데서 연락이 오긴 왔는데 진영이 형이나 나나 계속 (선생님이) 불러주길 바랐다. 그분이 ‘같이 해보지 않을래’ 했을 때 오히려 우리가 더 감사했다.”-‘김태원 어록’은 주변 사람들까지 전염시킨다고 하던데.“(손)진영이 형은 그런 끼가 보인다. 김태원 선생님이 워낙 명언하셔서 어떨 때는 농담하거나 직설적으로 얘기하는데도 사람들은 ‘뭔가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 더 생각하게 된다.”-혹시 최근에 들었던 명언은. “‘원래 없었다’란 말이다. 아무것도 없지 않았나. 초심을 지키라는 말 같아서 초심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멘토에서 이젠 소속사 대표인데.“그때랑 다른 게 없다. 늘 우리를 똑같이 대해줘서 그런 것 같다. 선생님은 친형 같기도 하고 친아버지 같기도 하다. 매번 다른 예능에서 그리고 사석에서 너무 재미있는 분이지만, 노래 작업할 때는 엄격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우리보다 더 많다.”-음악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어떤 조언을 해 주나.“요즘 같은 경우에는 내가 싱글 내면서 ‘부담감’이 있는 걸 느끼신 것 같다. ‘태권아, 머릿속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힘이 됐다. 또 선생님께서 ‘네 뒤에 우리 다 있다. 뭐가 무섭냐. 두려울 게 뭐니. 뒤에 부활 있고 완규형이 뒤에서 널 지켜주고 있는데, 무서울 게 뭐 있냐. 늘 하던 대로 하자’고 하시더라.”-‘김태원 사단의 이태권’ 수식이 부담스럽지 않나.“그런 이름을 달았는데 부활 형님들에게 ‘누가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말 든든하다.” -형님, 박완규는 어떤가.“방송에서 진지한 이미지인데 오히려 장난도 많이 치고 전화도 먼저 해주신다. 완규형은 무대에 설 때 모습들 알려주시고 ‘노래 연습 어떻게 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한다’ 등을 조언해준다. ‘무대의 소중함 너희가 아니? 십 년 동안 일없이 있어볼래?!’라고 하기도 했다.”■가수로서 첫발, 그리고 10년 후 싱어송라이터를 수식어로 ▲ 이태권 [사진=부활엔터테인먼트] ‘사랑에 떨어지다’는 지난 5일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 공개에 이어 7일 자정 각종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그리고 10일 MBC ‘쇼! 음악중심’을 통해 대중에게 인사한 이태권은 “첫 무대라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 이 무대를 계기로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첫 생방송 소감을 전했다. 더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면서.-반대했던 부모님, 지금은 누구보다 팬이겠다. “부모님에게 보여 드린 첫 성과가 ‘위탄’ 오디션인 것 같다. 그때부터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게 가장 힘이 되는 분이다”-어떤 가수가 되고 싶은가.“음악인으로 생각되는 그런 모습들을 많이 비춰 드리겠다. 아무래도 오디션 출신이다 보니까 아마추어로 보는 사람도 많은데 10년 뒤에는 뮤지션, 싱어송라이터 이태권으로 불리고 싶다. ‘싱어송라이터’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 있는데 그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첫 곡인 만큼 부담도 있는데 너무 욕심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에 반짝해서 올라온 케이스여서 중간 과정이 없다. 활활 타올랐기 때문에 꺼지기도 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곡도 욕심부리지 않고 단계별로 천천히 꾸준히 오래 하고 싶다. 그리고 곡도 많이 썼다. 나중에 기회 되면 내 노래로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정규앨범 나오면 타이틀곡은 아니더라도 수록될 것 같다.” ▲ 이태권 [사진=부활엔터테인먼트] '순수 무공해' 목소리로 깊은 울림을 안겨 주는 이태권. 누군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 편안한 휴식을 취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감정의 떨림을 느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희망을 찾을 것이다. 오디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경쟁이라 생각하기에는 무대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부족하다며 생방송 큰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를 즐기기를, 자기 무대라 생각하고 욕심 없이 즐겼으면 좋겠다는 경험에 우러난 조언 또한 아끼지 않는다. 이태권이 김태원에게 조언받고 성장하는 것처럼 그도 세월이 흘러 누군가의 멘토가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마지막으로 이태권이 멘토 김태원에게 전했다. “선생님께서 저한테 해준 은혜를 평생 잊지 않고 다 갚도록 하겠습니다. 평생 갚아도 못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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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12
  • (주)STX 사장 변용희...STX그룹 임원 7명 인사 단행
      ▲ (주)STX 변용희 사장 (뉴스투데이=안대범 기자) STX그룹은 29일 변용희 (주)STX 사장을 비롯한 3명의 임원 승진인사와 4명의 신규 임원선임 등이 포함된 그룹임원인사를 발표했다. 이번 인사에서는 STX 변용희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류정형 STX조선해양 전무와 이웅형 STX 상무가 각각 부사장과 전무로 승진했다. 변용희 (주)STX 사장(59)은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무역대학원, 경희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STX팬오션 관리총괄 전무를 거쳐 2008년부터 그룹 CFO를 맞아 재무부문을 총괄해 왔다. 새로이 영입된 임원진은 박성우 STX미래연구원 부사장, 조원용 STX 전무, 김찬  STX 전무, 장두일 STX팬오션 상무를 새로이 영입했다. 신임 박성우 STX미래연구원 부사장은 Morgan Stanley 한국지점 IB부문 대표와 삼성증권 IB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신임 김찬 (주)STX 재무 1본부장은 대우증권에서 기업금융본부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조원용 전무는 (주)STX 대외협력본부장을 맡아 그룹 대외업무 및 홍보를 이끌어가게 된며, 함께 신규 선임된 장두일 상무는 STX팬오션 경영기획실장을 맡을 예정이다 .STX그룹 임원인사 내용<승진> ▲(주)STX 사장 변용희 ▲STX조선해양 부사장 류정형 ▲(주)STX 전무 이웅형<신규 선임> ▲STX미래연구원 부사장 박성우 ▲(주)STX 전무 조원용 ▲ " 전무 김찬 ▲STX팬오션 상무 장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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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29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 뮤지컬 '페이스오프' 연출가 김도형-"연출은 숨은그림 찾기"
    ▲ 연출가 김도형 [사진=나병필 기자](뉴스투데이=백수원 기자)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원하는 것을 말하면 내 눈앞에 ‘뚝딱’ 선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어떤 꿈’을 가슴에 품으면 바로 그 꿈이 실현되는 사람. 대학교 때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해서 가요제 나가서 가수를 해봤고 ‘영화 한 번 해볼까’ 생각해서 영화 한 편도 찍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늘 간직했던 ‘뮤지컬 배우’의 꿈은 ‘토요일밤의 열기’, ‘겨울나그네’, ‘루나틱’, ‘렌트’ 등의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무대를 종횡무진 누볐다.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꿈도 많이 꾼다’는 그는 몇 년 전부터 ‘연출해 볼까’ 결심하고 연출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뮤지컬 ‘페이스오프’ 연출가 김도형의 얘기다. 6년 전 ‘페이스오프’에 출연했던 그가 지금은 연출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배우에서 화려하게 연출가로 변신한 그를 꿈과 열정이 담긴 대학로 SH아트홀 ‘페이스오프’ 공연장에서 만나 생생한 ‘라이브’ 인터뷰를 나눴다. ■막을 올리기 전-이제 시작이다 ▲ 연출가 김도형 [사진=나병필 기자]프랑스 작가 로베르 또마의 ‘더블 쥬’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페이스오프’는 라스베이가스 최고의 차도남 태준이 최대 재력가의 유일한 상속녀 윤서와 돈을 목적으로 결혼하면서 벌어지는 두뇌심리 코믹 추리 등을 넘나드는 버라이어티 뮤지컬이다. 윤서는 어느날 가사도우미 소영의 남자친구 영준이 태준의 숨겨둔 쌍둥인 동생(?!)임을 알고 이혼 하기 위해 영준에게 태준 행세를 부탁하며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해달라는 계획을 꾸미는데…. 순조롭게 될 것 같은 일도 이들의 이혼을 돕기 위해 나선 라스베가스 최고의 한인변호사이자 태준의 절친 다니홍을 속이기에도 만만치 않다. 5명이 극의 중심부가 돼 빠르면서 속도감 있는 전개로 돌아간다.  ▲ 뮤지컬 '페이스오프' 포스터 [사진=아담스페이스]‘페이스 오프’ 첫 연출로 택한 이유. 관객들은 샤방샤방한 로맨틱 코미디 좋아해서 대학로에는 로맨틱 장르가 많다. 사실 그런 장르 잘 만들 자신 있고 만들 생각도 있지만, 과연 ‘첫 작품으로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첫 작품은 차별화를 두고 싶었다. ‘페이스 오프’는 로맨틱 코믹 추리 반전드라마 모든 장르가 섞여 있다. 그런 장르의 특이성 때문에 고민 안하고 한 거 같다. 또 내가 6년 전에 출연진으로 작품 했었기에 초연 때 워낙 즐겁게 작업한 기억이 있다. 특히 덧붙이자면 창작뮤지컬은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우리 아이디어를 가지고 하는 것이기에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왠지 남의 옷 입는 느낌이랄까.그 작품의 배우가 그 작품의 연출자로 감회가 남다를 듯. 연출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내 역할이 예를 들면 연극이라 치면 ‘연출’ 배역을 맡은 거다. 그래서 거기에 맞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남다른 감회보다는 만들어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 자체가 연극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시도 해봐서 연습량 많았다. 배우들이 육체적으로는 지치는데 정신적으로 기뻐한다. 창작하니깐. 연습실 분위기 굉장히 화기애애했다고. 서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우리 뮤지컬 오프닝이 태준이 윤서한테 프로포즈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로 시작한다. 원래 초연 때는 이런 이벤트 없었고 바로 1막부터 시작했었는데 이번에 하면서는 ‘그전에 두 사람이 어떤 상황으로 만났을까’ 배우들과 함께 풀어놓고 생각했다. 배우들 극장에서 공개프로포즈 잘하니깐. 거기서 아이디어를 서로들 낸 거지. 런닝 타임 때문에 첫 만남 상황은 못 올렸지만, 배우들 아이디어는 생활 속에서 나오니깐 그만큼 연기하기 편하게 생각한다. ■막을 올리다-내 인생의 연출 막도 오르다한 가지 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가 적절히 섞여 있기에 누구보다 연출자 입장에서는 관객들의 반응이 제일 궁금했을 터. 배우들은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의 눈을 보며 함께 호흡하지만, 연출자의 시선은 오로지 관객들의 반응을 향하고 있다. 첫 공연, 연출자로서 첫 막. 드디어 ‘올라갔구나’ 생각했다. 아마추어 학생들 작품은 같이  연습해서 많이 올려봤는데 프로 무대였으까. 그 첫날 느낌은 꼭 고등학교 학생이 선생님에게 숙제 검사 맡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숙제 검사할 때 표정 보면 몇 초 후에 입 꼬리 올라갈 듯 말 듯. 오직 그 표정에 집중하는 학생이 된 듯 했다.솔직히 무대 공연은 못 보고 관객들 반응 오는지, 안 오는지 그들의 호흡 보면서 대개 손에 땀을 쥐고 봤다. 끝나고도 나가는 관객들 표정 보게 되더라. ▲ 연출가 김도형 [사진=나병필 기자]배우에서 연출가로 변신한 계기. 공연하다가 춤을 너무 과격하게 춰서 목디스크 파열되서 수술하고 쉬었다. 쉬다가 학교에서 강의해달라고해서 뮤지컬 강의 하면서 학생들 데리고 작품 만들기 시작했다. 학생들 작품 무시할 수 없다. 공부 안하면 안 된다. 학생들이 디테일하게 ‘왜 그 부분에서’라고 물으면 이해하기 쉽게 대답해야 하니까. 그때부터 연출 공부하고 책도 보고 작품들을 분석했다. 또 주변에 연출하는 선생님들 찾아가서 여쭤보고. 그러다보니깐 배우 때 못 봤던 거 보게 되더라. 연출 공부하면서 더 디테일하게 분석했다. ‘왜 옛날에는 내 것만 하고 전체는 못 봤을까?’ 생각하면서 지금 하면 잘 하겠다 싶더라. 조명이나 무대 전반적으로 보게 된다.연출 공부가 도움 많이 됐다는 말인데.  다른 연기자들한테도 연출 공부하는 게 연기에 도움 많이 된다고 한다. 시야가 넓어진다고. 그러다가 연출에 재미가 붙었다. 배우를 했을 때도  아이디어가 많았다. 우리끼리 스터티하면서 오랫동안 반장했는데 ‘어떤 걸 만들고 싶은지’ 우리끼리 대사도 만들고 연습용으로 작품 많이 만들었다. 사람이 자꾸 그런 쪽으로 생각하면 아이디어 좋아진다. 그 아이디어 중 작품들이 있다. 결국 나중에는 그것을 토대로 창작만들고 싶다. 내 개인적 욕심으로 창작 과정이 재미있고 대한민국 창작이 잘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머릿속에 구상한 것만 5개 있다.  ▲ 연출가 김도형 [사진=나병필 기자]배우 출신이기 때문에 플러스 요인도 있을 듯.  배우들 기가 세다. 그래서 더 기 센 사람이 연출가다. 그걸 장악 못하면 연출 실패한다. 처음에 배우들에게 ‘연출자라 생각하지 말고 스터디 한다는 식으로 똑같이 생각하고 공유하자’고 했다. ‘나 귀 열려있다. 못 알아듣는 한국말 없다’고. 그만큼 배우들 만나기 전에 1년을 손으로 쓰면서 내 머리 속에 다 정리 돼 있었다. 배우들도 고집이 있기에 설득이 아니라 이해시켰다. 할 얘기 들어주고 설명할 거 하고 합일점 찾고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 줬다. 연기자 습성 알아서 다행이다. 연기자들한테 정확히 얘기해주고 정확히 뽑아내야 한다.마이너스 요인. ‘연기자는 절대 연출하지 마라. 큰 그림을 못 본다. 디테일만 있지 전체 아우를 수 있는 건 잘 못한다’고 많이들 얘기한다. 나도 그것에 동감한다. 내 스스로 동감하기 때문에 그렇게 안하려고 공부 많이 했다. 그걸 무시했다면 디테일만 잡았을 텐데 주위 얘기가 많은 도움이 됐다. 아까도 말했듯이 배우들한테는 ‘이것 이렇게 해’가 아니라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얘기해주고 짚어줘야 한다. 이때 금기해야 되는 게 있다. 가끔 배우 출신 연출자들은 답답하니깐 자기가 해본다.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러면 김도형 5명이서 연기하는 것과 똑같다. 연습하면서도 배우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래서 자기 것을 찾아가게 만든다. 내 ‘역할’이 연출자이기에 연출 관련한 책도 보고 그 역할 잘 해내기 위해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그럼 혹시 연기자로 다시 무대로.  하하. 예전에 했던 작품에서 다시 해달라고 전화 왔는데 거기에 대해 결정 아직 못 내렸다. ‘쇼케이스’ 정도는 해 줄 수 있는데 다른 건 글쎄? 이 공연 끝난 뒤 생각해볼 문제다. 어릴 적 꿈은 뮤지컬 배우였고 제일 잘하는 거 역시 무대에서 뛰어노는 것이어서 배우를 놓치는 않을 것 같은데…. 연출과 연기 동시에?  그건 명확히 ‘NO’다. 무대에서 연기 안 하고 다른 배우들 디렉션 볼 거 같고. 무대에 올라가서 내가 못하면 어떡하냐. 또 연출자의 눈으로 보면 상대배우 집중 안될 것 같다.■무대, 공연이 무르익다-연출력을 뿜어내다‘페이스오프’ 초연 때는 여자주인공 윤서에 드라마적 비중이 컸다. 가사도우미 소영과 변호사 다니홍 등 그녀의 주변인물들이 단역처럼 그려져서 이번엔 새롭게 좀 대등한 관계로 해보자고 생각해서 대사도 늘렸단다. 단역으로 그냥 지나칠 뻔한 캐릭터들이 저마다 그 역에 특색을 입혀 훨씬 작품도 풍요로워지고 재밌어졌다. 특히 태준과 영준의 에너지를 올려서 윤서가 조금은 에너지가 줄어들었지만, 그래서 반전 때 더 윤서 쪽으로 포커스가 가서 힘이 실어진다. 존재감. 중요하다. 예전에 선배님이 ‘아무리 짧은 대사라도 자기의 존재감을 정확히 줄 수 있는 건 배우의 역량’이라고 했다. ‘아’ 땜에 기립박수 받을 수 있는 건 배우밖에 없다. 한 음절이라도 임펙트 있는 존재감이 중요하다. 그래서 배우들은. 한마디한마디 숨 쉬는 호흡 등 대본에 필요 없는 말이 없다. 그 위치에서 정확히 해주는 게 연기다. ‘그 말(대사)이 해야 되는 정확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쓴 거니 정확히 표현해달라’고 요청한다. ▲ 뮤지컬 '페이스오프' 한 장면 [사진=아담스페이스]조명, 시계 등 세세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오직 집에서 원세트에서 하기 때문에 공간변화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시간의 변화를 뒀다. 집 밖에서 들어오는 햇볕의 색깔 변화. 1막에서 왼쪽에서 들어오다가 2막, 3막 돌아서 마지막에 석양에서 떨어지고 밖에 가로등 밤이 된다. 하루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시계도 중요하다.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것 유심히 보면 극이 더 재미있다. 각 시간에 맞춰 타이밍 거기 떨어지게 만든다. 가장 신경 쓴 점. 아직 음악적으로 숙제다. 드라마가 강하다 보니깐 주옥같은 노래 만들고 싶더라. 주옥같은 건 감정을 넣어 독백처럼 부르는 거나 슬픈 감정으로 노래하는 건데 무대가 끝나면 기억에 남는 한 곡이 있으면 좋겠다. 또 구성적으로 조금 더 스피드하게 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지금 60이라면 80~90 템포 더 당기면 좋겠다. 세련되게 만들고 싶어서 세세한 동작에도 신경 썼다. 예를 들면 뭘 줍는다 해도 ‘무릎 펴고 주울 것’. 그리고 발 끝 포인트를 ‘신발 밑창이 보이면 안 되게 발 끝 세워라’ 등의 주문을 했다.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 쓰니 훨씬 세련돼 졌다. ■내 인생은 영원한 커튼콜 ▲ 연출가 김도형 [사진=나병필 기자]김도형 연출가는 이미 다음 연출작이 정해져 있다. 뮤지컬 ‘왕의 남자’로 대형 뮤지컬을 만드는 것. “벌써 대본 80% 끝났고 곡들도 주옥같은 노래로 60% 완성됐다. 내년 초나 내년 초 중반쯤 정식으로 올라가지 않을까. 그 작업은 ‘페이스오프’ 보다 더 오래됐다”며 장고의 시간이 걸리는 대작임을 짐작케 했다. “대본 작업한 지 횟수로 3년.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 외우래도 한다. 사실 내가 원하는 건 대한민국 태극기 달고, 국가대표 딱지 달고 외국 나가고 싶다. 그 일환으로 제일 먼저 우리나라 왕 이야기, 연산이야기 등 우리나라 색깔 가지고 외국가서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비췄다.  국내 뮤지컬의 해외 성공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레 묻자 그는 “‘뭐 흉내 냈는데’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다. 서양이 뮤지컬 역사가 우리보다 조금 오래돼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멜로디로는 승부가 안 날것이다. 기회가 돼서 나가는 것보다 검증 되서 즉, 수정과 보완, 인큐베이팅 정말 잘해서 하나하나 공들여서 보여줘야 한다. ‘대한민국 뮤지컬 수준 이 정도구나’ 느낄 수 있도록!”김 연출가는 대학로의 뮤지컬 시스템도 브로드웨이처럼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브로드웨이처럼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기 전 오프브로드웨이, 오프오프브로드웨이를 거쳐 인브로드웨이로 가는 자존심 있으면 좋겠다. 그니깐 대학로 입성하려면 ‘성남-양재동 그 다음에 드디어 입성했습니다’. 그러면 박수 받을 것 같다.” 그는 점검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별로 없음을 아쉬워했다.관객에게 ‘페이스오프’ 미리보기를 해준다면,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은가.“가벼운 마음으로 보면 좋겠다. ‘반전이 있더라’ 이런 걸 찾으면서 보면, 어느 작품이건 뭔가 찾으려고 보면 허점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보면 좋겠다. 내가 만든 숨은 그림들 때문에 웃다가 손에 땀나다가 통쾌하다가 박수칠 때 치면 될 것 같다. 하하.” 연출가로서 신념 또한 궁금해졌다. “예전에 대구시민회관에 공연 간 적 있는데 그때 남자화장실에 붙여진 한 철학가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찬장 속의 그릇들은 자기의 부딪히는 소리로 자기의 존재를 알린다. 인간은 자기 세치 혓바닥으로 내미는 말 때문에 자기의 존재감, 지식의 정도를 얘기한다. 나도 개인적 철학 있다면 내가 누구에게 말하고 누구에게 감정 전달할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감정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을까.” ▲ 연출가 김도형 [사진=나병필 기자]배우였기에 연출을 할 때 더 세세함 점을 짚을 수 있고 연출 공부를 하면서 무대를 더욱 넓게 봤다는 연출가 김도형. ‘아직도 뭐가 될까’ 꿈이 많은 그는 앞서 예기한 무수한 창작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일 수도 있고 또 태극마크를 붙이고 대한민국 뮤지컬을 해외에 위풍당당 알리는데 선구자적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뚝딱’ 할 수 있는 실천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연출’ 역을 맡은 그가 다음은 어떤 역을 맡을지 새로운 배역을 맡은 그를 다시 취재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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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28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내 꿈을 펼칠 수 있는 작업장에서 최초를 시도하다”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 단장
