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인생 2막] 비(정지훈) 부활의 원동력은? '굶주린 어린 사자'를 키운 맹세

염보연 기자 입력 : 2021.01.09 05:47 ㅣ 수정 : 2021.01.12 09:35

군복무 논란 / 깡, 영화 실패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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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사진=나로 바꾸자MV]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비(40)는 2000년대를 풍미한 톱스타다. 잘생긴 외모와 큰 키,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남성적인 매력과 소년미를 동시에 갖췄다. 

 

음악, 예능, 연기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아시아를 주름 잡았다. 할리우드 이력까지 남기며 ‘월드스타’로 불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색이 바랬다. 손대는 모든 분야에서 처참하게 실패하고, ‘시대에 뒤쳐진 스타’로 떨어졌다. 빛나던 시절이 거짓말처럼 온 세상이 그를 조롱했다.

 

하지만 2020년, 비는 새로운 ‘비 신드롬’을 일으키며 부활했다. 모두의 조롱을 한 몸에 받고도 꺾이지 않고,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 마이클 잭슨을 동경한 소년… 외환위기로 가세 기울며 '굶주린 어린 사자'의 시절 보내

 

비는 1982년 충청남도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정지훈. 어릴 적부터 마이클 잭슨을 동경하여 가수를 꿈꿨다. 비디오 속 유명 댄서들을 선생님으로 삼아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어릴적 비의 부모님은 방앗간을 운영했고 부족할 것 없이 살았다. 하지만 중학교 때 1997년 IMF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벌리는 사업들이 줄줄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약값도 대기 어려운 형편 속에서 어머니가 당뇨를 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돈을 벌러 브라질로 떠나고, 비가 남아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며 여동생을 돌봐야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여전히 가수를 꿈꿨기에 안양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가수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족족 떨어졌다. 그러다 박진영을 만났다. 

 

박진영은 ‘눈빛’과 ‘간절함’을 보고 비를 뽑았다. 앞서 12군데 이상의 오디션에 떨어지고 온 비는 마치 굶어죽기 직전의 어린 사자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무반주로 몇 시간씩 춤을 춰보라는 지시에 묵묵히 따를 만큼 절박하면서도 자존심이 높아 그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아이였다.

 

겨우 연습생이 됐지만 시련은 계속 됐다. 지독한 가난에 우유에 불린 라면으로 세끼를 때우고, 땀에 절은 트레이닝 복을 한달 내내 입고 다녔다. 어머니에게 학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새벽 공사판에 나가 일을 하기도 했다.

 

1998년 6인조 댄스 아이돌 그룹 ‘팬클럽’으로 데뷔했다. 가수로 성공할 꿈이 이뤄질 줄 알았지만 댄스 그룹 포화 상태였던 가요계에서 외면 받았다. 결국 2집 활동을 끝으로 2000년에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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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팬클럽 시절의 비(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네이버]

 

■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떠났지만, 삶의 원동력이 된 ‘어머니’

 

꿈이 물거품이 된 것도 모자라 마치 짠 것처럼 불행이 이어졌다. 같은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에 화재가 나서 어머니의 사진과 유품마저 모두 타버렸다. 

 

비의 어머니는 아들과 마찬가지로 자존심이 강했다. 박진영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지만 “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싫다”며 퇴원해버렸다. 아픈 몸을 이끌고 노점상을 하던 어머니는 결국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불타버린 집을 두고 비는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았다. 자신이 아무런 힘이 없을 때 이런 시련을 내려준 세상이 원망스럽고, 전부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 비를 붙잡은 것은 어머니였다. 타고 남은 가구 중 어머니의 침대 밑에서 상자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통장과 편지가 담겨 있었다. 통장에는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진통제값을 아껴가며 모은 돈이 들어 있었고, 편지에는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까지 자식들을 염려했던 어머니의 진심을 느끼고 비는 맹세했다.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렸다면 보란 듯이 내 두 발로 일어서겠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이겨내고 싸우겠다.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로 남기 위해서”

 

■ 2002년 '나쁜남자'로 데뷔…2000년대를 휩쓰는 월드 스타로 등극

 

비는 더 이상 포기를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연습실에 살다시피 하며 실력을 키웠다. 박지윤 등 유명 가수들의 백댄서로 활동하며 무대 감각을 익히다가, 2002년에 두 번째 기회가 왔다. 1집 타이틀곡 ‘나쁜 남자’로 솔로가수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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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무대 [사진=유튜브]

 

'나쁜 남자'는 월드컵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던 상황 속에서도 어느 정도 주목을 끌었고, 후속곡 ‘안녕이란 말 대신’은 가요프로그램 첫 1위를 했다. 그해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비는 가수, 예능, 드라마에서 모두 대박을 터뜨렸다. 2003년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와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 흥행, 2004년 드라마 ‘풀하우스’는 최고 시청률 40%를 기록했고, 3집 ‘It’s Raining’은 가요대상을 석권하며 아시아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타임지 ‘영향력 있는 100인’에 한국 연예인 최초로 등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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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풀하우스]

 

‘풀하우스’가 해외시장에서도 성공하면서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에 진출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스피드 레이서’, ‘닌자 어새신’을 통해 할리우드 이력을 남기며 ‘월드스타’ 타이틀을 얻었다. 

