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 (20)사관생도의 인턴과정 ‘야전지휘실습’서 깨달은 교훈들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8-01-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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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4학년 생도 실습때 동행했던 육사 동기생들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사관학교 ‘장교 인턴과정’ 야전 지휘실습은 3,4학년 두 차례 실시

사관학교는 국가의 간성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래서 미국 육군사관학교(West -point)는 2000명이 넘는 인원을 선발하여 대위로 진급하면 임관 인원의 50%를 사회로 복귀시켜 공무원 및 기업인 등으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도록 시스템화하였다.

이는 올바른 국가관과 사명감을 지닌 인재들이 군에서보다도 사회 각층에서 맹활약하여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고교시절 지방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사관학교는 군 장교를 양성하는 개념에서 국가의 일꾼들을 배출하는 일종의 인턴과정으로 전환됨으로써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 군도 한번 즈음 제고해볼 가치가 있다.

태릉골 육사는 학년별로 특화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겨울방학을 끝내고, 신입생도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시기에 2학년은 야전부대로 배치되어 분대원으로 병생활을 체험하며, 3학년 때에는 전방부대에서 소대장 지휘실습을 10일~2주간씩 진행한다.

일종의 장교 임관전의 ‘인턴과정’이라 할 수 있다. 4학년은 생도대에서 고급장교가 되기 위한 리더십과 영어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졸업을 앞둔 시기이라 그들이 모여 있는 별도 공간을 속칭 양로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필자의 생도 시절에는 3학년과 4학년 때 야전 지휘실습을 받았다.


3학년 실습 때 인상 깊었던 육사 선배, 예비사단 오뚜기 부대의 All cover 만능 소대장

문맹자 병장도 소대장보다 뛰어난 리더십과 숙달 수준 보여,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깨달아

육군 부대는 전방(GOP), 예비, 향토, 동원사단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3학년 지휘실습은 예비사단에서 각 분대까지 배치되어 병 생활을 체험하며 약 2주간 진행되었다. 예비사단은 전방(GOP)사단 후방에 위치하여 GOP 경계근무 보다는 주로 교육훈련 위주로 운용된다.

당시 사단장에게 신고한 뒤 트럭에 나누어 탑승하여 실습 대대에 도착했을 때 가슴은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왜냐면 1년 뒤에 내가 지휘해야할 병사들을 직접 만나본다는 기대감에 설레였기 때문이었다.

보병중대에는 4명의 소대장이 있다. 그중 화기소대장은 선임 장교가 통상 임무를 수행한다. 주로 학군장교가 대부분이고 간혹 단기사관, 삼사, 육사출신 장교가 끼어 있다. 도착한 대대에는 다행이도 2년 선배인 35기가 1명 있었고 그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소대장 BOQ에 짐을 풀고 소대에 배치되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 중대는 학군과 삼사 출신 소대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3학년 야전실습 때 만난 육사 선배 소대장ⓒ뉴스투데이

만나 본 병사들은 오히려 전방(GOP)사단을 선호했다. 전방(GOP)사단은 경계근무 만하고 휴식 시간이 보장되나 예비사단은 365일 계속되는 훈련에 힘들기 때문이었다. 2~6주 동안, 하계나 동계 종합훈련을 나가면 야외에서 텐트 생활을 하며 한여름 폭염과 한겨울 혹한을 이겨내야 하고, 춘추계 진지공사에 투입되면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것은 더 고역이었다.

배치된 중대 병사들의 가정형편을 파악해 보니 대부분 중학교와 고교졸업자 였고 대학생 출신은 10% 정도였으며, 50% 정도가 홀어머니, 부모이혼, 고아 등의 결손 가정이었다. 게다가 1979년 당시에는 문맹자도 중대내에 있었다. 그래도 병장이 되면 소대장보다도 오히려 리더십이나 교육훈련, 작업에 대한 지식과 숙달정도가 더 뛰어났다. 거기서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놀라움도 느꼈다.

일과를 마치고 소대장 숙소인 BOQ에 돌아와 타중대에서 실습한 동기들과 다시 모여 많은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대대에 1명 밖에 없는 육사선배의 근무모습은 All cover하는 활동 영역을 갖고 있는 만능의 맥가이버를 보는 것 같았다.

소대장 보직이지만 대대 교육장교 대리근무를 하면서 작전장교의 업무를 보좌하고 전 대대원이 모여 의식행사를 할 때에는 단상에 올라가 애국가를 지휘하고 또 소대원 교육훈련 시간에는 현장에서 지도 감독도 하였다. 태권도 유단자인 그는 상급부대 측정에 대비해서 전 대대원을 대상으로 품세와 대련 등을 일일이 지도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대대 실습기간 마지막 전날에 그 선배는 소대장의 쥐꼬리만한 봉급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모아놓고 저녁을 사주며 “임관해서 야전에 나오면 육사 출신들은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 고 말하며 “육사교육에 버릴 것이 없다.

