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인터뷰]① 10억 매출 사업가 된 ‘중사’ 출신 임우영 대표의 ‘인생 투쟁기’
강소슬 기자 | 기사작성 : 2017-06-30 17:58   (기사수정: 2017-06-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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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우영 카모그라프 대표 [사진=뉴스투데이 강소슬 기자]
(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흙수저’ 취준생들의 희망이 될 카모그라프 임우영 대표, “나를 만든 것은 긍정의 힘”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 청년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는 ‘흙수저’이다. 부모의 든든한 지원 없이는 좋은 학교에 가는 것도, 다양한 스펙을 쌓는 것도 힘들다며 낙담하고, 도전보다는 포기를 선택하려 하는 취준생들도 많다. 그들에게 희망이 될 31살의 카모그라프 임우영 대표(CEO)를 지난 29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성공의 문턱에 접어 든 그의 짧은 인생은 한 마디로 '투쟁기'이다.
 
카모그라프는 2015년 설립된 국산 아이웨어 브랜드로 패션 불경기 속에서도 독특한 마케팅으로 해외 명품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브랜드가 출시된 지 1년 만에 연 매출 10억을 달성했다.
 
임우영 대표는 소위 말하는 ‘흙수저’ 출신이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 때부터 식당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용돈을 벌어 생활했고, 부모님에게 대학 등록금의 부담을 짊어 드리는 것이 싫어 직업군인을 선택해 자신의 힘으로 야간 대학을 졸업했다.


임 대표는 한국의 취준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주문에 이렇게 답했다.
 
“취준생들이 안 될 것이라 부정적인 생각만 가지고 위축되어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공부를 잘 하지도, 집안이 좋지도 않았기에 일을 고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사회에서 얻게 된 직업이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직업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배우며 성장한다는 자세로 노력하며 일했습니다. 그 마음가짐이 원동력이 되어 이 자리에 서게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그의 인생역정과 성공 비결을 들어보자.
  
  

▲ 임우영 카모그라프 대표가 카모그라프 쇼룸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투데이 강소슬 기자]

대학갈 형편이 안돼서 ‘직업군인’을 선택한 20 살 청년
 
Q. 대학 등록금의 부담으로 20살 대학 진학을 포기 했다고 들었다.
 
A. 공부를 특별하게 잘 했던 것도 아니었고, 집안이 잘 사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용돈은 내가 벌어 쓰기 위해 식당에서 서빙 하는 일부터 시작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20살이 되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대학 등록금은 엄청 크게 느껴졌고, 부모님께 대학등록금의 짐을 짊어드리게 하기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일식집 주방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2년간 일을 하다가 군대 갈 나이가 되어 직업군인으로 군에 들어갔다.
 
Q. 2년 후 제대하는 군인이 아니라 직업군인을 선택한 이유는?
 
A.22살에 시험을 보고 하사로 입대해 26살에 중사로 제대했다. 군 생활하며 대학 졸업장도 함께 땄다. 직업군인을 선택한 이유는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돈도 벌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누구나 2년간 군대에 가야하는데, 직업군인을 선택하면 4년 6개월 근무를 하게 된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더 보내야 하지만, 직업군인으로 들어가면 당시 초봉 14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고, 당시 자기개발을 위해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해줬다.
 
어차피 가야할 군대 병사생활하며 월 10만원 정도 받아가며 2년을 보내느니, 월급 받으면서 대학 등록금 50% 감면 받아 대학 졸업장까지 따오자는 목표로 직업군인을 선택했다.


군생활하며 2년제 야간대학 졸업…소심했던 ‘그’, 교관업무 맡으며 ‘자신감’ 얻어
 
Q. 군 생활하며 대학교에 다니는 일이 힘들지 않았나
 
A. 대학은 2년제 야간대학교로 진학했다. 직업 군인도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당시 20대 초반이라 게임도 하고 싶고, TV보며 시간 쉬고 싶고, 술 마시고 싶은 유혹이 많았지만,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꼭 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한 뒤 보상의 개념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스트레스도 없이 즐겁게 군생활 하면서 부모님 도움 없이 대학교 졸업장도 딴 것 같다.
 