      ▲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 단장 [사진=나병필 기자] (뉴스투데이=백수원 기자) 친구들과 토끼몰이를 하러 가던 산길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들꽃들. 졸졸졸 흐르는 실개천에 발 담가 김동진의 가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을 불렀던 기억. 소나기가 올 때면 냇물이 ‘촤르르~’ 휘감다가 다시 해가 비치던 따스함…. 이렇듯 고향 충남 공주는 예술을 꿈꿨던 소녀에게 충만 그 자체였다. 무지개를 쫓던 소녀는 어느 날 서울 대학생들이 와서 순회공연하는 걸 보고 ‘노래를 통해 사람들 마음에 영감을 줄 수 있구나’를 생각해 ‘음악’을 선택하게 됐다. 그 소녀는 성장해 숙명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1971년 김자경 오페라단의 ‘아이다’ 암네리스 역으로 데뷔했다. 음악적 선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73년 유학을 결심, 7년간 유학생활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가진 무대 ‘삼손과 데릴라’에서는 어느새 훌쩍 자란 34세의 매력 넘치는 메조소프라노로 우뚝 서있었다. 소녀에서 음악학도로, 그리고 마침내 오페라 무대의 프리마돈나로 우뚝 선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베세토오페라단의 강화자 단장이다.국내 최초의 여성 연출가 1호라는 수식어를 화려하게 안고 있는 강 단장은 1983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됐던 서울오페라단의 ‘마술피리’로 첫 연출에 입문했다. 그리고 온전한 자신만의 오페라단 ‘베세토오페라단’을 이끈 지 올해 17년째로 접어든다. 최초를 시도하며 공연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강 단장을 그녀가 몸담고 있는 베세토오페라단 사무실에서 만나 음악, 연출, 오페라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파노라마 영상처럼 스토리가 그려졌다. 1996년 ‘베세토오페라단’ 만들다! 그리고 17년, 지금 현재 ▲ 강화자 단장 [사진=나병필 기자] ‘베이징(Beijing), 서울(Seoul), 도쿄(Tokyo)’의 영문 이니셜 앞글자 Be, Se, To를 합쳐 만든 ‘베세토(BESETO)’는 한·중·일 아시아의 문화사절단이 되겠다는 포부로 만들어진 민간오페라단이다.강 단장은 창단 17주년을 맞이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오는 3월 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세계 4대 ‘그랜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여는 것.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마술피리’, ‘토스카’,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이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강 단장이 기념공연으로 왜 ‘갈라 콘서트’를 선택했을까. “매니아들은 오페라의 스토리와 음악에 매료되지만, 처음 접한 사람은 스토리텔링을 다 들어야 하니 지루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엑기스(하이라이트)만 뽑았다. 오페라에서 가장 들어야 할 아리아나 중창들로 이뤄졌다. 어떤 아는 부분의 노래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음악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생각해서 기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기쁨도 드리고 저변확대 일환도 되고 봄바람 살랑일 때 ‘갈라 콘서트’로 행복을 주려는거다. 하하” 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기념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 '그랜드 오페라 갈라 콘서트' [사진=베세토오페라단] “사실 이번 공연은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우리가 많은 걸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오페라 4개를 선정했는데 그게 다 비극적인 요소가 있어서 희극을 가미한 오페라를 넣었고 볼거리에 양념을 더했다. 특히 중간중간 바이올린 등 기악을 넣어서 멋진 공연을 만들었다”며 그 한 예로 ‘카르멘’은 곡도 아름답지만, 플라멩고 춤이 기가 막힌다고 귀띔했다.     갈라 콘서트를 통해 사람들이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단다. “여러 가지 오페라 아리아를 들을 수 있는 게 좋은 경험이고 음악을 사랑할 기회가 됐으면 한다.” 창단 17주년, 눈물도 웃음도 많았던 기나긴 시간이란 굴곡 안에 강 단장을 힘들게 하는 점은 바로 아직도 사람들이 뮤지컬과 오페라를 헷갈려 한다는 점이다.“뮤지컬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사건, 사건 이벤트로 연결돼있고 오페라는 역사적 내용이나 남녀사랑 등 스토리텔링 부분이 많다. 일일연속극 축약해 놓은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안에 비극적인 노래도 있고 아름다운 사랑 노래도 있고 질투도 있고.”사람들이 오페라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외부 지원이 들어와야 한다며 재정적으로 힘들었음을 털어놨다. 처음을 수식하고 최초를 시도하다! ▲ '마술피리' [사진=베세토오페라단]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강화자 단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그 작품은 그를 여성 연출가의 최초를 수식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마술처럼 ‘술술술’ 최초를 그리기 시작했다. 연세대 성악과 교수로 있으면서 1982년 학생들과 함께 ‘마술피리’를 연출했었고, 이듬해 서울 오페라단의 ‘마술피리’를 연출하며 본격적인 연출가의 길을 열었다. 강 단장은 ‘마술피리’를 얘기하는 순간 시간은 과거로 향하는 듯 했다. “징슈필(Singspiel: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있는 독일어 노래극)이 ‘마술피리’에 들어가면서 재미를 더했다. 보통 오페라는 레치타티보(recitativo)라고 해서 선율적인 대화, 대사를 노래하는 것인데”라며 강 단장은 바로 즉석에서 노래와 연기를 선보이며 징슈필과 레치타티보의 차이점을 설명했다.공연의 재미뿐만 아니라 강 단장은 여기서 최초로 미술가와 협력해서 세트를 만들었다. 즉, 처음으로 무대미술 디자이너를 쓰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것. 당시 미술가한테 많은 희망을 줬으며 무대미술가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던진 것이었다.이뿐이 아니다. ‘마술피리’를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족오페라로 만들면서 그것을 정착시키는데 공헌했다. “원래는 아이들 출연이 없는 작품인데 아이들을 최초로 등장시켰다”며 그렇게 던진 아이디어는 하나의 시발점이 돼서 ‘마술피리’는 ‘가족오페라’의 청사진을 제시했다.“객석에서 관객들을 지켜봤는데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 작품에 빠져서 숨소리도 안 내고 보더라. 정말 땀 흘린 보람이 있었다.”오페라는 연습시간만 6개월 어떤 것은 캐스팅 작업까지 해서 1년 이상이 걸리는 작업이다.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을 때의 느낌을 강 단장은 서정주 시인의 시로 표현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어쩌면 운명, 무대 위에서 무대 전반을 휘두르는 연출가가 되기까지! ▲ 강화자 단장 [사진=베세토오페라단] 연출가, 성악가, 오페라 가수가 되기 훨씬 이전 강화자 단장은 장훈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어느 날 일직을 하는데 신문을 보다가 오페라단에서 오디션을 한다는 내용을 읽고 용기를 냈다는 그녀. 그래서 ‘아이다’ 암네리스 역으로 데뷔했고, 그 이후 유학길에 올랐다.“학생들 공부시키다가 저절로 생각이 들더라. ‘이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려면 공부를 더해서 학생들 표본이 돼야겠다”고.유학 동기도 자연스러웠단다. 맨해튼 음대에서 녹음해서 보낸 ‘노래’로 합격 통보를 받고, 그 즈음 하와이로 공연을 초청 받아서 하와이로 떠났다가 바로 뉴욕으로 건너간 것. 맨해튼  음대뿐만 아니라 줄리아드 음대까지 합격한 강 단장은 성악과 피아노가 강한 맨해튼 음대를 선택해 장학금을 받으며 꿈을 일궈나갔다.어린 딸이 먼 이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아버지의 한마디 “꼭 성공하는 거….” 그녀는 약속을 지킴 셈이다.귀국 후 가진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에서 찬사를 받으며 메조소프라노 강화자의 존재를 널리 알렸기 때문.“30년 전 이니 얼마나 떨렸겠는가. 무대를 즐겼다기보다는 내가 성악가로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자 성악가로서 기능을 맘껏 뽐내는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삼손과 데릴라’ 역은 미국에서 공부 중일 때 운명같이 그녀에게 왔다. 뉴욕에서 ‘삼손과 데릴라’ 공연이 한창이었고 그 무렵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그 공연이 초청되면서 오디션 기회를 받은 것. 이미 암네리스 역을 하면서 실력을 검증받았던 터였고 원래 다른 사람이 하기로 돼 있던 게 한 달 만에 갑자기 ‘강화자’에게 제의가 와서 밥 먹고 자는 것 외에 오로지 연습에 매달렸다. 그렇게 해서 ‘삼손과 데릴라’는 메조소프라노 강화자를 스타덤에 올렸고, 더불어 연세대학교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결실로 이어졌다. ▲ '삼손과 데릴라' [사진=베세토오페라단] 무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삼손과 데릴라’. 30여 년이 흐른 후 강 단장은 오늘날 자신을 있게 해 준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연출가로 이름을 올렸다. 무대 위에서 내려와 무대 전반을 움직이는 연출가로.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는 질문에 “사실 뉴욕에 있을 때부터 연출을 조금씩 생각했다”고 전했다. “메트로폴리탄에 거의 매일 가서 정말 많은 오페라를 보면서 공부했다. 만약 표가 없으면 3불짜리 표를 사서 제일 먼 위쪽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면서 봤다. 그러면 다 보인다. 발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때 ‘내가 연출가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걷는 장면도 그냥 걷는 게 아니라 발레처럼 걸어다니는 포즈를 본 강 단장은 '성악가도 액팅해야겠구나! 연출을 하면서 그런 부분을 짚어주자!’라고 생각한 것이 결국 행동으로 이뤄졌다.연출가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무대 주인공은 주어진 역과 노래만 부르는데 연출은 내가 하나의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다양한 색깔을 넣을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강 단장은 특히 메조소프라노는 소프라노 보다 역할이 한정적임을 덧붙였다. “작곡가들이 주인공을 잘 안 주며 소프라노에 비해서 맡는 역할이 제한돼있다. 어머니, 할머니, 집시 ,식모, 하녀 역 등 이런 성격적인 것을 많이 준다. 악역이나 짝사랑 등 그렇게 역이 제한적이니 재미가 없더라.”이쯤에서 강 단장이 연출하고자 하는 목표는 확실했던 셈이다. 작년에 강화자 단장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삼손과 데릴라’는 세계적인 테너 호세 쿠라를 초청해 국내에서 15년 만에 공연됐다. 그리고 그 작품은 2011 대학민국 오페라 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겹경사도 누렸다. 강 단장은 테너 호세 쿠라에 대해 “기가 막힌 소리다. 테너치고 성량도 좋고 고음 나오고 멋있고 그래서 그분을 우리 오페라에 꼭 초대하고 싶었다.” 강 단장의 뚝심과 집념은 제2회 세계 오페라 페스티벌 ‘카르멘’ 체코 공연을 마치고 독일에 들러서 호세의 공연을 봤고 그녀는 호세를 한국 무대에 오르게 했다.연출, 섬세함은 강 단장의 힘! ▲ 강화자 단장 [사진=베세토오페라단] “기획, 제작까지 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연출은 외국사람 모셨는데 흡족하지 않더라.”강 단장은 제2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토스카’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  '토스카' [사진=베세토오페라단] “‘토스카’의 스카피아로 나온 사람이 있는데 자기는 ‘토스카’의 ‘스카피아’ 역을 많이 해봤는데 이렇게 섬세하게 표정을 어떻게 하라는 등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강 단장에게 배운 게 많다’고 하는 말에 용기 내서 하게 됐다.”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강 단장의 연출작, 2011년 7월에 공연된 ‘토스카’는 여태까지 봤던 연출보다 뛰어나고 섬세하다는 극찬을 받으며 무대 최다 관객 동원 등 많은 화제를 낳았다.강 단장의 연출 힘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있다.“창조하는 게 너무 기쁘다. 노래를 누워서, 엎드려서 해보기도 하고. 등장과 퇴장도 무용 같은 몸짓으로 하는 등 여러가지를 시도해본다. 조명도 연구하면서. 나는 소설가, 작곡가를 존경한다. 연출가는 그렇게 천재들이 쓴 것을 토대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거다”며 작품에 섬세함과 표정 하나하나 신경 쓰며 색깔을 다시 입히는 게 연출의 몫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어떤 재료와 양념을 넣어서 맛깔스럽게 버무리는지 ‘오페라 연출’은 하나의 ‘요리’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강 단장은 연출자로서 신념 또한 확고했다. “출연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게 연출가의 의무이다. 그분들로 하여금 감동을 만들어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나의 지식에 출연진들의 감성을 덧입혀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서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이 바로 연출가가 할 일”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강 단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올해 11월 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리골렛토’를 올릴 예정이며, 내년에는 이탈리아 음악단체와 협연으로 ‘투란도트’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목표는 어린이 창작뮤지컬을 해보고 싶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 강화자 단장 [사진=베세토오페라단] “남한테 영향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강 단장의 인생철학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대중들이 그녀의 작품에서 희망을 품게 되고 꿈을 찾게 된다. 특히 편부편모,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초청해 공연을 보여주고 문화적 혜택을 주는 ‘연주 장학회’를 통해 강 단장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지갯빛’을 쫓았던 소녀가 성악가에서 기획 제작자로 또 연출가로 그리고 오페라단을 이끄는 단장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며 새로운 길을 걷고 후배들에게 길을 제시하고 있다. 강화자 단장을 통해 후배들은 희망을 보고, 또 그 후배들은 그들의 후배들에게 똑같은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언젠가는 올려질 강화자 단장의 ‘어린이 창작뮤지컬’이 공연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 자명한 이유는 바로 강 단장이 그동안 보여준 ‘새로운 도전’에 있다. 그녀의 이름 앞에 어떤 새로운 수식어가 붙게 될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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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22
  • 방통위원장 이계철, 청와대 정무수석 이달곤씨 내정
      ▲ 이계철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 (뉴스투데이=유병희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 이계철(72) 전 정보통신부 차관을 내정했다.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는 이달곤(59)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임명했다.박정하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방통위원장 내정자는 정통 관료 출신으로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통해 중립적 위치에서 방송통신 정책을 수립·시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이 신임 정무수석에 대해서는 “국회와 정부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향후 당정청 간 유기적 협력과 야당과도 원활한 소통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인사는 조직 안정성에 가장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이계철 내정자의 오랜 관료 생활과 관련 업계 종사 경험이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다뤄야 할 합의제 기관인 방통위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청와대는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이 내정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옛 정보통신부 차관을 지냈으며 퇴임 후에는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 한국전파진흥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집중 공세가 예상되는 만큼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인물을 선택하려는 청와대의 복안도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경기 평택 출신인 이 방통위원장 내정자는 서울사대부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와 행시 5회로 공직에 입문, 체신부 전파관리국장과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친 뒤 차관까지 오른 정통 관료출신이다.이달곤 신임 정무수석은 20년 가까이 행정학자의 길을 걸어 실무와 이론을 겸비했다는 내부 평가와 선거를 관리하는 행안부 장관 경험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알려졌다.이 신임 수석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내다 10개월 만인 2009년 2월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이어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다.경남 창원 출신인 이 신임 수석은 동아고와 서울대 공업교육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제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 행정안전부 장관, 지방분권촉진위원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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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14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 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 '그의 손에서 생명이 탄생하다'
