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87) 내가 가진 가장 빛나는 보석
윤혜영 선임기자 | 기사작성 : 2017-12-27 16:27   (기사수정: 2017-12-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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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헤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어머니가 진정하셔야 아이도 빨리 안정감을 찾아요”
 
패닉상태에서 위안이 된 것은 바로 20대 중반의 구급대원의 ‘말’ 한마디

 
며칠전 일이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살 딸아이가 하원 후 유독 맥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좋아하는 과자도 시큰둥하더니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체온계를 갖다대니 열이 40도. 고열에 깜짝놀라 해열제를 준비해서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아이가 온몸을 심하게 떨어대며 의식을 잃고 눈은 반쯤 감긴채 흰자위만 드러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재차 때렸는데 사지가 뻣뻣해지더니 입술이 청색을 띄며 경련만 반복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부둥켜안고 입에 숨을 계속 불어넣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누르고 살려주세요. 아이가 숨을 안쉬어요. 라며 재차 울부짖었다.
그쪽에서는 기도를 확보하게 아이를 옆으로 누이고 대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패닉상태였다. 아이의 이름을 계속 외치며 미친듯이 손발을 주물렀다.

그리고 신을 불렀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우리 아이 살려주세요. 하느님. 시키는 것 뭐든지 다할테니 제발 아이를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질렀다. 내가 대신 죽을테니 아이만 살려주세요.
찰나가 너무도 아득히 느껴지던 시간, 이윽고 구급대가 도착했고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구급차 안에서 아이가 갑자기 의식이 돌아오더니 '엄마'부르고는 흐느껴 울었다. 나도 따라 엉엉 울었다.

병원에서 진료를 하니 아이는 고열로 인한 열성경련으로 일시적인 쇼크가 온 것이었다. 병명은 인플루엔자 양성, 독감과 편도염이었다.
아이가 의식을 되찾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열을 내리기 위해 팬티만 입은 아이는 ‘추워’하며 몸을 떨고 울었다. 나 역시 반팔티셔츠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접수처에서 인적사항을 작성하는 동안 구급대원이 아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계속 안고 달래주었다. 20대 중반 쯤 되었을까. 막내동생보다 더 어린나이의 청년이 나를 위로했다. “ 아이들이 커가면 원래 놀랄일들이 많아요. 어머니가 진정하셔야 아이도 빨리 안정감을 찾아요. 울면 괜찮은 거예요” 그 청년이 건넨 말은 내가 평정심을 빨리 회복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응급실 환자와 보호자의 가장 큰 바람은 ‘평범한 일상’
 
응급실은 갖가지 이유로 다급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고함소리로 시끄러웠다. 얼굴에 피를 흘리는 사람, 인상을 쓰고 몸을 활처럼 구부린 사람, 나부터 빨리 봐주라고 외치는 사람.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와중에 간호사와 의사들은 놀랄 정도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들을 대처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느닷없는 사고는 날벼락이지만, 그들은 이 혼란통이 일상 그 자체이니 그럴만했다. 다행히 아이의 열이 어느 정도 내려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병원에는 독감과 장염환자가 들끓었고, 나는 감염을 피하기 위해 24시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야 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며, 널판지 같은 보조침대에서 칼잠을 잤다.

아이는 언제 아팠냐는듯 수다를 조잘거리고, 어리광을 부리고 과자를 졸랐다. 회복하고 있는 아이를 보니 육신의 불편함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한숨 돌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건강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생아를 안고 와서 울부짖는 여인도 있었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병원비를 빌리는 중년의 부인도 있었다. 백발의 노인이 산소호흡기를 착용한채 들것에 실려 이송되었고, 연인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아가씨도 있었다.

“여기서 나가면 맛있는것 먹으러 가자. 나도 보고싶어. 떨어져 있지만 메리크리스마스” 엿들은게 아니라 같은 엘리베이트를 탔기에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었다.
옆 침상의 남자는 주사가 무서워 소리쳐 우는 아이에게 “주사 잘 맞고 얼른 나아서 집에 가야지. 산타 할아버지가 멋진 선물 많이 갖다놓으셨을거야” 하며 달랬다.

병원의 갑남을녀들은 삶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의 복귀였다.
 
 
위기가 일깨워준 ‘소중함’
 
가끔 주부들이 많이 가입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해서 미칠 것 같다는 사연들이 종종 올라온다. 간절히 사랑하던 남편과의 애정도 무미건조해지고 갖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월급은 제한적이고, 젊은 시절엔 잘나갔는데 경단녀로 나이만 먹는것이 억울하다는 내용들이다.

나 역시 그랬다. 누군가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며 나를 잊어버린다는게 조바심 났다. 세월은 흐르고 거울속 얼굴은 시들어 가고, 더디게 흐르는 시간속에 뭔가를 놓치며 산다는 착각말이다. 그것들이 나의 ‘선택’이었고 내가 행할수 있는 가장 ‘최선’임에도 말이다.

스페셜한 어떤 것들을 꿈꾸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등한 시 하는 것이다. 그러다 위기가 닥치면 비로소 가진것들의 소중함을 돌아본다.

그날 밤, 피곤함을 이유로, 사실은 귀찮음으로 아이에게 늘 다음으로 미루던 동화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옛날옛날에 머나먼 왕국에 아름다운 공주와 나쁜 마녀가 살았는데...”

아이는 한문장을 시작했을 뿐인데 환호성을 질렀고, 나는 소리없이 울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가슴속에 겹겹이 도사려 있던 뭔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맞은편 창밖에 화려한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늘 차갑게만 느껴졌는데 그날은 그 빛들이 참으로 가깝게 따스하게 다가왔다.

내가 그토록 찾고자 애쓰던 보석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윤혜영 선임기자 geo05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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