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58)] 항공사업단, 방포사와 무관한 업무에 최악의 상관도 만나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10.25 08:10 ㅣ 수정 : 2021.10.25 14:29

대령 진급 심사 앞두고 방포사 작전처장으로 부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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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예비역 공군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가운데 어느덧 대대장 임무 종료 시기가 다가왔고, 대과(大過) 없이 대대장 임무를 마치게 되었다.

 

대대장 임무는 그해 여름에 마쳤고, 예상보다 6개월 정도 조기 종료된 것이었다. 그리고 차기 보직은 지금은 없어진 ‘항공사업단’(이하 항사단)의 어느 부서 실무 장교였다. (항사단은 그해 말에 해체되었고, 항사단의 기능은 그 다음 해에 창설되는 ‘방위사업청’으로 이관되었다. 결국 필자는 항사단에서 6개월 정도 근무하고 다시 방포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군에서의 보직 결정은 다소 형식적인 면도 있지만 보통은 해당자의 의견을 참고한다. 그러나 당시 필자의 대대장 조기 종료 및 항사단 배치는 필자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방포사 지휘부의 ‘의도’를 대략 알았지만, 그 당시에는 명령에 충실할 뿐이었다.

 

공군 항사단의 임무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공군에서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 획득관련 업무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각 군의 무기체계 확보 관련 사업을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에서 하는데, 당시에는 각 군별로 이런 조직이 있어서 각 군에 필요한 무기체계 획득관련 업무를 진행하였다.

 

항사단에 배치된 후에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필자가 항사단 해체 이후에 방사청 창설 인원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무기체계획득 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루는 공군본부의 무기체계획득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던 어느 동기생을 만났는데, 필자를 걱정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당신은 무기체계획득 관련 업무 경험이 전혀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방포사에서는 당신을 여기로 보냈지? 내년에 방사청으로 배치되면 (무기체계획득 업무 경험이 없는 당신은) 업무는 물론이고 상위 계급 진출이 결코 쉽지 않을텐데...”. 필자가 표현을 완곡하게 해서 그렇지 그 동기생의 표현은 대단히 강도 높은, 방포사의 인사조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직설적인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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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업단이 해체되고 기능은 2006년에 창설되는 ‘방위사업청’으로 이관

 

그런 상황에서 필자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공군에서의 내 운명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한편, 항사단 부임 이후에 보니, 사무실 분위기가 너무 이상했다. 필자가 통신장교 시절(대위) 경험했던 오산 기지에서의 비정상적인 사무실 분위기는 차라리 신사적인 분위기였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결국은 그 사무실의 부서장(대령)의 인성이 문제였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대령이라는 계급까지 진급해서 근무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필자로서는 그 당시의 6개월이 전체 군 생활을 통틀어서 심적으로 가장 힘들고 가장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시기였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런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의 고민이 해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막 책상에 앉았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상대방은 공군본부의 00참모부장인 J모 소장이었다. 이 분은 필자가 군산에서 호크 포대장 임무를 수행할 때 인근 비행단장 임무를 수행하던 분이었다.

 

필자의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그 지역의 공군 최고 상급자로서 포대를 가끔 방문하고 격려를 해 주었기에 잘 알고 지내던 분이었다. 그분이 필자에게 “지금 내 사무실로 오겠나?”, “네, 즉시 가겠습니다.” 항사단과 공군본부는 걸어서 5분 거리이다.

 

J모 소장 사무실에 들어가자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차 한잔을 주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등등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네가 방사청을 지원했나? 방사청에 가고 싶은가?” 라고 질문하였다.

 

필자는 그동안 진행된 일을 얘기했다. 그리고 무기체계획득 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경험도 없고, 방사청은 가고 싶지 않다고 분명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J모 소장은 “알았다. 내가 조치하겠다. 수고하게!” 라고 하였다. 갑자기 희망의 빛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그분이 당시 필자의 고민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분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아무튼 그날 아침, 이 대화의 결과로 필자의 운명(진로)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때 방포사의 결정대로 필자가 방사청으로 가게 되었다면 ‘오늘의 나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J모 소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잠시 후, 부서장이 필자를 호출한다. 가보니 인상이 별로 좋지 않다. “00참모부장이 당신을 왜 불렀나? 당신이 J모 소장을 어떻게 알아? 무슨 얘기를 했어?”.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부서장의 기고만장하던 표정이 갑자기 묘하게 변한다.

 

아무튼 필자는 항사단이 해체될 때까지 약 6개월간 그곳에서 근무를 하였다.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지만 항사단에서의 6개월은 사무실의 분위기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나에게는 정말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보고 느낀 것은 ‘대령이 되어서 저렇게 행동하고 저런 식으로 일처리를 해도 되는구나’ 하는 것뿐. 게다가 일과 이후에 불필요한 사무실 회식은 왜그리 많은지.

 

부서장의 정상적이지 않은 근무행태를 볼 때마다, 또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때마다 세상에 저런 장교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가끔은 주변에 있는 선배 장교들의 위로를 받으며 6개월을 지냈다. 어떤 선배가 필자에게 위로삼아 이런 얘기를 했다. “전생에 아마도 당신이 그 대령을 무척 괴롭혔나 보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 그 대령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웃자고 하는 얘기였지만, 웃으면서도 씁쓸했다. 이때가 2차 포대장 이후로 아내에게 가장 미안한 시기였다. 아내가 마음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연말이 되었고, 항사단 해체를 앞두고 필자는 다시 방포사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 다음 해는 필자의 사관학교 동기생들(비조종 장교)이 대령 진급심사에 해당되는 해였다. 참고로 공군에서 진급심사는 중령까지는 조종, 비조종 장교 구분없이 동기생들이 같은 해에 진급심사를 들어가지만, 대령 진급심사부터는 조종 장교들이 첫 해에 먼저 진급심사에 들어가고, 그 다음 해부터 비조종 장교들이 진급심사에 들어간다. 즉, 비조종장교는 조종장교보다 1년 늦게 대령 진급심사에 해당되는 것이다. 왜냐구? 글쎄올시다.

 

그리고 필자의 차기 보직은 방포사 작전부 작전처장으로 결정되었다! 방포사 본청에서의 근무는 처음이다. 진급심사에 해당되는 해에 작전처장이라 막연한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가지고 방포사로 부임했다. (다음에 계속)

   

   

◀ 최환종 프로필 ▶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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