    ▲쿨레인 [사진=나병필 기자] (뉴스투데이=백수원 기자) “관심에서 비롯됐습니다.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해외 동영상을 보고 손으로 조금씩 만들어 보면서 스스로 배우고 터득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남들보다 훨씬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로지 깊이 파고들었습니다."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Cool Rain, 본명 이찬우). 관심에서 ‘한 번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해서 꾸준히 만들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자료 조사와 피규어(figure)에 알아가면서 그의 손에서 하나하나 체득된 캐릭터는 생명력을 갖게 됐고, 그렇게 피규어는 세상에 태어났다. 그가 운영하는 쿨레인 스튜디오에는 켠켠이 쌓인 액션 피규어와 ‘덩키즈(DUNKEYS)’, NBA 시리즈1의 아트토이 그리고 섬세하고 정교한 자태를 자랑하는 소품들, 실물을 그대로 축소한 듯한 나이키 운동화는 ‘시간’과 ‘노력’이란 과정들이 결과로 완성돼 미소 짓고 있었다.뚝심과 집념이 이뤄낸 결과였다. 며칠 밤을 지새워도 행복하다는 그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실물보다 더 실물 같은 ‘토이’ 친구들을 만들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형성했다. 그 결실로 쿨레인은 NBA가 선택한 세계적인 디자인 피규어 작가로 어느새 성장했다.  쿨레인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살아있는 전시관을 보는 마냥 그의 작품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사람들을 반겼고, 거인이 소인국을 방문한 것처럼 쿨레인이 작은 세상으로 초대한다. 비보이가 춤을 추고, 덩키즈가 손짓하고, 다이나믹 듀오가 개구쟁이 웃음 지으며, 미프로농구(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나는 쿨레인이다! [사진=나병필 기자] 시작점은. 애니메이션 ‘아키라’를 보면서 ‘나도 저런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그때부터였다. ‘아키라’뿐만 아니라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규어를 모았다. 서울로 올라와 애니메이션 학원에 다녔는데 나는 드로잉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10년이 지나도 애니메이션 못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내 전공은 화학과였다). 그러다가 3D를 배워서 3D 게임이나 동영상 등 짧은 스폿을 만들었는데, 애니메이션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투입돼야 하는데 ‘피규어’처럼 손으로 만들게 되면 ‘더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영상이 아닌 직접 손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만들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악몽’ 모작부터 해봤지. 아트토이가 98년~99년 홍콩에서 시작됐는데 나는 3~4년 동안 모작했다. 당시 재료가 국내에 없고 배울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해외서적을 보고 동영상 배우면서 공부하다 보니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국내로 재료가 들어왔고, 구입해서 만들어보고 연습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평소 좋아했던 종류들을 만들고 싶어졌고 만들어야 하는 게 그만큼 늘어나더라. 특히 나이키 좋아했는데 나이키 신발 만들어야 하니깐 신발 재질 사러 동대문 종합상가에도 가고 또 신발 전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자료란 자료는 다 모았다. 지금도 똑같이 자료는 모은다. (나이키) 신발도 그렇고 픽시 자전거라 해서 그걸 만들 때는 자전거 타는 친구들 조언을 많이 구했다. 자전거 빌려 달라고 해서 직접 보고 만들고. 그래서 뭘 하든지 자료 조사해서 실제 부분과 격차를 줄이려고 하는 편이고 그렇기에 자료를 많이 찾는 편이다. ■그를 디자인 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이라 부른다!처음 만든 건. 액션 피규어. 쿨레인이 제작한 액션 피규어는 어반컬처와 스트릿컬처의 문화 등 그들의 라이프를 담아내고자 했다. 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06년도 한국 비보이가 해외 우승했고 당시 비보이 영상 보면서 ‘아, 한국 비보이 만들면 좋겠다’ 생각해서 비보이를 주제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리얼 피규어가 영화 속 주인공들을 실감이 나게 보여주고 있다면, 디자인 피규어는 의상과 소품 등으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러한 디자인 피규어를 기반으로 그는 비보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 ‘몬스터즈 크루(Monsterz Crew)’ 시리즈를 만들고 전시도 했다. ▲ [사진=쿨레인 스튜디오] 2008년 나이키에서. ‘나이키 2008년 덩크(DUNK) 23주년 기념 전시’로 코엑스 메가박스 앞에서 연동해서 6개월 정도 전시 같이하자’고 러브콜을 보냈다. 캐릭터는 쿨레인이 그동안 만든 작품으로 하고 가장 중점을 둔 신발, 나이키는 기존에 나온 신발과 2008년도 상반기 나온 제품 합이 100켤레 이상의 신발을 만들었다. 신발 이름이 ‘덩크’ 이다보니 농구를 주제로 했고, 10대 후반~20대 초반인 친구들을 주제로 자유롭게 창작을 하며 전시했다.그러다가 명동 전시할 때는 캐릭터에 제한 없이 마음대로 하라는 나이키 측의 제안이 있었다. 평소 농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원숭이와 농구를 접목한 덩크(Dunk) 몽키(Monkey) 합쳐 ‘덩키즈(DUNKEYS)’ 를 만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덩키즈’가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반열에 올려놓을 줄!■쿨레인과 그의 오리지널 캐릭터와 마주하다! ▲ [사진=쿨레인 스튜디오] “박성균 형님이랑 재미로 만들었다.” 쿨레인의 오리지널 캐릭터 ‘덩키즈(DUNKEYS)’ 탄생 배경에 대한 대답이었다. 컨펌이 없으니깐 자유롭게 디자인했다는 게 그의 설명. 쿨레인과 박성균(Seman10cm)이 같이 만들어낸 ‘농구하는 원숭이, 덩키즈’는 예술의 전당 전시회 이후 베를린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샌디에이고 전시회를 열며 세계로 뻗어 나갔다. 이 캐릭터 때문에 쿨레인 스튜디오는 세계로 도약했다. NBA와 세계최초로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 시리즈 런칭하게 되었던 것. 처음에 미국 아트토이 회사 마인드스타일(MIND style)에서 NBA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 코비 브라이언트 아트토이 [사진=나병필 기자] “그래서 2010년 12월 NBA 뉴욕 본사와 마인드스타일 그리고 쿨레인이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통해 NBA 슈퍼스타들을 아트토이로 재현한 프로젝트”라는 그의 말에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NBA 토이의 가장 큰 특징은 NBA가 아티스트와 처음으로 진행하는 아트토이 시리즈로 보디는 같은 형태로 하고 헤드만 형태가 바뀌는 플랫폼 토이 형식이었다. 원래 농구에 관심이 많은 그였기에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가넷 등 10명의 선수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코비 선수는. 아트토이처럼 만들고 나머지 선수들은 캐리커처 스타일로 했다. 단 한 명만 만들면 오버해도 되는데 선수 10명을 만드는 거고 얼굴을 제외하고 가렸을 때 유니폼이나 등판 등 누구인지 알게 하는 게 중요했다”며 일목요연하게 작품들을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작업했기에 일화도 무궁무진하고 만족감도 클 테다.“NBA 처음에 제안 왔을 때 어떻게 보면 한국에 없는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었기에 기분 좋았다. 특히 ‘쿨레인 스튜디오’ 로고가 박힌 제품 박스를 받았을 때 감동이었다. 또 코비가 한국에 와서 직접 만나서 줬는데 기분 좋더라. 내가 다른 일 하고 있으면 못 만날 사람인데… 코비도 대개 즐거워하고, 포즈를 따라 하기도 하더라. 하하.”■좋아하는 일을 확장시키는 쿨레인의 힘을 만나다! ▲ 다이나믹듀오-슈프림팀-프라이머리가 속한 아메바컬쳐와의콜래보레이션으로 만든 아트토이 시리즈 'Amoebahood' [사진=쿨레인 스튜디오] 쿨레인은 얼마전 다이나믹 듀오의 소속사 아메바컬쳐와 함께 다이나믹 듀오 10주년 기념을 해 ‘아메바후드(Amoebahood)'라는 아트토이 시리즈를 런칭했다.“사실 다이나믹 듀오 군대 가기 전 미팅했는데 그때 시간이 짧아서 못하다가 군대 갔다 오자마자 미팅하고 만들었다. 결과물 보고는 모두 좋아했다”NBA 시리즈 성공을 보고 다이나믹 듀오의 아트토이 작업의뢰가 들어왔고, 이후 다이나믹 듀오가 성공하자 많은 연예인들의 문의제의가 들어온단다. 하지만 분명히 기존의 원형사가 배용준, 서태지처럼 똑같이 만드는 캐릭터와 아트토이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연예인들이 똑같이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얼굴과 보디가 안 어울린다. 진짜 똑같이 하려면 원형사한테 하면 된다. 우리나라에 다섯~여섯 명 정도 잘 만드는 분 있는데 그분들 세계적으로도 손으로 꼽힌다.”갑자기 가수들처럼 천부적인 목소리를 타고나는 것처럼 피규어를 만드는 것도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한지 궁금해져 왔다.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기술적인 부분은 천부적일 필요 없다. 한, 두 번보다 세 번 하면 더 잘한다. 신발 500켤레 넘게 만드니 잘 만들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리고 만들게 되면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그는 그저 좋아해서 만들고 좋아해서 만든 오리지널 캐릭터를 이용해서 전시회를 한다든지 그런 제의가 많이 들어와서 일이 확장됐다는 겸손을 잊지 않았다. 피규어의 탄생과정은 어떨까. “NBA나 다이나믹 듀오 같은 경우 양산을 하는 용도여서 세입 자체가 심플하다. 좌우대칭이 형태가 정형태이기 때문에 컴퓨터 모델링으로 3D로 작업한 거다. 우리가 알다시피 장난감 제품들 손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피규어도 다 3D모델링으로 작업한다. 액세서리, 농구공 등 컴퓨터 모델링 3D프린트 RP(알피)라고 하는데 프린트로 입체로 깎아주고 사포질 마감하고 실리콘 복제하고 그렇게 해서 원형 보내면 중국에서 쇠로 된 틀을 만들어서 플라스틱 녹여서 구워낸다. 도색한 샘플을 보내오면 컴퓨터 칼라 색 지정해준다. 그러면 중국에서 조색해서 제품화되는 것이고 양산되는 것은 이런 형태이다.” “양산도 좋지만, 내가 한정판으로 직접 만들어서 하는 게 재미있다. 핸드메이드 수작업 10배 정도 비싼데 그걸 가끔 판매한다. 10개 한정으로 보통 해외쪽으로 판매하는데 1개 만드는데 3~4일 정도 걸리고, 10개 만들면 3달도 걸리고 힘들다. 머리 하나 붙여도 5시간 걸리니깐. 하지만 내가 갖고 싶게 만들어야 보는 사람도 사고 싶다”는 명확한 철학을 보이며 ‘정성’을 강조했다. ■오늘도 내일도 세계 최초를 그려나간다! ▲ 쿨레인 [사진=나병필 기자] 실제 인물을 베이스로 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그 인물이 하는 액세서리도 꼼꼼히 살려서 작품을 표현하는 쿨레인은 지난 2005년 제4회 서태지 매니아페스티벌에서의 첫 번째 전시를 시작으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월드 토이 페어, 토이 팝 아트 전, 킨키로봇 쇼케이스, 나이키 비더 레전드(Be The Legend, 박지성 피규어 제작), 모토로라, 나이키 덩크(Dunk) 전까지 굵직한 전시회에 그의 이름을 걸어왔다. 또 2010 남아공월드컵 기념 퓨마와 함께 대표적 남아공 선수들 디자인 피규어를 제작했다. 독학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희열감과 부담감이 분명 있을 테다.“부담감보다는 NBA 세계 최초 타이틀 자체가 기분 좋다. 국내에서 일할 때 아트토이쪽으로 거의 없어서 도움도 되지만, 일할 때 잘 못하면 ‘아트토이’ 그 문제가 아니라 ‘내 일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할 수 있는 최대한 최고의 작업 보여주고 한다. 마지막 작업이라 생각하고 한다.” 그동안 여러 콜라보레이션을 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물었다. “가장 힘들고 재미있었던 거 나이키. 준비기간 4개월인데 석 달 동안 100켤레 신발 만들었다. 그 외 NBA 해외쪽과의 작업 그리고 다이나믹 듀오 측과도 재미있게 작업했다. 그쪽에서 배려도 해주고 나도 직원처럼 열심히 믿고 일했다.”쿨레인은 또 다른 꿈을 그리고 있다. 처음 ‘아키라’를 보고 영상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와 같은 마음처럼 지금은 자신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싶단다. ▲ NBA 시리즈1 [사진=쿨레인스튜디오] “영상 작품으로는 아메바후드가 될 수 있고 ‘덩키즈’가 될 수 있다. 오리지널 캐릭터기 때문에 그림 보여주기 힘들어서 영상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피규어가 있고 영상이 있고 또 한쪽에서 작품을 함께 팔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는 전시회장을 만들고 싶다는 꿈꾸는 ‘전시회장’을 그렸다. 더욱이 올해는 쿨레인 스튜디오 5주년이다.“2012년에는 ‘덩키즈’ 제품 10종류 정도 나온다. 또 NBA 시리즈2가 나올 것이다. 시리즈 1에 이어서 2까지 나오면 자리 잡을 것 같고. 좀 전에도 살짝 언급했는데 5주년 전시회는 기존에 했던 거랑 다르게 하고 싶다. 만들고 싶은 사람도 욕심도 있어서 큰~~~ 것을 만들고 싶다. 큰 사이즈이지만, 퀄리티 있게 작업해서 올해 안에 전시하고 싶다.”흔히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잘하는 일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쿨레인에게는 예외다. 하고 싶고 해야 하고 잘하는 일을 모두 하는 쿨레인은 스스로 체득한 것을 홍대 상상마당에서 3년째 강의하고 있다. 쿨레인을 보면서 피규어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부탁했다. “나도 늦게 시작했고 (미술이나 애니) 전공도 아니다. 만드는 한 개가 중요하다. 그다음에 하나 또 다음에 하나 히스토리가 중요한 것이다. 또 얼마나 좋아하고 꾸준하게 하느냐가 문제다.”오늘도 작업실에서 오롯이 캐릭터의 생명을 부여하고 있을 쿨레인. 그의 손길과 땀방울의 완성 길에 앞으로 라인업될 ‘덩키즈’ 시리즈와 NBA 시리즈2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전시회에서 활짝 웃고 있을 새로운 식구들이 기대된다. ▲ 쿨레인 [사진=나병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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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14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 "한국의 美 알리는 주얼리 디자이너" 김정주 뮈샤 대표
      ▲ 뮈샤 김정주 대표.  [사진=나병필 기자] (뉴스투데이=오소희 기자) 디자이너 최초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대통령상 수상, 미스코리아 왕관 4년 연속 제작, 스타들이 사랑하는 주얼리 디자이너, 여성 벤처기업가. 이 모든 것은 웨딩 주얼리,  스타 주얼리의 대표 브랜드 '뮈샤(MUCHA)'의 김정주 대표를 수놓는 이름표들이다.누구보다 뜨거운 감성으로 그녀만의 개성있는 특별한 보석을 창조해 내는 주얼리 디자이너. 주얼리에 아름다움을 담아 행복과 감사를 전하는 김정주 대표를 만나봤다. ▲ 김정주 대표와의 인터뷰. [사진=나병필 기자] 살을 에이는 겨울 칼바람이 씽씽 불던 지난 7일 김정주 대표의 일터이자 놀이터인 서울 청담동 뮈샤 주얼리 숍을 찾았다.3층에 위치한 뮈샤의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아르노(Arno)' 쇼룸에 들어서는 순간, 진열대마다 눈부신 주얼리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블랙톤으로 치장된 쇼룸 사방 벽면에는 하트 모양의 특별 진열대가 마련돼 있었고 그곳에 뮈샤를 대표하는 보석왕관과 목걸이들이 조명빛을 받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음...김정주 대표의 첫 인상이랄까, 긴 생머리에 뽀얀 피부에서 마치 뮈샤 주얼리가 표방하는 새하얀 카라꽃의  순수한 사랑을 연상할 수 있었다. 블랙 스커트와 핫 핑크의 블라우스로 맵시있게 차려입은 모습 또한 뮈샤의 브랜드 '아르노(Arno)'가 상징하는 빠알간 장미 한떨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아직도 감성이 풍부한 소녀같은 삶을 살고 있어요. 세월이 지날수록 마음이 더욱 어려지네요." 나긋나긋하게 얘기하는 본새도 소녀처럼 예뻤다. 어렸을 적 강원도 춘천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김 대표는 예쁜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소양강변의 자연과 어울려 지낸 유년시절의 감성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며 자신의 예술적 감성이 천혜의 것임을 강조했다."여자라면 누구나 예쁜 것을 좋아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시골 길 옆에 피어있는 들꽃이나 강변의 조약돌들을 보면 너무 예쁘더라고요. 아마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어린 날의 풍요로운 감성이 지금까지 이어져와 저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주얼리 브랜드 뮈샤도 그런 김 대표의 자연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 실제로 뮈샤의 주얼리들은 꽃과 나비 등이 많고, 세공 하나하나의 디자인이 매우 섬세하고, 자연의 사실감이 뛰어나다.뮈샤(MUCHA)는 '매혹적인 여인', '신비로운 아름다움'이란 뜻을 지닌 프랑스 말로 19세기 아르누보(자연의 곡선을 추구)의 대표화가 알퐁스 뮈샤의 화풍에서 영감을 얻어 따왔다.춘천에서 쭉 자라 강원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 생물학 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하고 미국 유학까지 꿈꾸었다는 그녀가 어떻게 주얼리와 인연은 맺게 되었을까."주얼리 디자이너가 되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어요. 대학 은사님께서 우연한 계기로 보석 감정사를 추천해 주셨어요. 