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 살인범 A씨 그 많은 범행에도 왜 안잡혔을까?

이상호 기자 입력 : 2019.09.20 06:33 ㅣ 수정 : 2019.09.2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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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드러났다. 18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수감 중인 A(50대) 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1987년 1월 5차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경기도 화성에 동탄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화성 주민들은 지독한 ‘연쇄살인 트라우마’에 시달려야만 했다.

1986년 9월 3일부터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km 내 4개 읍·면에서 13∼71세 여성을 상대로 벌어진 살인사건은 1991년 4월 10번째 피해자를 끝으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공포와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고향이, 사는 집이 ‘화성’이라고 하면, “별에서 온 사람?” 정도의 반응이었지만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화성이라는 말도 못 꺼냈다. 마지막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10년쯤 지난 2000년대 초반 동탄신도시 첫 입주가 시작됐는데 주민들은 화성시라는 행정구역상 너무 이름이 싫었다.

그래서 화성시 의회는 시(市) 이름의 변경을 추진했는데,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여럿 있는 점 때문에 ‘삼성시(三星市)’가 유력한 후보가 되기도 했다.

화성사는 ‘남자 모두’ 용의선상 올랐는데...범행 당시 용의자 이씨 거주지 최대 관심

경찰이 최근 대한민국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인 이 사건의 범인으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모씨를 지목한 가운데 초미의 관심사는 용의자 이씨가 범행당시 어디에 거주했느냐는 것이다.

일곱 번째 살인사건이 벌어진 1988년 9월, 기자가 화성 들판 사건 현장에 가보니 사방이 인적과 인가(人家)를 볼 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평택 화성 등 경기 남부 평야 지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밤이 되면 CCTV는 커녕, 가로등 하나 없는 왕복 2차선 1번 국도 주변은 음산한 기운만 감돌았다. 이런 외진 길에서 통학, 퇴근길의 여성이 강간당한 뒤 살해됐고, 범인은 캄캄한 어둠 속에 유유히 사라졌다.

범행 장소가 뻥 뚤린 곳만 아니면,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처럼 목격자라도 있을텐데, 사방이 도주로가 되다 보니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과는 용모가 달라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여러 명에 의한 각각의 범행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연인원은 205만여명을 동원, 수사 대상자는 2만 1,280명, 지문대조는 4만 116명에 이르렀다. 화성에 사는 거의 모든 남자들이 경찰이 수사선상에 올라 알게 모르게 행적을 추적당했다.

따라서 용의자 이씨가 범행 장소 인근에 살던 주민, 거주자였다면 수사의 중대한 허점을 드러내는 허탈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 DNA 일치하면 범인? 재판을 할 수 없으니...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 이씨는 10건의 사건 중 5차(1987년), 7차(1988년), 9차(1990년) 사건과 관련, 현장에서 수집된 혈액 등에서 DNA가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씨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시한, 즉 공소시효는 이미 끝났다. 수사기관은 이씨를 범인으로 처벌해달라고 재판을 청구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씨가 범인인지 여부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재판 과정이다. 증거를 놓고 따진 뒤 재판부가 유·무죄 여부를 판단해야 되는데 재판 자체가 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재판이 열려서 혈액 등 DNA 증거가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유죄는 아니다. 용의자 이씨나 수사기관의 증명이 결정적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만약에 이씨가 범행현장 인근 주민이고 이곳저곳에서 옷을 입거나 벗는 등 일상적인 행동을 하던 사람이었다면 피해자의 옷에서 발견된 이씨의 DNA는 우연히 묻은 것 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