 

2008년 국내로 돌아와 5집 ‘Rainism’으로 컴백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Rainism’ 이후 박진영의 프로듀싱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하는데, 2010년 ‘널 붙잡을 노래’와 ‘hip song’ 미니 스페셜 앨범까지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 연예병사 논란 이후 실패 이어져…‘깡’ ‘자전차왕 엄복동’ 조롱 인터넷 달궈

 

2013년 군대에 있던 중 연예병사로서 군복무를 허술하게 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안티가 급증했다. 전역한 뒤로 배우 활동 위주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활동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이후 발표한 곡들도 비의 ‘B급 병맛’ 취향이 뚜렷해지면서 점점 평가가 떨어졌다.

 

2014년 발표한 6집 ‘Rain Effect’의 ‘라송’은 그나마 코믹한 곡이어서 어울렸지만, 2017년 연말에 발표한 ‘깡’은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듣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유치한 가사와 낡은 스타일로 비판 받다가 ‘병맛 노래’로 조롱받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은 깡을 듣는다는 뜻의 ‘1일 1깡’이란 말이 돌았다. 노래가 좋아서가 아니라, 너무 괴상한 나머지 계속 생각나서 듣는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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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깡 MV]

 

설상가상으로 2019년 비가 주연을 맡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이 1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왜곡 논란과 낮은 퀄리티로 흥행에 참패했다. 

 

개봉 전, 상심한 비가 취중에 올린 SNS 글도 함께 웃음거리가 됐다.

 

“술 한 잔 마셨습니다. 영화가 잘 안 되도 좋습니다. 하지만 엄복동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영화가 별로일 수 있습니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연기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했습니다. 저의 진심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비로서는 노력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에 속상함을 토로한 글이었지만, 네티즌은 물론 음악프로그램 공식 SNS 계정에서까지 “술 한 잔 마셨습니다” 패러디글을 쏟아내며 우스꽝스럽게 소비됐다.

 

망해도 너무 망했기 때문에, 어느새 비는 단순히 ‘한물 간 스타’를 떠나 ‘망한 대상을 풍자할 때 쓰이는 대명사’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노래의 단점이나 비의 약점을 사정없이 파고 들며 놀려댔다. 전성기의 근사했던 이미지는 진창에 떨어졌다.

 

■ 2020년 놀면 뭐하니서 '깡부심'으로 부정적 여론 뒤집어 

 

2020년 5월, 비가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렇게나 실패가 이어지고, 놀림을 당한 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두 궁금해했다.

 

“하루에 ‘깡’을 몇 번 해요? 아침 ‘깡’, 점심먹고 ‘깡’, 저녁먹고 ‘깡’ 하루에 ‘3깡’은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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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놀면 뭐하니]

 

비는 위축되거나 상처 받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깡부심’을 드러내며 약점으로 놀림 받았던 부분들을 자학개그로 승화했다. 구식이라고 놀림받던 ’깡‘ 춤을 유재석과 이효리에게 전수하기도 했다.

 

비의 진짜 속내가 어떤지는 본인만 알 일이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에게서 ‘실패자’가 아닌 ‘최선을 다하는 한 사람’을 봤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보다 자신감을 잃지 않는 모습. 무수한 실패에도 무릎 꿇지 않고 조각같은 외모와 몸매, 전성기의 댄스실력을 유지하는 자기관리의 화신을 봤다. 그 모습은 오히려 잘 나가기만 하던 때보다 더욱 공감과 위로를 느끼게 했다. 

 

방송이 끝난 뒤, 오히려 그를 놀리던 것을 스스로 반성하는 네티즌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줄을 이었다.

 

부정적이던 여론이 완전히 뒤집히면서, ‘깡 열풍’이 불었다. 비는 이름에 ‘깡’이 들어간 과자들의 CF를 섭렵했다. 유재석, 이효리와 함께 ‘싹쓰리’로 활동하면서 휴가도 마음 편히 갈 수 없던 2020년의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여름의 정취를 전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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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로 바꾸자 MV]

 

■ 박진영을 매혹시켰던 '굶주린 어린 사자의 눈빛'을 소환한 '깡부심'

 

비는 그해 7월부터 유튜브 ‘시즌 비시즌’을 시작하며 팬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2020년 마지막 날에 전성기를 함께 했던 박진영과 듀엣곡 ‘나로 바꾸자’로 컴백했고, ‘아는 형님’ ‘미운우리새끼’ 등 현역 인기 예능에 출연하며 ‘비 신드롬’을 써가고 있다. 댄스가수들이 자주 나오지 않는 KBS ‘아침마당’에 얼굴을 비쳐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침마당 MC 이정민 아나운서가 “환갑 때 춤추는 무대 가능하다고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비는 “제가 25살 때 (박진영) 형이 50살까지 춤춘다고 하길래 안 믿었는데 지금 저랑 나와 있다. 저도 50대까지 가능할거란 희망이 생겼다”며 의욕적으로 답했다.

 

때때로 세상은 누군가의 삶을 철저히 몰아붙이곤 한다. 세상이 쏟아붓는 어려움에 꺾이지 않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비는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박진영을 매혹시켰던 굶주린 어린사자는 시련만큼 깊은 성숙함을 갖춘 강인한 사자로 거듭났다. 다시금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2021년의 비가 누릴 새로운 전성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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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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