보석 감정사가 앞으로 유망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무작정 호주 시드니로 날아가 보석감정 공부를 시작했다. ▲ 뮈샤 주얼리 숍 내부(위), 뮈샤 공방. [사진=뮈샤] 유학을 다녀와 본격적으로 주얼리 사업에 뛰어든 때가 1997년 6월로 서울 종로의 귀금속 상가 골목에서 25m² 내외(7~8평)의 자그마한 점포로 시작했다."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남편 사업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어쩔 수 없이 제가 사업에 나서게 된 것이지요. 그때 당시 3000만원의 돈을 가지고 조그마한 팬시 주얼리 점포 하나로 출발해 주말도 없이 억척스럽게 일만 했어요."당시 김 대표에게는 4세, 7세의 두 아이가 있었다. 힘들었던 시간을 강인한 정신으로 뮈샤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다름아닌 아이들이었다고 한다."어느 순간부터 매출이 확 오르더라고요. 아마 그 때부터 확실한 경영 철학이 생긴 것 같아요. 고객이 만족 할 수 있는 품질을 만들어 내는데 주력했어요. 단순히 주얼리를 파는 것이 아닌 고객과 소통을 통해 감동을 줘야 한다고 생각이었죠." 10년 뒤 큰 주얼리 숍을 가지는게 꿈이었다는 김 대표는 사업 규모를 점점 늘려가며 지난 2002년 뮈샤를 설립해 사업을 본격화했고, 창업 1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웨딩 주얼리 업체로 키우는데 성공했다. ▲ 2009년 미스코리아 왕관 '동양의 빛' [사진=뮈샤] 김정주 대표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수식어는 바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연속 그녀가 디자인한 미스코리아 왕관이다.특히 2009년 미스코리아 김주리가 썼던 왕관 '동양의 빛'은 신라 선덕여왕의 왕관에서 모티브를 얻어 한글을 가미한 디자인으로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쾌거까지 이뤘다."뮈샤에는 휴머니즘과 생명이 내재되어 있어요. 하나 하나 정성을 다한 핸드메이드 작품이기 때문에 내면에 좋은 기운을 불어 넣어 주는 마법같은 주얼리죠.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다보니 아무래도 미를 대표하는 미스코리아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한편, 김 대표는 주얼리 디자이너답게 국내 내로라하는 연예인들과도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10년 전부터 영화와 드라마의 인기 배우들의 주얼리 패션 스타일링을 맡아 오고 있다. 특히 배우 장근석과 JYJ 등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연예인들과 각별한 사이라고 귀뜸해 줬다. "많은 연예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JYJ 멤버 준수씨는 저를 '이모'라고 부르며 잘 따라요. 특별하게 기억남는 배우는 김남길씨이구요. 그와 콜라보레이션(협업)한 작품이 있거든요. 같이 작업하다 보니 김남길씨가 보기보다 섬세한 면이 있더라구요. 사실 무척 까다로웠어요(웃음)."연예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 그녀는 '한류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한국 문화 알리기 디자이너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 김정주 대표(왼쪽),  배우 김남길. [사진=뮈샤] "한류 열풍 때문인지 외국인 관광객이 뮈샤 빌딩 스타 주얼리 숍에 하루에도 100명 이상 방문하세요. 조만간 일본에서 도쿄 주얼리 어워즈도 개최하려고 준비 중에 있죠."김 대표의 작품은 섬세하고 자연적인 한국 미와 이어져 있어 한류와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국내 주얼리 업계로는 유일하게 'ATC 우수제조기술연구 정부지원 사업' 업체인 만큼 큰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문화 알리기에 열심이다.뮈샤 주얼리 제품은 현재 중국, 일본 등에 수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국가들로 진출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특히 일본에선 캐릭터 개발을 이용한 보석 모티브로 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한글을 모티브로 만든 주얼리 '어울림' (위)과 '한국의 미' [사진=뮈샤] ▲ 김정주 대표 [사진=나병필 기자] "올해 수출액만 100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물론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이죠. 가장 한국적인 미를 알리고 싶어요. 또 우리나라 세공 기술은 정말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하지만 여전히 국가적 지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이런 문제만 해결 된다면 정말 우리나라 주얼리 산업이 큰 성공을 이룰 거라 믿어요."한류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보석 수출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게 자신에 주어진 사명이라고 강조했다."세상에는 너무 아름답고 매혹적인 디자인이 많아요. 그러나 아름다운 것을 창조해낸 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예요.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고통이예요.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을 극복해야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아름다움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거죠. 저는 그 고통을 즐깁니다. 그리고 행복해요."긍정의 힘과 부드러운 감성으로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주얼리를 통해 생명력과 휴머니즘이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그 안에 누구나 로망하는 꿈을 불어 넣는 소녀감성의 김정주 대표의 눈부신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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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09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음악은 영혼, 영혼 가르치는 일을 하다" 황성택 MID문화예술원장
      ▲ 황성택 MID문화예술원 원장. [사진=나병필 기자] (뉴스투데이=백수원 기자)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감성 리더십’은 소통과 개방, 혁신을 지향하는 조직 경영자에게 중요한 화두이다. 즉, 경영자들은 나 아닌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하는 ‘열린 사고(오픈 마인드)’의 접근방식으로 구성원들의 능률을 한껏 끌어올려 효율을 극대화하는데 노심초사한다.상대방의 감정을 잘 알고, 마음을 여는 '감성 리더십'. 이같은 ‘감성 리더십’ PR맨으로 앞장 서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황성택 한국MID(Magic Instrument Dance)문화예술원 원장이다.황성택?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1970~80년대 대중가요의 핫(Hot) 아이콘 중 하나였던 그룹사운드 ‘딕훼밀리’의 리더싱어이다.황 원장은 30여 년 이상의 음악 활동으로 소통과 리더십을 체득했고, 음악과 리더십의 조화를 2~3년간 모색한 결실이 바로 MID문화예술원이다.오는 3월 1기 과정 입학식을 앞두고 설렘 한 가득 안고 있는 황성택 원장을 서울 역삼동에 직접 운영하는 ‘딕훼밀리 Live 70-80’ 카페에서 만나 타임머신을 탄 듯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조밀조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 문화·예술로 충만을 맛보다 Part 1 : 배움 충만   ▲ 황성택 MID문화예술원 원장. [사진=나병필 기자]“음악은 영혼이고 MID는 그 영혼을 가르쳐 주는 일을 한다” 황성택 원장은 MID문화예술원에 대해 한결같은 경영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음악은 영혼’이고 그 영혼을 가르쳐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MID는 어떤 곳일까. “지식만을 배우는 대학원 최고 경영자 포럼이 많이 있는데 우리 MID문화예술원 최고경영자 과정은 기존 학교에서 실시하는 지식만 가르치는 것에서 벗어났다. 드럼, 건반, 베이스, 기타, 색소폰과 탱고, 마술 등 모든 예술 분야를 실기 위주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며 여타 대학원 경영자 과정과 차별화를 뒀음을 밝혔다. 더욱이 여기에는 각 악기 분야별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뮤지션들이 지도 교수로 포진해 있어 문화예술원에 힘을 실어준다. “교수진들이 현재 많은 가수의 작사, 작곡 및 편곡 등 앨범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세션맨들이다. 개인적으로 예전 음악 활동 할 때부터 알고 지낸 선후배로 섭외하는 과정에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며 탱고를 지도할 하재봉 교수 이야기를 꺼냈다.“하재봉 교수는 우리나라 대중음악 평론가이고 시인이자 소설가로 언론을 통해서 많이 접할 수 있는 분이다. 하 교수를 통해 탱고의 미학이나 탱고를 배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건강과 더 나아가 창의적인 사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굉장히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지도 교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덧붙여 마술을 지도할 김 청 교수 역시 간단한 소품을 이용해서 즐길 수 생활 마술,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마술을 가르칠 거라 귀띔했다.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모든 분을 대상으로 한 MID 최고경영자 과정에는 현재 3월 12일 입학식을 앞두고 정원 60여 명을 예상하고 있지만, 참여율이 높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어떤 시각으로 보면 사회 리더들, 대상 범위가 좀 좁지 않느냐는 질문에 황 원장의 깊은 속뜻을 비췄다.“주변에 지인들 보니깐 대개 나이 층이 40대 후반~50대, 60대 초반인데 그야말로 앞만 보고 일만 열심히 해서 각 분야에서 소기의 목적 달성한 분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항상 메말라 하는 게 있다. 예전에 70, 80년대 초 통기타 문화에 대한 향수라든지, 모 드라마 색소폰 인기 끌었듯이 악기 한, 두 가지 정도 배우고 싶은 로망이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나이 때쯤 되면 구체적으로 어디 학원 다니면서 학생들과 배우기도 그렇고…. 문화 접근성이 부족하니 이런 곳에서 악기를 다루면서 어떤 모임 같은 곳에서 직접 연주해봄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서로 직업이 달라서 고급 인프라 공유하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특히 중간 중간 사회 명사 분들을 초대해서 인성 세미나도 하는 등 바쁘게 살아왔지만, 여유롭게 뒤돌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교육프로그램도 마련해놓고 있다고.  Part 2 : 기쁨 충만 ▲ 황성택 MID문화예술원 원장. [사진=나병필 기자]악기를 다루면서 실질적인 음악에 접근하는 ‘실용적’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항목이 더 궁금해졌다. 그러자 황성택 원장은 “날짜별로 수업이 다양하게 짜여 있다.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주 1회 교육프로그램인데 교육시간은 저녁 7시부터 8시 30분까지 1교시 수업 그리고 8시 30분부터~10시까지 2교시 수업이다. 밴드 수업은 5가지 악기(건반/드럼/베이스/기타/색소폰)를 파트별로 배우는 분반 수업과 이후 탱고, 마술, 교양 등으로 나눠있다”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한 가지 특색이 있다면 입학식 날 지도교수와 황 원장이 직접 공연한다고. “원우들을 위해서 그 가족들을 초청해서 이러이러한 지도 교수님들에게 교육받는다고 인사하는 것이다. 굉장히 흥겨운 파티가 될 거라 기대한다”고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졸업하게 되는 7월 말쯤에는 졸업식 겸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드러내고자 졸업 작품 콘서트를 할 거다. 그리고 9월에 입학할 2기 원우들을 위해 1기 원우들이 입학식 날 공연 도 할 예정이다. 또 1년에 한 번 MID문화예술원 1, 2기 졸업생과 재학생이 어우러져서 지도교수와 가족들이 함께하는 송년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거기서 얻어지는 수익금 입장료라든지 일부 후원금이나 협찬금은 사회단체에 기증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목표도 빠뜨리지 않았다.벌써 1년의 청사진이 빼곡히 꼼꼼하게 그려진 MID문화예술원에서 자아 발견을 할 수 있다는 부분이 와 닿았다.창조적 자아 발견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곧 문화예술원에 입학 할 골프장 운영하는 회장님이 계시는데 그곳에서 계절별로 뮤지션들 초청해서 자선공연 콘서트를 한다. 그분이 이번에 마술과 드럼 배울 예정인데 본인도 거기 참여해서 보람 느끼고 싶어한다. 소위 말하면 음악 한 사람이 음악 하는 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쉽게 접하며 배울 수 있고 본인이 가진 몰랐던 끼와 재능을 우리 예술원에서 배우면서 발견하고 스스로 만족도 느끼게 되는 것이 자아발견 아닐까.” Part 3 : 나눔 충만황성택 원장은 실기 위주로 배우고 인프라를 넓히는 것 외에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에 나누고자 하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가톨릭 대학교와 MOU 맺을 계획이다. 강남 성모병원 재단이니깐. 한 달에 한 번씩 암 병동에 계신 분들을 위해서 자선공연 할 것이고, 기금 마련해서 가톨릭 대학 측에 기부할 예정이다. 소아암 재단에는 40여 개의 기업 재단이 기부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예술원도 체결 맺기로 했다. 음악 배우고 즐기고 사람 만나서 얻어지는 영리보다는 우리가 기여 형식으로 사회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또 하나의 목적이자 보람이다.”  자아발견은 물론 좋은 일까지 할 수 있는 문화예술원에서 원우들이 꼭 하나만은 배워갔으면 하는 것이 있을까.“첫째는 한, 두 가지 악기를 마스터 할 수 있는 것이고 둘째는 이 안에서 함께 배우고 즐기며 원우분들과 소통이 잘 돼서 사회활동 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됐으면 한다. 사회는 혼자 살 수 없는 복잡한 구성요건 아니겠는가. 곧 사람이 재산이다. 사회 참여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1기 졸업하고 2기 입학하고 그 이후에 들어올 원우분들까지 다 같이 인프라 형성해서 소통이 잘되면 좋겠다. 특히 음악을 통해서 만났기 때문에 각자 배운 음악 실력을 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실력도 선보이고 기부도 하면서 뭔가 모르게 깨달아지는 게 많이 있을 것 같다.” ■ 음악은 나의 인생 Part 1 : ‘딕훼밀리’란 네 글자 ▲ 딕훼밀리 정규 3집 앨범 포스터. 빠빠빠 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빠 빠빠빠 빠 빠빠빠~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지금도 백화점이나 음식점에서 간간이 나오고 있는 있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익숙한 노래 ‘또 만나요’는 딕훼밀리의 대표곡이자 국민가요다. 70~80년대 고고장, 학사주점 등 영업이 끝날 때 ‘엔딩송’으로 사용되는 경쾌한 리듬과 가사가 젊은이들의 아쉬움을 단숨에 날렸을 정도니.“[헤어지는 마음이야 아쉬웁지만] 이 얼마나 솔직 담백하고 순수한가. 그래서 대중들이 30여 년 가까이 지난 노래인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랑해주는 것 같다. 남녀노소 떠나서 기본적으로 순수한 마음이 그런 노랫말 가사 잊지 않고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콕 짚어 인기 이유를 분석했다.딕훼밀리는 76년 히트곡 ‘나는 못난이’를 비롯해 ‘또 만나요’ ‘작별’ 등을 선보인 통기타 그룹으로 처음에는 7인조로 활약했으나 이후 황성택, 이박무, 이천행씨 주축의 3인조 그룹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2004년 20여 년 만에 3집 앨범을 내고 ‘나는 못난이Ⅱ’를 활동에 박차를 가한 게 그 시작점이었다. 이후 2005~2009년 KBS 제2라디오 ‘이영자, 장동혁의 싱싱한 12시’의 딕훼밀리 코너에 4년간 출연했고, KBS 1TV 배철수의 ‘콘서트 7080’에 모습을 비추며 중장년층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딕훼밀리의 리더싱어, 황성택 원장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2004년도에 발표한 딕훼밀리 3집 정규앨범에 내가 네 곡 정도 작사, 작곡했다. 대표적인 게 ‘나는 못난이Ⅱ’. 기존의 ‘나는 못난이’의 멜로디와 순수한 가사 내용을 비슷한 형태로 발표한 노래이다”며 딕훼밀리가 방송, 라디오 등 조금씩 활동하면서 약 8년 전부터 서초구 구민들을 위해 15회 걸쳐서 자선 공연했음을 전했다.“음… 개인적으로 작품 활동 한 거는 2006년~2007년도 쯤에 한 교통방송이라든지 MBC, KBS 라디오 프로그램 BGM을 했었다.”  더 근원적으로 황 원장이 가수가 된 계기를 또다시 아스라이 거슬러 올라갔다.“어렸을 때 통기타 있었는데 교회나 소풍 간다든지 하면 친구들이 통기타 있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통기타’에 대한 로망이라고나 할까. 사실 남들처럼 음악 하게 된 동기는 똑같다. 그러다가 학창시절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그룹사운드 만들면서 활동하다가 방송국의 한 지인으로부터 권유받아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내가 딕훼밀리 2기 리더 보컬인데 그 당시 딕훼밀리 원년멤버분이 사정상 탈퇴하면서 내가 들어왔고, 원년 멤버들과 지금까지 20여 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82년 해체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아니’라는 손짓을 곁들였다. “해체가 아니라 나이트클럽 활동을 해왔다. 방송하지 않으니깐 해체된 걸로 알고 있는데 해체가 아닌 중단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다가 앞에서 말했다시피 2004년에 3집을 내면서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거다.”Part 2 : 음악, 그 순수한 정서의 교감 ▲ 황성택 MID문화예술원 원장. [사진=나병필 기자] 해도 잠든 밤하늘에 작은 별들이 /소근대는 너와 나를 흉보는가봐설레이며 말못하는 나의 마음을/용기없는 못난이라 놀리는가봐 ‘나는 못난이’ 가사를 보면 순수하고 담백하면서도 연인들의 사랑스러운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져 듣는 사람까지도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다. 황 원장은 ‘에두른 표현’이 참 멋지다고 표현했다. “요즘 음악과 그때 당시 음악 가사 내용이 많이 다르다. 지금은 직설적이며 자극적이고 구체적이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에둘러서 표현했다. ‘사랑한다’ ‘넌 내 여자니깐~’ 그런 가사 내용 상상할 수 없었다.(하하) ‘나는 못난이’의 정서는 얼굴 빨개지고 손잡고 싶은데 잡을 수 없고. 집에 가서 후회하고….” 황 원장의 설명에 그림이 연상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예전 노래 아름답고 순수하고 그것이 곧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촌스럽긴 하겠지만, 그런 에두른 표현, 아름다운 가사 내용과 멜로디로 새 앨범 준비 중에 있다”며 딕훼밀리의 신곡 방향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했다.  “딕훼밀리의 ‘작별’ ‘또 만나요’ ‘나는 못난이’ ‘흰구름 먹구름’ 공통된 노래 색깔은 순수, 아름다움, 부끄러움, 아쉬움. 이런 단어들 표현될 수 있게 서정적이고 동요틱한 멜로디 요소가 많이 있다. 대중들에게 히트되는 노래들은 동요의 어떤 멜로디와 비슷한 흐름이 많다. 