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차이(差異)’로부터 형성된 개념

윤재은 대기자 입력 : 2014.08.04 08:04 |   수정 : 2014.08.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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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차이(差異)’로부터 형성된 개념:
푸르른 창공을 마음껏 나는 새들처럼 차이(差異)의 장벽(障壁)을 넘어 자유(自由)로 나아가야 한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인간의 자의적(恣意的) 해석에서 나온다. 생각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실체(實體)에 대해 수많은 판단과 의견을 내놓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내놓은 판단과 결론은 단지 의견(意見)일 뿐 본질의 실체에 도달할 수 없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제의 정의(正義)가 내일의 불의(不義)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은 ‘차이(差異)’에서 나오게 된다.
 
신으로부터 주어진 정신과 육체는 하나의 결합을 통해 마침내 ‘인간(人間)’으로 태어난다. 신성한 인간으로서 자존감은 선(善)에 있으며, 정의(正義)에 다가서야 한다. 하지만 선(善)과 정의의 개념이 실체에 도달하지 못하면, 이러한 생각도 차이(差異)를 갖게 되고, 차이가 분열(分裂)을 가져온다.
 
정의(正義)와 선(善)의 형성개념이 ‘차이(差異)’로부터 나온다면 차이로부터 차이의 개념을 구별하여야 한다. 삶에 있어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물질의 개념도 그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의 물질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게 태어난다. 하지만 그 정도의 차이를 비교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그 때부터 불안(不安), 우울(憂鬱), 불행(不幸)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현대문명의 풍요 속에 사는 사람들과 아마존 밀림에서 사는 원주민들과의 ‘차이(差異)’를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한다.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 빈곤을 느끼는 물질적 인간과 신이 준 자연에서 자연의 섭리를 느끼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욕구만을 바라는 원주민의 삶은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 문명 속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를 ‘상대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차이(差異)는 그것이 속하는 차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차이(差異)란 많고 적음, 높고 낮음, 목적의 성취와 비성취가 아니라 서로 다름 속에 나타나는 차이이며, 이러한 차이의 실체에는 하나라는 궁극의 목표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궁극의 목표는 ‘행복(幸福)’추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발로 걷는 인간과 네발로 걷는 동물의 차이는 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걷는 방식(方式)’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도 두발과 네발을 볼 뿐 그 이상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면, 그 차이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발과 네발로 걷고, 뛰어다니는 동물을 볼 뿐,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새는 두 개의 발이 있지만 걷거나 뛰지 않고 중심을 잡는 일에만 사용한다. ‘새들의 발에는 세상의 중심(中心)이 있고, 기다림이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눈높이에서 수평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뛰어넘어, 하늘에서 바라본 새들의 세계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푸르른 창공을 마음껏 나는 새들처럼 차이(差異)의 장벽(障壁)을 넘어 자유(自由)로 나아가야 한다.’ 자유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최대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많은 일에 봉착(逢着)하지만 생각의 차이에 따라 그 것은 기쁨이 될 수 도 있고, 슬픔이 될 수도 있다. 기쁨과 슬픔은 종이 한 장의 앞뒷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실체에서 앞과 뒤를 형성한 종이 한 장은 종이 한 장의 실체에 속한다. 비록 그것이 앞과 뒤라는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의 실체는 종이 한 장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종이 한 장의 실체와 같이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하지만 조그마한 시련에 굴복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도피할 필요는 없다. 순간순간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 또한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치러진 7.30 보궐선거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각 지역에서 나온 많은 후보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철학과 이유를 들어 자신을 뽑아달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홍보하였다. 그리고 많은 언론에서 후보자들에 대한 판단과 기사를 내보내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등장시켜 후보자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하였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평가와 방식은 매우 자의적이고 추상적인 것일 수 있다.
 
만약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이 그대로 실천된다면 그 지역뿐 아니라 그 지역을 벗어난 모든 국민들에게 까지 행복을 가져다주는 고무적(鼓舞的)이며, 바람직한 정치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운 공약이 당선만을 위한 공약이었을 뿐, 지키지 못할 공약이라면, 이는 사기(詐欺)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이란 약속을 하면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유권자(有權者)는 그들의 약속을 믿는 순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당선된 사람, 간만의 표차이로 당선된 사람, 압도적 표차이로 당선된 사람 등등 다양한 선거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수년 혹은 수십 년을 정치에 몸 바친 훌륭한 사람들이 쓰디쓴 고배를 마시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 번의 고난이 힘들다고 그동안 살아왔던 정치적 삶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혹독하고 추운 겨울이 있으면, 그 이듬해 봄은 보다 더 따스하고 아름다운 꽃이 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열정적으로 선거에 땀 흘린 모든 후보자들을 격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당선을 위해 힘쓴 모든 분들께도 경의(敬意)를 표해야 한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민주주의를 지켜가고 보다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선된 사람은 당선된 사람으로서 책임을 가지고 정치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낙선한 사람은 낙선한대로 시간을 가지고 내일을 기다려야 한다. 선거는 운동경기와 같은 것으로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패배로 그동안 살아온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포기와 같다.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승자와 패자를 본 것이 아니고, 이길 수 있는 경기와 질 수 있는 경기를 본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사람이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 인간으로서 나는 나 자신 속에 있으며, 그 누구도 나의 실체를 평가하거나 결론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평가는 오직 내가 흘린 땀방울만이 알 수 있고, 내가 고민한 시간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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