Q. 직업군인으로 힘들었던 점
 
A. 사실 직업군인으로 힘들었던 점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고 자신감을 갖게 만들어준 인생의 전환점 같은 곳이라 감사하게 생각한다. 굳이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 처음 하사로 군에 들어갔을 때이다.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아니 두려워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으면 떨려서 말이 잘 안 나왔다. 그런 내가 병사를 가르키는 교관업무를 맡게 되었다.
 
직업군인이 교관업무라 그래서 병사를 가르치는 일이다. 병사 100명 앞에서 떠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고 힘든척도 하면 안된다. 그러한 모습들은 병사들은 나를 얕잡아 보게 되고 내 말을 따르지 않게 된다.
 
‘이보다 더한 환경 속에서 일 했던 적도 있는게 이걸 못할까!’라는 생각으로 혼자서 끊임없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연습을 하며 노력했다.
 
군대는 절대 평가제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평가받게 되어 있다. 진급을 위해서는 계속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 학창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공부를 나는 군에 들어가서야 시작 한 것이다.(웃음)


군수보급관 보직 수행하며 경제와 기업 생리를 이해
 
Q. 직업군인 생활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군대에 있을 때 다양한 근무를 했다. 교관업무를 2년 하고, 모든 물자를 통 관리하는 직무인 군수보급관을 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직무라 군생활을 20년 정도 한 직업군인이 하게 되는데 대대장님의 신임을 얻고 운이 좋아 직업군인 2년차에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거기서 모든 행정업무를 배울 수 있었다. 대기업의 직급이나 부서는 군대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군대에서는 나라의 보호를 위해서 체계적인 단계로 부서가 나뉘어 있고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체계적인 단계로 부서가 나뉘어 있다.
 
군생활 중 군수보급관을 하며 이걸 조금만 바꾸면 기업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군생활을 하며 경제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군대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방법 등은 지금 사업을 하면서도 많이 적용해 브랜드를 운영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훈련도중 전방십자인대 다쳐서 전역 결심…존재가치 확인해준 대대장에게 ‘감사’한 마음 
 
Q. 직업군인을 포기한 이유.
 
A. 눈 오늘날 산에서 훈련을 받다 전방십자인대가 다쳐서 군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군대는 전쟁 나갔을 때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는데, 전방십자인대를 다치게 되면 전역을 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 군인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6개월간 군 병원에서 수술 후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때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금 정리하게 되었다.
 
‘특별하지 않던 존재라 생각하던 내가 군대에 와서 인정도 받고 남 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는데 나가서 뭘 못하겠나 사회에 나가서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몇 년 뒤 내 삶이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군생활을 하며 자신감이 많이 붙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고 과감히 전역을 선택한 것 같다.
 
Q. 제대 할 때 아쉽지는 않았나.
 
A. 나와서 엄청 고생을 하긴 했지만, 제대를 할 당시에는 아쉽다는 생각을 못했다. 군대라는 곳이 인사이동이 많고, 누군가 나간다고 할 때 아쉬워 하거나 잡지 않는 곳이다.
 
전역 한다고 대대장님께 보고 드렸을 때, 주임원사님과 대대장님이 잡아주셨다. 대대장님은 직접 부모님께 군에 필요한 인재라며 전역하지 않도록 잡아달라는 전화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대대장님과 군생활하며 만난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당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차올랐다. ‘무엇이든 정말 노력해서 열심히 해나가면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확고해지도록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대대장님께 전역 후 무엇을 할 것인지, 왜 나가야만 하는 것인지 한 시간 가량 브리핑을 하고 5년간의 직업군인 생활을 마쳤다.
  
 

▲ 임우영 카모그라프 대표가 이동식 쇼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투데이 강소슬 기자]

직업군인 생활을 접고 시작한 안경 영업사원, 월 100만원씩 까먹으면서 하루 10시간 일해
 
Q. 제대 후 어떤 일을 했나.
 
A. 군 병원에서 6개월 입원하고, 다리가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바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지 않았기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사실 많지 않았다. 제대 후 한 달 만에 안경을 판매하는 영업사원으로 취업을 했다.
 