단순하고 알아듣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쉬운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예술은 순수하고 정서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art 3 : 음악과 복고, 아련한 정서를 감싸다 ▲ 황성택 MID문화예술원 원장. [사진=나병필 기자] 나팔바지에 통기타 들고 있는 모습이 로망이었던 70-80문화. 그런 ‘통기타’ 문화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황 원장은 “모든 문화 형태가 주기적이다. 10년 간격으로 20년 간격으로 바뀌는 패턴 현상이 있다. 20~30년 전 유행했던 통기타 문화가 다시 사랑받고 있듯이. 통기타는 예전에 나이 든 사람들 문화라는 게 있었지만, 지금은 통기타 제조하는 회사가 대박 날 정도로 통기타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주문량이 생산량 못 따라간다고 하더라”며 문화의 주기적 유행 흐름을 얘기했다.“지금 대중음악도 ‘나는 가수다’에서 알 수 있듯이 잊혔던, 묻혔던 노래들이 재조명되는 것은 음악적으로도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이다. 옛날에도 지금의 세대들하고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예전 음악도 대중들에게 사랑받기 충분한 음악적 요소들이 많이 있으니까.”7080 당시 잘 나갔던 가수들을 알아보기 위한 잣대는 나이트클럽 출연횟수. 딕훼밀리는 어땠을까. “MBC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종종 딕훼밀리, 펄시스터즈 거론된다고 하는데 그 당시 ‘딕훼밀리 공연 보러 가자’고 해서 정말 인기 많았다. 하루에 여덟, 아홉 군데 나이트클럽 가고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6시에 마치고. 비교하자면 소위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다는 질문에 “당시에는 공통적으로 돈의 개념이 없었다. 한 달에 돈 받아서 저금하고 재투자할 생각을 못했다. 대부분 가수들이 그랬다. 돈 생기면 악기 사고, 누가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주고. 그렇게 순수했다니깐”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예전을 추억할 수 있고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노래가 있는 ‘딕 훼밀리 Live 70-80’은 황 원장이 2005년도에 시작해서 2010년도까지 양재동에서 운영하다가 지금은 역삼동 쪽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라이브 카페는 나를 기억해주고 음악 좋아해 주는 분들 그리고 가까운 지인 분들과 함께 음악 활동이 어우러지는 공간”임을 명시했다.■ 공연은 달콤한 나의 인생 황성택 원장은 올 한해도 음악으로 이어진 생활로 꽉 차 있다. 음악 지식과 재능을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 몇 년 전부터 구상한 문화예술원이 단순한 꿈과 구상이 아닌 현실이 돼서 1기 신입생 맞을 준비를 하고 있고 또 가을 시즌쯤 딕훼밀리의 4집 앨범도 나올 예정이다.   ▲  황성택 MID문화예술원 원장 [사진=나병필 기자]“내가 살아 움직이고 활동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공연이다. 주변 사람들과 같이 어우러져서 공연하는 게 재미있다. 공연 현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겁다”는 그는 MID문화예술원과 라이브카페는 그가 음악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창구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황성택 원장의 2012년 목표를 들어봤다.“하반기 새 앨범 내는 거에 주력할 것이고 당장 계획은 MID 명실상부하게 국내 최초, 최대 프로그램 가지고 원우들에게 어떤 음악적인 자아 발견 통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예술원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는 간단 명료한 대답을 직구스타일로 던지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더 나아가 배운 사람이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삶을 그리고 있는 황성택 원장의 진정성과 옹골진 삶의 철학이 문화예술원의 발전과 또 곧 발매될 새 앨범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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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08
  • 미리에셋증권 조웅기·변재상 각자대표이사 체제로
    (뉴스투데이=유병희 기자) 미래에셋증권이 6일 변재상(사진) 리테일사업부 대표를 대표이사로 내정했다.이에 따라, 미래에셋증권은 오는 5월 주주총회 의결을 거치면 도매, IB, 트레이딩 부문 조웅기 대표이사와 소매(리테일), 경영서비스 부문의 변재상 대표이사의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된다.변재상 대표이사 내정자는 동부증권,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을 거쳐 2000년 미래에셋증권 입사 이후 채권본부장, 홍보담당 겸 HR본부장, 경영서비스부문 대표를 역임했다.한편, 사의를 밝힌 김 신 대표이사는 이날 공식 사임했다고 미래에셋증권은 공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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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06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 유중아트센터 정승우 대표 "대중과 작가 위한 예술 메카 만들겠다"
      ▲ 정승우 유중아트센터 대표. [사진=나병필 기자] (뉴스투데이=오소희 기자) 예술과 사회, 예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매개체 역할과 이 시대 예술을 북돋우는 문화예술진흥 공간.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유중아트센터다. 관객과 예술인과 소통하는 복합 문화예술의 장으로 지난해 11월 1일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아트센터 1층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 드 유중(cafe de ujung)'에 들어서면 향긋한 편백나무 향과 진한 커피향이 어우러져 묘한 편안함을 선사했다. 이 곳에서 지난 10일 유중아트센터의 운영자이자 유중재단 이사장인 정승우 대표를 만나 대중과 작가와의 예술적 교감을 시도하고 있는 유중아트센터에 대해 이야기를 향기롭게 나눴다.지난해 3월 유중재단을 설립한 정승우 대표는 자신을 소개하기에 앞서 재단 설립 모토를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유중재단의 모토는 지(知) 덕(德) 체(體) 삼위일체의 품격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유중재단이 지, 유중아트센터가 덕, 카페 드 유중이 체의 역할을 각각 담당하고 있단다. “즉 유중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카페와 갤러리, 아트홀 등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서 복합적으로 융화되어 함께 존재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의미가 더해집니다."정 대표는 주요 사업으로 매년 각 덕목에서 우수함을 인정받은 인재를 선정해 지원하고, 우리나라 예술 문화 발전을 위해 문화사업지원을 시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균형있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유중아트센터 1층에 위치한 '카페 드 유중.' [사진=나병필 기자] "유중아트센터가 다른 곳과 차별화된 점은 1층에 위치한 카페 드 유중에서 전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3층 미술과 음악이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카페에 들렸던 고객들도 자연스레 관람객이 되어 돌아가죠."카페 드 유중은 세계 최초의 삼림욕 유기농 카페다. 단순히 음료와 음식을 판매하는 곳을 넘어서 커피와 문화 그리고 쉼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편백나무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휴식의 편안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특히 카페 공간에는 현재 월 프로젝트(Wall Project) 일환으로 사진작가 김 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아트센터 3층에 위치한 갤러리의 모습도 무척 궁금해졌다.카페에서 나와 오른쪽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면 2, 3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나온다. 2층으로 올라가자 목재로 만들어진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연주공간 유중아트홀이 눈에 들어왔다. ▲ 2층에 위치한 유중아트홀(왼쪽), 뮤직스튜디오. [사진=나병필 기자] "제대로 된 연주홀을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 제작된 기성 재료를 배제했어요. 가격에 비해 재질의 질이 낮고 소리를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죠. 어쿠스틱 효과를 높이기 위해 최고급 소재의 목재를 사용해 직접 목공팀과 모든 작업을 진행했어요. 이 때문에 아트홀 크기도 첫 설계 때보다 많이 축소했답니다. 또 삼림욕 기계를 설치해 삼림욕을 즐기며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죠." 유중아트홀은 198cm²(60평) 규모의 공연장과 다양한 크기의 연습실을 갖추고 있다. 이 곳에서 연주자들이 다양한 장르와 악기를 아우르며 그들의 기술과 감성을 연마하고 연주하는데 있어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또한 유망 연주자 초청 음악회와 프리콘서트를 통해 음악 유망주들에게 무대 경험을 쌓고 그들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관객들에게는 다양하고도 수준 높은 연주회를 선보인다고 한다. ▲ 유키 구라모토가 연습했던 피아노. [사진=나병필 기자] 유중아트홀 옆에는 뮤직스튜디오가 위치해 있다. 약 264cm²(80평) 공간에 체임버 연습실과 그랜드피아노 연습실, 업라이트피아노 연습실로 구성되어 음악가나 단체의 연습공간으로 지원되고 있다. 정 대표는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한 신진 작가도 활발히 육성하고 있다고 했다.“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가장 현실적 고충은 바로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해 예술가의 꿈을 접는 경우가 많아요. 유중 아트센터의 창작스튜디오가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예술가들의 꿈을 지켜주고, 키워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정 대표는 "전시회에 자주 가는데,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훌륭한 그림임에도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작품들을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깝더라구요. 그래서 순수한 지원을 통해 예술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라며 “저희 아트센터에 창작스튜디오를 마련해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하고 전시회와 초청 프로그램도 진행해 앞으로 넓은 영역에서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 3층에 위치한 신진 작가들의 창작스튜디오. [사진=나병필 기자] 실제 창작스튜디오에서 작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창작스튜디오는 231cm²(70평) 공간에 6개의 스튜디오와 커뮤니티룸, 주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튜디오 하나가 평균 26.4cm²(8평)에서 142.9cm²(13평) 규모라고 한다.1, 2차의 선발과 면접을 통해 공정하게 선정된 6명의 신진작가들에게 자유로운 작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1년간 무료로 빌려주고 있었다. ▲ 전강옥 작가(위), 중력, 삐딱하게 서 있기 전시회 . [사진=나병필 기자] 유중갤러리에서는 현재 전강옥 작가의 '중력, 삐딱하게 서있기'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추락의 물리적 위험이라는 관점에서 중력의 가장 스펙터클한 효과들을 시각화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강옥 작가의 작품은 이달 12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이 많은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정 대표는 "장학재단 일이라는 것이 솔직히 말하면 많이 힘든 일이죠. 재단을 설립하는데 있어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하지만 아트센터를 찾아주신 관객분들이나 작가분들이 '수고 많으시다, 감사하다'고 할 때마다 보람되고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유중아트센터의 목표가 뭘지 궁금했다."예술의 전당처럼 큰 홀을 가진 뮤직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실제로 지금 호텔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 곳을 리뉴얼해 뮤직캠프나 해외 뮤직페스티벌을 개최할 생각이에요."누구나 쉽고 부담없이 둘러보며 문화의 정취를 느끼고, 관객과 문화예술을 이어주고 소통할 수 있는 유중 아트센터.센터 곳곳에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편백나무 향처럼 유중아트센터가 아름다운 예술향을 널리 퍼뜨리며 문화를 사랑하는 대중과 창작에 목말라하는 신진 작가들을 위한 문화예술의 메카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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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11
  • [뉴스투데이 토킹어바웃!] 우연이 세계캐리커처협회 한국지부장 "불모지에 캐리커처 큰 획 긋겠다"
    ▲ 우연이 아티스트 캐리커처 by 로린번슨  [사진=갤러리WOO] (뉴스투데이=오소희 기자) 캐리커처(caricature). 한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을 단순하게, 또는 과장되게 이미지화해 그린 예술장르이다. 익숙하게 들어봤을 법하지만 그렇다고 콕 집어서 쉽게 '이것이다'라고 명쾌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장르이기도 하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캐리커처를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캐리커처 아티스트 우연이이다.캐리커처는 사람과 직접 교류하는 예술이다 ▲ 캐리커처 작가 우연이. [사진=갤러리WOO]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캐리커처를 할 수 없어요." 연말 분위기로 가득했던 지난달 하순 서울 합정동 골목길에 위치한 캐리커처 갤러리 카페 '갤러리 WOO'에서 국제 캐리커처협회(ISCA) 한국 지부장이자, '펀(FUN) 캐리커처' 대표인 우연이 아티스트와 유쾌한 데이트가 시작됐다."캐리커처는 실존했었거나 실존하고 있는 한 사람 또는 한 동물의 특징을 이미지화 시켜 작가의 의도대로 변형시키는 것이예요. 그림을 보고 그 모델의 특징이 잘 나와있으면 잘 된 캐리커처죠."캐리커처는 얼굴을 그리지 않고 몸만 그려도 그 사람인줄 알 수 있듯이 특징적인 것을 이끌어 내는 그림이다."회화나 만화는 혼자 상상으로 그릴 수 있지만, 캐리커처는 사람을 관찰하고, 작가의 생각을 담아 변형시켜 그려야 되니까 대상과 직·간접적으로 교류하는 예술예요. 그래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캐리커처를 그릴 수가 없어요."세계서 가장 빠르게 잘 그리는 캐리커처 아티스트우연이는 국제 캐리커처 협회(ISCA) 정규 컨벤션 세계 캐리커처 대회 2010 LasVegas(미국), 2011 Tampa(프랑스) Speed Competiotion 부문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다."캐리커처 컨벤션 종목은 라이브 부분과 작품 퀄리티 경쟁 부문, 스튜디오 부문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가 참가한 라이브 스피드 부분은 말 그대로 5분이란 정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이 그리느냐가 관건이죠. 그렇다고 무작정 빨리 그리는 건 아니고요, 그 중에서 닮지 않은 것과 미완성된 것들은 세계 유명 배심원들의 판단하에 제외시키고 눈, 코, 입, 목선까지 그려야 인정되어요. 2010년에는 21장을, 2011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20장을 그렸지만 대상을 받았어요."배낭여행서 우연히 발견한 인생 터닝포인트"음...캐리커처를 접한지 벌써 10년째네요. 그 전엔 유명 백화점에서 매장 디스플레이 담당하는 VMD로 5년정도 일했었죠. 그런데 VMD생활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어요. 잦은 야근으로 몸이 좋지 않아 6년차때 회사를 그만두고 요양차 연고도 없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로 무작정 떠났어요." 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한 그가 캐리커처 아티스트로 변신한 이유다. ▲ 우연이 아티스트가 2011 유럽 캐리커처 컨벤션에 출품한 작품 [사진=갤러리 WOO] "미국으로 건너가 여행학을 전공하면서 많은 배낭여행을 다녔어요. 그러던 중 세계적인 테마파크 '씨월드'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우연하게 거기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라이브 캐리커처 화가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평생 미술을 했는데 어쩜 나보다 더 빠르게 잘 그릴까 생각했어요. 그 순간 나도 잘 해보고 싶다 생각했죠."그때부터 3년간 캐리커처에 푹 빠져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펀(FUN) 캐리커처' 회사를 설립하고 작가들을 양성했다."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작가들을 키우고, 회사를 차렸어요. 그리고 몇 년뒤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미대생부터 일반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오더라구요. 그런데 캐리커처는 일반인이나 미술학도나 배우는 과정이 같아요. 캐리커처는 특별한 트레이닝을 받아야 그릴 수 있죠. 그러다 보니 그림 좀 그렸다는 미대생들도 1년 정도를 헤매해다 겨우 졸업해서 나갈 정도였어요."그에게 라이브 캐리커처를 배우는 제자들이 꽤 많다. 기업, 문화센터, 홍익대 대학원 강좌도 나간단다."기업인들에게도 캐리커처 강좌를 했어요. 신입사원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교류하는 강좌로 많은 회사 교육에 초대를 받았고, 임직원들에게는 이미 경직된 사고에 마음을 열게하는 새로운 자극제로 캐리커처 강의를 했습니다. 캐리커처는 닫혀있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하는 빠른 방법이거든요. 처음엔 별로 흥미를 못 느끼시는 분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재밌어 하시더라구요. 경계심도 없어지고...그분들이 아무래도 높은 위치에 있으시고 사회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예술 매체를 통해 사람과 교류하는 방법을 나눈다는게 너무 뿌듯하더라구요."캐리커처를 대중화시키려는 열정이 남달랐다. "또 문화센터나 홍익대 대학원 강좌도 나가요. 지금 우리나라에는 캐리커처 학과가 없고, 사설 교육도 없거든요. 특히 홍익대는 예술 경영 대학원 학생들에게 수업을 해요. 예술이 경영과 매치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기 때문에 굉장한 의미가 있죠."   ▲ 우연이 아티스트가 2011 유럽 캐리커처 컨벤션에 출품한 작품 (아래, 위 사진) [사진=갤러리 WOO] 펜 하나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대중과 소통, 봉사, 전시'펜 하나만 가지고 나가도 어디서나 봉사할 수 있어요."