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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2) 여자의 일생 -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 3부
    ▲ 畵 : 박경혜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한국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시각 ‘양성평등 vs 여성우월주의’초등학생 때 나는 키가 크고 발육이 좋은 편이었다. 당시 담임은 오십대의 남성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시키고는 내 뒤로 다가와 어깨를 주물러 주는척 하다가 가슴을 움켜쥐고 비비곤 했다. 그 일은 가끔씩 학기내내 반복되었다.당하고 나면 수치스럽고 불쾌한 감정이 하루를 지배했지만, 그때는 부모와 스승은 동급이라고 세뇌시키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승의 탈을 쓴 범죄자이고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었다. 그러나 어렸던 나는 엄청난 두려움에 감히 입밖으로 꺼내 이슈화시키지 못했다.살아오면서 성폭력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것은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된 시점까지도 꾸준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학창시절의 만원버스, 동네꽃집의 할아버지, 학원의 선생님, 지나치던 행인, 친척오빠, 직장내 상사. 모두가 근접한 곳에 있고 친절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흉악범만 멀리해야 할게 아니다. 성범죄는 불특정인보다 주변인들에게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성추행은 어디서나 어느때나 만연하였지만  가해자들은 직장이나 학교, 친인척 등등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났기에 피해사실을 호소하기가 더 어려웠다. 괜한 분란을 일으켜 일상을 뒤집어놓고 싶지 않았다.웃는 얼굴로 성적인 농담을 던지던 상사들, 회식 때 블루스를 추며 더듬던 유부남 상사들, 술기운을 가장하여 터치를 하던 학교선배들.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옷차림이 문란하거나 색기가 있거나 평소에 음전치 못하여 그런 일을 당했다는 이른바 '행실'에 대한 2차 공격이 더 놀랍고 억울했다고 말한다.남성들은 정치공작이나 꽃뱀설로 가해자를 두둔하며 사건을 무마시키려 한다. 여성들은 이제 연대를 이루어 불꽃페미액션으로 반격한다. 남성과 여성이 나뉘어져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me too열풍 이후 '홍대 몰카 사건'으로 싸움은 더욱 촉발되었다. 남성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해 유포한 이 사건은 여성이 '가해자'이다.이제껏 여성상대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소라넷 등에 관대하고 미온적인 수사를 해왔던 경찰은 긴급체포와 구속수사, 포토라인 세우기로 남성이 여성에게 어떻게 '백래시'를 가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고 여성들은 분노했다. (경찰청 성폭력 대책과에 따르면 2018년 붙잡힌 몰카 피의자 총 1288명 중 남성은 123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34명이 구속됐다. 여성이 구속된 사례는 홍대 몰카 사건의 '안모' 씨가 유일하다)여성, 시민단체 모임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2주기를 맞은 지난 17일 사건 발생 장소 인근인 신논현역 앞에서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개최했다.'몰카 편파 수사'를 의제로 들었고 경찰은 당시 시위대를 약 500여명으로 예상했으나 참가자는 1만명이 넘어섰다. 시위자들은 빨간색 옷을 입고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외치며 수사의 부당함을 호소하였다.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성도 국민이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3일 만에 참여인원 35만명이 넘어섰다.한국에서 꺼내기 부담스러워 지는 단어 ‘페미니즘’최근 종영된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는 작금의 시대상황을 잘 반영했다. 회사 상사들의 상습적인 성추행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던 여주인공이 어느날 용기를 내어 반기를 들자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커녕 피해 당사자만 좌천되고 목소리는 근절되었다. 이것이 미투운동의 현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운동은 꾸준히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물론 만만치 않다. 처음에 미투를 응원했던 '위드유'는 남성들의 반기로 인해 옹호론에서 회의론으로 변질되는 분위기이다. 페미니즘의 본질은 양성평등인데 이 단어의 의미가 여성의 권리만 주장하는 '꼴페미, 메갈' 로 둔갑하여 여성혐오와 비아냥을 낳고 있다.여성의 권리신장에 대한 남성의 집단적 반발인 '백래시(Backlash)현상도 만만치 않다. 기업에서는 펜스룰을 지지하고 여성을 고용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배척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미투운동(나도 당했다)을 단순히 여성우월주의로 왜곡하여 바라보면 곤란하다. 이는 남성들의 일상적인 성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주체적인 권리회복 운동이다. 정부가 나서서 여성혐오 범죄에 엄단을 내리고 적극적인 지지를 펼쳐주어야 반복되는 여성혐오 확산과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다.여성은 남성보다 미개하지 않으며 성적인 쾌락의 도구가 아니다. 남성들은 본인이 여성에게서 태어나 길러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딸들이 살아갈 이상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건강하고 건전한 성윤리가 심어져야 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모든 행복한 사회의 뿌리는 행동하는 한사람의 인격, 올바른 가치관과 이를 지켜주고 응원하는 하나의 가정에서 출발한다.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된다. 네 생각은 네 말이 된다.네 말은 네 행동이 된다. 네 행동은 네 습관이 된다.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된다.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 간디-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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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5-25
  • [정성환의 좌충우돌] 정부와 학교가 망치는 대한민국 교육
      ▲ 뉴스투데이 정성환 부사장 ⓒ뉴스투데이   한국 교육의 현주소, 수학 못하는 학생에게 수학 학원 ‘선행학습’ 권하는 선생님 선진국 교육은 ‘다양한 해답’을 인정, 한국 교육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 교육제도 변화 때마다 불확실성 커져 학생과 학부모를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아 정부, ‘사교육 탓’ 이제 그만하고 ‘미래 인재’ 길러낼 백년대계 마련해야    (뉴스투데이=정성환)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담임이 학부모에게 카톡을 보낸다.  “영철 어머님. 영철이가 오늘 수학시간에 시험을 보았는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떨어지네요. 공부를 시키셔야 할 것 같아요”.    영철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 네. 저희 애가 그렇군요. 좀 더 신경쓰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선생님과 학부모의 대화로 이해가 된다.   그런데 선생님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영철이는 제가 알기로 따로 선행학습을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학교 근처에 00학원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니니 보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영철 엄마는 반문한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면 되지 왜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요.”  그러나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하고 있어 거기에 진도 맞추고 있으니 영철이도 학원 보내세요.” 이상은 슬프게도 실제 사례이다. 모든 학교가 이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학생이 겪고 있는 교실 풍경의 단면이다.   공부란 무엇일까 . 공부(工夫)는 사전적 의미로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공부는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을 ‘닥치고 외우고’ 학습지를 반복해서 풀어 정답을 맞추는 것이다.   같은 공부이지만 영어의 ‘study’는  여럿이 모여 연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학교에서 꼼짝하지 않고 외우는 것이 아닌 재미난 주제를 다양한 토론을 통해 다양한 경로를 거쳐 결과를 도출하는 배우는 즐거움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와 선진국은 왜 공부에 대한 인식이 다를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잘못을 넘겨야 하나?  그럴 수 없다. 교육체제는 어른들이 만들고, 아이들은 교육체제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정부, 학교의 무책임이다.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게 없다는 자조적인 학생들의 얘기는 가슴 아프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해오니 선생님은 학생들이 이해여부와 무관하게 수업을 하고, 시험을 보고, 내신을 산출해 학생을 관리하면 된다.  시험은 학생들이 배운 것을 테스트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시험 유형은 다르다. 선진국은 문제에 획일화된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가능성 있고 창의적인 의견도 인정받고 존중받는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한 문제에 유일한 정답을 골라 점수가 높으면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는다.   그 결과 선생님들에게 질문하는 학생이 드물다. “왜”라는 궁금증도 “내 생각은 다르다”는 반론도 없는 ‘바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결과만 가르쳐주는 학교에서 다양한 답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과 토론을 요청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가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안일한 교육 정책이다.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더 큰 혼란을 유발하고 사교육을 키우고 있다.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은 알겠지만 입시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학교에서 바뀐 제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도 없다. 결국 고액을 들여 컨설팅을 받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입시제도 변화는 언제나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공포심을 일으켜 그들을 사교육시장에 내 몰고 있다.   정부는 사교육을 비난할게 아니라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는 현재의 교육제도 및 입시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백년대계를 가지고 개혁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제도를 바꿀 때마다 사교육 시장은 더 커진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번에는 시간이 더 소요되더라도 좋으니 미래의 인재를 길러낼 올바른 교육정책을 내놓았으면 좋겠다   한국의 부모님들도 “우리 자식들이 경쟁에서 이겨 최고 명문학교, 초일류 기업에 진출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의 우월성을 보여주라”고 내몰게 아니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국가에 이바지하고 배움에서 기쁨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올바른 사회성을 가진 사람으로 이끌었으면 한다.    정부나 학교가 변하기 쉽지 않다면 부모들이라도 자기 자식이 스스로 연구하고 ,생각하고, 두려움 없이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필자도 부모로서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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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23
  • [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보리 vs 매켄로’ (2017 / 핀란드,스웨덴,덴마크 / 야누스 메츠 페데르센)
    ▲ 영화 ‘보리 vs 매켄로’ 포스터 ⓒ엣나인필름3월 28일 개봉 / 전국 887개 스크린출신국가, 상극의 성격을 가진 두 인물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정디테일한 감정, 서로 다른 모국어로 영화 사실성 높여 (뉴스투데이=클라렌스 영화칼럼니스트) ▲ 영화 ‘보리 vs 매켄로’스틸컷 ⓒ엣나인필름>>> 시놉시스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윔블던 테니스 대회. 세계 4대 그랜드슬램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이 대회에서 (오픈시대 이후 첫) 5연패에 도전 중인 스웨덴의 비외른 보리(스베리르 구드나슨)와 이에 도전장을 던진 미국 출신의 신예 존 매켄로(샤이아 라보프)가 1980년 결승에서 만난다.두 사람 모두 10대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천재 선수지만, 언론과 팬들 앞에 보이는 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매사 침착하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보리는 냉혹한 황제의 이미지지만, 심판에게도 욕설을 그치지 않는 매켄로는 통제되지 않는 악동 그 자체.먼 훗날에 더욱 역사적인 경기로 남을 대회 결승을 향해 두 사람은 한 계단씩 올라선다. ▲ 영화 ‘보리 vs 매켄로’스틸컷 ⓒ엣나인필름>>>어쩌면 버디 무비얼음장 같이 차갑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루틴을 고수하며 정상을 지키는 남자 보리, 경기장 안팎에서 상대하는 누구에게나 할 말(욕)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매켄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바로는 완벽히 다른 종의 사람이던 이 두 인물을 감독은 경기장 밖, 언론의 사각지대, 과거의 사연 등을 통해 과연 정말 그러했을까 탐구해간다.그러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놀라운 사실은 보리가 매켄로 못지않은 질풍노도의 10대를 지나 왔음을, 통제되지 않는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그때도 지금도 매우 힘들게 하고 있음을, 매켄로 역시 보리 못지 않은 예민하고 상처받는 영혼을 지니고 있고, 사람들의 애정을 갈망한다는 점이다.버디 무비. 서로 다른 외모와 성격의 두 인물이 서로 부딪히고 겪어가면서 사건을 해결하고 우정을 키워가는 영화. 비록 이 작품에서 보리와 매켄로는 영화 마지막에서야 만나게 되지만, (심지어 이 둘은 테니스 선수라 경기 중에도 몸을 부딪힐 일이 없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그들만이 알고 있을 지독한 외로움과 힘겨움은 서로를 통하게 한다. 물론 그 내면의 풍경을 러닝타임 내내 지켜본 우리도 그들의 포옹에 흐뭇하지 않을 수 없다.마지막 장면. 보리와 매켄로가 공항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을 멀리에 선 보리의 아내 시점으로 잡아낸 숏. 대화의 사운드는 들리지 않고 그들의 모습만 담아낸 이 장면이야말로 감독이 두 사람 사이에만 통하는 ‘어떤 것’에 대한 존중을 담아낸 기기 막힌 연출이다. ▲ 영화 ‘보리 vs 매켄로’스틸컷 ⓒ엣나인필름>>>볼까, 말까?연출과 촬영, 편집에 이르기까지 헐리웃 영화 못지않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이는 이 작품은 <아르마딜로>(2010)라는 빼어난 다큐멘터리를 선 보였던 덴마크 감독 야누스 메츠 패더슨의 연출작. 페더슨은 테니스 경기장면에선 다큐멘터리 특유의 유려하고 적극적인 카메라 워킹을 구사하지만, 인물들의 예민하고 복잡한 심경을 담아내는 순간엔 거리를 두고 차분히 지켜보는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한다.비외른 보리와 존 매켄로를 연기한 스베리르 구드나손(스웨덴)과 샤이아 라보프(미국)의 연기도 인상적인데, 아마도 미국산 영화였다면 모두 영어를 구사했을지도 모를 언어를 각자의 모국어로 연기하게 한 선택은 작품의 사실성을 한 층 높였다. 두 배우는 실제 인물과의 외모 싱크로율도 흡사하게 재현하지만, 보리의 이중적 내면과 매켄로의 약한 고리를 드러내는 표정 하나하나에서 더욱 디테일한 감정을 드러낼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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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2018-05-20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1) 행복이란 무엇일까?
