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터뷰] 이건 선임소방검열관, 직업으로서의 소방관은 ‘꿈’과 ‘좌절’의 양극단을 체험
이안나 기자 | 기사작성 : 2017-11-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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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투데이=이안나 기자) 이건 주한미공군 선임소방검열관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이안나 기자)


이건 검열관, 6년 간 서울 소방공무원 근무 후 줄곧 주한 美 육·공군 소방에서 일한 '베테랑'

생사의 체험을 통해 '꿈'을 얻었지만 소방관의 희생에 대한 냉담에 '좌절'도 겪어


美 공군 소방은 전 세계에 약 200여 개의 소방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소방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안전시스템을 선도해 나가는 기관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전 세계 소방의 축소판’인 셈이다.

그 중 주한 美 공군 오산기지 소방서는 미 군인들이 출·입국하는 활주로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한국 안의 ‘작지만 큰’ 미국 마을에서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주한 美 공군 오산기지는 초·중·고등학교, 극장, 쇼핑몰, 골프장 등을 포함해 약 600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대한민국 소방은 저에게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서울소방에서 6년을 근무하면서 배운 소중한 경험들이 지금의 미국 소방관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며 근무할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건 선임소방검열관은 이곳에서 소방검사, 홍보, 화재 예방, 각종 인·허가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1995년부터 6년 간 서울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다가 2001년 주한 미 육군 소방서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05년 지금의 오산 미 공군 기지 소방서에서 근무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같은 분야에서 유니폼을 세 번이나 갈아입은 흔치 않은 경험을 했으면서도 22년 간 소방관으로 일한 베테랑이다.

이건 검열관의 ‘소방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소방학교, 경기소방학교 등에 출강해 신임·경력 소방관들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해 전문교육을 실시하고, 지난 3년 동안 경향신문, 세이프타임즈, 오마이뉴스에 약 130여 편의 소방칼럼을 무료로 기고하며 대중을 위해 소방을 홍보했다.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 대외협력위원과 ‘2018충주세계소방관경기대회’명예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에 있다.

소방관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꿈이 없던 내가 소방 일을 하며 인생에서 생각도 못한 일들을 많이 경험했다”며 “대한민국 소방을 사랑하는 한 소방인으로서 그 동안 받은 것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고 대답했다.

한국과 미국 양국의 소방서에서 두루 경험한 경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하여 여러권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 등 국내에서 소방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큰 이때, 이건 검열관과 우리나라 소방선진화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고 앞으로의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이건 선임소방검열관의 사무실 중 일부. 가운데 초상화는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소방관이 직접 그려준 것이다. [사진=이안나 기자]

한국 소방서는 불필요한 행정 낭비 요인 많아...미국 소방서는 결재라인 간결해 업무 집중에 유리

Q. 과거 일했던 한국 소방서과 현재 일하는 미국 소방서에서의 근무 환경 차이는 어떤가.

A. 지금은 일선 소방서에서도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내가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할 당시만 해도 감사를 위한 불필요한 행정, 그리고 상급자에 대한 의전 등이 많아 정작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하지만 미국소방 시스템에 몸담고 근무하다보니 모든 것들이 자기업무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결재라인도 대단히 간략한 점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내 업무를 스스로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근무환경이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업무를 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행정업무들이 없다보니 남은 시간엔 지금 하고 있는 업무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고민하기도 한다.


한국의 소방 시스템은 유엔이 인정하는 '최고 등급' 받는 등 빠르게 발전하는 중

Q. 우리나라 소방 선진화 과정은 어느 단계에 와있나.

A. 지금의 대한민국 소방은 다양한 분야에서 대단히 큰 성과를 이루었다. 일례로 중앙119구조본부의 국제구조대만 해도 유엔에서 인정하는 최고 등급인 'Heavy' 등급을 인정받았고, 필리핀, 베트남, 네팔, 도미니카공화국 등 많은 나라들이 한류소방을 배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사실 소방의 선진화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적 선진화와는 달리 소방 내적으로 보면 몇 가지 고민해야 할 점들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는 미국이나 유럽, 또는 일본의 것들을 따라가는 것이 선진화의 한 과정이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소방의 선진화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Q.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다른 관점이란?

A.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 소방관들이 보다 더 건강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대한민국 소방법 제1조에서 말하고 있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게 할 것인지’가 진정한 선진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소방관이 하는 업무를 더 깊이 이해하고 연구해야 하며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발하고 장비를 지급해야 할 것이다.