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3~4년 하였고, 국내 봉사는 올해부터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봉사활동은 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할 수 있어요. 또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 주고, 캐리커처를 그리는 즐거움 때문에 봉사활동을 다녀요. 아마 내 생각에 풍경화나 정물화보다는 캐리커처가 훨씬 사람들에게 더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거창하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신문 배달부든 고위 관직자든 생활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과 교류하는 게 봉사라고 생각한다는 그다."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지위를 막론하고 사람간의 진실된 교류 같은 것이 봉사라고 생각해요. 이상한 것은 내가 봉사하러 갔는데 나에게 100배 이상이 돌아오더라구요. 여행 다닐 때나 밥 먹을때나 내가 옆에 있는 사람을 그려주면 밥값을 대신 내주거나 관광을 시켜주겠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한번은 갑작스레 전시회를 연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어느 곳에서든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캐리커처 첫획' 긋고 싶다 ▲ 갤러리 WOO. "우리나라는 캐리커처 불모지였지만 지금은 많이 발전해서 캐리커처의 퀄리티가 높아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대중들에게 제대로된 이미지가 박히진 않고 있어요. 캐리커처하면 놀이동산이나 축제 행사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만화같은 미술로 생각하고 계시더라구요. 전 그런 이미지 이상의 다양함을 알리고 싶어요."캐리커처에 대한 우리나라 대중들의 굳어진 인식에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한편, 그는 대중들에게 캐리커처가 또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제대로된 큰 전시를 하고 싶어요. 세계 유명한 작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라이브 시연을 하면서 강의도 듣고 대중들에게 캐리커처 교육을 진행하고 싶어요. 충분히 가능할 것 같고요."그는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살려 앞으로 할 일이 많다면서 포부를 밝혔다."아마 큰 전시를 하게 된다면 올해나 내년에 진행될 것 같아요. 오랫동안 기다렸고 또 계획했던 일이니까요. 한국에서는 제가 하는 일이 처음이 많아요.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힘든게 많지만 의미있는 일이예요. 하얀 눈 위에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첫 발자국을 찍으며 역사가 되는 즐거움이 좋거든요.""캐리커처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오락적이예요. 대중과 함꼐하는 예술 시대와 함께하는 예술 말이예요. 공감가지 않는 것은 웃을 수가 없어요. 캐리커처를 하면서 제일 좋은 건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한다는 거예요. 별별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껴요. 정말 행복해요."캐리커처를 만나 인생을 더욱 재미있고 유쾌하게 살 수 있었고,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의 파랑새를 전달해 주는 마술사가 바로 우연이 아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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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04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 '개그맨 CEO' 벌집삼겹살 이승환 대표
    ▲ 서울 당산동 '도개걸육' 매장 앞에서 이승환 대표. [사진=나병필 기자] (뉴스투데이=이진우 기자) 벌써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일까 대중들은 더 이상 그를 ‘개그맨’이라 부르지 않고 ‘개그맨 출신’이라는 과거 꼬리표를 붙여 아는 체 한다.그럴만한게 그는 공식적인 개그 무대에 거의 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신문이나 인터넷 포털을 장식하는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단골 라벨은 ‘CEO’, ‘사업가’, ‘매출 200억’, ‘성공 창업’ 등 개그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들 일색이다.이 사람은 다름아닌 개그맨 출신에 ‘벌집삼겹살’로 유명한 이승환 대표(37). 혹시 모르는 이가 있다면, 바로 개그콘서트를 대표하는 코너였던 ‘갈갈이 삼형제’의 느끼남이다.개그맨? 이젠 200억 매출 벌집삼겹살 CEO!만나자 말자 단도직입적으로 최근 벌집삼겹살이 일본에 진출한 사업 얘기부터 물었다.“2002년 은퇴 뒤 2004년에 시작한 외식사업이 벌써 햇수로 8년이네요. 지금 벌집삼겹살 가맹매장이 200개 이상이고, 지난 6월에 선보인 멀티 브랜드 ‘도개걸육’도 벌써 10개에 이릅니다. 일본 진출은 요즘 한류가 워낙 대세여서 삼겹살 식문화를 전하고 싶었어요. 나고야에 벌집삼겹살 매장이 진출해 있고, 현지 나고야TV에서도 사흘간 취재해 갔어요. 연예인 출신 외식업 CEO가 일본에 와서 사업한다는게 신기했나 봐요.” ▲ 벌집삼겹살 일본 나고야 매장과 직원들. [사진=벌집삼겹살] -일본에서도 벌집삼겹살이 잘 통할까“일본에 단순히 음식만 팔려고 간 건 아니다. K팝 처럼 서민이나 삼성 이건희 같은 대기업 회장이나 신분, 나이, 남녀노소 구분없이 즐겨 먹으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한국의 식문화를 소개하고 싶어요. 일본매장에서일본인들이 와서 우리 창업경영을 배우고 간다. 한국처럼 저렴하게 온가족이 먹을 수 있는 음식문화를 일본에 전수하고 싶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요?”여기서 잠깐, 아직도 ‘느끼남’ 이승환이 누군지 모르겠다구요?‘갈갈이 삼형제’에서 느끼남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느끼한 눈웃음과 빠다(버터) 발린 듯한 미끌미끌한 말투로 자칭타칭 ‘여성팬 신드롬’을 일으켰다. ▲ 갈갈이 삼형제.(왼쪽부터 이승환, 박준형, 정종철) [사진=KBS 화면캡처] 당시 ‘강판 앞니’로 무를 빡빡 갈아대던 박준형, 테트리스 등 온갖 전자오락게임 등 기계음을 성대모사하던 ‘옥동자’ 정종철과 함께 이승환은 ‘갈갈이 삼형제’로 개그 천하를 평정하며 정상의 인기를 한껏 구가했다.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으면 맛의 효용성이 떨어지듯 ‘갈갈이 삼형제’도 롱런의 ‘무한’ 보증수표일 수는 없었다.‘갈갈이 삼형제’는 2002년 9월 첫 주에 마지막 녹화를 끝으로 총 198회에 장장 4년 이상의 장수방송을 마감했다. 박준형, 정종철은 다른 개그 코너를 선보이며 건재를 과시했지만, 이승환은 2002년 홀연히 ‘갈갈이 삼형제’ 코너와 함께 TV 화면에서 사라졌다.‘박수 치는데 왜 떠나느냐’는 주위의 의아스런 눈길과 만류를 뒤로 한 채 느끼남 이승환은 개그 성공이 아닌 ‘다른 성공’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후배 연예인 창업 문의하면 "현장부터 익히고, 남탓 하지 말라" 조언다시 인터뷰로 돌아와서.-요즘 사업에만 전념하는지“일을 하는데 ‘333 룰’에 따른다. 30% 회사, 30% 외부강의, 30% 방송출연. 나머지는 당연히 사적인 시간이고. 최근 EBS에서 창업 프로그램 ‘브레인 빅뱅’ 메인 심사위원으로, 티브로드에선 ‘손을 잡아요’를 5년째 MC 맡고 있는 등 2~3개 방송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강의는 올들어 정부기관부터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등 대학과 대기업, 수능생까지 주 2~3회, 통틀어 100회 가량 한 것 같다.”-벌집삼겹살이 성공하면서 주위 동료 후배들이 자문과 협조를 많이 요청하지 않나“후배 개그맨이나 가수들이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동료나 후배 연예인들이 많이 창업한다. 실질적 도움도 많이 주지만, 문제는 연예인들은 돈 벌겠다는 의욕만 앞서고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탁상공론식 창업을 생각하지 말고,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등 창업에 필요한 물품구입부터 현장에 직접 가서 경험해 보라고 조언해 준다. 또 꼭 빠트리지 않는 말로 장사 안되는 이유를 남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일러준다. 장사가 잘 되고 안되고는 결국 자기 노력과 수완에 달려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늘 강조한다.”-연예인은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일반인은 생각하는데 왜 창업전선에 나서나"개그맨의 경우 사실 방송출연만으로 생계유지하기 힘들다. 항상 시청자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 몇분짜리 코너 만들기 위해 일주일 꼬박 걸려 매달리지만 한 번 출연료는 30만원 가량이다. 일도 힘들고 페이(pay)는 적으니 당연히 부업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겠는가.“ ▲ [사진=나병필 기자] 이쯤에서 이승환 대표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첫째는 사업초기 실패담, 둘째는 최근 동료나 후배들의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평.“물론 처음부터 승승장구하지 못했다. 오히려 여러 번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어린이 교육교재 개발 및 판매, 어린이 뮤지컬 등 의욕있게 밀어부쳤지만 운명의 여신은 나에게 성공의 축배를 따라주지 않았다. 개그 인기로 번 돈으로 장만한 집까지 사업 빚 때문에 가압류 통보 받는 등 거의 자포자기 지경에 이르렀다.”하지만 이승환은 포기하지 않았고, 아내가 애지중지했던 적금통장 해약금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벌집삼겹살 아이템을 기반으로 한 외식사업에 재도전, 8년 가량의 땀방울을 흘린 끝에 창업성공 결실을 거둔 것이다.“요즘 개그콘서트도 종종 보는데...글쎄, 갈갈이 삼형제 하던 때가 좀더 편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시청자가 갈수록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발달해 개그 소재의 (수명)사이클이 빨라지고 있고. 인기 코너의 경우 이전에는 1년 정도 갈 프로그램인데 이제는 6개월밖에 못 채운다. 그만큼 후배들이 더 고군분투하고, 더 힘들 것 같아 안쓰러울 때가 많다.”정치풍자 개그 더 많아야...대신 차원 높게-얼마전 ‘애정남’ 최효종이 모 정치인으로부터 고발 당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정치 풍자가 발달한 나라가 발전한 나라라고 본다. 오히려 개그 장르가 사회 전반의 정치 풍자를 통해 대중을 일깨우고 경각심을 심어주고 문제의 당사자들에겐 위기감을 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 사회가 어렵고 힘들수록 개그는 더 탄력을 받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배들이 정치 개그를 더 많이 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다. 다만, 좀더 ‘고급스런’ 개그가 되었으면 좋겠다.” -향후 사업이나 연예활동 계획은“2012년에는 방송에서 이승환의 얼굴이 많이 보일수 있게 많은 활동을 할 생각이다. 사실 올해 박준형의 제의로 갈갈이 삼형제 기념공연을 추진했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 내년은 ‘갈갈이 3형제 해체 10년’이라 기념콘서트나 디너쇼 형태로 팬들에게 감사공연을 꼭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스탠딩 개그’에 관심이 많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재미있는 경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개그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 (무대에 자주 안 서서 현장감이 무뎌진게 아니냐는 돌발질문에) 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오히려 무대감각이 더 업(UP)된 것 같다. 강의는 라이브(live), 즉 생중계인데다 주입식 내용이 아닌 현장과 어우러진 애드립도 따른 무대여서 나만의 개그 파워는 더 세졌다고 자신한다(웃음).”내년 계획? 갈갈이 삼형제 기념공연!...죽기 전에 하고픈 일? 책 10권 쓰기!“사업 계획은 명확하다. 내년에 일본과 국내의 벌집삼겹살 매장을 50개, 멀티 브랜드 ‘도개걸육’ 매장 100개를 신규개설한다는 목표이다. 또한 동료 연예인들 창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창업스쿨 또는 아카데미를 개설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활동도 계획 중이다. 아울러 사회공헌 활동에도 주력, 동료 개그맨과 함께 무의탁노인, 다문화가정, 불우청소년을 위한 ‘사랑의 삼겹살 봉사’ 프로그램과 봉사 공연, 캄보디아 출신 다문화가정의 고향방문 프로젝트도 진행할 계획이다.” ▲ 이달 중순 다문화가족과 함께 실시한 캄보디아 봉사활동 장면. [사진=벌집삼겹살] 끝으로 죽기 전에 하고픈 일이 뭐냐고 물으니 “책 10권 쓰는 것”이라는 즉답이 돌아왔다. 지난해 3월 첫 책 ‘벌집삼겹살 CEO 이승환의 사람부자 만들기’를 펴내 대충 3만부 팔았다고 귀뜸해 줬다. 현재 2권을 준비 중인데 벌집삼겹살 10년을 맞는 오는 2013년에 출간할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인기 개그맨 ‘느끼남’에서 벌집삼겹살 CEO로 변신한 이승환 대표.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인맥경영을 사업신조로 삼고 있는 그는 오늘도 아침 7시에 일어나 회사일, 방송 및 강의, 매장관리와 거래처 미팅 등 쉼새 없는 스케쥴을 소화하며 다음날 새벽 1, 2시가 되어서야 집 도어록의 버튼을 꾹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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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27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 임혁필의 재발견, 세바스찬에서 '샌드아티스트'로
    (뉴스투데이=백수원 기자) 중학교 때부터 미술학도를 꿈꿨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처럼 청주대 서양화과에 합격.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지만, 군 제대 후 겪은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유학을 가기에는 가정 형편 때문에, 취업하기에는 지방대라는 이유로 쉽지 않았다.그 와중에 학과에서 ‘웃긴다’는 얘기는 좀 들은 지라 우연히 본 개그맨 시험에 한 번에 척 붙는 ‘내 안의 끼’를 발견, 개그맨의 길로 들어섰다. 1997년 KBS 13기 공채 개그맨, ‘개그콘서트’에서 영국 귀족 순수혈통 ‘세바스찬 주니어 3세’로 나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혁필이 그다. ‘천박해 천박해 천박해’, ‘나가 있어’, ‘안드레~~~~’ 등 수많은 유행어를 탄생시킨 그는 개그에만 안주하지 않고 현재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서양화가로서 개인전, 단체전에 참여하거나 또 얼마 전에는 대리운전 사업가로도 변신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년 전부터 대학로에서 절찬리에 공연 중인 ‘펀타지쇼’ 연출자로서, 또한 공연에서 샌드 애니메이션을 하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선보였다.도화지에 꿈을 그려나가고 그 꿈이 채워지면 또다시 다른 꿈으로 채워가는 임혁필을 그의 꿈이 담긴 공연장에서 만났다. 임혁필이 연출 한다! 그리고 임혁필은 샌드아티스트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세바스찬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임혁필은 방송무대가 아닌 대학로 무대에서 직접 관객들을 만나고 있었다.그가 최초 연출을 맡은 넌버벌 퍼포먼스 형식의 공연 ‘펀타지쇼’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인 마술, 버블, 댄스, 마임 등을 통해 옴니버스 형식으로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전달하며 꾸준히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 정통개그를 해 온 임혁필이 이렇게 다양한 퍼포먼스를 기획하게 된 의도는 무엇일까. “10년 넘게 코미디를 했었고 ‘개그콘서트’ 연극무대도 많이 했었는데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어요. 마술, 버블 쇼 등 여러 행사장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을 한 무대에서 다 같이 볼 수 있게 했습니다”라고 공연 기획의도를 설명했다.어른들에게 유년의 향수를 그리고 아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새록새록 일깨워 줄 수 있도록 다양한 퍼포먼스가 담긴 ‘펀타지쇼’가 더 궁금해졌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누구보다도 동심 세계를 잘 알 수 있는 이점도 가지고 있을 터였다.“어렸을 때 다들 좋아했던 거예요. 어른이 돼가면서 ‘마술은 속임수야’ 그러든지 버블 옷에 묻으면 털어내기 바쁘고, 샌드애니메이션, 왜 예전에 ‘두껍아 두껍아’ 모래 가지고 놀았던 기억 있으시죠? 요즘에는 놀이터 모래 더럽다고 못 하게 하고. 어렸을 때 소중하게 그리고 재밌게 여기던 놀이가 나이 들면서 하찮게 여기는 것…. 그래서 동심을 자극하고 싶었어요.” 임혁필은 잃어버렸던 어른들의 동심도 깨우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럼 그의 아이들은 공연을 어떻게 볼까? “우리 애들이 5세, 8세인데 공연을 5번 정도 봤는데 대개 좋아해요. 그림자 쇼 같은 경우 따라 하기도 해요. 나는 우리 부모님께서 너무 바쁘셔서 매일 일하는 모습만 봐왔는데 내가 하는 일 같은 경우는 우리 아이들한테는 좋을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 혜택이 있지 않나 싶어요.(하하)”임혁필이 이번 ‘펀타지쇼’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샌드 애니메이션을 관객 앞에서 펼쳐 보이는 것도 공연의 묘미 중 하나다. 샌드 애니메이션이 어렵지 않았냐고 질문하자 “그리는 것을 오래 했기 때문에 영상 보면서 기본적으로 하기까지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다만, 재료 구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냥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닷가 모래는 아니에요. 모래 알갱이가 너무 두꺼워도 안 되고 너무 고와도 안 돼요. 모래도, 그리고 판도 구하기 어려웠는데 이래저래 시행착오를 거쳤죠.” 그럼 가장 근원적인 질문 하나, 왜 샌드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을까.“무대에 있었던 사람이자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 무대에서 그림을 접목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게 딱 나에게 맞는 거였죠.”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현명한 자신의 표현이었다. 스토리에 대해서는 “남녀의 일생을 얘기했어요. 둘이 만나고 아이를 낳고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점점 나이 드는 그런 내용이에요.” 특히나 임혁필은 인생과 샌드 애니메이션이 매우 닮아있는 점을 흥미로워했다.“샌드 애니메이션은 내가 그렸던 유화나 벽에 걸려놓은 그림과 달라요. 이것은 모래로 금세 그려지고 또 지워지고. 우리 인생이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한 게 아니듯이 이 장르가 인생과 닮아있다고 생각해서 인생에 대한 스토리를 작품으로 풀었죠.” 열정을 가지고 도전한 ‘펀타지쇼’는 1주년이 막 지났다. 첫 공연과 지금의 공연을 비교했을 때 많이 변한 것은 당연한 일. “다들 너무나 좋게 평가해주시고 ‘임혁필이 놀라운 모습도 있구나!’ 하시지만 아직 갈 길이 멀죠. 처음에 공연을 올렸을 때는 스토리 없이 마술, 버블, 샌드 애니메이션만 딱딱 보여줬는데 지금은 지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임혁필이 개그맨에서 공연 연출자로 탈바꿈하면서 그 공연은 끊임없이 변화와 진화를 거듭한다. 