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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05)] 멍게 비빔밥의 추억과 '심심한 행복' 찾기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연두가 초록으로 짙어져가고 미풍이 따스한 온도를 머금는 요즈음 가을까지 부지런히 먹기 좋은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멍게 비빔밥인데요.   우렁쉥이라고도 불리는 멍게는 오월이 제철로 이맘때 크기도 적당하고 단맛이 올라 입맛 돋우기 좋은 여름철 별미입니다. 멍게는 붉고 둥근 몸통에 울퉁불퉁한 돌기가 돋아나 있죠. 마치 술이 덜 깬 아저씨를 연상시키네요. 심퉁맞은 외형을 가지고 있으나 속을 갈라보면 향긋한 주홍빛 속살과 특유의 톡 쏘는 향기가 일품인 식재료입니다.   멍게 비빔밥은 너무도 간단하여 레시피라고 메모할 할 것도 없어요. 찬물에 슬슬 흔들어 씻은 멍게를 물기가 빠지길 기다렸다가 밥 위에 올리고, 김가루와 깨, 참기름 한 스푼이면 족합니다. 오이채나 계란지단 등으로 멋을 내기도 합니다만, 부재료는 만드는 자의 기호대로 가감이 가능합니다.   주의할 점은 초고추장을 넣으면 고추장의 강한 향 때문에 멍게향이 묻히기에 조미된 김이나 최소한의 간장을 곁들이는 게 더 좋아요. 고수들은 양념 없이 먹는 것을 즐깁니다. 멍게 비빔밥은 제 고향 통영에서 별다른 반찬이 없을 적에 잘 해먹던 손쉬운 음식인데요.   반찬으로 먹거나 술안주로 내기도 하고 제철을 맞아 수확량이 많을 때는 젓갈로 만들어 두고두고 꺼내먹기도 했답니다. 문득 떠오른 멍게 생각에 마트로 가보았습니다. 수산물 코너 한쪽 귀퉁이에 먹기 좋게 손질되어 모셔져 있는 멍게는 장바구니에 부담 없이 넣기에 적당한 가격은 아니더군요.   몇 번의 유통과정을 거치며 가격을 덧입고 내 손에 떨어진 멍게 한 팩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식은 보리밥에 비벼진 멍게는 미역국과 함께 5분 만에 내 밥통의 블랙홀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멍게는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밟히던 시절이라 굳이 돈을 내고 사먹는다는 개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 생선을 사면 덤으로 얹어 주거나 식당에서 서비스로 주는 군음식이었지요. 어느 해에는 멍게가 풍년이라 집집마다 항아리를 사와서 젓갈을 담기도 했지요. 멍게나 매실, 전어 같은 계절음식은 이와 같은 유행을 부르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소주에 곁들여 먹으려고 멍게 한보따리 사오면 그 양이 차고 넘쳐 손질하기 힘들다고 욱하던 어머니 생각도 나네요. 음식은 기억과 그리움을 떠오르게 합니다.   고향의 남쪽바다를 떠올리면 시퍼렇게 펼쳐진 바다와 그 위를 떠다니는 자그마한 목선들과 파도에 일렁이던 부표들. 해풍에 실려오는 짠내와 선박용 디젤 냄새. 어시장의 비린내와 물고기 비늘처럼 빛나던 여름의 청량함, 그리고 알싸한 멍게향이 코 끝에 감도네요.   그리고 바닷물에 낚싯대를 꽂아놓고 무언가를 끝없이 영원처럼 노려보던 사내들의 뒷모습이 잔상처럼 남아있네요. 해질 무렵 인적 드문 바닷가에 홀로 앉아 작은 물고기와 햇볕에 박제 된 새끼 복어, 불가사리, 소라 등을 동무삼아 소꿉놀이하던 나의 어린시절도 떠오릅니다.   요새는 심심함이 사라졌죠. 각종 전자기기들과 놀거리들이 흘러넘치게 산재해서 도통 심심할 틈을 주지 않아요. 부모님들도 아이가 심심하면 큰일날새라 각종 보드게임과 퍼즐과 장난감, 그림놀이 등을 사들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심심할 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발한 생각과 풍요로운 상상력과 자아는 심심함을 양분 삼아 자라나는 것이거든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심심한 시간을 좀 더 많이 누릴 필요가 있어요.   오늘 나의 계획은 멍게 비빔밥을 먹으면서 심심하게 오후를 보내는 것입니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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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6
  • [나의 공군 이야기 (24)] 군산 방공포대장③ 물만난 물고기 시절, 육군·미공군 등과 폭넓은 소통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당시 군산기지는 골프를 포함하여 테니스, 볼링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정말 좋았다. 오산, 군산기지는 미 공군(美 空軍)에서 골프장을 포함한 많은 운동시설을 운영하였고, 그 당시 군산기지 골프장은 한국군, 미군 할 것 없이 자기가 운동하고자 하는 날에 선착순으로 자기 이름을 적어 넣으면 그것으로 예약이 되었다. 비용도 엄청 저렴했다. 1개월 골프장 이용료가 대략 20~30달러였으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은 얘기다.   ‘88 올림픽이 끝나고 그해 가을부터는 일과 이후 또는 주말에 선후배 장교들과 운동을 많이 했다. 때로는 주말에 부대내 바닷가에서 낚시도 했고, 어떤 토요일에는 오후에 골프, 그리고 저녁 식사 이후에는 볼링, 테니스를 새벽 3~4까지 했다. 혈기왕성한 시절이었기에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이런 여가활동이 가능했다. 물론 모든 여가활동은 부대 내에서 하였고, 상황 발생시에는 즉각 포대를 지휘할 수 있도록 한쪽 귀는 늘 무전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말 오후에 육군 포대장과 낚시를 즐기며 [사진=최환종]   ■ 美 공군 헌병대대가 파트너, 통역관 없어 영어로 대화 나눠   당시 군산기지 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았다. 부대 내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수준 높은 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굳이 군산 시내까지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강원도 부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 군산 시내는 가끔 포대 간부들이나 선후배 장교들하고 저녁 식사하러 갈 때 이외에는 나갈 일이 별로 없었다.   아무튼 군산기지에서 방공포대장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필자는 임무수행 이외에도 개인의 발전(체력관리, 독서 등)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적극 활용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았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맛보는, 여러모로 재미있고 알찬 시간이었다.   한편, 대공방어 측면에서 필자의 업무 파트너는 미 공군 헌병대대였고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미 공군 헌병대대에서도 대공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대공방어 측면에서 발칸 포대와 미 헌병대대간 협조는 필수적이었다. 필자가 발칸 포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미 공군 헌병대대 지휘부에서는 필자를 초청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포대 소속이 공군으로 변경되었지만 기본임무(대공방어)는 같으므로 지속적인 업무협조를 바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필자도 신임 포대장으로서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많은 지도 편달을 바란다는 취지의 말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이때 통역관의 도움 없이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는데, 강원도 부대에서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한 보람을 느꼈다.   이후에 미 헌병대대로 새로 부임한 미 공군 중위가 포대로 인사차 방문했다. 이 장교는 미 공군사관학교 출신에(졸업은 필자보다 1년 늦게 했다) 비행훈련 받은 수준(중등 훈련까지)도 필자와 비슷했다. 게다가 공통의 업무(대공방어)도 있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군산에 근무하는 동안 업무 파트너이자 형제같이 또는 친구같이 무척 친하게 지냈는데, 대공방어 관련한 전술토의는 물론이고 때로는 부대관리상 공통적인 애로사항도 서로 얘기하고 상의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이 장교는 후에 대령으로 진급해서 독일의 어느 미 공군 기지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이때 오산기지에서 대령으로 근무하던 필자와 연락이 되었다. 20여년 만에 연락이 되었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서로 잘살고 있음에 기뻐하고 반가워했다.)   ■ 상호협력관계 맺었던 육군 유도탄 포대장은 아직도 기억나는 '멘토   비행장 발칸 포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근의 육군 유도탄 포대장, 육군 해안대대장, 중대장과도 잘 알고 지내게 되었다. 육군 유도탄 포대장은 이 모(某) 소령이었고, 상당히 강직한 성격을 가진 장교였다. 필자보다 4~5년 선배 장교로 기억하는데, 필자에게 절대로 하대(下代)하는 경우가 없었고, 필자에게 많은 지휘 조언을 해주었다. 육군 포대장은 가끔 한. 미 공군 측에 협조할 일이 있으면 필자에게 와서 협조를 구했고,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도와 드렸다.   한번은 육군 포대장이 자기 포대를 구경시켜주겠다고 해서 육군 유도탄 포대를 방문했다. 이 포대는 꽤 오래전에 미 육군에서 인수받은 포대라고 한다. 포대는 시설은 낡았으나 아담한 규모로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그날 무척 좋은 인상을 받고 부대로 복귀했는데,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육군 방공포병사령부 전체가 공군으로 전군하였고, 그로부터 또 몇 년 후에 필자가 그 포대의 포대장으로 부임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인생은 우연과 인연의 연속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근에 있는 육군 해안대대 0중대는 육사 동기생이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가깝게 지내면서 부대 지휘관리에 대해서 상의도 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우며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군산기지 발칸 포대장 시절이 계급은 비록 새파란 대위였지만 한국군(육군, 공군), 미 공군 등 상대방의 소속 군(軍)과 계급을 가리지 않고 가장 폭넓게 대인관계를 맺으며 자신감 있게 행동했던 시기였고, 그들을 통해서 시야도 많이 넓힌 시기였다.   ■ 전자공학 석사과정 교육 기회 앞에 두고 고민에 빠져   다양한 경험과 함께 포대장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해가 바뀌었다. 부임한지 1년이 지나면서 포대장 업무는 첫해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보다 자연스럽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초여름의 어느 날, 방공포 전대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 국내 민간 대학교 위탁교육(석사과정) 소요가 나왔는데, 방공포 분야에도 인원이 할당되었으니 지원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전공과목은 전자공학!   며칠간 고민에 빠졌다. ‘사관학교 재학중에 전자공학을 전공과목으로 선택해서 공부하기는 했지만 졸업한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다시 공부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등등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부도 더 하고, 보다 폭넓게 세상을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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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5-11
