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SK 최태원 회장의 ‘탈 신자유주의’를 주목하는 까닭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7-09-12 17:19   (기사수정: 2017-09-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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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최태원 회장, 한국의 재벌 오너 중 신 자유주의에 대한 통찰력 가장 뛰어나

‘사회적 가치’ 추구가 기업의 생존 좌우한다는 최 회장의 지론은 '도덕' 아닌 '현실'

한국의 재벌 2세 또는 3세 오너들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그들 중 가장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임은 분명하다. 한국 재계가 바이블로 떠받드는 ‘신 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에 대해 최태원 회장만 일찍이 눈을 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 창출이 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윤추구’만이 기업의 유일한 가치라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철학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도덕 감정에 의해 견제되지 않는 시장경제의 이윤추구는 불평등이라는 치명적인 ‘암’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재벌 오너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최 회장은 문제점을 발견한데 그치지 않는다.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 실천을 역설하는 중이다. 해결 주체는 기업이라는 게 그의 견해이다. 기업이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펴야 한다는 논리이다.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행위를 ‘사회적 가치’라고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사회적 가치 추구야말로 조만간 다가올 미래에 기업의 핵심적인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을 역설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달 21일 ‘제 1회 이천 포럼’에서도 “격변 속에서 심화하는 불평등을 해결하고자하는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기업이 사회적 가치 창출을 고민하는 선도자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품과 서비스에 사회적 가치를 더하지 않고는 더 이상 기업의 생존이 어려운 시대”라며 “미래에는 사회적 가치 창출이 존경받고 사랑받는 기업이 되는 원천이라고 확신한다”고 진단했다.

노인, 장애인 등과 같은 취약계층의 생존기반이 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최 회장의 지원도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재계 총수간의 회동에서 화제가 됐던 ‘전주 비빔빵’은 SK가 후원한 사회적 기업이다. 지역 노인 수십 명이 이 기업에 취업해 보람과 돈을 벌고 있다. 최 회장은 이런 사회적 기업 지원에 48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최 회장의 활동내용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부자들에 비하면 씀씀이가 작아 보인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본가들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버크셔헤서웨이 CEO 워런 버핏 등은 벌써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고 있다. 그들이 기부한 돈은 대부분 미국을 떠나 아프리카 빈곤 아동 등을 돕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서구 자본가들의 기부 행위는 시장경제 유지 전략

한국 재계와 경제학자들만 작동 안되는 신자유주의의 ‘낙수효과’ 옹호

빌 게이츠의 경우 ‘독점기업’전략으로 돈을 벌었다는 과거의 오명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양극화된 세계의 더 큰 구조적 불평등 치유에 힘을 쏟고 있다는 느낌이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은 ‘사회적 가치’ 창출의 선구자들이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과 같은 재계 오너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분배 문제’를 화두로 삼는 것은 한국에서는 희소한 사례이다. 대다수 한국의 재벌들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한다. 조세를 줄이고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면 기업이 신이 나서 이익을 극대화하고, 그 이익이 넘치면 자연스럽게 분배되는 ‘낙수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 경제학 교수들 대부분도 비슷한 입장이다.

사실 신자유주의는 이론적 틀이 아담 스미스를 창시자로 하는 고전파 경제학과 동일하다. 1980년 미국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보수당 소속 대처 수상이 ‘조세’와 ‘복지’를 줄이고 시장자율을 대폭 확대하는 경제정책을 도입하면서 ‘신자유주의’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내용은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학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당시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이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인해 경제적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레이건과 대처의 ‘신자유주의’ 처방은 적절했다.

그러나 모든 이론은 시대의 산물일뿐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37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해법’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되버렸다.

20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된 정보기술(IT)사회와 21세기 초반의 4차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자동화’가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진행중이다. 자동화 시대에는 능력의 격차에 따른 소득의 격차가 극대화된다.


미국 대기업 CEO와 일반 직원 연봉 격차, 20배에서 300배로 폭발적 증가

마이클 조던이 남북전쟁 전에 태어났다면?...자유주의는 '철학의 빈곤’을 정당화

미국의 주요 기업 경영자(CEO)와 일반 직원 간의 연봉 격차는 1960년대에는 20배 안팎이었으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300~400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지난 해 연말 영국의 시민단체 ‘고임금센터’ 보고서에 의하면 영국기업 CEO들의 평균 연봉은 일반직원보다 131배가 많다. 20년 전인 1998년에는 48배에 불과(?)했다.

