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9) 화랑대에 낯선 ‘미군장군’ 동상이 서있는 이유는?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7-03-16 12:13   (기사수정: 2017-03-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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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3월 20일, ‘한국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밴플리트 장군의 후손인 콜린 패트릭 맥클로이(Collin Patrick McCloy)가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다. 콜린은 밴플리트 장군의 고손자(4대손)로 현재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3학년 사관생도이다. 육사를 방문한 콜린이 밴플리트 장군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대통령 탄핵인용 뒤 재점화된 사드배치 논쟁이 놓친 사실은?

중국은 6년전부터 사드보다 3,4배 강력한 레이더로 한국·일본 등 감시 중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의 입에서 박근혜 전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는 발표가 나오자 헤드라인뉴스(Headline News)로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대통령 탄핵인용 하루 전인 3월 9일 용산 국방컨벤션 충무홀에서는 한국안보협업연구소(KSCI) 창립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제1세션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한미동맹’, 제2세션 ‘김정은 체제전망과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대학교수들과 국방전문기자들의 토론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특히 세미나 진행 중에 진보성향의 양무진, 김용현 박사와 극우성향의 김태우, 남성욱 박사의 논쟁은 플로어 자리를 끝까지 꽉 채운 350명의 참가자들의 박수와 탄성이 어우러져 의미있고 가치있는 세미나로 한국안보협업연구소의 새 출발을 알렸다.

최근 라디오와 TV를 통해 대선후보들의 토론회에서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한국의 안보전략에 대해 각자의 정책방향에 대해 뜨거운 열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중에도 가장 뜨거운 전투현장은 사드배치의 ‘찬반양론’이다.

중국은 한국 내 사드 배치를 반대하면서 비관세장벽(통관, 위생검사 등)을 강화하고 중국인의 한국관광을 통제하며, 롯데 등 한국기업 이미지를 깎아내리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을 표적삼아 집중적 단속을 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금융시장에 진출한 중국자본을 철수시키는 등 경제 제재를 통한 보복을 하고 있다.

중국은 웃기는 나라이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말처럼 중국은 이미 한반도와 일본전역까지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를 설치해놓고 사드배치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9일 동북 흑룡강성 솽야산시에 미국의 레이더를 본뜬 초대형 레이더 건물이 TV로 방송되었다.

이 레이더는 5,500km까지 감시할 수 있는 초대형 최신 레이더로 2011년부터 운용해 왔다고 한다. 또한 이곳뿐만 아니고 내몽고에도 초지평선(OTH.Over The Horizon) 레이더를 설치했는데 이 레이더가 쏘는 전파(파장 10-6m)는 높이 100-450km의 전리층에서 꺾이기 때문에 둥근 지표면을 따라가면서 지평선 너머 3,000km 밖의 목표물도 탐지할 수 있다. 사드의 탐지거리보다 3-4배 강력한 레이더인 셈이다.

3월 중에 실시되는 키리졸브훈련에 따라 이미 미국 사드발사기 2기와 X-밴드 레이더 2대가 오산에 전개되었다.

그런데도 자주국방을 외치는 대선주자 중 일부가 사드배치 연기와 반대를 주장한다는 것은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라고 여겨진다.



▲ 1952년 4월 14일 밴 플리트 장군이 미 육군 3군에서 기증한 옷가지와 먹을거리를 6.25전쟁 고아들에게 나눠주는 모습. ⓒ월드피스자유연합

화랑대에 있는 낯선 밴플리트 장군 동상, 국군의 성장역사를 상징

6.25남침 전쟁 당시 중공군과의 혈전을 통해 국군의 전투력 강화돼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은 공고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도 동맹을 해치려는 주장을 서슴없이 뱉어낸다. '뜨거운 얼음'이자 '차가운 온돌'같은 모순이다.

6.25 남침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11일 압록강 이북 중공군의 거점타격을 주장했던 맥아더 장군이 美극동군 및 유엔군 사령관에서 전격 해임되었다. 후임으로 임명된 리지웨이 장군은 밴플리트 장군에게 美 8군사령부 지휘권을 물려주고 ‘한국내의 국지적 군사행동’이라는 제한 목표를 재강조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이 문제이다.