  • [이상호의 고공비행] 어린이날 임영웅이 확인시켜준 작지만 큰 진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신록이 푸르럼을 더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의 여왕, 5월은 기념해야 하는 날이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언젠가부터 통틀어 가정의 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가정의 달 5월의 시작은 원래 5월5일 어린이날이었다. “부모없는 자식이 어디 있느냐”는 유교논리에 당초 어머니날, 나중에 어버이날이 끼어들었고, 스승의 날도 생겼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이자 오바마 정부의 국무장관, 4년전 미 대선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은 1996년 ‘It takes a village(to raise a child)(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책을 썼다. 이말은 원래 아프리카 속담으로 공동체와 협력의 중요성을 아이 키우는 일에 비유한 것이다.   20년 뒤,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힐러리 클린턴은 이 책을 유세에 횔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책의 제목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는데 정확히 이렇습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혼자서는 가정을 부양할 수도, 사업을 벌일 수도, 지역을 치유하고, 국가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힐러리가 책을 쓴 1996년 남편 빌 클린턴과 공화당 밥 돌 후보가 대선에서 격돌했다. 밥돌은 이 책의 유명세를 겨냥, 유세에서 다음과 같이 공격했다. “죄송하지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이 아니라 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저는 여기서 말씀 드립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협력, 가정의 가치와 지역 및 국가 등 공동체의 유지는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200년 넘게 벌여온 거대담론, 가치논쟁이다. 전쟁과 좌우대결, 짧은 민주주의 역사 때문에 ‘좌빨’, ‘주사파’ 대 ‘유신잔당’ ‘토착왜구’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뉴스투데이가 지난 5일 어린이날에 [역경을 이긴 연예인] 시리즈로 ‘외로운 소년 임영웅의 멘토가 된 사범님’이라는 제목으로 '트롯 대세' 임영웅의 외로웠던 어린 시절 멘토가 되어준 태권도 관장 출신 김종천 전 포천시장의 이야기를 소개하자 독자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당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류 공통의 명언이 있다. 스타는 스스로의 힘 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종천 전 시장은 트롯의 부활, 범세대적 인기를 만든 영웅을 도운 진정한 멘토이다.”   많은 독자들이 수백개의 댓글과 그 위에 또 댓글을 통해 감동적 스토리에 공감을 표했다. 윤영희라는 아이디의 독자는 “눈물나게 감동적인 기사 넘 감사드린다”면서 “큰 힘이 되어주신 멘토님께도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꽃길만 걷길 응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bluesky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독자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들었던 말인데 이렇게 가슴으로 느껴지다니...”라며 “(투병 중인)김종천 전 포천시장님의 쾌유와 임영웅 가수의 멋진 인생을 응원합니다”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세상에 혼자 잘난 사람은 없다. 스타는 절대로 홀자만의 힘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태양이 생겨나는 우주조건과 같은 대중의 거대한 열망 위에 수많은 요인들이 음양으로 작용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는 이번에 겪은 코로나19의 엄청난 충격, 팬데믹으로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생활양식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포스트 코로나 문명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멀어지는 비대면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비대면이 공동체의 해체, 사람과 사람, 인류의 연대가 붕괴하는 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고립돼 산다면 운석충돌 후 수백만년 동안 동굴에 쳐박혀 생존했던 설치류에 불과할 뿐, 한자어의 뜻처럼 더 이상 인간(人間)이라는 본연의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이 찬란한 봄날에 태어나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부처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사랑과 자비라는 가치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매일 매일 기도하며 새기는 이 소중한 가치 또한 인류 공동체, 인간과 인간 사이 연대의 틀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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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의 고공비행
    2020-05-08
  • [이태희의 심호흡] 이낙연 전 총리를 비난하는 '선동정치'는 주인을 속이려는 노예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정치는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대의민주주의체제에서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표를 주는 국민은 주인이고, 표를 받는 정치인은 노예가 된다. 노예는 항상 주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처지이다.    이런 구조에서 최악의 정치가 탄생하기 쉽다. ’선동정치‘이다. 노예가 주인을 선동해서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감성의 논리이다. 이성의 논리는 매도당한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데, 가슴과 머리도 함께 뜨거운 정치인이 여론을 조작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선동가들이 책임감 있는 정치인들을 모략하고 매도하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진다.    이낙연 전 총리가 겪은 봉변도 유사한 사례이다. 21대 총선 당선자로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전 총리는 지난 5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그의 방문 소식을 알고 있던 유가족 30여명이 모여서 면담을 요청했다.   조문을 마친 이 전 총리는 면담에 응했다. 유가족들은 “이번 사고에 대한 대책을 갖고 왔나”고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다. 이 전 총리는 “제가 지금 현직에 있지 않아 책임이 있는 위치가 아니다”면서도 “여러분의 말씀을 잘  전달하고 이른 시일 내에 협의가 마무리되도록 돕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 유가족이 “오는 사람마다 매번 같은 소리”라고 비난했다. 이 전 총리는 다시 “내가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뭔가를 하겠다고 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재차 해명했다. “책임자 처벌을 포함해 기존 법에 따른 조치는 이행이 될 것이고 미비한 것은 보완이 될 것”이라고 언급해 유가족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기도했다.   이 같은 논쟁이 반복되는 와중에 유가족들이 흥분했다. 한 유가족이 “그럴 거면 뭐 하러 왔냐, 대책을 가져 와야지”라고 따졌다. 다른 유가족은 “유가족들 데리고 장난치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총리는 “장난으로 왔겠느냐. 저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한 조문객으로 왔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전달하겠다고 말씀드렸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유가족이 “사람들 모아놓고 뭐 하는 거냐”고 비난하자, 이 전 총리는 급기야 “제가 모은게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날을 세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분히 감정이 실린 답변이었다. 유가족들은 “그럼 가시라”고 압박했고, 이 전 총리는 “가겠다”면서 자리를 떴다.   이 같은 논쟁 사실이 알려지자 야당과 보수언론들은 이 전 총리를 무책임한 정치인으로 격하시켰다. 유가족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도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것 같다. 다음날인 6일 사과했다. 그는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아프도록 이해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것은 저의 수양부족”이라면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리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세력이 선동정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전 총리의 당초 언행은 정도(正道)에 가깝다.    이 전 총리는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에서 오랫동안 1위를 달리고 있지만 현재는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일 뿐이다. ’무직‘이라는 이야기이다. 무직자가 고질적인 공장 화재현장의 문제점을 속시원하게 해결해줄 입법대책과 유가족들이 만족할만한 피해보상안을 확언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에 그런 역할을 자임했다면 ’권력의 사유화‘이다. 차기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행정부와 여당을 미리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그런 힘이 없는데도 “내가 책임지고 관련법률을 개정하고 피해보상도 주도하겠다”고 약속했다면, 그게 바로 ’선동정치‘이다.    이천 화재 참사 후속대책은 대통령, 행정부, 국회 등과 같은 제도화된 권력이 논의해서 해결할 문제이다. 