    ▲ 畵 : 이동국 - 별밤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항상 곁에 있어 몰랐던 가족의 소중함익숙함 속에서 찾지 못했던 '행복'의 발견며칠전이었다. 아침에 딸아이를 유치원에 바래다 주고 잠시 누웠다가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주변이 빙글 돌더니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극심한 어지럼증이 몰려왔고 쓰러지길 반복했다. 급히 근처의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진단결과는 이석증이었다. 귓속에서 어지러움을 유발시키는 돌이 자연스레 녹을때까지 이삼일간 입원하며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않으며 아이 둘을 돌보랴, 살림까지 완벽하게 해내려 하다가 몸에 무리가 온 것이리라 짐작되었다. 그동안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다. 속으로 꾹꾹 누르던것이 터져버린 것이리라.8인실과 2인실이 비어있다고 했다. 쉬고 싶었다. 완벽한 고립을 원하면 군중속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2인실에서 낯선 이와 단둘이 있느니 사람이 북적거리는 8인실이 차라리 나을듯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간호사가 휠체어에 실어 병실로 이송해주었다.8인실은 환자와 그들의 보호자로 시끌벅적했다. 새로운 얼굴이 들어서자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돌아가며 물어보더니 일시적인 수군거림이 있었다. 짐작대로 그들은 금새 흥미를 잃었고 화제성이 만발하는 드라마로 관심을 돌렸다.링거바늘을 꽂고 침상에 누웠다.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밀린 빨래가 떠올랐고 당장 저녁에 먹을 반찬이 제대로 없다는 것이 떠올랐지만 약을 먹자 이내 깊은잠으로 빠져들었다.병원생활은 단순하고 규칙적이었다. 시간마다 식단에 맞춘 밥이 나왔고 식사를 하고 약을 먹고는 다시 잠에 빠졌다. 이틀쯤 지나니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부재중 전화가 수십통이 와있었다. 발신지는 남편의 핸드폰이었다. 전화를 거니 기다렸다는듯 즉각 딸아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엄마. 아직도 아파? 엄마 목소리 듣고 싶었는데 왜 지금 전화해? 엄마 아픈건 괜찮아? 물 많이 마시고 채소랑 골고루 많이 먹어야 빨리 나아. 알겠지?”아이는 평소에 내가 자기에게 해주던 말을 돌려주고 있었다. 딸의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그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져 가슴이 사무쳤다. 아이가 걱정할까봐 눈물을 참으려 부러 무뚝뚝함을 가장했다. “아빠 말 잘 듣고 밥 잘 먹고 동생이랑 놀고 있으면 엄마가 곧 갈거야"소중함을 환기시키는 삶의 작은 변화전화를 끊고 나면 항상 눈물이 났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하루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점점 좋아질것이고 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컷 보고 만질 수 있고 더 많이 사랑해줄 수 있는 것. 내겐 그것이 가장 절실했다.항상 곁에 있기에 잊어버리는 소중함을 환기시키기 위해 삶은 순간순간 위기에 봉착하곤 하나 보다. 이튿날 회진을 온 의사가 많이 좋아졌으니 다음날 퇴원을 해도 된다고 했다.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났더니 저녁 어스름이 내려 있었다. 주위가 어둑하니 사위고 바람이 불었다. 창 밖의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자기 앞의 生으로 종종걸음을 친다.아무 생각없이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딸아이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엄마. 밥은 먹었어? 뭐해? 나 유치원 갔다와서 손 씻고 장난감 갖고 놀았어. 엄마는 아직도 아파?”“린이야. 엄마도 밥 먹었어. 아빠랑 하윤이랑 놀고 있어. 엄마 내일 집에 갈거야”“엄마. 집에 오면 동화책 읽어주세요. 일부러 동화책은 안 읽고 있었어. 엄마가 동화책 읽어줄때 나를 사랑하는거 알아요”아이의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어느새 알게 모르게 철이 들고 있는 딸. 불현듯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중 한대목이 떠올랐다.- 행복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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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2018-05-16
  • [오운암의 속살속살] 한국 사회의 동시다발적 ‘삼성 공격’의 손익계산서
    ▲ 뉴스투데이 오운암 사장 ⓒ뉴스투데이 삼성전자, 삼성생명 포함한 삼성그룹 관계사 십 수개가 ‘과거사’로 최대 위기 봉착  재판중인 이재용 부회장은 ‘총수’ 지정됐지만 과감한 권한 행사 어려운 실정 지배구조 개선 요구와 ‘과거 비리 혐의’ 봇물 터지고 있지만 ‘체계적 대응’ 못하는 중 각 관계사 경영진 및 홍보맨들 미전실 해체 이후 첫 각사도생(各社圖生) 시험대 올라 삼성그룹의 과거사에 대한 ‘과도한 단죄’, ‘여론몰이식 비난’은 ‘파괴적 결과’ 잉태 미국과 중국의 경쟁기업은 웃고, 수많은 한국의 하청업체 종사자들과 취준생들은 울상 ‘새 총수’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개혁’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비판이 ‘생산적 해법’   (뉴스투데이=오운암) 올해 들어 국내 기업 중 유독 삼성그룹 관계사들의 경영위기가 긴박하게 현실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삼성그룹 각 관계사에 봇물 터지듯이 몰아 닥친 사회적 이슈는 삼성을 만신창이로 내몰고 있다. 올해로 창사 80주년을 맞는 삼성그룹은 그야말로 위기의 정수에 직면해 있는 모습이다.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가 올해에도 외형적으로는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것이 이상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만큼 ‘대혼란’ 상태이다.  수장인 이재용 부회장이 1년여에 걸친 구속 기간을 마치고 재판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일부 경영일선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3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2심 사법부의 실정법적인 판단을 비난하면서 이 부회장을 결단코 재 수감시키려고 하는 ‘사회적 세력들’의 파상공세가 강력하다.이 와중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부회장을 삼성의 총수(동일인)로 지정하고, 김상조 위원장은 삼성의 지배구조개선에 관해 “결정은 이재용 부회장이 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재판 중인 이 부회장은 제대로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연초부터 이슈가 된 삼성반도체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 건도 악재이다. 지난 4월 삼성전자 측의 정보공개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이지만, 다시 이슈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수개월간 노동계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힘겨운 대응을 해오면서 최대 실적을 올리는 것이 경이스러울 정도이다.   삼성전자 자회사격인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설립 관련 파문은 더 심각하다.  고위 임원이 기소되는 등, 재판 결과에 따라 사회적 반향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그룹의 양대 축을 형성하는 삼성생명 및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라는 금감원과 공정위의 거듭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증권은 ‘유령주식’ 매각 사건으로 관련 임직원 20여 명이 경찰에 기소되는 등 창사 이래 최악의 사법적 위기에 처해 있다. 삼성증권에 시스템을 공급해온 삼성SDS도 기업 보안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서도 이득을 본 ‘일감몰아주기’의 특혜자로 몰려 있다. 한국 바이오산업의 기대주로 주목받아온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 혐의’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금감원의 분식회계 혐의 발표 이후 시가총액이 반 토막이 났다. 금융위원회의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나든지 간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및 회계법인들, 투자자, 정부기관 간에 소송전이 난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은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된 과거 쟁점들이 다시 부각됨에 따라 좌불안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건이 삼성물산에 대한 전면적인 감리와 세무조사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삼성물산리조트 부문은, 올해 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는 미세먼지와 비수기 여파로 관광객이 줄어 1/4분기에 적자전환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주말마다 내리는 잦은 비와 경기부진으로 인한 관광객 감소로 2/4분기 영업도 시원치 않다고 울상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과거 삼성물산 합병 시 에버랜드 공시지가 급등 의혹 등이 제기됨에 따라 언론 및 관련 정부기관에 해명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 역시 연초부터 노조 측에서 제기하는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언론 보도에 대한 회사 측의 입장을 해명하는 데 총력전 중이다.   호텔신라는 증축과정에서의 로비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의혹을 제기한 시민단체 및 언론들은 철저한 환경영향평가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 3월 정기 주총에서 “2022년 글로벌 3위 면세사업자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삼성그룹이 이렇게 많은 경영 현안이 전 관계사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구조본, 미래전략실 등과 같은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개별사의 법적, 사회적, 윤리적 사건 및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체계적인 대응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미전실이 해체됨에 따라, 각 관계사가 이사회 중심으로 자율경영 하에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삼성 각 관계사 경영진과 홍보맨들은 대책을 세우고 여론을 살피느라 불철주야, 주말도 잊은 채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국민, 언론, 사회와 소통하는 첨병 역할을 하는 게 홍보맨들이다. 삼성의 홍보맨들은 올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대형악재 속에서 최악의 시련을 겪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는 중일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속수무책이다.   사실 삼성그룹이 과거에 행했던 잘못된 결정에 대한 사법적, 행정적 단죄는 정당한 행위이다. 문제는 과도함이다. 지금처럼 삼성그룹 전체를 뒤흔드는 방식의 개혁은 그 부작용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삼성전자가 치명타를 입는다면 중국과 미국, 일본의 경쟁기업이 미소를 지을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GM이 한국시장 철수를 거론하자 20여만 명의 하청업체 종사자들이 ‘생존권’을 내걸고 결사 반대를 외쳤다.  삼성전자와 다른 관계사들이 경영 타격을 입고 입지가 축소되면 수많은 하청업체 종사자들이 실직으로 고통받을 게 분명하다. ‘미래가치’로 주목받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과거의 분식회계’ 혐의로 상장 폐지되면 수많은 투자자가 울부짖고 바이오기업 취직을 꿈꾸던 수많은 한국 청년들은 좌절하게 된다.  결국 이상과 현실을 절충해야 한다. 삼성그룹에 대한 정부와 시민단체의 개혁 시도가 여론몰이식 ‘과거 단죄’ 방식이 되면 한국인 모두가 피해자가 되기 쉽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이 해결책이다. 새로운 정치사회적 지형 속에서 삼성그룹의 새로운 총수로 지정된 이재용 부회장이 권한을 갖고 개혁을 주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 부회장이 주도하는 삼성 개혁이 한국사회의  윤리적, 법적 기준에 합당한지에 대한 감시와 감독은 아무리 강력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생산적인 해법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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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5
  • [윤재은 공간철학] 하나의 세계, 두 가지 생각 -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 [사진=윤재은] (뉴스투데이=윤재은 칼럼니스트)하나의 우주는 수많은 것들의 생성과 소멸의 공간이다. 우주의 근원은 하나에서 시작되지만, 그곳에서 파생되는 것은 다양하다. 세계의 시간은 한줄기 섬광처럼 지나가지만, 시간이 맞닿는 곳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생겨난다.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세계이며, 그 무엇이다.” 우리는 그 무엇에서, 그 길을 찾고자 한다. 그것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내재된 이 세계는 카오스의 세계이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가?파생의 미학은 생성의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계의 다양성은 하나로부터 출발한다. 하나가 다수이고, 다수가 하나이다. 다수를 위해 하나가 희생되고, 하나를 위해 다수가 뭉친다. 이러한 파생의 미학은 하나와 다수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나의 근원은 다수를 생산해내고, 자신을 희생한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다수를 살리고 세계를 살린다.조화로운 사회는 하나의 생각, 그리고 다수의 생각이 서로 화합하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구성하는 사회이다.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화음도 하나의 팀에서 구성된 조화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서로의 음을 존중하며, 다수의 음에 순응하는 조화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어느 누구 하나가 조화의 화음을 깨고 튀어나온다면, 그 화음은 깨져버리게 된다. 화음이 깨져버린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상상해보라!조화로운 사회를 파괴하는 것은 돌출된 사고와 행동 때문이다. 다수의 삶보다 개인의 삶, 다수의 생각보다 혼자만의 생각이 조화로운 사회를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편협한 생각, 이기적 사고, 광기적 행동 들이 조화로운 사회를 파괴하고 혼란으로 이끈다. 이러한 사회는 불안한 사회를 넘어 불쌍한 사회이다. 이러한 불행은 그 것을 일으키는 사람뿐 아니라 그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하나가 다수가 되고, 다수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조화로움 때문이다. 조화는 세상을 살아가는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가식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정성에 있다. “진정성은 마음을 울리는 소리 없는 행동”으로, 상대를 감동하게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을 주는 사회! 이러한 사회가 인간적 삶이 존재하는 사회이다.이러한 사회의 중심에는 배려가 있다. 배려는 상대의 실수를 따스하게 감싸주고, 상대의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상대의 마음이 되고, 상대의 마음이 나의 마음을 알아줄 때, 배려는 사랑의 힘으로 태어난다. 이러한 배려는 조화로운 사회로서 서로 다름을 하나로 묶어준다. 들판에 서있는 나무를 보라! 나무는 하나이면서도 다수이다. 하나의 나무가 다수를 이루어 숲을 이룬다. 이렇게 이루어낸 숲속에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간다. 나무는 배려를 통해 또 다른 생명들에게 나눔과 베풂의 미학을 실천한다. 배려가 살아있는 숲을 보라! 그곳은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는 우리의 미래가 있다.나무의 조화는 뿌리, 기둥, 가지, 나뭇잎의 조화이다. 하나의 나무가 여러 개의 구조를 통해 이루어져있고, 그 구조에서 생명이 피어나고, 변하는 것은 나무가 가지고 있는 조화로움 때문이다. 서로 다른 기능과 구조를 하나의 완성체로 만들기 위해 대지에 뿌리 내린 나무는 쉼 없이 조화롭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서로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는 하나의 세계이다. “바람이 나무를 대하고, 나무가 바람을 대하듯”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하나이면서 다수인 것은, 정적이면서도 동적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의 세계, 두 개의 생각이 공존하는 것이다. 세계는 수많은 변화를 통해 오늘을 있게 한다. 시간의 선상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은 영원히 변화하는 세계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도 본질적 시간으로 들어가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눈을 통해 매순간 변하는 세계는 분명 동일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 것은 세계 안에 있다. 그 세계는 하나이다.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는 이러한 세계의 변화를 동적 세계관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세상 만물은 단순히 흘러가고 변화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모순을 통해 새롭게 변화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모순은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극복되고, 투쟁은 만물의 변화를 설명하는 근본원인이 된다.