특히 검도, 유도도 있지만 태권도는 반드시 유단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3금으로 음주가 불가능 하지만 선배가 주는 것이니 마셔라하며 따라준 막걸리 한잔의 그 맛과 한마디 조언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전방(GOP)사단 칠성 부대에서의 야전 지휘실습에서 느낀 ‘병사들의 투지’

그 병사들,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와 ‘조직 관리’의 중요성 깨닫게 해줘

4학년 소대장 지휘실습은 전방(GOP)사단에서 진행되었다.
이미 3학년 하계 군사훈련 때 소대에서 대대까지 전술훈련과 주요 화기를 다루는 법까지 교육도 받았고 4학년 하훈 때에는 공수훈련까지 받은 상태라 당장이라도 소대장 근무를 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임관한 상태는 아니었다.

전방 지휘실습을 했던 1979년은 아래(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장공비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출몰하는 시기였다. 때마침 칠성부대는 북한 무장공비가 GOP를 뚫고 내려와 아군 경계근무를 무력화 시키고 다시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모든 간부 및 병사들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 자료출처=2016 국방백서 252쪽 참조

대남 침투도발 양상은 1960년대에 1,011건의 최고점을 찍다가 1970년대 311건으로 감소하여 다음 연도부터는 직접침투 보다는 해안과 타국을 이용한 루트 등 간접침투로 전환하여 국내로 들어와 지금도 암약을 하고 있다.

우리는 사단 및 연대 신고를 하고 백암산 정상의 GOP중대로 배치를 받았다. 화랑대에서 사단까지 이동하여 신고하고 소개받는데 하루가 걸렸고 다시 연대를 거쳐 GOP중대 소초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이 되었다.

GOP는 산악으로 이루어져 도보로 이동을 하기에 많은 시간도 걸렸고 지치기도 했다. 수 백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니 무릅 관절도 통증이 왔다. 마침 GOP중대장이 육사 6년 선배님이었다. 백암산 정상의 거친 바람과 친구가 되니 수염도 덥수룩하고 거친 모습에 피곤해 보였다.

GOP는 야간 경계근무가 주로 핵심 일과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가진지를 점령했다가 은밀하게 주진지를 점령하여 적의 침투도발을 감시하는 것이다. 심심해 질려고 하면 북한의 대남 방송이 졸음을 깨웠고 전반야에는 선임하사관이, 후반야에는 소대장이 근무실태를 확인 차 순찰을 돈다.

경계근무중에 간혹 중대장과 대대장의 순찰을 접하게 된다. 병사들은 이것을 더 두려워했다. 그들로부터 근무자세 불량을 지적받으면 바로 영창행이기 때문이었다. 얼마전 경계근무에 실패하여 철책을 은밀하게 절단하고 내려와 그 침투조는 남쪽을 정찰하여 정보 수집을 다한 후 다시 강습 돌파로 철책을 뚫고 돌아갔다.

그들과 조우한 우리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반면 그 당시 인접 백두산 부대에서는 침투한 3명을 모두 사살하여 비교가 되다보니 칠성부대의 장병들은 그 일부의 실수로 치욕과 수치심에 전체가 침체되어 있었다.

해당 지휘관은 경계 실패의 책임을 지고 보직해임 되었지만 남아 있는 간부 및 병사들도 대책 강구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피곤에 절어 있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로 잘못한 자가 그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로 인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다른 자들까지 피해를 주는 것은 무언가 겉돌고 있는 모습이었다.

산 정상의 중대 본부 막사 뒤에는 몇 평정도의 평평한 공간이 있었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그곳에서 사기가 충천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 먹다 남은 밥과 반찬을 잔반이라고 부른다. 심야 근무를 끝내고 막사로 돌아올 때 그 평지 잔반통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산돼지 가족을 만났다. 사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니 매우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씩씩거리며 먹는 모습에서 침체에 빠져있는 장병들과 대조적으로 사기가 충천한 모습이었다. 부대원들은 잔반을 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멧돼지들의 먹이도 나누어주면서 잔반을 처리해줄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고 생각되었다.

사관학교 4년 동안 가장 많이 듣는 말중에 하나가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였다. 경계실패의 후유증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칠성부대 장병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 와중에 지휘실습 나온 사관생도들에게 관심을 써주는 모습에서 오히려 “극한(極限) 속의 여유(餘裕)”를 찾을 수 있었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은 당연한 것이나 군대는 사기를 먹고 사는 동물이다. 실습을 마치고 화랑대로 복귀하면서 대규모의 조직은 혼자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특히 사람들을 잘 관리하고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느끼며, 이 부대가 조속히 수렁에서 빠져나와 사기충천한 부대가 되길 기원했다.

이러한 장교 인턴과정인 야전 지휘실습을 통해 사관생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였한 육군 소위로 성장되어 갔다. 끝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및 연구

 - ‘충북지역전사’, 우리문화사, 2000.2월(1500부 발간)
 - ‘동서독 통일과정에서의 군통합에 관한 연구’, 동국대, 1995.6월
 - ‘지고도 이긴 전쟁’, 합참지, 2002. 1월
 - ‘ATCIS는 이 시대 영관장교의 개인화기’, 육군지, 2010.9월
 - ‘소통과 창의는 전승의 지름길’, 국방저널, 2010.11월
 -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12월


※편집자주 : 본 칼럼은 전문가의 특정 견해를 밝힌 내용으로 뉴스투데이의 편집방향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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