이 전 총리는 21대 국회가 개원하는 6월부터 국회의원 신분이 된다. 그 때가 되도 이 전 총리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나 정책위의장을 맡을 가능성은 없다. 이천 화재참사의 근본적 문제점을 해결할 후속입법 그리고 유가족에 대한 보상방안 등을 주도할 ’제도화된 권력‘은 이 전 총리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정치권력의 타락은 ’사유화‘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정권의 실세가 파벌을 만들어서 주먹을 휘두르고 그 과정에서 제도화된 권력기관이 무력화되는 것은 후진적 정치에서 만연한 국민적  불행이다.   물론 이 전 총리가 유가족들에게 언쟁을 벌이다가 자리를 뜬 것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할 대목이다. 하지만 먼저 큰 결례를 범한 것은 유가족들이다. 조문객에게 “장난하냐”고 퍼붓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다만 유가족들의 행동은 그 슬픔과 아픔의 크기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의 비난은 퇴행적 사고의 산물이다. 장 의원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 전 총리는 너무너무 맞는 말을 너무너무 논리적으로 틀린 말 하나 없이 하셨지만 왜 이리 소름이 돋는가”라면서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정치의 전형은 본다”고 꼬집었다.   장 의원의 포즈는 ’약자의 대변인‘이지만 내용은 ’선동정치‘이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했다면서 ’가슴(감성)‘이 없다고 패대기치고 있다. 하지만 이천 화재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주체는 차가운 이성이지 뜨거운 가슴이 아니다.   대책마련을 압박하는 유가족들에게 법적으로 나의 소관이 아니라고 설명한 전직총리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주인을 잘못된 길로 이끌려는 노예의 선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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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심호흡
    2020-05-07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62)] 감동적인 미스터트롯 나태주의 태권무, 군 시절의 열정 떠올리게 해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2020년이 접어들면서 4월말까지 ‘코로나19’로 국내 확진자가 거의 1만800명, 사망자가 250명이 되어 전국민이 힘겨워 할 때, TV에서의 ‘미스터트롯 경연’은 큰 위로가 되었다. 그중 ‘세계 태권도 자유품세 1위’인 나태주는 가수로 도전하며 경연 1대1 매치에서 태권무와 공중돌기 격파 등을 선보이며 ‘너는 내남자’라는 노래를 불러 찬사를 받았고 또한 상대 가수를 꺾어 준결승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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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4-28
  • [나의 공군 이야기 (22)] 군산 방공포대장① 육군과 공군 간의 소통 불가능성, 첫 지휘관 맡고 깨달아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군산 기지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부대장에게 신고를 하고 필자가 인수할  육군 발칸 포대로 향했다. 당시 육군 발칸 포대 지휘관인 김 모(某) 대위는 필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이날부터 필자는 육군 포대장과 같이 일주일 동안 포대 현황 파악 등 포대 인수 절차를 밟으며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轉軍)하는데 필요한 각종 업무를 수행했다.   인원, 작전장비, 개인화기 등을 비롯한 전투장구류, 차량, 탄약, 피복, 각종 문서 등등을 확인하고 인수인계서에 서명할 때까지 일주일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필자 혼자서 인사, 행정, 군수 등 모든 것을 확인하고 인수하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포대장실에서 [사진=최환종]   ■ '폭풍'같았던 첫 일주일, 정시퇴근 꿈도 꾸지 못해     한번은 전군하는 포대원들에게 공군 피복류가 제대로 지급되었는지, 부착물은 제대로 부착되었는지 등을 확인해 보니, 일부 인원에 대한 공군 약정복 지급상태가 원활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비행단 군수참모에게 통보해서 조치를 요구했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필자가 세밀하게 확인해야 했고, 일주일동안 그 많은 업무를 하다보니 정시 퇴근은 꿈도 못꾸었다.   그러나 포대 인수 작업은 필자에게 주어진 명확한 임무였고, 사관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주어진 지휘관 업무였기에 필자는 피곤해도 즐거웠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하는 작업(각종 현황 파악 및 인수준비 등)을 하는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폭풍같은 일주일이 지나고, 3월 초에 군산기지 항공기 주기장에서 부대장 임석하에 육군 발칸 포대의 공군 전군식이 엄숙한 분위기에서 실시되었다 (전군식은 각 비행단별로 실시되었다).   전군식을 마친 후 포대의 지휘권은 필자에게 주어졌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주어진 지휘관 임무! 4년 전, 소위 임관 후에는 그저 막연한 심정으로 강원도로 부임했지만, 이번에는 발칸 포대의 지휘관이다. 새로운 임무에 대한 기대와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공군으로 전군이 되면서 포대의 정식 명칭은 방공포대로 명명되었다.)   전군식을 마치고 포대 간부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지난 일주일간 포대를 관찰한 결과 포대 간부들은 업무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사기, 군기, 장비 상태 등 전반적인 전투력 수준은 양호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 해는 ‘88 올림픽이 열리는 해였고 대비태세가 엄청 강조되었는데, 이에 필자는 최상의 전투력 유지’에 중점을 두고 포대 지휘방침을 하달했다.   ■ 포대원들, "공군은 편한 군대"로 오인 / 수많은 훈시와 대화 통해 잘못된 생각 바로 잡아   당시 공군으로 전군한 포대 인원들은 120여명 이었고, 선임 소대장부터 방위병까지 모두 육군에서 근무하던 인원들이었다. 즉, 필자를 제외한 전 포대원이 육군에서 근무하던 병력인데, 처음 몇 달 동안은 필자와 포대원들 간에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용어 사용이라던가, 같은 사안인데도 바라보는 시각이나 해결 방법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그런 경우였다. 육군과 공군간의 문화적인 차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래와 같은 사례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즉, 포대장 취임 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포대원들의 공군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포대장으로 부임한 지 1~2개월 후에 병사들로부터 ‘마음의 편지’를 받았다. 마음의 편지란 육군 시절부터 시행한 제도로서 부대 내에서 불합리한 점(구타, 가혹 행위 등)은 있는지, 건의사항은 있는지 등을 포대장이 병사들로부터 서면으로 받아보고 문제점이 있으면 시정하는 제도인데, 무기명으로 작성해서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내용 중에 황당한 내용들이 꽤 있었다.   예를 들면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공군이 되면 머리를 길게 기를 수 있고, 외출, 휴가도 마음대로 나갈 수 있고, 부대 생활이 편하고 등등 많은 병사들이 전혀 사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요약하면 공군은 무조건 편한 군대이고, 따라서 포대의 임무도 대충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었다.   그래서 병사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했다. “여러분이 공군으로 전군한 배경은.....(중략), 공군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같이 무조건 편하기만 한 군대가  아니다. 당연히 공군에도 전투력 유지를 위하여 지켜야 할 규정이 있고, 훈련 요구량이 있다.... (중략). 여러분이 육군에서 공군으로 전군했지만 임무 수행에는 변한 것이 없다... 등등” 일장 훈시를 해도 즉각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는 필자가 강원도에서 근무할 때 겪었던 추위, 폭설, 강풍, 물부족 등을 얘기하면 “설마 공군에서 그럴 리가. 육군에서도 그런 부대 얘기는 못들어봤는데...” 이런 반응이다. 우물안 개구리가 따로 없었다. 아무리 후방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라지만 답답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주기적인 반복교육과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정리되었다.   ■ 방공포대 간부들도 기본 이론에 대한 이해 부족해 / 고생끝에 발칸포 사격 통제시스템 완박하게 습득   한편, 포대의 주 화력장비인 발칸포는 20mm 탄을 사용하는 화포이면서 레이다를 갖춘 전자장비이기도 하다. 육군 방공포병학교에서 20mm 발칸에 대해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교실에서 배운 것과 실제 장비를 운영하는 것은 차이가 난다.   육군 방포교에서 배운 것을 염두에 두고 포대 간부들과 발칸포 관리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니, 많은 간부들이 레이다 관리 및 운용에 대하여 부담을 갖고 있었고(기본적인 레이다 이론을 잘 모르고 있었다), 사격시 발칸포의 사격통제 컴퓨터에 입력하여야 할 제 요소(외부 온도, 공기 밀도 등)들에 대하여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다.   필자는 강원도 부대와 오산기지에서의 업무가 레이다 관리(정비)이었던 만큼 레이다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정비 부사관과 토의 및 실제 장비를 보면서 공부한 결과 발칸 레이다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격통제 컴퓨터는 발칸포 진지에 나가서 교범을 보면서 좀더 세부적으로 공부를 했고, 모르는 것은 팬텀(F-4) 조종사들에게 물어보면서 궁금증을 해소했다. (팬텀기에도 20mm 발칸포가 장착되어 있고, 이를 운용하는 조종사들은 발칸포의 사격통제 시스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발칸 사격을 앞두고는 육군 지원선 부대의 담당 부서를 직접 찾아가서 수리부속 확보를 요청하고, 당장 필요한 부속을 확보했다. 이런 식으로 포대의 주 화력장비인 발칸포 운용/정비 개념을 숙지하고 포대원(간부/병사)들을 장악하면서, 발칸포대 근무 경험은 없었지만 필자의 포대지휘는 빠른 시간내에 궤도에 올랐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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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4-26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61)] 실전 같은 부대 검열 및 훈련평가는 승리의 첩경(하)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전방의 11월은 완전한 겨울이다. 새벽이 되면 손발이 얼 정도이다. 중대와 대대 전술훈련 평가가 10월 중에 종료되고 11월 중순이 되자 연대전투단(RCT : Regimant Combat Team) 훈련 평가가 일주일간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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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4-22