“사람은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라 그 강물에 들어간 나도 흐른다. 세상에 동일한 나는 없다. 오직 변한 것은 나뿐이다. 어제의 강물은 흘러가버려서 없고, 나 또한 어제의 내가 아니다.”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 설명되는 흐르는 강물의 인간은 동적 세계관의 시간성을 표현하고 있다. 동일한 사람이 그 강물에 두 번 들어가는 것은 변화되어 버린 자신과 강물을 보지 못하고 피상적 현상만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변하는 것은 시간의 본성뿐이며, 영원한 사물은 하나도 없다.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에 의한 우주의 생성을 세계의 원인으로 보았다. 그가 말하는 생성과 변화의 근원에 ‘불’이 있다. 그는 세상을 구성하는 변치 않는 물질을 불로 보았다. 불은 만물의 생성원인이며, 세계질서는 불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된다.이 세계는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불은 완전한 생성체로서 세계의 질서에 따라 연소되고, 꺼지면서 영원한 것이 된다. 생성의 불은 언제나 있었고, 또 있으며,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다. 만물은 살아있는 실체로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무릇 모든 것이 머물러 있지 않고 유전한다.세계에 있어 선과 악도 하나인 것이다. 위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나, 아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 모두 다 동일한 하나의 길이다. 인생에 높고 낮음이 없고, 귀하고 천한 게 없는 세상의 이치가 여기에 있다.우리의 삶에 있어 생과 사, 기쁨과 슬픔, 선과 악 같은 것도 모두 같은 것이다. 선이 있음으로 악이 있고, 기쁨이 있음으로 슬픔이 있는 것과 같이, 세계는 투쟁을 통해 대립이 발생하고 다시 하나가 된다. 대립은 본질에서 시작되는데 이것은 하나이며, 여럿이다. 모든 것은 하나의 본질에서 대립의 생각이 나뉜다. 이러한 대립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명제에 대한 의견뿐이며, 같은 것이다. 대립에서 답을 구하려는 자! 우주의 이치와 본질에 순응하라!세계를 끊임없는 변화의 세계로 인식하고 생성의 변화를 설명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동적세계관에 반(反)해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는 모든 존재의 통일성을 통한 정적세계관을 주장하였다. 그는 세계의 변화는 단순한 사물의 변화일 뿐 그 본질은 동일한 것이라고 보았다.그는 존재하는 세계의 물질들은 그들의 형태를 포함한 외형적 변화일 뿐, 영원한 실체의 모든 것은 하나라고 보았다. 그는 존재의 본질에 들어서면 조그마한 현상이나, 변화를 보고 비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논리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인간의 판단과 이성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 불확실한 관념에 믿음을 넘겨주고, 그것만이 진리인양 주장한다.그는 자연에 대하여(on nature)에서 존재하는 다수의 사물과 변화는 영원한 하나의 실재현상일 뿐이라고 보았다. 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라는 그의 주장은 하나의 세계는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인간의 일생이 수많은 사건과 변화를 거쳐 죽음에 이를 때, 이러한 삶의 시간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하지만 삶의 순간을 우리의 일생으로 바라볼 때 그 삶은 그저 자신의 삶일 뿐이다. 이처럼 하나의 삶도 생각과 방식에 따라 한 개가 되기도 하고, 두 개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 육체와 영혼이 하나이기도하고, 두 개이기도 한 것처럼 하나의 세계는 두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찬다.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주장! 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주장과, 생성 소멸은 없다. 변화하는 것도 없다. 운동은 없다는 주장은 하나의 세계를 놓고 전혀 다른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반된 주장은 세계를 보는 이성의 눈 때문에 발생한다. 조그마한 가치에 큰 가치를 포함해 설명하는 것과, 큰 가치를 보면서 작은 가치는 그 곳으로 묻어버리는 두 개의 세계관. 이러한 생각의 다양성이 오늘의 문명을 만들어낸다.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조화가 멈춘다는 것! 그것은 종말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의 인간이면서, 영혼과 육체를 가진 두 개의 인간이기도 하다. 세계의 시간은 끝없는 종말을 향하고 있지만,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인생의 시간도 이와 같다. 탄생의 시간에서 죽음으로의 시간! 이 시간은 항구를 떠나는 뱃고동 소리 같다.목적지를 향한 우리의 여정은 잔잔한 파도, 따스한 햇살, 부드러운 순풍만이 불어오길 원하지만, 인생의 여정은 거친 파도, 내리치는 번개, 넘칠 듯한 폭우, 찌는 듯한 태양, 오아시스를 찾는 갈증 등과 같은 고난이 수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고난과 행복이 부조리한 사회 속에 외로운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우리들이 감당해야할 삶의 무게일 것이다. 윤재은(Yoon Jae Eun)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윤재은은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 Design Program, 홍익대학교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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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재은 공간철학
    2018-05-15
  • [이태희의 심호흡]진경준의 ‘공짜 넥슨주식’ 무죄 확정으로 ‘바보’된 김영란법
    김정주 넥슨 대표에게 4억여원 '공돈' 받아 120억원으로 불린 진경준 전 검사장 ‘무죄’확정재판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는 ‘직무연관성’ 입증 못하면 처벌 못해” 판결김영란법, 공무원.언론인등이 연간 300만원 이상 받으면 ‘직무연관성’없어도 무조건 형사처벌한국의 공무원들, 향후 ‘큰 돈’을 받아 ‘김영란법’ 아닌 ‘뇌물죄’로 기소되는 전략적 선택해야한국의 사법부, '작은 범죄'는 추상같이 처벌하고 '큰 범죄'에 온정 베푸는 사법관행 확립 중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토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수전노인 전당포 노파와 여동생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다음과 같이 자신을 합리화한다.“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전쟁을 일으켜 무수한 인간을 살해한 나폴레옹을 살인자로 부르지는 않는다. ‘비범한 인간’의 행위는 통상적인 사법의 잣대를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은 범죄’는 처벌을 받지만 ‘큰 범죄’를 행하면 영웅이 된다는 라스콜리니코프의 ‘궤변’은 다수 인간이 공감하는 보편적 윤리와는 상치된다. 큰 범죄가 더 큰 처벌을 받아야 정의가 바로 선다고 느끼는 게 평범한 인간들의 정서이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적 현실에 직면하면 달라진다. 큰 범죄를 다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에 걸리면 사법부의 잣대가 한없이 관대하다. 하지만 푼돈을 먹는 공직자를 다루는 ‘김영란법’을 위반하면 추상같은 사법적 단죄가 내려진다. 서울고등법원은 11일 진경준(51·사법연수원 21기) 전 검사장에 대한 파기 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김정주(50) NXC 대표로부터 ‘120억원대 공짜주식을 받았다는 핵심 범죄 혐의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진 전 검사장은 2005년 친구인 김정주 대표로부터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매입할 대금 4억2500만원을 받아 주식 1만 주를 산 후 이듬해 넥슨 재팬 주식 8537주로 바꿔 120억원대 차익을 얻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으로 기소됐다. 당초 검찰은 주식매입대금 4억여원을 뇌물로 보고 기소했으나 1심 무죄, 2심 유죄, 대법원 무죄 취지 파기환송 등으로 엇갈린 판결이 내려졌다. 차관급 공무원인 검사장이었던 진경준씨가 김정주 대표로부터 받은 4억여원이 뇌물이 아니라는 판결의 논리는 해괴하다. ‘직무연관성’과 ‘대가성’을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재판부는 넥슨 주식 매입용 4억2500만원 등 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수수 당시 받은 돈과 직무사항 (관련성이) 추상적이었고, 김 대표에게 실제 형사사건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면서 "진 전 검사장에게 잘 보이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에서 이익을 공유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가 성립되려면, 받은 금품과 직무관련성 등이 구체적으로 입증돼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거액의 뇌물을 수수해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구체적인 특혜를 제공한 것이 검찰에 의해 입증되지 않는다면 ‘순결한 행위’가 되는 셈이다. 어찌 보면 사법부의 이런 실정법 논리는 자유주의 법철학 정신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선량한 시민과 흉악 범죄자의 ‘권리’는 모두 대등하게 존중돼야 한다는 게 자유주의 인권론의 핵심이다. 진경준씨가 범죄 혐의자이지만 그의 인권도 보호돼야 한다. ‘뇌물’ 아닌데 뇌물죄로 처벌받는 억울함을 겪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선한 사람과 악인을 차별하지 않는 자유주의 정신 덕분에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은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법질서가 ‘개판’이 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공직자들의 ‘생활 속 작은 범죄’를 응징하기 위한 ‘김영란법’은 ‘직무연관성’이 없어도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4억원대의 공돈을 받아서 120억원으로 불린 진경준씨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로 기소돼 무죄를 받을 수 있었지만, 김영란법 위반으로 기소됐다면 ‘유죄’를 피할 수 없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공직자를 비롯해 언론인·사립학교 교직원 등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 원(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연간 300만원 정도 소액 금품을 수수한 차관급 공무원을 김영란법에 의해 기소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을 살릴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진경준씨 판결은 의미심장하다. 앞으로 한국의 공직자들이 뇌물을 받을 때 거액을 챙김으로써 김영란법이 아니라 뇌물죄로 기소되는 전략적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는 소중한 ‘생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사법부는 '큰 범죄' 혐의는 실정법 논리로 감싸고, '작은 범죄'혐의는 추상같이 단죄하는 사법적 관행을 정립중이다. 그 관행은 진경준씨와 같은 부류의 고위 공직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다수 국민에게는 헤어나오기 어려운‘절망’을 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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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심호흡
    2018-05-11
  • [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챔피언’ (2018 / 한국 / 김용완)
    ▲ 영화 '챔피언'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3월 28일 개봉 / 전국 887개 스크린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는 ‘팔씨름’ … 대안가족의 결속 영화(뉴스투데이=클라렌스 영화칼럼니스트) ▲ 영화 '챔피언'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시놉시스미국 로스앤젤레스. 마크(마동석)는 한 때 팔씨름 세계랭킹 선수였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운동을 그만 둔 지 오래다. 경비원 일을 전전하는 그에게 에이전트를 자처하며 다가오는 진기(권율).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진기가 미덥진 않지만 팔씨름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설득에 마크는 입양된 지 수 십 년 만에 고국 땅에 돌아온다.그러나 진기가 마크를 끌어들인 곳은 지하세계의 도박장. 짜고 치는 고스톱에 마크가 응하지 않자 일은 꼬여버린다. 한편, 마크는 오래 전에 자신을 버린 엄마(손숙)을 찾아 나서지만 알고 있는 주소에는 홀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여동생 수진(한예리)이 살고 있다. 우여곡절의 해프닝 끝에 마크는 처음 만난 가족을 위해, 잃어버린 꿈을 찾아 대회 준비를 시작한다. ▲ 영화 '챔피언'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마동석에 의한, 마동석을 위한, 마동석의 영화<범죄도시>(2017)를 잇는 일종의 ‘마동석 장르물’. 비슷한 예시로는 ‘성룡’을 떠올리면 되겠다. 기본적으로 액션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코미디로 가족영화로 범죄물로 변형 가공되는 독보적 이미지의 1인 장르물. 어떤 면에서 마동석의 이미지는 성룡의 코믹하고 위태위태한 그것보다는 러닝타임 내내 한 대 맞는 걸 보기 쉽지 않은 ‘스티븐 시걸’에 가깝기도 하다.영화 <챔피언>은 스포츠 장르물의 뻔한 과정과 결과가 뻔하게 예상되고 뻔한 그 공식을 교과서적으로 풀어낸다. 적어도 마동석이 시합장 안팎에서 맞닥뜨리는 그 누구도 (아무리 그럴듯하게 등장하더라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영화 속 눈에 띄는 연출은 소소하고 찰나적인 위트와 유머를 담아낸 장면들에 있다.(어리숙하게 연기하려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러운 한국어 연기를 하는) 마동석의 코믹한 장면들은 물론이거니와 섣불리 덤비는 동료를 말리는 깡패무리의 조직원이라던가 팔씨름 챔피언 콤보의 대머리 후배들이 등장하는 씬은 아주 작은 역할과 분량이지만 적절하게 반복되는 호흡을 주면서 심심하게 전개되는 휴먼드라마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물론 마동석을 뺀 나머지 인물들은 대체로 평이하고 단순하게 그려지고 그들의 사연을 설명하는 방식 또한 여유롭지 않지만, 소모적인 인물들의 등퇴장이 빈번한 상황에서도 한 편의 영화를 ‘원 톱’의 개인기에만 의존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 영화 '챔피언'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손을 맞잡는다는 것의 의미‘5월, 가정의 달’에 개봉하는 이 영화에 정상적(?)인 가족은 한 사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크는 입양아이며, 새로 만난 가족은 (알고 보니)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었고, 양아치처럼 보이는 진기마저 빚에 헐떡이는 아버지와 떨어져 살고 있다.그러나 이 관계들은 ‘팔씨름’ 영화답게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을 때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마크와 진기, 마크와 수진, 마크와 조카들, 그리고 마크의 시합장 아래서 손 모아 간절히 응원하던 이들이 모두 환호하고 부둥켜 안을 때 비로소 <챔피언>은 피 보다 진한 ‘가족 영화’로 완성된다.한국영화에서 ‘대안가족’의 결속은 <가족의 탄생>(2006), <괴물>(2006)로부터 <부산행>(2016)까지 지난 10여 년간 유행처럼 다뤄진 테마이긴 하지만 단순히 식상한 반복이라 부르기엔 여전히 가치를 가지는 올바른 시선이다. 더욱 파편화 되고 작은 단위의 이해관계에 매몰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 영화 '챔피언' 스틸컷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오버 더 톱과 챔피언 사이(한국영화 르네상스라 불리던 90년대, 2000년대 초중반을 지나 판에 박힌 상업영화로의 데뷔 외엔 주류 진입이 쉽지 않은) 작금의 충무로 현실은 위대한 흥행 작가 감독들의 시대였던 6,70년대를 지나 컨셉 무비가 주류를 이루고 독창성보다는 성실한 연출력만을 요구 받았던 80년대의 헐리우드와 무척 흡사해 보인다.그런 이유로 작품 속에서 감독 스스로 실베스타 스탤론의 <오버 더 톱>(1987)을 언급할 땐 기묘한 자기고백의 목소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혈육의 끊을 수 없는 정을 기둥으로 삼은 30년 전의 레퍼런스를 핏줄을 뛰어넘는 이해와 연대의 가족 얘기로 진화시킨 지점은 꽤나 절묘한 선택.영민해 보이는 이 낯선 신인감독이 연출자가 소모품처럼 쓰이던 80년대를 통과해 10년, 20년 뒤 새로운 헐리우드 전성기를 일궜던 장인들과 같은 단단함을 가지게 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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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1
  • [오운암의 속살속살] 삼성 때리기는 촛불정신일까
