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뿌리, 로맨스 상실]⑤ 비혼·졸혼·초식남·건어물녀…각박한 사회의 결과물
이안나 기자 | 기사작성 : 2018-03-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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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안나 기자) ▲영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스틸컷 ⓒ프리비전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저출산’이다. 정부 역시 저출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아동수당’, ‘육아수당’, ‘육아휴직 수당’ 등 각종으로 수당을 신설하고 증액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복지지출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출산율은 단 한번의 증가 없이 매년 끊임없이 하락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에선 최하위다.

‘빅데이터를 처형하라’의 저자인 배철순 하우사회문제연구소 소장은 그 근본이유로 ‘로맨스의 상실’을 꼽았다. 현재 결혼 적령기인 2030세대가 결혼 및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집값’이나 ‘자녀 교육비’가 아니라 ‘사랑 부재’에 있다는 것이다.

뉴스투데이는 배철순 연구소장과 함께 중장년층보다 ‘졸혼’을 더 많이 검색하고, ‘비혼주의’를 선언하는 등 과거와는 달라진 청년들의 ‘로맨스’가 바로 저출산의 뿌리라는 관점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통계청이 예상한 '최악의 상황'보다 더 심각한 현 대한민국의 출산율 저하

5명 중 4명은 '비자발적 비혼', 경쟁사회로 인한 정서적 여유 없는게 근본적 문제

(뉴스투데이=이안나 기자)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다른 누군가와 함께 맞춰간다는 게 부담이 크죠. 특히나 결혼은 여러 방면으로 서로 재고 따져야 하잖아요. 그럴 정도의 자신감이나 의지가 없기도 하고요.”

‘비혼족’인 직장인 최모(29)씨의 이야기다. 미혼이 ‘결혼을 해야하는데 아직 못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비혼은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주체성을 담고 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것은 젊은 세대들의 주류 담론이다.

이런 분위기는 혼인율, 출산율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출생‧사망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2017년에 태어난 신생아 수가 35만 명대로 떨어졌다. 역대 최대 감소율 11.9%로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했다.

통계청이 2016년 12월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한 해 출생아 수가 36만 명 이하로 떨어지려면 2020년은 돼야 했다. 그런 예상이 2년도 채 되지 않아 뒤집어진 것이다. 비혼이나 만혼이 전반적인 출산율 저하와 관련이 있는 것은 맞다. 그렇다면 젊은 사람들이 왜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많은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을 이야기할 때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난 뒤’,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완성한 뒤’ 등을 말하며 미루고 있다. 경쟁사회에서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각박한 청년들에게 연애와 결혼은 사치이며 삶이 윤택해졌을 때에야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이들은 사랑을 할 만한 ‘정서적 여유’가 없다.

끝없는 경쟁과 출산 이후 돌아오는 불이익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은 청년들에게 강 건너 불구경으로 보일 뿐이다. 사회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경쟁하는 동안, ‘청년의 로맨스’는 이미 지나가 버린 상태일 것이다.

실제 강유진 총신대 교수의 지난해 연구에 따르면 비혼 성인남녀 중 자발적으로 비혼을 택하는 사람은 20%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자발적 비혼자가 5명 중 4명인 것이다. 강 교수는 결혼을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 맞춰 ‘비혼’을 포괄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정의했다.

강 교수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분석한 바에 의하면 가장 많은 비혼의 원인은 기회상실형(37.2%)였다. 적당한 결혼 나이를 놓쳐서, 마땅한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서, 시간이 없어서 등이다. 사실상 경쟁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적당한 때를 놓치거나, 그런 자신과 맞는 배우자의 조건을 따지다보니 결혼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어 결혼비용 부담형(29.3%), 자발형(20.7%), 불이익 부담형(12.8%) 순이었다.

비자발적 비혼자들은 결혼을 사회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오히려 결혼으로 인해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을 것이란 걱정이  잠재적으로 깔려있다. 단순히 ‘배우자를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기엔 불가능한 현실이다.

