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족을 위한 변명]① 대기업은 ‘금수저’ 몫, 흙수저는 ‘공시족’ 불가피
취준생 | 공시족 / 2017/04/26 12:04 등록   (2017/04/28 09:00 수정) 2,492 views
▲ 2017년 국가직 9급 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을 이틀 앞둔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컵밥을 먹고 있다. ⓒ뉴스투데이DB


한국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고 있다. 최근 발표된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 '공무원 시험의 경제적 영향 분석과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소위 7·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은 25만 7000명을 기록했다. 2011년 18만 5000명에서 5년 만에 5만 2000명이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은 공시족 열풍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비판적이다. 공시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을 총 21조 7689억 원으로 추정한다. 공시족들이 경제활동을 할 경우 거둘 수 있는 생산효과 15조 4441억 원과 이들의 예상되는 가계소비지출액 6조 3249억 원을 합친 금액이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해도 우수 인재의 공시족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게 기성세대의 분석인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론은 부당한 측면이 많다.

한국청년들이 공시족에 합류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비합리적 선택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공시족이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변화할 때, 공시족 증가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공시족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대기업, 금융기관, 공기업 등 선망의 직장 채용과정은 '불공정성' 의심받아

'간과된 진실', 공시족은 공무원 시험을 '공정성'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
 
한국청년들이 7·9급 공무원의 등용문인 '공시족'을 선택하는 것은 '안정성'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상위 직장 군을 형성하고 있는 대기업, 금융기관, 공기업 등의 채용 과정이 지닌 '모호성' 혹은 '불공정성'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기업 채용에서 불평등함을 발견한 청년들이 공정한 채용을 지향하는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있는 것은 '간과된 진실'이다. 

각종  조사에서 취준생들은 채용 과정의 불공정성을 주장하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534명을 대상으로 ‘채용이 불공정하다고 느낀 경험’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6%가 ‘있다’라고 대답했다.
 
채용이 불공정하다고 느낀 이유는 ‘내정자가 있는 듯한 채용공고를 봄’과 ‘근무조건 기재가 불분명함’이 각각 44.3%(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이와 함께 ‘면접에서 특정 지원자에게만 질문 몰림’(36.4%), ‘나보다 스펙이 낮은 사람이 합격함’(25.9%), ‘특정 조건의 지원자에게 특혜 소문 들음’(19.6%) 등이 있었다.
 
또 다른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대 회원 57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5%가 ‘구직 과정에서 부적절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학력, 나이 등의 차별뿐 아니라 ‘낙하산 채용’ 등 공정하지 못한 채용이 횡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취준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대기업  채용 방식은 합격과 불합격 사유가 불투명해 채용 불공정 의혹을 더욱 부추긴다. 1차 서류전형, 2차 인적성검사, 3차 면접전형 등이 모두 당락의 기준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전형'이라는 게 취준생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1차 서류전형과 관련해서, 대부분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지원자들의 스펙이 상향 평준화됨에 따라 자격증 및 공인영어성적과 같은 스펙은 변별력을 상실하는 추세"라면서 "이력서 상의 스펙보다 자소서가 1차 서류전형의 당락을 결정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인사담당자들이 강조하는 자소서의 평가 기준은 대단히 주관적이다. '자신만의 색깔', '열정', '회사 혹은 직무와 연관된 인턴 체험' 등을 강조한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이 같은 모호한 기준을 창의적으로 해석해서 인사담당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창의적인 인재가 된다. 

대기업등이 강조하는 '인턴체험'은 치열한 '연줄 경쟁'에서 승리해야 가능

대기업 입사자 김모씨, "면접에서 부모님 직업과 사는 동네를 물어봐 황당" 고백

그러나 현실은 사회경제적 배경이 중요해지는 결과를 빚는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인턴 체험만 해도 '연줄'이 없으면 하늘의 별 따기이다. 유력 정치인 등이 자신의 자녀를 대기업 및 공기업 인턴으로 취직시켰다가 물의를 빚는 사건들은 '인턴 체험'이 치열한 연줄 경쟁에서 승리한 전리품임을 역설적으로 입증해준다.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2차 전형으로 실시하고 있는 ‘인적성검사’도 명확한 정답이나 합격 점수가 없는 시험이다. 공정성의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이다. 특히 3차 전형인 면접에서는 외모나 학벌, 집안 배경을 중시하고 있어 채용 불공정 문제를 야기한다. 심지어는 정규직 전환형 인턴에서도 내정자가 정해져 있는 상황도 알음알음 찾을 수 있다.

'흙수저 취준생'은 낙방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공채는 서류전형 단계부터 학벌이나 집안 배경이 좌우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대기업 채용에 성공한 김유정(가명, 여, 26세)씨는 25일 뉴스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면접관 분들이 나에 대한 질문보다는 거주 지역, 부모님 직업 등과 같은 내가 가진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보았다"면서 "순간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려는 선의를 느끼면서도 내가 강남지역 출신이 아니었다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솔직히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강남의 부촌 지역 아파트에서 살았고 부모님들도 모두 명문대 출신이었기에 거리낌 없이 대답했지만, 조건이 열악한 청년들의 경우는 얼굴을 붉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대기업 관계자들, "문과 지원자 경쟁률은 수백대 1, 연줄 경쟁 불가피"

취준생들, "최고의 스펙은 인맥", "자동차 인턴 내정자 있다네요"

국내 대기업의 중견 간부 P씨(49세)는 익명을 전제로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P씨는 "한 대기업이 공채에서 100명을 뽑을 경우 는 데 경쟁률이 40대 1이라고 한다 해도 문과 출신으로 좁혀보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면서 "100명 중 90명은 이공계 출신을 선발하고 문과 몫은 10명 이내인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P씨는 "때문에 이공계 경쟁률은 낮아지고 문과 지원자의 실질 경쟁률은 300~400대 1에 달하게 된다"면서 " 솔직히 문과 출신으로 대기업에 입사하는 사람은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 중에서도 일부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국내 유수의 대기업 부사장을 지낸 후 퇴직한 Y씨(61세)는 "대기업 지원자로서 합격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연줄을 가진 경우가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특히 문과 관련 직무의 경우 입사하려는 기업의 전무 이상의 연줄을 동원한 지원자 간에도 피 튀기는 경쟁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라는 말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연줄이 없는 문과 지원자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에 입사하기란 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수도권 내 하위권 대학 및 지방대학의 문과 출신이면서 집안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낮은 청년들은  취업시장에서 광범위한 '흙수저 계층'을 형성한다. 이들 흙수저들은 수도권 명문대 출신이면서 집안 배경이 좋은 '금수저 계층'이 좋은 사기업을 독점한다는 진실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남은 '공정한 채용 시장'인  공무원 시험에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취준생들이 모여있는 한 온라인 카페에서 아이디 slab****은 “이번에 (대기업)자동차 쪽 인턴 뽑는데 이미 내정자가 있다고 하네요. 빽 없는 사람은 웁니다”라며 채용 불공정을 꼬집었다.

또 다른 아이디 spid****도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스펙은 인맥이다. 친구녀석 자기 아버지 중견기업 빽 있다고 대학 내내 공부 안 하고 동아리 가서 기타만 치고, 학점 2점 토익 600으로 꾸역꾸역 졸업하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입사해서 연봉 4500받고 잘 살고 있네요. 나름 이름 있는 기업인데..”라며 하소연했다. 

즉, "공시족은 흙수저 취준생들의 '합리적 선택'이다"라는 명제는 진실에 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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