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78) 우아하게 ‘나이들어’ 가기
이야기쉼터 |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 2017/04/12 10:15 등록   (2017/04/19 17:53 수정) 410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꽃도 사람도 모두 '늙음'을 경험한다

사람의 습관이나 취향은 긴 세월을 주기로 조금씩 변화한다. 주변 환경이나 함께 사는 가족구성원이 미치는 영향, 체질이나 습성의 변화 외부요인은 무수히 많다.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는 봄이다. 연분홍의 벚꽃 장막이 도시를 뒤덮고 연초록 새잎들이 기운차게 생동한다. 연하고 고운 봄은 올해 다섯살이 된 나의 딸아이처럼 여리고 순결하며 환한 생명력으로 주변을 밝게 돋운다. 경주는 벚꽃시즌을 맞아 곳곳이 들썩인다. 도시 곳곳에 벚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따로 꽃구경을 나가지 않아도 어디서든 꽃을 바라보며 눈호강을 누릴 수 있다.

올해는 벚꽃과 함께 목련 구경도 실컷 하였다. 검은 고목 우듬지에 분홍색 팝콘이 터진듯 연분홍으로 피어난 벚나무를 보면 이 어두침침한 나무 어디에서 이토록 고운 꽃잎을 밀어올렸는지 참으로 신비롭기 짝이 없다. 꽃잎은 연하여 약한 바람에도 몸을 날려 이내 말라 사그러든다.

반면 성화봉송을 하듯 드높이 치솟은 목련은 우아한 맛은 있지만, 꽃이 져 떨어질 때는 참혹하기 이를데 없다. 크림색 하얀꽃 곳곳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간다. 마치 노인의 얼굴에 검버섯이 피는 것 같다.

갈색으로 썩어지는 목련꽃을 보는 것은 꺼림칙하다.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해 버리는게 낫다. 절정으로 아름답다가 서서히 썩어들어 소멸을 고하는 목련의 갈색 시신. 마치 인간의 생로병사를 보는 것 같다.

“너희의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동명 ‘은교’에서 등장하는 소름끼치게 공감가는 대사이다. 영화의 내용보다 저 문장 한마디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늙음은 한마디로 비참하다. 육신은 곳곳이 병들어가고, 정신도 희미해진다. 퇴화되는 몸에서는 악취가 풍기고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나 잉여인간 취급이나 받으니 성격 또한 괴팍해진다.

왜 유독 노인들은 신경질적이고 고집불통으로 자신들을 꽁꽁 묶을까?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고부갈등이 가정불화의 핵심이 되고 있다. 옛부터 여인의 덕목은 가정의 평화와 안위를 지키며 자녀와 배우자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 세뇌되었기 때문에 많은 어머니들이 아들바라기의 세월로 한평생을 보내었고, 며느리와 아들이 일군 새로운 가정을 인정하지 못해 트러블이 왕왕 일어나는 것이다.

남편들 또한 평생을 밖으로만 돌았는지라 정신적인 교감이나 위로가 되지 않으니 불쌍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애증의 대상일 뿐이다. 어디에도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내 인생을 따뜻하게 감싸안아주고 위로해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중년 이후의 처세술, 홀로서기 연습

인간사의 모든 희로애락은 인간에서 발생한다. 초연하고 우아하게 나이들어 가기 위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기’이다.

사람의 마음은 시절과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그 시절에 내 목숨만큼 소중했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뒤로 밀려나기도 한다. 아이에게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지만 청소년기에만 들어서도 친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천지에 영원한 것이 없듯 사람의 마음 또한 그러하다.

나를 지켜주는 사람은 나자신 뿐이다.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행복하려 하지 말고, 홀로서는 연습을 꾸준히 하여 사람들과 소원해지는 중년 이후의 삶도 가치있게 살아가야 한다.

봄이 가고 여름, 가을이 오듯이 모든것은 변화하고 소멸한다. 세월이 유한하기에 세상 모든것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의 목숨이 무한대라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지금처럼 열심히 살지 않을 것이다. 종교도 없어질것이고, 과학과 학문은 소멸될 것이다. 인간들은 말초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며 함부로 살다 세상은 아노미(anomie)상태가 될 것이다. 인생은 한번뿐이기에 소중한 것이고,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우아하게 살다가 가야 하는 것이다.


중년 이후의 처세술에 대한 글인 “계로록(戒老錄)” 을 쓴 소노 아야코는 이렇게 당부한다.

* 푸념하지 마라

* 젊음을 시기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더 멋지게 꾸릴 생각을 하라

* 남이 ‘해줄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리라

*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라

* 지나간 이야기는 정도껏 하라

*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기르라
*입냄새, 몸냄새를 조심해 향수를 사용하는 습관을 기르라

* 화초만 가꾸지 말고 머리를 쓰는 일도 하여 치매를 예방하라

* 사용하던 물건을 버리는 습관을 몸에 붙여라

* 나이드는 것은 자격도 지위도 아니다

* 가족끼리라면 아무 말이라도 해도 좋다고 착각하지 말라

* 신세타령을 해서 좋을것은 하나도 없다


나이가 드는 것이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다. 온종일 사람을 기다리거나 아픈 몸을 한탄하며 시간을 보내다 죽는것도 비참한 일이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사회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기술을 배워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인구의 고령화’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주변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으면 ‘스마트 시니어(smart senior)’로 보다 활기차고 의미있는 노년의 삶을 꾸려갈 수 있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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