    ▲ 뉴스투데이 오운암 사장 ⓒ뉴스투데이 집권 2년 차 맞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부한 촛불 혁명의 초심은 ‘극단주의 지양’ 대기업은 개혁대상, 중소기업만 동반자로 여기는 정부 내 분위기는 또 다른 극단주의 문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남북정상회담’ 효과, 정권 내 극단주의 꿈틀대는 중 촛불 민심은 ‘합리적 중도’를 갈망, 이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견인하는 경제 만들어야       (뉴스투데이=오운암) 지난주 연휴 기간에 편한 지인들과 1박 2일 민물낚시를 다녀왔다. 낚싯대를 거치하고 한 두시간 손맛을 보고 난 후 간단한 안주에 소주폭탄주를 곁들인 대화는 주말 낚시꾼들에게는 소중한 낙(樂)이다. 화제는 당연히 현 시국이다. 편의점 경력이 많아 월급제로 일하는 나이 지긋한 60대 지인은 문재인 정부의 복지정책을 꼬집었다. 최근 최저임금제 여파로 편의점 주인들이 아르바이트 비용을 아끼려고 부부가 직접 밤낮으로 교대로 일하고 집안에 경조사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쓴단다.아르바이트생들은 편의점 일거리도 찾기가 팍팍해졌고 편의점 부부의 일상 역시 ‘풍요로운 저녁이 있는 삶’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 사장은 작년 말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낮에는 태극기 집회에 마스크 쓰고 참가하고 밤에는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고 해서 일행이 한바탕 웃어젖혔다. 사연인즉슨 태극기 집회에는 거래상 관계가 있는 모처에서 참가압박이 있어서 부득불 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했고 촛불 집회 참가는 소신이었다고. 이 사람이 삼성 출신인 내게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요즘 삼성이 이것저것 다 까발려지고 언론에 돌아가면서 얻어터지고 있는데, 뭐 때문에 아직도 이런 한국에 남아있는 겁니까? 회사를 모두 외국으로 옮기세요. 나 같으면 진작에 보따리 싸고 외국으로 뜨겠네요” 소신으로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이 분도 이런 지경까지 한 기업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가? 며칠 전 친목 모임에서 만난 식품 자재 사업을 하는 여사장은 최근 사업이 잘 돼 가고있는냐는 질문에 “현 정부하에서 사업이 잘 될 리가 있나요? 대기업을 다 죽이는데 거기에 빌붙어 있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잘 될 리 있나요?” 하며 직설적으로 소리를 높인다. 그래도 부족한지 “대기업이 잘 돼야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잘되는 거지. 대기업이 죽어가는데 우리가 잘 될 리가 있나요?”라고 덧붙였다.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는 또 다른 여성 대표는 “작년에도 안 좋았지만, 올해 더 안 좋다”면서 “우리는 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을 상대로 경영을 하는데 발주가 없어 걱정이 크다”라고 하소연 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제 1주년을 마치고 2년 차에 들어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쟁이 날 듯했던 한반도 상황이 평화 모드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그 최고 정점인 북·미 회담만 남겨둔 채 정치·외교의 큰 방향은 안정적으로 잡혀 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집권 2년 차를 맞이해 문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초심은 무엇인가? 촛불 혁명의 초심은 ‘극단을 지양하는 것’이었다. 일부 과격 운동권들이 촛불시위에 편승해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대다수 촛불 참가자들은 이를 만류했다. 극단은 극단을 낳는다. 그 결과는 파행이고 폭력이다. 여당이 초심을 망각하고 오만에 빠질 때 야당 대표에게 폭행을 가하는 식의 극단적인 폭력이 사회 전반에 일상화될 수 있다. 그 결과는 시간 낭비다. 세계가 모든 분야에서 격변하고 있는 이때, 바로 옆에 있는 북한조차 만리마 운동을 벌이며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 이때, 우리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만 치는 조랑말이 되어서야 하는가?문재인 정부가 보다 발전되고 성숙한 집권 2년 차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권 안팎의 ‘극단적 인사들’을 과감하게 물리쳐야 한다. 비록 선거 기간에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과거 보수 정권에서 지나치게 한쪽으로 경도(傾度)된 사상과 이념을 정 중앙으로 돌려놓는 데 그쳐야 한다. 만약에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반대 방향으로 지나치게 경도된다면 제2의 촛불 민심에 불을 지피게 될지도 모른다.  집권 2년 차를 맞는 이제는 민생과 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따로 없다 같이 돌아가며 서로 견인해주는 수레바퀴다. 민간기업이 수출이 잘되고 경제발전을 이루어야 소득주도 성장에만 의존하지 않는 진정한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진다. 대기업은 개혁대상이고 중소기업만 소중한 국정의 동반자라고 여긴다면 또 다른 극단주의에 불과하다. “삼성을 작살내어 과거 기아차처럼 공중분해 해서 공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현정권의 목표다”라는 말이 재계에 떠돌고 있다. 이 말을 접하고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당연히 아니겠지만, 현 정부의 대기업관이 얼마나 부정적이기에 그런 냉소적인 비유가 업계에 떠돌 지경에 이르렀을까.  최근 모 일간지는 ‘권력이 된 참여연대…反 대기업 이슈 쥐락펴락’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고, 또 다른 일간지는 칼럼으로 ‘유행이 된 삼성 때리기’를 게재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류의 기사나 칼럼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다. 과연 현 정부와 지지자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일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의 공허한 외침으로 평가절하하면 될 문제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정권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지지율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국민적 인기는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주도하는 문 대통령의 행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진행 중인 지나친 ‘대기업 길들이기’는 문재인 정부의 기반을 소리 없이 부식시키고 있는 ‘극단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에 취해 대기업을 겨냥한 정권 내 극단주의를 방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다수의 한국인들은 ‘합리적 중도’를 갈망하고 있음을 다시 기억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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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10
  • [송대욱의 건강 쓰리잘](25) 직장인 교통사고 후유증 어떻게 해야할까?
    뉴스투데이에 건강칼럼을 연재해왔던 송대욱 칼럼니스트가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고인 ‘송대욱의 건강 쓰리잘’을 새로 시작합니다. ‘쓰리잘’은 ‘잘먹고’, ‘잘싸고’, ‘잘자고’를 줄인 말입니다. ‘쓰리잘’을 화두로 삼아 지혜의 바다를 종횡무진 누비는 송 칼럼니스트의 글이 직장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송대욱 칼럼니스트) 교통사고 발생 시 허리보다는 경추에 염좌 발생 경우 多 요즘 서울시청 뒷골목에 반쯤 피어 오른 라일락에서는 바싹 말린 속옷처럼 향기를 내고 있다. 주말이 되면 어딘가 다녀 와야 할 것만큼 마음이 들어 꽉 막힌 고속도로로 나가게 된다. 주말이 지나면 엉금엉금 기어가던 자동차끼리 부딪혀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아지는 계절이다. 교통사고는 예고없이 갑자기 닥치기 때문에 강하고 급격한 충격이 몸에 전달되게 된다.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 정형외과나 병원에서 영상진단을 받더라도 별다는 이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겉으로 보아서는 멀쩡한 듯 하지만, 결리고 아픈 통증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교통사고 발생시에 어딘가 차량에 부딪히지 않은 경우는 다른 부분의 손상이 있는 경우는 드물며, 경추염좌와 더불어 시트 포시션에 따라 요추나 골반의 염좌가 발생하게 된다. 차량에 탑승 중 사고가 난 경우는 보통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으므로 허리보다는 덜 보호받는 경추에 염좌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교통사고에 의한 경추염좌는 보통 ‘채찍질손상에 의한 염좌’로 분류된다. 목이 채찍을 휘두르듯이 앞뒤로 움직여서 발생한 염좌라는 의미이다. 경미한 채찍질 손상은 목주변의 근육에 기능장애만 발생하지만, 심각한 경우 경추의 후관절의 염좌를 동반하게 된다. 가벼운 교통사고라도 경추 손상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그 편차가 아주 크다. 또 통증이 나타나는 시기도 사고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3-4일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통증이 시작되는 사람도 있으므로 합의를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 보는 것이 좋다. 주말 교통사고, 영상진단에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통증이 있고, 일 때문에 출근은 했지만, 통증으로 집중도 안되고 불편해서 앉아 있거나 일을 하기 힘들 수 있다. 아픈 데 일을 해야하는 상황도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교통사고 처리에 이런 저런 신경을 쓰느라 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스트레스는 별 이상이 없는 줄 알았던 통증을 점점 더 심해지는 만든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더 심각한 경우는 평소에도 가끔 목이나 어깨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프지만 참고 있었던 사람이다. 멀쩡한 사람이라도 교통사고를 당하면 통증이 발생하는데, 평소에 아프던 사람의 경우는 그 통증의 정도가 심하고, 치료기간도 길어지게 된다. 평소에 괜찮던 사람의 교통사고 후유증은 1~3주정도가 필요하다면, 평소에 통증이 있던 사람의 교통사고 후유증은 3~8주 정도의 치료기간이 소요된다.  한의원 치료 및 처방, 자동차보험 적용돼…교통사고 환자의 한의원 진료만족도 높아 교통사고 근골격 문제와 염증뿐만 아니라 기혈진액의 순환장애 일으킬 수 있어 골절이 없는 교통사고 후유증 어디서 치료받는 것이 좋을까? 교통사고가 나면 정형외과에 들러 영상진단을 받게 되지만, 경미한 사고의 경우에는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 정형외과는 물리치료와 약물치료 외에는 특별히 더 해줄 것이 없다고 한다. 한의원에서 시술하는 추나, 한약, 침, 뜸, 부항 등 다양한 치료법이 모두 자동차보험의 적용이 된다는 사실을 교통사고로 한의원에 내원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자동차보험이 적용되는 추나와 한약은 건강보험에도 적용되지 않지만 자동차보험에는 적용된다. 이는 한의원에서 하는 모든 치료 및 처방이 자동차보험에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교통사고에 의한 인체의 충격은 단순하게 근골격에 문제와 염증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기혈진액의 순환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정맥순환에 장애가 발생하면 어혈이 발생하고, 진액이 흐르는 림프관의 순환장애가 발생하면 담음이 발생하게 된다. 어혈과 담음이 발생하게 되면 통증이 잘 낫지 않고 더 심해지게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하여 한약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에 의한 근골격의 충격은 경추와 요추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직장인이라면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자목, 거북목, 일차허리 등의 척추의 구조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통증이 더 심하게 되며 치료도 오래 걸리게 된다. 자동차보험에서 적용되는 추나치료를 통해 틀어진 몸의 구조로 인한 통증을 해소할 수 있다. 교통사고 환자의 한의원 진료만족도를 생각한다면 교통사고 후유증 한의원에서 받아 보기를 권한다. 통증을 치료하는 한의원도 사무실 밀집지역에 다수 있으므로 치료받을 한의원이 없다는 걱정을 덜어도 된다.    · 상지대학교 한의학과· 경희대학교한의과대학원 박사수료· 덕수한의원 원장· BIG SYSTEM 대표· Sni 연구소 소장· 성정사상의학회 총무이사· MBTI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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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9
  • [정성환 칼럼] 자녀 행복학 개론, 한국과 뉴질랜드의 차이점
    뉴질랜드와 한국의 부모들, ‘자녀의 행복’이라는 동일한 교육 가치 추구 방법론은 서로 달라, 한국의 부모는 ‘학원’에 자녀의 미래를 일임 뉴질랜드의 부모,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스포츠 활동을 하며 아이의 깨달음을 기다려 한국의 부모, 자녀의 변화를 압박하는 대신에 자신의 ‘교육법’을 변화시켜야  (뉴스투데이=정성환 부사장) 뉴질랜드 어느 초등학교 6학년 교실,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내준 퀴즈 문제를 풀고 있다. 한국의 초등학교 교실과 비슷한 수업 풍경이다.    그러나 퀴즈를 풀고 난 후에는 전혀 다르다. 뉴질랜드 교실의 선생님은 퀴즈 문제를 먼저 풀고 제출한 학생들에게 운동장 5바퀴를 뛰라고 얘기 한다. 수학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운동으로 머리를 식히라는 뜻이다. 그 문제들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생 입장에서 보면 너무 쉬운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가 어렵든 쉽든 아이들이 잠깐이나마 뇌를 식히고 또 다른 수업을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의 대치동 학원가 초등학생들은 여행용 가방보다 조금 작은 트렁크를 끌고 핸드폰을 보며 이리저리 학원을 돌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뜨거운 열정’에 밀려  남들을 따라 학원을 돌고 있는 것이다.  밤 10시 정도 되면 학생들을 데리고 가려는 부모님 차들이 학원가에 불야성을 이룬다. 같은 시각인 밤 10시 뉴질랜드에서는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이미 꿈나라빠져 든지 오래이다. 대부분의 뉴질랜드 초등학생은 밤 8시 전후에 잠자리에 든다.  단순히 뉴질랜드와 한국 학생들의 공부 습관을 비교하고 누가 잘하고 있는지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와 한국 부모들은 동일한 교육 가치를 생각한다. 얼마나 자식들이 미래에 행복하게 살 것 인가에 대해 집중한다.   그 방법론에서 한국의 부모들은 명문대 입학에 최우선 순위를 둔다. 한국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원을 돌며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애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SKY 대학은 일부만 입학한다. 한 반 30명의 학생이 같은 학원에 다녀도 1등부터 30등까지 서열이 가려진다.  반면 뉴질랜드에는 학원이 없다. 있기는 있다. 한국 조기유학생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다. 뉴질랜드 현지 부모님 및 어린이들에게 학원이라는 단어는 정말 생소한 명칭이다. 뉴질랜드 부모들도 미래의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고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며 가정을 꾸리는 것을 희망한다.  다만 한국부모와 방법이 다르다. 뉴질랜드 부모들은 자식을 학원에 보내면서 공부에 열중하는 지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스포츠 등 모든 활동을 가족들과 같이 하며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준다.   특히 초등학교 때는 각종 스포츠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다. 모든 스포츠의 코치는 학부모가 자원봉사를 한다.  주말에는 모든 동네에서 각종 스포츠경기가 열리며 부모들은 열성적으로 응원하며 같이 즐긴다. 최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 전세계 15세 학생 54만명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 성취동기, 신체활동 부모와의관계들을 설문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는 조사국 48개국 중 47위를 기록했다.  꼭 47위를 했다고 해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불행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한국학생들은 본인들을 삶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비판의식도 없고 부모들이나 선생님이 공부 이외의 다른 문제를 물어보면 “왜 그걸 나한테 물어보냐”는 식으로 이상하게 여긴다. 가정에서 주말에 그 흔한 밥상머리에서 토론은 바라지 않지만 서로 마주보고 얘기 한마디 없이 먹고 각자 방으로 거실로 흩어진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부,학교 그리고 부모들은 모두 학원에 우리 아이들을 맡기면서 미래를 이끌 인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아’는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행복한 삶을 살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원으로 내 모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변화하라고, 무조건 열심히 하라고 압박하는 대신에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다가 갈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물론 감시자가 아닌 부모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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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8
  • [윤재은 공간철학] 절제된 정신에서 나오는 ‘받아들임’ - 스토이시즘(Stoicism)