  • [나의 공군 이야기 (21)] '닭장'에서 군생활의 진로를 바꾸다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그러던 중, 그 해 가을에 공군본부에서 필자의 진로를 바꾸게 되는 문서가 하달되었다. 즉, “내년에 비행장에 배치되어 있는 육군 대공포 부대가 공군으로 전군된다. 이에 대공포 부대 운영 요원으로 근무할 지원자를 받는다.” 라는 내용의 문서였다. 선발되면 ‘대공포 운영 요원’으로 특기가 바뀌는 것이다.   문서를 받아보고는, 주위의 동료, 선배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대공포 부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에 선뜻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선배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내년에는 대공포 부대가 공군으로 소속이 바뀌고, 몇 년 후에는 육군 방공포사령부 전체가 공군으로 전군한다더라.” 물론 당시 이 얘기가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얘기가 실현된다면 지금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군산 발칸 포대장으로 부임 후 00 사격장에서 [사진=최환종]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며 주사위를 던지다   필자는 특기 변경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검토했다. 오산 기지로 부임한 이후 가끔 ‘회의’를 느끼면서 ‘강원도 부대와 오산기지에서의 통신 장교 생활을 고려해볼 때 과연 내가 통신 장교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금년 같은 생활이라면 미래가 없었다.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내렸다. 물론 위험부담은 있겠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특기 변경을 신청하자!!! 그리고 정비과장과 처장에게 ‘특기변경 신청’을 보고했다. 그때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동료 한 명도 같이 특기변경 신청을 했다. 한 사무실에서 두명의 장교가 특기변경을 신청하자 정비과장과 처장은 적잖게 당황했던 것 같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그리고 필자를 설득하려 했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처장이 결재를 했고, 문서는 공군본부로 올라갔다. 이후에도 몇몇 선배들이 필자를 찾아와서 ‘특기 변경 신청 철회’ 설득을 했다. 필자가 특기 변경을 할 경우에 필자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면서, 지금은 상황이 어렵지만(당시 선배들은 필자의 상황, 즉 중령 과장과 대위 선임장교간의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관계는 모두들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등등의 얘기를 하면서.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서 걱정해줬던 그분들에게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상태였다. 그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특기 변경 명령이 하달되었다.   특기변경 명령이 하달된 그날부터 육군 방공포병학교로 ‘방공포병 교육’을 받으러 갈 때까지 약 2~3주간은 일과 시간 이후에는 과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과장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안했다(안한게 아니라 못했을 것이다). 오산기지로 부임한지 거의 1년 만에 정상 퇴근을 했고, 퇴근 후에 동기생, 선후배들과 만나면서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 초순의 어느 날, 육군 방공포병학교로 특기교육을 받기위해 입과했다. 당시 선발된 대공포 운영요원은 다양한 특기에서 선발이 되었고, 소위부터 중령까지 각 계급별로 분포되어 있었다. 이때 육군 방공포병학교에서 교육받은 인원들이 몇 년 후에 육군 방공포병사령부가 공군으로 전군하게 되면서 ‘공군 방공포병사령부’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당시 교육을 받던 위관 장교 중 여러 명이 훗날 장군으로 진급하였다.   육군 방공포병학교에 입과한 우리는 잘 짜여진 교육 일정에 따라서 새로운 교육 내용에 집중했다. 모두들 육군 대공포 부대 인수 요원이라는 책임감에 열심히 공부했다. 다만 학과장과 숙소여건은 좋지 않았는데, 학과장은 연병장 한구석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안이었다. 거기서 교육을 받았고 숙소는 학교 인근의 여관을 이용했다. 그러나 아무리 여건이 열악하더라도 강원도 부대에 비하면 모든 것이 호텔 수준이었다. 우리는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학과장을 ‘닭장’이라고 불렀고, 그 ‘닭장’ 안에서 교육받은 초창기 소수 인원들은 대공포 최초 인수요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군생활을 같이 했다.   ■군산 비행장 발칸 포대장으로 부임, 막중한 책임감과 기대감이 교차   약 0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근무지가 분류되었다. 필자는 중서부 지역의 ‘군산’ 비행장 발칸 포대장으로 결정되었다. 군산이라. 지난해에 오산기지에서 근무하면서 예하 부대에 헬리콥터를 타고 출장갈 때, 헬리콥터가 잠깐 들렸던 곳이다. 그 이외에는 군산에 가본 적이 없다.   4년 전에는 임관하자마자 전투복에 군용 잡낭을 둘러메고 그저 막연한 심정으로 강원도로 부임했지만, 이번에는 마음 자세가 다르다. 육군 대공포 부대를 인수하는 동시에 그 부대의 지휘관으로 가는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눌렀지만 새로운 임무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가벼웠다.   공군본부에서 신고를 마치고 군산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공군 장교 정복에 여행용 가방을 들고! 군산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부대 정문 앞까지 갔다. 택시에서 내려서 가방을 들고 정문으로 가려는데 한 미 공군 병사가 경례를 하며 가방을 들어 주겠다고 한다. 참고로 오산, 군산 기지는 한미 합동 공군 기지로서, 건물은 다르지만 한국군과 미군이 같이 근무하며 서로 긴밀하게 협조를 한다.   ■첫 날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처럼 잠들어   후에 군산 기지에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군산기지가 오산 기지보다 작아서 그런지 한.미 간에도 가족같은 분위기였다(그 당시에는 그랬다). 아마도 그래서 더욱 그 미군 병사가 부대정문 앞에서 장교 정복 차림에 가방을 들고 있는 필자에게 경례를 하며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군산 기지에 도착한 순간부터 기분이 상쾌했다.   정문에서 부대 당직계통에 필자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즉시 차량이 나왔고, 미리 준비된 장교숙소로 향했다. 당분간 필자의 직속상관이 될 모(某) 소령이 필자를 반갑게 맞으며 부대장 신고는 내일 아침이니 오늘은 푹 쉬라고 한다.   그날 밤은, 푹신한 침대에서 앞으로 다가올 업무를 생각하며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마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알프스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간 첫날 별을 보다가 잠들었듯이.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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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4-20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60)]실전 같은 부대 검열 및 훈련평가는 승리의 첩경(상)
    軍도 마찬가지로 각급 제대별로 주기적인 검열 및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군대에서 제대별로 시행되는 전술훈련평가는 통상 쌍방으로 진행되어 경쟁이 치열하다. 또한 그 결과가 부대의 성과로 직결되어 제대별 연말 우수부대 선발의 기준으로 반영 되기도 한다. 각개 병사들은 분·소대장이 평가하여 진급 및 휴가에 영향을 끼친다. 부대는 통상 2차 상급부대에서 평가를 하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하급 제대중 특별한 임무를 담당하거나 특정 지역을 책임지는 부대일수록 1년 내내 검열 및 평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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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6
  • [이상호의 고공비행] 코로나19 대응법, 사자에 쫓기는 가젤이 되지 말자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세렝게티의 사자는 오늘도 달린다. 가젤도 달린다. 사자는 가젤을 잡아먹기 위해, 가젤은 그런 사자를 피해서 살기 위해 죽기살기로 달린다.   사자가 노리는 가젤은 한두마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도 수만 마리, 수십만마리의 가젤떼는 필사적으로 동시에 달아난다. 앞다퉈 도망가다 보면 넘어져서 밟혀죽는 가젤도 나올 수 있고, 일이 잘못되면 무더기로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계산상으로 보면 무리 전체가 도망치는 것 보다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한두마리만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것이 낫다. 사자가 나를 덥치지는 않는다는 전제가 있진 하지만.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방식이 사자에 쫒기는 가젤 무리 같은 양상이다. 여행금지에 통행금지, 격리 등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경제가 급격히 마비되고 있다. 코로나라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 보다 코로나를 막으려는 행위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떼로 달아나는 가젤 무리에 온갖 불행한 일들이 생기듯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보다 부도로 인한 자살, 이혼 등 가정파탄, 술병...IMF때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가 만든 경제위기로 죽는 사람 사람이 더 많이 생겨날 조짐이다.   대한병원협회 코로나19 비상대응본부 실무단장인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이 2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 귀에 번쩍 들어온다.   “코로나19는 건강한 숙주는 살려두는 방식으로 자신을 확장시키는 대신, 노인 등 고위험군을 죽이는 최고의 바이러스라 잡기 어렵다” “메르스 때와 달라 언젠가 종식선언을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설사 백신이 개발되고 2~3년 뒤에 잡히더라도 또 다른 바이러스가 나올 거다. 신종 바이러스는 인류와 계속 같이 갈 거란 점에서 전쟁보다 더한 세계사적인 위기다. 이에 대한 전략을 짜지 않으면 의료 시스템 유지가 불가능하고, 사회경제 시스템도 유지될 수 없다.”   코로나19의 사망률은 세계 평균 5%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 정도다. 대한민국은 선진적 의료기술과 잘 갖춰진 의료시스템,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등을 통해 코로나19 대응 모범국가로 부상했다.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키트 등 의료장비, 드라이브 스루 검진 등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코로나19가 몇 달안에 끝나지 않는 장기적 질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들은 수백만년, 수억년을 기후 등 지구의 각종 변화에 적응하며 생존해왔다. 코로나19 같은 신종 전염병이 일상화 된다면 인류가 언제까지 사자에 쫒기는 세렝게티 초원의 가젤 신세로 살 수는 없다.   집단공포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처방식이 필요한 상황이다. 코로나19 대응에 세계적인 모범을 제시한 대한민국이 이런 해법을 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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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의 고공비행
    2020-04-02
  • [이상호의 고공비행] 삼겹살에 할미꽃까지...코로나 인포데믹 편승한 민간요법 믿어야하나?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세계적인 코로나19 공포로 인해 촉발된 ‘코로나 인포데믹’ 현상이 빚어지면서 코로나19에 특효가 있다는 민간요법이 나돌면서 이에 편승한 상술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인포데믹(Infodemic)은 정보(Informatio)와 감염병 유행(Epidemic)의 합성어로 의도적으로 만든 거짓, 또는 허위정보가 빠른 상태로 번지며 혼란을 주는 상황을 말한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이같은 민간요법들은 백신과 치료약의 개발이 지체되면서 자구책 차원에서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통시장을 찾아 홍삼제품을 시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김치 카레에 고등어...면역력 높인다며 추천   최근 인터넷 블로그 등 커뮤니티에는 ‘코로나에 좋은 ○가지 음식 추천’등의 게시물이 범람하고 있다. 여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음식이나 식재료는 김치 마늘 양파 카레 등이다. 홍삼과 인삼,도라지,오미자 같은 식물에 칡뿌리 감초  같은 한약재까지 거론된다.   또한 단백질을 보충해야 한다며 소고기와 삼겹살, 고등어 같은 ‘등푸른 생선’을 추천하기도 한다. 실제로 홍삼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문재인 대통령이 남대문 시장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함께 홍삼액을 마시면서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한약재 중에는 심지어 할미꽃 뿌리를 가공한 백두옹(白頭翁)까지 거론된다. 백두옹 뿌리 성분 프로토아네모닌이 여러 가지 세균과 아메바 원충, 질 트리코모나스에 대한 살균 및 살충 작용이 있다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공기를 통해 전파되다 보니 공기정화에 효과가 있는 식물들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 사이에서는 틸란드시아 멕시코 소철 스킨답서스 등의 식물을 서로 추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이나 비타민, 홍삼 등이 평소 건강에 도음은 되지만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 감염증을 직접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선을 긋는다. 오히려 이로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상술로 악용돼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이와관련, 최근 한 바이오 제약업체가 비타민C를 활용, 코로나19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는 소식에 따라 주가가 크게 요동치기도 했다. 한의사 윤인수씨(56)는 “코로나19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백신과 치료제 뿐인데 개발이 늦어지다 보니 민간요법에 한약재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 소금물, 안티프라민 등 허위 요법들   얼마전 경기도 성남의 한 교회에서 소독을 한다며 예배 참석자들에게 분무기로 소금물을 뿌린 것이 오히려 코로나19 감염의 원인이 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염분이 코로나19 같은 세균을 죽인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지만 죽염 등 소금 가공물 업체들은 활발한 코로나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일부 삼겹살 식당들이 “미세먼지와 코로나에는 삼겹살이 특효”라며 애교섞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문제는 괴담성 가짜뉴스가 난무한다는 점이다.    “안티프라민을 코주변과 손에 바르면 코로나19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마늘 8통을 두드려 물에 3분을 끓인 뒤 마시면 항체가 형성된다”는 가짜뉴스성 민간요법들이 단체문자나  SNS에 나돌기도 한다. 이런 괴담중에는 “개미의 몸속에 있는 신맛 성분이 바이러스에 상극”이라며 개미탕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홍삼이나 한약재처럼 그나마 면역성을 높여주는 민간요법과 달리, 이런 가짜뉴스들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정치 사회평론가 최우영 씨는 “이런 괴담을 유포하는 것은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처벌 등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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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의 고공비행
    2020-03-31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59)] 묘자리 설치 마음으로 임했던 '진지공사', 민찬기 사단장 칭찬 받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성묘(省墓)는 추석 같은 명절이나 한식(寒食) 같은 절기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다. 조선 후기까지 설?단오?한식?추석의 4대 명절에 묘제를 지내는 풍속이 계속되었다.   한식인 음력 3월에는 개사초(改莎草)라고하여 겨울부터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비롯하여 조상의 묘에 생긴 손상을 손질하여 바로잡는다. 이때 부족한 떼(잔디)를 다시 입혀준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한식 이후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어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한다.   ▲ 전투준비를 위한 진지공사 前 낙엽과 잡목이 무성하고 타이어로 보강된 콘크리트 산병호와 독도에 설치된 기만용 위장포 모습 [사진자료=국방부/김희철]   ■ 성묘처럼 삶과 죽음의 교차로 되는 진지공사, 일종의 돈내기식 방식으로 경쟁 붙여 싸워 이기는 전투 준비는 한식이나 추석 성묘(省墓)처럼 봄가을에 진지공사부터 시작된다. 진지는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 유사시 삶과 죽음의 교차로가 되어 그곳이 나의 묘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지공사는 성묘와 같다. 춘계에는 겨울과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메우고 무너진 떼(잔디)를 다시 입혀주고, 추계에는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고 동계작전 준비도 같이 한다.   유사시 북한이 보유한 1만5000여문의 방사포 및 야포가 불을 뿜으면서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 군은 준비된 진지에서 초전 생존성도 보장받으며 남침해오는 적군을 격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부대는 약 3~4주 동안 거점에서 야영하면서 진지공사를 한다. 그래서  진지공사는 1년 중 중요한 업무였고, 통상 연말 성과분석 회의시 부대표창에도 진지공사우수부대를 포함하여 선정한다.   매년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상급부대는 당시 적상황을 분석하여 진지공사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달하고 야전부대는 그 지침에 따라 우선적으로 진지공사를 한다. 그때 강조한 공사지침은 점진적으로 진지를 전환하며 전투를 할 수 있는 오리발식 진지 구축과 야간 전투를 위한 화목단으로 조명목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상급지침과 노후된 상태의 진지를 보강하는 것만으로는 배가 고팠다. 상단의 사진과 같이 미비된 진지도 정비하면서 과거 독도 수비대가 일본의 점유 시도를 거부할 때 사용했던 기만용 위장포처럼 기만 진지도 구축하기로 했다. 당시 중대 진지의 총길이는 약 2~3km로 80년대 초 삼청교육대 인원들이 동원되어  나무를 잘라 이어 진지를 만들어 비교적 견고한 상태였으나 일부 지역이 무너지고 나무가 썩어서 기존 진지를 보수하는 공사만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했다. 부족한 시간과 인원 속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돈내기(할당받은 일을 끝내면 그 일에 대해 무조건 일당을 지급하거나 마친다는 뜻의 경상도식 표현)’ 방법 뿐이었다. 또한 소대내에서도 떼(잔디) 운반조, 진지 구축조 등으로 조편성을 하여 노동 집약적으로 공사하도록 코치를 했다.   주차별로 소대별 목표를 정하고 먼저 자기 소대진지 공사를 하면서 화목단 야간 조명목과 위장 진지에 필요한 나무와 돌들을 채집하도록 했다. 그날 해당 소대가 목표를 달성하면 필자가 상태를 확인하여 합격여부를 판명후 휴식을 보장하는 돈내기식 방법을 적용했다.  산 능선에 구축된 진지에서 호가 너무 깊으면 앞쪽 하단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관측할 수 없다. 엄폐와 관측이 가능한 깊이도 중요하지만 진지 앞의 사대 방향도 자신의 몸을 보호 받으면서도 사격이 가능하도록 위치를 잘 선정하는 것도 착안했다. 또한 진지 전방에 설치된 철조망과 기관총 사격방향이 연계된 사계청소와 크레모아 설치대도 적방향에 맞게 구축되도록 확인했다. 돈내기식 방법으로 시간에 쫒기어 생각없이 구축된 진지는 불합격 시키고 다시 공사를 시켰으며, 당일  공사량을 완벽히 끝낸 소대는 소대장 통제하에 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자 점차 경쟁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피로와 권태감에 대원들은 지치고 해이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필자에게는 88오토바이가 있었다. 