▲ 주한미공군 오산기지 소방서에 준비되어 있는 소방차들. 왼쪽은 일반 화재진압에, 오른쪽은 비행기 화재시 진압용으로 사용된다. [사진=이안나 기자)


소방관 국가직 전환을 계기로 재난 대응에 대한 총괄 시스템 구축해야 

Q. 국가직 전환을 하면서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면 인력 부족, 장비 노후화 문제 등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해결될 것으로 보이는데.

A. 2019년이 되면 소방관의 신분은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바뀌게 되겠지만, 여전히 예산과 인사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다. 이 경우 적재적소에 소방력을 배치하는 문제라든지, 재난의 초동대응 단계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난에 대한 이해도와 지휘역량에 따라 재난대응의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우려도 있다. 재난초기에 잘못 대응하면 이는 결국 무고한 시민과 출동한 소방대원들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재난 대응을 총괄하는 지휘관은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사람들이어야 하며 긴급한 재난상황에서는 단일화된 지휘시스템이 중요하다. 물론 철저히 훈련되었다는 가정 하에 통합지휘시스템도 고려해 볼 수도 있겠다.

Q. 지휘관은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는 공무원 특성 상 시간이 지나면 진급하는 시스템이지 않나.

A. 그 부분이 미국과 한국의 컨셉 차이다. 소방관은 계급으로 말하는게 아니라 업무 양과 질로서만 평가를 받는다는 게 미국 소방의 방향이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 계급과 상관 없이 전문성을 가지고 사람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간혹 승진만 빨리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또 매번 포지션이 바뀌다 보니 여러 경험을 하지만 정작 사고가 터졌을 때 전문인이 없다. 소방관은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니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은 일해야 한다. 급수와는 다른 전문성이 보완되어야 한다.


직업으로서의 소방관, '승진'과 '전문성' 중에서 양자 선택해야

Q. 신임 소방관들에게 교육을 많이 하던데 주로 어떤 내용을 강조하는가.

A. 둘 중에 하나를 정하라고 한다. 죽기살기로 공부해 소방서장이 자신이 맡은 지역만큼은 안전하게 지키던지, 어느 한 분야 전문가가 돼서 대한민국 안전의 한 분야에 기여 할 것인지. 중간에 회색지대는 없다고 강조한다.

즉, 승진과 전문성 둘 중에 한 방향을 정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 그 과정에서 승진이 늦어질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신임 소방관들에게 전문성을 추구하고 살아도 행복하고 멋있을 수 있고, 그것이 당신들이 생각하는 꿈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을 보탠다.

Q. 현재 시스템인 ‘순환보직’ 시스템보다 각 분야의 전문 소방관을 기르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소방 내부적으로도 이런 여론이 형성되어 있나.

A. 물론이다. 요즈음의 소방은 전통적인 업무였던 화재, 구조, 구급서비스를 훨씬 뛰어 넘어 위험물 사고, 항공기 사고, 대테러 등 점차 대형화되고 복잡한 사고를 담당하고 있다.

결국 소방의 존재감은 현장 전문성에 있다. 소방 내부적으로도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탄력적인 순환보직 운영과 생애주기별 경력관리 등을 통해 소방이 담당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소방덕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미래지향적 소방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안전은 소방관의 힘만으로 역부족, 시민과 정부가 협업하는 시스템 정착 필요

공상 당한 소방관과 그들의 가족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배려와 관심이 절실해

Q. 미국 소방에서 적어도 이런 점은 우리나라가 주의깊게 봤으면 하는 점이 있나.

A. 안전은 소방관의 힘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미국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기업, 시민 모두가 소방관을 중심으로 안전을 위해 투자하고 연구하고 협업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다. 나는 이것이 미국 소방의 강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소방은 어느 한 곳에 정체되어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생각한다. 우리나라 역시 현장의 최일선에서 수고하는 소방관을 중심으로 국가와 기업, 시민들이 함께 협업하고 고민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시민들과 정부 등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다. 뉴스를 보면 일부 시민이 출동한 소방관에게 욕을 하고 폭행을 했다는 내용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대단히 마음 아프고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방관은 의사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살리는 전문가이자 시민들의 선한 이웃이기도 하다. 부디 소방관들이 소명을 가지고 현장을 누빌 수 있도록 소방관을 보시면 그들의 고민을 이해해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또 하나는 지금 공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소방관들과 직무 중에 순직하신 소방관, 그리고 그 유가족들을 정부가 잘 보듬어 주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무릎쓰고 달려간 소방관과 그 가족들은 대한민국의 가족이다.

공상을 당했으나 정부로부터 공상승인을 거절 당해 소송까지 벌이며 국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해 나가고 있는 그들은 내가 그동안 지켜온 국가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이중 고통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부디 그들의 노고와 아픔을 살피고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챙겨주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이안나 기자 leean@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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