밴플리트 장군은 소수의 병력으로 중공군과 어려운 전투를 계속하면서도 한국군 사단을 9주간씩 교대로 재훈련시킬 만큼 한국군의 전력향상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한국군을 훈련시키기 위해 신병훈련소 설립을 지시했다. 훈련소는 51년 8월에 설립된 후 확대·개편되고 나중에 보병학교·포병학교, 그리고 통신학교로 재편됨에 따라 점점 증가하고 있던 美 군사고문단 장교들이 이런 교육훈련기관으로 발령됐다.

특히 한국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려는 이승만 대통령의 계획은 당시 미국 내에서도 많은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밴플리트 장군은 웨스트포인트 동기생으로 1952년 말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에게 간곡히 건의해 이 대통령의 계획을 관철시켰다.

한국군이 20개 사단으로 증편되자 그는 한국군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장교단을 양성하기 위해 웨스트포인트를 모델 삼아 4년제 육군사관학교를 설립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그는 4년제 육사 설립 및 지원을 추진해 허가를 얻어낸 후 美 육사가 한국 육사를 위해 교육과정을 제공하도록 끈질기게 요청, 美 육사에 재직 중인 사위 조지프 매크리스천 중령을 통해 많은 지원을 받았다.

1952년 1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을 수행, 진해에서 열린 육사 개교식에 참석, 따뜻한 박수를 받은 그는 전역 후에도 모금활동을 전개해 육사 도서관을 지어 기증할 정도로 한국군 발전에 끝없는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군은 밴플리트 장군을 기념해 그의 동상을 육사 교정에 세우고 ‘대한민국 육사 아버지’라고 칭송했다.

필자가 육사 1학년 시절 화랑연병장 앞 사열대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강재구 소령 동상’ 아래에 맥아더나 아이젠하워 같은 유명한 인물도 아닌 낯선 미군장군의 동상이 서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면회온 고교동창생들은 젊은 대학생답게 “어떻게 미군의 동상을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육사에 들 수 있느냐?” 하고 호되게 따질 때에는 대답을 못하고 당황하기도 했었다. 그때까지는 그저 미군 장군이 초창기 한국군과 육사 창설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정도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Freedom is not free

한국전쟁 당시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을 했다. 그들 중 35명이 전사, 실종 혹은 부상을 당했는데 이는 참전한 일반 병사들의 전사·실종 부상자 비율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었다.

아들을 전쟁터로 보낸 장군들은 “군인으로서의 명예도 중요했지만, 지도자로서의 사회적, 정치적 판단과 책임이 더 중요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당연한 조치라고 했다.

한국전쟁을 총 지휘했던 밴플리트 美 8군사령관의 외아들 지미플리터 중위도 공군조종사로 B-26폭격기를 몰고 북한 순천지역에서 실종되어 시신마저 찾지 못하고 전사했다.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해 수색 및 구출 작전을 시도하는 예하부하들에게 “내 아들을 찾기 위해 다른 이들의 아들들을 그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없다. ‘지미플리트’ 공군 조종사에 대한 수색은 여기서 중단한다”고 말했다.



▲ 밴플리트 장군이 100세로 별세하기 2개월 전(1992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보낸 편지 ⓒ육군사관학교 

미국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은 90%의 일반국민들을 비교하면 한국이 미국보다 결코 뒤떨어지지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한국계 미국인들의 말처럼 “여기는 한국처럼 일확천금은 불가능해도 한국사람처럼 머리 좋은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만 하면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미국 땅이다. 하지만 상위 10% 지도층들의 실력 국가관 도덕관을 비교해보면 딱 두 나라간의 그 엄청난 국력차이만큼 벌어져있다는 생각을 떨칠 길이 없다.

미국 워싱턴에는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와 조형물이 있다. 그곳에서 4개의 영어단어가 주제로 제시되어 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져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으로 피를 흘려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밴플리트 장군이 100세로 별세하기 2개월 전(1992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보낸 편지가 육사기념관에 보관되어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려고 하는 대선후보들에게 밴플리트 장군의 편지를 제시하니, 반드시 읽고 정책에 반영하여 국가안보가 더 튼튼해지길 기대해본다.

“인내심과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는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은 그들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자유란 소중한 것이지만 또한 소멸되기 쉬운 것이기도 합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은 그들의 ‘자유’를 수호할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군대가 필요하며 그 군대는 국민의 의사에 응해야 하고 그 군대의 전문성과 모범은 시민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미 육군대장 밴플리트)”

끝.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현)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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