    ▲ [사진=윤재은] (뉴스투데이=윤재은 칼럼니스트)소박함은 상태에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소박한 삶이란 주어진 자신의 운명과 처지에 순응하고,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순수함, 그자체로서의 삶을 말한다. 소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절제된 정신에서 나오는 ‘받아들임’으로 살아가는 순응적 삶이다. 그들은 삶으로서 정신을 받아들이고, 정신으로서 삶을 받아들인다.그들의 삶은 꾸밈이 없고, 솔직 담백하다. 자연의 이름 없는 풀 한포기가 세계를 이루고, 소박함을 나타낼 때,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세계의 구성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소박함은 윤리를 넘어 자연 상태에 순응하는 본질이다.소박한 삶이란! 생의 완성을 통해 죽음에 다다랐을 때 뒤돌아 볼 것이 없는 삶을 말한다. 이들에게 삶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상태이다. 이러한 시간적 관념으로서 소박한 삶은 본질적 삶이다. 소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과거를 뒤돌아 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세계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 때문이다.세계에 보여 지는 수많은 물질들은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현혹한다. 높이 솟아오르는 마천루의 도시, 수많은 자동차, 하루에도 수백 가지, 수천가지씩 쏟아져 나오는 풍요로움 속에서 소박한 삶의 추구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나를 가지면 또 하나를 갖고 싶고, 이러한 욕망이 쌓여서 물질적 욕망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소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눈에 최소한의 물질은 삶의 대상일 뿐 필요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삶의 끝자락에 서면, 이러한 것들을 알게 되지만, 삶의 과정에서 그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세계의 물질은 인생을 걸어가는 신발 같은 것이다. 세계를 걷는 소박한 사람들은 한 켤레 이상의 신발을 원하지 않는다. 한 켤레 이상의 신발은 걷는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기 때문이다. 신발의 자유는 의지의 자유이다. 무언가를 가지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삶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의지이다.소유로 부터의 자유는, 세계를 향한 발걸음의 자유이다. 축적의 욕망을 넘어, 자유로의 발걸음,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키워드이다. 21세기 디지털사회는 세계가 하나로 소통하는 사회이다. 들뢰즈의 리좀(Rhyzome)처럼 서로의 위계가 없이 상호 소통하는 디지털 사회에서 유목적 사회를 버리고, 정주(定住)적 가치를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유목(遊牧)적 사회에서 우리들의 발걸음은 세계를 향한다. 정주의 사회에서 이동의 사회로 삶을 방향을 옮겨가는 것은, 자유를 향한 유목민의 선택이다. 이러한 자유는 우리 정신으로부터 나오고, 실천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다.소유의 절제를 통해 이동성의 자유가 보장된 유목적 발걸음이 자유를 향할 때, 최소화된 삶은 우리들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만약, 인간의 육체에 날개가 있다면,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겠지만, 두발의 직립보행을 삶의 수단으로 선택한 인간은 신발의 편안함을 버릴 수 없다.소박한 삶으로 세계를 걷는 자! 한 켤레의 신발이면 충분하다. 인간에게 주어진 한 켤레의 신발은 소박함을 넘어 삶의 교훈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욕망보다, 가진 것을 잘 활용하는 자! 죽음의 끝자락에서 승자의 나팔을 불 수 있다.시뿌연 연기를 뿜어내는 인간의 욕망은 기관차와 같아, 주어진 철로를 거침없이 달린다. 기관차에 탄 인간들의 거침없는 질주! 부딪치는 와인 잔과 음악소리, 희망의 전주곡 앞에 펼쳐지는 인간의 무희를 통해 쉼 없이 달려간다. 이러한 욕망의 기관차가 속도를 멈추지 못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사고이후, 들려오는 그들의 아우성 소리는 인간 욕망의 부질없음을 보여준다.인간에게 있어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자! 자신의 발보다 조금 큰 신발을 신어야 한다. 자신의 발보다 조금 큰 신발을 신고 걷는 자! 욕망의 속도를 올리고 싶어도, 속도를 올릴 수 없다.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신발은 쉽게 벗겨져 버리기 때문이다. 천천히 걷는 자! 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되리라. 시간의 속도에 순응 하는 자! 그 길에서 수많은 것을 얻게 되리라.소박한 삶을 철학적 사상으로 삼고 실천에 옮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가리켜 스토아주의(stoicism)라고 한다. 이들의 철학은 정신의 문제를 넘어 실천의 문제를 철학의 과제로 삼았다. 그들이 철학적 이상으로 주장하는 것은, 자기의 힘을 넘어 그 범위 바깥에 있는 것으로서, 아디아포라(διάφορα)에 의해 마음이 좌우되지 않으면서, 정념이 없는 마음의 아파테이아(πάθεια)를 보존하는 것이다.아디아포라(Adiaphora)는 헬라어로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의 한계를 지적한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이성적 삶을 사는 것은 선이고, 자연에 반하여 충동적으로 사는 것은 악으로 배제하여, 이것과 저것의 중간에 있는 생과 사, 쾌락과 고통 등의 이성적 판단은 아디아포라에 의해 무시된다.이처럼 아디아포라는 삶에 있어 인간의 이성에 의해 구분되어지는 것들의 대수롭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신의 의지로 명하거나 금하지 않는 행동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잘못된 이성으로 덕을 떠난 이분법적 판단과 행동은 대수롭지 않은 삶의 문제로 규정했다.아파테이아(πάθεια)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적 개념으로서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정념이나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인간은 모든 정념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상태로의 삶을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것이다.소박하고, 금욕주의적 삶을  추구한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념에서 해방되고자 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본성이 아닌, 외부에서 일어난 일들은 감정에 의해 발생되고, 대응하는 것으로서 비이성적 행위라고 보았다.인간의 본성 외부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타자의 의지나 사건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로서,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것이다. 스토아주의적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의지로서 내면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의 일은 그들의 본질적 삶과 무관하다.스토아학파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이르는 학파로서 키프로스의 제논(Zenon)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아테네 광장의 공회당 기둥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기둥(Stoa)을 뜻하는 스토아학파로 불렸다. 이 학파는 제논(Zenon), 로마황제 네로의 스승 세네카(Seneca),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Epiktetos),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크뤼시포스(Chrysippos) 등이 있다. 이들의 철학적 과제와 삶의 방향은 욕망을 억제하고, 금욕적 삶을 통해 소박한 인간으로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세네카(Seneca, Lücius Annaeus)는 인간이 삶에 있어 겪는 고통은 인간이 그 일에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이 관여하는 욕망과 야망은 개인의 생각과 의견으로서 보편적 이성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욕망과 야망은 고통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고통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은 정념에 나타나는 고통의 요소들을 지워버리는 것인데, 인간에게 욕망을 심어 고통을 주는 쾌락과 악을 그들의 감정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스토아주의의 금욕적 태도이다.이러한 감정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아파테이아의 상태를 통해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감정적으로 대입하는 것을 완전히 근절하는 것이, 이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다. 아파테이아를 통한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는 인간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며, 행동이다.삶에 대한 가치의 문제는 정신에서 나온다. 정신은 행동하는 실체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나에서 시작하여 여러 개의 길을 걷게 된다. 행동하는 자유는 우리의 육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행동하는 실체는 우리의 정신 안에 있다.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소박한 삶으로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은 스토아주의가 주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윤재은(Yoon Jae Eun)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윤재은은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 Design Program, 홍익대학교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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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재은 공간철학
    2018-05-08
  • [윤재은 공간철학] 사물은 본질적 ‘누스(Nous)’에 의해 생겨난다 - 아낙사고라스
    [사진=윤재은] (뉴스투데이=윤재은 칼럼니스트)사과는 낙타가 될 수 없고, 낙타는 사과가 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서로의 생김새와 생각이  다르면,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이 될 수 없다. 생명체가 사는 지구도 이와 같다. 서로의 다름은 요소의 성질 자체로 부터 결정되기 때문에 같은 것이 될 수 없다.세계를 이루는 수많은 생명체들은 각각의 종자(spermato)를 가지고 있다. 모든 생명체의 탄생과 소멸은 이 종자의 영향을 받는다. 이처럼 종자를 통해 세계의 생명성이 끝없이 연장되는 것은 누스(Nous)의 무한한 운동 때문이라고 아낙사고라스(Anaxagoras)는 말한다. 하나의 대상은 하나의 종자에서 생겨나며, 이러한 종자들은 무한한 반복을 통해 생성, 소멸한다.누스(Nous)는 생성과 반복의 무한한 운동을 통해 사물의 생성원리로서 이성의 힘과 함께 정신으로 작용한다. 생성의 힘으로 작용되는 본질적 누스는 만물의 근원이며, 힘이다. 만물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은 각각의 요소들이 생명을 연장하려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성과 정신의 누스에 의해 지배되고 발전한다.아낙사고라스는 무한한 우주는 누스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누스를 파악하고, 알아챌 수 있다고 보았다. 고대 철학자 플라티누스(Plotinus)도 누스를 만물의 1자로부터 유출된 기능으로 보았으며, 스토아학파에서는 이러한 누스를 창조적 로고스와 동일 시 했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사고라스(B.C.500경 ~ B.C.428경)는 소피스트로 활동하며 과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는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여, 태양을 불타는 돌로 보고, 달은 태양의 빛을 반사시킬 뿐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태양은 펠로폰네소스(Peloponnesos) 반도보다 조금 더 큰 돌덩어리에 불과하며, 빛을 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천문학적 소양은 우주론과 일식의 원인을 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자연 철학자들이 세계의 구성요소를 자연의 현상에서 찾으려고 할 때, 그는 생성의 본질적 힘에 관심을 가졌다.아낙사고라스는 그의 나이 36세 때 그리스 아테네로 이주하였고, 소피스트로서 이오니아 철학을 아테네로 전파하였다. 또한, BC 447년에 착공된 아크로폴리스의 건설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페리클레스(Pericles)를 제자로 두어 당시 정치와 학문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페리클레스는 낡은 족벌정치에 대항하여 대중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이용하여 아테네에 민주정을 확립한 정치가이다.아낙사고라스의 중심 사상인 ‘종자론’은 세상 모든 만물에 그것을 이루는 종자가 있다는 것이다. 낙타의 종자에서 낙타가 생기고 사자의 종자에서 사자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는 각기 다른 요소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각각의 실체이며, 서로 같음은 그 종이 같은 것으로서, 종의 유사성을 가지고 생명을 유지시켜 나간다.아낙사고라스의 종자이론과 우주론은 자연철학에 기반 하여 물리적 세계를 우주 생성의 근본요소에 의해 설명하려 한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의 이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는 물질을 이루는 대상의 요소들을 누스에 의해 생성된 실체로 보았다.인간과 동물이 생명의 연장을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처럼, 각각의 종자들은 그 자체적인 영양분과 성분에 따라 각기 다른 사물의 모습으로 발전한다. 세계 속에서 대상들의 모습이 각기 다른 이유는, 각 사물의 요소에 각기 다른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성질의 분포 양에 따라 각기 다른 생명체들이 생겨나고 소멸되는 것이다.아낙사고라스는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은 물질적 유기체 속에 있는 이성의 힘에 기인한다. 종자로부터 생성된 실체는 누스의 힘을 통해 주변의 물체들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이렇게 흡수된 영양분은 서로 다른 각각의 실체들로 태어나고 이들이 모여 세계를 이룬다.아낙사고라스의 우주론과 종자(spermato)론은 2가지의 단계를 걸친 누스(Nous)에 의해 형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우주의 회전과 혼합에 의한 합체의 과정이고, 두 번째 단계는 다양한 생명체의 생성이다. 현대과학에서 주장하는 지구 46억만년의 역사는 아낙사고라스의 이론과 유사한 경향이 있다.46억 만년 전 카오스 상태의 우주에 무수히 많은 운석들이 회전하며 움직이는데, 이러한 움직임의 힘은 누스이다. 그리고 액체를 포함해서 운석들에 포함되어있는 많은 물질들이 서로 합체되고 결합되면서, 세계의 생명체들이 존재하게 된다는 이론은 아낙사고라스의 이론과 유사성을 가진다.그의 이론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에서의 회전과 혼합은 카오스의 단계를 말한다. 카오스의 우주는 깊은 흑암의 상태로서 이러한 어둠이 모여 밤을 이루고, 모든 액체가 모여 바다를 이룬다. 카오스의 우주는 서로 비슷한 원소들의 결합을 통해 합체되고, 원소들의 합체는 대규모 결합을 통해 비슷한 혼합물의 재결합을 통해 생명체로 발전하다.무한한 우주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나를 있게 하고, 그것이 있게 한 그것은 무엇인가? 세계의 중심에선 인간의 눈에 누스는 단순한 힘의 단계를 넘어 창조의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세계의 다양성 속에서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눈에 누스는 물, 공기, 바람을 넘어 세계를 움직이는 생성의 힘이다.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성은 정신의 힘으로 유한함을 극복하고자 한다. 세계의 시작과 끝이 알 수 없는 카오스의 상태에서 우리의 이성은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 세상의 모든 논리와 이론은 진리를 탐구하지만,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저 단순한 주장일 뿐 정답이 없다.거친 태풍이 몰고 오는 비바람은 인간 생활에 불편을 주지만, 그 결과가 가져오는 커다란 뜻은 세계를 종말로부터 보호한다. 모진 비바람을 이기고 자라난 새싹들은 봄의 기운을 알리는 메시지이듯, 아낙사고라스의 누스는 피폐해가는 우리의 정신에 봄의 새싹을 피우는 힘이다. 윤재은(Yoon Jae Eun)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윤재은은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 Design Program, 홍익대학교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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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재은 공간철학
    2018-04-30
  • [윤재은 공간철학] ‘신’이라 불리기를 원했던 엠페토클레스