이동시 소리가 거의 없어 기습적으로 중대장이 불시에 공사 현장에 나타나 독려를 했다. 훗날 중대장의 전령이 하소연 했는데 “현장 지도시 방심해 기습을 당했던 소대장이 중대장 이동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질책을 했다”고 하여 미소도 지었다. 소대별 담당진지 공사가 끝나자 사전 준비한 나무와 돌들로 진지 전방에 적들이 은거하기 용이한 장소에 조명목도 설치하고 적방향에서 쉽게 관측되는 도로 교차로에 기만용 위장전차도 만들었다.  한편 추계진지 공사시에는 동계 결빙을 고려한 사전 지뢰공 설치(지뢰를 설치할 장소에 땅을 미리 파고 짚과 병으로 메우는 작업)와 동상을 대비한 깔판 그리고 풀이 마르면 노출되는 총안구에 나뭇가지 등으로 위장을 한다. 또한 동계 혹한시  숙영이 가능한 분침호를 구축하고 도로 급경사에 적사장을 설치하는 작업 등을 추가로 준비한다.   ▲ 진지공사 기간 중 교통호 굴토 작업하는 병사들과 진지 공사 후 상급 지휘관이 현장 지도하는 모습 [사진자료=국방부/김희철]   ■ 사단장의 격려방식, “진짜로 앞에 오는 적을 모두 격멸할 수 있겠나..?”    공사가 어느덧 종반에 접어들자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왔다. 연대에서는 전방 부대도 있는데 예비 부대인 필자의 중대로 사단장의 현장 지도를 유도했다.   사단장 민찬기 장군(육사16기)은 중대 OP(관측소)인 A고개 헬기장으로 도착했다. 중대 진지였지만 연대장과 대대장이 사단장을 영접했고 작업복 차림의 필자는 진지공사 현황을 설명했다.   마침 그 곳은 필자가 소대장 시절에도 담당했던 지역으로 진지공사를 수차 했던  장소였다. 전방 훼바(FEBA) 지역을 통과한 적들이 책임지역까지 접근하는 정보판단을 먼저 보고하고 그 양상에 따라 오리발식 진지 첨단에서 점진적으로 주 진지까지 전환하며 적전차와 보병을 격멸하기 위한 진지와 조명목 구축 등을 자신있게 설명했다.   추가로 기존 진지공사시 착안했던 사항들과 적 기만을 위한 위장진지 구축까지 일사천리로 설명을 마치자, 사단장은 주변 진지공사 현장을 둘러보고는 “이렇게 준비하면 진짜로 앞에 오는 적을 모두 격멸할 수 있겠나..?”라며 격려가 담긴 질문과 미소를 남기고 복귀했다.   상급 지휘관의 지도 방문이 만족스럽게 끝나자 배석했던 연대장은 격려와 함께 앞으로 군생활을 위한 차후 보직까지 조언을 해주었고, 대대장(소장 양치규 육사29기)도 자신있게 설명한 필자에게 “야, 너는 따발총이다..ㅋㅋ”하며 기분 좋은 농담을 건넸다.   내 묘자리를 설치하는 마음으로 임한 진지공사로 유사시 초전 생존성도 보장받으며 공격해오는 적 전차 등 북한군들을 격멸할 수 있는 전투준비가 완료되어 자신감을 얻었다. 또한 사단장 등 상급지휘관들에게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선승구전(先勝求戰)을 확신시켜주는 자리도 되었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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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5
  • [나의 공군 이야기(19)]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생활④ 포효 못했던 맹수의 심정과 아찔했던 침투훈련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리스트] 강원도 부대 생활이 어느덧 3년차로 접어들었다. 부대 생활은 계절별로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기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자연과의 싸움도 웬만큼 적응이 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혹한, 폭설, 강풍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2년차 봄에 공군작전사령부 전투태세 검열을 받은 이후에는 대대장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부대원들과도 한층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작은 부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큰 부대에서 보다 많이 배우고 익혀서 더 높이 나래를 펴고 싶은데, 이렇게 작은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내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규모가 큰 부대에서 근무를 해야 장비(레이다)에 대해서도 더 많이 배우고, 대인관계도 더 넓힐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통신 특기를 부여받은 다른 동기생들은 2년차에 접어들면서 모두들 큰 부대로 전속하였으니 필자가 답답해 했던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   연말에 부대내에서 중대원들과 함께 [사진=최환종]   타부대 전출은 2년 차 가을에 얘기가 있긴 있었다. 같은 대대급 부대라도 임무와 장비에 따라서 일하는 수준이 다른데, 그때 전출이 예정되었던 부대는 대대급 부대 중에서도 임무 중요도가 상위권에 속하는 부대였다. 물론 장비도 다르고. 그 부대에 가면 장비에 대해서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중대장 이하 중대원들과 전출회식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며칠 후에 ‘전출 취소’라고 통보가 왔다. 이유는 모른다.   그때 심정은 참으로 답답했다. 필자가 유배를 간 것도 아니고 강원도 골짜기에서 3년째 근무라니!  당시 대대장은 앞서 ‘영하 55도일 때 순찰을 지시’했던 분인데, 대대장에게 면담 신청을 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대대장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 보더니 필자에게 ‘이미 결정이 나서 방법이 없다. 1년간 나와 같이 더 근무하자’라는 취지의 말을 하며 필자를 다독였다. (이로부터 1년 후 이 대대장의 도움으로 상급부대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다.)   필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3년차 근무에 매진했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은 ‘야생에서 뛰어다니지 못하고 우리에 갇혀있는 듯한, 마음껏 포효하지 못하는 맹수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답답한 심정이었다.   한편 3년차도 혹한, 폭설, 태풍 등의 악기상과 싸우면서 지나갔고 어느덧 겨울이 다가왔다. 예년과 같이 초겨울의 어느 날, ‘독수리 연습’이 실시되었고, 필자가 근무하는 부대에도 ‘가상 적 침투훈련’ 날짜가 하달되었다. 침투훈련 날짜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대대장이 특별 지시를 하였다. “금일 야간에 장교 1개조가 가상 적이 되어 부대 밖에서 부대로 침투하는 훈련을 실시한다.” 가상 적 침투조에 필자도 선발이 되었는데, 부대에서 오래 근무했고 지형지물을 잘 아는 장교를 포함해서 선발하라는 대대장의 지시가 있었다(이 대대장은 ‘영하 55도일 때 순찰을 지시’했던 그분이다). 필자가 당시 이 부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장교였으니 당연히 선발되었다.   그날은 월광이 50%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은밀 침투하기에는 상당히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야간 기온 강하에 대비해서 복장을 단단히 갖추고 부대 밖으로 나갔다. 중대원들은 “잘 침투해 보세요!”라며 격려 반, 농담 반으로 얘기한다. 가상 침투조는 3명으로 구성되었고, 필자가 제일 막내였다. 가상 침투조 3명은 침투 지점을 3군데 지정하고 부대 외곽 멀리 나갔다 다시 접근하기로 하였다(철조망 5미터 이내로 근접하면 침투에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부대원들도 어디가 취약한지 알고 대비했기에 침투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일몰 후부터 부대 밖으로 나가서 거의 밤 12시 쯤에 상황종료가 되었다. 상황종료가 될 즈음, 우리 침투조 3명은 추위와 눈 때문에 매우 지친 상태였다. 당시 위치는 부대 반대편 끝이었다. 부대 반대편 끝에까지 간 우리는 이제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데, 여기서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즉, 필자의 부대는 당시 육군 부대와 인접해 있었고, 축구장으로 표현하면 축구장 반은 필자의 부대이고 나머지 반은 육군 부대였다. 하프라인이 두 부대의 경계선이고, 철조망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각 부대의 정문은 하프라인 한쪽 끝에 인접하여 각각 위치하고 있었고(즉, 하프라인 한쪽 끝을 점 A, 다른 한쪽 끝을 점 B라고 하고, 각 부대 정문은 점 A 부근에 인접하여 있다고 생각하자),  별도의 후문은 없었다.   지형 특성상 부대를 외곽에서 한바퀴 돌아보려면, 부대 정문(점 A)으로 나간 후에 반시계 방향으로 가서 부대 반대편(점 B)까지 갔다가 다시 시계방향으로 부대 정문(점 A)으로 돌아와야 한다. 물론 육군 부대 쪽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그쪽은 지형이 더 험하다. 또 지뢰도 매설되어 있었다.(그러나 당시 우리는 지뢰매설이 단순히 기만용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부대 반대쪽 끝까지 간 우리는 부대 복귀 방법을 놓고 잠시 토론은 했다. 1안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자. 2안은 육군 부대 쪽으로 돌아가자(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뢰는 없다고 생각했다). 3안은 이 지점에서 철조망을 넘어가자. 토의결과 시간을 가장 아낄 수 있는 3안으로 시행했다. 대학때 산악반이었던 선배 장교가 시범을 보이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서 철조망을 넘어서 부대로 복귀했다.   한편, 2안을 시행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지뢰가 실제로 매설되어 있음을 몇 년 후에 알았고, 부대원이 실수로 지뢰지대에 들어 갔다가 지뢰를 밟아서 부상당한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육군 부대는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공군으로 소속이 바뀌었고(이 얘기는 후에 자세하게 언급하겠다), 필자가 장군으로 진급하고 여단장이 되었을 때 그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우연치고는 소설 같은 우연이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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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3-23