Q. 처음 취업 후 어려움은 없었나.
 
A. 안경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4년 영업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경험이 진짜 나에게는 훌륭한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하지만 처음 사회로 나왔을 때 너무 어려워서 후회 많이 했다.
 
지금은 안경과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에게 기본급이 있고, 회사에서 다양한 지원도 해주지만, 내가 처음 영업사원을 하던 당시 한 달에 기본급 30만원만 지급됐으며, 인센티브 10%만 받을 수 있었다. 차량 유지비와 식비 등 모든 것은 내 사비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매 달 100만원씩 까먹으며 처음에 일을 했다.
 
Q. 한 달에 100만원씩 까먹으며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A. 나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했다. 내가 군대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부딪혀 보자고 생각했다. 당시 영업사원으로 들어간 회사에는 영업이사, 부장, 과장이 근무하고 있었다. 영업을 나보다 5년에서 15년가량 많이 한 베테랑 들이었다.
 
모두 거래처가 분배되어 있었는데, 나는 소위 말하는 ‘블랙리스트’ 거래처만 넘겨받았다. 경력이 안 되니까 아무도 담당하려하지 않은 곳들을 떠맡게 된 것이다. 넘겨받은 거래처에서 한 2달 정도는 욕만 먹은 것 같다.
 
2달간 받은 거래처들을 돌고는 거래를 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 넘겨 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영업 방식을 바꿨다.
 
Q. 영업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었나.
 
A. 피로회복제를 약국에서 왕창 사서 아예 모르는 안경점들을 찾아갔다. 안경점에서는 영업사원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오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열고 죄송하다는 인사부터 한 뒤 인사만 드리러 왔다며, 혹시 저희 회사 물건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달라며 짧게 인사말만 남긴 뒤 나왔다.
 
당시 영업 이사, 부장, 과장은 하루에 5~6시간 정도 일하며 월급을 받아갔는데, 나는 월 100만원씩 까먹었지만, 피로회복제 비용은 투자금이라 생각하며 10시간 넘게 돌아다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니 과장보다 많은 수익을 냈고, 6개월 뒤에는 부장보다도 많은 월급을 받아갔다. 그리고 회사에 입사한 뒤 1년이 지나자 이사보다도 내가 더 많은 월급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영업하던 과장, 부장, 이사는 어린놈에게 지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며 퇴사를 했다.
 
한 달에 100만원씩 까먹던 내가 나중에는 한 달에 7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월급을 받게 되었다.
 
 
성공의 비결에 대해, “나태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답변
 
Q. 영업을 남들보다 잘 한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A.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내가 더 잘나고 잘 해서가 아니었다. 그들 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일을 했기 때문에 결과가 좋았던 것이다. 나태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Q. 영업사원을 관둔 이유는 무엇인가.
 
A. 4년간 한 브랜드에서 안경을 판매했는데, 2013년 회사가 망해서 관두게 되었다. 그때 앞으로 뭐 하며 살아야 하지 너무나 막막해 하다가 또 다시 국내 하우스 디자이너 선글라스 브랜드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영업해오던 안경 브랜드는 해외의 이름 있는 브랜드라 인지도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새로 입사한 곳의 제품은 아무도 모르는 국산 브랜드에, 돈도 없고, 물건 자체도 많이 없었다. 그야말로 영업사원에게는 최악의 조건이었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생각으로 또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며 내 꿈을 키웠다.
 
Q. 어떤 꿈을 꾸게 되었나.
 
A.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2년간 영업사원을 하며 브랜드가 성장해 갔는데, 내가 아무리 잘 해봐야 결국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까지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내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는데, 내가 발로 뛰면서 아무도 모르는 브랜드를 키워가며 내가 사업을 해봐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2년간 새롭게 선글라스 브랜드에서 영업하며 다시금 안정기에 들어섰지만, 내가 선글라스 브랜드를 만들어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선글라스 디자인을 직접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엄청난 자본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경험한 것처럼 내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열정을 다해 노력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상 더 좋은 방향이 될 것 같아 의견을 제시하면, 괜히 변화를 줘서 일거리만 늘어나게 하지 말라며 쓴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내가 회사를 만들어 나만의 방식과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마음껏 일해보고 싶기도 했다. -②번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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