    ▲ [사진=윤재은] (뉴스투데이=윤재은 칼럼니스트)우주의 중심에 서서, 그저 나약하기만 한 인간. 신(God)이 되기를 원하는 자! 죽음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이다. 존재의 근원인 신 앞에서 은혜도 모르고 그 자리를 탐하려는 자! 욕망이 눈앞을 가려 한치 앞도 보지 못한다. 살아서 숨 쉬는 자! 멀리 뛰기를 시도하지만, 신 앞에 서면,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신과 인간! 그 이름만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두 개의 대상.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이 되기를 갈망하는 자! 그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유한한 인간으로 삶의 한계를 느낀 인간은, 죽음에 대한 불안 속에서, 바람 앞에 촛불처럼 나약하기만 하다. 힘과 명예, 그리고 물질 앞에선 인간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신의 자리를 넘보려한다.육체의 나약함은 인간을 병들게 하지만, 정신의 나약함은 인간을 잠들게 한다. 병은 운동과 치료를 통해 극복 할 수 있지만, 정신은 영혼을 잠들게 하여 영원한 어둠으로 인도한다. 어둠의 끝은 죽음뿐이며, 빛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영혼의 정화를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정신은 육체와 하나가 되어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순수한 정신의 세계를 버리고 타락으로 회귀하면, 정신은 육체를 버리고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가 버린다.생명의 시작으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자! 먼저 뛰는 사람이 목적지를 빨리 도달하겠지만, 그곳이 죽음의 나락(奈落)이라면, 어느 누구가 빨리 가려하겠는가! 인간의 나약함은 죽음으로 부터오고, 인간의 강인함은 살아있음에 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 승자의 기쁨을 맛보리라. 신의 은총은 살아 숨 쉬는 인간 안에 있고, 그것을 유지하는 자 축복 속에 머물 것이다.인간이면서도 신으로 남고자, 자신의 몸을 죽음의 골짜기로 던진 고대 그리스인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는 철학자, 정치가, 예언자였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치 않지만 자신의 제자들에게 신적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 속에 몸을 던져 초자연적 신처럼 신화적 신이 되고자 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던져 신이 되고 싶어 한 인간이었다. 엠페도클레스처럼 인간이면서도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영혼불멸의 신을 부러워하기 때문이다.죽음 앞에선 인간은 신 앞에 죄인처럼 숙연해지게 되어있다. 죽음을 바라보거나, 생각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나약한 존재로 죄인이 된다. 하지만 죽음의 한계가 육체와 정신의 분리로 초연해지면, 죽음은 영혼의 회귀일 뿐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철학자의 영혼을 통해 본질을 바라보았고, 그 본질을 통해 죽음으로 다가갔다. 죽음은 단지 존재의 사라짐이 아니고, 현실의 수면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이다.엠페도클레스의 사상은 신과 인간의 관계처럼 서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가 남긴 두 개의 시를 보면, 그리스 밀레토스 철학자들처럼 자연철학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영혼에 대한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는 등 전혀 다른 사고를 가졌다. 인간이면서도 신이 되고자 했던 엠페도클레스는 죽음으로 마감되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엠페도클레스는 출생에 대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기원전 490년 혹은 470년경 그리스 시칠리아섬 남서부의 소도시 아크라가스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철학, 정치, 의학, 시에 능통했으며, 불, 공기, 물, 흙에 의한 4원소론을 주장한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그의 철학적 삶은 자연철학을 통해 생성의 본질 탐구였다.엠페도클레스(Empedocles)는 네 가지 근본물질을 통해 뜨겁고, 차갑고, 습하고, 건조한 상태가 세계를 움직인다고 보았다. 4원소의 서로 다른 대립자의 성분들이 세상의 물질을 소멸시키고 생성시키며 세상의 모든 사물을 생성, 변화시키며 유지한다는 것이다. 4개의 성질로 이루어진 원소들은 기하학의 형태로 재구성되는데, 불(火)은 정4면체, 흙(土)은 정6면체, 공기(氣)는 정12면체, 물(水)은 정20면체의 기하학적 성질을 가진다.그는 4원소론, 기하학적 사고와 함께 창조론적 맥락의 주장에서 생명을 갖는 유기체, 식물과 동물, 인간의 순서로 생명들이 탄생했으며, 생성초기에는 이러한 모든 생성체가 하나의 성으로 이루어졌으나, 시간이 가면서 서로 다른 성들로 분리되어 다양한 생명체로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엠페도클레스는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이 본질적 4원소들이 결합된 합성물이며, 물질들은 원소의 비율에 따라 형태를 바꿀 뿐, 어떤 사물도 새롭게 탄생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4원소에 의해 생성된 모든 물질들은 '사랑'과 '대립'이라는 두 힘이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결합되고 분리된다고 보았다. 만약 물질들의 대립된 싸움이 일어나면, 원소들은 상호 분리되고, 사랑이 일어나면, 원소들은 서로 섞이게 되어 생명의 물질로 태어난다. 이렇게 두 힘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는 소멸되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되는 힘으로 존재하게 된다.최초의 세계는 조화와 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했으나, 카오스의 시대에 물질에 대한 대립과 충돌 등으로 인해 원소의 결합과 분리가 이루어져 4원소로 분리되면서 다양한 생명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충돌과 분리의 반복적 활동은 부분적으로 결합되어 새로운 세계의 물질로 생성되고, 이러한 과정이 연속되어지면서 생명들의 생성과 소멸이 지속되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생명을 가진 인간의 영혼에 대한 윤회를 믿었다. 죄지은 인간은 죽음의 형벌로 우주를 떠다니다가 영혼의 정화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다.엠페도클레스는 밀레토스 학파들처럼 새로운 철학을 주장하기보다는 이전의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상을 결합시키거나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물질의 4원소론에서, 세상의 모든 현상은 원인으로서 상반된 대립자의 운동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대립이 생성의 힘이 되고, 생성은 소멸의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생성으로 태어난다.엠페도클레스처럼 신이 되고자 한 철학자의 삶도,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의 삶도 세계의 시간 속에서 동일하다. 삶과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라면 세상의 모든 것은 사소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가끔씩 자신을 망각한다. 신과 인간의 갈래에서 망각을 통해 신이 되고자 하거나, 자신의 무지를 통해 신이 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망각도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으로부터 생겨나는 정신착란증이다.세상에 살아있는 생명체중 인간처럼 많은 말을 하고,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삶이 힘들어 신을 원망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믿으며, 나약한 자신의 존재를 신에게 의지하며, 신을 따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마치 자신이 신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이들의 다양한 욕망은 어디에서 멈출까?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인생의 철로를 질주하는 욕망의 전차는 인간이 부질없는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멈추지 않는다. 인생의 전차는 도시의 무한한 질주에서 간이역의 짧고, 달콤한 휴식을 원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시간의 공간, 그리고 휴식과 여유! 이러한 공간이 인생의 간이역이다. 어둠으로부터 태어나 다시 죽음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라면, 뒤돌아보지 않고 질주해온 인생의 시간을 간이역에서 한번쯤 뒤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인간이면서 인간이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신의 이름을 팔아 가면으로 자신을 가린 사람은, 신의 이름을 빌려 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신이 되기를 원했지만 신을 기만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을 던져 신의 세계로 되돌아가고자 하였던 신화 같은 사람이다. 윤재은(Yoon Jae Eun)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윤재은은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 Design Program, 홍익대학교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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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3
  • [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레디 플레이어 원’ (2018 / 미국 / 스티븐 스필버그)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포스터 3월 28일 개봉 / 전국 887개 스크린(뉴스투데이=클라렌스 영화칼럼니스트)>>> 시놉시스지금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2045년의 미래 사회. 그러나 조금 더 피폐해진 현실 속의 인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에 빠져 산다. 원하는 캐릭터가 되어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상상이 이루어지는 삶. 10대 소년 웨이드(타이 쉐리던)도 마찬가지. 그의 하루 일과 역시 자신만의 공간에서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일로 시작된다.그러나 가상 현실의 삶 역시 녹록하진 않다.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걸 순식간에 잃을 수 있으며, 그렇게 캐릭터가 소멸된 사람들은 아무 미련 없이 현실 세계의 삶도 포기하려 한다. 오아시스의 창시자인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가 가상 현실 속에 숨겨둔 3개의 미션을 찾아 해결한 사람에게 자신의 막대한 유산과 오아시스의 소유권을 상속한다 했지만, 아직 첫 번째 열쇠조차 찾은 이가 없다.>>> 새로운 영화의 길4,50년대 TV와 경쟁하던 시기의 영화들이 시네마스코프의 거대한 화면으로 극장의 존재와 영화에의 관람 의지를 존속시키려 했다면, 요 사이 부쩍 업그레이드 된 3D, 아이맥스 등의 기술력은 VR로까지 진화한 새로운 영상 체험에 대응하려는 한 방법일 것이다.다만 차이라면, 반세기 전의 영화들이 TV가 가질 수 없는 ‘사이즈’로 차별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과는 반대로 스필버그는 VR, 가상현실, 게임 등의 아이템을 이야기 소재와 형식에 적극 수렴하는 쪽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차별화’보다는 ‘심화’의 선택. 이것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나 크리스토퍼 놀란이 <덩케르크>(2017)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체험’의 영화를 좀 더 개인적이고 기술적인 영역으로 끌고 간 방식이다.이는 20세기 후반 <죠스>(1975), (1982), <쥬라기 공원>(1993) 등 선보이는 작품마다 장르적, 기술적 진보에 관해서는 비교 불가능의 선구자적 위치에 있던 스필버그가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여전히 그 위치에 존재함이 증명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오마주80년대의 수 많은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나열해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하는 모양이나, 절대 ‘21세기’적이지 않은 우정과 정의, 사랑의 주제의식은 ‘오글’거리고 ‘힙’하지 못한 20세기식 흥행 키워드지만 이것이 밉거나 우스운 건 아니다.오히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을 조금의 상관관계도 찾을 수 없는 이 영화로 끌어와 만나게 하는 이야기 확장과 영화적 기교의 완성도는 상당한데, 한 장면이 아니라 한 시퀀스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이 변주는 전에 봤던 어떤 작가의 어떤 오마주들보다 흥미롭고 훌륭하다. (자신이 영화적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큐브릭의 조언을 구했다는 말을 그가 타계한 이후의 한 인터뷰에서 스필버그는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큐브릭이 먼저 전화해 온 적은 없었다며 웃지 못 할 팩트까지 덧붙이면서.)오마주가 단순히 따라 그리는 모사 작업이 아닌 심화 발전시키는 창의적 작업이라는 걸 완벽히 설교하는 이 부분은 따로 떼어내어 교재로 씀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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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2018-04-18
  • [윤재은 공간철학] 만물의 근원은 ‘공기(空氣)’이다 - 아낙시메네스
    [사진=윤재은] (뉴스투데이=윤재은 칼럼니스트)질문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생명체의 원초적 욕구이다.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욕구는 다양하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생존에 대한 욕구를 시작으로 행복에 대한 욕구, 사랑에 대한 욕구, 소유에 대한 욕구 등 수많은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철학자의 욕구는 일반적 욕구와 다르다. 본질에 대한 물음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불태우는 철학자의 욕구는 일생을 ‘질문’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질문은 일상적 질문이 아닌 ‘본질적 질문’이다.본질에 대한 철학자들의 질문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성취의 욕구지만, 철학자의 욕구는 반성의 욕구이기 때문이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밀레토스 학파에 속한다. 그의 스승은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6년)이다. 그는 스승처럼 자연철학을 통해 만물의 근원을 밝히려는 철학자였다. 과학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의 사회에서 오직 의지와 직관을 통해 만물의 근원에 도달하려하는 그의 생각은 철학자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다.밀레토스 철학자 탈레스(Thales)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처럼 자연을 통해 세상의 근원을 증명하려는 아낙시메네스는 본질적 질문에 스스로 묻고, 답하였다. 세상을 이루는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스승들의 질문과 같은 맥락이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구하려는 답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만물의 근원은 물도 아니고, 아페이론(apeiron)도 아닌 ‘공기’였다. 그의 눈과 의식 속에서 공기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살아있게 하는 원인이며, 실체였다.아낙시메네스는 세상을 이루는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공기가 아니면 해결될 수 없다고 보았다. 공기는 그 농도에 따라 흙, 물, 눈, 바람 등으로 변하고, 공기의 농도가 뜨거워지면 불과 천제로 변한다. 세계의 모든 변화는 이러한 공기의 농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지구의 자연현상으로 지진, 태풍, 번개 등도 공기의 무한한 힘을 통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자연을 변화시키는 힘은 자연의 생성원인이며, 본질 그 자체이다.아낙시메네스가 세상을 이루는 만물의 생명성에 대한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생각이 공기의 무한한 변화를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세계를 이루는 수많은 다양체의 근원을, 각각의 발생 원인을 통해 찾아내려는 것은 생성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낙시메네스는 세계의 다양한 대상을 하나의 본질로 묶어놓고 생성의 근원에 눈을 돌렸다. 그는 이러한 대상의 생성원인으로 ‘공기’만이 만물의 생성 원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아낙시메네스가 말하는 공기는 어떻게 보면 그의 스승인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하는 무한자의 구체적 실체처럼 보인다. 무한자의 힘이란 만물의 생성 원인이며, 다양성을 포함하는 힘이다. 이러한 다양성의 힘은 여러 생명체에 힘을 부여하는 것인데, 그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은 추상적이어서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구체적이며 본질적인 논리가 필요했다. 이러한 의구심을 하나의 일원론적 사고를 통해 본질의 근원을 주장한 사람이 아낙시메네스이다.아낙시메네스는 지속성의 무한한 힘은 운동에 의해 가능한데, 그가 생각하기에 공기는 세상을 움직이는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탈레스가 주장하는 존재의 근원인 물도 공기의 운동성이 없으면 생성의 힘을 잃게 되고,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하는 무한자의 끊임없는 힘은 공기에 의해서만 생명성이 연장된다고 보았다.아낙시메네스가 말하는 공기의 실체적 현상은 아페이론보다는 구체적이고 인간으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공기의 현상이 물질성의 생성 원인이라는 주장은 이후 많은 철학자들의 논쟁인 실체의 본질성에 커다란 의문을 제기하는 원인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실체처럼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체해야하며, 그 실체는 물질적이어야 하는데, 공기는 실체하지만 물질적이지 않기 때문에 실체의 범주에 들어갈 수가 없다.