  • [나의 공군 이야기 (18)]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생활③ 멘토가 된 대대장과 스나이퍼 스토리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리스트] 강원도 부대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있었고 좋은 점도 있었지만,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훌륭한 분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즉, 필자가 군생활 하는 동안 정신적인 스승으로 삼았던 선배 장교를 알게 되었고, 지금도 만나서 격의없이 지내는 동료 장교들을 사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후에 지휘관 임무를 수행할 때 멘토가 되었던 분은 체감온도 영하 55도일 때 장교들에게 순찰을 지시했던 대대장, 그분이다. 이 분은 사관후보생(현재는 학사장교)으로 임관한 분으로서 이 분의 지휘 스타일은 처음에는 엄격하게만 보았다. 그러나 이 분의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교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많이 배웠다.   훈련 후 중대원들과 함께.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진=최환종]   예를 들면, 어느 조직이나 ‘규정’이 있다. 그러나 세세한 부분까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거나 애매한 경우에 일부 지휘관(또는 상급자)들은 결정을 유보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분은 본인이 가진 권한과 책임 내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주저없이 시행하는 성격이었다. “그것은 내가 책임진다. 시행하라.” 이런 식이었다. 물론 불합리한 것은 위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분이었다.   훗날 본인이 지휘관 임무를 수행할 때, 필자가 사관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것과 더불어 나도 모르게 이 분의 지휘 스타일을 따르고 있음을 느꼈다.   ■ '정의'를 실천했던 군의관 장 대위, 지금은 명망있는 의사로 활약   친하게 지낸 장교 중 1명은 군의관인데, 필자가 군생활을 하면서 본 훌륭한 군의관 2인 중 한명이다. 군의관 중에 그렇게 직업의식(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책임감 있는 군의관은 거의 못보았다. 부대 군의관인 '장 모(某)' 대위는, 일과 중에는 군의관으로서 환자 진료에 충실함은 물론이고 가끔 버릇없는 병사들이나 복장 위반하는 병사가 있으면 현장지도는 물론, 불응하는 병사일 경우에는 헌병반장(중위)에게 얘기해서 잘못된 점을 시정토록 하는 ‘정의’가 살아있는 장교였다. 그러다보니 대대장도 당연히 군의관을 신뢰하였고, 우리들도 좋아했다.   군의관 ‘장 모(某)’ 대위는 일과 이후에는 늘 책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 이 분은 전역 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 00병원에서 중요 직책을 역임하였고 지금도 명망 있는 의사로 활약하고 있다. 필자는 군의관 ‘장 모(某)’ 대위와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인생의 선배인 그에게 여러 가지 많은 조언을 들었고, 룸메이트가 매일 저녁공부를 하니 필자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영어 공부라던가 독서 등은 군의관 ‘장 모(某)’ 대위에게 받은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도 만나는 장교는 2명이 있는데, 두 장교 모두 학사장교 출신으로 단기장교로 근무했다. 한명은 필자와 동기급으로 인사장교였고, 다른 한명은 필자보다 1년 후배 기수로서 보급장교였는데, 서로 나이가 엇비슷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셋이서 같이 강원도 부대에서 같이 근무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거친 환경에서 동고동락하면서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고, 지금도 가끔 만나 골프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필자가 부대 배치받은 다음 해 봄, 부대는 공군작전사령부 전투태세 검열을 받게 되었다. 부대 특성상 작전분야를 제외한 부대원의 전투태세 검열 주 내용은 제식훈련, 총검술 등 기본군사훈련 과목이 주가 되었다. 당시 장교중에 필자가 가장 막내이자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라는 이유로 필자가 기본군사훈련 전 과목에 대한 교관 및 지휘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때 기본군사훈련 전 과목을 지휘하면서 부대 부사관 및 병사들과 많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약 한 달간의 준비를 거쳐서 드디어 검열 당일이 되었다. 검열대상으로 무작위 선정된 부대원들을 지휘하여 한 과목씩 무사히 진행해 나갔다. 3번째 과목이 되자 검열관은 필자를 보더니 “또 귀관이 지휘하나?” 하면서 씩 웃는 것이었다. 기본군사훈련 모든 과목 검열을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으로 사격 평가에 들어갔다.   ■ 스나이퍼 수준이었던 필자의 사격 실력, 총구에서 나가는 탄두 볼 정도로 시력 좋아   필자는 권총 사격자 명단에 포함되었고, 38구경 권총으로 사격을 실시했는데, 검열관은 그해 검열한 부대중에 필자의 사격점수가 가장 우수한 점수라고 얘기했다. 옆에서 사격을 지켜보던 부대장은 이 얘기를 듣자 얼굴이 환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필자에게 특별휴가(4박 5일)를 주었다. 세상에! 난 내 임무를 수행했을 뿐인데, 휴가라니! 검열관과 부대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검열이 종료된 후 필자는 오랜만에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뵈었다.   사격 얘기가 나왔으니, 그 당시 필자의 시력과 사격 성적을 잠시 얘기하자면, 거의 스나이퍼(Sniper) 수준이었고, 시력도 좋았다. 시력이 얼마나 좋았는가 하면, 중위때 필자가 사선에서 사격 통제를 할 때였는데, 타 장교가 권총사격 시 38구경 권총 총구에서 탄두가 나가는 것을 순간적으로 보았다.   권총 총구에서 탄두가 나가는 것을 본 것은 이때가 유일한데, 그 만큼 필자의 시력이 좋았다. (필자는 지금도 시력이 2.0이 나올 때가 있다.) 중위 때는 20대이고 공기 좋은 산속에서 생활했으니 시력이 매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초원에 사는 몽고 사람들의 시력이 어머어마하게 좋다는 얘기같이.   그리고 M-16 소총, 권총(38구경) 사격은 합격 불합격이 문제가 아니고 부대원 중에 누가 1등이냐 2등이냐를 다툴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표적지 한가운데에 담배를 붙여놓고 사격해서 순위를 정할 만큼 사격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는 전역할 때까지 공군 지상사격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공군 지상사격대회 출전자는 무작위로 선발하는데, 필자는 그 무작위 명단에 선발되는 행운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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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3-19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8) 중대장 시절의 이기심,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지름길
    편안할 때에 위기를 생각하고(居安思危). 대비태세가 되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진다(有備則無患), 선승구전(先勝求戰),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은 이후에 전쟁을 한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왕 도공(悼公)에게는 사마위강(司馬魏絳)이라는 유능한 신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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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3-03
  • [나의 공군 이야기](17)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생활② 추운 여름에 만난 '반면교사(反面敎師)', 선풍기 찾다 야전잠바 요구한 검열관
    ▲ 눈 쌓인 어느 따뜻한(?) 겨울. 선배 장교와 함께 [사진=최환종] 어느 일요일 아침 날이 밝지 않아? 밤새 내린 눈이 장교숙소 전체를 덮어[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초급장교 시절을 보냈던 강원도 지역은 겨울철에 눈이 참 많이 내렸다. 부임하던 날(4월 중순인데도), 마을의 시외버스 정류장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고 지난 회에 얘기를 했는데, 필자가 그곳에 근무할 당시 가장 눈이 많이 내렸던 기억은 따로 있다.두 번째 겨울의 어느 일요일 오전! 필자는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눈을 떴다. 그런데 아직도 창밖이 어두웠다. ‘아직 해가 안떴나?’ 하고 더 잤다. 한참을 자다가 다시 깨어서 창밖을 보니 아직도 어둡다.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시계를 보니, 시간은 낮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장교숙소 현관으로 가보았다. 순간 처음 보는 광경이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서 눈이 장교숙소 지붕을 덮고, 숙소 현관도 눈이 쌓여 밖으로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상황실에 전화를 해서 눈이 얼마나 왔는지 확인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장교숙소(1층 건물) 전체를 눈이 덮을 정도니 적설량이 최소한 1.5 m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전부대가 눈 속에 파묻혀 있었고, 영내에 있는 전 병사는 이미 부대내 제설작업(주요 통로 개척작업 위주)을 하고 있었다.   1.5m높이로 쌓인 눈을 삽으로 치우며 장교숙소와 내무반 사이 길을 뚫어  그날 장교 숙소에는 필자와 야간 근무를 한 장교 1~2명이 있었는데, 상황실에서는 제설작업에 치중하다보니 필자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장교숙소와 내무반 사이의 통로개척 제설작업이 시작되었다. 장교숙소와 내무반 사이의 거리는 대략 농구장 두 개 정도의 거리였는데, 이 거리를 삽으로 제설작업(폭 1.5 미터 정도의 통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병사 두어 명이 비교적 눈이 적게 쌓인 지역을 돌아와서 장교들과 합류 후, 제설작업을 했다. 내무반쪽과 장교숙소 쪽에서 각각 눈을 퍼내며 통로개척 제설작업을 하는데 약 3 ~ 4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도 바람은 불지 않았고, 삽으로 눈을 퍼내다보면 땀이 나서 야전상의를 벗을 정도였다.   제설작업 중간에 눈구덩이(정확히 표현하면 양 옆으로 눈이 어른 키만큼 높이 쌓인 통로 속)에 앉아 있으면 편안한 느낌이었다. 쉬면서 건빵과 물로 점심식사를 대신했다. 에스키모인들이 이렇게 살았을까? 그리고 드디어 양쪽에서 눈 치우던 병사들과 서로 만났다. 매일 보는 병사들인데도 얼마나 반갑고 흐뭇하던지. 병사들과 진한 전우애를 느꼈다.   강추위와 제설작업 등으로 힘겨웠던 경험은 지휘관의 소중한 자산돼돌이켜보면, 그 당시 겪은 추위, 눈 등은 그때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그때 겪은 추위나 제설작업, 식수 문제 등 여러 가지 경험은 필자가 이후 부대를 지휘할 때 정말 귀중한 자산이 되었는데,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의 작전수행, 또는 부대원들의 애로사항이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한 예이다.요즘 TV에서 가끔 “시베리아(또는 알래스카)에서의 생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그때 생각이 나서 출연자의 고통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 당시에 그런 추위와 눈을 경험한 결과, 요즘은 일기예보에서 “금년들어 첫 강추위! 오늘 최저 영하 10도!” 이렇게 얘기를 하면, 속으로 웃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봄날이네!”