그런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그의 노력이 오픈런으로 1여 년 동안 공연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쇼 공연이기 때문에 마술, 버블을 넘어 더 새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줄 거예요. 그래서 ‘국내에도 이런 것이 있구나!’ 생각할 수 있게 알려주고 싶어요.” 포부를 밝히는 그의 눈빛이 진중하다. 임혁필은 개그맨이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아티스트다!“내가 해야지 그런 것보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임혁필이 서양화가에서 개그로 입문했을 때, 즉 진로를 바꿨을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뱉은 대답이었다.순수 미술보다 취업을 선택해야 할 즈음, 우연한 기회에 개그맨 시험에 한 번에 붙어서 ‘개그 천재’인줄 알고 그림보다 방송에 전념했지만 배고픈 무명시절을 거쳐야 했다.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엑스트라로 그리고 코미디 프로 중 사이드 코너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후배들이 먼저 뜨는 것을 봐야 했고 5~6년 동안 힘든 무명의 시간을 거친 것.그럼 임혁필이 처음 대학로 무대에 서게 된 건 언제일까.“‘갈갈이 패밀리’ 박준형 이런 친구들과 함께 우리끼리 해보자고 해서 대학로 공연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됐어요. 그러니깐 98년부터 대학로 공연 처음 했는데 진짜 소극장에서 갈고 닦았다고 해야 하나. 관객이 없어도 의상 갖춰지지 않아도 열악한 환경에서 했어요. 무대에 서고 싶었으니깐요.” ‘무대’에 서는 그날을 꿈꾸며 옥탑방에서 생활하고 신문 배달을 하며 열심히 살았을 그가 그려졌다.그렇게 무명 시절을 거치면서 ‘개그콘서트’에서 세바스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이름도 올리면서 소원은 이룬 듯했지만 임혁필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2010년 4월 개인전 ‘조연(Supporting actor)’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더 세컨드(The Second)’ 전을 열었으며 2011년 1월에는 '츄팝스타 전'에 참가해 '마징가제트'를 비롯한 '대장로봇' 시리즈를 전시했다.조연에 대한 콘셉트가 독특하게 와 닿았다. 임혁필의 주특기인 캐리커처와 ‘대장로봇’은 어떤 이유에서 그리는 것일까. “주연들만 알아주는 드~러운 세상”이라고 농담을 던지더니 “많은 사람들이 주연만 기억하잖아요. 톱스타가 되려면 조연들 그리고 스태프들이 만들어주는 건데 사회적 이슈는 주인공밖에 없어요. 마징가제트도 그렇고. 땅딸보는 아무도 기억 못 하지요. 그래서 내 작품에서는 그런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어서 첫 개인전을 ‘더 세컨드’라고 했죠”라며 첫 개인전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만화에서 착안한 ‘대장로봇’ 같은 경우도 ‘조연’과 같은 맥락이에요. 2인자들 사실 그런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마징가제트도 장동건도 다 뜨는 거죠. 앞으로 이렇게 주연을 빛내주는 스태프와 관련해서 그릴 거에요”라고 앞으로 그릴 그림에 대해 살짝 귀띔해줬다.캐리커처 또한 임혁필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그는 개그맨들은 얼굴에 임팩트가 있기 때문에 꼭 그런 얼굴들은 그려서 남겨두고 싶다고 전했다.지난 10월 ‘해골전시회’에서 자화상을 전시하기도 했던 그는 양악수술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냈다. “그때는 해골이 주제인데 내가 양악수술 했잖아요. 아직도 핀이 박혀있는데 그때 병원에 얘기해서 핀 박힌 엑스레이를(내 해골이죠) 그림 정 가운데 둬서 전시했죠.”이렇게 개그와 작품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임혁필. 개그와 미술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창작이에요. 개그 코너 자체는 본인의 아이디어와 생각이 많이 들어가요. 그런 창작들을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그림 또한 혼자 아이디어 내고 혼자 작업하면서 나중에 작품으로 보여주는 거죠.”이 땅에서 개그맨으로 살아간다는 것 임혁필은 개그맨, 서양화가, 연출자, 대리사업가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지만 많은 수식어 중 가장 불리고 싶은 수식어를 물었더니 단 0.01초의 망설임 없이 “개그맨이죠”라는 답변이 들려온다.“개그맨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도 ‘개그맨 임혁필이 그림 그리네. 사업해도 ’개그맨 임혁필이 사업하네’ 등 개그맨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원초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개그맨 얘기에 유세윤의 아이디어를 존경한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개그맨은 목숨 걸고 ‘개그 콘서트’만 하려고 해서 획일화 돼 있어요. 만약 개그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정말 개그맨들은 실업자가 되는 거죠. 세윤이 같은 경우는 뭐가 없어져도 살아남아요. 개그맨들 프로그램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자기계발이 중요합니다.”그럼 개그맨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개그맨들이 잘살아야 할 것 같아요. 웃기고 안 웃기고는 두 번째 문제인 거 같습니다. 좋은 프로그램 만나서 제대로 된 코너 걸리면 알려지는 거죠. 그런데 개그맨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한없이 우스워져요. 영화배우랑 가수가 만약 대마초를 하면 ‘창작의 고통이다’, ‘예술 하니깐 허용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는데 개그맨들은 그런 행동 하면 대개 우습게 보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는 거죠. 좋은 아이디어로 좋은 프로그램 만나면 알려질 수 있으니 더 중요한 건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요.” 임혁필은 인터뷰 내내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센스 있게 자신의 일과 인생을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했다. 그런 솔직함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최근 불거진 국회의원이 최효종을 고소한 사건에 대해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럼 달인은 모든 전국 달인들에게 고소당해야 했고 세바스찬은 전국 귀족에게 고소당해야 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과 관련해 그는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은 바른 생각이 있는 게 중요해요. 그렇다고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반 분들이 얘기하는 것보다는 대개 다르더라고요. 물론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지만, 어떤 스타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스타를 통해서 ‘저 사람이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반영되는 게 많거든요. 예를 들면 예전에 봉사 활동할 때 김현중이 왔는데 ‘그 친구가 연탄배달 한다’ 그러니깐 팬들이 같이 따라와서 했어요.” 따라서 얼굴이 알려진 사람은 영향력이 커서 행동도 잘해야 한다는 게 임혁필의 기조이다.임혁필, 아직도 꿈을 그린다...그리고 새로운 꿈을 만든다다양한 분야에서 동분서주 일하고 있는 임혁필을 이제 개그 방송에서도 만날 수 있다.“요즘 가요나 드라마도 계층마다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개그콘서트’는 좋아하는 층이 어리니깐 점점 나이 든 사람들은 빠져야 해요. 코미디도 중·장년층이 볼 수 있는 다양성이 있어야 하는데”라며 종합편성채널 채널A ‘개그무대’에 선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최양략 남희석 심현섭 선배님들과 어제 첫 녹화를 했는데 재미있었고, 오랜만에 코미디 프로 하는 게 좋았어요.” 예전의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를 그리워 한 사람들이라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좋아할 프로그램이란다.연예계 책 출판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미술 관련 책 출간 욕심은 없을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림에 관련된 책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내고 싶어요. 어른들이 봐야 할 책들이 많거든요. 어른을 위한 동화는 내가 구상하고 있는 거에요. 페이지가 두 쪽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에는 ‘아빠는 친구들하고 싸우지 말라고 하세요.’ 다른 쪽에는 아빠가 주차 시비로 싸우고 있는 거죠. 책장을 넘기면 또 한 쪽에는 ‘아빠는 우리한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하는데 옆쪽에는 아빠는 늦게 들어온다는 그런 내용이죠.”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그림이지만 그런 것들을 하고 싶단다. “미술 이론은 싫고 내가 직접 그리는 동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개그맨다운 참신한 발상이 돋보이는 그의 책이 빨리 보고 싶어진다.개그도 그림도 대리사업도 극장사업도 너무 행복하지만, 그는 아빠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가고 싶은 게 목표란다. 이어 두 딸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한다.“아빠가 공연해서 문화적 혜택이 있지만, 반면 주말에 공연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주말에 아빠랑 함께 놀 때 못 놀아주니깐 정작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거죠. 이러니깐 좋은 아빠 같죠. 하하.”공연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면 쉬고 싶다는 그였지만, 임혁필의 가장 큰 꿈은 1년간 오프런으로 공연된 ‘펀타지쇼’가 더 잘돼서 해외진출도 해보고 싶단다. 또 공연을 통해서 도움이 필요로 한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꿈을 펼쳐 보인다.마지막으로 37세에 자신의 꿈을 알았다는 그가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했다.“살다 보니깐 살아진 것 같아요. 그냥 살아진 삶하고 내가 목표 정하고 꿈꾸는 삶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죠. ‘꿈꾸는 다락방’을 3년 전부터 읽고 꿈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게 됐어요. 거의 40대 정도에 꿈을 가지게 됐는데 중, 고등학생 때 꿈을 가지게 되면 한 20여년 간 되뇌다 보면 꿈이 실현되지 않을까요. 책을 좀 읽어보니 일기나 자기의 계획서대로 된 사람이 많아요. 예를 들면 축구선수 박지성도 일기를 통해 ‘내가 몇 살 때는 뭐 할 거고, 또 몇 살 때는 뭐 할 거고’ 등 계획대로 차곡차곡 꿈을 실현한 사람 중 한 사람이죠. 20대 대학생들이 좌절만 하지 말고 좀 더 진취적이고 좋은 생각들을 갖고 목표를 정해서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요.”[사진=컬쳐게이트, 개그맨 임혁필 블로그 (http://blog.naver.com/feel7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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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09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 최현우 드라마 같은 ‘매직 스토리’
    ▲ 최현우 [사진=백수원 기자] (뉴스투데이=백수원 기자) 어릴 때부터 마술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 있었다. 대학 수능시험이 끝난 뒤 우리나라 제1호 프로마술사 이흥선 선생(작고)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마술을 배우며 꿈을 키워갔지만, 그 즈음에 집에서는 쫓겨났다. 초기엔 그랬다. 부모님의 반대로 4~5년 정도 밖에서 전전하다 나라밖 영국에서 열린 마술대회 우승 소식을 접한 부모님으로부터 '우리 아들이 뭔가 하고는 있구나' 인정받고야 다시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스타 마술사 최현우이다.마술사 최현우는 카드마술로 대중들에게 당당히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렸으며 지금은 최초로 '멘탈 매직'에 도전하며 대중화에 더욱 힘쓰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 최현우는 마술 같은 '매직 스토리'를 풀어헤쳤다.소년, 마술을 만나다 "데이비드 카퍼필드 형님만 있는 줄 알았어요." 어린 눈망울에 마술을 신기해하다가 우리나라 제1호 프로마술사 이흥선 선생님의 마술을 보고 '한국에서도 저런 마술이 가능하구나!'라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마술 입문 결심을 했다는 최현우.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본격적으로 마술사 이흥선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기로 결심, 가출이 아닌 출가를 단행했다. "마술도 소림사 문화제도인지라 설거지, 청소 등 허드렛일부터 시작했어요. 당시 마술 세팅하는 것조차 못 보게 하셨어요. 워낙 보고 훔쳐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1년 정도 지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죠."소림사(?)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처음 배웠던 마술도 남달랐으리라. "하핫! 처음 마술요? 내 손에 동전 다섯 개 놓고 손을 폈는데 없어지는 거죠!"마술 종류에 따라, 훈련 연차에 따라 얼마나 '숙련되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지만 최현우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성격부터 변화시켜야 했다고 마음먹었다."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기 위해 껌을 지하철에서 팔기 시작했어요. 말을 해야 하니깐(당장 무대에 서야 하니까). 지하철 탈 때마다 '이런 이런 이유로 껌 좀 사주세요' 외치며 팔았어요. 6개월 정도 그랬어요." 이렇게 성격을 고치는데 2~3년 걸리고 나서야 무대 공포증을 훌훌 털어버렸다는 초보 마술사 최현우의 데뷔 무대는 어땠을까. "첫 공식 무대는 명지대학교 축제였어요. 망했죠. 비둘기가 나오다 말더라고요. 3명의 마술사가 30분을 10분씩 나눠서 했는데 1분 채우기도 너무 힘들었어요. 휴~."소년, 프로마술사가 되다최현우는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마술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재능이 없구나' 생각에 절망감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그런 재능이 없다고 빨리 생각한 게 재능이었다"며 반전  스토리를 전했다."타고난 게 아니라 재능이 없었기에 남들보다 더욱 노력하고 열심히 했어요. 손도 여자 손보다 더 작아요." 손을 내밀어 보이는데 정말 작았다.재능과 작은 손의 핸디캡은 오히려 최현우를 자극했다. 오히려 작은 손을 현란하게 구사하며 카드와 동전을 이용한 클로즈업 마술(테이블 마술)은 최현우를 마술사로 알리는데 기여했고, 마침내 스타 반열의 마술사로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국내 최초로 '멘탈 매직'을 선보인 것이다."멘탈매직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낯선 장르이지만 전 세계에선 유행이에요. 이제 우리나라에도 오기 시작한 거죠. 심리학을 기본으로 공부하고 인간 정보를 가지고 이 사람이 어떤 심리상태인지 분석하는 거죠. 미래예언까지도요."최현우는 비장의 멘탈 매직에 그랜드 일루션을 섞은 단독 콘서트 '최현우의 매직콘서트-셜록홈즈'를 지난 8~10월 서울, 전주, 창원 공연에서 선보였다. 11월 울산 공연도 앞두고 있다.일루션 마술은 사람이 나타났다, 분리됐다 하며 순간적 놀라움과 재미를 안겨 준다. 단점은 보고 난 뒤 돌아서면 공연에 대한 기억이 쉽게 사라진다는 것."예전의 '최현우의 매직콘서트-이상한 나라의 현우'에서는 멘탈매직만 구사했는데 '셜록홈즈' 공연은 그랜드 일루션과 적절하게 섞었는데 관객 반응이 좋더라고요. 멘탈매직이 사람의 마음을 맞춘다면 마음을 읽힌 상대방은 당연히 그 공연이 기억에 남지 않을까요? 집에 가서 다시 이야기꺼리가 될 수 있고요." 재미와 함께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공연을 위해 마술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계속 새롭게 혼합된 장르를 하고 싶다는 포부 또한 잊지 않는다.스토리가 있는 공연 콘셉트는 어떻게 정할지가 궁금해졌다. "마술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본인이 조명, 대사, 무대디자인, 스텝, 동선, 음악 등을 다 정해야 하기에 할 일이 많고 힘든 직업이에요. 아이디어는 평소에 책 안에서 찾으려고 해요. 잠자는 시간 빼고 전부 사물 가지고 계속 분석하는 게 습관이에요. 어떤 이야기 듣거나 음악 들으면 공연에 '맞겠나, 안 맞겠나' 늘 생각하면서 새로운 걸 생산하려고 노력해요."'노력하는' 마술사 최현우가 공연을 본 사람들이 얻어갔으면 하는 것에 대해 "마술이 비둘기 몇 마리 나오고 사람 분리되는 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다양하게 인간심리를 파고들 수 있는 등 상상력 뛰어넘기를 위해 많은 마술사가 노력하고 있구나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당부했다.나는 진화하는 마술사다 최현우는 아직 정의가 정해지지 않은 마술사로 자신을 정의 내린다. 만약 정해놓고 나면 그 길 밖에 못 간다고 정의 내리기에 난색을 표했다. 변화무쌍함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을 처음부터 철칙을 내세웠기 때문이다."마술 하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결심한 게 있어요. 데이비드 카퍼필드 자서전을 보면서 두 가지 벤치마킹 했죠. 첫째로 연미복 입지 않기, 둘째로 동물마술 하지 않기를 제 마술의 지표로 삼았어요." 그만큼 최현우는 사람들의 고정관념 속 마술을 탈피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특히 방송에 처음 나갔을 때 정장 입은 모습에 PD들이 반대를 많이 했다고 한다. 당시 마술사라 하면 연미복에 모자를 쓴 모습이었기에 깔끔한 정장조차도 마술사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 최현우 공연 포스터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꼭 인생의 전환점이 있게 마련이다. 마술사 최현우도 지금 되돌아봤을 때 가장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하는 시점이 있을까."물론 있죠. 군 제대를 2009년에 했어요. 제대하고 나서 SBS '놀라운 대회-스타킹' 프로그램에 한 19주 정도 나갔는데 그 전에 생각했던 마술, 생각했던 방향의 마술을 방송을 통해 가장 많이 펼쳤던 것 같아요. 그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지요."최현우의 대답을 듣고는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술사로 명성을 떨치는 인물이 으레 유명해지게 된 시점을 터닝포인트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그는 유명해지고 나서 그것도 최근 몇 년 전의 계기를 터닝포인트로 삼았다. "'스타킹'부터 마술 스타일을 바꿨어요. 옛날에는 휙 없애면 '자, 사라졌습니다'라고 했다면 '스타킹' 출연부터는 '나는 이제부터 핸드폰이 사라지게 할 예정입니다. 잘 지켜보세요'라고 미리 말해 줬어요. 어떤 마술이든 결과를 얘기하면 안 되는데 오히려 역행해서 먼저 결말을 얘기하고 시작하니 굉장히 임펙트 있어서 더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연기론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많이 바꿨어요."얘기 주제가 마술사의 연기론으로 옮겨갔다. 