물론 못사는 사람은 ‘재능’이 없고 ‘노력’이 부족한 자신을 탓하라는 반격도 종종 제기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반격은 진정한 철학의 ‘빈곤’에서 비롯된다. 이 점에서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은 철학의 빈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소유를 절대적 가치로 여긴다. 부유함도 개인의 소유이고, 부유함을 만들어낸 재능이나 노력도 개인의 소유이다. 따라서 국가나 공동체가 개인에게 부를 분배하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성취는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일반 직원의 수백배 연봉을 받는 저명한 CEO가 과연 그만큼의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산술적으로 계산하기도 어렵고, 그런 계산을 해 본적도 없다. 분명한 것은 한 CEO의 성공에는 수많은 직원과 관련자의 뒷받침과 조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철학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한 성공한 CEO의 재능은 시대가 보상해준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스티브 잡스가 20세기가 아니라 17세기에 태어났다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좀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은 바구니에 공을 던져 넣는 재능으로 억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그 재능은 온전히 그의 소유라고 보기 힘들다.

만약에 마이클 조던이 남북전쟁 이전 시대에 태어났다고 치자. 흑인인 그는 면화농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 그 경우 조던이 면화를 따지 않고 바구니에 공을 넣는 연습만 했다면 백인 주인에게 매를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부와 성공을 부르는 인간의 재능이란 자기 소유라고 단언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배경이 결합됨으로써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결국 탁월한 재능을 소유해 성공한 인간은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 ‘빚’은 최태원 회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상환할 수 있게 된다.


이상한 한국사회 여론, 최 회장의 ‘탈 신자유주의’ 행보에 무관심하고 ‘사생활’에 집착

가장 젊은 재벌 2세 행보에 힘 실리면, ‘재벌 3세 시대’ 변화의 기폭제 될 듯

더욱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복지국가’의 시대에는 ‘활력’을 주었지만 자동화시대에는 ‘다수의 빈곤’을 부르고 있다. 그 빈곤은 '증오'라는 부메랑이 돼 기업과 성공한 사람의 안락함을 뒤흔드는 비수로 날아오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을 굳이 부자 입장에서 명명한다면 ‘빈곤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빈곤’이 빈자뿐만 아니라 부자에게도 위기가 되는 상황인 것이다.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만이 생존하고 존경받을 수 있다고 역설하는 것은 바로 ‘빈곤의 역설’을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요컨대 그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격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낸 결과물이다.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실행하는 ‘저승사자’쯤에 해당됐던 국제통화기금(IMF)도 양극화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6월 보고서에서 “신자유주의 몇 몇 정책이 경제성장을 이끈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이는 지속적 성장의 걸림돌”이라고 평가했다.

최 회장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는 기업은 지속적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소리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최 회장의 ‘탈 신자유주의 행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희박하다. 이상스러울 정도이다. ‘사회적 가치’ 추구라는 최 회장의 새로운 경영전략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될 때 그 동력은 폭발하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여론은 ‘현명’하면서도 ‘우매’한 양면성을 갖는다. 촛불민심은 ‘현명’했지만, 최 회장에 대한 여론은 ‘우매’한 측면이 크다. 내연녀와의 동거 및 부인인 노소영 나비미술관 관장과의 이혼문제 등과 같이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최 회장 관련 이슈는 한국사회의 변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관음증적인 쾌감의 소재일 뿐이다.

만약에 한국 국민들이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추구행보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지지를 표명한다면, 그 영향력은 극대화될 것이다. 그 영향력이 극대화되면 그 수혜자는 양극화라는 중병이 악화되가는 한국사회이다.

최 회장의 행보가 진보성향인 문재인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라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공학적 분석이 언제나 날카롭지는 않다. 최 회장은 오래 전부터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기업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관련 저서도 출간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실정법을 어겨 구속됐다는 이력으로 인해 최 회장의 경영철학이 지닌 가치가 폄하되는 것도 우리 사회에 이롭지 못하다.

최 회장의 한국 재벌구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그의 '사회적 가치론'의 잠재력을 가늠케 해준다. 그는 재벌 2세 중에서 가장 젊다. 2세 경영인중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수년 째 와병중이고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건재하고 있지만 고령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 등의 3세가 한국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이런 구도속에서 '사회적 가치론'을 전면에 내세운 최 회장 경영 철학이 폭발력을 가지려면, 그가 스타가 돼야 한다. 


[이태희 편집국장 youyen2000@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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