. 물론 필자가 체감하는 온도는 춥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영하 10도는 추위도 아닌 것이다.겨울의 추위가 어느 정도 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부대내 BX(육군은 PX라고 한다)는 인행계장 소관인데, 친하게 지내던 인행계장이 어느 날 이런 푸념을 하는 것이다. “BX 창고에 있는 소주가 모두 얼어서 터졌어...” 당시 소주 도수는 24도로 기억한다. 24도라면 왠만한 추위에는 얼지 않을텐데, 얼마나 추웠으면 소주가 얼어서 소주병이 터졌을까. 대단한 추위였다.    여름에 찾아온 공군본부 검열관, 선풍기 찾다가 야전잠바 요구해 부대사정도 모르고 검열하겠다는 상관은 존중받을 수 없어기상에 따른 에피소드는 한가지만 더 얘기하고 마무리하려 한다. 아마 둘째 해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8월의 어느 여름날, 공군본부에서 검열팀이 온다고 연락이 왔다. 인근 비행장을 거쳐서 필자의 부대로 오는데, 헬리콥터 편으로 온다고 한다. 헬리콥터로 온다는 것은 헬기 운용이 가능한 ‘양호한 기상’이라는 얘기다. 그날 기상은 보기 드물게 맑은 날씨였고 시정은 매우 양호했다. 바람도 구름도 없었고. 따라서 제 3자가 보았을 때 경치가 매우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대원들은 8월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전상의를 착용하고 있었다.중령이 선임자인 검열팀은 대대본부에 도착하여 상황실에서 부대현황 브리핑을 받았다. 브리핑 도중에 검열관이 이렇게 얘기한다. “너희들은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근무하니 좋겠구나!” 자기들은 격려한다고 한 것 같은데, 우리들은 순간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필자의 부대는 1년 중 안개일수가 80% 이상이고, 부대 업무의 많은 부분이 추위와 자연과의 싸움인데, 날씨 좋은 날 헬기를 타고 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 정도라니. 우리는 거의 동시에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당신들도 여기 일주일만 있어보시오. 그런 얘기가 나오나!’브리핑 이후 복도에서 우연히 필자를 만난 검열관은 “중위! 날씨가 더운데 선풍기 없나?” 하는 것이었다. 하긴 자기들은 무더운 여름날에 인근 비행장에서 있다가 왔으니 더울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 부대는 한여름에도 야전상의를 입고 다니는 부대인데, 선풍기가 있을리 없다. 필자는 “부대에 선풍기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그러자 검열관 왈 “어떻게 부대에 선풍기도 없나? 형편없는 장교구만!” 표현을 점잖게 해서 그렇지 검열관의 말투는 필자를 경멸하는 욕설이 섞인 말투였다. 황당했다. 공군본부에서 올 정도면 예하부대 사정을 잘 알고 올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다니.......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그 검열관과 마주쳤다. 그리고 필자에게 묻는다. “중위! 야전잠바 없냐?” 이번에는 추운가보다.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그때 그 ‘검열관’들의 언행은 필자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고, 이후 필자는 타군 또는 타부대 검열을 가거나 지휘순찰을 갈 때 절대 그런 ‘무책임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장교, 부사관들에게도 그 얘기를 들려줬다. 그런 ‘무책임한’ 언행을 하지 않도록.   틈틈이 공부했던 영어가 많은 도움이 될 줄은...한편, 부대로 숙소를 옮긴 이후, 퇴근 이후에는 몇 백 미터 떨어진 숙소에 가서 생활을 하니 저녁에 가용시간이 많이 남았다. 물론 주말에는 가끔 인근 도시에 가서 목욕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부대로 복귀했지만, 타부대로 이동할 때까지 주로 부대 내에서 생활했다. 그 부대에서 근무기간은 거의 3년이었고, 그중 2년여는 부대 장교숙소에서 생활했다.장교숙소에서 거주한 기간에는 일과 이후에 비교적 책도 많이 보았고, 영어 공부도 했다.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이 인터넷 강의 같은 좋은 교보재가 없던 시절이라 영어 공부는 예전에 보던 영어 참고서, 영어 회화 카세트 테이프 등을 이용해서 공부를 했다. 그때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언젠가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때 틈틈이 공부하며 기초를 닦은 것이 후에 많은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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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2-27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7) 화천 만산동 계곡의 '취약지 상주훈련', 의기에 찼던 그 시절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선택과 집중, 집중과 절약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의미, 평시 심심산골 취약지역에 침투간첩의 은거/활동 가능 때문에 취약지관리 필요, 행군 간 계곡 및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 고개길에서의 휴식 회피, 장거리 행군에 따른 허기 때문에 미숙한 야전취사로 인한 설익은 밥도 꿀맛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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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2-27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6) 첨단 과학과 원시적 활동이 병존하는 ‘창끝 강화훈련’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필자가 중대장 근무시 육군참모총장은 정호용 대장(육사11기)이었다. 정총장은 ‘전쟁시를 대비하여 창끝 전투력 강화’를 강조했다. 전술토의, 지식/지휘능력을 배양 등 간부교육 강화로 가장 높은 전투력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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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2-06
  • [전문가 기고] 장애인 자립의 근본은 취업이다
    박홍열 관장 “지역사회 사업체 올바른 장애인식 등 다양한 요인 뒷받침…더 나은 사회 만들어가야” [뉴스투데이=박홍열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등록 인구는 258만여 명으로 전체인구 5138만 여명의 5%이다. 이 중 15세 이상 장애인의 인구대비 취업률은 34.5%로 전체 인구 취업률인 61.3%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장애인 근로자의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 보다 약 1.5배가량 높기도 하다.필자는 영양군, 경북도청, 청송군 등 오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2019년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 관장으로 취임한 첫날 “장애인 자립의 근본은 취업”이라는 생각을 밝혔고, 장애인들의 취업을 위해 지역의 여러 업체를 직접 방문하며 장애인 취업을 독려하고 장애인 취업의 순기능과 장애인 취업 지원 제도를 알렸으며, 더 나아가 지역 사업체와의 긍정적 관계형성과 유기적인 협조를 위한 업무협약 체결을 위해 노력했다. 아울러 취업 의지가 있는 장애인들의 직무능력을 향상시키고자 중증 장애인지원고용 사업 등 지속적인 훈련프로그램을 제공했으며, 업체상담, 취업 후 적응지도 등 상시 모니터링과 관리로 지역 사업체와 장애인들의 징검다리 역할에도 충실했다. 그 결과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전년(15명) 대비 160% 많은 24명의 장애인을 취업알선하고 이중 10명(41.6%)을 취업시켰다. 아울러 취업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지원고용 사업을 통해 29명의 인원을 수료시켜 전년(10명) 대비 290%의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성과들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기관장 및 이하 직원·담당자들의 장애인 취업에 대한 중요성의 인식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자하는 의지와 노력이다. 물론 장애인 취업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사업체의 올바른 장애인식, 장애의 특성에 맞는 직무개발, 장애인 개인의 특성, 장애인 취업 관련 법령 등 다양한 요인들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의 이행률이 45.5%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과 일부 사업체에서는 고용부담금을 내고 말겠다는 식의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현재 장애인 고용 실태를 생각해본다면 이 모든 문제 해결의 선결 과제가 장애인 취업과 관련된 지방자치단체, 사업체, 당사자, 복지기관들의 의지라고 하는 것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현재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장애인복지관도 장애인 취업에 대한 의지와 인식을 새롭게 정립하면서 장애인 취업에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그렇다면 보다 많은 장애인 취업 관련 기관, 관계자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사회 전반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장애인들의 취업이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는 책이 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비장애인들도 장애인들의 자립을,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가길 원하고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생각이 머리에만 머물고 가슴으로 가지 못해 장애인 취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는 머리에 머물고 있는 올바른 생각을 가슴으로 옮겨 함께 행동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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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6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5) 유격훈련 중 찾아온 잔인한 불청객과 신부된 정훈장교의 축복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간부들의 일년 365일 중 퇴근 날은 약 150일, 힘들고 어려운 근무 여건…심신의 한계를 극복하여 자신감을 배양하는 유격훈련의 의미…잔인한 4월에 찾아온 죽음의 불청객은 결국 심장마비 훈련병을 데리고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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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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