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나’는 하나이며, 같은 것 - 인간으로서 ‘나’이고, 우주(宇宙) 속에 고독한 존재(存在)로서 ‘나’이다.

윤재은 대기자 입력 : 2014.07.24 22:42 |   수정 : 2014.07.2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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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재은 기자

‘나’는 하나이며, 같은 것 – 인간으로서 ‘나’이고, 우주(宇宙) 속에 고독한 존재(存在)로서 ‘나’이다.


(뉴스투데이=윤재은 대기자)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그들 속에 ‘나’ 또한 하나이다. 존재로서의 보편적 속성 안에서 ‘나’는 개별자이며, 하나인 것이다. 하나란 본질적으로 근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시간의 흐름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의 속성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수많은 속성들 속에서 ‘나는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인간으로서 ‘나’이고, 우주 속에 고독한 존재로서 ‘나’이다. 나는 나의 속성 속에서 나를 인식하고, 그 속에서 나의 존재 또한 인식한다.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잠시 왔다가 사라져버리는 유한의 존재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하나이며 실체인 것이다.

수없이 다른 타자(他者)들은 나의 속성처럼 또 다른 ‘나’이지만 그것은 인식하려는 자만이 알 수 있는 ‘나’인 것이다. 인류의 스승인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으며, 한 손을 하늘로 쳐들고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것이 아니고 ‘나’의 존재가 가장 소중하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없다면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되어 현실과 상상을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하나로서 그 자체이며, ‘선(善)’이기도하고 ‘악(惡)’이기도 하다. 나의 정신과 육체 속에 수많은 생각과 행동은 선이면서, 악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이 만들어낸 두 개의 이분법은 결국 ‘나’라는 하나에서 나왔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하나의 속성에 속한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나무의 가지가 두 개, 혹은, 두 개 이상으로 분화한다고 하여 그 나무의 뿌리가 다르다고 말 할 수 없다. 결국, 그 나무는 하나의 뿌리에 속하게 되고, 그 뿌리가 생명을 다하면, 그 나무에서 나온 수많은 가지들도 생명을 다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육체는 하나의 ‘나’에서 나오지만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나무의 가지와 그 가지에서 피어난 나뭇잎의 관계와 같다. 하나의 실체는 변치 않는 속성의 본질이며, 근원이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형이상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선(善)에서 있는 것이 선(善) 자체가 아니라면, 있는 것에서 있음이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에서 있다고 하는 것도, 하나가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선(善)은 선으로서 본질에 속해야하며,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있는 것이지, 있다가 없다가 하는 유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있는 것에서 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있는 것이 아니며, ‘나’또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로서의 ‘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엇임 들이거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며, ‘나’ 또한 이와 같다.

‘선(善)’에 있어 하나인 것은 선이며, 본질이고,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선(善)에서 있는 것이 실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선이 아니다. 선(善)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선에서 있음은 선 자체로서 필연적이며, 하나이다. 선(善)의 본질은 결국 선에서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 언급된 선은 하나이며 실체이고, 선에서 분화된 또 다른 선들은 본질 속에서 하나의 얼굴을 가진 그림자에 속하여,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우리가 사는 물질세상은 본질로서의 ‘나’와 선함으로서의 ‘나’를 망각하게 한다. 수많은 물질들의 끝없는 욕망 속에서 하나의 ‘나’는 수많은 욕망의 그림자를 몰고 다니며, 나의 선(善)함을 그림자로 삼켜버린다. 그림자에 가려진 ‘나’는 인간의 본질로서 하나임을 망각한 체 물질에 갇혀 또 다른 ‘나’를 생각하게 한다.

최근 세월호 사건으로 세상에 주목을 받은 유병언 사건은 우리에서 많은 것을 시사(時事)하게 한다. 그는 종교계의 지도자, 세모그룹의 회장, 청해진 해운 회장, 사진작가 등으로 사회적 인간으로는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불러온 물질적 욕망의 과도함으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그 또한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였다. 한 인간으로서 유병언은 선(善)과 악(惡)을 동시에 보여준 슬픈 예이다.

노란 리본이 슬픈 사자(死者)의 노래로 대한민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린 이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흐느끼는 나, 슬퍼하는 나, 고독한 나, 방황하는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나’인 것이다. 처참한 죽음으로 삶의 끝을 마감한 유병언을 보면서, 이 세상 누가 그를 선(善)하다고 하거나 악(惡)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한 인간으로서 사회적 성공을 거두기까지 그는 수많은 노력을 하고 그 자리에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과도한 욕심이 만들어낸 개인적 욕망은 더 많은 물질과 명예를 쫒다가 결국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라는 가치관의 문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라는 행동관의 문제, ‘나’는 행복한가? 라는 목표관의 문제를 교훈적으로 말하고 있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현재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Design Program, 홍익대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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