더 심각한 현상은 젊은 세대가 연애‧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성적 욕구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지만, 특히 우리나라가 심각하다. 2016년 7월 성생활 관련 설문조사(1090명 대상, 성의학연구소)에 있어 1년간 월 1회 이하로 성관계를 가지는 기혼 ‘섹스리스’ 비율은 36.1%로 나타났다.

미혼과 기혼을 구분하지 않은 조사에서는 38.2%이다. 이것은 2014년 기준 일본의 섹스리스 비율 44.6%에 이은 세계 2위 수준(전 세계 평균 20%)의 매우 높은 수치이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 성인남녀 10명중 4명은 사실상 성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이혼사유의 상당부분이 ‘섹스리스’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높은 이혼율 역시 설명 가능하다.

 

▲ 섹스리스 비율 표 [자료: 강동우 성의학연구소·일본가족계획협회(2014)·미국 가족과 문화 연구를 위한 오스틴 연구소(2015)

우리나라 섹스리스 비율 일본에 이어 2위

경쟁 지친 초식남·건어물녀는 대인관계 기피하고 '가짜 로맨스'에 빠져

결혼 이후에도 주변 사람들과의 경쟁·체면 챙기느라 진짜 로맨스 사라진 사회


이전에 없던 ‘초식남’과 ‘건어물녀’의 확산 역시 이성에 대한 관심과 욕구’, 로맨스가 삶에서 빠져있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이들은 일이 끝나고 미팅이나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집에 머물거나 자신의 취미활동에 빠져 산다.

배 소장에 따르면 일본과 달리 한국의 초식남‧건어물녀는 대체로 인생의 고비를 넘긴 나이대가 많다. 이들은 연애‧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 지쳐버려 안 한다는 게 배 소장의 의견이다.

배 소장은 “이들은 연애를 잠깐이라도 해본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삶에서 완전히 지쳐버리니 에너지가 빠져 대인관계 자체가 없다. 로맨스를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라마, 영화, 자극적 영상 등 가짜 로맨스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애와 결혼은 사실 고도의 기술과 긴장이 필요한 인간관계다.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고 그동안 고착화되었던 내 안의 습관도 바꿔야 하는 등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 에너지가 청년들에게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귀차니즘'이다.

드라마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남녀 주인공의 진도를 왜이렇게 늦게 빼냐”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심리는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이미 지쳐있는 이들에게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배 소장은 ‘졸혼’이 생겨난 배경도 부부사이의 로맨스가 사라졌기 때문이고 이 역시 원인은 경쟁이라고 말한다. 졸혼이란 혼인관계는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념이다.

전업주부라면 이웃과의 경쟁을 하느라 남편의 능력을 자꾸 재보게 되고, 맞벌이의 경우도 사회에서 경쟁을 한 후 지친 몸으로 집에서 ‘내가 더 많이 했다, 너는 뭐했냐’ 등의 다시 경쟁을 한다. 정리하자면 남들보다 더욱 ‘체면을 차리기 위해’ 경쟁하느라 진짜 로맨스를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배철순 연구소장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렇다. 경쟁에 지친 청년들은 연애를 하고 싶은 정서적인 여유가 없으며, 자기  주변의 이성들까지도 경쟁상대로 바라보고 혐오의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대신 ‘원나잇’등 쾌락으로서만 성적 욕구를 해결하거나 직접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드라마나 영화, 포르노물 등 ‘가짜 로맨스’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허상에 빠지게 되면 결국 허무해지게 되고 결국 욕구마저 사라진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경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강도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높다는 것이 배철순 연구소장이 짚은 우리 사회 문제점이다.  과거에도 결혼 할 때 부모의 도움 없이 집 구하기란 어려운 문제였으며, 아이를 키우기 위한 집안 살림살이는 빠듯했다. 다만 과거와 달리 이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니까”식의 열정적인 사랑은 현재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절망적인 로맨스 상실의 시대다.


[저출산의 뿌리, 로맨스 상실] 끝.


[이안나 기자 leean@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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