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인터뷰] 중도장애인 김상철, 9급공무원 ‘취업 성공기’
강소슬 기자 | 기사작성 : 2017-06-15 09:22   (기사수정: 2017-06-1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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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구청 김상철 주무관 [사진=뉴스투데이 강소슬 기자]
   
14년전 담배 피려 집앞 건널목 건너다가 사고 당해 지체장애 1급 판정
 
“오기와 집념으로 달리고 달려서 어둠의 터널 뚫고 나와”
   
(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14년인 2003년 당시 흡연자이던 나는 담배를 피기 위해 집 앞 건널목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몸을 갑자기 쓰지 못하니 사람이 소심하게 변하고, 집 안에서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지내게 되더라. 사고를 당한 집 앞 건널목을 건너는데 사고를 겪은 지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일반인으로 생활하다 갑작스럽게 장애판정을 받는 사람들을 ‘중도장애인’이라 부른다. 14년전 갑작스럽게 사고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김상철 주무관은 현재 구로구청에서 장애인 일자리와 복지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9급 공무원이다.
 
중도장애인의 경우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해 극심한 우울감을 비롯해 심지어는 자살을 결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상철 주무관 역시 장애 판정을 받은 후 극심한 우울감과 스트레스로 삶을 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한다.
 
그는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며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드라마나 소설에서처럼 감동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굴욕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 어둠의 터널 속에서 김상철 주무관은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오기’와 ‘집념’ 하나에 매달려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고 달리니 그 터널의 끝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장애 판정을 받은 지 13년만에 당당히 공무원에 합격했다.
 
그는 현재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이다.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스스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신체적 조건에 맞춰 다양한 취미 활동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지난 13일 ’2017 구로구 장애인 일자리 박람회’에서 만난 김상철 주무관과 나눈 이야기들이다.
 
 
3년 동안 공무원 시험공부에 매달려 합격증 받으면서 인생관 달라져 
 
취업을 원하는 중도장애인이라면 장애를 받아들이고 도전해야”
 
 
Q. 언제 공무원이 되었으며 현재 어떠한 일을 하고 있나.
 
A. 3년간 공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해 2016년 7월 11일 처음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현재 하는 업무는 장애인 일자리와 복지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Q. 일반인에서 중도장애인이 되어 극복하기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A. 몸을 쓰지 못하는 것보다 힘든 것이 마음의 병이었다. 실제로 중도장애인의 경우 장애를 받아들이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3년가량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생활을 했다. 용기 내어 밖을 나서면 “몸도 불편한데 왜 나와”,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휠체어 타고 대중교통이라니”와 같은 비수 같은 말들로 상처를 많이 받았고, 이런 말들이 내 자신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Q. 어떻게 극복했나.
 
A. ‘장애를 받아들이자’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조금씩 변했고, 그 결과 지금은 일반인과 대등한 자격에서 사회에 참여하고 생산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인들도 지금은 과거 내가 힘들어 했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개과천선’ 했다며 웃으며 농담을 건넬 정도가 되었다.
 
Q. 중도장애인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A. 우선 현실을 받아들이고 세상 밖으로 나서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처음 내가 휠체어를 타고 아주 작은 길거리의 턱도 넘지 못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팔의 힘을 기르기 위해 운동하며 하나씩 다시 도전하다보니 못 넘던 길거리 턱도 쉽게 넘을 수 있었다.
 
지금은 장애인 농구단도 하고 있고, 다양한 운동을 하고 있다. 아직도 “장애인이 무슨 운동이야”라며 상처가 되는 날카로운 소리를 들을 대도 있지만,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 여유도 생겼다. 
 
 

▲ 구로구청 김상철 주무관 [사진=뉴스투데이 강소슬 기자]

일반인처럼 살아보려 ‘목공일’ 해 기술 인정받았지만 취업은 안돼
 
‘실력’ 있어도 ‘채용’ 안돼 공무원으로 ‘꿈’을 전환
 
 
Q. 공무원이 되기 전 어떤 일을 했나.
 
A. 가장 처음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일반인들도 하기 힘들다는 목공예 작업에 도전을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반인들과 함께 하는 전국 목공예 대회에서 4등까지 했지만 다리가 불편한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은 휠체어 업체에서 영업직으로 취업이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자리를 갈망하던 터에 얻은 일자리였지만 1년 만에 관두게 되었다.
 
Q. 휠체어 영업직을 관둔 이유는.
 
A. 영업직을 하는 동안 휠체어가 필요한 지체장애인들을 만났는데, 휠체어는 필요하지만 휠체어의 가격이 비싸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당시 판매해야 했던 휠체어의 가격이 400~500만원 정도였고, 영업직이다 보니 마진을 남겨서 판매해야 하는데 나와 같은 처지에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마진을 남겨 판매할 수가 없었다. 1년가량 일을 했지만 단 1대도 마진을 남겨 판매하지 못했다. 나와 맞는 일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3년 뒤 9급 공무원이 되었다.
 
Q. 취업을 꿈꾸는 장애인에게 한마디 한다면.
 
A. 사실 나는 장애인 일자리 박람회가 있다는 사실을 구로구청에 들어오고야 알았다. 일자리를 원한다면 문을 두드려야 한다. 특히 중도 장애인인 경우 장애를 받아들이고 조금씩 극복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Q.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호주에는 휠체어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 우리나라와 다르게 장애인이 많은 나라인 것 같아” 친구가 호주로 유학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하던 말이다. 그 친구에게 한국은 장애인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부족한 나라라고 이야기 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이동 할 수 있도록 시설들이 잘 되어 있었으면 좋겠고, 장애인들이 외출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소슬 기자 soseul@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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