물질적 실체로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존재의 증명이 가능한 것인데, 아낙시메네스의 말처럼 현상으로서의 공기는 실체의 원인은 될 수 있지만,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원인으로만 남을 수 있다.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을 통하면 세상의 모든 물질은 비물질의 공기로부터 생성되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논리는 물질의 근원이 비물질에서 생성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결국 물질의 생성원인은 비물질적 실체에 의해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논쟁에서 실체를 있게 한 원인으로 ‘신’의 인정은 모든 철학에서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된다.아낙시메네스는 생성의 원인인 ‘공기’가 실체적 대상으로 변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 공기의 '희박성'과 '농후성'의 대립적 개념을 사용한다. 여기서 대립적 개념이란 생성과 소멸의 과정으로서 지속가능한 연장성의 개념으로 후일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phenomenology)에서 등장하게 된다.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의 농후에 따라 질적 차이가 양적 차이를 결정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공기의 본질적 성질에서 가지고 있는 힘의 에너지는 팽창하면 농도가 희박해지는데, 희박은 뜨거운 온기를 불러들여 불이 되고, 수축하게 되면 바람을 만들어 세상을 흔들고, 수축이 지속되면 물, 땅, 암석의 형태로 변화된다고 주장한다.이러한 변화는 공기의 에너지에 따라 세상의 만물들이 다양한 물질로 변하고 생성되며, 소멸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낙시메네스의 공기는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철학을 통해 세상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주장이 된다. 그리고 그의 수축과 팽창을 통한 우주 만물의 동적 세계관은 후일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가 말한 동적 세계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그는 자신의 스승처럼 천문학에도 관심이 있어 지구가 평평한 모습으로 태양, 달, 별 등의 천체가 지구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행동과 시각적 현상으로 보면 지구는 평평한 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된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며 과학적 업적을 이룬 현대인의 입장에서도 지구는 대지처럼 평평한 구조로 인간을 받혀주는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이론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사실이 아닌 것처럼, 당시의 세계에서 바라본 우주의 본질에는 많은 오류와 한계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아낙시메네스는 우주의 여러 행성들이 공기에 의해 떠받들린 상태라고 생각했다. 밤에 빛나는  달빛은 태양빛의 반사를 통해 지구로 돌아온 것으로 보았고, 지구는 원판 모양으로 밑은 공기에 의해 떠받들려서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리는 지구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지구는 공기에 의해 떠 있는 배와 같다.아낙시메네스가 말하는 만물의 순환은 수축과 팽창의 원리를 통해 설명하는데 뜨거움을 상징하는 불과 차가움을 상징하는 물은 지구와 지구 밖의 경계를 가르는 구멍에 의해 빠져나가고, 이렇게 빠져나간 에너지는 다시 공기로 되어 지구로 들어와 만물을 생성하고 소멸하는 연속적 순환구조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공기의 순환을 통해 인간은 호흡하고, 숨 쉬며 생명을 연장하는데, 아낙시메네스는 세계의 전체를 공기의 순환을 통해 생명의 에너지로 채우면서 인간의 영혼을 강화한다고 보았다.철학자의 일생에 있어 앎에 대한 욕구는 물고기가 먹이를 찾아 물속을 떠다니는 물질적 욕구가 아니다. 철학자는 본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때는 이글거리는 사막을 걷기도하고, 어떤 때는 오아시스의 달콤함에 취해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철학자의 삶은 어둡고 긴 고독의 터널을 견뎌내야 하는 삶이기도 하지만, 고독의 한복판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신화 속 인물이기도 하다.아낙시만드로스처럼 철학자에 있어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반성과 의문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태어나서 배우고 성장하면서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여러 명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삶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부모, 스승, 친구 등일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 중에서도 ‘스승’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등불과 같은 존재이다.인생에 있어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거나, 캄캄한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자신의 앞길에 등불이 되어줄 스승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스승의 발자취는 나의 인생이며, 받아들이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야할 나침판이다.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반성하며, 나약한 인간의 의지를 저 거대한 우주의 힘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자! 그대의 가슴에 커다란 스승의 그림자를 간직하라! 그대는 광야를 달리는 희망의 말처럼 그대의 인생은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찰 것이다. 윤재은(Yoon Jae Eun)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윤재은은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 Design Program, 홍익대학교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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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11
  • [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 / 프랑스, 이탈리아 외 / 루카 구아다니노)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포스터3월 22일 개봉 / 전국 175개 스크린(뉴스투데이=클라렌스 영화칼럼니스트)>>> 시놉시스1983년 이탈리아의 교외 마을. 일 일곱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는 매년 그래왔듯 올해 여름도 가족 별장에서 지내는 중이다. 그저 이 계절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런 어느 날, 별장 손님으로 미국인 젊은 인턴교수 올리버(아미 해머)가 찾아오고, 그 역시 이번 휴가를 이곳에서 보낼 예정이다.약간은 수줍고 섬세한 성격의 엘리오는 활달하고 사교성 넘치지만 때론 무례한 듯 보이는 올리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을 공유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그에게 매료되어가는 자신을 보게 되는 엘리오. 으레 매년 여름과 성탄 연휴를 보내는 익숙하고 지겨웠던 시골 마을도 조금씩 특별해지기 시작한다.>>> 모든 멜로는 성장 영화다에릭 로메르의 바캉스 영화들(?)과 같은 배경에, 루치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의 반대 시점에서 매혹되기 시작하여, 카트린느 브레야의 <짧은 횡단>(2001)과 같은 지독한 성장통으로 마무리 되는 영화라고 정리하면 될까?성년은커녕 이제 겨우 1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엘리오지만 한 여름의 익숙한 시골마을은 이미 그를 황혼의 노인마냥 기운 없이 늘어지게 만든다. 또래의 소녀들에 관심은 있지만 그것은 그 시절을 통과하는 소년소녀들의 육체적 호기심 쪽이 크다.그러던 와중에 불쑥 찾아온 이방인.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외모는 물론 누구와도 어렵지 않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교성과 지식까지 갖춘 ‘성인’, ‘남성’. 10대 소년 엘리오가 이십대 청년 올리버에 빠져드는 과정은 마치 커다란 사고를 당해 상처를 입은 사람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충격과 부정, 분노와 타협, 좌절과 수용. 반복되는 계절과 무료하게 이어지는 휴가 중 불현듯 찾아 온 ‘사랑’은 거부하고 싶지만 결국 인정하고 감내해야 하는 ‘사고’와 같은 감정이다. 게다가 그것이 짝사랑으로 그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해주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이 계절은 영원히 잊지 못할 각인된 시간이 될 것이다.영화는 두 인물의 감정 흐름을, 정확히 말하자면 엘리오의 지독한 성장통을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푸르른 숲와 호수, 시원하고 거침없이 달리는 자전거와 자동차를 끊임없이 보여주며 달려가게 한다. 곧 계절이 바뀌고 멈춰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짐짓 모른 채 하면서.>>> 볼까, 말까?멜로 영화이자 성장 영화. 이런 영화들은 대단히 시적이고 탐미적이지만, (유럽영화들 특유의 장르라고 할만한) 휴가철 시골에서 벌어지는 소동들은 어쩔 수 없이 나른하고 미시적인 면을 숨길 수 없다. 그리하여 누구에게는 절절한 사랑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이 어떤 다른 이에겐 별 감흥 없는 부르주아 로맨스로 읽힐 수 있다.요 몇 년 사이 소개됐던 <캐롤>(2015), <문 라이트>(2016) 등 완성도 높은 퀴어 영화의 바톤을 이어받는 작품이라 할 만 하다. 물론 그 영화들을 심드렁하게 봤다면 더 심심할 만한 소지가 있다. 그만큼 호, 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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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2018-04-04
  • [이태희의 심호흡] 김정은은 ‘블랙스완’인가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진의(眞意)’ 두고 지구촌은 논쟁 중다수 전문가들은 김정은을 전형적인 거짓말쟁이 공산주의자 전형으로 규정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진의(眞意)’를 두고 지구촌이 논쟁중이다. 김정은이 과연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국내의 대다수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부친 김정일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기점으로 벌여왔던 ‘벼랑끝 전술’ 놀음이 재연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김정은도 아버지처럼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면 핵사찰을 받겠다고 했다가, 돌연 약속을 파기하고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거짓말쟁이’ 공산주의자의 전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방언론들도 심드렁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사설을 통해 “북한 독재자에게 소박한 양보만 기대하라”고 주장했다. 핵은 보유하고 미국본토 타격 능력만 제거하는 게 김정은의 마지노선이라는 게 이 매체의 전망이다.국내 보수층은 더 극단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대북경제제재를 지속함에 따라 살림이 궁핍해진 김정은이 중국,한국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단언한다. 김정은이 다시 ‘핵 공갈’ 카드를 꺼내들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심각한 어조로 조언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이니셔티브’는 어리석음의 산물이다. 자청해서 김정은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꼬락서니가 된다.‘흰색 백조’라는 고정관념은 ‘검은 백조(the black swan)’의 출현을 간과김정은이 핵포기를 실천하는 블랙 스완이 될 확률 변수는 3가지하지만 과연 그럴까. 김정은은 전 세계인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는 중일까?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의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김정은 본인도 고정불변의 전략을 갖고 있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놀라운 변화의 마그마는 꿈틀대고 있고, 그 결말은 김정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식자층은 여전히 김정은을 비난하고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진실을 바라보기 보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변화 자체를 외면하려는 성향의 산물이다.  발생 가능성이 없지만 사실은 존재하면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갖는 현상을 ‘검은 백조(the black swan)’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흰색 백조’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검은 백조의 출현을 알아차리지 못하곤 한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복사판이라는 판단도 ‘흰색 백조’의 함정에 빠진 결과이다. 오히려 김정은이 완성된 핵무기를 밑천으로 삼아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받은 후 ‘중국식 개혁개방’에 나서려는 ‘블랙 스완’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는 게 현재 진행 중인 변화를 냉철하게 이해하는 방식이다.NPT탈퇴한 북한이 ‘인도-파키스탄’ 모델로 핵보유국이 될 확률은 0%'한반도 비핵화' 는 선대유훈이라는 김정은 발언은 '현실 정치'에 기반김정은이 블랙 스완이 될 가능성을 ‘확률 게임’으로 따져보면 긍정적 변수는 3가지이다. 첫째, 김정은은 독재체제의 존립과 북한경제 발전을 위해 완성된 핵무기를 활용하는 방식과 관련해  ‘핵보유국’ 카드는 현 단계에서 포기했다. 지난 해 연말까지만 해도 국제적인 전문가들은 북한이 ‘인도-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김정은 체제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기반으로 한 핵무기 20~60기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완성했다는 게 한미정보당국의 공통된 판단이다.NPT에서 인정하는 핵무기 보유국은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5대 강대국이지만, ‘친미 국가’인 인도와 파키스탄도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있다. 그 권한은 미국이 행사했다. 인도는 중국견제용으로 인도와 분쟁중인 파키스탄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 전초기지 제공에 대한 기여를 인정해 ‘형님 나라’ 미국이 하사품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는 그런 옵션을 전혀 고려한 적이 없다. 더욱이 인도와 파키스탄은 NPT에 가입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핵무기를 완성했다. 북한은 반미국가일 뿐만 아니라 NPT를 탈퇴하고 핵을 개발한 유일한 국가이다. 미국이 북한을 위해 “NPT가입 국가는 추가로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규범을 깰 리가 없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될 전제조건을 애당초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공식이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 유훈이라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전달한 것도 '현실정치'에 기반한 발언이다. 북한이 ‘인도-파키스탄 모델’의 수혜를 받을 가능성은 0%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는 방안을 협상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돼있다면 ‘핵포기’가 유일한 카드이다.쟁점은 핵포기의 수순과 방식일 뿐이다. 완성된 핵무기를 쥔 김정은은 이미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고민해야 할 ‘블랙 스완’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을 마무리한 김정은, ‘정상국가’ 꿈꾸는 중둘째, 김정은은 ‘불량국가(rogue state)’ 혹은 ‘악의 축(axis of evil)'에서 벗어나 ’정상국가'가되겠다는 꿈을 펼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과의 만찬장과 시 주석 부부와의 만남에서 미모의 부인 리설주를 대동했다. 이는 서구적 관행인 ‘퍼스트레이디 외교’의 모양새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이나 한류 스타 송혜교와의 미모비교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리설주 카드는 정상국가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방중에서 김정은은 ‘황제’의 반열에 오른 시주석과 대등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강한 권력욕은 열등감의 반영이기도 하다. 트럼프에 의해 ‘꼬마 로켓맨’ 혹은 ‘미치광이’로 조롱당했던 김정은은 한국 특사단에게 “그런 대우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포함해 무수한 정적을 제거했지만, 그 피묻은 손을 닦아내고 번듯한 국가원수가 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모든 제국의 역사에서 치열한 권력투쟁기가 마무리되면 문화의 시대가 오듯이, 젊은 김정은도 잔인한 기억을 지워내고 번듯한 지도자로 대우받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미국이 인정하는 정상국가가 되려면 핵무기 폐기가 전제조건임은 물론이다. 김정은이 ‘블랙 스완’이 될 가능성을 높여 주는 두 번째 확률 변수이다.