그는 "동전이 어떻게 사라지게 하는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시키면서 사라지게 하는지가 연기인데 연기는 개인차가 크고 그 차이를 깨닫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며 연기론을 강조했다. 최현우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이달에 1년 가량 공들여 집필한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마술사 최현우가 집필하는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비법! '러브 매직'이에요. 전에도 책을 쓴 적 있지만, 그때는 무대 마술 등 어려운 게 많았는데 이번 책에는 이런 것을 최소화하고 즉석에서 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영화관, 레스토랑 등 장소별로 나눠 상황에 맞는 마술들을 많이 준비했어요. 좀더 대중들이 쉽게 마술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참, 책 제목 아직 못 정했는데 대신 좀 정해주세요~"오늘도, 내일도 '뜻' 있는 마술을 펼친다스타 마술사 최현우를 보면서 마술의 꿈을 키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어린시절 최현우처럼 '매직'에 빠져들 듯 마술사 드림을 키워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젠 멘토의 입장이 된 최현우. 얼마 전 '스타킹'의 새로운 장기 프로젝트 '영광의 마술왕' 멘토는 어땠을까."하하하. 그거하고 '멘토해서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내가 선생이란 위치에 있지만, 항상 고민이 후배들에게 지금 현실을 깨우쳐주는 게 선생이 가져야 할 길인지, 그들에게 품고 있는 이상을 가지고 가라고 해야 할지…. 그리고 후배들이 '선생님'이라고 안 하면 좋겠어요. 마술은 독립적인 영역이거든요." 누가 선생님이라고 하는 순간, 그게 자신의 영역이 귀속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는 게 최현우의 생각이다. "내게 '선생님'이라고 하면 후배들이 내 마술 영향 받아서 창조적이지 못 할 수도 있어요. 그때 해 보고 어렵다고 생각했죠."그래도 최현우를 보면서 마술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은 없을까. "어린 친구들이 유명세 이런 것을 생각해서 마술사를 꿈꾸는 경우가 많아요. 마술이 좋아야 하는데 목적과 수단이 바뀌는 경우가 많죠. 좀 더 마술에 미쳐 있고 본질에 깊숙이 다가가는 노력이 있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최현우가 매순간 '진정성'으로 선보이는 마술이 보다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물어봤다. "우선 개인(마술사)의 노력이 첫 번째에요. 어디서든 보지 못했던 혹은 신기함을 가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게 의무이고, 두 번째는 사람들의 편향된 문화시각을 고쳐야 해요. 좀 더 자유로운 시선이 필요하죠. 로열티 뮤지컬만 성공하는 것을 예로 들면 쉽게 이해하겠죠."마술을 꿈꿨던 소년에서 스타 마술사가 된 최현우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국민 마술사가 되는 겁니다. 공연하면서 느끼는 게 인기나 인지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이 들면서 공연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계속 좋은 마술 보여주다 보면 그때는 '이 사람 때문에 우리나라 마술 많이 바뀌었구나'라고 인정해 주지 않을까요?!"예전에 미국 진출이 꿈이라고 말한 적 있던 최현우의 대답이 갑자기 생각나 그 질문을 다시 던졌다. No!라는 대답이 즉각 돌아왔다."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세계를 로그인하다' 인터뷰 책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손 회장이 영향받았던 멘토분들 이야기를 가지고 꾸민 책인데, 당시 손 회장도 한 교수 때문에 '꿈'과 '뜻' 차이를 아셨다는 내용 부분을 읽고 뭔가 '탁' 얻어맞는 기분이었어요. 구체적으로 '꿈'은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욕망이나 욕구이고, '뜻'은 그런 개인들의 욕구가 합쳐져서 범국가적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초월적인 것이라고 쓰여 있었거든요."언젠가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게 꿈이라고 했던 최현우는 라스베이거스는 개인적 욕망의 '꿈'일뿐, 라스베이거스를 가고자 하는 '뜻'을 세우고 가야 하는데 '왜 진작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고 한다.즉, 좋은 마술을 많이 보여줌으로써 한국 마술사의 이정표를 세우는 게 최현우의 '뜻'이 돼야 하고 라스베이거스는 그 '뜻'을 이루는 중간 과정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마술에 '뜻'을 세우며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마술사 최현우,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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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10
  • [뉴스투데이-토킹어바웃!] '몸짱스타' 조련사 정주호 트레이너(스타트레인 대표)
    ▲ 정주호 트레이너 [사진=나병필 기자] (뉴스투데이=백수원 기자) "어렸을 때는 깡마른 체구에 몸이 약해서 축구, 야구도 못하니 친구들 사이에서 완전 '왕따'였어요. 그런 외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소심함, 우울증으로 가득 찬 아이였죠."'몸짱 스타' 연예인 이병헌, 한채영 등의 보디라인을 만들어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 대표 스타 트레이너 정주호.현재 서울 강남에 있는 헬스클럽 '스타트레인'의 대표인 그가 회상하는 어릴 시절의 '정주호'는 지금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었다.지금의 다부지고 단단한 이른바 누구나 부러워하는 '몸짱'에서 10대 시절 젓가락 몸매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20여 년 동안 '운동'을 통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10월 하순께 '스타트레인'에서 정주호 트레이너와 '건강한 토크 어바웃'을 가졌다.#준비체조뒤돌아보면 힘들었던 어린 시절. 7살~8살 때 받은 상처는 20여 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약골' '왕따' 가난과 부모님의 이혼 등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돋은 또 다른 상처는  어린 소년을 세상과 고립시켰다. 그러면서 점점 운동이 눈에 들어왔고, 운동은 소년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 정주호 트레이너 과거 사진들 [사진=정주호씨 트위터]-앞서 언급한 대로 굉장한 약골이었다. 운동하게 된 계기와 운동으로 얻은 점이 있다면. "몸이 약했기 때문에 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운동도 못하니 내성적이고 소심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우울증까지. 그래서 서서히 운동하게 됐고 운동을 통해서 몸이 건강해졌다. 오랜 세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 몸이 좋아지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7살~8살 때 밖은 상처들을 20여 년이 지난 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내가 20여 년 동안 힘들게 가꿨던 건강한 몸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 내가 오랜 시간 고민하면서 터득한 운동법을 몸매에 고민 있는 분들에게 바로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어서 보람 있다."-자신의 몸이 변하면서 느낀 점은."19세, 20세 때 키 183㎝, 50㎏ 정도였는데 서서히 몸 좋아지고는 지방 3%, 130㎏을 유지했다. 바로 몸이 두 배 이상 커졌다는 건 엄청 좋아졌다는 건데도 난 몸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난 왜 이것밖에 안 되지, 허약하지?' 생각했었다. 내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던 건 어렸을 때 마음의 상처 때문에 내가 나를 편안하게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과거에 묶여 있어서 7~8세 적 상처가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나이와 육체 나이가 같지 못한 거 이 차이를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독서를 많이 했다. 좋은 책을 보면서 내 삶의 부분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내 마음의 깊이와 몸의 건강함 그 수평선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 정주호 트레이너 [사진=나병필 기자]#레벨-도전운동하면서 몸이 바뀌었고 또 운동으로 정주호 트레이너의 필모그래피도 차곡차곡 세우게 된다. 1999년 미스터 코리아 서울 헤비급 대표 출전, 2000년 파워리프팅 헤비급 코리아 챔피언을 수상했으며, 이후 JW 메리어트 호텔 수석 트레이너와 W 호텔 피트니스 클럽 매니저 등 10여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유명 트레이너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렇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을 때쯤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또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 프리선언을 한다.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며 새,롭,게!-안정적인 것을 거부하고 나왔는데. "호텔 일이 안정적인 건 맞다. 지금 하는 일과 호텔 일은 비교할 수 없지만, 예를 들면 예전에는 자동차 회사에 중역으로 있다가 지금은 개인택시 운전을 하는 거와 비슷하다. 회사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한 가치관을 표방할 수 없다. 운동하면서 갑자기 '내가 나만 위해서 살았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내 직업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기여하고 싶은 삶을 살고 싶어졌다. 안철수씨 '백신 연구'처럼. 그래서 회사 나오자마자 봉사활동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등 어르신들에게 운동을 가르쳐 드렸다. 지금도 극빈자들 몇 분 선정해서 기관마다 무료로 도와주도록 연계하거나 NGO 기관에서 후원하고 있는 곳에 동참해서 같이 참여도 하고 파트너가 돼서 이끌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워커힐과 컴패션이 함께한 '굿 윌 워킹(Good Will Walking)'에 '스타트레인'이 함께 해 참가비 전액을 컴패션에 기부했고, 내년에는 케냐 아이들을 돕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할 생각이다." ▲ '스타트레인' 로고 [사진=정주호씨 트위터] -헬스 트레이너, 스타 트레이너에 이어 이젠 헬스클럽 대표다. '스타트레인' 설립 계기가 있다면."이름 그대로 스타들 운동 가르치는 뜻이 있지만, 더 큰 뜻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스타 같은 몸을 만들 수 있고, 스타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목표를 부여하기 위해 설립하게 됐다." -'스타트레인'은 어떤 공간이 되고 싶나."쉽게 말하자면 디즈니랜드 같은 곳이 되고 싶다. 디즈니랜드가 어린아이들의 꿈과 환상의 장소이듯이 어른들도 꿈과 환상의 장소가 필요하다. '스타트레인'이 그런 장소가 되고 싶다. 여기서 몸 건강하게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건강한 미소, 건강한 마인드를 전할 수 있도록. 나아가서 직장, 가정, 사회가 건강해지는데 일조하고 싶다. 좀 더 큰 꿈을 말하자면 몸 건강, 마음 건강이 직장, 가정 사회로 전염될 수 있도록, 여기는 꿈의 바이러스, 행복 바이러스를 전하는 곳이 되고 싶다."#레벨-도약그의 손을 거쳐 간 스타들을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다. 배우 이병헌, 김래원, 하지원과 가수 윤도현, 조성모, 아나운서 최은경, 김경란, 김성주, 개그맨 김지선 등 여러 연예인과 방송인의 몸만들기를 담당했다.현재는 한류 열풍의 주역 이병헌을 비롯해 이범수, 송중기, 한채영, 손담비, 유이 그리고 최근 선발된 미스코리아 '진' 이성혜씨 등의 보디 코치로도 꾸준히 활동하며 연예인들에게는 환상의 몸매를, 일반 사람들에게 대리만족까지 느끼게 한다.-연예인 트레이너로 유명하다. 가장 보람을 느낀 연예인이 있다면. 그리고 연예인들 각각 몸매 관리가 다를 것 같다."이병헌, 이범수, 송중기, 한채영 등 모든 스타에게 보람을 느낀다. 특히 연예인들은 다 똑같은 몸을 원하지 않다. 키, 체형 스타일이 달라서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 체형이 있다. 본인에게 맞는 아름다움을 맞춰준다. 패션스타일리스트가 옷을 먼저 골라놓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옷을 정해주는 것처럼 나도 사람을 보고 그 사람에게 맞는 분위기로 몸매를 만들어준다." ▲ 이병헌 영화 '놈놈놈' 당시 패션 화보촬영(왼쪽), 영화 '지.아이.조' 스틸 컷 [사진=BH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그러니 더 궁금해진다. 영화 '놈놈놈'의 이병헌 '말 근육'은 정말 많은 화제가 됐다."이병헌씨가 '놈놈놈' 하면서 노출장면이 있다고 하더라. 이병헌씨 스타일과 분위기 보면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와 유사한 점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영화 '파이트 클럽'과 '트로이' 봤는데, '파이트 클럽'은 섬세한 근육인 반면, '트로이'는 부피, 덩치 큰 몸매였다. 이병헌씨에게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처럼 섬세하고 윤곽 있는 몸매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특히 '놈놈놈' 캐릭터가 야비한 역이어서 더욱 잘 맞아떨어졌다."-캐릭터 분석도 한다는 말인가."캐릭터 분석 다하고 영화 촬영장도 간다. 시나리오를 다 읽고 담당하는 배우와 일체감 가지는 게 중요하다. 그 후 이병헌씨가 헐리우드 영화 '지. 아이. 조' 출연했는데 동양인으로서 할리우드 배우와 대항해야 했기에 이병헌씨 운동법을 바꿨다. 그때는 사이즈 올리는 작업을 했다. '지.아이.조' 보면 몸의 부피가 커져서 할리우드 배우에게 지지 않는 체구를 완성했다. '놈놈놈' 끝나고 90일 사이에 몸만들기를 다시 했고, 사이즈 변화는 딱 두 달 걸렸다."-'놈놈놈' 몸 만들기 에피소드가 있다면. "중국 현지시장에서 긴 대걸레를 구입해 턱걸이하고, 큰 소파 끌고 가서 허리 골반운동 하는 등 정말 열심히 시켰다. 특히 황사 바람 맞으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갑자기 모든 여자의 로망, 한채영의 몸매관리도 궁금해진다. '볼륩 업 피트니스'라고 들었는데. "한채영씨는 기본적으로 체형이 좋다. 다리가 긴 체형이다. 다리가 길면 반대로 허리가 짧다는 얘기. 즉, 허리가 짧으면 조금만 먹어도 티가 난다. 한채영씨 같은 경우 라인 만들어주는 데 집중했다. 한채영씨는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잘 먹는데 그만큼 열심히 운동한다. 잘 먹고 운동해서 볼륨감 있는 라인이 예쁘다. 살은 잘 먹으면서 빼야 한다. 또 한채영씨는 기구는 따로 사용 안 한다." -유이 '꿀벅지'는."정작 나와 유이는 그런 '꿀벌지'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 유이 같은 경우는 에너지 넘치고 발랄하다. 어렸을 때 수영해서 '운동 맛'을 안다고 해야 하나. 늘 건강하게 운동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여자배우보다 운동단계가 높아서 남자들 하는 수준 이상으로 운동할 수 있다. 체력 진짜 '짱'이다. 유이 같은 경우 '논스톱 운동'이다. 운동하면서 쉬지 않는다. 즉, 1시간 동안 경보하면서 아령을 계속 들고 있는 그런 느낌. 그래서 살이 찔 사이가 없다. 예전에 해외에서 아이돌그룹끼리 운동 시합 펼치는 게 있었는데 유이가 1등 했다. 특히 유이가 닉쿤까지 이겨서 "선생님 저 어떡해요. 힘까지 세졌어요"라며 울면서(?) 문자 왔더라." ▲ 정주호 트레이너 [사진=나병필 기자] #레벨=최상늘 도전하고 건강한 몸만들기에 신경 쓰는 정주호 트레이너이자 정 대표는 '멘털보디코치'라는 수식어 또한 붙었다. 바로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을 강조, 보다 건강한 삶을 제시해주고 싶다는 게 그의 앞으로의 포부이며, 미래 꿈의 큰 포물선을 그려나가고 있다.-요즘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많아지고, 다이어트 관련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혹시 방송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떤 방송을 하고 싶나."방송은 2000년 백지연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MBC '모닝스페셜' 그때부터 사이사이 했고, 요즘은 강연, 강좌를 많이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KBS 아나운서 임원진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하고 싶은 건 사실 거의 다 해봤다. 음… 만약 기회가 되면 '오프라 윈프리 쇼', '래리 킹 쇼' 같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싶다. 이 두 사람 모두 인생 초반에 고통, 고민이 많았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전 국민에게 눈물, 웃음, 감동을 줄 수 있으며 사회를 위해서 돈을 쓸 수 있다. 공인이라는 것은 공공 사람 즉, 사람들을 위해서 살라고 만들어진 것이다."-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의 포맷을 생각해봤나."방송을 통해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운동의 기운을 주고 싶고, 운동 통해서 힘을 북돋아 주고 싶다. 예를 들면 '이번 달 구민회관 라이브로 운동 배우겠습니다'고 얘기해서 실황으로 구민회관과 연결해서 온라인, 오프라인 동시에 운동을 보여주고 싶다. 또 '휴먼 브릿지' 역할도 하고 싶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출연하면 그 자리에서 각계 사회지도층에게 전화 연결해서 도움이나 조언을 받는 등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 내가 멘토가 될 수도 있고."-봉사활동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국제기독학생운동(SAM,샘) 명예대사로 있으면서 아프리카 아이들 돕기를 홍보하고 있다. 또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에서도 프로젝트 멤버로 원탁회의에 참석, 나아가야 할 방향 등 의견을 전한다. 얼마 전에는 컴패션 행사에도 참여했다."-마지막으로 '운동' 만의 매력."성형하지 않고도 몸이 바뀔 수 있다. 즉, 내 몸 라인이 수술 받지 않고도 조그마한 노력으로도 몸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인내심과 지구력이 문제다. 운동은 2~3개월의 싸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동해서 내 몸이 바뀌는 걸 보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또 운동은 몸과 정신이 분리되지 않는 점을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울하거나 좌절하게 된다. 반대로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몸도 나빠진다. 정신의 우울한 부분을 몸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몸의 좋은 에너지가 정신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처음 언급한 운동의 기쁨과 함께 신체를 통해서 마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게 운동의 매력 아닐까싶다.(하하)" ▲ 정주호 트레이너 [사진=나병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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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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