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칼럼] 학생과 노동자의 ‘경계인’ 한국 대학생의 외침
박희정 기자 | 기사작성 : 2018-01-11 14:51   (기사수정: 2018-01-12 08:00)
1,322 views
Y



(뉴스투데이 릴레이기고=박혜원/동국대학교 국어국문 문예창작학부 4학년)

“대학생은 할 건 많고 돈은 없는 사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 느꼈다. 돈이 나갈 곳은 너무 많은데 그걸 감당할 돈은 부족하다. 전공 서적은 적게는 몇 만원씩 크게는 10만원 이상 빠져나간다. 학교에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도 부담된다.

교복에서 벗어나자 입을 옷이 많지 않지만 옷을 새로 사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알바를 한다. 최저임금도 잘 챙겨주지 않는 편의점에서 취객을 상대하기도 하고, 근로장학생으로 학교 여기저기에서 노동을 한다. 혹은 교수님 밑에서 잡일을 하는 조교가 된다.

살아가면서 노동을 하지 않을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노동’이라고 이야기하니 괴리감이 존재한다면, ‘근로’라는 단어로 대체해보도록 하자. 우리들은 언젠가 근로자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근로자인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처럼 인식된다. 작년 경향신문은 노동절을 맞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이 부끄러워요?” 라는 기사를 기획했다. 설문조사를 통해 초등학생들은 노동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며 노동자는 힘들고, 가난하고, 난폭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 기사였다.

이는 초등학생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중, 고등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치킨배달이나 공장노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한다. “나는 노동자는 되지 않을 것이고, 삼성에 입사할 것이다”라고 한 대학생의 인터뷰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노동이 무엇인지, 노동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기피할 뿐인 우리사회의 일면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노동자와 근로자는 무엇이 다를까. 우선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 노동자 (勞動者) : 1.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 2. 육체노동을 하여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 근로자 (勤勞者) :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

이상의 정의를 기준으로 볼 때, 노동자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고 자기의 노동력을 삼품으로 삼는 자를 말한다. 근로자는 부지런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노동자는 자본가와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하지만 근로자는 자본가에 종속되어 위계상 아래에 위치한다.

우리는 노동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자일까, 근로자일까. 삼성에 취직하기를 바랐던 대학생은 노동자가 아닐 수 있을까. 우리가 노동자가 아니어도 정말 괜찮은 걸까. 대학사회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근로장학생’과 ‘조교’의 사례를 통해 생각해보자.

• 근로장학생 : 근로장학생은 교직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대가로 장학금을 받는 학생을 말한다. 학생들이 ‘근로’를 선호하는 것은 시급도 높으면서 편하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근로장학생은 ‘노동자’가 아닌 ‘장학생’의 신분이며 ‘급여’가 아닌 ‘장학금’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 4대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며, 주휴수당과 퇴직금 등을 받을 수도 없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 15시간 이상 근무했을 때 주휴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고 4시간 이상 연속근무 시 30분의 휴게시간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근로장학생은 이에 적용받지 못한다. 장학금이 늦게 지급되어도 이에 항의할 근거가 없으며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지 않을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실제로 이들은 노동의 대가로 장학금이라는 이름의 임금을 받고 있지만,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모 대학교에서 학교 행정 개편을 이유로 근로장학생을 일방적으로 해고한 경우도 있었다. 해당 학생은 이에 항의했지만 “그만두라면 그만둬야지 말이 많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근로장학생 선발 기준에 있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작년 우리학교 근로장학생 선발 공고 중 컴퓨터 등을 수리하고 옮기는 기자재 담당은 오직 ‘남학생’만을 모집하였으며, 컴퓨터 공학과 재학생을 우대하였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컴공과 재학생은 컴퓨터 수리를 다른 과 학생보다 잘한다는 편견, 여학생은 기자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다른 학교에서도 근로장학생을 선발하는 데 있어서 군필 남학생을 우대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근로가 정말 장학이라면 공개 선발을 통해 모든 학생들에게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공고도 없이 기존의 장학생을 재선발하거나 추천을 통해 아는 사람을 선발하기도 한다. 근로장학생은 노동자도 아니고 장학생도 아니어서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래서 장학생으로서 안정적인 장학금을 지급받지 못할 수 있고, 노동자로서 보호받지도 못하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 조교 : 조교도 노동자냐고 물었을 대 많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조교는 보통 교수의 연구를 도와 학위를 준비하거나 학비를 보조받는 제자 정도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조교가 노동자가 아니며 출석체크나 교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조교가 연구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너무 다르다.

우리학교의 한 재학생은 휴학 중 프로젝트 조교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업무 내용의 모호함 때문에 일종의 노동 착취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교수가 요구한 대로 중고 물품을 판매하기도 했고 핸드폰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법을 알아보라는 등의 개인적인 심부름에 시달렸다.

또 주1일 출근, 10시간 근무라는 당초의 근로조건과 달리 교수가 부르면 언제라도 학교로 출근해야 했다. 그는 교수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법인카드 사용기록을 조작해 부정한 방법으로 회의비를 타냈고, 개인적인 용도로 교비가 사용되는 것을 묵인하고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작년 우리학교 대학원 총학생회는 ‘대학의 법과 정의’라는 이름의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조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학교를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조교들은 주 60시간 이상의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장학금을 받고 있으며,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펀딩은 모금 목표액을 넘기는데 성공하였고 검찰에 의해 우리학교 435명의 조교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40여명의 조교에게 학교가 처벌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확인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조교를 노동자로 인정하면 수업을 들어야 하는 대학원생은 조교를 할 수 없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또 연구조교와 교육조교의 근로시간을 주 14시간으로 단축해서 법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받을 없도록 하였으나 업무량은 그대로 유지하는 등의 부당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근로장학생과 조교, 기본적인 권리 인정받지 못하는 ‘반쪽’ 노동자

노동자임을 외쳐야 빼앗긴 권리 되찾을 수 있어

근로장학생과 조교는 모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것이다. 또한 업무 외의 지시를 받고, 윗사람에게 갑질을 당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해고당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있다.

학교는 ‘장학생’ 또는 ‘조교’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고용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 이들의 임금을 장학금 형식으로 지급함으로써 학교의 장학금 지급 비율을 높이는 꼼수를 쓰고 있기도 하다.

신정욱 전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1년여 투쟁을 통해 학교 측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마지못해 인정했지만 여전히 조교에 대한 임금 체불과 감축 등의 위협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소송을 통해 조교의 근로자성 논의가 진행되었고, 고용노동부 또한 조교를 노동자로 볼 수 있다는 행정해석을 내놨다”며 “추후 조교 문제에 대한 정책적 변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많은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근로장학생과 조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권리를 빼앗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자신이 노동자임을 외쳐야 하는 이유이다.


[박희정 기자 youyen2000@news2day.co.kr]
메일보내기
보내는분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내용
 
주요기업 채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