‘총’으로 완성시킨 김정은 독재정권, ‘빵’으로 대중의 지지를 빚어내야황제가 된 시주석은 독재정권과 시장경제의 성공적 결합을 증명셋째 변수는 ‘북한 경제성장’에 대한 김정은의 절박함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인맥은 물론 혈육에 대한 잔인한 숙청과정을 거쳐 정치권력을 굳힌 상황에서 ‘대중의 지지’는 독제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유일한 기반이다. 공산주의 정권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지만, 대중의 지지는 ‘빵’이 빚어낸다. 김정은이 외부세계에서 광기어린 냉혈한으로 투영되는 것과 달리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인기를 구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지만 경제는 좋아지는 아이러니는 종종 벌어진다. 김정은 체제도 그런 구도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북한 경제성장율은 3.9%이다. 나쁘지 않은 수치이다. 중국 등은 6~7% 정도로 높게 추정한다.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체제 안전 보장’ 및 ‘경제지원’을 얻어내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식 개혁개방’을 완성할 때, 김정은 체제는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점에서 중국은 김정은에게 희망적인 사례이다. 독재정권과 시장경제의 결합이 지속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시 주석은 공산당 내의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파괴하고 장기집권의 길도 열었다. 김정은에게는 낭보이다. 철권을 휘둘러도 빵이 넘쳐난다면 정권은 강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트럼프의 ‘리비아식 모델’과 김정은의 단계적 해법 충돌 예상김정은을 블랙스완으로 변신시키는 게 현명한 정치 지도자들의 과제 분수령은 5월 북미정상회담이다. 이 때 김정은이 블랙스완으로 변신할지, 아니면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처럼 흰색 백조에 머무르고 말지가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난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최대 충돌지점은 ‘북핵폐기의 수순’이다.  트럼프 측에서는 이미 ‘선(先)핵무기 폐기-후(後)체제보장 및 경제적 지원’이라는 ‘리비아식 모델’로 못박는 분위기이다. 미국은 지난 2003년 철저하게 CVID에 기반해 리비아와의 핵무기 폐기협상을 벌였다. 3단계에 걸쳐 리비아의 핵무기를 완전폐기한 후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자 2006년에 연락사무소를 대사관으로 승격시켰다. 체제보장 약속을 지킨 것이다. 카다피는 2011년 미국이 지원한 반군에 의해 살해됐지만, 그 평가는 엇갈린다. ‘미국의 약속 위반’이라는 견해와 ‘잔혹 정치’를 지속한 카다피의 업보라는 지적이 공존한다. 물론 김정은은 리비아식 해법에 대해 이미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유훈에 따른 일관된 입장이란 점을 재확인하며 "한국과 미국이 선의로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취하면 비핵화는 실현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핵무기 폐기를 위한 단계별 조치를 취할 때 마다 그에 상응하는 체제보장 조치, 대북경제제재 해제 그리고 경제적 지원 등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한국과 미국의 ‘선의’라는 표현을 쓴 것도 주목된다. 트럼프가 리비아식 모델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북한 사정도 봐달라는 뉘앙스이다. 호전적이기보다는 ‘겸손 모드’이다. 결국 김정은을 흰색 백조라고 몰아붙이기보다는 블랙스완으로 변신시키는 게 현명한 정치 지도자들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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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심호흡
    2018-04-02
  • [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아이, 토냐’ (2017 / 미국 / 크레이그 길레스피)
    ▲ ‘아이, 토냐’ 영화 포스터 ⓒ영화사 진진3월 8일 개봉(뉴스투데이=클라렌스 영화칼럼니스트) ▲ ‘아이, 토냐’ 스틸컷 ⓒ영화사 진진>>> 시놉시스딸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욕설과 폭력으로 훈육하는 싱글맘 곁에서 성장한 토냐(마고 로비).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 세바스찬(제프 길롤리)을 만나 성인이 되자마자 도망치듯 결혼한다. 그러나 빼어난 스케이팅 실력을 제외한 모든 관계에 서툴렀던 토냐에겐 엄마 못지않은 성격으로 손찌검을 일삼는 남편 또한 머잖아 벗어나야 할 존재다.이런 배경을 지닌 토냐는 남들보다 튀는 패션, 선곡으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지만, 이는 가족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를 원하는 심사위원들에게 부당한 점수를 받는 원인이 된다.미국 여자선수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뛴 토냐는 첫 올림픽인 알베르빌에서 실패의 잔을 들이키지만, 하계대회와의 교차 개최문제로 2년 앞당겨진 릴레함메르 동계올릭픽에서 재기를 노린다. 그러나 그 즈음 다시 가까워진 전남편과 그의 친구로 인해 경기 외적인 일이 자꾸 꼬이게 되고 결국 전세계가 경악한 ‘그 일’까지 터지고 만다. ▲ ‘아이, 토냐’ 스틸컷 ⓒ영화사 진진>>>알고 보면김연아 이전에 피겨 스케이팅이 우리나라에서도 큰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카타리나 비트의 올림픽 2연패도, 크리스티 야마구치와 이토 미도리 두 일본계 스타의 우승경쟁도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국가대표 안에서 자국 경쟁자를 향한 ‘린치’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낸시 케리건-토냐 하딩 사건.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2인자가 아름답고 우아한 1인자를 향해 상식 밖의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정의된 세상의 평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단순한 폭력 사건이 아니었음을, 누군가의 인생이란 적어도 그렇게 단편적인 정보와 편견으로만 재단할 수 없음을 <아이, 토냐>는 드러내려 한다. 불우했던 유년 시절, 떠나간 아버지와 폭압적인 엄마 아래서 스케이트만 아는 운동 기계로 자라난 한 소녀는 불행하게도 사랑하는 이마저 그녀를 보듬기보단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너무 일렀던 그 모든 결정들은 그녀의 찬란한 전성기를 좀먹게 한다.그녀를 괴롭힌 폭력은 유년기의 어머니, 청년기의 남편뿐이 아니었다. 점프 실력보단 의상의 디자인과 색깔, 풍기는 이미지의 전시를 중요시한 협회와 심사위원단, 그것들을 편향적으로 왜곡하고 유통시켜 장사에 이용한 언론 매체들, 그리고 그것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소비하고 선입관으로 확대재생산한 대중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수 없이 반복하는 대사. “내 잘못이 아니야.”물론 그녀가 아무리 불우한 가족사를 지녔다 해도 공인이 된 국가대표, 나이가 찬 성인이므로 감내하고 지켰어야 할 책임까지 변명할 순 없다. 그러나 과연 정말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감당해야 할 만큼의 잘못이었을까? 얼마 전 우리 땅에서도 동계올림픽이 끝났고, 비슷한 마녀사냥은 양쪽에서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에 대한 자각과 반성, 조심스런 진실에의 접근은 꼭 이렇게 십 수년이 지난 후에 영화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아이, 토냐’ 스틸컷 ⓒ영화사 진진>>>볼까, 말까?오스카 여우주연상은 <쓰리 빌보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가져갔지만, 마고 로비는 그 트로피의 주인이 바뀌었다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만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그녀는 각종 매스컴에 의해 ‘희대의 악녀’로 묘사되기만 했던 실존 인물을 거친 몸짓으로 생생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수 많은 고비의 선택이 ‘원치 않았던’ 결과로 수렴되는 순간순간의 희로애락을 풍부한 표정으로 드러낸다.오해된 누군가의 인생을 오해한 이들로 하여금 반성과 미안함으로 치환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는 설득력. 토냐로 분한 마고의 연기는 충분히 그만한 경지다. “진실된 캐릭터를 통해 한 인물을 판단하거나 비웃지 않는 것, 나는 이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그녀의 변은 선입관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에 어떤 자세로 침잠해 들어갔는지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증거다. 굉장히 오래 기억할 만한 캐릭터, 연기, 배우.*토냐 하딩과 만난 마고 로비https://www.youtube.com/watch?v=7LxaS0e7ibo&t=85s*실제 토냐 하딩과 영화 속 토냐 하딩 비교https://www.youtube.com/watch?v=xLubKT0E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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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2018-03-19
  • [송대욱의 건강 쓰리잘](23) 신경증, 외부적 스트레스와 내부적 갈등으로 지친 몸과 마음의 이야기
    뉴스투데이에 건강칼럼을 연재해왔던 송대욱 칼럼니스트가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고인 ‘송대욱의 건강 쓰리잘’을 새로 시작합니다. ‘쓰리잘’은 ‘잘먹고’, ‘잘싸고’, ‘잘자고’를 줄인 말입니다. ‘쓰리잘’을 화두로 삼아 지혜의 바다를 종횡무진 누비는 송 칼럼니스트의 글이 직장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송대욱 칼럼니스트)불안, 짜증, 화남 등의 정신적 변화와 불면으로 일상생활 지장  신경증, 스트레스 완화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필요 현대생활과 현대인 무엇 때문에 질병이 발생할까? 과거의 삶과 현대사회의 삶을 비교해보면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영양섭취가 부족하고, 추위와 더위 등의 대기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즉 대기환경에 의한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받거나, 세균이나 오염된 음식을 섭취하거나 음식섭취가 부족하여 질병이 발생하였다. 또 신체적 노동의 강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했다는 점도 질병의 원인으로 주목된다.현대의 삶은 과거의 삶에 비하여 비교적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대기환경에 보호받으며 살고 있으며 신체적 노동의 강도 또한 줄었으며 이를 원인으로 발생하는 질병은 줄었다. 하지만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으며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더 많이 증가하였다.넘치는 정보를 인지하는 과정과 넓어진 만남에서 사람들과 일으키는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과거에 비하여 많아지고 그 성격 또한 복잡해졌다. 과거에는 정해진 사회환경에 ‘적응’과 ‘부적응’이라는 측면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지만, 현대사회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독특한 자신만의 개성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아를 실현하는가가 더 큰 문제로 대두된다.정신과적 진단은 크게 두 분류로 구분된다. 정신분열병, 조증과 같은 정신증 그리고 신경증으로 나뉜다. 신경증 환자는 정신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망상이나 환각, 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지만, 일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불안정한 정서와 생활 태도를 보인다.원래 신경증의 분류에 우울증, 불안증, 공포증, 건강염려증 등이 포함된다. 신경증의 초기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또는 환자 본인은 스트레스와 관련되어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두통, 불면, 짜증 등의 증상이 먼저 나타난다.가벼운 신경증은 약간의 불안, 짜증, 화남, 권태감 등의 일반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느낌만을 호소한다. 하는 일 마다 짜증이 나고, 나를 대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화가 나고, 행복감도 자존감도 떨어지는 정도는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분전환이나 취미활동, 휴식을 통하여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그 중 일부에서 기분이나 생활태도가 정상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신경증이 된다. 환자들은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라고 하면,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반문을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질환에서 스트레스는 병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스스로 스트레스에 대한 인식이 없어도 별 다른 이유 없이 나타나는 마음과 몸의 변화를 다시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신경증은 불안, 짜증, 화남 등의 정신적인 변화와 불면으로 일상생활의 지장이 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목, 어깨의 통증과 긴장성 두통,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안, 불면, 짜증과 같은 기분이나 감정과 같은 마음의 문제는 호소하지 않으면서 신체적 증상으로 고생하기도 한다.외부적으로 확실한 갈등상황이 아닌 경우라도 일상생활에 대한 불만, 불안, 행복감의 결여 등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할 수 있는데, 환자는 스스로 스트레스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지 잠을 잘 못자고, 소화불량으로 잘 못 먹고, 복부 불편감이나 대변이 불편해 잘 못싸고 있다는 것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혈액검사나 내시경검사 등 여러 검사를 하도 별다른 소견이 없다고 신경성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런 경우는 스트레스와 기분 및 감정의 문제 그것이 일으키는 신체적인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 없는데요.”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진료를 했을 때 스트레스와 관련된 팽팽한 현맥이 나타나거나 꺼끌꺼끌한 삽맥이 나타나고, 설진에도 신경계통의 이상 징후를 관찰할 수 있다.스트레스는 어떤 과정을 통해 신체적인 증상을 일으킬까? 본래 스트레스 반응은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여 신체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다. 하지만 현대인에서 스트레스가 신체적인 증상이나 질병을 일으키는 과정은 단지 신체적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신체적인 위협뿐 아니라 자존감이 상실되는 정신적인 위협도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정신적인 위협에 반응하기 위하여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은 체신경과 자율신경을 통해 신체에 영향을 주게 된다. 체신경의 신경전달물질이 과분비 되면 근육이 긴장되거나 경련이 발생하여, 목이나 어깨의 통증 그리고 긴장성 두통을 일으키며, 근육통도 발생할 수 있다.또 자율신경에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상황이 되면 내부 장기도 긴장과 경련이 발생한다. 심장이나 호흡기의 긴장이나 경련은 가슴 두근 거림, 가슴답답, 한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일으키고, 소화기의 긴장이나 경련은 복통, 메스꺼움, 구토, 구역감, 설사 또는 변비, 복부 불편감을 일으키게 된다.가슴에 나타나는 가슴통증, 답답함, 호흡곤란 등이 나타나는 경우 심장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면 공황장애로 진단되고 있으며, 소화기에 삼키기 힘든 증상이나 복통, 소화불량, 조기포만감, 변비 또는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서 내시경검사에서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는 비미란성 역류성식도질환(식도 점막에 손상이 없는 역류성 식도염), 기능성 소화불량증, 심인성 위장장애, 과민대장증후군 등으로 진단된다.이상의 질환은 보통 치료가 잘 되지 않고 만성으로 되거나 재발하는 경향을 나타내며, 이런 질환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한의학은 마음과 몸을 구분하여 보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감정과 장부를 연관하여 판단하며 이를 함께 치료하는 것이 특징이다.몸과 마음을 함께 치료할 때 스트레스와 관련된 기분장애, 정신장애, 신체적 증상도 치료의 열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별 다른 이유없이 불안하고 잠을 못 이루며, 두통이나 짜증이 있다면 스트레스에 의한 신경증의 초기는 아닌 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으며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이해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 상지대학교 한의학과· 경희대학교한의과대학원 박사수료· 덕수한의원 원장· BIG SYSTEM 대표· Sni 연구소 소장· 성정사상의학회 총무이사· MBTI 전문강사 http://blog.naver.com/snq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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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대욱의 건강 쓰리잘
    201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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