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인터뷰] 카이스트 수학과 출신 ‘강금영’씨, 하반신 마비 딛고 재취업 성공
사람들 | 취준생 인터뷰 / 2017/02/20 13:42 등록   (2017/04/26 08:42 수정) 1,69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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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5년 스타트업 '자락당'에 취업한 강금영씨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이지우 기자) 
 
 
출산 전, 정보통신회사 경영기획→장애 후, 사회적 기업 ‘자락당’ 사업기획 실장
 
 
“과거 정보통신회사를 다닐 때 심적 압박, 업무 스트레스로 매일매일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신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일에 만족감을 느끼고 회사와 함께 더 성장하고 싶다”
 
2013년  후천성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게 된 강금영(38)씨는 지난 2015년 11월 재취업에 성공했다. 재취업까진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강금영씨는 카이스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기업 재정관리 및 경영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이전에는 관련 기업 경영 분야에서 근무를 했으며 현재는 사회적 기업인 ‘자락당’에서 마켓인유 사업기획&운영팀 실장을 맡고 있다.
  
강 실장은 지난 16일 검진을 받기위해 찾은 서울삼성병원에서 뉴스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재취업 성공기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직장 내  ‘업무스트레스’로 악화된 척수염, 산후조리 잘못해 하반신 마비로
 
Q. 하반신 마비는 어떻게 오게 된 것인가요.
 
A. 원래 앓고 있던 척수염이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는 과정에서 재발했다. 대처가 늦어 심해지다 보니 마비가 오게 됐다. 척수염이라는 병이 신경다발에 생긴 염증이다 보니 매번 증상이 달랐었다. 매번 다른 증상 때문에 어디에 문제가 생겨도 척수염 때문인지 쉽게 알 수 없었다.

출산 후 이상증상이 보이긴 했지만 산후조리에 신경쓰다보니 척수염으로 하반신에 마비증상이 나타날 때 까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비증상이 나타난 건 출산 후 약 80여일쯤이었다. 이미 진료를 받았을 때는 신경이 손상을 입은 상태라 손상된 신경은 되돌릴 수 없었다.
 
Q. 그렇다면 그 전 직장은 어떻게 되었나요.
 
A. 전 직장은 정보통신회사였는데, 신사업으로 태양전지 법인회사를 만들어 확장중이었다. 당시 경영기획전략 분야에서 5~6년 정도 근무했다. 유럽국가 수출이 주된 사업 목표였는데 당시 유럽 경제 위기가 닥쳐서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
 
사실 이 때부터 몸은 꾸준히 신호를 보내왔었다. 외국인 투자를 따내기 위해 영어로 일 처리를 하느라 긴장하며 살았던 때나, 회사 사정이 악화되어 근심을 안고 출근하던 때나, 이번 달엔 월급이 나올까 조마조마하던 그 때는 모두 폭풍전야였다.

법인 설립부터 폐업까지 회사가 신사업을 개척해 나갔던 과정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당시에도 척수염이 발병해 한 달간 입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퇴원 후 멀쩡해졌기 때문에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 도 몰랐다. 물론 업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았다면 출산 후 이 정도로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 강금영씨는 지난 2015년 말 스타트업 '자락당'에 취업해 올해로 1년 3개월을 맞이했다. 특히 한국척수협회를 통해 알게된 자락당 김성경(왼쪽) 대표와 인연이 되어 재취업의 길이 열렸다. [사진제공=강금영]

“어떤 장애인도 할 일은 있다”는 조언이 어둠 속의 서광으로 다가와

한국척수협회 ‘일상홈’프로그램 통해 ‘자락당’ 취업 계기 마련

Q. 마비가 오고 2년간 병상생활을 했는데, 다른 시도를 한 것이 있었나.
 
A. 몸에 이상이 생기고 가장 무서운 건 ‘주변인들의 시선의 변화’였다. ‘엄마’, ‘아내’, ‘직장인’, ‘친구’ 등과 같은 제 역할들이 사라지고 한 순간에 ‘환자’로 전락했다. 환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내의 역할도, 엄마의 역할도, 친구의 역할도. 그 점이 가장 무서웠다.  
 
처음에는 잠시 이러고 걸을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병상에서 꾸준히 공부를 했다. 재무설계사 시험을 준비했고 합격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마비가 원상태로 돌아오기가 어렵고 휠체어로 생활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당장 출퇴근 문제가 생기는데 재무설계사 꿈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일자리를 찾다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업치료사의 추천을 받고 터닝 포인트 가지게 됐다. 장애인 체육 코치가 여자 사격선수를 발굴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었는데, 장애인 사격 선수층은 넓지 않아서 조금만 노력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장애를 겪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조언은 어둠 속에서 스러져가던 나에게는 한 줄기 서광이었다.  
 
당시 코치님과 사격장 견학을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총도 쏴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척수장애인 정보 메신저들이 찾아와도 궁금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니 궁금증이 생겨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였다.
 
Q. 그렇다면 어떻게 재취업을 생각하게 됐나.
 
A. 말 그대로 ‘내 역할’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 직접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고, 수소문해서 한국척수협회가 운영하는 ‘일상홈’프로그램을 만나게 됐다. 일상홈은 4주 프로그램으로 장애를 가진 분들과 여행을 다니고 개별 장애 특징에 맞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곳이었다.
 
Q. 지금 다니는 자락당은 어떤 회사인가요.
 
A. 서울대와 공덕역에 매장을 두고 자원선순환의 가치실현을 목적으로 물물교환과 판매를 하고 있다.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참신한 스타트업으로 이전 회사에서의 역할과 비슷한 경영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주로 재고 조사 확인, 수입관리 등을 하는데 중고 판매라는 자체가 들어온 수입 관리가 힘든 부분이 있는데 여기 들어오고 나서 수입 관리가 되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Q. 자락당 취업은 어떻게 이뤄졌으며 힘든 점은 없었나.
 
A. 일상홈에서 한국척수협회 소개로 자락당 대표님과 인연을 맺어 취업하게 되었다. 자락당 건물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건물로 출근이 힘들어 대표님이 재택근무를 하도록 해주었다. 약 1년 3개월이 지났는데 외부에서 전체회의를 할 때 1번 참여해보고 같은 부서 근무자의 경우 저희 집으로 보내어 작업을 같이 할 수 있도록 최대한 편의를 봐주셨다.
 
다행히 곧 회사가 건물이전을 앞두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로 일주일에 2번씩 회사 출근을 하기로 했다. 설레고 떨린다.


내면의 편견 깨고 ‘밖으로’ 나와면 '역할'은 있다
 
Q. 장애를 이겨내고 재취업을 하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자면.
 
A. 무조건 ‘밖으로 나가고 뭐든지 해보라’는 것이다. 장애를 갖는다는 것은 모든 일상에 문턱이 존재한다. 외적인 문턱도 있지만, 내적인 문턱도 있다. 바로 ‘두려움’이다. 아직 한국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외국만큼 평등하지 못하다. 어렵겠지만 스스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밖으로 나오면 주변 인식은 ‘이 사람은 환자다’라는 편견을 깨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을 것으로 확인한다.
 
Q. 앞으로의 목표는.
 
A. 일적으로는 사무실이 이전하면 일주일에 2번씩 회사에 출근도장을 찍는 것이다. 중고 업체 중 유일하게 수입관리가 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여러 마케팅 업체에서 협력 문의가 들어왔는데 이처럼 자락당에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하도록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엄마’로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청주에서 현재 아이와 같이 보내고 있는데 조만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엄마역할을 찾을 예정이다. 같이 외출도 하고 좀 더 사회와 부딪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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